All Chapters of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Chapter 111 - Chapter 120

306 Chapters

제111화

어느 한 5성급 호텔 꼭대기 층, 육성민이 헬스장에서 돌아왔다. 금방 운동을 마친 상태라 온몸의 근육이 살아있었다.샤워를 마쳤는데도 몸에서 여전히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비서가 한참 전부터 계속 기다렸다.평소 사람들에게 늘 친절하고 잘난 척하는 법이라곤 없는 사람이라 비서가 웃으면서 장난을 쳤다.“대표님, 여동생분이 부신 그룹 대표의 아내였다니. 왜 그동안 한 번도 말씀 안 하셨어요?”육성민의 안색이 갑자기 차가워졌다.“어디서 들었어?”비서가 휴대폰을 그에게 보여주었다.“보세요. 여동생분이 또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어요.”[#강민아 아들 학대#][#강민아 전남편 반하준#][#강민아 돼지 먹이#]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한 내용 모두 강민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었다.육성민이 기자가 반현민을 인터뷰한 녹음을 눌렀다. 그러다가 녹음을 끝까지 듣기도 전에 휴대폰을 부숴버릴 듯 꽉 쥐었다.그의 팔에 있는 핏줄이 다 튀어나올 지경이었다.“터무니없는 소리.”분노 가득한 그의 목소리에 비서는 깜짝 놀라 심장이 다 쿵쾅거렸다.강민아의 전남편이 서경시의 재벌인 부신 그룹 대표 반하준이라는 사실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친아들이 강민아를 비난하는 말을 듣고 난 후 네티즌들은 분노를 터트렸다.[반씨 가문 도련님 말이 맞아요. 강민아가 반하준이랑 결혼한 7년 동안 반씨 가문에 아이 둘을 낳아준 것 외에 무슨 기여를 했나요? 어떻게 기자들 앞에서 전남편을 무시하는 발언을 할 수가 있죠? 염치도 없나 봐요.][재벌가 사모님이 됐으면 얌전히 있기나 할 것이지, 남편과 자식을 버리다니. 허. 가정주부가 사회생활을 오랫동안 하지 않았는데도 자존심은 엄청 강하더라고요.][강민아는 아예 모를 거예요. 전남편이 밖에서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서경의 재벌 2세라서 아이를 낳아주겠다는 여자가 줄을 섰을 텐데.][제 친척이 서경시 상류층과 접촉한 적이 있었는데 반하준은 사생활이 깨끗하고 스캔들 하나 없다고 하더라고요. 많은 여자들이 매달리는데도 눈길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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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화

반하준은 일이 너무 많아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가끔은 심지어 반현민과 대화할 시간조차 없었다.반현민이 강민아에게 학대를 받았는지는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강민아가 돼지 먹이 같은 음식을 먹였다는 건 그의 어머니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연진숙은 강민아가 만든 음식을 보면 창피해서 어디 내놓을 수가 없다고 했다. 또 그녀가 차린 밥상을 보는 것 자체가 수치였고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라고 했다.강민아의 고향 음식이 서경시의 재벌들에게는 돼지 먹이나 다름없었다.엄규민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 드디어 누명을 벗으셨네요. 지금 인터넷에서 대부분 사람들이 대표님 편을 들고 있어요.”반하준은 인터넷 여론에 별 관심이 없었다.“앞으로 강민아와 관련된 일이나 인터넷 여론 같은 건 따로 보고하지 않아도 돼.”두 사람은 이미 이혼했고 강민아가 죽든 살든 그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어?”그런데 그때 엄규민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강민아 씨한테 불리한 실검들이 전부 삭제됐어요.”반하준은 강민아가 돈을 써서 실시간 검색어를 내렸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근데 160억 원을 건드릴 수 없어서 실검을 내릴 돈이 없을 텐데.’그는 곧장 휴대폰으로 SNS를 열어보았다. 강민아와 관련된 부정적인 단어를 검색할 경우 관련 법규에 따라 검색할 수 없다는 문구만 떴다.그의 깊은 두 눈이 급격하게 흔들렸다. 이건 엄청난 배경을 가진 누군가가 SNS 직원에게 연락하여 실시간 검색어를 내리도록 지시한 게 틀림없었다.그래야만 강민아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들이 인터넷에서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으니까.‘누군가 민아를 돕고 있어.’반하준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대체 누구지? 설마 심은호?’...강민아는 콘도에서 물을 시원하게 틀어놓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정이와 막 식사를 끝냈고 정이는 의자 위에 올라가 식탁을 닦았다. 그때 식탁 위에 놓인 강민아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모르는 번호였다.“엄마.”정이가 강민아를 불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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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화

휴대폰 화면 속 연진숙의 얼굴이 순식간에 잔뜩 일그러졌다.“강민아, 지금 뭐 하는 짓이야?”연진숙은 당장이라도 휴대폰 속으로 뛰어 들어가 강민아의 손을 잡아 뜯고 싶었다. 어찌나 노발대발하는지 눈알이 다 튀어나올 지경이었다.“무슨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거야? 내가 그런 거짓말을 믿을 것 같아?”강민아가 차분하게 말했다.“여사님, 거짓말인지 아닌지는 일주일 안에 알게 되실 겁니다. 아, 그리고 제가 제출한 증거는 여사님이 받으셨던 화려한 표창상을 내려놓게 하는 정도예요. 만약 또 저를 못살게 군다면 그땐 모든 걸 잃게 될 겁니다.”강민아의 경고가 연진숙에게는 도발이나 다름없었다.“흥, 신고해봐, 그럼. 네 재주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자. 네까짓 게 날 끌어내릴 수 있을 것 같아?”‘무식한 시골 촌뜨기 같은 것. 내가 서경시의 상류층에서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도 모르면서.’연진숙이 대놓고 비웃었다. 휴대폰 속 그녀의 붉은 입술이 더욱 요염하게 보였다.“원래는 정이를 생각해서 너한테 조금이나마 정을 줬는데. 감히 나를 신고해? 지금부터 현민이 친엄마는 죽었어. 다신 현민이 만날 생각 하지도 마.”연진숙의 두 눈이 얼음장같이 차가워졌다. 마치 판사처럼 강민아에게 사형을 선고했다.아들을 완전히 빼앗고 면접 교섭권을 박탈하는 것 자체가 강민아에게는 사형이나 다름없었고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었다.반현민이 두 살이 되던 해에 반씨 가문에서는 엘리트 교육을 시키기 위해 친모와 완전히 떼어놓겠다고 했다.이건 강민아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연진숙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애원했다.연진숙은 강민아의 약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강민아가 정이를 데려간 게 연진숙의 눈에는 그저 어린아이의 장난에 불과했고 반하준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일 뿐이라고 생각했다.두 아이가 같은 학교에 다녀서 아들을 보고 싶을 땐 언제든지 볼 수 있었다.연진숙이 휴대폰 카메라를 보면서 말했다.“네 아들을 완전히 잃게 될 거야.”그러고는 강민아가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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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화

강나현이 입꼬리를 올리며 지시했다.“나만 보기 게시글들 전부 공개해. 강민아가 어떤 사람인지 다른 사람들한테도 보여줘야지.”“알겠어요. 바로 처리할게요.”해커는 강민아가 그동안 올렸던 모든 나만 보기 게시물들을 공개로 설정했고 강나현은 곧바로 몇몇 마케팅 회사에 연락했다.그 마케팅 회사들은 팔로워 백만 명 이상의 SNS 계정들을 통해 강민아의 계정 내용을 퍼 날랐다. 강민아가 과거에 올렸던 나만 보기 게시물들이 세상에 공개되었다.[이게 바로 강민아 씨가 아들을 학대한 증거입니다.]팔로워 백만 명의 유명 인플루언서가 온몸에 두드러기가 난 반현민의 사진을 리트윗했다.수천만 명의 네티즌들이 강민아의 SNS로 순식간에 물밀 듯이 몰려들었다. 타자 속도가 빠른 네티즌들은 벌써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그러자 적지 않은 네티즌들이 강민아를 욕하는 댓글에 답글을 달았다.[눈은 장식으로 달고 다녀요? 이 사진은 누가 봐도 아이가 알레르기 반응이 생긴 사진이잖아요.]또 다른 네티즌은 강민아의 2천 개가 넘는 게시글 중에서 남자아이가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무릎에 반창고를 붙인 사진을 찾아냈다.[이건 강민아가 아들을 때린 증거입니다. 아들을 때리고 사진까지 찍어서 SNS에 올리다니. 완전 사이코패스 아니에요?]똑똑한 네티즌들이 바로 반박했다.[바로 위 게시글을 보면 아이가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진 사진인 것 같네요.]강민아의 SNS에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모든 기록이 남아 있었다.네티즌들은 강민아의 SNS에서 아이에게 돼지 먹이 같은 음식을 먹인 사진을 찾아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강민아가 올린 음식 사진을 본 네티즌들은 오히려 군침을 삼켰다.[강민아 씨가 이런 요리 솜씨로 돼지 먹이 같은 음식을 만들었다고요? 난 절대 못 믿어요.][강민아 씨가 만든 음식이 돼지 먹이면 내가 평소에 먹은 건 뭔가요? 음식물 쓰레기인가요?]한 네티즌이 강민아의 SNS에서 죽 사진을 찾아냈다.[새로 배운 죽이에요. 딸은 맛있다고 남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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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화

차에 앉아 있는 반하준의 얼굴에 별다른 기색이 없었다.강나현이 이런 일을 벌인 건 반현민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였겠지만 여론의 방향을 전혀 통제하지 못했다.“대표님.”엄규민이 긴장한 얼굴로 차 문을 두드렸다. 창문이 열리자마자 휴대폰을 차 안으로 들이밀었다.“인터넷에 강나현 씨에 관한 안 좋은 영상이 퍼지고 있어요.”반하준이 휴대폰을 받고 확인해보니 몰래 촬영한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강나현이 한 남자의 허벅지에 앉아 있었는데 나시와 검은색 데님 반바지 차림으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고 있었다.술잔을 입에 물고 남자에게 술을 먹여주자 남자의 입이 술잔에 부딪히면서 술잔이 떨어졌다. 그 순간 강나현의 입술이 그 남자의 입술에 닿은 듯했다.“젠장.”강나현이 먼저 소리치면서 남자의 가슴팍을 마구 두드렸다.“야, 진찬규. 이것도 못 해?”그녀가 술을 먹여주던 남자는 가장 친한 남사친 중 하나인 진찬규였다. 진찬규는 가슴을 쫙 펴고 강나현의 가슴에 부딪혔다.“못하긴 뭘 못해. 한번 해볼래?”강나현이 욕설을 내뱉자 주변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3년 전 진찬규는 평범한 여자를 짝사랑했었고 두 사람은 아주 뜨겁게 사랑했었다. 가족들의 심한 반대에도 사랑하는 여자와 꼭 결혼하겠다고 했다.두 사람의 결혼식은 서경시 전체를 떠들썩하게 했고 지금까지도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많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그런데 이 영상이 퍼진다면 사랑꾼 도련님의 이미지는 무너질 것이고 그의 다리에 앉아 있던 강나현 또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게 될 것이다.영상이 끝나기도 전에 엄규민의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 화면에 심은호라는 이름이 뜬 걸 본 순간 차 안에 앉아 있는데도 반하준에게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 같았다.반하준이 통화 버튼을 누르자 심은호의 나른하고 무심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엄규민 씨, 반 대표 좀 바꿔줘요.”반하준이 덤덤하게 대답했다.“듣고 있어.”휴대폰 너머로 심은호의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인터넷에 떠도는 영상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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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화

반하준이 차에 걸린 방울 소리를 처음 들은 날이 바로 반유하의 장례식 날이었다. 지금 방울 소리가 다시 울렸다.‘가장 친한 친구를 걱정하고 있나?’“오빠, 꼭 나현이를 잘 돌봐줘야 해.”반하준은 심호흡을 하고 엄규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인터넷에 떠도는 나현이에 관한 안 좋은 영상과 댓글 전부 삭제해.”“전부 삭제하라고요?”엄규민이 다시 한번 확인하자 반하준이 짜증을 냈다.“내가 도와주는 사람이 나현이 말고 더 있겠어?”엄규민은 문득 떠오른 생각을 이내 지웠다.“알겠어요. 지금 바로 처리하겠습니다.”...강씨 저택.강나현이 헐렁한 후드티를 입고 전신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옷이 헐렁해서 몸매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내세울 게 없는 상체인 건 사실이었다.하의는 검은색 반바지를 입었는데 반바지 길이와 후드티 밑단이 거의 비슷해서 다리가 더욱 길어 보였다.그녀는 입술에 바른 립스틱을 휴지로 꾹꾹 눌러 지우면서 최대한 자연스러운 입술 색을 만들려 했다. 메이크업을 연하게 했지만 강나현의 남사친들은 그녀가 메이크업한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강나현은 외출 준비를 마쳤다. 오늘 밤에도 남사친들과 술을 마시면서 밤새도록 놀기로 약속했다.그때 휴대폰이 울리자 전화를 받았다.“뭐? 오늘 밤에 안 온다고? 젠장. 흥 깨게.”강나현이 몇 마디 욕하려던 찰나 또 다른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자마자 그녀의 안색이 눈에 띄게 변했다.“너도 안 온다고? 감히 날 바람맞혀? 죽고 싶냐?”“나현아, 요즘은 좀 조용히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전화 속의 남자는 우물쭈물하다가 그녀에게 충고했다.“인터넷에 너에 대한 불리한 여론은 전부 삭제됐지만 너랑 찬규 일 이미 이 바닥에 소문이 다 퍼졌어.”“나랑 찬규가 뭘 어쨌는데? 걔는 내 제일 착한 아들이란 말이야.”강나현은 인터넷에 자신을 검색해봤지만 부정적인 여론은 보이지 않았다.‘별일도 아닌 걸 가지고 호들갑 떨긴.’그녀는 술자리가 취소돼도 별로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강민아의 SNS를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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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화

휴대폰이 또 울리자 강나현은 소스라치게 놀랐다.화면에 뜬 황 기자라는 이름을 보자 강나현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추적 818의 황 기자가 이 시점에 전화했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벨 소리는 마치 사형 선고처럼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강나현이 전화를 받자마자 황 기자의 불만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현이 형 때문에 완전히 망했어요. 나 기자증 취소당했다고요.”강나현이 바로 부인했다.“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네가 법을 위반한 짓을 한 거겠지.”황 기자가 억울함을 토로했다.“윗선에 여러 세력이 압력을 넣고 있대요. 추적 818 프로그램이라도 살리려고 회사에서 날 해고했어요.”그녀는 순간 멍해졌다.“설마 심씨 가문의 태산 그룹에서 압력을 넣은 거야?”“태산 그룹뿐만이 아니에요.”기자의 목소리에 두려움이 가득했다.“현이 형, 강민아가 그냥 평범한 가정주부라면서요? 근데 공권력까지 강민아를 감싸고 있다고요. 우리가 건드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에요.”“헛소리하지 마.”강나현이 욕설을 퍼부었다.“여론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네 잘못이지.”그녀는 계속하여 기자를 탓했다.“됐어. 이젠 너한테 기대할 것도 없네. 강민아 내 손으로 직접 처리하겠어.”...ALI 수학 경시대회 결승 결과 발표를 하루 앞둔 날, 육성민은 강민아와 정이와 함께 등산을 갔다.아침 6시, 희미한 햇살이 비치는 가운데 산에는 안개가 자욱했고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육성민은 땀 흡수가 잘 되는 흰색 기능성 티셔츠와 밀리터리 운동복 바지를 입고 맨 앞에서 성큼성큼 걸어갔다.허벅지 근육이 탄탄해서 운동복 바지가 팽팽해졌고 티셔츠가 딱 붙어 가슴 근육이 뚜렷하게 보였다. 짧은 소매 아래로 드러난 팔뚝 근육도 아름다운 라인을 자랑하고 있었다.강민아는 벗어놓은 운동복 상의를 허리에 묶고 고개를 숙인 채 앞으로 나아갔다. 육성민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운동 바지 위로 드러난 엉덩이 라인이 아주 환상적이라 고개를 들 수가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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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화

강민아가 웃으며 말했다.“어른 멧돼지는 크고 힘이 세서 정말 나타나면 바로 뒤돌아 달려야 해.”“전 엄마 업고 같이 달릴게요!”...육성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숨 한 번 헐떡이지 않고 산 중턱까지 올라갔다.시선을 들어 구불구불한 계단 위에 있는 훤칠한 모습이 보이자 그는 서서히 상대방과의 거리를 좁혔다.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때 심은호는 고개를 돌려 육성민을 보았다.“오호, 이런 우연이...”심은호는 땀을 흡수하는 헤어밴드를 착용해 앞머리가 위로 들려 소년미가 넘쳤다.촉촉한 물기가 어린 그의 무결점 피부는 백옥처럼 투명했다.“정광사에서 태우는 첫 향이 영험하다고 들었는데 육 소위님도 향 태우러 오셨나요?”심은호가 군인 시절 육성민의 호칭을 부르자 그의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 이 도련님이 그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았다.육성민은 살짝 입술을 달싹이며 조용히 대답했다.“네.”하지만 그도 궁금했다. 심은호 같은 남자는 세상 모든 걸 손쉽게 얻을 수 있을 텐데.“심은호 씨는 정광사에서 뭘 기도하러 오셨죠?”이 세상에 심은호가 얻지 못하는 게 있을까.“결혼운이요.”심은호의 말이 떨어지자 육성민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심은호는 육성민이 한 번에 두 계단씩 오르며 속도를 내는 모습에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였다.육성민을 따라잡으면서도 그와 한가하게 이야기를 나눌 여유는 있었다.“육 소위님은 뭘 기도하러 오셨어요?”육성민은 심은호를 향한 도발로 가득 찬 목소리로 비웃었다.“저도 결혼운이요.”그의 말과 함께 두 사람 사이엔 불꽃이 튀었다.그렇게 둘은 서로 쫓고 쫓기며 돌계단 위를 거칠게 뛰어갔다.승려복을 입은 스님이 사원 문 앞에 앉아있다가 갑자기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졸음도 달아났다.대문 안을 들여다보니 두 개의 민첩한 실루엣이 그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이봐요!”문을 지키던 스님은 너무 멀리 가서 들리지 않을 걸 알면서도 외치고는 이렇게 중얼거렸다.“오늘 절에 다른 손님은 받지 않는데...”육성민과 심은호는 절에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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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화

그 미소에 반하준의 목울대가 움찔했다. 심은호가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너무 잘 알았다.누군가 전처를 탐낸다는 걸 알자 분노는 그저 잠깐 스쳐 지나가고 역겨운 마음이 더 컸다.고개를 든 반하준이 멀지 않은 곳에 100년 된 버드나무를 바라보았다.버드나무의 뿌리는 울퉁불퉁하게 얽혀 있었고 줄줄이 뻗은 가지에 잎은 무성했는데 정광사의 소원나무였다. 소원을 담은 수백만 개의 빨간 리본이 나뭇가지에 묶여 있었고 무수한 소원 팻말이 나뭇가지에서 매달려 있었다.바람이 지나가면 그 팻말들이 서로 부딪쳐 딸랑딸랑 소리를 냈다.“매년 정광사에 와서 기도를 드렸는데 부처님은 그 여자 소원을 들어주신 적이 한 번도 없었어.”반하준이 심은호에게 농담 삼아 말하는데 민이가 잔달음으로 걸어 들어오더니 반하준에게 이렇게 외쳤다.“아빠, 난 그 여자가 날 위해 켜놓은 평안등이 싫어요.”민이는 두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불당에서 한 불패에 그와 정이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미심쩍은 마음에 주지 스님에게 영문을 물어보았다.주지 스님은 강민아가 매년 절에서 두 아이를 위해 평안등을 올린다고 했다.“그 여자는 더 이상 내 엄마가 아니고 정이도 나랑 같은 성을 쓰지 않잖아요. 난 내 이름이 정이와 함께 있는 게 싫어요.”민이가 반하준에게 말했다.“주지 스님 할아버지한테 그 불 끄라고 해요. 내 이름도 지우고!”민이의 말을 들은 주지 스님은 미간을 찌푸렸다.“꼬마 시주님, 어머니께서 해마다 부처님 앞에서 경을 읽고 평안등을 올렸는데 그걸 꺼버리면 앞으로 어머니의 덕으로 쌓은 복을 누릴 수 없게 됩니다.”민이는 주지 스님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았다.“끄라고요! 그 멍청한 여자가 날 지켜주는 건 원하지 않아요!”강나현의 두 눈에 웃음기가 스쳐 지나가며 한탄하듯 말했다.“민아 언니는 미신을 잘 믿어요. 평소에도 계속 기도 어쩌고 하면서 하느님과 부처님 타령하더니. 민이가 평안등이 싫다는데 주지 스님께서 꺼주세요. 반씨 가문 도련님은 그런 것 필요 없어요.”주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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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화

강민아가 계단 쪽을 바라보니 민이는 그녀를 보자 작은 입을 삐죽 내밀며 쳐다보기도 싫은 듯 팔짱을 낀 채 옆으로 돌아섰다.강나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언니, 미신을 너무 믿는 것 아니야? 하루 종일 기도만 드리면 민이가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어.”“현이 형 말이 맞아요!” 강나현이 무슨 말을 하든 아이는 바로 거들었다.조금 전 대웅전을 돌아다닐 때 강나현이 아이에게 민이와 정이의 이름이 적힌 불패와 평안등이 있다는 걸 알려줬다.정이는 더 이상 반씨 가문의 아가씨가 아닌데 반우정이란 이름이 반씨 가문 도련님과 함께 있으니 불길하지 않나.민씨는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이봐요!”아이가 강민아를 불렀다.“그쪽이 올린 평안등 꺼요. 난 더 이상 그쪽이랑 엮이기 싫으니까.”주지 스님의 얼굴이 굳어졌다.“시주님...”그는 반하준이 민이를 단속하길 바랐다.“주지 스님.”강민아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주지 스님은 그녀를 돌아보았다.여인의 맑고 하얀 얼굴에 맑은 샘물로 씻은 듯한 검은색 반짝이는 눈동자가 굳은 결심을 드러냈다.“반씨 가문 도련님 말씀대로 하세요. 전 더 이상 저 사람을 위해 평안등을 올리지 않을 테니까요.”주지 스님은 할 말이 많은 듯 입만 벙긋하다가 강민아와 민이를 번갈아 바라보고는 이내 고개를 숙이고 염불 한 마디를 외웠다.고즈넉한 사찰안에 산바람이 불자 버드나무에 매달린 붉은색 소원 팻말이 흔들리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한 계단으로 두 가족이 분리되었다.“꼬마 시주님, 따라오세요. 어머니께서 켜놓은 평안등을 원하지 않으시면 직접 끄세요.”주지 스님이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반현민!”정이의 힘차고 맑은 목소리가 절에 울려 퍼졌다.정이의 외침을 들은 민이의 얼굴이 굳어지며 주지 스님을 따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웅전 안으로 들어갔다.정이는 하고 싶은 말이 가득했지만 이 순간 더 이상 말을 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강민아는 고개를 돌려 수천 개의 붉은 실이 매달려 있는 소원 나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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