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Chapter 131 - Chapter 140

306 Chapters

제131화

강민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답했다.“네, 맞아요.”선생님이 자기소개를 했다.“저는 2반 담임 선생님이에요.”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반진경이 소리를 질렀다.“강민아, 네 딸이 오늘 2반 애들도 때렸어?”주위 학부모들은 자기 자식을 등 뒤로 숨기기 바빴다.이내 선생님이 손을 내저었다.“아니에요! 오늘 강윤정 어린이가 학교 안전교육 활동에서 가면을 쓴 악당을 물리치고 2반 친구들의 안전을 지켜줘서 강윤정 어린이에게 커다란 꽃 스티커를 줬어요.”“엄마, 봐요.”정이가 받은 스티커를 귀한 보물처럼 강민아에게 보여줬다.옆에서 듣고 있던 반진경은 당황했다.강민아가 물었다.“정이 담임 선생님께선 오늘 안전 교육 활동이 있다는 얘기 없으셨던 것 같은데요.”“그래요.”반진경이 거들었다. 정이가 갑자기 커다란 꽃 스티커를 받은 게 미심쩍었다.그러자 선생님이 말해주었다.“그건 2반에서 진행하는 활동이었는데 강윤정 어린이가 용감하게 나서줬어요. 나쁜 사람과 용감히 맞서는 건 칭찬해 줘야 할 행동이죠.”그렇게 말하며 선생님은 강민아에게 다가와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이렇게 말했다.“악당을 연기한 아저씨 병원비인데 윤정 어머니께서...”강민아는 이내 알아차리고 휴대폰을 꺼내며 말했다.“제가 부담할게요.”선생님은 강민아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자리를 떠났다.다른 아이들은 학교를 떠나기 전에 모두 달려가 정이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반연주는 반진경에게 말했다.“정이가 그 사람을 때려눕혀서 이제부터 어린이반 수호신이 됐어요.”“...”불쾌한 마음에 반진경의 얼굴엔 경멸하는 기색이 번졌다.정이는 미안한 듯 강민아에게 말했다.“엄마, 죄송해요. 오늘 힘을 조절하지 못해서 그 아저씨 손을 부러뜨렸어요.”강민아는 부드럽게 아이를 달랬다.“선생님께서 정이가 용감하게 나섰다고 했잖아. 악당을 연기한 아저씨는 실수로 다치게 했지만 어린이 친구들은 지켜줬어. 주말에 엄마랑 같이 그 아저씨 보러 갈까?”정이는 강민아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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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화

투박한 노란색 코트를 입은 장기명은 마치 꼬리를 흔드는 두더지처럼 보였다.강민아는 침묵하며 그가 어떤 연기를 펼칠지 지켜볼 작정이었다.장기명은 강민아가 대꾸하지 않자 심각한 표정으로 한탄했다.“국내는 뛰어난 인재가 두각을 나타내기 어려운 환경이지. 나만 해도 그래요. 온 힘을 다해서 겨우 시골 마을을 벗어났잖아요. 민아 씨, 저도 안타까운 마음에 하는 말이에요. 학술과 연구에 종사하고 싶으면 해외에 가서 해요. 우리나라처럼 꽉 막힌 곳보다는 거기가 자유로워요.”“전 그냥 제 가족만 챙기면 돼요.”별다른 야망이 없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장기명의 두 눈엔 미소가 번졌다. 강민아는 머리만 똑똑하고 대회에 참가할 뿐 사업적으로 큰 성과를 이루기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어쨌든 여자니까.곧 장기명이 제안했다.“취업을 원한다면 외국계 기업에 가야겠네요. 휴가도 두 배로 주고 육아휴직도 있는데 국내 기업에 들어가면 혼자서 일하느라 정이를 언제 돌보겠어요.”마치 정말 그녀를 위하는 것 같은 모습에 강민아는 장기명이 진작 꿍꿍이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그를 유도했다.“7년 동안 주부로 살아서 업계에 잘 알려진 회사들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장 교수님께서 저보다 더 잘 아실 텐데 지금 제 상황에서 어떤 회사에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장기명은 그녀의 유도에 솔직한 생각을 말했다.“민아 씨, 옴 테크 알아요?”옴 테크는 M국 회사인데 그 배후에는 기술업계 거물인 아비타가 있다.오늘날 아비타는 세계적으로 시가총액 1위 기업이었다.강민아가 모르는 척 고개를 흔들자 장기명이 말했다.“솔직히 말하면 강민아 씨가 상을 받은 후 옴 테크에서 나에게 연락이 왔어요. 그쪽이랑 연결해 달라는 의미로. 옴 테크가 서경대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고 내 연구 프로젝트에 투자도 해서 얘기하는 거예요. 옴 테크는 강민아 씨에게 후한 연봉을 제시했어요. 연봉 2억에 프로젝트 보너스가 수억에 달하고 주식 배당금과 각종 수당도 다 챙겨줘요. 무엇보다 옴 테크는 103일의 휴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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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화

“아빠!”민이가 책가방을 등에 메고 반하준을 향해 신나게 뛰어갔다.웬일로 반하준이 직접 데리러 오자 민이는 유난히 신이 났다.반하준을 본 여성 학부모들도 눈을 떼지 못했다.그때 엄규민이 강민아 앞으로 가서 정중하게 제안했다.“강민아 씨, 타시죠.”강민아는 거절했다.“아니요. 정이랑 택시 타고 식당으로 갈게요.”반하준과 비좁은 공간에 함께 있기 싫었다.엄규민이 반하준의 편을 들며 사람 좋은 말을 건넸다.“대표님께서는 오늘 특별히 두 분을 데리러 오신 겁니다.”강민아가 휴대폰을 꺼내 택시를 부르려 하자 엄규민은 마이바흐 차량 문으로 다가가 반하준에게 보고했다.얼마 후 강민아의 휴대폰이 울리자 그녀는 택시 기사인 줄 알고 받았다.반하준의 목소리는 얼음 벌판에서 불어오는 차갑고 쌀쌀한 바람 같았다.“내가 주변 5km 이내 택시를 전부 보냈어. 정이랑 같이 걸어서 식당까지 가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을게.”강민아는 찬 공기를 훅 들이켰다.저 남자는 여전히 위압적이고 독단적이다.강민아는 정이의 손을 잡고 마이바흐 쪽으로 걸어가 정이를 조수석에 앉혔다.그리고 정작 본인은 운전석으로 다가가 기사에게 말했다.“내려요.”반하준이 같이 밥을 먹으려고 직접 학교까지 데리러 온 건 운전기사의 눈에 다시 잘해보려는 신호로 보였다.강민아가 대체 뭘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기사는 순순히 그녀의 말대로 차에서 내렸다.운전석에 오른 강민아는 가방을 놓고 내비게이션을 켜며 반하준에게 물었다.“어디로 가?”남자는 다소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운전해서 식당까지 가겠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어떻게든 그에게 잘 보이려는 것 같았다.반하준은 우스운 마음이 들었다.‘기사 노릇을 자처한다면 실컷 하게 내버려두지.’반하준이 말한 가게는 서경의 유명 프렌치 레스토랑인데 최소 한 달 전에 예약해야 가장 전망이 좋은 룸을 잡을 수 있었다.강민아는 내비게이션에 레스토랑 이름을 입력한 후 확 액셀을 밟았다. 강하게 떠밀리는 힘에 뒷좌석에 있던 반하준과 민이는 속절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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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4화

강나현은 묘한 쾌감이 들어 민이를 놓아주는데 옷에 찍힌 자국이 보였다.“너 방금 물 마셨어?”민이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토했어요.”“...”순간 강나현의 얼굴이 확 바뀌며 그녀는 급히 물티슈를 집어 옷을 닦았지만 그럴수록 더 더러워지는 것 같았다.강나현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티 나지 않게 민이를 밀어냈다.“민아, 앉아.”강나현은 자기 옷에서 풍기는 지독한 냄새에 무의식적으로 숨을 참았다.강성진은 강나현 옆에 앉아 민이가 딸에게 달라붙는 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큰딸이 반하준과 이혼하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딸 중 한 명이라도 민이와 반하준의 마음을 붙잡아둔다면 강씨 가문은 여전히 반씨 가문에 의지할 수 있을 테니까.정이는 작은 얼굴에 진지한 표정으로 강나현과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바라보았다.강민아가 물었다.“연구원님은?”반하준은 무심하게 말했다.“작은아버지는 일이 있어서...”“연구원님 안 오셨으면 난 이만 갈게.”강민아가 정이를 데리고 돌아섰지만 반하준은 붙잡을 생각이 전혀 없는 듯 가만히 서 있었다.그는 강민아가 정말 떠날 거라고 믿지 않았다.다시 잘해보고 싶어서 직접 운전까지 해서 그들 부자를 식당까지 데려온 게 아닌가.“이봐요. 대체 언제까지 그럴 거예요?”민이가 강나현 옆에 앉더니 허리에 손을 올리고 삐죽거리며 소리쳤다.강민아는 걸음을 멈추고 민이의 원망 섞인 말을 들었다.“나랑 아빠를 여기까지 데려와 놓고 같이 밥도 안 먹어요? 혹시 나랑 아빠가 굽신거리면서 화해하길 바라는 거예요?”강민아는 민이가 대체 어디서 저런 말버릇을 배웠는지 궁금했다.그때 강나현이 끼어들었다.“언니, 내가 싫어서 그래? 아니면 엄마, 아빠가 싫어서 그래?”그녀는 반하준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언니는 내가 보기 싫어서 밥이 안 넘어가나 봐요. 됐어요. 그냥 갈게요.”강나현이 흔쾌히 자리에서 일어나자 민이가 바로 손을 잡았다.“현이 형, 가지 마요! 가야 할 사람은 밥맛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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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5화

반용화가 올 거라 생각한 강민아는 정이를 데리고 강나현과 부모님 맞은편에 앉았다.강성진이 도민영에게 턱받이를 묶어주자 도민영은 어린아이처럼 투덜거렸다.“밥 먹자. 아기 배고파!”강성진은 반하준의 눈치를 살피고는 도민영을 달랬다.“반 연구원님 아직 안 오셔서...”“이이잉!”도민영은 두 손으로 주먹을 쥐고 눈가에 흐르지 않는 눈물을 닦는 척했다.강민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의 저런 모습은 몇 번을 봐도 사람의 주먹을 불끈 쥐게 한다.웨이터가 들어와 그들에게 말했다.“방금 반 선생님께서 전화가 왔는데 일이 있어서 좀 늦어질 수 있으니 기다리지 말고 먼저 식사하고 계시랍니다.”그러자 반하준은 웨이터에게 말했다.“음식 올리세요.”정이가 살펴보니 민이 앞에는 아기 그릇이 있는데 자기 앞에는 없었다. 그런데 도민영 앞에 아기용 그릇이 있는 게 아니겠나.식당의 아기용 그릇을 또다시 외할머니가 빼앗아 갈 줄 알았다.정이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아기 그릇으로 배가 부르지 않으니 필요 없다.웨이터가 음식을 올리자 민이와 정이는 닭갈비와 연어구이를 먹는데 강나현이 나이프를 들고 민이의 닭갈비를 잘라주었다.도민영은 아이들과 같은 어린이 세트를 먹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성진 씨, 나도 잘라줘!”“당신도 참.”강성진이 다정하게 답하며 나이트를 들고 도민영을 위해 닭갈비를 잘라주었다.민이는 먹으면서 참지 못하고 감탄했다.“현이 형은 나한테 너무 잘해줘요. 한 번도 날 위해 이렇게 잘라주는 사람이 없었는데.”정이가 닭갈비를 뜯으며 말했다.“반현민, 너 기억상실증이야? 엄마가 닭갈비 해줄 때 잘라줬잖아.”민이가 언성을 높였다.“현이 형이 잘라준 닭갈비가 제일 맛있어!”강나현은 주스를 들고 분위기를 북돋으려 했다.“우리 함께 민아 언니가 ALI 수학 경시대회에서 금상을 딴 걸 축하하자고요. 언니 너무 대단해요. 인터넷에서 완전히 유명해졌어요.”강성진이 또다시 아버지 노릇을 하려 했다.“상도 받았는데 인터뷰에서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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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6화

반하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드레스는 비서에게 부탁한 것이고 비서는 강민아의 치수에 맞춰 맞춤 제작을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작 언제 잰 사이즈인지 물어본 적은 없었다.강민아는 그에게 아내의 자리에 놓인 장식품 같은 존재였다.함께 밤을 보낸 지도 너무 오래됐고 반하준은 그녀의 몸에 아무런 흥미가 없으니 그녀가 뚱뚱하든 말랐든 전혀 관심이 없었고 신경 쓰지 않았다.“드레스가 안 맞으면 만족할 때까지 수정하면 돼.”반하준은 충분히 강민아를 배려해 줬다고 생각했다.강민아가 드레스 위에 놓여있던 서류를 집어 들었다.“부신 그룹에서 날 기술팀에 데려가려는 거야?”“널 비서팀에 들여서 내 개인 비서로 쓸 생각이야.”강민아는 반하준의 말에 2초간 얼어붙었다가 웃으며 말했다.“7년 동안 공짜로 보모 노릇을 했는데 이제 와서 월급을 주고 계속 보모 노릇을 하라고?”남자가 미간을 찌푸렸다.“그럼 넌 서경에서 제일 비싼 가정부가 되겠지.”강민아가 웃었다.“딱 한 마디만 할게.”반하준이 물었다.“동의? 아니면 돈을 더 달라고?”“멍청해.”반하준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고 호수처럼 차분하던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했다.“강민아, 넌 고작 학사 학위잖아.”그가 살벌한 어투로 경고했다.“넌 그저 대회에서 상을 받은 것뿐이야. 대회에 출전하는 것과 팀 전체를 이끌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건 전혀 달라.”부신 그룹 주주들은 강민아에게 CTO 자리를 주고 싶어 했다.하지만 그는 강민아와 결혼한 지 7년이 되었기에 그녀의 능력을 잘 알았다.스무 살의 나이에 주부가 된 여자가 어떻게 부신 그룹의 CTO가 될 수 있겠나.강나현이 반하준의 편을 들었다.“언니, 왜 하준 씨한테 욕해.”강민아가 웃었다.“사실을 말한 거야.”그녀는 선물 상자를 들어 반하준에게 던졌다.“가져가. 창피하게 굴지 말고.”도민영은 강민아가 선물 상자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곧바로 손을 뻗어 상자에서 드레스를 꺼냈다.그러고는 신이 나서 옆에 있던 남자에게 말했다.“성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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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화

남자는 황제처럼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앉아 있었고, 강민아는 분명히 그와 동등한 위치에 앉아 있었지만 상위 포식자의 경멸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반하준이 말을 잇기도 전에 강성진은 이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버릇없는 놈. 무슨 여자가 남자에게 굽신거리지 않겠다는 말을 해? 하늘 높은 줄도 모르고!”강성진은 의자를 걷어차고 식탁을 한 바퀴 돌더니 강민아에게 달려들었다.강나현은 웃음이 터질까 봐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정이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강성진이 움직이는 방향에 시선을 고정했다.강성진이 손을 뻗어 강민아의 멱살을 잡으려 했다.“뭐 하는 거야!”갑자기 반용화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할아버지!”의자 위에 올라선 정이가 강민아를 향해 뻗은 강성진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칼을 겨눈 듯 팽팽한 분위기가 룸 안에 감돌며 당장이라도 치열한 전투가 시작될 것만 같았다.거대한 체격을 자랑하는 특수부대 은퇴 군인 비서가 휠체어를 밀며 들어왔다.휠체어에 앉은 반용화는 보이지 않는 아우라를 풍기며 가는 곳마다 주위 모든 것을 압도했다.반용화는 검은색 터틀넥 니트와 긴 다리를 감싸는 정장 바지를 입고 있었다.강나현은 반용화의 얼굴을 보자 무의식적으로 숨을 참았다.반용화를 마지막으로 본 게 10년 전인데 반하준보다 2살 많은 그는 10년 전에도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사람이었다.그들이 어려서 아직 레고를 가지고 놀던 시절부터 반용화는 천체의 운행 원리를 연구하고 있었다.강나현은 아직도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을 기억하고 있었다. 반유하와 함께 반씨 가문 본가에 가니 반하준이 그들을 데리고 개울가로 가서 작은 물고기와 새우를 잡았다.반씨 가문으로 돌아와 1층의 한 방을 지나는데 반용화가 공식으로 가득 찬 칠판 앞에 서 있었고, 십여 명의 어르신들이 산수 종이와 커다란 노트북을 들고 반용화와 토론하고 있었다.“뭐 하는 거야?”어린 강나현은 아무것도 모른 채 물었다. 반용화가 너무 잘생겨서 본능적으로 가까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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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8화

강한 기운이 무겁게 강성진을 짓누르고 있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반용화 앞에서 그는 마치 꼬리를 다리 사이에 끼고 감히 발을 뻗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들개 같았다.“하지만...”어쩐지 자신보다 반용화가 더 강민아의 아버지 같아 강성진이 다시 입을 열려고 했다.“알아들었는지 대답만 하세요.”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차분하고 덤덤했지만 강성진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에 입을 벌리고 반용화가 시키는 대로 또박또박 대답했다.“네, 알겠습니다.”반용화가 강성진에게서 시선을 돌리자 비서는 그의 휠체어를 밀고 상석으로 향했다.반용화는 식탁 위에 놓여 있던 선물 상자와 부신 그룹이라고 적힌 종이봉투가 밖에 떨어진 걸 보았다.“이건 뭐지?”반하준이 대답했다.“제가 강민아에게 준 부신 그룹 오퍼입니다.”반용화가 턱을 까딱하자 비서가 종이봉투에 손을 뻗어 그것을 열고 안에 든 계약서를 꺼내 반용화에게 보여주었다.계약서를 받아 든 반용화가 내용을 확인한 후 다시 시선을 들어 꿰뚫을 듯한 눈빛을 보내자 반하준은 목뒤로 한기를 느꼈다.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은 감히 숨을 쉴 엄두도 내지 못했다.정이와 민이도 반용화를 처음 본 순간 그가 들어올 때부터 보이지 않는 아우라에 압도당했다.“생활 비서 고용 계약서?”룸 안에는 날카로운 칼이 허공을 가로질러 차가운 섬광을 내뿜으며 반하준의 얼굴을 할퀴는 것 같았다. 생경한 고통이 느껴졌다.“반하준.”반용화가 따뜻한 목소리로 말하자 반하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걸어갔다.휠체어에 탄 남자가 반하준에게 계약서를 건네자 반하준은 정중하게 손을 뻗어 계약서를 받았다.“민아가 날 저녁 식사에 초대했는데 감히 이런 계약서로 모욕해? 네가 3살짜리 어린애야?”그림자가 반하준의 동공에 드리우고 그는 반용화 앞에서 차마 반박할 재간이 없었다.그는 부신 그룹의 강대한 버팀목이다.반씨 가문의 가장은 아니지만 반하준의 아버지조차 서른 살이나 어린 동생에게 존경을 표했다.반하준도 그 앞에서는 숨 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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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화

계약서를 쥐고 있던 반하준의 손가락이 힘껏 조여지며 종이에 불규칙한 주름이 새겨졌다.반용화의 목소리는 차갑고 차분했지만 저항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네 아버지가 널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구나.”그 한마디가 돌풍처럼 휩쓸며 반하준의 오랜 자부심과 자만심을 산산조각 냈다.반씨 가문의 수장이자 부신 그룹을 수년간 이끌어온 그는 모두가 우러러보는 존재였다.반하준은 자신이 모두의 위에 군림하는 왕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높은 곳에 있는 신이 지금 벌을 내리고 있었다.순간 반하준은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작은아버지, 저희는 쓸데없는 사람이 아니에요. 절 잊으셨어요? 저랑 유하가 반씨 가문 저택에서 뵌 적이 있는데...”강나현은 반용화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했다.반용화는 그렇게까지 위압적인 느낌을 주지는 않았지만 너무도 뛰어난 외모에 2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있어도 그의 얼굴을 마주하니 강나현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강나현이 말을 마치자 강성진도 서둘러 거들었다.“도련님, 저희도 예전에 만난 적이 있습니다. 게다가 전 민아 아빠이고 저희는 얘 가족인데 쓸모없는 사람일 리가 있나요.”반용화의 어두운 시선이 강성진에게 향했다.철저히 거리를 두는 듯한 그의 시선에 강성진은 온몸에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집에서 내쫓고도 가족이라고 할 수 있나?”그 순간 강민아의 마음도 흠칫 떨렸다.반용화는 어떻게 그녀와 정이가 강씨 가문 사람들에게 내쫓긴 사실을 아는 걸까.강성진의 말문이 막히며 어떻게든 변명하려 애썼다.“그게 아니라...”“입 다물어.”남자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보이지 않은 재갈이 강성진의 입을 막았다.반용화가 턱을 까딱하며 반하준에게 말했다.“데리고 나가.”강성진은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이 바닥에 오랫동안 있으면서 한 번도 이런 대접을 받은 적은 없었다.식사 도중에 온 가족이 쫓겨나다니.강나현은 다급한 눈빛으로 반하준을 바라보았지만 반하준은 차가운 얼굴로 대할 뿐이었다.“나가죠.”반용화가 일곱 살에 천재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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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화

반하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으며 목에 날카롭게 툭 튀어나온 울대가 꿈틀거렸다.반용화는 평온한 목소리로 다그쳤다.“알겠으면 대답만 해.”반하준은 머리털이 쭈뼛 서며 반용화를 향해 평소 높이 들고 있던 고개를 숙였다.“네...”그의 표정은 좌절에 빠진 장군 같았고 넓은 어깨에는 우울함이 가득했다.반하준의 대답을 들은 반용화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를 떠났다....강민아가 반용화 옆으로 걸어갔다.“연구원님, 도와주셔서 감사해요.”정이가 강민아의 뒤를 따르며 칭찬했다.“연구원님 대단해요!”아이의 조그만 머리에는 여전히 충격이 가득했다. 반하준의 기세가 꺾이는 건 태어나서 처음 본다.정이는 반용화를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이에게 반용화는 반하준보다 한 차원 높은 존재였다.“예전처럼 그냥 선생님이라고 불러.”반용화는 강민아가 연구원이라고 부르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꼭 모르는 사람 같았으니까.분명 그는 한때 강민아가 그토록 믿고 의지했던 사람인데...강민아는 눈이 휘어지게 웃었다.“예전엔 오빠라고 불렀잖아요.”왜 지금은 오빠라고 부르지 못하게 된 걸까.반용화는 하늘에 있는 신처럼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존재였다.휠체어에 앉은 반용화의 검은 눈동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깊었다.정이의 목소리가 들렸다.“그럼 전 뭐라고 불러요? 엄마의 선생님?”강민아는 손을 뻗어 정이의 어깨에 얹으며 말했다.“그냥 아저씨라고 불러.”반용화는 가느다란 속눈썹을 깜빡였다. 그 호칭도 나쁘지 않았다.“하준이를 거절했으니 이노베이션 서밋 포럼에 갈 기회를 잃은 것과 마찬가지야.”서밋 포럼은 주로 재계 인사를 초대하는데 강민아가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고 해도 재계 사람은 아니었다.만약 그녀가 학교 측의 초청을 받아 서밋 포럼에 참여하면 몇몇 대학에만 얽매이게 된다.반용화의 손끝이 휠체어 팔걸이를 살며시 문질렀다.“마침 내게...”“저 서밋 포럼 초대장 있어요. 주최 측에서 직접 초대한 거예요.”강민아가 기쁜 소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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