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Chapter 91 - Chapter 100

212 Chapters

제91화

소우연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단정히 예를 올렸다.“신첩, 황제 폐하의 너른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마마의 보호에 감사드립니다.”그러나 마음속은 결코 편하지 않았다.비록 전생에서 그녀가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대리혼’ 때문이었다 하더라도…덕빈을 대하는 순간, 온몸이 본능적으로 긴장했다.이 여인은 잔인했다.냉혹한 결단을 내릴 때, 망설임이란 것이 없었다.덕빈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보아하니, 너는 머리가 제법 돌아가는 아이구나.”소우연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겸손한 자세를 유지하며, 불필요한 말을 아꼈다.“됐으니, 앉아서 감귤이나 먹어라. 아주 달다.”“예, 마마.”소우연은 자리로 돌아가 조용히 앉았다.덕빈은 손을 뻗어, 궁녀가 깔끔하게 손질한 감귤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그리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회남왕은 너를 아주 마음에 들어 하더구나. 그 애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그녀는 다시 한 조각을 집어들었다.“하지만, 너도 네 위치를 알아야 한다. 만약 회남왕을 소홀히 하거나, 그 아이를 모욕하는 일이 생긴다면…”그녀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손끝으로 감귤 껍질을 비틀었다.“열 개의 소씨 가문이 있어도 그 죄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소우연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금 조용히 예를 올렸다.“신첩, 감히 그런 불경을 범하지 않겠습니다.”덕빈은 그녀를 바라보며 예상보다 훨씬 침착한 태도에 흥미를 느꼈다.충분히 경고는 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그녀를 이용할 차례였다.“좋다. 회남왕을 잘 보필한다면, 앞으로 좋은 나날이 너를 기다릴 것이다.”그녀의 시선이 깊어졌다.‘소씨 가문이 감히 나를 속이고, 하찮은 딸을 회남왕에게 시집보냈지…’덕빈은 속으로 씁쓸히 웃었다.하지만, 이 소우희… 소우연의 여동생이 기어코 평춘왕에게 시집을 가게 된 것을 떠올리자 그나마 속이 조금 시원했다.그렇게 이야기 나누던 중, 곧 황제가 하조를 마치고 단향궁으로 향했다.덕빈은 기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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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화

이육진은 소우연의 손을 살며시 감쌌다.그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이토록 편안한 기분이 든 것은 아주 오랜만이었다.폐위된 후, 그는 늘 모든 것을 의심하며 살아왔다.그러나 지금, 소우연을 의심하면서도… 스스로에게 그녀를 믿으라고 다짐하고 있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황제는 속으로 중얼거렸다.‘기분이 좋아 보이는구나.’이육진이 만족하는 모습을 보니, 소씨 가문의 ‘대신 시집 보낸 일’ 도 굳이 더 문제 삼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하지만 의외였다.소우연은 끝까지 소우희를 위해 단 한 마디의 변명도 하지 않았다.황제는 가볍게 탄식했다.‘소홍범, 너란 인간도 참….’소우연은 단정하고 기품 있는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그런데, 소씨 가문에서조차 그녀를 홀대했다니. 그 이유는 하나였다.어느 허술한 도사가 소우희는 천운을 타고난 여인이라고 예언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그 말을 철석같이 믿은 소홍범은 소우희를 평서왕세자에게 시집보내려 했고, 소우희 또한 이육진이 아닌 이민수를 택했다.이 모든 사실을 조정의 중신들도 알고 있었다.그래서 황제는 덕빈이 평춘왕과 소우희의 혼인을 추진했을 때, 망설이지 않고 바로 승낙했다.평춘왕은 황가의 방계 혈족에 불과했다.술과 여색에 빠져 살며, 그의 자식들 또한 제대로 된 인물이 없었다.반면, 그의 아들 회남왕은 후사를 낳기 힘든 몸이었다.하지만 태의들은 하나같이 이육진이 크게 다친 것은 사실이나, 완전히 후손을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황제는 단 하나만을 바랐다.‘하루빨리 황손이 태어나야만 해.’그렇지 않다면, 그는 병약해진 자신의 몸을 자각하며 남은 선택지를 고려해야 했다.평서왕을 황태제로 세우거나, 이민수를 황태자로 삼는 것.그는 결코 이 선택지를 용납할 수 없었다.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할 얘기가 있으니, 나와 함께 서재로 가자.”그러면서 덕빈을 향해 의미심장한 시선을 보냈다.오랜 세월 황제의 곁을 지켜온 덕빈은 그 의미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그녀는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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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화

덕빈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황제마저 속이는군…’이제 더 이상 소우연이 무엇을 바라든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그녀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이육진에게 후사를 남겨주는 것. 그것이면 충분했다.덕빈은 차분히 입을 열었다.“일어나라. 너를 믿도록 하마.”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탐탁지 않아 보였다.지금까지 ‘황제의 가장 사랑받는 귀비’라는 명성을 지켜왔지만, 황후의 자리에는 끝내 오르지 못했다.그 모든 것은… 그녀의 친언니 때문이었다.소우연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기 나인이 밖에서 조용히 알렸다.“마마, 임 어의께서 대기 중이십니다.”덕빈은 가볍게 손짓했다.“들어오라 하라.”그리고 곧바로 소우연에게 시선을 돌렸다.“임 어의가 너의 평안맥을 살펴볼 것이다.”소우연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갑자기 진맥을 본다고…?’그러나 의문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곧이어 임 어의가 들어와 진맥을 짚었다.그는 나이가 많지 않아 보였다.이십 대 중반쯤 되는 듯했다.그는 신중하게 맥을 짚은 뒤, 덕빈을 향해 말했다.“어마마마, 왕비마마의 몸은 건강하시며, 따로 보양이 필요하지 않습니다.”덕빈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임 어의가 물러난 후, 덕빈은 다시 입을 열었다.“앞으로 임 어의가 정기적으로 왕부를 찾아 너와 회남왕의 건강을 살필 것이다.”소우연은 조용히 대답했다.“예, 어마마마.”그녀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그리고 곧… 그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덕빈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는 이미 왕부의 왕비가 되었고, 폐하와 나 또한 너를 인정했다.”“그러니, 이제 회남왕의 후사를 잇는 것이 너의 역할이다.”소우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예.”그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답답함이 몰려왔다.'아직 왕야와 제대로 인연을 맺지도 않았는데… 대체 무슨 후사를 잇는다는 거지?'덕빈은 소우연을 유심히 살폈다.그러다 잠시 망설이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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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화

“왕야?”소우연은 그가 대답하지 않자, 조심스럽게 다시 불렀다.그녀는 알고 있었다.신혼 첫날밤, 이육진이 직접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붉은 자국을 남겼다는 사실을 말이다.그 후 임 어의가 그의 상태를 살폈지만, 애매모호한 말만 남겼을 뿐이었다.그래서 실제로 이육진이 정상적인지 아닌지, 소우연도 확신하지 못했다.이육진은 깊이 숨을 들이쉬고는, 어색한 듯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연아, 조금만 더 기다려 줄 수 있겠느냐.”“조금 더?”“네가 내게 말했었지. 석 달 후면 내 다리에 감각이 완전히 돌아오고, 반년 후면 서 있을 수 있게 될 거라고.”소우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만약 치료 방향이 맞고,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입니다.”이육진은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그렇다면, 내 다리가 온전히 회복된 후에…”그제야 소우연은 그의 뜻을 깨달았다.그는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이었다.소우연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어마마마와 아바마마께서 손주를 기다리는 조급한 마음을 생각하면, 과연 그때까지 기다려 주실까?’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아무리 황제와 덕빈이 재촉하더라도, 그녀가 직접 이육진의 옷을 벗기고 그 일을 주도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만큼은 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어색한 침묵이 흐르자, 소우연은 화제를 돌렸다.“왕야, 혹시 오늘 아바마마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까?”이육진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소우연은 살짝 입을 벌리다, 다시 다물었다.“어마마마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임 어의가 정기적으로 왕부를 찾아와 평안맥을 짚겠다고 하셨습니다.”그러나 그녀는 속으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아직 부부의 연을 맺지도 않았는데, 대체 무슨 평안맥을 본단 말인가.’이육진은 태연하게 말했다.“귀찮으면 내가 핑계를 대어 중단시키도록 하마.”소우연은 곧바로 손을 저었다.“아니오. 그럴 필요 없습니다.”덕빈이 원래부터 그녀를 완전히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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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화

이육진의 변화를 지켜보며 소우연은 그를 바라보며 가슴이 뛰었다.그의 얼굴에 남아 있던 흉터가 점차 흐려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이육진은 본래의 모습을 되찾게 될 것이다.그때가 되면… 전생에 그녀를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싸웠던 남자가 본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를 직접 볼 수 있을 터였다.따뜻한 온기가 그의 얼굴에 스치자, 이육진은 그 기분 좋은 향기에 숨을 들이쉬었다.날카롭기만 했던 그의 눈빛도 한층 부드러워졌다.그 순간, 소우연과 그의 시선이 마주쳤다.소우연은 살며시 미소 지었다.“왕야.”이육진은 짧게 ‘음’ 하고 대답하더니,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네 눈동자에 내 얼굴이 비치는구나.”그녀의 눈에 비친 자신은 흉터로 뒤덮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그러나 그는 그 어떤 열등감도 내색하지 않고, 태연한 미소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소우연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감쌌다.“소첩도 왕야의 눈 속에서 소첩을 보았습니다.”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장난스럽게 덧붙였다.“이것이 흔히들 말하는, 그대 마음 속에 내가 있고, 내 마음 속에 그대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이육진은 순간적으로 멍해졌다가, 곧 웃음을 터뜨렸다.“그렇다.”그녀의 마음속에 정말 자신이 자리하고 있을까?그것을 깊이 따져볼 용기는 없었다.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녀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더없이 행복했다.그때, 간석이 하인들과 함께 방에 들어와 목욕 준비를 했다.이육진은 직접 휠체어를 밀어 욕실로 향했다.소우연도 이제는 그를 돕겠다고 나서지 않았다.그는 본래 혼자서 씻는 것을 즐겼다.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려오는 동안, 소우연은 책상 앞에 앉아 그의 치료 과정을 꼼꼼히 기록했다.그의 피부 상태 변화, 그가 느낀 불편함과 통증, 회복 속도까지…모든 것을 정리해 나갔다.약 반 시진이 지나자, 이육진이 몸을 닦고 침대로 올라갔다.그는 속옷 한 벌만 걸친 채,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소우연은 조용히 손을 씻은 후, 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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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화

“그 아이가 혼인을 하지 않는다 한들, 무슨 수가 있겠어요?”소우연은 잠시 말을 삼켰다.“황제 폐하께서 직접 내리신 혼사인데, 설령 평서왕이라 해도 되돌릴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이육진은 차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숙부님과 숙모님께서 직접 아바마마께 간청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그는 말을 하면서도, 어마마마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예쁜 여자일수록 사람을 잘 속이는 법이다.’그는 태자로 있을 때부터,덕빈이 흘린 수많은 눈물을 보아왔다.그 눈물의 상당수는 평서왕비 때문이었다.아버지는 분명, 그 여인을 특별히 여겼다.덕빈의 말처럼, 그것이 정확히 어떤 감정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평서왕비가 직접 나선다면, 굳이 길게 말하지 않아도 황제는 그 청을 들어줄 것이었다.소우연은 믿기 힘든 표정을 지었다.“평서왕 내외께서 직접 폐하께 청한다고 해서, 정말 혼인을 뒤집을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이육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 순간, 소우연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안 됩니다. 이민수와 소우희, 절대로 혼인해서는 안 됩니다, 왕야!”그녀의 다급한 목소리에, 이육진은 순간적으로 눈썹을 살짝 올렸다.“그들이 함께한다면, 저희 같은 자들은 결국 조연이 되고, 그들을 위한 희생양으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그녀는 이를 악물었다.이육진은 소우연이 이민수를 미워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그녀의 태도는 단순한 증오 이상이었다.마치, 그들이 맺어지는 것이 ‘절대적인 위기’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그가 그녀의 손을 감싸 쥐었다.“부인,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오.”그는 그녀의 초조한 표정을 보며, 묘한 감정을 느꼈다.소우연이 이민수를 미워하는 이유가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이 묘하게 아려왔다.‘과연 어떤 마음으로 저들을 경계하는 것일까?’소우연은 입을 열려다가, 다시 닫았다.그녀의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뒤엉켜 있었다.그것을 털어놓을 수 없다는 것이, 이토록 답답한 일이 될 줄이야.그녀는 문득, 이육진이 오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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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화

이육진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때가 되면 말해 주마.”그의 말투에서 황실의 기밀이 얽혀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소우연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지금은 참아야 해. 소우희가 무사히 평춘왕에게 시집갈 때까지...'밤하늘에는 둥근 달이 떠올랐다.소우희는 평서왕부의 뒷문을 통해 조용히 나섰다.혜주의 부축을 받으며 마차에 올랐다.혜주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속삭였다.“아씨, 이렇게 늦게 돌아가면 큰 마님과 도련님들께 뭐라고 설명하실 겁니까?”마차가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말발굽 소리와 바퀴 구르는 소리가 어둠을 가르며 울려 퍼졌다.이제 두 사람의 대화는 외부로 새어 나갈 염려가 없었다.소우희는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세자 오라버니께서 직접 평서왕께 청을 올려, 내 혼인을 파기해 주시겠다고 하셨어.”혜주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정말입니까? 하지만 평서왕께서 그 청을 받아들이실까요?”소우희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오라버니와 나는 이미 부부나 다름없어. 게다가 나는 천생 봉명을 타고난 여인이라고.”“평서왕께서도 이를 감안하여, 세자 저하를 위해 힘써 주실 거야.”혜주는 그제야 한숨을 돌리며 안도했다.“그렇다면 다행입니다.”그녀는 소우희가 평춘왕에게 시집가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평춘왕은 실권도 없고, 성격은 난폭하며, 여색을 밝히는 자로 악명이 높았다.그의 아내가 된다면 소우희는 물론, 혜주 자신도 끔찍한 삶을 살아야 할 터였다.평서왕부.이민수는 목욕을 마친 후, 상궁에게 물었다.“아바마마께서는 돌아오셨느냐?”상궁은 공손히 대답했다.“예, 세자 저하. 이미 왕야께서는 반 시진 전에 귀가하셨습니다.”이민수의 미간이 좁혀졌다.“반 시진이나 지났다고?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상궁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그때는… 우희 아씨께서 방에 계셔서…”이민수는 손을 가볍게 휘저으며 말했다.“됐고.”그는 문득 떠올렸다.소우희는 겉으로는 연약한 척했지만, 침소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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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화

원사는 조용히 서 있었다.평서왕 이남진은 손에 힘을 주며 묻었다.“내가 부탁한 것은 가져왔느냐?”원사는 즉시 고개를 숙이며 작은 약병을 꺼내 두 손으로 바쳤다.“예, 왕야. 가져왔습니다.”이남진은 약병을 손에 쥐고 눈을 가늘게 떴다.“남녀 모두에게 효과가 있는가?”원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렇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피임 효과를 보이지만, 장기 복용하면 반년 내 반드시 자손을 볼 수 없는 몸이 됩니다.”이남진의 입꼬리가 서늘하게 올라갔다.“좋다. 수고했다. 이제 돌아가 보거라.”원사는 공손히 예를 갖추고 약상자를 들고 물러났다.그가 나가자마자, 측근 내관이 다가와 조용히 보고했다.“왕야, 방금 전 세자 저하께서 다녀가셨습니다.”이남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면 다시 부르도록 하라. 마침 이야기할 것이 있다.”“예, 왕야.”얼마 지나지 않아, 이민수가 서재로 들어와 예를 올렸다.“아바마마, 찾아 주셨다 하여 달려왔습니다.”이남진은 손을 들어 가볍게 허락하듯 움직였다.“소우연이 회남왕부에 시집간 이후로 두 사람이 만난 적이 있느냐?”이민수는 고개를 저었다.“예전 어마마마의 성하에 맞춰 매화 감상 자리를 마련하며 그 아이를 초대하려 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이남진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거절했다고?”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그 아이가 너를 가장 좋아하지 않았더냐?”소우연이 누구보다도 이민수를 따랐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그런데도 거절했다?“혹시 네가 초대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네 어머니께서 초대한 것으로 알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이남진은 미간을 좁혔다.“그렇게까지 어리석은 아이였나?”이민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그럴 수도 있지요. 소우연은 미모 하나는 빼어나지만, 지혜나 교양, 능력은 모두 소우희보다 못합니다.”이남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탁자 위의 작은 약병을 가리켰다.“이것을 그 아이에게 전해라. 반드시 회남왕에게 먹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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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화

이민수는 입을 열려다가 다시 다물었다.“만약 폐하께서 의심을 품으신다면, 설령 아바마마께서 가장 적합한 후계자라 해도, 방계 황족들 중에서 적당한 이를 골라 후계로 삼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요.”이남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도 머리는 잘 돌아가는구나.”이민수는 깊은 숨을 들이쉬며 대답했다.“아바마마의 뜻을 이해했습니다.”그러나 머릿속에서는 소우희의 눈물 어린 얼굴과 자신을 향해 애교를 부리던 모습이 계속해서 떠올랐다.손을 꽉 쥔 채, 그는 생각했다.‘소우희, 미안하다.’시간은 흘러, 어느덧 섣달그믐날이 되었다.오후가 되자, 간석이 회남왕부의 사람들을 이끌고 대청을 꾸미기 시작했다.대련을 붙이고, 창문에 화려한 장식을 다는 등 연회 준비가 한창이었다.그때, 진규가 이육진의 휠체어를 밀며 다가왔다.“부인, 곧 입궁하여 아바마마와 함께 연회를 즐겨야 하오.”오늘은 단순한 궁중 행사만이 아니라, 모든 왕공대신들이 모여 황제와 함께 설을 맞이하는 중요한 자리였다.소우연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정연이 다가와 그녀의 옷을 손질하며 머리를 손봐 주기 시작했다.이육진은 온돌에 앉아 책을 펼쳤지만, 시선은 자연스럽게 소우연에게 머물렀다.그녀는 의연한 표정으로 단정히 앉아 있었고,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서려 있었다.그 모습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그때, 정연이 그녀의 머리 장식을 들고 물었다.“왕비마마, 이 금비녀는 어떠신지요?”소우연은 거울을 바라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너무 화려하지 않을까?”정연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 왕비마마. 마마께서 천생 아름다우시니, 이 금비녀가 더욱 잘 어울릴 것입니다.”소우연은 여전히 망설이는 기색이었다.“그래도 조금 과한 것 같구나…”그때, 이육진이 조용히 다가와 그녀의 뒤에 섰다.소우연이 거울을 통해 그를 바라보려는 순간, 그는 자연스럽게 손짓하여 정연을 물러서게 했다.그는 손을 뻗어 보석함에서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흰색 옥으로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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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화

소우연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며 감탄했다.“이렇게 많은 매화가 다투어 피어 있으니, 참으로 아름답구나.”“하지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더 근사하지 않을까?”궁녀 중 한 명이 부드럽게 대답했다.“의매원 안쪽에 정자가 하나 있습니다.”그녀는 손짓으로 가리키며 덧붙였다.“저곳에서 보시면 더욱 멋진 경치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정자에 앉아 충분히 감상하신 후, 더 걸어가시면 호심도도 보실 수 있습니다.”‘호심도?’소우연은 흥미를 느꼈다.‘이 황궁 안에 호심도까지 있다니… 역시 궁은 정말 크구나.’그녀는 자연스레 발걸음을 빨리하며 정자가 보이는 방향으로 향했다.그러나 그때, 갑자기 뒤에서 짧은 신음이 들려왔다.“아야…”궁녀 중 한 명이 갑자기 주저앉았다.소우연이 돌아보며 물었다.“괜찮느냐?”궁녀는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왕비마마, 발목을 삐었사옵니다.”소우연은 그녀를 살펴보다가 곧 결정을 내렸다.“정연아, 네가 이 아이를 데리고 태의원에 가거라.”“나는 정자에서 기다리도록 하마.”정연은 당황한 듯했다.“왕비마마, 허나 이곳은…”‘과연 안전한 곳일까?’소우연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여기는 황궁이다. 대체 무슨 일이 생기겠느냐?”궁녀는 초조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왕비마마, 송구하옵니다. 폐를 끼쳐드렸습니다.”“그런 말은 하지 마라. 어서 태의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라.”“예, 왕비마마.”결국 정연이 다친 궁녀를 부축하며 의매원을 떠났다.소우연은 그녀들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후, 다시 정자로 향했다.그러나, 정자에 가까워지자 그녀는 그곳에 누군가가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등 뒤로 두 손을 모으고, 우아하게 서 있는 한 남자.그의 하얀 옷이 바람에 가볍게 흔들렸다.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익숙한 실루엣. 누가 봐도 그 남자는 이민수였다.‘벌써 궁에 와 있었단 말인가?’소우연은 순간적으로 얼굴이 굳어졌다.이 타이밍이 너무나도 절묘했다.‘혹시 아까 그 궁녀는 우연히 발목을 삐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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