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부서 육민우 씨 좀 바꿔주시겠어요? 가족인데, 급한 일이 있어서요.”심서아는 정중하면서도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육 연구원님은 지금 바쁘셔서 통화가 어렵습니다.”일 분쯤 지나 대답과 함께 뚝 하고 전화가 끊겼다.심서아는 멍하니 있다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4년 전 그녀는 육민우와 짧은 만남을 가졌다. 그 후 그는 연구소로 갔고, 두 달 뒤 그녀는 아들을 임신했다. 하지만 육민우와 연락이 닿지 않아 그녀는 시댁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쫓겨났고, 결국 아버지가 남겨주신 낡은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4년 동안 뒤따르는 쑥덕거림은 끊이지 않았다.혼자 아이를 낳고 기르며 힘든 시간을 견뎌왔기에 그녀는 남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심지현의 입학만큼은 미룰 수 없었다. 호적 없는 아이는 학교에 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다시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을 것 같아 심서아는 체념한 듯 돈을 내고 집으로 향했다.두어 걸음 떼자마자 뒤에서 교환원 두 명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매번 와도 남자가 전화 안 받는다며? 애가 남편 애가 아니라잖아. 쯧쯧, 낯짝도 두껍지.”“그러게 말이야. 교수 딸이라던데, 옷차림은 왜 저렇게 야해? 집에 남자들이 들락날락한다더니, 본인도 누구 앤지 모르는 거 아니야?”심서아는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돌아섰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두 여자를 쏘아보자, 교환원들은 흠칫 놀라 입을 다물고 움츠러들었다. 심서아는 매서운 눈초리로 그녀들을 노려본 후 우체국을 나섰다.낡고 허름한 동네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니 아들 심지현은 낮잠에서 깨어 포도나무 아래 얌전히 앉아 있었다. 엄마의 말을 잘 듣는 심지현은 엄마가 없어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무더운 날씨에 그의 하얀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나가기 전에 시원하게 내놓았던 식혜도 다 식어있었다.그녀는 한잔을 따라 마시면서 부드럽게 물었다.“지현아, 식혜 좀 마실래? 시원한데.”심지현은 부모의 장점만 물려받아 예
Last Updated : 2024-12-23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