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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80년대 사랑 일기: Chapter 21 - Chapter 30

40 Chapters

제21화

진하연이 전혜자의 팔짱을 끼고 장바구니를 든 채 심서아에게 다가오고 있었다.심서아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하기도 전에 뒤돌아본 것을 후회했다. 전혜자가 자신을 부른 건 분명 안부를 묻거나 심지현을 보려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얘가 지현이냐?”전혜자는 심지현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두어 걸음 다가왔다. 정말 닮았다. 심지현이 인사를 하지 않자, 전혜자는 심서아에게 말했다.“애 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니? 할머니를 봐도 인사도 안 하고.”심서아는 재빨리 심지현을 자기 뒤로 숨겼다.“아주머니, 애가 처음 봐서 낯가리는 거 같아요. 저희 이만 갈게요.”진하연은 심지현을 보자마자 속으로 무너졌다. 어쩐지...육민우가 심서아를 그렇게까지 감싸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그때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나섰더라면 육민우를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자신감이 넘쳐서 그의 고백만 기다린 게 잘못이었다.전혜자는 진하연의 표정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심서아의 장바구니를 훑어보았다.“너 지금 살림하는 사람 맞니? 민우가 너희 모자를 인정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돈을 함부로 쓰면 안 되지. 민범이는 아직 결혼도 안 했고 나랑 네 아버지는 아직 아프잖아. 그저께 병원비도 민우는 안 내줬단 말이야. 어떻게 집안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하는 거냐.”진하연도 거들었다.“민우가 어제 상사한테 2만 원이나 빌렸다던데요.”심서아는 어이가 없었다.“그 집에서는 나와 지현이한테 쌀 한 톨 먹여준 적이 없고 잠 한번 재워준 적이 없어요. 그러니 아주머니가 하는 말이 저랑 무슨 상관인 거죠? 저는 원래 이렇게 살았고 지금도 잘살고 있어요. 그러니 내 살림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가르칠 필요 없어요.”전혜자는 예전에 자기 마음대로 휘둘렀던 아이가 이렇게 말대꾸를 하니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화가 치밀어 눈이 휘둥그레졌다.이를 본 진하연은 상황을 수습하려고 나섰다.“심서아 씨, 그래도 아직은 민우의 아내인데 말하고 행동할 때 그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해야죠. 이렇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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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이 말은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 듣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진하연에게 시선을 돌렸다.진하연이 조금 전에 전혜자를 아줌마라고 부른 것을 기억하며 누군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전혜자에게 물었다.“아주머니, 옆에 계신 여자분은 친척이세요?”“아니!”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전혜자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곧바로 심서아의 계략에 빠진 걸 알고 덧붙였다.“어릴 때부터 봐와서 친딸과 마찬가지예요.”“그러셨군요!”“뭐가 그렇다는 거야? 방금 네가 늦게 와서 못 봤겠지만, 저 여자가 아주머니 며느리를 보자마자 안주인 행세를 하면서 남편 공경도 안 하고 시부모께 효도도 안 한다고 훈계했거든. 그러니까 며느리가 자기 남편 걱정하는 거냐고 받아친 거지.”“어쩐지 며느리 태도가 그렇더라니!”진하연은 그제야 심서아의 은근한 말뜻을 알아차렸다.속마음을 들킨 진하연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전혜자를 잡아당기며 작게 말했다. “가요.”전혜자는 심서아를 노려보고는 진하연을 따라 자리를 떴다.심서아는 황급히 떠나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고개를 숙이자 심지현의 반짝이는 눈과 마주쳤다.녀석은 그녀의 손을 잡고 흔들며 작게 속삭였다.“엄마, 최고!”한편, 전혜자는 눈이 시뻘게져서 물었다.“하연아, 민우가 상사한테 2만 원을 빌렸다는 게 사실이니?”아까 심지현을 본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진하연은 전혜자의 물음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주머니 병원비 때문에 다 써버렸다고 하던데요.”그녀의 말에 전혜자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자신은 만육천 원밖에 받지 않았기에 나머지 돈은 민우가 갖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틀림없이 그 여자에게 준 게 분명했다.전혜자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본 진하연은 조심스레 물었다.“아줌마, 무슨 일 있으세요?”“민우는 만육천 원밖에 안 가져왔어. 평소에 돈도 거의 안 쓰는 애가 나머지 돈은 필시 그 몹쓸 년한테 줬을 거야. 옷이며 먹는 것 좀 봐. 얼마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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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심서아는 심지현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까 만났던 두 사람 때문에 기분이 상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녀는 채소를 식탁에 놓고는 소파에 앉아 라디오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투덜거렸다.“홍콩에서 가져왔다더니 품질이 왜 이렇게 형편없어?”심지현은 심서아의 손에 들린 라디오를 받아 들었다.“저녁에 아빠 오시면 고쳐달라고 할까요?”아들이 육민우를 아빠라고 부르는 소리에 심서아는 이마를 짚었다. 육민우가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쉽게 사로잡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됐어, 네가 갖고 놀아.”심서아는 그렇게 말하고 방으로 들어갔다.창가 책상에 앉은 그녀는 참지 못하고 카세트를 만지작거렸다.‘상사한테서 2만 원을 빌려서 이 카세트를 사 온 건가?’그녀는 카세트에 전원을 연결하고 스위치를 켰다. 그리고 테이프 하나를 꺼내 카세트에 넣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한참 음악을 듣던 심서아는 아직 점심 식사를 준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자는 점심을 먹으며 방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었다. 기분이 좋아진 심서아는 심지현에게 닭곰탕을 한 그릇 떠 주었다.“엄마, 오늘 시장에서 만난 그 무서운 할머니가 진짜 할머니 맞아요?”심서아는 잠시 말이 없다가 대답했다.“응.”“아빠 같은 아들을 낳은 사람 같지 않은데...”심지현은 입을 삐죽 내밀며 중얼거렸다.심서아는 심각한 표정의 아들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네가 아빠를 알아?”심서아가 보기에 육민우는 전혜자와 다를 바 없었다. 둘 다 앙심 깊고 냉정한 사람들이었다. 육민우는 아버지의 강요에 대한 복수로 4년 동안 자신에게 일절 연락하지 않았다.그러다 심지현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태도를 바꾼 것을 보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사람이었다.이런 생각에 심서아는 아들을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이 녀석도 그런 기질을 조금 닮은 것 같았다. 엄도영의 어머니를 싫어하면서도 육민우의 소식을 알아내려고 억지로 웃는 얼굴을 하고 아주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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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육민우의 눈빛이 반짝이더니 물었다.“이 라디오가 그렇게 중요해?”“잘 모르겠어요. 희열 삼촌이 홍콩에서 사다 준 건데, 아마 비싼 거 같아요.”심지현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육민우는 라디오를 받아 들고 분해해서 살펴보더니 심지현에게 말했다.“아빠도 잘 모르겠네. 내일 아빠가 라디오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줄 테니까 엄마 선물로 드리면 어떨까?”심지현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아빠가 라디오를 만들 줄 알아요?”육민우는 고개를 끄덕였다.“물론이지. 내일 아빠 쉬는 날이니까 가르쳐 줄게. 다만 엄마께 깜짝 선물로 드려야 하니까, 완성하기 전까지는 비밀로 하자.”심지현은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좋아요!”아빠는 정말 못 하는 게 없었다. 라디오까지 만들 수 있다니 엄도영의 아빠보다 훨씬 멋있었다.주방에서 나온 심서아는 마주 앉아 속닥거리는 부자의 모습을 보았다. 무슨 비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마음 한구석에서 묘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둘이 저렇게 다정했었나?“지현아, 아빠랑 손 씻고 밥 먹자.”부자가 동시에 대답했다.“네!”밥상이 차려지고 모두 식탁에 앉자 심서아는 육민우에게 닭곰탕을 떠 주었다. 국을 받아 들면서 육민우는 순간 가슴속에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아내는 자신을 위해 밥을 짓고 국을 떠주었고 똑똑하고 다정한 아들은 자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예전에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느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았다.육민우는 국을 한 모금 마시다가 아내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여자에게 시선을 받는 일은 매일같이 일어나는 일이었으니 그는 그저 따분하게 여길 뿐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왠지 모르게 긴장되었다.그는 국그릇을 내려놓고 그녀를 쳐다보았다.“왜 그래. 서아야?”심서아가 입을 열었다.“민범이를 때렸어요?”육민우는 입술을 오므리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어!”“왜요?”비록 자신과 관련된 일임을 알면서도 그의 입으로 직접 확인받고 싶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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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심서아는 이춘하의 말을 떠올렸다.“저랑 지현이는 여기서 잘 지내고 있으니까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돼요. 일이 중요하죠.”육민우가 아버지 일 때문에 자신에게 화를 내지 않자 심서아의 마음을 짓누르던 큰 돌도 드디어 내려앉았다. 게다가 그녀는 그쪽으로 갈 생각도 없었다. 한 달 후면 봉래성으로 떠날 예정이었으니까.육민우는 잠시 말을 멈추고 대답했다.“알았어.”“닭곰탕 더 드세요.”기분이 좋아졌는지 심서아가 한마디 더 덧붙였다.“그래.”육민우가 다시 대답했다.저녁을 먹고 심서아는 방으로 돌아가 음악을 들었고 육민우는 그릇을 들고 주방으로 가 설거지를 하면서 다른 생각에 잠겼다.자신들 팀과 가족 간의 연락을 담당한 건 이지은 씨였다. 그는 그녀와 몇 마디 말을 나눠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왜 그에게 이런 짓을 한 걸까?이 오해만 아니었다면 지현이와 서아는 이렇게 오랫동안 고생할 필요가 없었다.이 일은 반드시 밝혀낼 것이다.설거지를 마친 그는 주방 구석구석을 깨끗이 닦았다.주방에서 나오니 심지현이 잔뜩 기대에 찬 얼굴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다음 날 육민우는 연구소로 출근했다.하던 일을 마치자마자 그는 이성빈의 사무실로 향했다.“무슨 일이야?”이성빈은 약간 긴장했다. 이 녀석은 볼일 없으면 찾아오는 법이 없으니 직접 사무실까지 찾아온 것은 분명 무슨 일이 있을 터였다.육민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아주 공손하게 이성빈 앞에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임성 연구 기지가 철수하면서 이지은 씨가 어디로 발령받았는지 알세요?”“갑자기 그 사람은 왜 찾아?”이성빈은 부모님이나 돈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서아가 예전에 내게 여러 번 전화했는데 이지은 씨가 자기 마음대로 전부 막아버렸어요.”육민우는 심각하게 말했다.이성빈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설마. 내가 자네한테 전화할 때마다 그 친구는 아주 공손하고 정중하게 잘 응대했어. 한 번도 빠뜨린 적이 없었는데, 굳이 자네한테만 특별히 그런 태도를 보였을 리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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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하지만 그는 뭐든지 빨리 배우는 편이었다. 사람을 달래 본 적은 없지만 배울 수는 있었다.그가 아무 말 없자 이성빈은 불안한 듯 말했다.“내 월급이 고작 6만 4천 원이야. 자네보다 적다고. 그중에 4만 4천 원은 생활비로 들어가야 해. 지난번 자네에게 빌려준 2만 원도 내가 겨우 모아둔 돈이었어. 이젠 진짜 빌려줄 돈 없어.”육민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며 말했다.“그럼, 실험실에 남는 광석 가져도 될까요?”“그건 괜찮지.""“그리고 낡은 축전기와 금속 탐지기도 주셨으면 해요. 임성에서 가져온 건데 이제 우리 실험실에는 필요 없잖아요.”육민우가 다시 말했다.이성빈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래, 그래, 가져가!”이성빈은 연구에 몰두하는 그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는 가져가도 연구에 쓸 거라고 생각하며 말했다.“알았어. 잠시 후에 신청서를 가져오면 서명해 줄게.”“알겠어요! 감사합니다!”“또 무슨 새로운 생각이 떠오른 거야?”이성빈이 물었다.육민우는 웃으며 대답했다.“아니요. 아내에게 라디오를 만들어 주려고요. 아들도 가르칠 겸.”이성빈은 크게 웃었다. “좋아, 가정의 평화도 중요하지. 밖에서 집 구할 생각 말고 어서 이사 들어가.”육민우는 대답 없이 돌아섰다.퇴근 후 육민우는 물건을 찾았지만 심서아에게 가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아들과 내일 만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그는 연구소 사택으로 돌아갔다. 전혜자는 육민우를 보고 낯빛을 굳히며 말했다.“저번에 병원비가 모자랐는데 너는 돌아와서 묻지도 않더라. 네 마음에 나라는 엄마가 있기는 한 거니?”육민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민범에게 돈을 남겼잖아요.”“2천 원으로 뭘 어쩌라는 거냐? 그 바람에 내 생활비까지 보태서 썼잖아.”육민우는 웃고는 더 이상 그 이야기를 하지 않고 다른 말을 꺼냈다.“내가 서아한테 쓴 편지들, 어머니가 받아두었어요?”전혜자는 육민우가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할 줄 몰랐는지 잠시 멍해졌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게다가 식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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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너나 네 부모님은 안중에도 없고! 듣자 하니 너 상사에게 2만 원을 빌렸다던데, 돈을 다 그 여자에게 갖다 바쳤니?”육민우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이미 무감각해져 있었다. 그녀의 말은 이제 그의 마음에 아무런 파장도 일으키지 못했다.“어머니와 아버지께 드리는 생활비로도 매일 좋은 음식을 먹고 가끔 옷도 사 입을 수 있어요. 다 두 분이 형님과 민범을 편애하셔서 도와준 것뿐인데 그게 집사람과 무슨 상관이에요?”게다가 그는 심서아에게 빚진 건 돈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줄 수 있었다.이 말에 육민범은 이를 갈았다. 맞은 지 얼마 안 됐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또 심서아를 한바탕 욕했을 것이다.“형, 우리 시골에서는 한 사람이 잘되면 가족 모두가 잘되는 법이잖아. 왜 그렇게 심서아 편만 드는 거야? 밖에서 사람들이 그 여자와 하희열이라는 남자에 대해 뭐라고 수군거리는지 알기나 해?”“닥쳐!”육민우는 낮은 목소리로 육민범의 말을 끊었다.“내가 오늘 온 건, 그 편지들을 너희가 가져갔으면 당장 내놓으라는 경고야. 나중에 가족끼리 얼굴 붉히는 일 없게.”말을 마친 그는 가방을 메고 나가 버렸다.전혜자는 육민우의 뒷모습을 보며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육종수! 당장 나와요! 방에 숨어서 뭐 하는 거예요? 당신 아들이 하는 짓 좀 보라고!”한참이 지나도 아무 소리가 없자 전혜자는 다시 소리쳤다.“안 나오면 당신 담배 다 던져 버릴 거예요!”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육종수는 잔뜩 찡그린 얼굴로 불만스럽게 말했다.“당신은 왜 꼭 쟤랑 싸워야 직성이 풀리나? 당신이 울고불고해도 둘째한테는 안 먹히는 거 몰라? 머리가 나쁜 거야 뭐야?”“무슨 소리예요? 내가 잘못했다는 거예요?”전혜자는 앞으로 두 걸음 다가섰다.그러자 육종수가 말했다.“쟤는 달래야 말을 듣잖아. 게다가 이젠 컸다고 당신 말도 안 듣는데, 왜 쓸데없이 싸워?”전혜자는 초조해하며 말했다.“저 녀석이 돈을 다 그 심서아 그년에게 갖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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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심지현은 얼른 고개를 들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기쁘게 대답했다.“알았어요!”“무슨 반찬 해 줄까?”심지현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수박이랑 생선 사 오세요.”심서아는 육민우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당신은?”“아무거나 괜찮아.”육민우는 편식하는 사람이 아니었다.심서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주방으로 가서 장바구니를 가져왔다.그녀는 장바구니를 들고 소파를 지나가면서 부자를 슬쩍 훔쳐보았다.소파 위에는 뭔가 이상한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전자 제품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중에서 그녀가 알아볼 수 있는 건 구리선뿐이었다.물어보고 싶었지만, 왠지 쑥스러워서 육민우가 돌아가면 심지현에게 물어보기로 했다.심서아는 장바구니를 들고 송유정의 집으로 향했다. 막 일어난 송유정은 심서아가 같이 장 보러 가자고 하자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장바구니를 들고 어머니께 말씀드린 후 따라나섰다.“지현이는 왜 안 데리고 왔어?”“민우 씨가 보고 있어.”심서아는 무심하게 대답했다.“민우 씨가 네 집으로 들어왔어?”송유정의 눈에 호기심과 놀라움이 가득했다.“아니, 퇴근 후나 주말에 지현이 보러 와.”송유정은 심서아의 어깨를 툭 치며 흥분하며 말했다.“잘됐네! 이 기회에 눌러앉게 해야지. 그렇게 떨어져 지내다가 다른 사람이 틈타면 어떡해?”심서아는 고개를 저었다.“됐어. 마음이 떠난 사람은 아무리 붙잡아도 소용없어.”“무슨 소리야? 왜 그렇게 기운 없어? 민우 씨는 몇 번이나 왔는데 아무런 표현도 없었던 거야?”송유정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그저께 카세트랑 테이프 두 개 줬어. 이것도 표현인가?”송유정은 웃음을 터뜨렸다.“민우 씨, 남자 맞아? 아리따운 아내가 눈앞에 있는데 아무런 생각도 안 든다는 게 말이 돼?”“그러니까. 억지로 맺은 인연은 오래 못 간다니까.”심서아는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그런데 한 가지 오해는 풀었어. 내가 전화했을 때, 그가 일부러 안 받은 게 아니라 교환원이 전화를 안 바꿔 준거래. 게다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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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이지은의 일은 일단 기억해둬야지.”송유정은 잠시 말이 없다가 물었다.“결국 하고 싶은 말은 봉래성에 가겠다는 거지?”심서아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역시 너는 못 속이겠어.”송유정은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봉래성에 가면 정말 잘 해결할 수 있겠어?”심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희열이가 이미 다 준비해 뒀어.”“알았어. 그럼 내가 아빠한테 부탁해 볼게.”심서아는 그녀의 대답을 듣고 그제야 안심했다. 두 사람은 장을 보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심서아는 돌아오는 길에 수박 한 통을 샀다.수박을 식탁 위에 올려두었지만 아들과 남편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너무 집중한 나머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심서아는 그들을 방해하지 않았다. 지현이가 자주 그러는 일이라 익숙했던 것이다.심서아가 주방에서 요리를 마치고 식탁으로 돌아와 심지현을 큰 소리로 두 번 부르고 나서야 부자는 정신을 차렸다.심지현은 소리를 듣고 황급히 무언가를 숨기더니 고개를 돌려 물었다.“엄마, 언제 왔어요?”“밥까지 다했는데 언제 왔을까? 어서 가서 손 씻어.”심지현은 육민우에게 눈짓하며 말했다.“내가 먼저 손 씻고 그다음에 아빠 씻어요.”육민우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어서 가.”심서아는 부자가 뭔가 숨기는 듯한 눈치였지만 육민우가 그 자리에 앉아 있어서 다가가지 못했다.육민우가 손을 씻으러 갈 차례가 되자 심서아는 참지 못하고 가서 확인해보려고 했지만 심지현이 막아섰다.“지금은 안 돼요. 밥 먹고 나서 보여 줄게요.”심서아는 하는 수 없이 몸을 곧게 세우며 말했다.“알았어!”육민우는 손을 씻고 식탁에 앉았고 심서아와 심지현도 자리에 앉았다.세 사람이 식사를 마친 후, 심지현이 심서아에게 말했다.“오늘은 엄마가 설거지해요. 나랑 아빠는 할 일이 좀 있어요.”심서아는 순순히 설거지하러 갔다.설거지를 마치고 나오자 부자는 소파 옆에 나란히 서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심지현은 심서아의 손을 잡고 말했다.“엄마, 나랑 아빠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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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하희열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육민우를 보고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곧 그날 사람들 속에서 심지현의 아빠라고 밝혔던 남자임을 기억해냈다.육민우도 일어나 고개를 끄덕였고 두 남자는 서로를 은근히 훑어본 후 시선을 거뒀다.하희열은 흰 셔츠에 검은 슬랙스 차림에 눈에 띄는 손목시계를 차고 있었다. 육민우와 키는 비슷했고 잘생긴 이목구비에서 풍기는 귀티는 좋은 집안에서 자랐음을 짐작하게 했다.나이는 육민우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육민우의 머릿속에 온갖 억측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심서아는 교수님께 잘 교육받았으니 그럴 리 없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고 어지러웠다.하희열은 심지현을 번쩍 안아 소파에 앉히고 가방에서 작고 빨간 네모 상자를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상자에는 영어 제목이 적혀 있었고 몇 권의 책도 함께였다.“삼촌이 너 주려고 가져왔어. 마음에 들어?”그때 방에서 나온 심서아는 테이블 위의 선물들을 보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또 이렇게 많이 샀어? 그만 사 오라고 했잖아.”하희열은 웃으며 말했다. “별것도 아닌데, 신경 쓰지 마. 네 선물도 있어.”그러면서 하희열은 가방에서 길쭉한 상자 하나를 더 꺼내 놓았다.심서아는 상자를 받지 않으며 말했다.“늘 이렇게 신세 져서 어떡해.”하희열은 상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설명했다.“내가 산 게 아니고 누나가 홍콩에서 가져온 거야. 이걸로 머리 감으면 좋다고 하더라고.”육민우는 그 말에 저도 모르게 심서아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까맣고 윤기 흐르는 머리카락은 어깨 위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고혹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심지현은 빨간 철제 상자를 열고는 기뻐했다.“와, 쿠키다! 백화점 식품 코너에서 산 거예요?”하희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어. 마음에 들어?”그리고는 육민우와 조금 떨어진 의자에 앉았다. 그는 육민우를 몰래 훔쳐보았다. 뛰어난 외모는 물론이고 재능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문득 그는 심서아가 왜 심지현을 키우면서 그토록 오랫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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