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의 모든 챕터: 챕터 161 - 챕터 170

311 챕터

제161화

삼촌과 글씨 연습을 해야 할 때가 아니면 글을 쓸 일이 없었다. 나이가 들었다지만 여전히 아이 같아서 쉴 수 있을 때는 늘 게으름을 피우곤 했다.“괜찮아.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써 봐. 잘 쓰든 못 쓰든 상관없어.” 삼촌이 나를 격려하며 붓을 내밀었다.더는 거절할 수 없어 붓을 받았지만 그 순간 붓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먹을 묻혀서 그럴 수도 있지만 아마 삼촌의 기대가 담긴 눈빛 때문일 것이다. 삼촌은 내가 예전처럼 글을 쓰고 마음에 여전히 강유형만 두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여전히 내가 ‘가족’으로 남을 수 있으니까.손이 살짝 떨리면서도 힘겹게 붓을 내려 글씨를 썼지만 글자는 삐뚤고 힘도 고르지 못했다. 삼촌이 내게 글을 쓰게 한 건, 글씨 자체가 아니라 내 마음을 알고 싶었던 게 아닐까.“한 번뿐인 인생...” 삼촌은 내가 쓴 글을 천천히 따라 읽었다.삼촌이 글씨로 내게 무언가를 전해 준 것처럼, 나도 내 마음을 담아 답을 쓴 것이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가 나를 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지원아, 네가 어떤 결정을 하든 삼촌은 항상 네 편이야.”삼촌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나는 악수 대신 가볍게 삼촌을 안았다.“삼촌, 감사해요.”삼촌은 내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미안하다. 네가 힘들었을 텐데... 삼촌이 아들을 잘못 가르친 탓이야.”조금 전 아줌마의 잔소리에도 묵묵히 듣고만 있던 삼촌이, 나에게는 이렇게 사과를 해주니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삼촌은 내가 울 것 같다는 걸 느꼈는지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유형이가 얼마나 큰 실수를 했는지 나도 알아. 이미 경고를 해 두었으니까,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거야. 또다시 그런 짓을 하면 쫓아낼 각오도 돼 있어.”사실 나는 오늘 이 일을 삼촌에게 말하려고 했는데 내가 말하기도 전에 삼촌이 다 알고 있었다. 20년 동안 함께 지내며 우리는 진짜 가족처럼 서로를 이해하게 된 것 같았다.“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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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화

삼촌의 발걸음이 순간 멈췄다. 그의 몸이 살짝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나는 급히 그의 팔을 붙잡았다.“삼촌...”그러자 삼촌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지원아, 갑자기 왜 이런 걸 묻는 거야?”진정우가 했던 말이 떠올랐지만, 삼촌에게 그대로 말할 수는 없어서 그냥 대충 얼버무렸다.“그냥 궁금해서요.”삼촌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고 그의 무거운 표정에 나까지 긴장되었다.“지원아, 네 부모님의 사고는 그저 안타까운 사고였어. 내가 현장에 직접 갔었고 당시 경찰 보고서와 부검 결과도 다 확인했어.” 삼촌의 목소리에는 깊은 슬픔이 묻어 있었다.그때 나는 너무 어렸고 삼촌이 나를 사고 현장에 데려가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삼촌이 나를 보호하려고 현장에 데려가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은 제일 큰 아쉬움으로 남아있다.“지원아, 만약 네가 의문이 있거나 믿지 못하겠다면, 그 당시의 기록을 직접 열람해 봐도 좋아.” 삼촌의 얼굴은 창백해 보였고 조금 전까지 밝았던 표정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삼촌과 아버지와 가까운 사이였다는 건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거의 친형제나 다름없을 정도였다. 내가 부모님의 사고를 언급한 것이, 그때의 아픈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한 듯 보였다.나는 삼촌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삼촌, 아니에요. 전 믿어요. 그냥 한 번 물어본 거예요.”삼촌은 내 말을 듣고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듯했지만, 결국 아무 말 없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지원아, 먼저 내려가 있어라. 난 잠깐 혼자 더 있을게.”함께 내려가기로 했던 삼촌이 갑자기 말을 바꾸자, 내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삼촌...”“괜찮아, 어서 내려가.” 삼촌은 손짓하며 나를 보내려 했다.나는 서재를 나왔지만, 바로 아래층으로 가지 않고 벽에 기대어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삼촌의 반응이 예상 밖이라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혹시 그가 뭔가를 숨기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지만, 그의 진심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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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화

“알겠어요.” 나는 아줌마를 보며 인사했다.“아줌마, 저희 이만 가볼게요.”아줌마는 내 얼굴빛이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챈 듯, 잠시 위층을 바라봤다. 아마 삼촌과 나눈 대화가 궁금했던 것 같았다. 그래도 굳이 붙잡지 않고 “조심해서 가” 하고 배웅해 주었다.나는 진정우와 함께 차에 올랐다. 시동을 걸려고 하자 진정우가 내 손을 붙잡았다.“왜 그래요?” “별거 아니에요. 부모님 얘기가 나왔거든요.” 나는 숨기지 않고 답했다.“혹시 사고 얘기 물어보신 거예요?” 그는 바로 눈치챘다.“네, 사실은... 정우 씨 영향도 좀 받았죠. 정우 씨의 이야기를 듣고 제 가족사도 확인해 보고 싶었어요.” 나는 약간 자조적으로 웃었다.“그럼 결과는요?” 그가 다시 물었다.삼촌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차에 시동을 걸고 조용히 답했다.“단순한 사고였대요.”차가 삼촌 집을 벗어나자 나는 말을 덧붙였다.“현장 보고서와 부검 결과도 있고요.”진정우는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차에 앉아 있었고 어느덧 도심의 화려한 야경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사람이 붐비는 거리라 교통이 막혀 차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신호등에 걸린 사이, 나는 침묵을 깨며 물었다.“오늘 저녁 드셨어요?”“아니요, 아직이요.” 진정우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나는 그를 보며 말했다.“오늘 고생 많았으니까 저녁은 제가 살게요.”“좋죠.” 그는 거절하지 않고 흔쾌히 받아들였다.나는 주차할 곳을 찾아 차를 세운 후, 차에서 내려 붐비는 길거리 음식 노점을 둘러봤다. 그리고 당당하게 말했다.“오늘 여기 있는 거 전부 마음껏 드세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 내 몸을 툭 치고 지나갔다. 순간 균형을 잃고 비틀거린 나는 본능적으로 진정우의 옷깃을 잡아 그의 쪽으로 넘어갔다.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진정우의 옷깃을 움켜쥐고 있었다. 이 장면은 마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연출이었고 그의 얼굴이 바로 내 앞에 있었다. 코끝이 맞닿고 조금만 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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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화

손잡기, 포옹, 키스는 항목별로 따로 비용을 받는다는 것이 내가 소개팅남과 했던 약속이었다.지금 진정우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그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아마 그날 밤 그가 소개팅남을 때려눕힌 후 뒷이야기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그 일을 내게 언급한 적이 없었다. 정말 이 남자,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그는 나와 실제로 키스하지는 않고 대신 내 손을 잡아끌며 인파를 헤치고 달리기 시작했다.북적이는 도심에서 함께 뛰는 것은 내게도 처음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우리 둘이 왜 뛰는지 의아해했지만 알아서 길을 비켜주었다.붐비는 거리에서 사람들은 양옆으로 비켜섰고 우리는 그들 사이를 가로지르며 달렸다. 진정우가 내 손을 잡고 가끔 나를 돌아보는 모습이 정말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불어왔다. 그렇게 나를 이끌고 달리는 진정우를 바라보자 문득 그와 함께 어디론가 도망치는 기분이 들었다.한참을 뛰다 보니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고 진정우는 내 걸음에 맞춰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멈춰 섰다.나는 헐떡거리며 숨을 고르고 있었고 진정우 역시 숨이 거칠었다. 그는 여전히 내 손을 단단히 잡고 있었다.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고 갈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진정우와 함께 이 순간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설렘을 주었다.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둘 다 숨이 점차 가라앉자, 나는 그가 아직도 내 손을 놓지 않고 있는 걸 알아챘다. 그의 목젖이 한번 꿀꺽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그 순간, 공기가 묘하게 달아올랐고 나는 심장이 더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목이 바싹 말라오는 긴장감 속에 겨우 말을 꺼냈다.“저기... 왜 저를 잡고 뛰어왔어요?”“안 뛰면... 사람들 앞에서 키스해야 했을 텐데요.”진정우의 말에 얼굴이 새빨개졌다.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의 손을 힘껏 빼내려 했지만 그는 여전히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나는 그의 발을 살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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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화

“자.” 진정우가 자신이 들고 있던 탕후루를 내 입 가까이 들이밀었다.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그는 고집스럽게 탕후루를 더 가까이 내밀었다. 마치 내가 한 입 먹지 않으면 끝낼 생각이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할 수 없이 입을 벌려 한입 베어 물었다. 달콤하면서도 새콤한 맛이 느껴졌고 확실히 오리지널 맛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솔직히 나쁘지 않았지만 내가 먹고 있던 과일 탕후루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맛은 아니었다.진정우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 때문에 맛있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정말 맛있네요.”그러자 진정우가 내가 들고 있는 탕후루를 가리키며 말했다.“지원 씨 것도 궁금한데요.”나는 반사적으로 내 탕후루를 뒤로 숨기며 마치 소중한 걸 빼앗길까 봐 조심하는 어린아이처럼 굴었다.그러자 진정우가 웃으며 말했다.“한 입만 먹어볼 건데 뭘 그렇게까지... 그럼 너무 소심해 보이잖아요.”그 말에 나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한 입 정도 줄 수 있지 않은가 싶어서 탕후루를 다시 꺼냈다. 내가 선택한 탕후루는 작은 과일들이 다섯 알씩 담긴 것이었고 각기 다른 맛이 있었다.“자, 여기서 하나 고르세요.”하지만 그는 내가 들고 있는 것을 보지도 않고 내가 먹고 있던 탕후루를 가리켰다.“저는 이걸로 할게요.”나는 잠시 말이 막혔다. 그건 내가 이미 한 입 먹은 거였다.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진정우는 고개를 내밀어 내가 들고 있는 탕후루에서 작은 감 하나를 베어 물었다. 그가 먹고 나서 탕후루를 보니 남은 과일은 딱 한 알뿐이었다. 어쩐지 먹기도 뭐하고 안 먹기도 뭐한 기분이었다.그때 진정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먼저 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남은 마지막 한 알을 내려다봤다. 그것은 설탕 코팅이 된 청포도라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었다.버리기 아까워 마지막 청포도를 입에 넣고 재빨리 씹으려는 찰나, 고개를 들어 보니 진정우가 돌아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는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나는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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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6화

나는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디저트다.진정우는 내가 아이스크림을 고르자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왜요, 마음에 안 드세요?” 나는 일부러 물었다.“여자들이 이런 걸 너무 많이 먹으면 건강에 안 좋아요.” 진정우가 진지하게 말하자 나는 웃으며 되물었다.“정우 씨, 여자들에 대해 꽤 잘 아시네요. 정말 연애 경험 없으신 거 맞아요?”“네, 없어요.” 진정우는 단호하게 대답했다.나는 그를 바라보며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여동생이 있어서 여자들에 대해 기본적인 건 조금 알죠.” 그의 말에 나는 숟가락을 잠시 멈췄다.여동생이 있다고? 하지만 한 번도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그가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말했다.“친여동생이에요. 부모님이 같은.”나는 시선을 피하며 아이스크림을 한 입 먹었다.“한 번도 얘기하신 적 없잖아요.”“얘기할 기회가 없었거든요.”진정우도 아이스크림을 한 입 먹었고 그가 다시 얼굴을 찡그리는 걸 보니 이걸 좋아하지 않는 게 분명했다.역시 강유형도 이런 종류의 디저트를 좋아하지 않았었다. 그때도 “이런 건 몸에 해로울 뿐”이라며 불평했었다.갑자기 그때가 떠오르며 기분이 살짝 상했다.“억지로 드시지 마세요. 다른 거 시켜드릴게요.”“아니에요, 괜찮아요. 좀 차가운 것뿐이라서요.” 진정우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차가운 거 드시면 속이 불편하실 텐데요.”나는 대꾸하지 않고 그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작은 반항의 의미로 침묵을 지켰다. 진정우도 내 마음을 알아챈 듯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었다.그때 내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지원아?”고개를 돌리니 신지태가 예쁘게 화장한 여자와 함께 나를 보고 있었다.“지태 오빠, 여기서 보네.” “혼자 아이스크림 먹고 있었구나.” 신지태는 아직 진정우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그 순간 진정우의 숟가락이 내 그릇에 들어왔다. 그는 내 아이스크림을 떠먹으며 말했다.“너무 차가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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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화

나는 신지태 곁의 여자가 누구인지 굳이 묻지 않았다. 그녀는 옷차림과 화장을 보면 신지태의 정식 여자 친구라기보다는 스쳐 가는 사람임이 분명했다.신지태가 떠난 후, 다시 내 아이스크림 그릇을 보니 이미 진정우가 다 먹어 치운 상태였다.“다른 거 더 먹으러 갑시다.”진정우는 전혀 사양할 줄 몰랐다.나는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좋아요.”진정우는 나를 이끌고 국수를 파는 가게로 갔고 두 그릇을 시켰다. 이번엔 내 것을 빼앗지 않았다. 이건 따뜻한 음식이니까.알고 보니 진정우가 정말 아이스크림을 좋아해서 먹은 게 아니라, 내가 너무 많이 먹을까 봐 신경 쓴 것이었다.이 사람, 약간 얄미운 구석은 있지만 나름 진심으로 챙겨주고 있는 건 분명했다.국수를 다 먹고 나서 우리는 계속 거리를 걸었다. 강아지와 고양이를 파는 가게도 있었고 화분을 파는 가게도 있다. 그러다 내가 작은 화분 두 개를 사서 진정우에게 주었다.“방이 너무 삭막하니까 꽃을 선물하고 싶어서요. 조금은 따뜻한 느낌이 들게.”“내가 있는 걸로 부족한가 봐요?”그가 웃으며 말했다. 충분하기는 했지만 인정하기 싫었다.“그럼 향기나 풍기게 놔두세요. 행운이 따를지도 모르잖아요.”내가 웃으며 말하자 진정우도 따라 웃었다.그의 웃음이 뭔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져서 나는 그가 말을 꺼내기 전에 손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말하지 마세요.”진정우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조용히 꽃을 들고 나를 따라 걸었다. 그렇게 우리는 밤 12시가 될 때까지 거리를 누볐다. 거리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였다.진정우가 내일 일찍 출근해야 할 텐데 걱정이 되어 말했다.“우리 이제 돌아가요.”“아직 더 보고 싶은 거 없어요?”그가 물었다.“아니요, 슬슬 피곤하네요.”나는 일부러 하품하며 말했다.그와 함께 돌아오는 길, 나는 계속 주변의 다양한 먹거리와 작은 소품들에 시선을 빼앗겨 그의 표정을 신경 쓰지 못했다. 그러다 예쁜 생화 액세서리를 파는 가게를 발견하고 장난스럽게 하나를 집어 머리에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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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화

문 앞에서 나와 마찬가지로 얼어붙은 표정을 한 사람은 강유형이었다.우리가 헤어진 후로 만날 때마다 이렇게 서로의 피를 거꾸로 쏟게 하는 장면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나는 지금 진정우와 웃으며 장난을 치고 있고, 그 곁에는 조나연이 서 있었다.조나연과 관계를 정리했다면서 이렇게 떡하니 같이 있다니... 남자의 말은 역시 믿을 게 못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잠시 멍하니 있던 나는 시선을 거두고 강유형을 보지 않기로 했다. 괜히 신경 쓰면 속만 상할 테니까.진정우도 마치 아무것도 못 본 척, 내 손을 잡으며 핸드폰을 빼앗지 않고 다정하게 말했다.“예쁠 때 찍어주세요.”그의 말투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여러 생각이 들게 했고 마치 오래된 연인 같은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그러자 강유형이 두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윤지원, 잠깐 나랑 얘기 좀 하자.”그는 재수 없고 무례하게 말을 건넸다. 조나연이 서 있는 자리에서 나를 끌어내려는 그의 태도는 조나연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나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지금 바빠.”정말 바빴다. 지금은 진정우 곁을 지키며 그의 주사를 챙겨줘야 하니까.그런데 강유형은 내 팔을 잡으려 손을 뻗었고 그보다 더 빨리 진정우가 그의 손을 막아섰다.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 부딪치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둘은 아무 말 없이 기싸움을 벌였지만, 이렇게 계속 가면 결국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진정우는 지금 링거를 맞는 중이라 무리하게 싸우다가는 링거를 다시 맞아야 할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나는 이 상황을 말리지 않으면 더욱 악화될 것 같아 조용히 옆에 서 있던 조나연을 쏘아보며 말했다.“저 사람 좀 데리고 가줄래요?”조나연은 잠시 주저하다가 내 시선을 피할 수 없었는지 움찔했다. 그러고는 강유형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유형 씨, 나 좀 아파. 우리 빨리 가서 주사 맞자.”조나연도 링거를 맞으러 온 건가? 임산부가 약을 맞는 일은 흔치 않은데, 혹시 태아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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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9화

조나연과 간호사의 대화가 끝나고서야 오늘 그녀가 놀이공원에서 넘어져서 태아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쳤다는 걸 알게 됐다.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는데 이게 누구 탓이겠나?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조나연이 링거를 맞기 위해 강유형과 함께 내 앞에 앉았다. 오늘 밤 뭔가 일을 벌이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앉아서 한동안 말이 없었고 나와 진정우도 그를 신경 쓰지 않는 듯 행동했다.하지만 강유형이 조용할 리가 없었다. 겨우 몇 분의 정적이 흐르고 나서 그가 입을 열었다.“오늘 저 사람을 집에 데려간 이유가 뭐야?”사실 그가 이 질문을 꺼내기 전부터 오늘 일로 그가 미쳐 날뛸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다.나는 차분하게 대답했다.“내 새로운 시작을 알리려는 거야.”강유형이 비웃으며 진정우를 바라보았다.“이 사람하고?”“그래, 이 사람이랑.”나는 진정우의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강유형이 헛웃음을 지었다.“넌 거짓말을 할 때마다 귀가 빨개지는 버릇이 있잖아. 그걸 고치고 나서 거짓말을 해.”그 말에 순간 당황했지만 나는 손이 귀 쪽으로 가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지금 흔들리면 진정우와 함께하는 이 연극이 모두 무너질 테니까.나와 강유형의 눈이 마주쳤다. 그의 얼굴에 깃든 짜증스러운 미소는 마치 '네 거짓말 따위 믿지 않아'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때 진정우가 한마디 툭 던졌다.“지원 씨는 화가 나도 귀가 빨개져요.”강유형이 진정우를 째려보았지만 진정우의 말 덕분에 나는 조금 여유가 생겼다. 사실 나는 화가 날 때도 귀가 붉어지는 편이다. 진정우가 그걸 어떻게 알아챘는지 궁금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나는 강유형을 보며 침착하게 말했다.“지금 널 보니까 또 귀가 빨개지네.”강유형은 다시 화기 치밀어 올랐지만 말을 꺼내진 않고 비웃음을 지었다.“네가 내 여자인 걸 잊지 마. 그냥 나를 화나게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잖아.”그의 말이 참 뻔뻔하다고 느껴졌다. 그의 ‘내 여자’라는 표현은 의도적으로 조나연의 신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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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0화

진정우의 몸이 잠시 떨리는 게 느껴졌다. 아마 내가 먼저 그를 키스할 줄은 몰랐던 것 같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그의 손이 내 허리를 단단히 감싸안았다. 나는 그의 입술에서 살짝 떨어지며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주사 잘 맞은 보상이에요.”그 말을 하니 문득 강유형이 아팠을 때가 떠올랐다. 그는 주사를 몹시 무서워해서, 아파도 웬만하면 병원에 가지 않으려 했다. 주사를 맞는 건 거의 그에게 고문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주사를 맞으러 갈 때마다 어린아이처럼 겁을 내며 거의 울먹이기까지 했다.그때마다 나는 아이를 달래듯 그를 다독였고 심지어 그가 주사를 맞는 동안 그의 눈을 가려 주기도 했다. 그가 아픔을 견디라고 내 팔을 물게 했던 적도 있었다. 강유형이 주사를 맞을 때마다 마치 커다란 임무를 완수한 듯 안도감을 느끼곤 했고 주사를 다 맞고 나면 그는 보상으로 나에게 춤을 추라든가, 노래를 부르라든가, 무언가를 사 달라며 요구하곤 했다. 마치 개구쟁이가 된 것처럼 말이다.그에 비해 진정우는 너무나도 조용하고 차분하게 주사를 맞았고 오히려 내가 지루하지 않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시간이나 보내라며 나를 걱정해 주기까지 했다. 이렇게 비교가 되니, 강유형은 나를 여자 친구라기보다는 개인 비서로 여겼다는 생각이 들었다.진정우는 내 말을 듣고 허리를 감싼 손에 더 힘을 주며, 낮고 부드럽게 속삭였다.“그럼 앞으로는 자주 아파야겠네요.”잠시 멈칫했지만, 그의 농담에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기 전에 바로 대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그게 아니라...”그때 강유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렇게 하니까 이제 속이 편해? 이제 우린 끝났다고 생각하는 거야?”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를 돌아봤다. 그는 화가 난 듯 보였지만, 목소리만은 차분하게 되물었다.“못 볼 걸로 할게. 우리 다시 시작하자.”이게 얼마나 뻔뻔한 말인지. 나는 그에게 쏘아붙였다.“정말 어이없네!”그리고 미련 없이 병원을 나섰다. 진정우의 손은 여전히 내 허리를 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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