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의 모든 챕터: 챕터 171 - 챕터 180

311 챕터

제171화

“어?”나는 잠시 멍해졌다. 다른 남자와 키스할 일은 거의 없었다. 강유형을 좋아했을 때도 내가 먼저 입맞춤을 시도한 건, 그가 아프거나 술에 취해 잠들었을 때 얼굴이나 손등에 살짝 닿았던 게 전부였다.입술을 맞댄 건 거의 없었고 강유형도 나를 키스할 때는 가볍게 얼굴이나 이마에 하는 게 전부였다.어느 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지원아, 우리 너무 익숙해서 그런지 너한텐 쉽게 입 맞추기가 어려워.”결국 그건 사랑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누군가 말했듯, 남녀 간의 진짜 키스는 서로에게 끌려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거라고 했다. 충동을 참는 건, 결국 사랑이 아니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전 ‘만약에’라는 접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진정우의 물음에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그러자 그는 목울대를 잠깐 삼키는 듯했다. 그 눈빛은 단단하고 집요했다.“하지만 너무 궁금해서요.”그의 강렬한 눈빛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말을 돌려보려 했다.“왜요? 혹시 여자한테 키스 당한 게 처음인가요?”“네.”그가 단호하게 대답하자 나도 모르게 말문이 막혔다. 몇 초 후, 나는 마치 나쁜 여자처럼 뻔뻔하게 말했다.“그럼 내가 보상해 줄까요?”“어떻게 보상할 건데요?”그의 대답에 순간 내가 주도권을 뺏긴 듯한 기분이 들었다.그가 원하는 보상이 뭔지 알 수 있었다. 마음을 다잡고 결단을 내렸다. 그가 더 오해하지 않게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정우 씨, 우리 그저 연기하는 거였잖아요. 스킨십도 다 설정된 거였고요. 만약 이게 마음에 걸린다면 다른 사람을 찾을 수밖에 없겠네요.”“그럼 매일 다른 남자를 남자 친구로 바꿀 거예요?”그의 목소리는 싸늘하고 날카로웠다.나는 무덤덤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웃었다.“저도 이러고 싶진 않지만 정우 씨가 버티지 못하면 어쩔 수 없잖아요.”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온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우리 사이가 점점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정우 씨가 너무 순진한 거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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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2화

"저예요."복도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나는 순간적으로 계단 난간을 꽉 잡고 멈춰 섰다.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누그러졌다.잠시 후, 뒤돌아 올라가자 어두운 복도에 서 있는 진정우가 보였다.얼마 전 어색하게 헤어졌던 순간이 떠올라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였지만 깜짝 놀란 건 사실이라 일부러 짜증 난 척하며 말했다.“이런 식으로 갑자기 나타나면 놀라는 거 몰라요?”“네.”그는 늘 그렇듯 짧게 대답했다. 그런 그의 태도가 어찌나 무심하게 느껴지는지 뭔가 더 말하려던 순간, 그가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다음번엔 안 그럴게요.”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열쇠를 꺼내 문을 열려는데 열쇠가 자물쇠에 닿기도 전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낮고도 진지했다.“오늘 밤은 제가 오해했어요.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게요.”응?내가 멍하니 돌아보자 그는 이미 문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문이 닫히기 직전, 나를 잠시 바라보며 말했다.“잘 자요.”입술이 떨렸지만 그의 문이 닫히고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앞으로... 라는 게 무슨 뜻이지?”사실 그가 말하는 뜻은 알고 있었다. 가짜 연인 관계를 끝내기 싫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이 관계를 계속하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상처를 더 주고 싶지 않았으니까.진정우는 여자 친구조차 사귀어본 적 없는 사람인데 나 때문에 억지로 연애를 흉내 내면서 소중한 첫 경험들까지 다 내주고 있었다.이젠 너무한 것 같아서 스스로가 미워졌다.자책하는 마음으로 집에 들어왔고 그날 밤 죄책감에 뒤척이며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꿈속에서도 진정우가 나를 따라다니며 "왜 키스했어요? 그건 내 첫 키스였는데."라고 묻는 장면이 반복됐다.결국 새벽 4시 반쯤에 눈을 떴다.이 시간쯤이면 진정우는 벌써 운동을 나갔을 것이다. 이 틈을 타서 서둘러 씻고 준비한 후, 그와 마주치지 않도록 서둘러 집을 나섰다.아침 해가 희미하게 떠오르는 거리를 달리며 문득 내가 왜 이토록 피해 다니고 있는지 스스로가 한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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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3화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회사 업무에 빨리 익숙해지고 싶어서요.”“그래도 너무 일찍 나오신 거 아니에요? 회사에서 추가 수당 안 주는 거 아시죠?” 허진호가 장난스럽게 말했다.나는 가볍게 미소 지었다.“제가 자발적으로 하는 겁니다.”“그래서 윤 부장님이 이 자리까지 오신 거겠죠. 모두가 부장님처럼 열심히 하면 우리 회사도 금방 대박 나겠어요.” 허진호의 지나친 칭찬에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났다.그는 항상 이렇게 말에 진심과 농담을 섞어서 사람을 헷갈리게 한다. 나는 이런 말에 진지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농담이 아니라, 회사 발전이 한 사람에게만 의존할 수는 없어요. 윤 부장님의 노력은 저도 충분히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표님께도 말씀드렸어요. 부장님이 너무 무리하셔서 건강을 해치기라도 하면 회사로서는 큰 손실이라고요. 앞으로는 좀 더 건강에 신경 쓰라고 하셨어요.”허진호는 아예 내가 일찍 출근할 핑계마저 막아버렸다. 그래도 뭐, 오히려 잘 됐다. 이제 더는 진정우를 피해 다닐 필요도 없으니까.진정우는 요 며칠 아침 식사를 문 앞에 두지 않았다. 내 뜻을 알았는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한 것 같다.“듣기로는 오늘 고객이 오신다면서요? 게다가 꽤 큰 계약이라던데?” 허진호가 화제를 돌렸다.“네, 10시에 오기로 했어요. 한 시간 정도 남았네요.” 나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저는 이제 준비하러 가봐야 해서 이만 실례하겠습니다.”“좋아요. 윤 부장님, 오늘도 좋은 결과 기대하겠습니다.” 허진호는 커피잔을 들어 올리며 나를 응원했다.나는 사무실로 돌아와 준비한 자료를 다시 한번 점검하고 9시 50분쯤 미리 회의실에 들어가 준비 상태를 확인했다.오늘 만날 분은 정말 중요한 고객이었다. 이 계약을 성사할 수만 있다면 며칠 전 강유형이 빼앗아 간 고객으로 생긴 손해를 충분히 만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성과를 몇 단계 더 끌어올릴 기회였다.10시 정각, 고객이 도착했다.그런데 그가 회의실로 들어오는 순간, 나는 표정이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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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화

우리 회사 사장은 마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모든 걸 알고 있는 신비한 인물 같았다.강유형은 내게 쏟아붓던 분노를 허진호에게 돌리며 소리쳤다.“안 한다고? 네가 지금 누구랑 얘기하는지 알고는 하는 소리야? 내가 누군지 알아?”지금 강유형은 무례하고 돈만 많은 졸부같았다.허진호는 물컵을 들고 무표정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사장님께서 당신이 누군지 알아서 이 거래를 안 하신다고 하셨습니다.”그는 짧은 말로도 강유형을 제대로 자극했다.강유형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네 사장 누구야? 해동에서 발붙이고 살기 싫단 거야?”“네, 사장님께서 말씀하시길 해동에서 장사를 안 해도 되니까 당신과는 협력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허진호의 말투는 차분하면서도 단호했다.강유형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좋아, 두고 보자고. 네 사장한테도 전해.”“알겠습니다. 사장님께서도 강 대표님께 전하라 하셨습니다. 언제든 환영한다고요.”허진호의 말이 강유형을 완전히 자극했다.그러자 강유형의 이마에 핏줄이 불거졌다. 나는 그가 허진호에게 주먹이라도 날릴까 봐 걱정이 될 정도였다.하지만 강유형은 이를 꽉 물고 몇 초간 허진호를 노려보다가 나를 향해 돌아섰다.“네가 이렇게 버티면 결국 다른 사람들만 피해를 보는 거 알지? 오늘 나와 함께 가면 좋게 끝나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 회사가 네 고집 때문에 피해를 보게 될 거야.”강유형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도 소용없자 협박하기 시작했다. 비록 나는 그의 집에서 자란 사람이긴 해도, 우리 부모님이 물려주신 고집은 쉽게 꺾을 수 없는 것이었다. 만약 내가 쉽게 겁을 먹었다면, 우리가 이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만약 네가 그렇게 한다면 우리 사이의 마지막 정까지 스스로 짓밟는 거야.”“네가 날 버린 마당에 무슨 정 타령이야?”그는 화가 나서 욕설을 내뱉었다.더 이상 그와 말다툼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회사 사람들에게 소문이 나길 원하지도 않았다. 나는 냉정하게 말했다.“강 대표님, 이제 그만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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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화

“부대표님, 혹시 사장님에 대해 아는 정보가 좀 있으세요?”직접 뵐 수 없다면 이름이라도 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허진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사장님께 관심이 생기셨나 봐요?”“네, 너무 신비로워서요. 도대체 어떤 분인지 궁금해요.”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허진호는 마침 커피 가루를 다 갈고 커피 향을 맡으며 말했다.“음, 향이 참 좋네요.”그러고는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한 잔 내려드릴까요?”“괜찮아요.”사장님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서 지금은 커피 마실 기분이 아니었다.그는 갈아놓은 커피 가루를 내게 내밀며 말했다.“이 커피, 사장님께서 보내주신 거예요. 한 번 맛보지 않겠어요?”“그분이 보내주신 커피를 마시는 것보다, 직접 만나 뵙는 게 더 좋겠는데요.”나는 솔직하게 말했다.허진호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미소가 왠지 모르게 이상하게 느껴졌다.“뭐가 그렇게 웃기세요? 제 부탁이 과한가요? 왜 웃으세요?”그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과한 건 아니에요. 사장님을 이렇게 궁금해하다니. 얼굴도 못 본 분한테 이리 관심을 가지다니. 우리 사장님 역시 대단하시네요.”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허진호가 장난스럽게 말을 돌리려는 건 알았지만 사장님에 대한 궁금증은 오히려 더 커졌다.그가 내게 커피를 건넸을 때, 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혹시 제가 괜한 마음을 품을까 걱정되신다면, 차라리 그분에 대한 기본 정보라도 알려주세요.”“그건 좀 어렵겠네요.”허진호는 예상대로 거절했다.나는 약간 비꼬듯이 물었다.“그럼 이유라도 설명해 주시죠.”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사장님께서 원치 않으신다네요.”“왜요?”나는 그가 계속 빙빙 돌려 말하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사장님이 본인 외모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서요. 사람들이 다 반할까 봐 그러시나 봐요.”그는 커피 향을 깊게 들이마시며 말했다.강유형 집안에서 상급 커피를 많이 접해본 터라 이 커피가 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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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6화

이소희의 다급한 목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무슨 일이에요? 진정하고 천천히 말해봐요.”“지금 누군가가 놀이공원에서 정우 씨에게 시비를 걸고 있어요. 몇 명인데 다들 무섭게 생겼어요.”이소희의 말을 듣고 긴장이 풀렸다. 큰일이 난 줄 알았는데 그냥 진정우에게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이소희는 많이 놀란 듯했지만 진정우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그 사람들이 벌써 정우 씨를 찾았어요?”“아직은 못 찾았지만 곧 올 것 같아요. 경찰을 불러야 할까요?” 이소희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일단 정우 씨에게 먼저 상황을 알리고 어떻게 할지 물어보세요. 본인이 판단해서 결정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진정우가 그들과 마주하게 된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의 판단을 따르기로 했다.“네, 그럼 그렇게 할게요. 언니, 올 거죠?”“당연히 가야죠.” 진정우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데 안 갈 수가 없었다.사실 강유형이 남긴 말도 마음에 걸렸다. 혹시 그가 회사를 위협하면서 진정우에게도 어떤 식으로 압박을 주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가방을 챙겨 나갈 준비를 하며 강유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허진호가 사무실 밖으로 나오며 내 가방을 보고 물었다.“어디 가시려고요, 윤 부장님?”나는 통화 연결음이 울리는 걸 확인하며 잠시 답하지 않았다.“윤 부장님, 대체 어디 가시나요?” 허진호가 다시 물었다.답하려던 순간, 강유형이 전화를 받았다.“왜, 이제 마음이 바뀐 건가?”“지금 놀이공원에 사람들 보냈어?”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그는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무슨 소리야? 내가 뭘 보냈다고? 무슨 얘긴지 모르겠는데.”그의 반응에 순간 당황했다. 내가 아는 한, 강유형은 자신의 행동을 숨기거나 부정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만약 진정우를 위협하려는 의도였다면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우를 찾은 사람들은 강유형과는 무관한 셈이다.“설마 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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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갑자기 오늘 아침 허진호가 말했던, 아니 정확히는 허진호가 사장님의 말씀이라고 전해줬던 그 말이 떠올랐다. 순간 진정우의 얼굴을 쳐다보았지만 내가 아는 그라면 사장님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았다.“허... 잘도 버티네.”대머리 남자는 비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네가 그렇게 버티는 대가를 보여주지.”그가 목을 한 번 비틀자 뼈마디가 우두둑 소리를 냈고 그의 신호에 부하들이 한꺼번에 놀이공원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정우는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가 가만히 있는 이유를 나는 알 것 같았다.그가 겁이 나서가 아니라 그들이 놀이공원을 망가뜨리는 순간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건 곧 강유형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순식간에 놀이공원 보안 요원들이 뛰어왔다. 그들이 진정우를 건드리는 것까지는 무시할 수 있었겠지만 공원을 훼손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그들의 임무는 놀이공원을 지키는 것이었으니까.위압적이던 그들도 보안 요원들의 수에 밀리기 시작했고 결국 제압당했다. 하지만 이들 역시 범상치 않은 상대들이었다. 마침내 그들 중 한 명이 칼을 꺼내 보안 요원 대장의 목에 겨누며 협박했다.“전부 손 떼! 안 그러면 이 자식 죽을 줄 알아!”뜻밖의 상황에 나는 보안 요원들에게 눈짓을 보내며 일단 물러나게 했다. 보안 요원들은 사람을 풀었지만 대머리 남자는 여전히 인질을 붙잡고 있었다. 그는 진정우를 보며 비웃었다.“왜 이렇게 고집이 센 거야? 난 이런 강한 놈들 골라서 부러뜨리는 걸 좋아하지. 지금 당장 무릎 꿇고 세 번 절하면 이 사람은 살려줄게. 안 그러면 바로 죽을 수도 있다고.”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말했다.“사람을 다치게 하는 건 안 돼요.”그러자 대머리 남자는 나를 바라보며 비열하게 웃었다.“어디서 온 미녀야? 그럼 차라리 네가 내 품에 안겨봐. 그러면 너도 이 사람도 안전하게 놔줄게.”이런 사람들에게는 헛소리도 수준에 맞춰 나온다는 말이 딱 맞았다. 그는 보안 요원을 끌고 나에게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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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8화

“무슨 일이야?”강유형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모든 걸 내려다보는 CEO의 태도였다. 조금 전 내게 투정을 부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여자가 변덕이 빠르다지만 남자도 만만치 않았다.얼굴이 하얗게 질린 보안 책임자가 다리가 후들거리는 와중에도 재빨리 달려와 상황을 보고했다.강유형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 진정우에게 시선을 돌렸다.“그러니까 이 사태가 정우 씨의 개인적인 일 때문에 생긴 건가요?”그 말을 듣고 나는 강유형이 진정우를 난처하게 만들려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진정우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강유형은 비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맞죠?”“맞습니다.”진정우는 부정하지 않았다.강유형은 바닥에서 부서진 물건 조각을 주워들었다.“정우 씨,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을까요?”“강 대표님은 어떻게 처리하시려는데요?”진정우는 그의 의도를 모를 리 없었다.나는 가만히 지켜봤다. 지금 내가 나서면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내가 없었다면 강유형이 이렇게까지 진정우를 곤란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성격상 오히려 진정우를 보호했을지도 모른다.어쨌든 여기는 KS 그룹의 영업장이고 부서진 것도 KS 그룹의 놀이공원이다. 이곳에서 난동을 부리는 건 강유형을 무시하는 행위나 다름없었다.강유형은 손에 든 조각을 내던지며 손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정우 씨의 개인적인 일부터 처리하시는 게 좋겠네요. 일이 해결될 때까지 이곳 일은 강 이사님께 맡기는 게 낫겠습니다.”나는 순간 깜짝 놀랐다. 강유형이 진정우의 업무를 중단시키려는 것이었다.지금 조명 조정은 거의 마무리 단계라 진정우가 없더라도 큰 차질은 없겠지만 강유형이 이렇게까지 하는 건 마치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격이었다.순간 아까 그 사람들이 혹시 강유형이 보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우를 쫓아낼 핑계를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저는 강 대표님의 직원이 아닙니다. 대표님은 이런 결정을 내릴 권한이 없어요.”진정우가 단호하게 말하자 강유형은 비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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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9화

강진혁은 상황을 파악한 듯 진정우를 바라보며 말했다.“정우 씨가 개인적인 문제로 업무를 방해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오늘의 일은 보안팀이 외부인 출입을 막지 못한 탓도 있으니 정우 씨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죠.”강유형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형인 강진혁이 이렇게까지 진정우를 두둔할 줄은 예상치 못한 것 같았다.“강 실장, 지금 이곳은 내가 관리하는 곳입니다. 여기 일은 제게 맡기세요.”강진혁의 말은 강유형이 관할 범위를 넘지 말라는 뜻이었다.강유형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형의 말을 억지로 삼키며 물러섰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진작 내쫓았을 것이다.“좋아요. 또 이런 일이 발생하면 강 이사님과 정우 씨가 함께 책임지게 될 겁니다.” 강유형은 이를 악물며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그가 멀어지자 나는 숨을 고르며 한숨을 내쉬었다.강진혁은 진정우를 향해 차분히 말했다.“이번 일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해 주세요. 그리고 오늘 손상된 시설은 제가 수리팀을 보내 복구하도록 하겠습니다. 수리 비용은 정우 씨 측에서 부담하는 걸로 하죠.”공과 사를 명확히 하는 그의 태도에 진정우는 묵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네. 알겠습니다.”강진혁 실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떠났다. 나에게 따로 말은 건네지 않았지만 나는 그가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강진혁은 나를 위해 강유형과 맞서 싸웠다. 그의 배려에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일이 마무리되었기에 나는 진정우를 한 번 바라보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놀이공원을 나가던 중 내 차 앞에 강유형의 차가 가로막으며 서더니 강유형은 차에서 내리며 다가와 내 차 문을 열고는 아무 말 없이 조수석에 올라탔다.“운전해.”나는 그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할 말 있으면 지금 해. 출근해야 해.”“운전하라고 했잖아!”그는 목소리를 높이며 셔츠 깃을 풀어 헤쳤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을 보고 더 이상 저항해 봐야 소용없을 것 같아 핸들을 잡았다.“그래.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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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0화

‘조나연이 기다린다고 내가 꼭 가야 해? 자신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나는 메시지를 무시했고 강유형은 내 휴대전화 화면에 나타난 알림을 보지도 않고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윤지원, 너 정말 나랑 끝낼 결심이야?”강유형은 눈이 충혈된 채로 물었다.몇 번이나 반복한 말이라 이제는 말하기도 지칠 지경이다. 나는 더 이상 답할 힘도 없어서 차라리 그에게 되물었다.“그럼 어떻게 해야 내가 진심인 걸 알겠어? 진정우랑 진짜로 혼인신고라도 해야 믿겠어?”그를 단념시키기 위해 진정우와 일부러 스킨십까지 했는데도 강유형은 아직도 내가 장난치는 줄로만 생각했다.“윤지원!”강유형은 이를 악물고 내 이름을 불렀다.예전엔 그가 이렇게 화를 내면 무서워했었는데 지금은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사람에 대한 마음이 이렇게 바뀔 수도 있구나 싶었다.나는 눈을 잠시 감았다가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강유형, 우리 사이는 정말 끝났어. 세상 모든 남자가 다 사라지고 너 혼자 남는다고 해도 나는 너와 다시는 함께하지 않을 거야.”내 말이 너무 잔인하고 모진 걸 알지만 나도 그의 집착에 지칠 대로 지쳤다.내 말에 그는 충격을 받은 듯 표정이 일그러졌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분노, 원망, 절망이 가득했다.“후회하지 마.”그가 나지막이 말했다.나는 핸들을 꽉 잡으며 답했다.“응, 후회하지 않아.”그러자 그가 갑자기 물었다.“내가 잘못되거나 큰 사고라도 나면, 그때는 후회할 거야?”그의 의도를 알 수 없어 고개를 돌려 보니 그의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건 내 잘못인 거 알아. 내가 너한테 상처 줬어. 그래서 지금이라도 내 잘못을 고치려고 하는 거야. 나도 여러 번 너에게 용서를 구했잖아. 그런데도 넌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네...”그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눈가가 촉촉해졌다.“정말 내가 무릎을 꿇고 빌어야 하겠어?”그는 정말로 후회하는 것 같았다.사실 나는 이미 그의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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