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Chapter 151 - Chapter 160

311 Chapters

제151화

마음속에 의문이 스쳤다. 막 말을 꺼내려는 찰나, 허진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크음! 윤 팀장, 왜 문틈에서 엿듣고 있었어요? 깜짝 놀랐네.”허진호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라는 걸 알았지만 나는 진지하게 대답했다.“오해하지 마세요. 엿들은 게 아니라 마침 찾아뵈려던 참이었어요.”“하하!”허진호는 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농담이에요.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다니.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어요?”그가 손짓으로 들어오라는 신호를 주자 나는 그의 사무실로 들어섰다.입사한 지 며칠 지났지만 그의 사무실에 들어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첫인상은 어딘가 자유롭고 독특했다. 허진호는 회사의 부대표였지만 대표가 회사 업무에 관여하지 않으니 사실상 최고 결정권자나 다름없었다. 보통 대표의 사무실이라면 차분하고 세련된 분위기여야 할 텐데 그의 사무실은 좀 달랐다.소파는 다채로운 색상이었고 디자인도 반달 모양의 곡선을 이루고 있었다. 방 안 곳곳에는 알록달록한 생화가 놓여 있었고 책상 위에는 귀여운 장식품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여성스러운 느낌이 강했다. 그가 부대표라는 걸 몰랐다면 사무실을 잘못 찾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어때요, 마음에 들어요?”허진호가 내 시선을 알아차리고 물었다.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였다. 사무실치고는 너무 가벼운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곳의 주인은 그였으니 그가 좋아하면 그만이었다.“대표님 사무실 스타일이 참 독특하시네요.”나는 약간의 아부를 섞어 말했다.허진호는 웃으며 나를 소파에 앉으라고 권했다.“나는 딱딱한 분위기는 싫더라고요. 형도 늘 그런 얘길 해요. 아, 그 형이 바로 대표예요. 방금 그와 통화 중이었는데, 지원 씨가 문 앞에 불쑥 나타나서 놀랐잖아요.”나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생각이 많았다. 그가 대표를 형이라고 부르는 걸 보니 둘의 관계가 예사롭지 않은 듯했다. 어쩐지 모든 걸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이유가 있겠지.“다음엔 조심할게요.”나는 겸손하게 말했다.“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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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2화

“아니에요, 아니에요. 대표님은 모두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하시는 게 아니라, 오직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사랑받기를 원하죠.”회사를 떠날 때도 허진호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왠지 그 대표님이 어떤 생김새일지 궁금해졌다.그런데 이상한 건 회사 자료에 대표님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혹시 숨겨야 할 뭔가가 있는 걸까? 아니면 마치 재벌 소설에 나오는 캐릭터처럼 극도로 신비주의를 유지해서 사진도 안 찍고 이름도 숨기는 타입일까?문방사우를 파는 명품 가게인 ‘영보각’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온통 대표님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득 차 있었다.차에서 내리기 전, 나는 진정우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바쁜가 싶어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저녁에 산책할래요? 시간 괜찮으면 알려줘요.”전화를 받지 않는 걸 보면 메시지도 곧바로 확인하지 않겠지 싶어, 메시지를 보낸 뒤 차에서 내려 영보각 안으로 들어갔다.“윤 팀장님, 오셨군요!”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주인이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나는 이곳의 단골로, 매년 여기서 비싼 가격에 특별한 문구 세트를 주문하곤 했다.삼촌은 서예와 그림을 좋아해서 매년 이 문구를 많이 사용하셨으니, 이번에도 그분께 드리기에 딱 맞는 선물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사장님, 올해도 좋은 신상품이 나왔나요?”나는 평소처럼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물건을 둘러보았다.“네, 여기 진열된 건 신경 쓰지 마세요. 아무리 봐도 마음에 안 드실 테니까요. 좋은 건 이쪽에 따로 있습니다.”그는 나를 한쪽 진열대로 안내했다.나는 가게를 한 바퀴 돌아보고 사장님이 말한 진열대 앞에 섰다. 그리고 한눈에 한 세트를 보고 마음이 끌렸다. 짙은 초록빛이 도는 고급스러운 문구 세트였다.“이거 좀 보여주세요.”“물론이죠.” 사장님은 세트를 조심스럽게 꺼내며 말했다.“이건 올해 신제품이라 이제 막 입고된 겁니다.”어떻게 보면 내 안목을 칭찬해 주는 듯했다.나는 그 문구 세트를 꼼꼼히 살폈다. 재질이나 공예가 모두 뛰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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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3화

문방사우는 집집마다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서 처음엔 조나연도 삼촌에게 드릴 선물을 사러 온 건가 싶었다. 며칠 전, 강유형이 조나연과 회사에서 손을 끊고 더는 얽히지 않겠다고 굳게 약속했던 걸 생각하니 그가 삼촌의 생일에 그녀를 데리고 가려 한다는 건 뜻밖이었다. 그의 말을 믿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조나연은 사장님이 가져온 문구 세트를 꼼꼼하게 살피며 꽤 아는 척하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나를 보지 못했고 나 역시 그녀와 엮이고 싶지 않아서 못 본 척 돌아서서 내 선물을 고르기로 했다.“사장님, 정말 이게 제일 좋은 거 맞죠? 아주 중요한 분께 드리는 거라서 실망시키지 말아주세요.” 조나연이 사장님에게 물었다.“나연 씨가 말씀하시는 ‘제일 좋은’ 것에는 기준이 없죠. 최고가 있다면 그보다 나은 것도 있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제가 약속하건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고 주시는 분의 품격을 살릴 겁니다.” 사장님은 장사를 잘 아시는 분이었다.“그렇군요. 그래도 그날 제가 주는 게 제일 좋아 보였으면 해요.” 조나연의 말에서 그가 선물할 사람을 꽤 신경 쓰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해동에서 이 문방사우라면 저희 가게를 능가할 곳이 없습니다. 나연 씨께서 고르신 이 세트도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겁니다. 선물을 받는 분이 나연 씨의 정성을 느끼실 겁니다.” 사장님이 말하며 웃었다.“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사실 이 선물은 제 미래의 시아버지께 드리는 거거든요.”그 말을 듣고 나는 움찔했다. 그녀가 강유형과 진지하게 교제하는 건가? 그렇다면 왜 강유형은 아직도 내가 다니는 회사를 압박하는 걸까? 참으로 이기적이다 싶었다.나는 속으로 고개를 저으며 선물을 고르려 했지만, 진열된 물건들은 눈에 차지 않았다. 조금 실망하고 있던 찰나, 진열장 아래 구석에 놓인 문구 세트가 눈에 들어왔다. 별다른 고민 없이 입을 열었다.“사장님, 이거 좀 보여주세요.”“고르신 거 마음대로 꺼내 보세요.” 사장님은 나를 편하게 대했다.궁금해서 서둘러 진열장을 열고 문구 세트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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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화

계산을 마치고 있을 때, 진정우에게서 전화가 왔다.“방금 바빠서 이제야 메시지를 봤어요.”진정우가 먼저 사과했다.“괜찮아요. 지금 시간 괜찮으세요?”진정우가 “몇 시쯤?” 하고 묻자, 나는 잠시 생각했다. 여섯 시에 가면 저녁 식사 시간이어서 삼촌과 아줌마가 저녁을 함께 하자고 할 게 뻔했다. 나는 괜찮지만 진정우는 좀 불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일곱 시 반이요.”이때쯤이면 식사를 마쳤을 시간이었다.“좋아요. 제가 일곱 시에 데리러 갈게요.”나는 웃으며 대답했다.“저를 어떻게 데리러 오실 건데요? 자전거라도 타고?”그냥 재미로 한 말이었는데 진정우가 아무 대답이 없자 내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켰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아,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나는 서둘러 해명했다.“제가 데리러 갈게요. 미리 집으로 돌아갈 테니 그때 같이 가면 될 것 같네요. 혹시 선물 준비해야 할 것도 있나요?”“아니요, 제가 준비했어요.”전화를 끊고 고개를 들어보니, 조나연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조나연은 나를 볼 때마다 어딘가 부러워하거나 질투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나는 그녀와 할 말이 없어서 물건을 챙겨 나왔다.나는 집으로 가지 않고 바로 남성복 매장으로 향했다. 오늘 진정우와 함께 가야 하니 평소 입던 옷으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에게 옷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와 함께 연기를 해주기로 한 만큼 옷 한 벌쯤은 맞춰주는 게 예의였다.저녁 여섯 시에 간단히 식사를 하고 진정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이소희의 전화를 받았다.“언니, 오늘 저녁 시간 괜찮으세요? 같이 얘기 좀 하고 싶어요.”마침 오늘은 시간이 없었다.“무슨 일이에요? 전화로 말해도 돼요. 오늘은 삼촌 댁에 가야 하거든요.”나는 솔직히 말했다.“그렇구나, 아쉽네요.”이소희의 목소리에는 실망이 가득했다.나는 탁자 위에 놓인 사과를 베어 물며 말했다.“다음에 밥 한 번 살게요.”“안 먹어요. 언니, 요즘 진짜 화가 나요. 원래는 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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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5화

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도대체 누구 아이인지 본인이 제일 잘 알겠죠. 정말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시든가요.”이소희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제가 그런 쓸데없는 짓 할 시간은 없어요. 그 시간에 차라리 정우 씨에게 신경을 더 쓰겠어요.”이소희가 진정우를 언급하자 그가 아직 오지 도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벽에 걸린 시계를 슬쩍 보며 돌려 물었다.“지금 저랑 얘기하는 거 퇴근하고 하는 거예요? 아니면 또 핑계 대고 화장실에 가서 전화하는 거예요?”“언니, 제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요? 정우 씨, 요즘 완전 인간미 넘쳐요. 오늘도 평소보다 더 일찍 퇴근하셨다니까요.”“그래요? 퇴근한 지 얼마나 됐는데요?”“한 30분? 저 지금 벌써 집 소파에 누워 있어요.”이소희의 말을 듣고 진정우가 올 때가 됐다고 생각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혹시 오는 길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싶었다.“요즘 이렇게 일찍 퇴근하고 밤에도 야근 안 하면 공사를 제때 끝낼 수 있어요?” 내가 걱정스레 물었다.이소희가 뭔가를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정우 씨가 괜찮다고 하셨어요.”“정말 괜찮아 보이세요? 괜히 믿었다가 시간 못 맞추면 소희 씨만 손해잖아요. 보너스 깎이면 어쩌려고요.”이소희가 가볍게 기침을 하더니 말했다.“괜찮을 거예요. 이제 D구역까지 작업이 진행됐고 요즘 진짜 순조롭게 가고 있어요. 문제도 거의 없고 출근해서 일만 하면 되니까요.”이소희는 말을 끝내며 혀를 찼다.“언니, 신기한 게요. 언니가 여기 있을 때는 매일같이 문제가 생겨서 정우 씨 방을 들락거렸는데 언니 나가고 나서는 그런 일도 없어졌어요. 덕분에 정우 씨 방에 갈 일도 줄어들어서 아쉽네요. 차라리 문제라도 좀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럼 가서... 호호호...”이소희가 또 이상한 상상을 하는 걸 눈치채고 나는 바로 말을 잘랐다.“아마 제가 진정우 씨랑 사주가 안 맞아서 그랬을 거예요. 같이 일할 때마다 이상하게 문제가 생기더니 제가 떠나고 나니까 다 잘 풀리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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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화

나는 진정우의 목욕 후 모습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허리에만 수건을 두른 채로 상체도, 하체도 드러나고 겨우 가운데만 가린 모습이었다. 진정우 역시 나처럼 놀란 듯했는데 내가 갑자기 들어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의 살짝 붉어진 구릿빛 피부가 눈에 들어왔다.잠시 동안 우리 둘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그러다 진정우가 먼저 반응하며 침실로 들어갔고 그제야 나도 겨우 몸이 움직였다. 나는 긴장해서 두어 번 침을 삼켰다.그때야 내 얼굴이 뜨거워졌다는 걸 깨달았다. 진정우가 들어간 침실 문을 바라보며, 아마 옷을 갈아입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그를 위해 산 옷이 떠올라 말했다.“정우 씨, 잠깐만 옷 입지 말고 기다려요.”말을 내뱉고 돌아서는데 순간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닫고 당황했다. 옷 입지 말고 기다려 달라니...이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을까?그냥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후회해도 이미 늦었기에 얼른 방으로 가서 옷을 챙긴 뒤 다시 진정우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침실 문 앞에 도착해 두 번 노크했다.“제가 산 옷이에요. 문 앞에 둘 테니 이걸 입는 게 나을 거예요.”굳이 방금 말을 해명하지 않았다. 그러면 더 민망해질 테니까. 말이 끝나자마자 가방을 내려놓으려 했는데 침실 문이 휙 열리며 이미 옷을 갖춰 입은 진정우가 나타났다.흰 셔츠에 검정 슬랙스, 넥타이는 매지 않았고 두 개의 단추가 풀려 있어 딱딱하지 않으면서도 격식 있는 느낌을 풍겼다.이렇게 차려입은 그의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평소 그의 피부가 까무잡잡해서 이런 옷이 어울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에, 나는 조금 더 캐주얼한 옷을 사준 것이었다.하지만 지금의 진정우는 그런 내 생각이 틀렸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는 깔끔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마치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람이 된 듯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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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화

“혹시라도 급하면 찾으러 올 줄 알고 일부러 문을 열어뒀어요.” 진정우는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나는 별생각 없이 물었다.“그래서 수건 하나만 두르고 나온 것도 일부러예요?”진정우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아니에요, 핸드폰 소리가 들려서 받으려고 나왔을 뿐이에요. 이렇게 타이밍이 맞을 줄은 몰랐죠.”그래, 참 묘하게 맞아떨어진 타이밍이었다. 그래도 그의 몸이 훌륭하니 눈이 즐거웠달까.삼촌 집으로 가는 길에 진정우는 아무 말이 없었다. 혹시 긴장한 건가 싶어 내가 말을 걸었다.“가서 그냥 인사만 잘하면 돼요. 나머지 질문은 제가 다 답할게요.”진정우는 “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강유형이 만약 뭐 불편한 말을 하거나 일부러 괴롭히려 하면 너무 예의 차리지 마세요.”그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지는 말을 맞춰둬야 할 것 같아요. 청평에서 처음 만났고 당신이 저한테 관심 있어서 청평까지 찾아왔다고 하면 될 것 같아요.”그 얘기를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이때 진정우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실수 없을 겁니다.”“네?” 나는 그 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잠시 후에야 그의 말을 깨달았다.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우리 둘은 그저 침묵 속에 있었다.하지만 그 침묵이 묘하게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었고 나도 모르게 긴장한 탓에 운전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갑자기 앞차가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거의 들이받을 뻔했다.그 순간, 진정우가 재빨리 핸들을 잡아 45도 각도로 방향을 틀어주면서 겨우 추돌을 피할 수 있었다.차가 멈춘 후에도 나는 아직 정신이 없었다. 그의 빠른 반응이 너무 놀라워 현실감이 없을 정도였다.“운전할 때는 좀 더 집중하세요. 사고는 그렇다 쳐도 다치면 어떡하려고요?” 진정우가 한마디 했다. 앞차가 출발하자 차를 바르게 돌려놓고 핸들을 나에게 넘겼다.운전한 지 3년이나 됐는데도, 나는 그의 앞에서 초보처럼 느껴졌다.한참 후에야 진정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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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8화

나는 아무 말 없이 멍하니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진정우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울 텐데 괜히 잘못된 반응을 보여 그를 더 슬프게 할까 봐 말을 삼켰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부모님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 부모님의 사고는 단순한 사고였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당시 나는 너무 어렸고 사고 이후 모든 일은 강두식 삼촌이 처리해 주셨다. 아마 삼촌만이 진실을 알고 계실지도 모른다. 조금 후에 그를 만나면 그 이야기를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진정우도 내가 말이 없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삼촌 집에 도착하자마자 얼굴 인식으로 문이 열렸다. 마당에 있던 장 집사가 나를 보고 반갑게 맞이했다.“아가씨, 오셨네요! 곧바로 어르신과 사모님께 알려 드릴게요.”“괜찮아요. 제가 직접 들어갈게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장 집사는 차에서 내린 진정우를 흥미롭게 쳐다봤다. 그의 정체가 궁금한 듯해서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팔을 끌어안았다.“제 남자 친구, 진정우예요.”장 집사는 단순한 집사가 아니라, 삼촌 댁에서 나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보냈고 김희연 아줌마와도 가까운 사이였다. 그러니 장 집사 앞이라고 해도 연기를 소홀히 할 수 없었다.진정우는 장 집사를 향해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장 집사님.”“아이고...” 장 집사는 그를 바라보며 어딘가 석연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나와 강유형의 혼약이 정해진 사이로 보이는 상황에서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모습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장 집사가 이런 반응이라면, 조금 후 삼촌과 아줌마는 더 큰 충격을 받겠지.나는 진정우와 팔짱을 낀 채 장 집사를 지나 거실로 향했다. 아직 문에 들어서기도 전에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삼촌을 꾸짖는 중이었다.“회장이라는 사람이 회사에서 몇천 명씩 다스리면서도 자기 아들 하나 제대로 말을 듣게 하지 못하잖아!”삼촌은 대답 없이 스마트폰이나 잡지를 보고 계신 것 같았다. 일부러 못 들은 척하는 걸까?“강두식! 또 못 들은 척하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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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화

하지만 아줌마는 믿지 않는다는 듯, 다시 삼촌을 한 대 때리며 말했다."지원이를 핑계로 나를 달래려 하지 마. 안 속아."“아줌마!” 내가 부르자 아줌마가 몸을 살짝 떨며 고개를 돌렸다. 나를 보자마자 눈에 기쁨이 번졌지만 곧 삼촌과 다정한 모습을 내가 목격했음을 깨달은 듯 얼굴이 붉어졌다.아줌마는 삼촌의 손을 재빨리 떨쳐내며 내게 다가왔다.“지원아, 왔구나! 밥은 먹었어? 내가 장 집사한테 준비하라고 할까?”“이미 먹었어요.” 거짓말이었다. 사실 먹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진정우가 식사를 했는지도 묻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넌 왜 집에 와서 먹지 않고 나가서 먹어?” 아줌마는 나에게만 투덜대면서도 진정우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일부러 못 본 척하는 것이었다. 진정우에게 말 걸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아줌마는 이렇게 자신의 방식으로 진정우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내고 있었다.하지만 상류층 가문의 사모님답게, 약간의 침묵 후에는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지원이 친구인가 보네?”나는 슬쩍 진정우의 팔을 쥐었다. 그도 상황을 파악한 듯 정중하게 말했다.“안녕하세요.”아줌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지원의 친구라면 외부인은 아니네. 어서 들어와.”삼촌도 자리에서 일어나자 나는 준비해 온 선물을 두 손으로 내밀었다.“삼촌, 미리 생신 축하드려요.”“역시 우리 지원이! 늘 이렇게 마음 써주니 고맙구나.” 삼촌은 기쁜 얼굴로 선물을 받으며 진정우를 바라봤다.“안녕하세요, 삼촌.” 진정우도 인사를 건넸다.삼촌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권하자 아줌마는 장 집사에게 차와 과일을 준비하라고 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나와 진정우를 한참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선물만 주고 그날에 안 오면 곤란해. 네 삼촌과 난 그런 거 허락 못 해.”아줌마는 내 의도를 꿰뚫어 본 듯, 단호하게 내 계획을 차단했다. 나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걱정 마세요. 그날 정우 씨와 함께 올 거예요.”그러자 아줌마의 얼굴이 잠시 굳어지더니, 이내 억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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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화

진정우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그의 손이 내 손을 더 단단히 감싸 쥐는 게 느껴졌다. 그 순간, 마치 내 심장의 멎는 것 같았다. 설렘의 극치가 있으면 바로 이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저는 지원이에게 제 모든 걸 줄 겁니다. 제 생명처럼 사랑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그녀를 지킬 거예요.” 진정우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깊고 고요한 눈동자에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는 듯했다.'바다처럼 깊은 사랑'이란 말이 바로 이럴 때 쓰는 걸까? 연기임을 알면서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진정우가 진심을 담아 고백하고 있는 것 같았다.정말 대단한 남자다. 연기라는 핑계로 내 마음을 흔들다니.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그의 손을 맞잡으려다가, 왠지 그가 얄미워져서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살짝 꼬집었다. 평소 고지식한 그가 이런 행동을 불편해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내 손에 얼굴을 비비며 장난스럽게 굴었다.‘진짜 뻔뻔하네. 이런 사람도 있구나.’ 싶었지만 어딘가 귀여운 구석이 있긴 했다.진정우는 내 손을 살짝 놓고 삼촌과 아줌마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삼촌께서 아줌마를 평생 사랑하시듯 저도 평생 지원이를 사랑할 겁니다.”앞부분은 내게 하는 고백이었다면, 뒷부분은 아줌마를 겨냥한 반격이었다.아줌마의 얼굴이 살짝 굳는 게 보였다. 진정우의 말을 듣고 더는 뭐라 말할 수 없었던 듯했다. 그때까지 침묵하던 삼촌이 입을 열었다.“정우 씨는 아줌마와 얘기 좀 나누고 너는 나랑 서재에 잠깐 가자.”삼촌은 진정우를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재로 걸음을 옮겼다. 삼촌이 나를 부른 이유를 짐작하면서도 살짝 긴장된 마음으로 그를 따라갔다.서재에 들어가자 삼촌은 내가 가져온 선물 상자를 내게 건네며 말했다.“지원아, 네가 사 온 새 먹과 붓으로 나랑 같이 글을 써 보자.”오랜만에 삼촌과 함께 글을 쓰게 된 거였다. 적어도 3년은 된 일이다. 그때 아줌마는 아들이 크면 엄마와 서먹해지고 딸이 크면 아빠와 서먹해진다고 했다. 게다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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