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173화

작가: 꽃길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 업무에 빨리 익숙해지고 싶어서요.”

“그래도 너무 일찍 나오신 거 아니에요? 회사에서 추가 수당 안 주는 거 아시죠?”

허진호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나는 가볍게 미소 지었다.

“제가 자발적으로 하는 겁니다.”

“그래서 윤 부장님이 이 자리까지 오신 거겠죠. 모두가 부장님처럼 열심히 하면 우리 회사도 금방 대박 나겠어요.”

허진호의 지나친 칭찬에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났다.

그는 항상 이렇게 말에 진심과 농담을 섞어서 사람을 헷갈리게 한다. 나는 이런 말에 진지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농담이 아니라, 회사 발전이 한 사람에게만 의존할 수는 없어요. 윤 부장님의 노력은 저도 충분히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표님께도 말씀드렸어요. 부장님이 너무 무리하셔서 건강을 해치기라도 하면 회사로서는 큰 손실이라고요. 앞으로는 좀 더 건강에 신경 쓰라고 하셨어요.”

허진호는 아예 내가 일찍 출근할 핑계마저 막아버렸다. 그래도 뭐, 오히려 잘 됐다. 이제 더는 진정우를 피해 다닐 필요도 없으니까.

진정우는 요 며칠 아침 식사를 문 앞에 두지 않았다. 내 뜻을 알았는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한 것 같다.

“듣기로는 오늘 고객이 오신다면서요? 게다가 꽤 큰 계약이라던데?”

허진호가 화제를 돌렸다.

“네, 10시에 오기로 했어요. 한 시간 정도 남았네요.”

나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저는 이제 준비하러 가봐야 해서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좋아요. 윤 부장님, 오늘도 좋은 결과 기대하겠습니다.”

허진호는 커피잔을 들어 올리며 나를 응원했다.

나는 사무실로 돌아와 준비한 자료를 다시 한번 점검하고 9시 50분쯤 미리 회의실에 들어가 준비 상태를 확인했다.

오늘 만날 분은 정말 중요한 고객이었다. 이 계약을 성사할 수만 있다면 며칠 전 강유형이 빼앗아 간 고객으로 생긴 손해를 충분히 만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성과를 몇 단계 더 끌어올릴 기회였다.

10시 정각, 고객이 도착했다.

그런데 그가 회의실로 들어오는 순간, 나는 표정이 굳어졌다.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관련 챕터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174화

    우리 회사 사장은 마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모든 걸 알고 있는 신비한 인물 같았다.강유형은 내게 쏟아붓던 분노를 허진호에게 돌리며 소리쳤다.“안 한다고? 네가 지금 누구랑 얘기하는지 알고는 하는 소리야? 내가 누군지 알아?”지금 강유형은 무례하고 돈만 많은 졸부같았다.허진호는 물컵을 들고 무표정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사장님께서 당신이 누군지 알아서 이 거래를 안 하신다고 하셨습니다.”그는 짧은 말로도 강유형을 제대로 자극했다.강유형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네 사장 누구야? 해동에서 발붙이고 살기 싫단 거야?”“네, 사장님께서 말씀하시길 해동에서 장사를 안 해도 되니까 당신과는 협력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허진호의 말투는 차분하면서도 단호했다.강유형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좋아, 두고 보자고. 네 사장한테도 전해.”“알겠습니다. 사장님께서도 강 대표님께 전하라 하셨습니다. 언제든 환영한다고요.”허진호의 말이 강유형을 완전히 자극했다.그러자 강유형의 이마에 핏줄이 불거졌다. 나는 그가 허진호에게 주먹이라도 날릴까 봐 걱정이 될 정도였다.하지만 강유형은 이를 꽉 물고 몇 초간 허진호를 노려보다가 나를 향해 돌아섰다.“네가 이렇게 버티면 결국 다른 사람들만 피해를 보는 거 알지? 오늘 나와 함께 가면 좋게 끝나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 회사가 네 고집 때문에 피해를 보게 될 거야.”강유형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도 소용없자 협박하기 시작했다. 비록 나는 그의 집에서 자란 사람이긴 해도, 우리 부모님이 물려주신 고집은 쉽게 꺾을 수 없는 것이었다. 만약 내가 쉽게 겁을 먹었다면, 우리가 이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만약 네가 그렇게 한다면 우리 사이의 마지막 정까지 스스로 짓밟는 거야.”“네가 날 버린 마당에 무슨 정 타령이야?”그는 화가 나서 욕설을 내뱉었다.더 이상 그와 말다툼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회사 사람들에게 소문이 나길 원하지도 않았다. 나는 냉정하게 말했다.“강 대표님, 이제 그만 가세요.”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175화

    “부대표님, 혹시 사장님에 대해 아는 정보가 좀 있으세요?”직접 뵐 수 없다면 이름이라도 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허진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사장님께 관심이 생기셨나 봐요?”“네, 너무 신비로워서요. 도대체 어떤 분인지 궁금해요.”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허진호는 마침 커피 가루를 다 갈고 커피 향을 맡으며 말했다.“음, 향이 참 좋네요.”그러고는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한 잔 내려드릴까요?”“괜찮아요.”사장님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서 지금은 커피 마실 기분이 아니었다.그는 갈아놓은 커피 가루를 내게 내밀며 말했다.“이 커피, 사장님께서 보내주신 거예요. 한 번 맛보지 않겠어요?”“그분이 보내주신 커피를 마시는 것보다, 직접 만나 뵙는 게 더 좋겠는데요.”나는 솔직하게 말했다.허진호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미소가 왠지 모르게 이상하게 느껴졌다.“뭐가 그렇게 웃기세요? 제 부탁이 과한가요? 왜 웃으세요?”그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과한 건 아니에요. 사장님을 이렇게 궁금해하다니. 얼굴도 못 본 분한테 이리 관심을 가지다니. 우리 사장님 역시 대단하시네요.”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허진호가 장난스럽게 말을 돌리려는 건 알았지만 사장님에 대한 궁금증은 오히려 더 커졌다.그가 내게 커피를 건넸을 때, 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혹시 제가 괜한 마음을 품을까 걱정되신다면, 차라리 그분에 대한 기본 정보라도 알려주세요.”“그건 좀 어렵겠네요.”허진호는 예상대로 거절했다.나는 약간 비꼬듯이 물었다.“그럼 이유라도 설명해 주시죠.”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사장님께서 원치 않으신다네요.”“왜요?”나는 그가 계속 빙빙 돌려 말하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사장님이 본인 외모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서요. 사람들이 다 반할까 봐 그러시나 봐요.”그는 커피 향을 깊게 들이마시며 말했다.강유형 집안에서 상급 커피를 많이 접해본 터라 이 커피가 꽤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176화

    이소희의 다급한 목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무슨 일이에요? 진정하고 천천히 말해봐요.”“지금 누군가가 놀이공원에서 정우 씨에게 시비를 걸고 있어요. 몇 명인데 다들 무섭게 생겼어요.”이소희의 말을 듣고 긴장이 풀렸다. 큰일이 난 줄 알았는데 그냥 진정우에게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이소희는 많이 놀란 듯했지만 진정우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그 사람들이 벌써 정우 씨를 찾았어요?”“아직은 못 찾았지만 곧 올 것 같아요. 경찰을 불러야 할까요?” 이소희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일단 정우 씨에게 먼저 상황을 알리고 어떻게 할지 물어보세요. 본인이 판단해서 결정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진정우가 그들과 마주하게 된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의 판단을 따르기로 했다.“네, 그럼 그렇게 할게요. 언니, 올 거죠?”“당연히 가야죠.” 진정우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데 안 갈 수가 없었다.사실 강유형이 남긴 말도 마음에 걸렸다. 혹시 그가 회사를 위협하면서 진정우에게도 어떤 식으로 압박을 주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가방을 챙겨 나갈 준비를 하며 강유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허진호가 사무실 밖으로 나오며 내 가방을 보고 물었다.“어디 가시려고요, 윤 부장님?”나는 통화 연결음이 울리는 걸 확인하며 잠시 답하지 않았다.“윤 부장님, 대체 어디 가시나요?” 허진호가 다시 물었다.답하려던 순간, 강유형이 전화를 받았다.“왜, 이제 마음이 바뀐 건가?”“지금 놀이공원에 사람들 보냈어?”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그는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무슨 소리야? 내가 뭘 보냈다고? 무슨 얘긴지 모르겠는데.”그의 반응에 순간 당황했다. 내가 아는 한, 강유형은 자신의 행동을 숨기거나 부정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만약 진정우를 위협하려는 의도였다면 굳이 숨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우를 찾은 사람들은 강유형과는 무관한 셈이다.“설마 나한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177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갑자기 오늘 아침 허진호가 말했던, 아니 정확히는 허진호가 사장님의 말씀이라고 전해줬던 그 말이 떠올랐다. 순간 진정우의 얼굴을 쳐다보았지만 내가 아는 그라면 사장님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았다.“허... 잘도 버티네.”대머리 남자는 비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네가 그렇게 버티는 대가를 보여주지.”그가 목을 한 번 비틀자 뼈마디가 우두둑 소리를 냈고 그의 신호에 부하들이 한꺼번에 놀이공원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정우는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가 가만히 있는 이유를 나는 알 것 같았다.그가 겁이 나서가 아니라 그들이 놀이공원을 망가뜨리는 순간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건 곧 강유형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순식간에 놀이공원 보안 요원들이 뛰어왔다. 그들이 진정우를 건드리는 것까지는 무시할 수 있었겠지만 공원을 훼손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그들의 임무는 놀이공원을 지키는 것이었으니까.위압적이던 그들도 보안 요원들의 수에 밀리기 시작했고 결국 제압당했다. 하지만 이들 역시 범상치 않은 상대들이었다. 마침내 그들 중 한 명이 칼을 꺼내 보안 요원 대장의 목에 겨누며 협박했다.“전부 손 떼! 안 그러면 이 자식 죽을 줄 알아!”뜻밖의 상황에 나는 보안 요원들에게 눈짓을 보내며 일단 물러나게 했다. 보안 요원들은 사람을 풀었지만 대머리 남자는 여전히 인질을 붙잡고 있었다. 그는 진정우를 보며 비웃었다.“왜 이렇게 고집이 센 거야? 난 이런 강한 놈들 골라서 부러뜨리는 걸 좋아하지. 지금 당장 무릎 꿇고 세 번 절하면 이 사람은 살려줄게. 안 그러면 바로 죽을 수도 있다고.”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말했다.“사람을 다치게 하는 건 안 돼요.”그러자 대머리 남자는 나를 바라보며 비열하게 웃었다.“어디서 온 미녀야? 그럼 차라리 네가 내 품에 안겨봐. 그러면 너도 이 사람도 안전하게 놔줄게.”이런 사람들에게는 헛소리도 수준에 맞춰 나온다는 말이 딱 맞았다. 그는 보안 요원을 끌고 나에게 다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178화

    “무슨 일이야?”강유형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모든 걸 내려다보는 CEO의 태도였다. 조금 전 내게 투정을 부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여자가 변덕이 빠르다지만 남자도 만만치 않았다.얼굴이 하얗게 질린 보안 책임자가 다리가 후들거리는 와중에도 재빨리 달려와 상황을 보고했다.강유형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 진정우에게 시선을 돌렸다.“그러니까 이 사태가 정우 씨의 개인적인 일 때문에 생긴 건가요?”그 말을 듣고 나는 강유형이 진정우를 난처하게 만들려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진정우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강유형은 비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맞죠?”“맞습니다.”진정우는 부정하지 않았다.강유형은 바닥에서 부서진 물건 조각을 주워들었다.“정우 씨,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을까요?”“강 대표님은 어떻게 처리하시려는데요?”진정우는 그의 의도를 모를 리 없었다.나는 가만히 지켜봤다. 지금 내가 나서면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내가 없었다면 강유형이 이렇게까지 진정우를 곤란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성격상 오히려 진정우를 보호했을지도 모른다.어쨌든 여기는 KS 그룹의 영업장이고 부서진 것도 KS 그룹의 놀이공원이다. 이곳에서 난동을 부리는 건 강유형을 무시하는 행위나 다름없었다.강유형은 손에 든 조각을 내던지며 손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정우 씨의 개인적인 일부터 처리하시는 게 좋겠네요. 일이 해결될 때까지 이곳 일은 강 이사님께 맡기는 게 낫겠습니다.”나는 순간 깜짝 놀랐다. 강유형이 진정우의 업무를 중단시키려는 것이었다.지금 조명 조정은 거의 마무리 단계라 진정우가 없더라도 큰 차질은 없겠지만 강유형이 이렇게까지 하는 건 마치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격이었다.순간 아까 그 사람들이 혹시 강유형이 보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우를 쫓아낼 핑계를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저는 강 대표님의 직원이 아닙니다. 대표님은 이런 결정을 내릴 권한이 없어요.”진정우가 단호하게 말하자 강유형은 비웃으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179화

    강진혁은 상황을 파악한 듯 진정우를 바라보며 말했다.“정우 씨가 개인적인 문제로 업무를 방해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오늘의 일은 보안팀이 외부인 출입을 막지 못한 탓도 있으니 정우 씨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죠.”강유형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형인 강진혁이 이렇게까지 진정우를 두둔할 줄은 예상치 못한 것 같았다.“강 실장, 지금 이곳은 내가 관리하는 곳입니다. 여기 일은 제게 맡기세요.”강진혁의 말은 강유형이 관할 범위를 넘지 말라는 뜻이었다.강유형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형의 말을 억지로 삼키며 물러섰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진작 내쫓았을 것이다.“좋아요. 또 이런 일이 발생하면 강 이사님과 정우 씨가 함께 책임지게 될 겁니다.” 강유형은 이를 악물며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그가 멀어지자 나는 숨을 고르며 한숨을 내쉬었다.강진혁은 진정우를 향해 차분히 말했다.“이번 일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해 주세요. 그리고 오늘 손상된 시설은 제가 수리팀을 보내 복구하도록 하겠습니다. 수리 비용은 정우 씨 측에서 부담하는 걸로 하죠.”공과 사를 명확히 하는 그의 태도에 진정우는 묵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네. 알겠습니다.”강진혁 실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떠났다. 나에게 따로 말은 건네지 않았지만 나는 그가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강진혁은 나를 위해 강유형과 맞서 싸웠다. 그의 배려에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일이 마무리되었기에 나는 진정우를 한 번 바라보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놀이공원을 나가던 중 내 차 앞에 강유형의 차가 가로막으며 서더니 강유형은 차에서 내리며 다가와 내 차 문을 열고는 아무 말 없이 조수석에 올라탔다.“운전해.”나는 그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할 말 있으면 지금 해. 출근해야 해.”“운전하라고 했잖아!”그는 목소리를 높이며 셔츠 깃을 풀어 헤쳤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을 보고 더 이상 저항해 봐야 소용없을 것 같아 핸들을 잡았다.“그래. 어디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180화

    ‘조나연이 기다린다고 내가 꼭 가야 해? 자신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나는 메시지를 무시했고 강유형은 내 휴대전화 화면에 나타난 알림을 보지도 않고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윤지원, 너 정말 나랑 끝낼 결심이야?”강유형은 눈이 충혈된 채로 물었다.몇 번이나 반복한 말이라 이제는 말하기도 지칠 지경이다. 나는 더 이상 답할 힘도 없어서 차라리 그에게 되물었다.“그럼 어떻게 해야 내가 진심인 걸 알겠어? 진정우랑 진짜로 혼인신고라도 해야 믿겠어?”그를 단념시키기 위해 진정우와 일부러 스킨십까지 했는데도 강유형은 아직도 내가 장난치는 줄로만 생각했다.“윤지원!”강유형은 이를 악물고 내 이름을 불렀다.예전엔 그가 이렇게 화를 내면 무서워했었는데 지금은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사람에 대한 마음이 이렇게 바뀔 수도 있구나 싶었다.나는 눈을 잠시 감았다가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강유형, 우리 사이는 정말 끝났어. 세상 모든 남자가 다 사라지고 너 혼자 남는다고 해도 나는 너와 다시는 함께하지 않을 거야.”내 말이 너무 잔인하고 모진 걸 알지만 나도 그의 집착에 지칠 대로 지쳤다.내 말에 그는 충격을 받은 듯 표정이 일그러졌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분노, 원망, 절망이 가득했다.“후회하지 마.”그가 나지막이 말했다.나는 핸들을 꽉 잡으며 답했다.“응, 후회하지 않아.”그러자 그가 갑자기 물었다.“내가 잘못되거나 큰 사고라도 나면, 그때는 후회할 거야?”그의 의도를 알 수 없어 고개를 돌려 보니 그의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건 내 잘못인 거 알아. 내가 너한테 상처 줬어. 그래서 지금이라도 내 잘못을 고치려고 하는 거야. 나도 여러 번 너에게 용서를 구했잖아. 그런데도 넌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네...”그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눈가가 촉촉해졌다.“정말 내가 무릎을 꿇고 빌어야 하겠어?”그는 정말로 후회하는 것 같았다.사실 나는 이미 그의 진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181화

    나는 안리영을 찾아갔다. 마침 그녀는 집에 있었다.“지난번에 한밤중에 전화했을 때 무슨 일이었어? 그때 시술 마치고 너무 피곤해서 답을 못했네. 어디 아팠어?” 안리영이 나를 보자 그때 일을 떠올렸다.나는 신발을 벗고 카펫 위로 걸어가며 말했다.“내가 진짜 아팠다면 벌써 잿더미가 됐겠지.”안리영이 다가와 어깨를 감싸며 물었다.“왜, 화났어?”“아니야, 별일 아니었어.” 나는 진정우가 아팠던 일을 굳이 말하지 않았다.하지만 안리영은 믿지 않는 눈치였다.“한밤중에 연락할 정도면 무슨 큰일이 있었을 거 아냐.”“정우 씨 때문이었어.” 결국 나는 털어놓았다. 괜히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였다.안리영은 수박 주스를 내게 건네며 말했다.“그 사람 진짜 괜찮은 사람이야. 조만간 후회하지 않도록 잘 잡아둬. 평생 안 보면 후회할걸?”나는 수박 주스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강유형이랑은 정말 끝났어.”안리영은 코웃음을 쳤다.“너희는 이미 끝난 사이 아니었어?”“이번에는 진짜야.” 나는 어느 한 곳을 응시하며 조용히 말했다.안리영은 내 기분을 읽은 듯 잔을 들고 내 잔과 부딪쳤다.“축하해.”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강유형이 너한테 잘해준 건 알아. 그런데 너 너무 매정한 거 아니야?”안리영은 당당히 말했다.“그 사람이 나한테 아무리 잘해도 네게 못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 정말 든든한 친구였다.“자, 이제 다 잊고 주스 마셔. 잠시 후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안리영이 다시 잔을 들었다.“가고 싶지 않아. 그럴 기분이 아니야.”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하지만 안리영은 내 의견을 무시하고 나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먹고 나서 클럽도 가자. 멋진 남자들도 좀 구경하고.”하얀 가운을 벗은 안리영은 숲속의 작은 요정처럼 변신해 있었다. 그녀만큼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 없다'라는 말에 어울리는 사람도 없었다.그녀는 나를 새로 오픈한 프렌치 레스토랑에 데려갔다. 거기서 간만에 푸아그라를 먹자

최신 챕터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471화

    “그럼 돌아가. 하지만 지금 네 상태로는 혼자 갈 수 없어.”강유형이 단호하게 말했고 잠시 침묵하다가 강진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형, 지원이랑 같이 가줘.”강진혁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았어.”나는 거절하고 싶었지만 지금 내 상태로는 아무리 거절해도 그들이 날 혼자 두고 갈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럼 너는?”나는 강유형의 머리에 감긴 붕대를 바라보며 물었다.“난 여기 남아서 신지태 나오면 같이 갈 거야.”강유형의 목소리는 단호했다.신지태가 낯선 곳에서 그런 일을 겪고 나왔는데 아무도 기다려주는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허전할까. 하지만 강유형의 지금 상태로 남아 있는 것도 신지태에게는 더 큰 부담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네가 이 상태로 있으면 신지태가 더 죄책감 느낄 텐데.”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괜찮아. 사고 얘기는 꺼내지 않을 거니까.”강유형은 단호히 답했다. 더는 설득해 봤자 소용없을 것 같아서 나는 화제를 돌렸다.“지태 오빠, 경기 다시 뛸 수 있을까?”이번에는 강진혁이 대답했다.“아직 몰라. 구단 쪽 반응도 봐야 하고 Q클럽의 태도에 따라 다를 거야.”문득 진정우가 떠올랐다. 이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해결책을 줄 사람은 진정우일 텐데 지금은 그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답답했다.나는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꺼내 귀국 비행기표를 예약하기 시작했다.“내 것도 같이 예약해 줘.”강진혁이 말하기 전까지는 그의 표까지 예약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지만 그렇게 말하니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그럼 여권 정보 줘.”강진혁은 여권을 건네는 대신 휴대폰을 꺼내 들고 말했다.“이미 예약했어. 두 장.”그의 말에 잠시 놀랐지만 그는 이어 말했다.“짐 챙겨. 한 시간 뒤에 공항으로 가자.”나는 무슨 말을 하려다 멈췄고 강진혁이 먼저 강유형을 향해 말했다.“머리 다친 건 별일 아니지만 이제 몸 관리를 더 철저히 해야 해. 네 몸 상태가 예전보다 훨씬 더 중요해졌다는 걸 잊지 마.”그의 말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470화

    뉴스?무슨 뉴스?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내가 깨어난 이후로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나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고 문 앞에 있던 강유형과 강진혁이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무슨 뉴스야?”내가 직설적으로 묻자 두 사람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아마도 나한테 뭔가를 숨기려는 듯했다.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다 들었으니까 숨기지 말고 제대로 말해줘.”강진혁은 짧게 한숨을 쉬고 핸드폰을 꺼냈다.강유형이 말리려는 듯 보였지만 내가 강한 눈빛으로 제지하자 그도 말없이 물러섰다.“이미 알게 된 이상 차라리 직접 확인하고 진정우랑 제대로 얘기하는 게 나을 거야.”강진혁이 말하며 핸드폰을 건넸다.핸드폰 화면에는 웹 기사 캡처가 떠 있었다.[희귀한 황금 혈액형 연인, 여자 친구가 800cc의 피로 남자 친구를 구해줌. 이제 내 피가 당신의 몸속에 흐르고 있어요.]로맨틱한 제목과 함께 내가 강유형의 손가락을 잡고 응원하던 사진이 실려 있었다.그저 힘내라는 뜻에서 손을 잡았던 순간이었지만 제목과 사진이 더해지니 마치 우리가 생사를 함께하는 연인처럼 보였다.“이 뉴스 언제 올라온 거야?”나는 강진혁을 보며 물었다.“3일 전이야. 네가 수혈을 끝내고 바로 올라왔어.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와 있었고 진정우도 이미 와 있던 상태였어. 진정우가 아마 이걸 봤던 게 분명해.”그 순간 나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강진혁은 내 표정이 안 좋아지는 걸 눈치채고 조용히 덧붙였다.“바로 사람을 시켜 이 뉴스는 삭제했어. 지금은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없어.”그게 무슨 소용일까.진정우는 이미 이 기사를 봤을 텐데 말이다.나는 다른 사람들이 오해하는 건 상관없었지만 진정우만큼은 아니었다.그가 아무리 나를 믿고 있더라도 이 사진과 제목은 충분히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했다.“이 일은... 내가 진정우한테 직접 설명할게.”강유형이 말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이런 일은 설명할수록 더 복잡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469화

    나는 휴대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그래.]그 단어 하나가 머릿속을 텅 비게 만들었다.잠시 후, 나는 내가 보낸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이때 강유형이 욕설을 내뱉으며 말했다.“저 자식,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거야?”그는 다시 진정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이번에는 전원이 꺼져 있었다.나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휴대폰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 빠르게 창가로 걸어가 밖을 내다보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밤공기가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내 뒤에서 발소리가 들리자 나는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잠시만 혼자 있고 싶어요.”강유형과 강진혁은 내 마음을 이해했는지 더는 말없이 문을 닫고 나갔다.그 순간,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내가 왜 울고 있는 걸까? 그가 그렇게 쉽게 헤어지자고 한 말 때문일까?아니면 내가 이렇게 기다렸음에도 나를 보러 오지 않은 것에 대한 서운함 때문일까?나는 진정우를 기다렸고 그는 왔지만 나는 결국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그저 긴 잠에 빠졌을 뿐인데 겨우 사흘 동안 못 봤다고 나를 이렇게 대할 수 있는 걸까?분명히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혹시 나를 구하는 과정에서 크게 다쳐서 나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은 걸까?아니면 그가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는 걸까? 아니면 그의 가족, 특히 그 유명한 진씨 가문이 나 같은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는 걸까?머릿속은 온갖 상상으로 뒤엉켰지만 나는 스스로를 억누르며 생각을 멈췄다.이럴 때일수록 직접 확인하는 게 나을 테니까.하지만 그가 전화를 꺼둔 탓에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그 순간, 문득 진소영이 떠올랐다. 나는 그녀와 시차가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전화를 걸었다.“언니!”진소영의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자고 있었던 모양이다.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렸다.“언니?”그녀가 다시 불렀다.“잘못 걸었어. 미안해, 자는데 깨웠지?”내 목소리에 감정을 숨기려 애썼다.내가 지금 처한 상황을 그녀가 알게 된다면 분명히 걱정할 것이다.“아니에요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468화

    “지원아!”강유형이 손을 뻗어 나를 붙잡았다.나는 그의 머리에 감긴 붕대를 잠시 바라보다가, 그와 함께 들어온 강진혁을 향해 말했다.“정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요.”그러자 강진혁은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일이야? 어떻게 알아?”“확실한 건 아닌데 그냥 느낌이 그래요.”나는 힘없이 대답했다.“전화했더니 바쁘다면서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아무 소식도 없어요.”나는 이유를 설명했다.“그럼 다시 전화해 봤어?”강유형이 물었다. 사실 다시 걸어보진 않았다.진정우가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했으니, 나는 그냥 기다리고만 있었다.“내가 걸어볼게.”강유형이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한참 후, 진정우의 목소리가 들렸다.“강 대표님.”바로 내 앞에서 전화했기에 대화가 또렷하게 들렸다.“정우 씨, 지금 어디예요?”강유형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비행기 안이에요.”진정우의 대답에 내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강유형이 나를 힐끗 보며 다시 물었다.“비행기? 어디로 가는 중이죠?”“귀국 중입니다.”이 짧은 두 글자에 내 심장은 쥐어짜이는 듯했다. 나는 강유형의 휴대폰을 낚아채며 말했다.“정우야, 무슨 일 생긴 거야?”아무 대답이 없자 내 손은 떨리기 시작했다.“말 좀 해봐. 무슨 일 있는 거야? 지금 어디에 있어? 지금 거짓말하고 있는 거지.”그가 깨어난 나를 보러 오지 않은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다. 아무리 바빠도 이런 일에는 반드시 와야 하지 않나?“아니야. 거짓말 안 했어.”진정우가 차분하게 답지만 나는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못 믿어. 전에 나 속인 적 있잖아.”그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그래, 나는 거짓말쟁이야. 하지만 이번엔 아니야. 못 믿겠으면 사진 보내줄게.”전화가 끊기고 곧 내 휴대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그는 비행기 좌석에 앉은 자신의 사진과 함께 비행기표 사진을 보내왔다.그가 진짜 귀국 중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 한 번도 나를 보러 오지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467화

    강진혁이 내가 사흘 동안 의식 없이 누워 있었다고 말했다. 강진혁이 사흘 동안 이곳에 있었다면, 전화로 곧 오겠다고 했던 진정우도 이미 왔었을 것이다. “물 좀 마셔.”강진혁이 컵을 건네며 말했다.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진정우는 어디 있어요?”그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일단 물부터 마셔.”그 말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목이 점점 더 아파졌다. “아직 안 왔나요?”“아니.”그는 침대 옆에 앉으며 대답했다.“왔었어.”“그럼 지금은 어디 있어요?”내가 의식이 없던 동안 그는 당연히 내 곁에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내가 벌이라며 그를 보지 않겠다고 한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 걸까?“떠났어. 아마 널 다치게 한 사람들을 처리하러 간 것 같아.”그가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정말 진정우밖에 없네. 깨어나자마자 걔부터 찾고.”그의 농담에 약간 안도했지만 떠오르는 위험한 상황들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혼자 갔나요? 언제 떠났는데요?”“정확히는 모르겠어. 하지만 걱정하지 마. 널 구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라면 그 문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야.”강진혁의 말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는 진정우의 능력을 신뢰하는 것 같았다.내가 알던 진정우는 평범한 회사원이었을 뿐인데 그의 진짜 정체를 알고 난 후로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심지어 해외에서도 이렇게 영향력을 발휘하다니. 문득 강유형이 내게 했던 질문이 떠올랐다.“너 정말 진정우에 대해 다 알아?”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정말 그를 잘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더 잘 아는 듯했다.나는 강진혁이 건넨 물을 몇 모금 마시며 물었다.“오빠도 진정우의 정체를 알고 있었어요?”그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너보다 조금 더 일찍 알았어.”“근데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요?”그렇게 묻고 나니 스스로가 우스웠다. 내 남자 친구의 진짜 정체를 왜 다른 사람이 나에게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을까?“지원아, 이유가 있을 거야. 직접 만나서 이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466화

    수혈을 과도하게 한 탓인지 나는 깊은 잠에 빠져 한참 동안 깨어나지 못했다.꿈속에서 누군가가 계속 내 귓가에 속삭이고 있었다.“지원아, 꼭 조심해야 해. 다치거나 피를 흘리면 아무도 널 구할 수 없어.”“왜 그렇게 많은 피를 준 거야... 그러다가 죽으면 어쩌려고.”“바보 같은 년, 누가 너더러 피를 주라고 했어?”“지원아, 제발 날 구해줘. 나... 너무 추워.”꿈속의 목소리는 부모님, 진정우, 그리고 강유형이었다.나는 뭐라도 대답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그러다 꿈속 장면이 멈췄고 강유형이 온몸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마치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처럼 그의 몸에서 피가 끝없이 흘러내렸다.나는 겁에 질려 소리쳤다.“강유형! 강유형!”손을 뻗어 그의 상처를 막으려 했지만 아무리 막아도 피는 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공포에 몸이 떨리며 나는 그를 계속 불렀다.“강유형! 강유형!”“지원아, 일어나. 제발 정신 좀 차려!”급한 목소리와 함께 꿈에서 깨어났다.눈을 뜨자마자 나는 거친 숨소리를 내쉬었다. 꿈속에서 느낀 공포가 여전히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다.“지원아.”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고개를 돌리자 강진혁이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악몽이라도 꿨어?”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나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빼려 했다.강진혁은 내 손을 놓아주며 물었다.“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어요?”나는 목이 칼에 베인 듯 아파 말을 내뱉는 게 너무 힘들었다.“너와 유형한테 이렇게 큰일이 났는데... 내가 안 올 수 있겠어?”강유형의 생각이 내 머릿속에 떠오르며 꿈속 장면과 현실에서 그가 위급했던 모습이 겹쳤다.나는 아픈 목소리로 물었다.“강유형... 어때요?”강진혁은 다행히도 평온하게 대답했다.“이미 깨어났어. 너를 몇 번 보러 오기도 했어. 하지만 쉬게 하려고 내가 다시 병실로 돌려보냈어.”그의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제가 그렇게 오래 잤다고요?”창밖을 바라보니 날이 밝았고 사고가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465화

    평소 병원에서 검사 결과가 나오려면 최소 30분은 걸리는데 이번엔 단 몇 분 만에 결과가 나왔다.의사는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좋습니다. 지금 바로 수혈을 진행해야 합니다. 대략 400cc에서 600cc 정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괜찮아요. 더 필요하다면 더 해도 돼요.”강유형이 내 탓에 다친 것은 아니지만 그가 과다 출혈로 죽게 놔둘 수는 없었다.나는 의사의 안내로 옷을 갈아입고 응급실로 들어갔다.나는 구급 침대에 누워 있는 강유형을 보았다. 그의 얼굴은 핏기가 없었고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의사가 그가 언제든지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고 말한 생각에 나는 마음이 불안해졌다. 나는 그의 옆으로 걸어가 그의 새끼손가락을 가볍게 잡으며 속삭였다.“강유형, 꼭 버텨야 해. 힘내.”그는 스스로 생명줄을 놓아서는 안 되었고 나는 그의 생명을 이어주기 위해 수혈을 해야 했다.나는 그의 옆 침대에 누웠고 날카로운 바늘이 내 팔을 찔렀다. 붉은 피가 투명한 관을 따라 그의 몸으로 흘러 들어갔다.얼마나 많은 피를 뽑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의 상태가 나아질 때까지 버티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피가 계속 빠져나가자 나는 점점 눈앞이 흐려지고 머리가 어지러워졌고 졸음이 밀려왔다.나는 이것이 혈액 손실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나는 수혈을 멈출 수 없었다. 강유형을 살리려면 내 피가 필요했기 때문이다.“이미 600cc나 뽑았습니다.”한 의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하지만 환자의 혈압과 호흡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더 계속 수혈해야 합니다.”주치의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고 그가 말을 꺼내기 전에 나는 대답했다.“더 뽑아주세요. 괜찮아요.”“더 뽑으면 윤지원 씨가 실신할 수 있습니다.”의사가 나를 보며 경고했다.“아니에요. 지금 제 상태는 아직 아주 좋아요. 정말 괜찮아요. 더 뽑아주세요.”아마도 내가 너무 집착해서 그런 것 같았기에 의사는 주치의에게 물었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464화

    우리는 마침내 구조되었다.구조대원 중 한 명은 신지태를 만나러 갈 때 나를 태워준 운전기사였다.나는 그가 진정우의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차가 심하게 찌그러져서 차를 절단해야만 강유형과 운전기사를 구출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나와 강유형의 핸드폰도 함께 찾아냈다.“어? 이 전화 아직도 통화 중이네요.”그는 핸드폰을 내게 건네주었다.하지만 그건 내 핸드폰이 아니라 강유형의 것이었다.나는 전에 이 핸드폰으로 진정우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그가 전화를 끊지 않았던 것일까?나는 혼란스러운 상태로 핸드폰을 받아 들여다보니 통화가 막 끝난 상태였고 통화 시간은 67분 12초로 표시되어 있었다.진정우가 계속 전화를 끊지 않았다는 것은 아마도 강유형과 내가 나눈 대화를 들었을까?하지만 강유형과 나는 별로 중요한 얘기를 하지 않았던 것 같아 안도했다.깊이 생각할 여유도 없이 나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검사 결과 나는 가벼운 상처를 입었지만 강유형과 운전기사는 매우 위중한 상태였다.강유형은 과다 출혈로 인한 쇼크 상태였고 운전기사는 머리를 심하게 다쳐 의식이 없었다.셋 중에서 내 상태가 가장 양호했다.이는 전적으로 강유형이 끝까지 자신의 몸으로 나를 보호했기 때문이었다.“강유형 씨의 가족이나 보호자가 계십니까?”의사가 다가와 물었다.우리는 낯선 나라에 있었고 지금 이 순간 강유형의 가족은 그의 곁에 없었다.나는 결국 나서야 했다.“제가 가족입니다. 강유형 씨의 상태는 어떤가요?”의사의 설명은 충격적이었다.“현재 환자가 과다 출혈 상태입니다. 문제는 환자의 혈액형이 매우 희귀한 RhD 음성, RhNULL이라는 점입니다. 우리 병원에는 이 혈액의 재고가 전혀 없어서 즉시 수혈하지 않으면 환자의 생명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보호자께서는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나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의사가 강유형 씨의 생명이 위험하다고 말한 것도 충격적이었지만 그의 혈액형이 RhNULL이라는 사실은 더욱 놀라웠다.“혹시 같은 혈

  •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제463화

    강유형과 헤어진 이후로 이렇게 가까이에서 그를 바라본 건 처음이었다.지금 그는 바로 내 앞에 있었고 심한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차가 뒤집힐 때 나를 안고 보호해 준 사람이 그였고 나 때문에 이렇게 심하게 다쳤을 것이다.“강유형, 말 좀 해봐.”내가 뭐라고 해도 소용없을 것 같았다. 내가 말을 걸어도 그는 점점 더 잠에 빠질 뿐이었다.“무슨 말을 하라는 거야?”그가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하고 싶은 말 다 해봐. 우리가 헤어진 후에 무슨 생각 했는지... 조나연 얘기도 좋고, 얼마 전 네가 왜 갑자기 사라졌는지 말해도 좋아.”나는 마음속에 있는 말들을 한꺼번에 쏟아냈다.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혹시 잠이 든 건가 싶어 다시 불렀는데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지원아, 난 정말 널 사랑했어.”나는 숨을 멈추고 그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았고 뭐라 답해야 할지 몰랐다.“넌 내가 유일하게 좋아했던 여자야. 너를 본 이후로 다른 여자는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만 보였어. 그 어떤 설렘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그는 미소처럼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계속 말했다.“이런저런 여자들이 나한테 고백도 하고 출장 중엔 누군가는 옷까지 벗고 내 침대에 들어와 있었던 적도 있었어. 하지만 난 말하지 않았어. 네가 걱정하고 상처받을까 봐.”“나는 항상 너를 지키고 싶었어. 그래서 어떤 여자를 만나도 손끝 하나 대지 않았어. 그들이 너무 더럽게 느껴졌거든. 내가 그들을 만지면 너까지 더럽혀질까 봐.”그는 잠시 숨을 골랐다가 다시 말했다.“조나연 일이 벌어진 것도 나도 모르게 빠져버린 함정이었어. 조나연은 겉으로 너무 잘 꾸며져 있었어. 아마 하늘이 일부러 우리를 방해한 거겠지...”그가 한참 힘을 주어 눈꺼풀을 들어 올려 나를 바라보았다.항상 강하고 당당했던 그가 이렇게 무기력해진 모습은 처음이었다.“우리 운명이 거기까지였나 봐. 아마도 서로 진심이 부족했나 보지. 우리는 하늘도 어쩌지 못할 운명이었겠지.”나는 그의 말을 받아줬다.강유형은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