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Chapter 81 - Chapter 90

303 Chapters

제81화

그 후 며칠 동안 박한빈은 다시 연락이 없었지만 성유리는 매일 다른 디저트 가게에서 보내오는 케이크를 받았다.게다가 한 개가 아니었다.성유리는 처음에는 거절하려고 했지만 상대는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았고 심지어 노골적으로 케이크를 주는 것이 자신들이 할 일이라며 그녀가 케이크를 가지고 뭘 하든 그것은 자신의 자유라고 말했다.성유리는 마지못해 케이크를 받을 수밖에 없었고 며칠 연속으로 케이크를 먹다가 결국 박한빈에게 전화를 걸었다.“나한테 뭐 보내지 마요.”“왜, 마음에 안 들어?”박한빈은 기분이 무척 좋은지 말할 때도 목소리에 가벼운 웃음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성유리는 그가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다.좋아한다며? 그럼 매일 보내서 배 터질 때까지 먹으라고.성유리는 더 말하지 않고 단번에 전화를 끊었다.박한빈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얼떨결에 통화가 끊겨서 들리는 신호음에 그대로 굳어버렸다.휴대폰을 떼어내자 그녀가 정말 전화를 끊어버렸다는 걸 알고는 피식 웃음이 났다.기가 막혀 나오는 웃음이었다.성유리가 갈수록 성깔을 부리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면 원래부터 이런 성격인데 더 이상 그 앞에서 가식을 부리지 않는 걸 수도.하지만 어쨌든 나름 좋은 일이었다.적어도 말없이 속에 담아두기만 하던 예전보다는 나았다.박한빈이 그런 생각을 할 때쯤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대표님, 전에 눈여겨보라고 하시던 안 작가님 그림 경매가 정해졌습니다. 이달 말 진성에서 열릴 예정이랍니다.”서훈은 이렇게 말하며 박한빈 바로 앞에 초대장을 내밀었고 박한빈은 짧게 대꾸했다.하지만 서훈은 서둘러 자리를 뜨지 않고 자리에 서서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박한빈은 의아했다.“더 할 말 있어?”“저택에서 전화가 와서 대표님 전화로 연락이 안 된다며 내일 저녁에 식사하러 오시랍니다.”“알았어.”박한빈이 대답하자 서훈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그가 나가자마자 박한빈은 성유리에게 오늘 밤 시월 파크에 오라고 메시지를 보내려다 전송 버튼을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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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결국 성유리는 무작정 아무 매운탕 집이나 들어갔다.뜨겁고 보글보글 끓는 빨간 국물은 누가 봐도 박한빈의 슈트와 어울리지 않았지만 성유리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솔직히 박한빈이 대체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다.그냥 단순히 그녀를 도구로 이용한다기엔 지금 그의 행동은 그렇지 않아 보였다.둘이 부부로 지낼 때도 두 사람이 밖에서 따로 외식하는 일은 무척 드물었다.보석 따위를 사주긴 했어도 굳이 사람을 시켜 케이크를 보내준 적은 없었는데 박한빈의 이런 태도는 성유리에게 잘 보이려 한다는 착각을 불러오게 했다.물론 성유리는 이런 생각이 떠오르기 바쁘게 서둘러 차단해 버렸다.“이거 좋아해?”박한빈은 조금도 불편한 기색이 없었고 자리에 도착하자 성유리 바로 맞은편에 앉아서 물었다.“네.” 성유리가 답했다.“난 천성에서 자라서 매운 거 좋아해요.”하지만 성씨 집안으로 돌아온 이후엔 이런 것들을 못 먹게 했다.그들 눈에는 음식도 급이 나뉜 것 같았고 매운 음식을 먹으면 입술이 빨개지고 눈물, 콧물이 나고 냄새도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으니 성씨 집안에서는 이런 것들이 밥상에 오르지 못했다.물론 박씨 집안도 마찬가지였다.사실 성유리도 그다지 가리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저 단순히 박한빈의 반응을 보고 싶었는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그 침착하고 차분한 표정에 성유리는 문득...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성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음식을 먹기만 했다.“여기, 이거 봐.”박한빈이 갑자기 손에 들고 있던 초대장을 건네며 말하자 성유리는 살짝 놀랐다.위에 적힌 이름을 보자 그녀는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이거... 뭐예요?”“경매, 가고 싶어?” 그가 묻자 성유리는 입술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그 반응만으로도 박한빈은 답을 알 수 있었기에 곧바로 이렇게 말했다.“다음 달에 같이 가.”성유리가 손을 맞잡았다.“왜요?”“왜라니?”“왜 날 데리고 가는데요?”성유리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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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그러나 김난희는 기분이 좋은 듯 박한빈이 들어서자 옆 사람에게 환한 웃음과 함께 신나게 무언가를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도련님 오셨어요.”집사가 가장 먼저 그를 발견하고 웃으며 말하자 박한빈은 그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김난희를 바라봤다.곧 김난희가 잔뜩 들뜬 채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얼른 와서 봐.”“뭘 봐요?”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던 박한빈은 다가가서 태블릿에 담긴 내용을 보자마자 웃고 있던 입꼬리가 굳어갔다.“이것 좀 봐. 이건 설씨 집안 딸인데 지난번에...”“이런 건 왜 보고 있으세요?”박한빈은 흥미가 없다는 듯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왜 보긴, 내가 직접 손주며느리 고르려고 그러지. 방금 내가 말한...”“아직 그럴 생각 없어요.”박한빈이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지금 당장 결혼하라는 게 아니라 일단 좀 보라고. 괜찮은 사람 있으면 우선 만나보다가 약혼하면 되지. 이번엔 신중하게 천천히 해. 괜히 성유리 같은 애 만나지 말고, 하는 짓마다 재수 없게.”박한빈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여기서 성유리 얘기가 왜 나와요?”“내 말이 틀렸어? 걔 전에 양아버지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더라. 어쩐지 그렇게 흔쾌히 이혼에 동의한다고 했더니 역시 찔리는 게 있었어.”“그건 누구한테 들으셨어요?”순간 가라앉은 박한빈의 목소리에 김난희도 무언가를 알아차리고 눈을 가늘게 떴다.“왜, 기분이 안 좋아?”“안 좋은 게 아니라 이미 우리랑 상관없는 사람에 대한 쓸데없는 얘기 듣지 마시라고요.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신경 쓸 필요 없어요.”“음... 하긴. 그래도 유정이 녀석이 좋은 마음으로 매일 와서 나랑 얘기도 나눠주다가 실수로 나온 말이니까 오해하지는 마.”박한빈은 얼굴을 찡그린 채 짧게 대꾸했다.“너도 말 돌리지 마. 난 지금 너랑 손주며느리 얘기하고 있잖아.”김난희는 태블릿을 다시 건네주며 말했다.“빨리 봐봐. 걱정하지 마, 이번에는 내가 품행이 올바른 여자들만 골랐으니까 성유리 때와 같은 일은 절대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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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이틀 뒤, 박한빈의 생일이었다.원래 생일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그는 가족들이 그를 위해 자리를 준비한다고 하니 거절하지 않았다.성유리는 당연히 파티에 오지 못했고 박한빈은 저녁에 시월 파크에 가서 기다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파티는 성공적이었고 이 바닥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참석했다.대외적으로 공개된 파티가 아니었지만 몇몇 연예인들도 따라 들어왔다.박한빈의 이혼 소문이 퍼지자 더 직접적이고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그에게 다가서려는 사람들이 몇 명 더 늘어났다.밤새 박한빈은 옷에 뭐가 튄 것만 세 번이었다.마지막에 누군가 다가왔을 때 박한빈은 옷을 갈아입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자기 몸에 닿으려는 손을 밀쳐냈다.“박 대표님, 제가 좀 닦아드릴까요?”가슴을 겨우 가리는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자가 더없이 농염하고 매혹적인 눈빛으로 그를 올곧게 쳐다봤지만 박한빈은 동요하지 않았다.무표정한 얼굴로 됐다고 말한 뒤 고개를 돌려 비서를 바라보았고 서훈은 곧바로 앞으로 나섰다.그가 여자를 떨어뜨리자 박한빈이 지시했다.“난 먼저 갈 테니까 손님들은 네가 배웅해.”“지금 가시려고요? 그럼 제가 운전기사를 부를게요...”“아니, 택시 타고 갈 거야.”박한빈은 차를 몰고 나가면 또다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것이 분명했기에 지금은 그냥 혼자 조용히 가고 싶었다.서훈의 말을 기다릴 새도 없이 박한빈은 이미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차창 밖에는 여전히 번잡한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있었다.박한빈은 고개를 돌려 바라보다가 문득 작년 자신의 생일이 떠올랐다.그때도 어머니가 손수 생일 파티를 열어주겠다고 했지만 당시 자신과 성유리의 결혼 1주년 파티에 불참했던 탓에 성유리는 며칠 동안 그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았었고 게다가 그도 무척 바빴기에 어머니의 제안을 거절했다.그저 그렇게 별일 없이 지나갈 거라고 생각하고 축하 인사나 선물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그 결과 그날 밤 그는 성유리가 준비한 라이터를 선물로 받았고 그녀가 직접 만든 미역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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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다만 갈수록 버틸 수 없었던 그녀는 방으로 바로 갈 수도 없어서 소파에 쓰러져 잠시 잠을 청했다.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녀는 자기 위를 덮친 실루엣을 보고 깜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지르려는데 박한빈이 재빨리 그녀의 입을 막았다.그의 손이 다가온 순간 성유리도 상대를 알아차리고 경직되었던 몸이 풀렸다.이를 감지한 박한빈은 망설임 없이 그녀를 짓누르며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성유리가 그의 몸에서 나는 술 냄새에 얼굴을 찡그리며 피하려는데 박한빈이 그런 그녀의 턱을 잡은 채 그대로 입술을 감쳐물었다.그러자 샴페인의 과일 향이 성유리의 입안으로 옮겨졌다.다소 흥분한 박한빈의 모습에 성유리는 낮게 앓는 소리를 내며 그의 가슴에 손을 대고 거리를 벌리려고 했다.하지만 박한빈은 재빨리 그녀의 손을 거칠게 움켜잡고 올곧은 눈으로 그녀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그 눈빛이 꼭 깊은 밤 매복해 있는 맹수처럼 보여 성유리는 심장이 마구 뛰었다.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정면으로 맞서는 대신 몸을 들어 먼저 그의 입술에 키스했고 그녀의 부드러운 움직임은 녹아내리는 샘물처럼 박한빈의 사납고 적대적이었던 감정을 순식간에 녹여버렸다.그는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움직임은 눈에 띄게 느려졌다.성유리는 다시 그의 목에 팔을 두르며 가볍게 소리를 냈다.박한빈이 말했던 것처럼 같은 세상 사람이 아니라도, 상대의 생각을 알 수 없어도 어떤 부분에서는 꽤 궁합이 잘 맞는 둘이었다.마지막 한 번을 침대에서 끝낸 뒤 박한빈은 성유리의 허리를 잡고 그녀의 등에 가슴을 붙여오며 물었다.“뭐 잊은 거 없어?”성유리는 온몸이 기진맥진한 데다 머릿속이 어지러워 이렇게 되물었다.“뭐요?”“뭐일 것 같은데?”성유리는 입술을 깨물며 말하지 않았다.박한빈은 한참 동안 기다려도 그녀가 움직이지 않자 손을 풀었다.진작 두 다리에 힘이 풀린 성유리는 그대로 자리에 엎드렸고 몸은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박한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참을 쳐다보다가 바로 돌아서서 자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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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박한빈이 욕실에서 나왔을 때 침실에 있던 사람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살짝 멈칫한 그가 밖으로 나오니 현관에서 성유리가 신발을 신고 있었다.그녀를 바라보던 박한빈의 눈빛은 곧바로 가라앉았다. “어디 가는 거야?”“집이요.”성유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고 입술을 꽉 다문 박한빈의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다.하지만 성유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문을 열었다.달칵...소리와 함께 그녀가 문을 닫자 넓은 집 안에 곧 박한빈 혼자 남겨졌다.그리고 돌아서면서 바로 옆에 있던 쓰레기통을 발로 걷어찼다.성유리는 집 안에 있는 사람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커프스단추는 아직 그녀의 가방 안에 있었다. 쓰레기통을 지나치면서 버리려고 했지만 손이 허공에 멈춘 채 성유리는 끝내 버리지 못했다.바로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자기, 아직 안 잤지?”저쪽에서 송효주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좋은 소식이 있어.”“안 잤어, 말해.”성유리가 커프스단추를 다시 가방에 넣으며 물었다.“지난번 네 책 영화로 제작될 것 같아! 밀레니엄 픽처스라고 알아? 엄청나게 큰 제작사야!”성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좋은 소식이네. 그래서?”“쯧, 재벌가 사모님이었던 사람이라 이 정도 돈은 눈에도 안 차겠지만 그래도 큰 건이니까 이번 일만 성공하면 앞으로 판권 못 팔 일은 없어. 그러니 이번에 잘 협상해야 해!”“그래, 힘내.”“아니, 왜 나만 힘내? 그럼 너는?”“내가 판권은 다 그쪽에 맡겼잖아?”“음... 그렇긴 한데 네가 직접 협상에 나서면 일이 한결 쉬워질 거야.”성유리가 걸음을 멈추며 답했다.“안 가.”“왜?”“이유는 없어. 협상할 수 있으면 하고 안 되면 말아.”성유리의 단호하고 여유로운 태도에 송효주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아니, 잠깐만!” 송효주가 황급히 외쳤다.“자기, 우리 같이 한번 만나보자, 응? 내가 이미 편집장님한테 너 데리고 온다고 했단 말이야. 네가 안 가면 난 할 말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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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사교성이 좋았던 송효주는 처음에는 조금 소심하게 굴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내 사람들과 명함을 주고받으며 활발하게 움직였다.“어머, 양 대표님, 안녕하세요!”송효주는 어렵사리 오늘 드디어 자신이 찾던 사람을 발견하고는 곧바로 손을 내밀었다. “스타 코믹스 송효주입니다. 전에 얘기 나눈 적 있는데!”“아, 안녕하세요.”맞은편에 있던 남자는 송효주와 먼저 악수를 나눈 뒤 천천히 성유리에게 시선을 돌리고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전에 얘기했던 [해당화] 작품 작가님이세요.”“아, 우리 어디선가 만난 적 있지 않나요?” 양 대표는 눈썹을 추켜세웠다.“뭔가 낯익은 느낌이 드는데요?”“아닐 거예요, 전 자주 외출하지 않아서요.”성유리는 그저 웃으며 대답했고 남자는 여전히 다소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이렇게 말했다.“작품은 이미 봤어요. 각색하기 아주 좋던데요. 게다가 우리 진 대표도 읽고 나서 굉장히 흥미로워서 직접 만나고 싶다고 했어요!”성유리는 원래도 상대가 송효주에게 이런 초대장을 보낸 게 수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남자의 말이 나오자마자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했다.하지만 송효주는 오히려 신나서 말했다.“정말요? 그럼 진 대표님은 지금 어디 계시나요?”“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곧 남자는 웃으며 앞으로 다가갔다.“진 대표, 전에 관심 있게 봤던 만화책 작가가 이분이야. 참... 그러고 보니 이분은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저는 송효주라고 합니다!”송효주는 성유리를 흘끗 쳐다보며 순간적으로 그녀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곧바로 앞을 막아 나섰다.“아니, 내 말은...”“성유리 씨 맞죠?”양 대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사람이 이미 먼저 말을 꺼냈다.성유리는 그들을 향해 등을 돌리고 있었다.밀레니엄 픽처스는 진씨 가문의 시즌그룹 산하에 있는 회사다.진무열은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아직 시즌그룹에서 공식적인 자리를 맡지 않았다.그러니 상대방이 말하는 진 대표는 아마도 진무열의 형이겠지.더 이상 피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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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성유리는 심각한 표정이었지만 진무혁은 웃기만 했다.“하긴, 미안해. 내가 너무 갑자기 이런 말을 했지.”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그의 대범한 태도에 비해 성유리가 지나치게 쏘아붙인 감이 없지 않았다.성유리도 이를 깨닫고 사과를 덧붙였다.“제가 너무 흥분했네요.”“괜찮아, 너도 네 평판이 있는데 그러는 게 당연하지. 내가 잘못했어.”진무혁의 말하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그의 말대로 테라스에서 바라본 풍경은 정말 멋졌다.저 멀리 점점이 흩어져 있는 네온사인과 불어오는 저녁 바람이 사람의 기분을 한결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진무혁은 먼저 성유리의 반응을 살피며 마음에 들어 하는 모습을 확인한 뒤 말을 이어갔다.“사실 난 진무열과 성유정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이야. 예전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진무열은 내 동생이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잖아. 내가 봤을 때 성유정은 아내로 적합한 사람이 아니야.”그의 말은 성유리에게 다소 의외였다.그전까지만 해도 이 바닥 사람들은 전부 성유정에게 호의적이라고 생각했다.그렇지 않았다면 애초에 그녀가 나타났을 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배척하지는 않았을 테니까.물론 이를 위해 성유정이 들인 노력도 절대 작지 않았다.어쨌든 그 정도의 위선을 떠는 것도 보통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성유정은 속셈이 너무 많아. 우리 집안 사정이 안 그래도 복잡한데 걔가 결혼해서 들어오면 분명 문제를 일으킬 거야. 난 그걸 보고 싶지 않아. 미안해, 성유정이 네 동생인 건 알아. 험담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저 단지... 너랑 이 일에 대해 상의하고 싶어서.”진무혁은 미안한 얼굴로 성유리를 바라보았다.“기분 나쁘게 듣지 않았으면 좋겠어.”성유리는 고개를 저었다.오히려 조금 전 진무혁의 말에 성유리는 마치 아군을 만난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하지만 그보다 궁금한 건... 진무혁은 왜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걸까?“네 작품 봤는데 아주 좋아. 로열티는 최대한 높게 책정해 줄 테니 시간 되면 대본 집필에도 참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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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성유리가 차창을 살며시 두드렸다.“사모님!”성유리가 몇 번이나 상기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오 기사는 이렇게 부르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성유리도 차마 시정해 주지 않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여긴 왜 오셨어요?”“대표님 출장 가셨어요.”오 기사가 그녀에게 설명했다.“해외 출장 가셨고 일주일 정도 지나서 돌아오실 텐데 초대장과 비행기 티켓을 전해드리라고 하셨어요.”당황한 성유리가 시선을 내리자 그의 손에 지난번 박한빈이 건넸던 것과 똑같은 경매 초대장이 들어 있었다.지난번 성유리는 가면서 초대장을 시월 파크에 두고 갔는데 박한빈이 다시 보내줄 줄은 몰랐다.심지어 이번엔 양성 행 티켓까지 직접 예매해 주었다.“사모님?”성유리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오 기사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고 그가 이상하단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그제야 성유리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고개를 저었다.“안 받을래요.”“그래도... 사모님, 이건 대표님께서 특별히 준비해 주신 건데요. 대표님 성격 아시잖아요. 누구한테 고개 숙이는 일 없는 분인데 이러시면...”“저랑 그 사람은 지금 단순히 거래 관계인데 이런 경매장에는 업계 사람들이 많이 가잖아요. 그때 가서 일일이 해명하기 귀찮아요.”단호한 성유리의 태도에 오 기사는 그녀를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괜히 수고스럽게 여기까지 오셨네요.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이만 가세요, 그럼 이만.”말을 마친 성유리도 곧장 앞으로 걸어갔다.오 기사는 그녀의 뒤에서 뭐라고 말하려다가 망설임 끝에 결국 하려던 말을 다시 삼키고 말았다.성유리가 집으로 돌아온 직후 박한빈의 전화가 걸려 왔지만 2초 정도 울리고 뚝 끊겨버렸다.마치 실수로 잘못 건 것처럼.성유리 역시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았다.오히려 진무혁 측에서 빠르게 연락이 왔고 그가 바라는 건 간단했다.이번 주말에 파티가 있는데 같이 가줬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성유리가 거절하려는데 진무혁이 그녀가 뭘 망설이는지 아는 듯 재빨리 두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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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대표님.”금성 공항에서 서훈은 남자의 불쾌한 표정에 눈치가 보이면서도 손에 들고 있던 것을 건넸다.“방금 진성에서 보내온 데이터 보고서인데 한번 보시죠.”박한빈은 보고서를 훑어본 뒤 물었다.“그리고?”“뭐요?”“시장 가치 추정 이후에는? 어떤 각도로 시장 진입을 유도할 거래? 관련 분석 보고서와 언론 보도 계획은?”이 외에도 박한빈은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고 어리둥절하던 서훈도 한순간 말문이 막혔다.앞으로 나아가던 박한빈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그를 다시 바라봤다.그의 얼굴은 점점 더 일그러지고 있었다.“그 사람들은 모른다 쳐도 서 비서는 내 옆에 오랫동안 있었으면 이런 간단한 것도 몰라?”서훈은 이 보고서가 단지 인수를 계속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일차적으로 박한빈에게 보여주는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예전에도 이렇게 했는데 그때 박한빈은 아무런 말도 한 적이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확실히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았지만 서훈은 이유를 몰랐다.이번 출장에서도 박한빈은 순탄하게 협상을 마친 덕분에 일찍 금성에 돌아올 수 있었다.서훈은 감히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아 그저 죄송하다고만 했다.박한빈은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서훈에게 파일을 다시 던져주고는 앞으로 걸어갔다.오 기사는 이미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박한빈의 표정을 보자마자 그는 바로 고개를 돌려 서훈과 눈빛을 주고받았고 서훈은 고개를 살며시 흔들었다.“운전해.”박한빈은 무표정하게 말했다.차 안에 있던 누구도 감히 다시 말을 잇지 못했다.서훈은 조수석에 앉아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마침내 말을 꺼냈다.“대표님, 오늘 전 대표님으로부터 초대장을 받으셨는데 여기 초대자 명단입니다.”박한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훈이 건네준 태블릿을 받아 들었다.때마침 태블릿에 새로운 메시지가 떴는데 바로 동영상이었다.무시하려던 박한빈은 동영상에 멈춘 화면을 보는 순간 손가락이 저도 모르게 그곳으로 향했다.붉은 끈 드레스에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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