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Chapter 101 - Chapter 110

303 Chapters

제101화

박한빈이 젓가락을 내려놓자 성유리도 따라 내려놓았다.“이제 가도 되죠?”성유리는 곧바로 그를 내보내려는 듯 말했다. 그러나 박한빈은 아랑곳하지 않고 방 안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갑작스럽게 물었다.“왜 시월파크에 안 살고 여기서 지내?”“거긴 내 집이 아니잖아요.”성유리는 아주 단호하게 대답했다.박한빈은 그녀와 잠시 눈을 맞추고 난 후 말했다.“집을 너한테 넘겨줄 수도 있어.”“괜찮아요. 난 여기가 좋아요.”성유리의 대답에 박한빈은 할 말을 잃었다. 그의 미간은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아직 더 할 말이 남았어요?”성유리가 물었지만 박한빈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깨끗한 수건 좀 줘.”말을 마치고 그는 욕실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성유리는 황급히 그를 막아섰다.“뭐 하는 거예요? 여긴 내 집이라고요!”“시월파크는 내 집인데 너도 거기서 씻고 자고 했잖아?”성유리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 사이 박한빈은 욕실 문을 열었다. 욕실을 둘러본 박한빈은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이런 곳에 욕조가 없는 건 당연했지만 박한빈은 여기에 샤워실조차 없을 줄은 몰랐다. 목욕하는 공간이라고 해봤자 세면대와 변기를 하나의 커튼으로 구분해 놓은 게 전부였다.“여긴 박 대표님 같은 분에게 안 어울려요.”성유리는 조롱 섞인 말투로 말했다.고개를 돌린 박한빈은 성유리가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표정을 본 그는 더욱 심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정말 적응 안 되는 곳이긴 하네. 그래도 누군가랑 같이 있으면 그리 나쁘진 않지.”“지금 뭐라고...”성유리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박한빈은 그녀를 확 끌어당겨 욕실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녀가 물러설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바로 샤워기를 틀었다.차가운 물이 가열되기도 전에 그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며 성유리의 머리카락과 옷을 흠뻑 적셨다.“뭐 하는 거야!”성유리는 버럭 소리쳤다.하지만 박한빈은 개의치 않고 샤워기를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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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

박한빈의 손에서 수건을 빼앗으려던 성유리는 그의 말에 잠시 멈칫했다.“내가 오늘 어떤 소식을 들었는지 알아?”박한빈이 그렇게 말하자 성유리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나에게 내가 모르는 형제가 있을지도 몰라.”그는 마치 남의 이야기라도 하는 듯 평온하게 말했다.성유리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무슨... 소리예요?”“아버지에게 사생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야.”박한빈의 얼굴은 여전히 차분했다. 마치 그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성유리는 왜 그가 갑자기 자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부부였을 때조차 서로 깊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성유리는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묻지 않았고 박한빈은 그녀보다 더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가끔 같은 집에서 살면서도 며칠 동안 마주치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던 날들이 있었다.그런 부부 관계였으니 그들의 결혼 생활이 얼마나 가식적이었는지 새삼 우스울 정도였다.그런데 이제 와서 그가 성유리에게 자신의 집안의 비밀을 털어놓다니. 그녀는 어리둥절함과 동시에 뭔가 불편했다.“어떻게 알았어요?”성유리는 결국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어머니가 말씀해 주셨어.”“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아요?”“모른대. 하지만 어머니랑 할머니는 그 존재를 알고 있는 것 같아.”박한빈은 말할수록 목소리가 차가워졌다.성유리는 그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박한빈이 눈을 내리깔고 성유리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동정하는 거야?”“아니요...”성유리는 쓴웃음을 지었다.“내가 한빈 씨를 동정할 자격이 있나요?”사실 그녀는 여전히 어젯밤 그가 했던 말에 대한 분노를 품고 있었다.박한빈은 그걸 느낀 듯했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녀에게 상처를 주기 싫었지만 먼저 문제를 일으킨 건 성유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간에 완전히 잘못한 일은 아니었으니 더 이상 탓할 필요도 없었다고 여겼다.“이제 그만해도 되겠지.”성유리는 그가 잡고 있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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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화

박한빈과 성유리는 한 번도 같은 침대에서 나란히 잠들어본 적이 없었다. 박한빈이 그녀를 아무리 지치게 해도 성유리는 항상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래서 성유리는 그들 사이가 부부라기보다는 단순한 파트너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침대 위의 파트너, 일상 속의 파트너.성유리에게는 한 침대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누워 있는 것이 오히려 성관계보다 더 친밀한 행위였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하지만 박한빈과 성유리는 분명히 그런 관계가 아니었다.성유리는 잠든 박한빈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그의 얼굴을 수도 없이 봤지만 지금 이 순간 그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낯설었다. 그녀는 눈을 감아도 그의 얼굴 윤곽을 정확히 그릴 수 있을 만큼 익숙했다. 학생 시절부터 이미 수없이 그려본 얼굴이었다.그 시절 하얀 교복을 입고 있었던 박한빈은 학교에서 모두의 주목을 받는 존재였다. 시간이 흐르며 그는 점점 더 성숙하고 잘생긴 외모로 변해갔다. 그와 동시에 그의 고상하고 차가운 분위기도 더욱 뚜렷해졌고 이제는 그가 그녀 바로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멀게만 느껴졌다.그때 갑자기 잠들어 있던 박한빈이 눈을 떴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박한빈의 미간이 순간적으로 찌푸려졌고 그의 눈빛은 차갑고 날카로웠다.성유리는 잠시 멈칫했지만 곧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박한빈은 그녀의 손을 잡아채더니 그녀를 침대로 확 끌어당겼다.그는 겨우 수건 하나만 두르고 있었고 성유리의 말린 머리카락이 그의 가슴 위로 흘러내렸다. 그녀가 몸을 움직이자 머리카락이 그의 피부를 살며시 간지럽혔다.박한빈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더니 이내 성유리를 침대에 눕히고 몸을 그녀 위에 얹었다. 이번에는 성유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작은 신음을 내뱉었다.“머리카락 깔았잖아요!”그러나 박한빈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옷을 벗기려는 듯 손을 뻗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의 손이 멈췄다.성유리는 의아하게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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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

박한빈은 결국 약속 장소에 나왔다.그는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고 잠시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뿐이었다.“안녕하세요, 박 대표님.”맞은편에 앉아 있던 여자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저 기억하시겠죠? 단예진이에요.”박한빈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는 손을 내밀며 말해주었다.“그날 가면무도회에서 우리 춤도 췄었잖아요.”“예진 씨, 반갑습니다.”박한빈은 그날의 가면무도회에 관한 이야기를 더 하지 않고 간단히 악수했다.“그날 왜 갑자기 가셨나요?”단예진이 다시 물었다.“급한 일이 생겨서요.”“정말요?”단예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박한빈은 다소 불편해졌다.그 불편함은 자신의 거짓말이 들통날까 봐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주는 어떤 느낌이 그를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박한빈은 영리한 사람과의 대화를 꺼리지 않았지만 자기만 아는 듯이 굴면서 교묘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은 싫어했다.다행히 단예진은 그 주제를 더 파고들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그들은 같은 대학에 다녔었고 단씨 가문과 반씨 가문은 오래된 인연이 있어 대화 소재는 끊이지 않았다.비록 박한빈은 내심 지루했지만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며 단예진이 꺼낸 주제에 맞장구를 쳤다.그렇게 저녁 식사가 끝날 무렵 분위기는 한 번도 가라앉지 않았다.계산서가 나왔을 때, 단예진은 갑자기 두 장의 음악회 티켓을 박한빈 앞에 내밀었다.“아주머니께 들었는데 박 대표님이 음악회를 좋아한다고 하시더라고요. 마침 제게 표가 두 장 있어서요. 박 대표님, 시간 내주실 수 있으세요?”단예진의 초대는 솔직하고 담백했다.박한빈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성유리가 생각났다.성유리와 단예진은 확실히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다.성유리는 그에게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고 더구나 약속을 먼저 잡는 법도 없었다.화가 났을 때조차 그녀는 그와 싸우지 않았다. 대부분은 그저 그 자리에 조용히 서서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박한빈은 성유리도 자신처럼 감정을 스스로 다스리는 사람이라 생각했다.그런데 그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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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화

성유정은 천천히 주먹을 움켜쥐었다.“그런데 전 왜 두 분이 사귄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을까요?”“정보력이 부족하신 거겠죠.”단예진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 말에 성유정은 대꾸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박한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는 멍하니 멀리 어디를 바라보고 있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한빈 오빠?”성유정이 그의 이름을 부르자 박한빈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아까 할 일 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먼저 가실래요?”그러나 단예진이 먼저 박한빈에게 말을 건넸다. 성유정은 그녀의 말에 당황했지만 그저 분노를 담은 눈빛으로 단예진을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단예진은 아무렇지 않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와 시선을 마주했다.“그럼 전 먼저 가볼게요.”박한빈은 성유정을 남기고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성유정은 그를 따라가려 했으나 단예진이 재빨리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유정 씨, 아직 뭐 볼일이 남았나요?”“한빈 오빠 만나러 갈 거예요. 그쪽이 뭔데 날 막아요?”“아참, 유정 씨가 무열 씨와 약혼한다는 소식 들었어요. 축하해요.”단예진의 말에 성유정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그녀의 얼굴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단예진을 향한 눈빛은 마치 당장이라도 불을 뿜을 기세였다. 반면에 단예진은 여전히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한빈 오빠는 그쪽을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성유정이 갑자기 말했다.“정말요?”“오빠는 시끄러운 여자를 싫어하거든요. 그리고 난 어렸을 때부터 오빠와 함께 자랐어요. 그런 감정은 그쪽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예요.”“그런데 한빈 씨는 왜 유정 씨 언니와 결혼했을까요?”“그건... 아무튼 오빠는 성유리를 좋아하지 않아요.”“그렇겠죠. 아니었으면 이혼했겠어요? 안 그래요?”성유정은 말을 잇지 못했다.“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유리 씨는 꽤 조용한 사람인데요? 그러니까 유정 씨는 한빈 씨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거네요?”단예진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성유정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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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화

성유리는 눈앞에 있는 임정우를 한참 동안 바라본 뒤 마침내 입을 열었다.“정우 씨도 제 상황을 아시잖아요?”“알죠. 전에 몇 번 연회에서 본 적도 있잖아요?”“저 이혼한 지 얼마 안 됐어요.”성유리가 덧붙였다.“네, 들었어요. 박한빈과 그렇게 결단력 있게 이혼하시다니, 존경스러워요.”성유리가 하는 말에 임정우는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그런 그를 보며 성유리는 왠지 힘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결국 성유리는 말했다.“저는 당분간 연애에 대해 생각할 마음이 없어요.”“그래요? 그럼 연애는 안 해도 돼요.”임정우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친구로 시작해도 괜찮잖아요.”성유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럼 그렇게 받아들이는 걸로 알게요? 갈까요, 이제?”임정우가 그녀의 손을 잡으려 하자 성유리는 놀라며 두 발짝 물러났다.그가 의아한 듯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왜 그래요? 제 손에 독이라도 있나요?”“아니에요. 그냥 갑자기 생각난 일이 있어서 못 갈 것 같아요.”“그래요? 무슨 일인데요?”“그냥 직업상 일 때문에요.”“직업이 있었어요? 어떤 일인데요? 아니면 그냥 핑계로 저 피하는 건가요?”성유리는 미소로 답했다.“그렇죠? 역시 핑계였네요.”임정우는 예상했다는 듯 시원하게 인정하며 말했다.“그러니까 저랑 나가는 게 별로라는 거죠?”“우린 맞지 않아요.”“서로 맞지 않다고요? 우리 아직 제대로 만나본 적도 없잖아요. 어떻게 알아요?”“제가... 성격이 너무 어두워서요. 정우 씨가 안 좋아할 거예요.”“그래요? 근데 전 그냥 억눌린 것 같던데요?”임정우는 웃었지만 눈빛만은 진지했다.“그날 춤을 출 때처럼 조금 편하게 생각해요. 사실 유리 씨는 정말 매력이 넘쳐요.”성유리는 그와 눈을 마주했다.그의 마지막 말이 떨어지는 순간 성유리의 가슴이 갑자기 두근거렸다.임정우는 계속해서 말했다.“영화는 취소하죠. 대신 저녁 식사는 어때요? 제가 아주 재밌는 곳으로 데려갈게요. 스트레스 확 풀리는 곳이에요, 괜찮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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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화

성유리가 임정우를 바라보고 있을 때 그도 그녀를 발견하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여기예요!”…한편 박한빈은 시월파크 서재에 앉아 모니터에 떠 있는 메일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손가락은 끊임없이 옆에 있는 휴대폰 화면을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가끔 메신저 알림이 뜨긴 했으나 박한빈은 한 번 흘끗 보고는 바로 무시했다.밤 11시가 넘자 드디어 밖에서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박한빈의 손가락이 잠시 멈칫했지만 그는 일어나지 않고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휴대폰 화면을 꺼버렸다.성유리의 발걸음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그녀는 먼저 그의 침실로 갔다가 아무도 없자 서재로 향했다.서재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성유리는 문 앞에 서서 한참을 망설였다. 하지만 그 외에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박한빈은 더 이상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무표정으로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시간이 2분 더 지나고 나서야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그러나 박한빈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잠시 망설이던 성유리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아직도 일하고 있어요?”성유리는 문 앞에 서서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그제야 박한빈은 그녀를 바라보았다.성유리는 방금 샤워를 마치고 온 듯 머리가 반쯤 젖은 상태였고 손가락은 불안하게 움츠러들어 있었다.“저녁에 메시지를 못 봤어요.”그녀가 말을 덧붙였다.“확인하자마자 바로 왔어요. 미안해요...”박한빈이 그녀를 내쫓지 않자 성유리는 용기를 내어 그에게 몇 발짝 더 다가갔다.그러나 그녀는 선을 지키며 그의 컴퓨터 화면이 보이지 않는 곳에 멈춰 섰다.박한빈은 잠시 더 기다리더니 이내 성가신 듯 그녀를 자신의 쪽으로 확 잡아당겼다.성유리는 그의 무릎 위로 넘어지듯 앉게 되었다.“어디 갔었어?”그는 감정이 없는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날카로운 시선이 성유리를 피할 곳 없게 만들었다.“그냥... 밖에 좀 나갔어요.”“혼자?”“아니요, 친구랑요.”“어느 친구?”박한빈이 왜 갑자기 이렇게 많은 질문을 하는지 성유리는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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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화

박한빈은 더 이상 성유리에게 그날 저녁 일에 관해 묻지 않았고 성유리 역시 그 일을 다시 꺼내지 않았다.이틀 후 임정우가 또다시 성유리에게 연락해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성유리는 그때 처음 알았다. 누군가와 데이트 약속을 잡는 일이 이렇게 단순하고 거침없을 수 있다는 사실을.임정우는 확실히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노는 걸 좋아하고 잘 노는 사람이었다.어릴 때부터 금성에서 자랐고 그의 인맥은 넓었다.하지만 임정우는 화려한 클럽이나 고급 술집 같은 곳을 좋아하지 않았고 성유리를 데리고 다니는 곳은 언제나 오래된 골목이었다.어느 날은 맛집을 찾아다녔고 또 다른 날은 작은 소품을 사러 다녔다.이에 비해 박한빈도 같은 금성에서 자랐지만 그는 성유리를 한 번도 이런 곳에 데려온 적이 없었다.그들이 함께한 몇 번의 외식은 모두 고급스럽고 우아한 레스토랑에서만 이루어졌었다.딱 한 번 예외가 있었는데 그건 성유리가 그를 매운탕 집에 데려갔을 때였다.물론 그 매운탕도 결국 제대로 먹지 못하고 끝났다.임정우는 그런 박한빈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그에게는 그 바닥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유의 냉정함이나 거만함이 전혀 없었다.임정우가 성유리에게 했던 말도 아주 단순하고 직설적이었다. 그저 친구가 되어 몇 번 만나면 서로를 알게 될 거라고 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성유리는 그를 만날 때마다 확실히 즐거웠다. 그것도 아주 단순하고 순수한 즐거움이었다.아무 걱정도, 신경 쓸 것도 없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기만 하면 되는 그런 행복이었다.물론 박한빈은 이들의 만남을 전혀 알지 못했다.그리고 임정우를 만날 때면 성유리는 휴대폰을 수시로 확인하며 박한빈의 메시지에 더는 답을 미루지 않았다.오늘도 임정우는 성유리를 데리고 나왔다.사람들로 붐비는 대형 오락실에서 그는 아이들 틈에서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성유리는 그와 함께 게임을 즐기면서 조금씩 기분이 고조되었다.마침내 그들은 인형 뽑기 기계 앞에 섰다.임정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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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화

성유리는 대답하지 않고 그 인형을 천천히 받아 들었다. 임정우는 그녀의 분위기가 평소와 다름을 즉시 눈치챘다.“무슨 일이에요?”하지만 성유리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살짝 숙이며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대체 무슨 일인데요?”“아무 일도 아니에요. 우리 그냥 가요.”임정우는 갑자기 초조해져 그녀의 팔을 붙잡고 다그쳤다.“빨리 말해요!”“방금 누가 저를 치고 지나갔어요.”성유리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임정우는 잠시 멍하니 있었다.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듯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누구예요?”“네?”“누가 그랬냐고요!”임정우는 말하자마자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때마침 방금 성유리를 건드렸던 그 남자가 또 다른 여자에게 접근하며 뻔뻔하고 비열하게 웃고 있었다.“저 자식이에요?”임정우가 성유리에게 물었다.하지만 성유리가 대답하기도 전에 임정우는 이미 남자에게 달려가 그의 코에 주먹을 냅다 꽂아 넣었다.“야, 이 새끼야!”…“대표님, 그림이 이미 도착했습니다. 이건 검수 확인서입니다.”서훈이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박한빈에게 건넸다.박한빈은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서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아까 사모님이 전화하셨는데 대표님이 안 작가님의 작품을 낙찰받으신 걸 알고 계신 듯합니다. 그리고 요즘 별다른 일정이 있는지도 물으시더군요.”박한빈은 고개를 들고 서훈을 바라보았다.서훈은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서둘러 한마디를 덧붙였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박한빈은 더는 말하지 않고 서류를 넘겨받았다. 그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진 듯했다.서훈은 그런 박한빈을 보며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런데 대표님, 이 그림은...”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한빈의 휴대폰이 울렸다.발신자를 확인한 박한빈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더니 전화를 받자마자 그의 표정은 완전히 굳어졌다.서훈은 오랫동안 박한빈을 보좌해왔지만 이런 표정을 본 건 처음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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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화

성유리는 고개를 숙인 채 임정우가 건넨 외투를 걸치고 손에 든 따뜻한 차를 조심스레 쥐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몸은 계속해서 떨리고 있었다.임정우는 한바탕 싸움을 치르고 왔는지 얼굴이 엉망이었다. 처음에는 우세를 점했는데 상대방이 많았던 탓에 곧 몇 명이 그를 둘러싸며 상황이 불리해졌다.성유리는 그를 도우려 했지만 임정우는 끝까지 그녀를 뒤로 막아섰다. 만약 오락실 직원들이 빠르게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알 수 없었다.“걱정하지 마요. 전 괜찮으니까.”임정우는 경찰에게 진술하던 중에도 성유리가 떨고 있는 것을 보고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성유리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고개를 든 순간 마치 눈앞에 무언가 끔찍한 광경이 떠오른 듯 창백했던 얼굴이 더욱 하얘졌고 손가락은 얼음처럼 차가워졌다.임정우가 이상하게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려고 할 때 성유리의 어깨에 묵직한 손이 얹혔다.“안녕하세요. 성유리 씨를 보석하러 왔습니다.”낯선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단정한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그 눈빛에는 묘한 냉기가 서려 있었다.경찰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쳐다보았다.“누구십니까?”남자는 성유리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은 그녀를 스치듯 지나가 임정우가 잡고 있던 손에 멈췄다. 그 차가운 눈빛 속에 잠시 감정이 드러나는 듯했지만 곧 다시 평온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저는... 성유리 씨 전남편입니다.”그 말에 경찰은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대답할 새도 없이 다른 사무실에서 누군가가 나와 남자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박 대표님, 안녕하십니까!”짧은 인사가 오간 뒤 박한빈은 보석 서류에 서명을 마쳤다.“가자.”박한빈은 성유리에게 부드럽게 말했다.겉으로는 여전히 침착하고 온화했지만 그의 깊은 눈빛 속에는 성유리만이 알 수 있는 강렬한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성유리는 순간 겁이 났다.“먼저 가세요, 유리 씨. 전 괜찮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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