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의 모든 챕터: 챕터 111 - 챕터 120

303 챕터

제111화

게다가 옆에 있는 성유리를 보며 서훈은 속으로 생각했다. 자신이 뭔가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음속에서 온갖 생각이 떠올랐지만 서훈은 결국 용기를 내어 다가가 말을 건넸다.“대표님...”박한빈이 차 안을 잠시 바라보자 서훈은 이내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챘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박한빈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성유리를 차에 태운 뒤 손에 들고 있던 인형을 옆에 있던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성유리는 차 안에서 그가 한 행동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박한빈이 곧 차에 올랐고 차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속도감에 성유리는 심장이 쿵쾅거리며 급하게 안전벨트를 맸다. 박한빈은 그녀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창밖의 풍경은 빠르게 뒤로 사라졌고 점점 낯선 거리가 나타났다. 성유리는 미간을 찡그리며 어디로 가는지 묻기 위해 입을 열려는 순간 박한빈이 갑자기 급정거를 했다.강한 관성에 성유리는 몸이 앞으로 쏠리며 거의 튕겨 나갈 뻔했다. 다행히 안전벨트가 그녀를 다시 좌석으로 잡아당겼지만 뒷머리가 의자에 부딪히며 고통에 얼굴을 찡그렸다.고개를 돌려 박한빈을 바라보니 그는 무표정하게 핸들을 꽉 잡고 있었다. 겉으로는 차분해 보였지만 핸들을 쥔 팔뚝에는 굵은 핏줄이 드러나 있었다.성유리는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그때 박한빈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너 그 자식이랑은 언제부터 엮인 거야?”박한빈의 말투는 날카로웠고 성유리는 그가 사용하는 단어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의 시선이 박한빈을 향하자 그의 눈빛은 더 차갑고 어두워졌다.“저와 정우 씨는 친구예요.”성유리가 겨우 입을 떼며 말했다.“박 대표님, 말씀을 조금 정중하게 해주세요.”“친구?”박한빈은 화가 난 듯 비웃음을 지었다. 억지로 웃음을 짓는 듯 그의 입꼬리가 비틀어졌지만 눈동자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의 눈빛은 깊고 음울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성유리, 그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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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화

“정우 씨는 그냥 친구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정우 씨를 깎아내리지 말아 주세요.”성유리는 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그리고 오늘 정우 씨가 다친 것도 저 때문이에요. 저 때문에...”“하.”박한빈은 갑자기 냉소를 터트렸다.그 차가운 웃음소리는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성유리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성유리, 우리가 전에 무슨 계약을 했는지 잊었나 봐?”“말했잖아요, 난 정우 씨랑 그냥 친구일 뿐이라고.”“친구라면서 왜 거짓말을 해?”박한빈의 목소리는 점점 더 차분해졌고 그의 눈은 날카롭게 그녀를 꿰뚫어 보았다.성유리는 자신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을 열기 전 박한빈이 먼저 말을 이었다.“지난주, 네가 늦었던 그날 밤. 그 자식과 같이 있었지?”성유리는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박한빈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기억하기로는 네가 샤워까지 하고 시월파크에 왔던데? 대체 무슨 일을 한 거야, 샤워까지 할 정도로?”“우린 그냥 야시장에 갔을 뿐이에요!”“아, 그래? 그럼 정말 그 자식이랑 있었던 거네.”박한빈은 다시 한번 쓴웃음을 지었다.성유리는 말문이 막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박한빈은 그녀의 반응에 입가에 냉소를 더 짙게 드리우며 이내 중앙 콘솔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의 손은 갑자기 떨리기 시작했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 했으나 라이터는 번번이 켜지지 않았다.그리고 그 순간 박한빈은 라이터가 성유리가 준 것임을 깨달았다. 그의 눈빛이 어두워지며 차창을 내렸다. 곧이어 그 라이터와 담배는 창밖으로 내던져졌다.박한빈이 차창을 다시 올리자 차 안의 공기는 더욱 무겁고 답답해졌다.“저랑 정우 씨는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성유리는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말했다.“우리 사이에 계약이 있는 건 알지만 저에게도 저만의 사회생활이 있고 사생활권이란 게 있어요. 우리는 그냥 식사하고 대화를 나눴을 뿐 그 이상은 없었어요.”성유리가 말을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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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화

“그런데 넌 약속을 지켰어? 지난번 파티에서도 신나게 놀더니, 야시장? 오락실? 그리고 무슨 사생활권?”박한빈은 말을 이어가며 다시 한번 쓴웃음을 지었다.“성유리, 넌 정말 네가 대체 불가하다고 생각하는 거야?”그가 성유리를 향해 이렇게 길게 말하는 건 처음이었다.하지만 그 말 한마디 한마디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성유리의 가슴에 깊이 박혔다.성유리는 그가 고귀하고 우월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예전에는 그가 최소한 그런 모습을 조금은 감췄었다.그러나 지금은 그마저도 전부 벗어던진 상태였다.그의 멸시와 혐오감이 담긴 눈빛은 성유리에게 그들이 처음부터 대등한 관계가 아니었다는 걸 상기시켰다.처음부터 그리고 지금까지.성유리에게 친구를 사귈 권리 따위는 없었다. 그녀는 그저 그의 소유물일 뿐이었다.이제 그 소유물이 더럽혀졌으니 그는 더 이상 원하지 않는 것이다.“내리라고. 네 번 말하게 하지 마.”박한빈이 다시 말했다.성유리는 그와 잠시 눈을 마주치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맞아.”“고마워요, 박 대표님. 이걸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셔서요. 덕분에 이혼이 얼마나 현명한 선택이었는지 깨닫게 됐네요.”성유리의 말에 박한빈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성유리는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서로 상처를 주는 일이라면 그도 잘하고 자신도 그리 못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그리고 우리가 결혼했을 때도 당신은 날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잖아요? 우린 이제 이혼했으니 내가 기대할 것도 없지만 결혼 당시에도 내가 당신에게 뭔가 기대할 수 있었던 적이 있었던가요?”“내 생일이 언제인지는 알아요? 진심으로 내게 선물을 준 적이 있나요? 나와 성유정 사이에서 날 한 번이라도 보호해 준 적 있었어요? 그 많은 연회에서 한 번이라도 내 감정을 배려해 준 적 있었어요?”“내가 아플 때 당신이 한 번이라도 날 돌봐준 적 있나요? 당신은 나와 함께 외식하면서도 내가 원하는 곳에 데려간 적이 없었죠.”“당신에게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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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화

성유리가 박한빈의 이런 표정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솔직히 지금 그의 표정은 과거의 그 차분하고 냉정한 모습보다 훨씬 생동감 넘쳤다.그제야 성유리는 알았다. 그도 그녀로 인해 감정이 요동칠 수 있다는 사실을.참 신선한 기분이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방금 그녀가 했던 말을 듣고 화내지 않을 남자는 없었을 것이다.그에 반해 성유리는 지금 아주 평온한 기분이었다.박한빈과 눈을 마주한 성유리는 그에게 반문했다.“아까 충분히 알아듣게 말하지 않았나요? 나...”말이 끝나기 전에 갑자기 박한빈의 손이 번쩍 올라갔다.그 순간 성유리는 그 동작이 너무도 익숙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수없이 이 순간을 겪어왔으니까.성유리는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고 그의 손이 얼굴에 닿기를 기다렸다.하지만 예상했던 고통은 오지 않았다.천천히 눈을 뜬 성유리는 박한빈의 손이 공중에 멈춘 채로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았다.박한빈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이마에 굵은 혈관이 도드라졌고 성유리의 시선을 의식한 듯 그 혈관이 미세하게 뛰고 있었다.성유리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때려봐요, 왜 안 때리는 건데?”여자가 맞을 준비를 하는 것과 실제로 맞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아무런 차이가 없었다.지금 이 순간 성유리는 그의 손이 자신에게 내려오기를 바라고 있었다.그래야 그녀는 그에게 완전히 실망할 수 있을 테니까.몇 년간 사랑했던 그가 이런 사람이었다는 걸 확실하게 알 수 있을 테니까.차갑고, 냉정하며, 심지어 손찌검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최근 그가 보였던 소소한 온정들은 다 가짜였다는 걸 말이다.햇볕 아래 부서지는 거품처럼 닿기도 전에 스스로 사라져 버릴 그 온기.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날 밤 박한빈과 한 침대에 누워 있을 때 성유리는 많은 생각을 했다.그때 처음으로 그의 심장 박동을 느꼈고 그의 품 안에서 그가 가진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성유리는 심지어 그가 왜 욕실에서 더 나아가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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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화

박한빈은 원래 이런 수법을 쓸 정도로 치졸하지 않았다. 게다가 상대가 성유리라니...그녀는 그런 대우를 받을 자격도 없었다.하지만 지금 그녀의 반응을 보고 있자니 이 상황이 너무나도 우스워졌다.성유리와 임정우가 안 지 얼마나 됐다고?박한빈의 정보가 정확하다면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게 그때의 가면무도회일 텐데, 벌써 이렇게 깊은 사이가 된 건가?아까 그녀가 했던 말이 뭘까? 임정우가 더 세심하고 더 자상하다고?정말이지 너무 우스웠다.살면서 누군가와 이런 식으로 비교당할 줄이야. 박한빈은 상상조차 못 했다.임정우라니?사실 조금 전까지 박한빈은 그에게 눈길조차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이제 와서 성유리는 그보다 임정우가 낫다고 말했다.지금 성유리는 마치 궁지에 몰린 토끼처럼 자신에게 덤벼들 기세였다.그리고 그녀가 지키려는 상대는 임정우라니.생각할수록 웃음이 나왔다.그 순간 성유리의 휴대전폰이 울렸다. 두 사람은 모두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화면에 뜬 이름을 본 둘의 표정은 동시에 굳어졌다.성유리가 급하게 손을 뻗어 전화를 끊으려 했지만 박한빈이 더 빨랐다. 그는 그녀의 휴대폰을 낚아채 받았다. 심지어 스피커까지 켜고서.“여보세요? 유리 씨?”임정우의 목소리가 차 안을 가득 채우며 울려 퍼졌다.조용한 차 안에서 그의 선명한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성유리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임정우는 잠시 기다리더니 다시 물었다.“왜 말이 없어요? 안 들려요?”“나...”성유리가 겨우 입을 열었지만 대답할 틈도 없이 박한빈은 그녀의 의자를 강제로 눕히더니 곧바로 성유리의 위에 몸을 얹었다.그 동작에 성유리의 눈이 커다랗게 뜨여졌다.박한빈이 무엇을 하려는지 즉각 깨달은 그녀는 손으로 그의 가슴을 밀어냈다.하지만 그는 단단히 그녀를 붙잡았다.핸드폰은 바닥에 떨어졌지만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임정우의 목소리는 여전히 이어졌다.“무슨 일이에요? 지금 어디예요? 집에 갔어요?”성유리는 그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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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화

“미안하네요, 정우 씨. 유리가 지금 그쪽 전화를 받을 시간이 없어요.”박한빈은 이미 성유리의 치마 속에서 손을 빼고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 자신의 벨트를 풀면서 다른 손으로는 전화를 받으며 말했다.“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유리는 지금 아주... 좋아하니까.”그 말을 하며 박한빈의 눈은 성유리를 계속해서 꿰뚫어 보듯 바라보고 있었다.아까 짧게 새어 나온 그 소리 이후 성유리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그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에 아무런 반응도 주지 않았다.임정우가 전화기 너머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는 그녀에게 들리지 않았다.박한빈은 말끝을 맺자마자 전화를 끊었고 주저 없이 성유리를 다시 눌러 제압했다.둘의 몸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고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빈틈없이 밀착되어 있었다.박한빈의 눈은 조금 전까지 분노로 차 있었지만 이제는 약간의 즐거움이 스며들어 있었다. 희미하게 붉어진 그의 눈가에는 욕망의 빛이 서려 있었다.성유리는 더 이상 몸부림치지 않았다. 그가 누르고 있던 손은 점차 힘없이 축 늘어졌다.박한빈은 성유리의 입술을 향해 몸을 기울여 키스하려 했으나 성유리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그의 입술을 피했다.그 행동에 박한빈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곧 그녀의 턱을 움켜쥐고 억지로 입을 맞췄다.성유리는 다시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지만 그는 틈을 놓치지 않고 성유리의 입을 벌려 깊이 키스했다.차 안은 점점 더 거칠게 흔들렸고 성유리는 마치 산소가 전부 빨려 나가는 듯 숨이 막혔다.하지만 그 순간에도 그녀의 정신은 명확하게 남아 있었다. 그의 입술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성유리는 끝내 말을 꺼냈다.“박한빈, 더럽지 않아?”그 말에 박한빈의 움직임이 멈칫하더니 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난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너야말로 너 자신을 더럽다고 생각하는 거야?”그는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이야기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을 마주한 순간, 박한빈의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졌다.그는 성유리의 손을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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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화

이날 밤 박한빈은 자신의 자제력과 품위를 모두 내던져 버린 듯했다.성유리 역시 더는 미련을 두지 않고 차에서 내렸다.심지어 옷매무시도 정리하지 않은 채 두 팔을 감싸안고 조용히 걸어갔다.차 문이 닫히고 박한빈은 바로 가속페달을 밟았다.검은색 마세라티는 이내 밤 속으로 사라졌다. 성유리는 이것이 아마도 그와의 마지막 만남일 것임을 직감했다....박한빈은 그대로 도연제로 돌아왔다.이곳에 온 것도 꽤 오랜만이었다.지난 두 달 동안 성유리가 시월파크에 더는 오지 않아도 그는 그곳에서 머무는 게 익숙해져 있었다.그가 갑자기 집으로 돌아오자 숙자 아주머니는 매우 기뻤다.“저녁은 드셨나요? 뭘 좀 준비해 드릴까요?”“아니요, 괜찮아요.”박한빈은 짧게 대답하며 발걸음을 재촉해 2층으로 올라갔다.그러다 복도 끝에 있는 방의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 방은 성유리가 쓰던 방이었다.성유리는 이혼할 때 자신의 물건만 챙겨갔고 남은 보석과 옷들은 그대로 남겨뒀었다.박한빈은 그 물건들을 치우지 않고 문을 잠가둔 상태였는데, 오늘은...숙자는 박한빈의 뒤를 따라가며 그의 시선을 발견한 후 급히 설명했다.“오늘 사모님께서 오셔서 방을 정리하라고 하셨어요. 계속 문을 잠가둘 수는 없다고 하시면서 보석과 옷들을 가져가셨습니다.”숙자의 말이 끝나자 박한빈은 곧바로 그 방으로 향했다.안에 있던 물건들은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침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깔끔한 침대 시트가 덮여 있었다.이제는 그저 집 안의 다른 손님방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마치 그 방에 아무도 살지 않았던 것처럼.박한빈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그때 그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단예진에게서 온 메시지였다.[박 대표님이 저에게 관심이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한 번 더 여쭤볼게요. 내일 저녁 식사 어떠세요?]박한빈은 잠시 휴대폰 화면을 응시하다가 방을 한 번 더 둘러본 후 짧게 답장을 보냈다.[좋아요.]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한 달 동안 내리던 잔잔한 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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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화

“네.”“그래. 유정이에게 줄 선물도 준비했으니 그때 같이 가져가렴.”김난희가 말했다.“진씨 집안의 그 애... 신분이 좀 탐탁지 않긴 하지만 성씨 집안의 일이니, 그저 둘이 행복하길 바랄 뿐이다.”김난희는 박한빈의 반응을 기다리며 말을 건넸다. 그러나 박한빈은 여전히 평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네”라고 짧게 대답할 뿐이었다.“약혼식에 성유리도 오겠지?”지금까지 침묵을 지키던 김서영이 불쑥 말을 꺼냈다.성유리의 이름은 박씨 집안에서 거의 거론되지 않았기에 그 이름이 나오자마자 다른 두 사람의 이마가 살짝 찌푸려졌다.“성유리가 성씨 집안과 더는 상관없지 않나?”김난희는 눈살을 찌푸리며 박한빈을 한 번 쳐다보았다.박한빈은 조용히 식사를 계속하며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김서영은 말을 덧붙였다.“그날 많은 기자들이 올 텐데, 성씨 집안이야 어떻게든 체면을 유지하겠죠.”“그렇겠지.”“그래서 내 생각인데 한빈이는 이번 약혼식에 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김서영이 말했다.“선물은 내가 전해주면 되니까.”말을 하며 그녀는 박한빈의 의견을 묻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박한빈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지만 김난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것도 괜찮네. 어차피 약혼식이니까 누가 가도 상관없지.”“전 다 먹었어요.”김난희의 말이 끝나자마자 박한빈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그럼 주말은...”“알아서 하세요.”박한빈은 이 주제에 더 이상 관심 없는 듯 말했다.“회사에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한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김난희는 박한빈의 뒷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김서영은 여전히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식사를 계속하고 있었다.주말은 금방 찾아왔다.약혼식은 진씨 가문의 저택에서 열렸다.정원에는 하얀 긴 테이블과 신선한 꽃잎으로 장식된 아치 프레임이 있었다. 성유정은 약혼식이라 웨딩드레스를 입지는 않았지만 옅은 파란색 드레스가 그녀의 몸매를 완벽히 살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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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화

하지만 박한빈은 여전히 성유정을 바라보지 않았다.그는 먼저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곧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한빈 오빠.”성유정은 참다못해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에는 서러움이 가득했다.그제야 박한빈은 정신을 차린 듯 그녀를 한 번 바라보고는 손에 들고 있던 선물을 건넸다.“축하해.”고작 축하해라니...성유정은 그가 마지막으로 해줄 말이 이렇게 가벼운 한마디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그녀는 손을 꽉 그러쥐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겨우 정신을 차린 듯 선물을 받아서 들었다.“고마워.”선물 상자를 받으며 성유정은 무심코 그의 손끝을 살짝 스쳤다. 하지만 그의 손끝은 차갑기만 했다.성유정은 고개를 들어 박한빈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그저 조용히 손을 내릴 뿐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었다. 그때 진무열이 성유정의 곁으로 다가왔다.“박 대표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그는 손을 내밀어 박한빈과 악수를 나누었다.“오늘 같은 중요한 날에 진 대표님은 안 보이시네요?”단예진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출장 중입니다.”진무열이 웃으며 설명했다.“회사에 새로운 프로젝트가 수성에서 시작돼서 그쪽으로 가셨어요.”단예진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중요한 프로젝트인가 보네요. 진 대표님이 직접 가셨다니?”진무열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옅은 미소만 지었다.박한빈은 문득 무언가를 깨달았다.약혼식의 주요 행사는 이미 끝났고 이제 남은 건 손님들과의 대화와 인사였다.금성의 대표적인 기업인 지화그룹의 대표 박한빈이 등장하자마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물론 더 주목할 만한 것은 단예진이 그의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모습이었다.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성씨 집안 쪽을 바라보았다.이제 보니 성씨 집안의 그 사람, 성유리는 이제 완전히 과거의 인물이 된 것 같았다.아니나 다를까, 오늘 성유리는 얼굴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 조롱거리가 될까 두려워서였을 것이다.박한빈은 주변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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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화

미화로 37번지로 향하던 길에 박한빈은 진무혁이 올린 SNS 게시물을 보았다. 위치는 수성이었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사진 구석에 하얀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는 사람이 성유리가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박한빈의 미간이 즉시 찌푸려졌고 그는 곧바로 말했다.“차 세워요.”택시 기사가 당황한 듯 그를 보며 무슨 말을 하려 할 때 박한빈이 휴대폰 화면을 꺼버리고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방향을 돌려서 지화 빌딩으로 가주세요.”택시는 미터기로 요금이 계산되니 택시 기사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그냥 중얼거리며 조용히 차를 돌렸다.박한빈은 무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앉아 있었다.기다란 손가락으로 휴대폰 화면을 몇 번 두드리다가 결국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수성으로 가는 비행기 표 예약해 줘요.”...성유리는 지금 수성에 있었다. 그녀의 작품이 영화로 각색되는 과정에 참여했지만 그녀의 역할은 그렇게 크지 않았기에 굳이 올 필요는 없었다.그러나 마침 성유정의 약혼식이 다가왔기에 그녀는 망설임 없이 이곳으로 왔다.그런데 진무혁이 함께 오리라곤 성유리도 생각지 못했다.“나도 약혼식에 가고 싶지 않아서.”레스토랑에서 진무혁이 그녀에게 말했다. 그의 말투는 마치 그녀와 같은 편에 서 있는 듯했다.성유리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진무혁이 와인잔을 들자 성유리도 잔을 들어 그와 가볍게 부딪쳤다.“너 정우 씨한테 요즘 연락 안 했어?”진무혁이 물었다.성유리는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오빠, 해조 그룹과의 계약은 끝난 거 아닌가요?”“그렇지. 하지만 정우 씨는 친구 같다고 할까, 요즘 기분이 축 처져 있던데 보는 내내 마음이 좀 안 좋더라고.”성유리는 잠시 침묵하더니 와인잔을 내려놓고 말했다.“정우 씨는 괜찮을 거예요. 분명 누군가 정우 씨를 진심으로 사랑해 줄 사람이 있을 거니까요.”“그게 너일 수는 없어?”성유리는 눈을 들어 진무혁을 보며 물었다.“우리 진 대표님 이제 중매까지 하려는 거예요?”진무혁이 웃으며 말했다.“그냥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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