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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화

Penulis: 송진
“네.”

“그래. 유정이에게 줄 선물도 준비했으니 그때 같이 가져가렴.”

김난희가 말했다.

“진씨 집안의 그 애... 신분이 좀 탐탁지 않긴 하지만 성씨 집안의 일이니, 그저 둘이 행복하길 바랄 뿐이다.”

김난희는 박한빈의 반응을 기다리며 말을 건넸다.

그러나 박한빈은 여전히 평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네”라고 짧게 대답할 뿐이었다.

“약혼식에 성유리도 오겠지?”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던 김서영이 불쑥 말을 꺼냈다.

성유리의 이름은 박씨 집안에서 거의 거론되지 않았기에 그 이름이 나오자마자 다른 두 사람의 이마가 살짝 찌푸려졌다.

“성유리가 성씨 집안과 더는 상관없지 않나?”

김난희는 눈살을 찌푸리며 박한빈을 한 번 쳐다보았다.

박한빈은 조용히 식사를 계속하며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김서영은 말을 덧붙였다.

“그날 많은 기자들이 올 텐데, 성씨 집안이야 어떻게든 체면을 유지하겠죠.”

“그렇겠지.”

“그래서 내 생각인데 한빈이는 이번 약혼식에 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김서영이 말했다.

“선물은 내가 전해주면 되니까.”

말을 하며 그녀는 박한빈의 의견을 묻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박한빈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지만 김난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것도 괜찮네. 어차피 약혼식이니까 누가 가도 상관없지.”

“전 다 먹었어요.”

김난희의 말이 끝나자마자 박한빈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럼 주말은...”

“알아서 하세요.”

박한빈은 이 주제에 더 이상 관심 없는 듯 말했다.

“회사에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한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난희는 박한빈의 뒷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김서영은 여전히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식사를 계속하고 있었다.

주말은 금방 찾아왔다.

약혼식은 진씨 가문의 저택에서 열렸다.

정원에는 하얀 긴 테이블과 신선한 꽃잎으로 장식된 아치 프레임이 있었다. 성유정은 약혼식이라 웨딩드레스를 입지는 않았지만 옅은 파란색 드레스가 그녀의 몸매를 완벽히 살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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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 기다리라는 성유리의 말에 박한빈은 30분을 하염없이 기다렸다.짧디짧은 시간 동안 박한빈은 곽단이 보내준 단체 사진을 이용해 성유리의 옛 선생님을 찾아냈다.그 시절 학교는 열악한 환경 탓에 대부분이 외부에서 파견된 교사들이었지만 다행히도 성유리의 담임은 아니었다.성유리의 담임선생님은 현재 50대가 넘었는데 그녀의 현재 신분이나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박한빈은 오히려 그런 상황이라야 제대로 성유리의 과거를 엿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래서 내일 선생님을 직접 만나기로 약속까지 잡아둔 상태였다.전화를 끊고 난 후, 그는 성유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계산하기 시작했다.그녀가 어디에서 밥을 먹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머릿속은 온갖 상상으로 가득 찼다.‘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교통사고? 아니면 식당에서 폭발이나 화재라도?’‘아니면 누군가에게 납치라도 당한 건 아니겠지?’박한빈은 스스로도 이 생각들이 터무니없다는 걸 알았지만 쉽사리 통제가 되지 않았다.사 온 솜사탕이 천천히 녹아내릴 무렵, 결국 그는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건 성유리였다.손에 키를 들고 있는 그녀는 막 문을 열려던 참이었던 것 같았다.“어디 가려고요?”성유리는 박한빈과 눈이 마주치자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박한빈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되물었다.“너 어디 갔었어?”“저요? 밥 먹으러 갔죠.”성유리는 이상하다는 듯이 박한빈을 가만히 쳐다보았다.“전화로 말했잖아요?”박한빈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그렇지만 성유리는 그런 그를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걸 내밀며 말했다.“아까 길에서 본 건데 이거 진짜 맛있더라고요. 한입 드셔볼래요?”성유리가 가리킨 건 이 지역의 특산 요리 같은 것이었다.떡과 비슷한 식감에 무말랭이와 파가 올려져 있었는데 맛은 의외로 달콤했다.박한빈은 성유리의 기대 어린 눈빛을 보고 마지못해 한입 베어 물었다.그런데 입안에서 퍼지는 독특한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11화

    “근데 그 박한빈이라는 사람은 다르더라. 내가 듣기로는 그 사람이 차고 있는 시계 하나만 해도 시내 아파트 몇 채 값이라던데? 그러니까 지서연이 나를 보고도 본척만척했던 거지. 저런 대단한 사람을 붙잡았으니 말이야.”“솔직히 내가 보기엔 걔가 너보다 더 예쁜 것도 아니야. 그러니까 혹시라도 한번...”곽단은 더 이상 가만히 듣고 있을 수 없어서 바로 엄마의 말을 끊어버렸다.“엄마, 미쳤어? 그 사람 이미 결혼한 사람이야.”“결혼했으면 뭐 어때? 이혼하면 되잖아? 게다가 지서연 걔 원래부터 깨끗한 애도 아니었잖니. 내가 늘 말하지만 남자들은 이런 거 신경 많이 쓴다니까?”“그런 식으로 따지면 나도 깨끗하지 않은 거네.”곽단이 냉랭한 태도로 반박했다.“엄마, 나도 전에 남자 친구 있었잖아. 잊었어?”“너... 그런 말 하니까 내가 더 화가 나잖아! 너 지금 그게 자랑이라고 떠들어? 네가 얼마나 천한 짓을 했는지 아니? 스스로 남자한테 들러붙어서 자기 모든 걸 줘 버리고 결국 어떻게 됐어? 걔는 널 차버리고 다른 여자랑 결혼했잖아! 결국 넌 공짜로 몸만 준 여자가 됐다고.”“누가 그래? 나도 그때 즐겼어.”“야! 너 진짜 내가 오늘 때려죽여야겠다.”여자는 참지 못하고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곽단에게 던지려 했다.하지만 곽단은 익숙한 듯 그런 공격을 피하며 계속 말했다.“그리고 하나만 충고할게. 박 대표한테 기대하지도 말고 더 이상 헛된 망상을 하지 마.”“뭐라고?”“엄마는 그 사람이 그냥 심심해서 이곳에 온 거라고 생각해? 박 대표님은 지서연의 과거를 조사하러 온 거야. 남자가 자기 아내의 과거까지 그렇게 신경 쓴다는 건 그만큼 여자를 많이 아낀다는 뜻이야.”“그러니까 엄마는 차라리 엄마가 옛날에 지서연한테 너무 심한 짓을 하지 않았기를 속으로 간절히 빌어. 그렇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거야.”...박한빈은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성유리가 방에 남겨둔 노트를 펼쳐보았다.사실 안에는 별다른 내용은 없었지만 여기저기 적힌 숫자들이 눈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10화

    “사실 전 지서연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야 돼요.”“이장님이 말하는 것들 다 믿지는 마세요. 서연이 양아버지는 정말 나쁜 사람이었죠. 겨울철에는 가끔 서연이를 집 밖으로 내쫓기도 했고.”“서연이가 중학교에 다닐 때, 한 번은 거의 옆 마을에 팔려 갈 뻔했어요. 그때 양아버지는 걔를 12살까지 키웠으면 이제 충분하다며 가족에게 보답할 때가 됐다고 했어요.”“서연이가 그때 그림 대회에 참가해서 상을 받고 상금을 받지 않았다면 아마 정말로 팔려 갔을 거예요.”“마을 사람들도 서연이에게 차가웠고... 이장님이 말한 것처럼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어.”“그리고 저도... 그 당시 지서연은 영양실조였지만 사실 꽤 예뻤어요. 남자들이 많이 좋아했죠. 그걸 보고 다른 여자들이 질투가 나서 서연이를 많이 괴롭혔어요. 저도 그중 하나였고...”“그래서 제가 말한 거예요. 서연이에게 사과해야 한다고.”“지금 서연이가 잘 살고 있다는 걸 보면 저는 정말 기뻐. 박 대표님도... 서연이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거겠죠?”곽단은 한 번에 많은 말을 내뱉었다.그녀는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박한빈에게서 무엇을 얻으려면 과거의 모든 것을 지우고 마을 사람들처럼 자기가 좋은 사람인 척 말을 꾸며야 한다는 것을.그러나 곽단은 박한빈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그것을 그대로 믿지 않을 성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리고 지서연은 지금 박한빈의 아내였다. 그러니 마을 사람들이 하는 말을 돌아가서 지서연에게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그래서 곽단은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느꼈다.“이 사진은 제가 가지고 있어도 별로 의미 없으니까 박 대표님에게 드릴게요.”잠시 뜸 들이던 곽단이 계속 말했다.“그리고 박 대표님께서 서연이한테 저 대신 미안하다는 말 좀 전해주세요.”“네.”박한빈은 짧은 대답만 내뱉었다.그때, 곽단의 어머니가 뒤에서 나왔고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걸 보고는 잠시 놀랐다가 이내 눈이 반짝였다.그러나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09화

    그런 날들을 성유리는 대체 홀로 어떻게 버텨낸 걸까?배도 제대로 못 채우고 하루하루 지석민의 협박 속에서 벌벌 떨며 살아야 했던 그 시간 동안 성씨 가문 사람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걸까?그들은 성유정을 진짜 딸처럼 아끼고 무용과 피아노까지 가르치며 키웠다.그래서 결국 성유정은 성유리보다 훨씬 더 귀한 집 딸처럼 보이게 되었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성유리의 촌스럽고 무례한 행동을 비웃었다.하지만 아무도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성유리는 단 한 번도 자기 인생이 원래는 그런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는걸.지금까지 살아온 그 10년이 사실은 애초에 잘못된 자리에 있었던 삶이란 걸.그때, 귀신처럼 성유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는데 박한빈은 마침 식탁에 앉아 있던 중이었다.주변 사람들은 잔을 들고 연신 술을 따라주며 극진히 대접해 줬고 박한빈은 그들이 무슨 속셈인지 이미 훤히 알고 있었다.길을 닦고 학교를 짓자는 말은 그냥 명분일 뿐, 그들이 지금 이렇게 그에게 들러붙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어떻게든 성유리와 인연을 맺어 박한빈으로부터 실질적인 이익을 얻어내기 위해서였다.그게 이들의 진짜 목적이었다.박한빈은 이런 상황이 익숙했기 때문에 능숙하게 응대하고 있었지만 성유리의 이름이 뜬 화면을 보는 순간, 문득 정신이 흐트러졌다.곧바로 정신을 다잡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를 받으러 나갔다.“지금 어디예요?”수화기 너머 들리는 성유리의 목소리에 박한빈은 잠시 망설였다.“밖에... 있어.”“누구랑 있는데요?”마을 사람들의 소란스러운 목소리는 밖으로 나와 조용한 자리를 찾아도 완전히 막을 수 없었고 당연하게도 수화기 너머로 그 소리가 성유리에게 전해졌다.고스란히 듣고 있던 성유리는 의아한 듯 물었다.“왜 이렇게 시끄러워요?”“음... 공사장 근처에 있어서 그래.”박한빈은 성유리에게 자기가 이 마을에 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크게 고민하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내뱉었다.“그럼 거기서 밥 드셨겠네요?”다행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08화

    “저기요! 거기 들어가면 안 돼요!”곽단이 급하게 뒤에서 소리쳤지만 박한빈은 그녀의 말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집 앞의 잡초가 워낙 무성했기 때문에 안쪽도 상태가 좋을 리 없었다.박한빈은 이미 집 안의 방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발길을 옮기려 할 때마다 잡초가 앞을 가로막아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그때 뒤에 있던 곽단이 조심스레 다가와 말했다.“혹시 뭐 찾으시는 거예요? 근데 이 집은 몇 년 전부터 방치된 곳이라 값나가는 건 다 누가 가져갔을 텐데... 이제 남은 건 하나도 없을걸요?”박한빈은 여전히 한마디 대꾸도 없이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았다.그리고 곧장 작은 골목을 돌아 집 옆쪽으로 향했다.다행히 창문은 이미 깨져 있었기에 그는 무리 없이 창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실내는 예상한 그대로였다.오랜 시간 비워져 있던 만큼 바닥이며 창틀이며 온통 먼지투성이였다.한 바퀴 방안을 둘러본 후, 박한빈이 마지막으로 시선을 멈춘 곳은 방 안에 덩그러니 놓인 책상 하나였다.오래되어 삐걱거리는 책상이었는데 어딘가 학교에서 쓰던 책상을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그 위엔 천 조각이 덮여 있었고 휴대폰 손전등을 비추어보니 작은 꽃무늬가 박혀 있었다.그리고 책상 옆 바닥에 내팽개쳐진 책 몇 권이 눈에 들어왔다.박한빈은 몸을 숙여 책들을 주워들었고 마침 그때 방문이 갑자기 열렸다.문이 열리면서 쌓였던 먼지가 우수수 쏟아졌고 그 소리까지 들려올 정도였다.뭔가 이상한 기분에 박한빈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그 순간, 앞장선 남자가 급히 다가오며 소리쳤다.“이런 데를 들어오시게 어떡해요! 미리 말씀만 해주셨으면 제가 먼저 정리라도 해놨을 텐데.”박한빈은 아무 말 없이 남자를 바라보았다.그제야 남자는 뭔가 깨달은 듯, 급히 손을 내밀었다.“아, 제가 소개를 깜빡했습니다. 저는 이 마을 이장, 지세찬이라고 합니다.”박한빈은 그와 짧게 악수를 나누며 대답했다.“그냥 궁금해서 한번 들어와 봤습니다.”“이 집은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07화

    화면 속 사람이 웃는 장면에 맞춰 가게 안의 여자도 따라 웃고 있었다.하지만 정작 어디가 웃기는지는 박한빈은 알 수 없었다.“거기서 왜 멍하니 있어?”여자는 화가 난 듯이 소리를 지르더니 카운터 위에 있던 장난감 상자 하나를 그대로 들고 상대의 얼굴을 향해 던졌다.“손님 온 거 안 보여!?”안쪽에 앉아 있던 여자는 원래 그 말조차 대수롭지 않게 흘려듣고 있었다.그렇지만 물건이 얼굴에 부딪히고 나서야 박한빈을 힐끔 쳐다보았다.그런데 단 한 번의 눈길 이후, 그녀의 얼굴빛이 확 바뀌더니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혹시... 당신은 그...”“아까 말했잖아. 이분은 지서연 남편, 큰 회사의 사장님이시라고!”여자는 다가가 딸의 팔을 세게 꼬집은 뒤, 박한빈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이쪽은 제 딸 곽단이에요. 서연이랑 같은 반 친구였답니다.”박한빈은 그저 고개만 끄덕거렸다.“그럼 제가 바로 이장님께 알리러 갈게요. 다만 지금 이 시간이면 다들 낮잠 자고 있을 수도 있어서 제가 직접 집마다 다녀볼게요. 곽단, 너는 얼른 사장님 모시고 마을 한 바퀴 돌면서 안내 좀 해드려!”이름이 불린 곽단은 마지못해 몇 걸음 앞으로 나섰는데 박한빈과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금세 시뻘겋게 달아올랐다.잠시 후, 곽단은 안내를 하려는 듯 앞장서며 천천히 입을 뗐다.“따라오세요.”박한빈은 별말 없이 그 뒤를 따라갔다.사실 두 사람이 굳이 안내하지 않아도 그는 처음부터 이 마을을 둘러볼 생각이었다.애초에 그것이 이곳에 온 이유이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가이드’가 하나 생겼다 해도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뉴스에서 본 적 있어요, 사장님에 대한 기사요.”마을을 걷던 중, 곽단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진짜로 여기까지 오실 줄은 몰랐어요…”“그 사람 집은 어딥니까?”곽단은 뜻밖의 질문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박한빈을 쳐다봤다.“당신 옛 동창 말입니다.”박한빈은 성유리라는 이름을 직접 말하고 싶지 않았고 지서연이라고 부르기도 싫었기에 그냥 동창이라는 단어로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06화

    여자의 말을 들은 박한빈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그저 침묵만 유지했다.하지만 그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기만 해도 그 존재감만으로 주변 공기가 묵직해졌다.여자도 그 기운을 감지한 듯, 얼굴에 띠고 있던 미소도 서서히 사라졌다.처음에는 자기가 너무 성급하게 말을 꺼냈나 싶었지만 순간, 박한빈이 입을 열었다.“좋습니다.”“다만 그 사람은 이쪽에 아직 일이 있어서요. 지금은 저희와 함께 갈 시간이 없습니다. 제가 먼저 다녀오는 게 좋겠네요.”박한빈의 말이 끝나자 여자 얼굴에 다시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좋아요, 좋아요! 그럼 이쪽으로 오세요!”원래 여자는 성유리 이야기를 미끼 삼아 박한빈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했었다.하지만 그가 이렇게 순순히 따라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게다가 여자 입장에선 성유리가 오든 말든 별 상관없는 일이었다.여자가 진짜 원하는 건, 오직 박한빈이 가진 권력이었으니까.지금처럼 성유리를 건너뛰고 박한빈과 직접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아까 하신 말씀 중에... 유리랑 이웃사촌이었다고 하셨죠?”가는 길에 박한빈이 먼저 물었다.여자는 처음엔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그러다 잠시 뒤에야 박한빈이 말한 성유리가 예전에 자신이 말했던 그 이웃임을 떠올렸다.여자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맞아요, 맞아요! 우리 집이랑 서연이 집이 바로 옆에 있었거든요! 어릴 때는 유리가 아빠한테 자주 맞고 저희 집으로 도망 오기도 했어요! 제가 그럴 때마다 우유랑 빵도 챙겨줬답니다!”물론 이건 전부 여자가 직접 지어낸 이야기였다.어차피 지금 이 자리에 성유리가 없으니 반박할 사람도 없으니 뭐라 말하든 여자의 마음대로였다.박한빈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조용히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여자는 그런 박한빈을 힐끗 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그리고 제 딸도요. 전에 서연이랑 같은 반이었어요! 둘이서 꽤 친하게 지냈다니까요. 근데 서연이는 워낙 특별한 집안 출신이잖아요. 그래서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05화

    여자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아직 촬영이 시작되기 전이라 현장은 조용했다.그렇기에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두 사람에게 쏠렸다.성유리는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즉시 미간을 찌푸렸다.그리고 여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거죠?”“내가 무슨 말을 할지... 너는 이미 알고 있잖아?”여자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이제는 재벌가 사모님이시라면서? 재벌 집안은 체면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과거에 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다들 알게 되면 어떨까? 그때도 지금처럼 네 곁에 있어 줄까?”말을 마친 여자는 성유리를 시험하듯 바라보았다.하지만 성유리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그녀의 눈에는 그 어떤 감정도 서려 있지 않았다.그 조용한 눈빛 하나만으로도 여자의 심장은 세차게 요동쳤다.마치 자신이 ‘위협’한 게 아니라 오히려 판단받고 있는 것만 같았다.여자는 재빨리 입을 열어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그 순간, 성유리가 먼저 입을 뗐다.“좋아요. 그럼 그렇게 해보세요.”성유리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다.그 태연한 반응에 여자의 얼굴이 굳어졌지만 성유리는 더 이상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그저 그대로 뒤돌아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그러나 이건 여자의 입장에선 명백한 도발이라고 느껴졌다.점점 더 화가 치밀어 오르려던 찰나,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거기, 뭐 하는 거야?”감독이 여자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몇 번이나 불렀는데 왜 대답이 없어? 빨리 자리로 돌아와!”여자는 잠시 멈칫하다 곧장 대꾸했다.“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되는데? 나 안 해!”말을 마친 여자는 곧바로 촬영장을 나와 버렸다.그렇지만 몇 걸음 채 가지도 않아 그녀는 문득 뭔가를 떠올렸다.그래서 곧장 택시에 올라탔고 그녀가 향한 곳은 박한빈이 머무는 호텔이었다.호텔 앞, 여자는 도착하자마자 휴대폰을 꺼내 들고 곧장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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