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성유리의 목소리가 집안에서 들렸다. “민재 씨, 밖에 누구 왔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박한빈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역시 내가 잘 못 찾아온 게 아니구나.’ 성유리의 집에 낯선 남성이 있다는 사실을 안 박한빈은 피식 웃더니 뒤돌아 떠나버렸다. ‘좋아한다면서 가능성이 없냐고 물을 때는 언제고 지금 저러고 있어? 나를 속이고 있었던 거야.’ 박한빈은 성유리가 만약 자신에게 깊은 감정이 있었다면 그렇게 깔끔하게 이혼을 해줄 리도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게다가 박한빈의 기억이 맞는 거라면 이혼 전, 성유리는 몰래 수많은 피임약을 복용했었다. 박한빈은 성유리가 정말 자신을 사랑했다면 그런 행동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성유리는 자기감정을 너무 잘 아는 여자여서 연성에서도 승승장구를 한다고 확신했다. 그날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여기저기 웃으며 인사를 하는 성유리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박한빈은 제일 먼저 봤었다. 익숙한 얼굴이 아니었다면 박한빈은 영상 속 성유리와 자신이 알던 성유리가 동일 인물이라고 느끼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전에 함께 참여했던 가면무도회에서도 신나게 놀던 성유리가 떠올랐다. 그래서 박한빈은 그 모습들이 전부 성유리의 진짜 얼굴이고 자신과 생활할 때 얼굴은 “가면”을 쓴 채 감췄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한빈은 어두운 안색으로 차에 올라타고는 기사에게 말했다. “출발하세요.” 그의 안색을 본 기사는 무슨 일인지 물어볼 용기조차 없어 묵묵히 시동을 걸었다. 한참 뒤, 박한빈은 핸드폰을 꺼내 들더니 먼저 서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앞으로 성유리에 관련된 일들은 저한테 보고할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드림 타운에 있는 집도 이젠 내놓으세요.” 자신의 할 말을 마친 박한빈은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시각, 성유리의 집. 정민재는 문을 닫고도 벨을 누르던 남자의 정체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분명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지만 이름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고 아무리 생각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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