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의 모든 챕터: 챕터 211 - 챕터 220

303 챕터

제211화

그때, 성유리의 목소리가 집안에서 들렸다. “민재 씨, 밖에 누구 왔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박한빈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역시 내가 잘 못 찾아온 게 아니구나.’ 성유리의 집에 낯선 남성이 있다는 사실을 안 박한빈은 피식 웃더니 뒤돌아 떠나버렸다. ‘좋아한다면서 가능성이 없냐고 물을 때는 언제고 지금 저러고 있어? 나를 속이고 있었던 거야.’ 박한빈은 성유리가 만약 자신에게 깊은 감정이 있었다면 그렇게 깔끔하게 이혼을 해줄 리도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게다가 박한빈의 기억이 맞는 거라면 이혼 전, 성유리는 몰래 수많은 피임약을 복용했었다. 박한빈은 성유리가 정말 자신을 사랑했다면 그런 행동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성유리는 자기감정을 너무 잘 아는 여자여서 연성에서도 승승장구를 한다고 확신했다. 그날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여기저기 웃으며 인사를 하는 성유리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박한빈은 제일 먼저 봤었다. 익숙한 얼굴이 아니었다면 박한빈은 영상 속 성유리와 자신이 알던 성유리가 동일 인물이라고 느끼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내 전에 함께 참여했던 가면무도회에서도 신나게 놀던 성유리가 떠올랐다. 그래서 박한빈은 그 모습들이 전부 성유리의 진짜 얼굴이고 자신과 생활할 때 얼굴은 “가면”을 쓴 채 감췄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한빈은 어두운 안색으로 차에 올라타고는 기사에게 말했다. “출발하세요.” 그의 안색을 본 기사는 무슨 일인지 물어볼 용기조차 없어 묵묵히 시동을 걸었다. 한참 뒤, 박한빈은 핸드폰을 꺼내 들더니 먼저 서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앞으로 성유리에 관련된 일들은 저한테 보고할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드림 타운에 있는 집도 이젠 내놓으세요.” 자신의 할 말을 마친 박한빈은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시각, 성유리의 집. 정민재는 문을 닫고도 벨을 누르던 남자의 정체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분명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지만 이름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고 아무리 생각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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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2화

박한빈은 이 세상에 어떤 규칙들이 정해져 있는 것만 같았다. 그 규칙은 바로 늘 속으로 행여나 진짜로 발생할까 봐 걱정하고 있던 일은 꼭 현실이 된다는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을 마주치기 싫어 요리조리 피해 다녀도 꼭 어딘가에서 의도치 않게 만나게 되는 규칙도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 시각, 박한빈은 무표정한 얼굴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여자를 보고 있었다. 오늘 여자의 옷차림은 평소보다 더 정갈하고 깔끔했다. 연한 파란색의 셔츠에 검은 치마를 입고 머리도 낮게 묶은 여성은 화장도 어젯밤보다 더 연하게 했다. 하지만 여성은 뭐가 그리 좋은지 환하게 웃으며 앞에 있는 남성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박 대표님?” 옆에 있던 사람은 박한빈의 지시를 기다리다 가만히 서 있는 그를 조심스레 불렀다. 박한빈은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걸어가려고 했지만 웬일인지 발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저분 조 대표님 아니에요?” 옆에 있던 사람이 박한빈의 시선을 따라 쳐다본 곳에서 조 대표와 그 여성을 발견했다. 성유리와 잔을 부딪치며 대화를 나누던 남자는 박한빈의 옆에 있던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봤다. 이내 박한빈을 발견한 남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가오며 인사를 건넸다. “박 대표님!” 성유리는 사실 아까부터 박한빈을 발견했지만 못 본척 하고 있었다. 박한빈은 성유리를 이곳에서 마주칠 줄 몰랐는지 미간이 찌푸려졌고 인사조차 하고 싶지 않아 하는 눈치였다. 성유리는 박한빈과 인사를 하기 싫었지만 결국 남성을 따라 몸을 일으키며 그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박 대표님, 오셨어요?” “박 대표님도 식사하시러 오셨습니까? 이것 참 우연이네요.” 조 대표는 박한빈의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며 말을 이어갔다. “사실 우리도 도착한 지 얼마 안 됐습니다. 박 대표님께서 괜찮으시다면 저희랑 함께 식사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게...” 박한빈이 뭐라 하기도 전, 그의 옆에 있던 사람의 표정이 굳어졌다. 필경 박한빈이 연성에 머무는 시간이 짧았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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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3화

하지만 박한빈은 마치 성유리의 속을 꿰뚫어 보는 사람처럼 그녀가 입을 떼기 전 먼저 말을 꺼냈다. “조 대표님이랑 성 대표님 두 분 많이 친하십니까?” 그의 말에 룸 안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눈만 껌뻑거리며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사람들은 문득 박한빈과 성유리의 관계가 떠올랐다. 조 대표는 등 뒤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 입을 떼지도 못했지만 성유리는 아무렇지 않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냥 친구 사이예요.” “그러시구나.” 박한빈이 말을 이어갔다. “그럼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다 똑같으니까 서로 어색해하지 맙시다.” 말을 마친 박한빈이 술잔을 들었고 사람들은 일제히 그를 따라 잔을 들었다. 성유리는 박한빈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몰랐지만 눈치껏 같이 술잔을 들 수밖에 없었다. 시원하게 술을 마신 박한빈은 또다시 조 대표에게 말을 걸었다. “제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남원의 항목이 조 대표님 회사 것이죠?” “네. 맞습니다.” 조 대표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박한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다 박 대표님 덕분이죠.” “저는 그 항목이 괜찮아 보이더군요. 마침 저도 비슷한 개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박한빈의 말에 맞은편에 앉아 있던 현 대표의 표정이 삽시간에 변했다. 성유리도 순간적으로 분위기가 싸하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조 대표는 현 대표와 경쟁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고 박한빈의 말에 그저 맞장구를 쳐주고 있었다. “그러십니까? 전에는 왜 이렇게 중요한 소식을 못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쉽지만 이번 저희 회사의 중점은...” “지화 개발. 조 대표님은 그저 저랑 협업하는 대상일 뿐입니다. 돈을 많이 투자하실 필요도 없는데... 혹시 저랑 함께 일할 의향이 없으십니까?” “그건 아닙니다!” 조 대표가 손을 내저으며 부정을 했지만 다른 말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그러자 맞은편에 있던 현 대표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박한빈에게 말했다. “박 대표님, 그 항목은...” “현 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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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4화

사실 성유리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오늘 모든 것이 완벽하게 흐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박한빈이 일부로 조 대표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어 성유리는 나설 수밖에 없었다. 성유리는 도대체 박한빈이 자신한테 무슨 원한이 있기에 이러는지 몰랐다. 하지만 성유리는 조 대표처럼 체면을 차라기 좋아하는 사람이 오늘 박한빈에게 당한 일을 언젠가 자기한테 돌려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유리는 억지로라도 일어서야만 했다. 박한빈도 성유리가 나서자 입을 꾹 닫았고 술잔을 손에 들고는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성유리는 또다시 잔에 술을 가득 따르고는 말했다. “마침 현씨 가문 성립 10주년을 기념하는 날짜가 다가오고 있으니 제가 먼저 오늘 이 자리에서 축하드릴게요.” 현 대표는 표정이 잔뜩 굳어있었지만 술잔을 손에 들었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성 대표님도 참 별말씀을.” 박한빈의 두 사람 사이의 대화를 듣다가 갑자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성유리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입을 뗐다. “성 대표님과 현 대표님 사이가 아주 각별해 보입니다?” “현 대표님이 저를 잘 챙겨주셔서 그래요.” “그렇다면 저와 현 대표님 사이 협업에 성 대표님이 작은 제안을 해주실 수도 있겠군요. 방금 저한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요즘 시간이 있으셔서 제가 모르는 일들을 알려줄 수 있다고.” 웃으며 말하는 박한빈에게서는 범접하지 못할 포스가 철철 흘러넘쳤다. 성유리는 처음으로 박한빈이 업무에 관해 토론을 하는 모습을 봤지만 그가 자신을 보는 눈빛이 하찮은 개미를 보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다들 박한빈의 눈치를 살피며 긴장하고 있었다. 박한빈의 말에 성유리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박 대표님께서 저를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 영광이네요. 그럼 오늘 이 자리에서 현 대표님을 대신해 담보를 해줘야겠어요.” “하지만 저도 제 자신을 잘 아는 타입이라 여기서 무슨 말을 하던 다 소용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주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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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5화

박한빈은 아무 말도 없이 성유리가 하는 행동을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 성유리는 박한빈이 더 이상 뭐라 하지 않자 술병 채로 손에 들고는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현장에 있던 다른 사람은 그 누구도 박한빈이 상 밑에서 두 주먹을 꽉 쥐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 화장실에 다녀온 성유리는 자기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했다. 지나가던 직원이 성유리의 상태를 발견하고는 다가와 그녀를 챙기려 했지만 성유리는 직원을 밀어내고는 쓰레기통에 마구 구토를 했다. 알코올의 쓴맛과 독한 냄새가 위에서부터 올라오기 시작하는 바람에 성유리는 위액까지 깨끗하게 토해냈다. 아직 기침이 제대로 치료되지도 않았던 터라 성유리는 콧물과 눈물까지 줄줄 흘렸다. 오늘 단아하고 청순한 느낌으로 신경 써서 한 화장마저 다 벗겨졌지만 성유리는 그런 것을 상관할 겨를도 없었다. “괜찮으세요? 119라도 불러드릴까요?” 옆에 있던 직원은 이런 경험이 풍부한 탓에 성유리의 창백한 안색을 보고는 핸드폰을 꺼내 신고하려고 했다. “아니요. 저 괜찮아요.” 성유리가 힘겹게 말하며 직원을 말렸다. “하지만...” “걱정마세요. 절대 여기서 쓰러지지는 않을 테니까.” 성유리는 직원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기에 애를 써 몸을 일으키며 비틀비틀 밖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오늘 안 신던 하이힐까지 신었고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더 몸을 가누기 힘들어했다. 엘리베이터에 오르기 전, 화분에 머리를 세게 부딪친 성유리는 생각보다 고통이 더 심하게 느껴졌다. 무언가에 맞은 듯 심한 고통이 밀려오는 머리보다 위가 더 아팠다. 하지만 성유리는 이런 곳에서 쓰러지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필경 이곳에는 성유리를 아는 사람도, 성유리가 아는 사람도 없었기에 쓰러지면 자신을 그 누구도 챙겨주지 않을 것 같았다. 어떤 남자의 손이 다가오는 순간, 성유리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손을 뿌리쳤다. 그러나 그녀의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듯이 그 남자는 성유리를 더욱 꽉 잡았다. 그때, 성유리는 정신을 다잡았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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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6화

박한빈은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성유리는 더 이상 서 있을 힘도 없었다. 그녀는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했지만 결국은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들어했다.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르 열렸고 정민재가 보이자 성유리는 긴장이 풀렸다. 성유리는 조 대표라는 사람의 의도를 잘 알고 있었다. 오늘 밤 비록 혼자 이곳으로 왔지만 성유리는 혹시 몰라 정민재에게 메시지를 보내 시간이 되면 자신을 데리러 와달라고 부탁했다. 정민재는 성유리의 위치를 알고 있었지만 식당 로비에서 그녀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었다. 성유리를 발견한 정민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곁에 있는 박한빈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정민재 쪽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간 뒤, 그대로 쓰러졌고 정민재는 그런 그녀를 급히 붙잡았다. “병원으로 가주세요.” 성유리는 고통을 꾹 참고 짧은 말을 내뱉은 뒤, 바로 기절해 버렸다. 정민재는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볼 기회도 없었고 쓰러진 그녀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 그 과정에서 정민재는 엘리베이터 안에 또 다른 남자가 있었던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박한빈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는데 그의 손은 성유리를 붙잡으려는 듯 공중에 경직된 채로 있었다. 시간이 꽤 흘러 두 사람이 사라진 후, 그는 천천히 손을 내리고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비록 미소는 띠고 있었지만 그의 눈에는 전혀 웃음기가 없었고 오히려 끝없는 암울함만이 가득했다. ... 성유리가 깨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병실에 누워 있었다. 그녀 곁을 지키는 사람은 오직 정민재와 그의 여자 친구뿐이었다. 여자 친구는 두 사람의 사이가 불안한 듯 옆에서 핸드폰을 보면서도 가끔 성유리를 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그녀가 먼저 성유리가 깨어난 것을 발견했다. 이내 정민재도 성유리가 깨어난 사실을 알아차렸고 다급하게 벨을 눌러 의사를 호출했다. “지금 몇 시죠?” 성유리가 깨어나자마자 바로 물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매우 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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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7화

“너희들 어젯밤 만나지 않았니?” 성시원은 성유리의 거짓말을 바로 알아차렸다. “...” 성유리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성시원이 입을 열었다. “지화랑 연성 쪽에 아마 큰 움직임이 있을 거다. 요즘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너도 잘 알겠지? 만약 같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꼭 붙잡아라. 그게 성리 그룹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너도 잘 알지?” “평생 지사에서만 썩을 생각은 너도 없지 않니? 이번 기회만 붙잡으면 네 능력을 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거야. 그때가 되면 나도 너를 당당하게 다시 회사로 불러올 거다. 아마 그때는 그 누구도 네가 우리 회사를 상속받는 것에 의견이 없겠지.” 성시원의 말을 빠르지도 늦지도 않았지만 달콤한 꿀 덩어리처럼 성유리를 유혹했다. 하지만 성유리는 성시원의 의도를 잘 알고 있었다. 절대 그가 순순히 성리 그룹을 자기한테 넘겨줄 리가 없었다. 성시원은 여전히 윤청하의 죽음을 누가 방관했는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껏 성유리를 옆에 남겨둔 원인은 그저 유일한 핏줄이기 때문이다. 성유리는 성시원의 의도를 알고 있었지만 단칼에 거절하지 않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도 아직은 잘 몰라서요. 그래도 곧 자세하게 알아볼게요.” “그래.” 성시원은 성유리한테 몸을 잘 챙기라고 대충 말을 하다가 이내 전화를 끊었다. 통화를 끝낸 성유리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성유리는 성시원이 이미 어젯밤 식당에서 그녀와 박한빈이 만난 사실과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아직 병원에 누워있었지만 성시원은 괜찮냐는 말조차 해주지 않았다. 이미 실망할 대로 실망한 성유리였기에 딱히 서운하지는 않았고 핸드폰을 옆에 툭 놓고는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무언가가 문득 떠오른 성유리는 핸드폰을 열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현 대표님. 저 성유리예요.” ... 성유리와 현 대표는 어느 한 찻집에서 만남을 약속했다. 남자의 나이는 성시원과 비슷했고 비록 성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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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8화

현 대표를 차까지 배웅하고 난 뒤, 성유리는 홀로 찻집 입구에 서 있었다. 뜨거운 바람과 선명하게 대비되는 입구의 에어컨 바람에 성유리는 목이 간질거려 버티기 힘들었다. 기침을 애써 참고 있던 성유리는 가방 안에서 목을 촉촉하게 해주는 사탕 하나를 꺼내 입에 넣었다. 그때, 회사에서 성유리에게 전화를 걸어 얼른 돌아오라고 명령했다. 회의의 내용은 전에 성시원이 성유리에게 했던 말고 비슷했는데 최근 시장이 크게 변동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업계에서 제일가는 지화 그룹에는 딱히 영향이 없었다. 박한빈 어머니의 일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그로 인해 박한빈은 “불효자”라는 별명까지 생겨버렸다. 사람들은 다들 박한빈이 스스로 김서영을 절벽 끝까지 밀어붙였다고 평가했다. 김서영의 애인이던 진성민이 죽고 그의 어머니는 일부로 기자들까지 동원해 가며 박한빈을 마구 욕했다. 박한빈은 이런 일들에 전혀 신경을 안 쓰는지 평소대로 자신의 일상을 살아갔고 심지어는 여유시간으로 새로운 여자 친구도 사귀었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박한빈의 모습에 그를 나무라던 사람들도 입을 꾹 다물었다. 박한빈이 이번에 연성으로 온 원인은 연성 교외에 있는 항목을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곳에 있던 폐공장이 없어지고 그 위에 규모가 큰 리조트를 건설할 줄은 박한빈도 예상하지 못했다. 원래 리조트가 지어진 곳에 연성 특유의 건물들이 있었다. 여행지를 더욱 개발한다는 이유와 교육과 의료 기술을 발전시킨다는 이유로 다 없애버렸다. 이런 장소를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이지 않은가? “성 대표님, 저 뭐 하나 생각난 거 있습니다.” 회의가 끝나자 정민재는 성유리를 급히 따라오며 말을 걸었다. 성유리는 뒤돌아 정민재를 쳐다보지도 않고는 물었다. “뭔데요?” “저번에 성 대표님 집 앞에 찾아왔던 그 남자 말입니다. 누군지 생각났어요!” “그래요? 누군데요?” “지화 그룹 박 대표님! 어쩐지 익숙하다 했습니다. 방금 자료들을 훑어보다가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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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9화

“우리 지금 신영 체육관 쪽에 있다. 박 대표님께서 너랑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싶다는 데 시간 있니?”  성유리는 고 대표의 말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네? 저랑 직접이요?” “응. 지금 어디니? 기사님보고 데리러 가라고 할까?” “괜찮아요. 저 오늘 운전하고 와서 혼자 갈 수 있어요.” 성유리는 박한빈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몰랐지만 성시원과 친하게 지내는 고명도의 말을 거절한다면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성유리는 아무리 가기 싫어도 꼭 오라는 장소로 향해야 했다. 박한빈과 고명도는 그 시각 배드민턴장에 있었다. 편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늘 올리고 있던 앞머리도 내려 평소와 달리 인상이 아주 순해 보였다. “유리 왔니?” 고명도는 성유리에게 빠르게 다가오며 그녀의 어깨를 툭툭 쳤다. “얘가 비록 회사에 온 지는 몇 개월밖에 안 됐지만 그래도 실력 하나는 뛰어납니다. 이번에 하시는 인주 프로젝트 항목에 제가 유리 의견을 들어보니...” “성 대표님도 배드민턴 잘 치신다고 들었는데?” 박한빈은 고명도의 말을 끊어버리며 성유리에게 물었다. 성유리도 고개를 들어 박한빈을 쳐다봤지만 그의 눈빛에서 어떠한 감정도 읽어내지 못했다. 그녀는 박한빈에게서 시선을 떼고는 천천히 입을 뗐다. “네. 그럼 박 대표님과 한 번 겨뤄볼까요?” 두 사람의 체력은 원래 차이가 크게 났지만 박한빈은 성유리를 조금이라도 봐주지 않았다. 몇 분 안 지나서 성유리는 너무 힘들어 숨을 거칠게 내쉬었고 위까지 아파 나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성유리는 박한빈이 지금 자신을 일부로 놀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직접 성유리와 애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녀를 조롱하려고 했던 것 같다. “박 대표님 실력이 너무 뛰어나신데요? 저는 상대가 안 되네요.” 숨을 고르고 난 후, 성유리가 이를 꽉 깨물고 박한빈에게 말했다. 박한빈은 아무 말도 없이 라켓을 땅에 던져버리고는 손목 보호대를 벗었다. “너도 꽤나 괜찮은데? 근데 박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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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0화

“유리야.” 화장실에 나온 성유리를 고명도가 불러 세웠다.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서 있었는데 방금 전, 성유리의 표현이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이번 프로젝트가 우리 회사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너도 알고 있지?” “네.” “그걸 아는 사람이 박 대표님한테 쌀쌀맞게 굴어?” 고명도는 굳은 얼굴로 성유리에게 따지듯 물었다. “박 대표가 지금 무엇을 암시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핑계 따위는 하지 마.” 인주 프로젝트같이 큰 일은 아직 초기에 진입해 있어 박한빈의 업무량이 얼마나 많을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 박한빈은 고명도의 요청으로 그들과 함께 운동도 하고 밥까지 먹었다. 성유리가 술을 권할 때, 박한빈이 그녀를 쳐다보던 눈빛은 눈먼 장님이 아닌 이상 누구나 다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성유리는 여전히 그의 “덫”에 걸려들려고 하지 않았고 고명도에게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전 이미 그 사람이랑 이혼했는데요.” 성유리의 대답에 고명도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 “이혼했는데 뭐? 그럼 너랑 전 대표, 그리고 조 대표는 부부 사이야?” 그의 말에 성유리는 매섭게 고명도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비록 그 사람들이 자신에게 어떤 생각으로 접근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고명도에게서까지 이런 말을 듣자 성유리는 전에 자기가 했던 수단과 방법들이 다른 사람 눈에는 이렇게 보였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눈에는 성유리가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들였던 노력과 성과들이 다 인간관계 덕분으로 보일 뿐이었다. 성유리는 두 주먹을 꽉 쥔 채 고명도를 째려보았고 그는 성유리의 눈빛을 발견하고는 말을 돌렸다.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란다.” “그럼 무슨 뜻이죠?” 고명도의 나이와 성시원의 나이는 비슷했기에 전에 명절을 보낼 때면 성유리도 가끔 고명도를 봤었다. 그때의 성유리는 고명도를 삼촌이라고 칭하기도 했을 정도로 두 사람은 꽤 친했다. 하지만 지금 성유리는 고명도를 삼촌이라고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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