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처럼 다가온 그 남자의 모든 챕터: 챕터 1 - 챕터 10

30 챕터

제1화 절름발이를 너랑 어떻게 비교하겠어?

DY 빌딩, 주차장.심하게 흔들리는 은색 아우디의 트렁크 안에서, 작은 틈 사이로 들려오는 남녀의 헐떡거리는 숨소리에 백채림의 심장은 마치 갈가리 찢기는 것만 같았다. 오늘 밤, 채림은 약혼자에게 비밀로 한 채 해외 일정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몰래 귀국했다. 약혼자의 트렁크를 알록달록한 풍선들로 꾸미고, 정성껏 차려입은 자신을 마치 선물처럼 내보이며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작은 트렁크 속에 몸을 숨기고, 손에는 한정판 데킬라 레이 925를 들고 말이다.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긴 기다림 끝에 겨우 잠금 해제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와 동시에 약혼자의 배신이 그녀의 눈앞에 펼쳐졌다.“원후 오빠, 오늘 오빠 생일인데, 백채림이 오빠 찾아오면 어떡해?”“흥, 네가 저질러 놓은 소송 때문에 지금쯤 골치 아파하고 있을 거야. 아직도 B국에서 정신없이 바쁠 텐데 어떻게 와?”“그렇다면 앞으로도 더 말썽 부려야겠네?”여자의 애교 섞인 말투에 남자는 사랑스럽다는 듯이 대답했다.“앙큼하긴!”“그럼 오빠는 이렇게 나쁜 내가 좋아, 아니면 능력 있는 오빠 약혼녀가 좋아?”곧이어 여자가 남자의 목에 팔을 감더니, 두 사람은 격렬한 키스를 나누기 시작했다.시간이 한참 흐른 뒤, 남자가 입을 열었다. “지독한 약 냄새가 진동하는 절름발이를 너랑 어떻게 비교해. 우리 부모님이 걔네 집 사업을 엄청 중시해. 걔 사업 능력만 아니었으면 내가 신경이나 썼겠어?”좁은 트렁크 속에서 채림은 결국 참아왔던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흘리고 말았다. 귓가에서 생생하게 들려오는 남녀의 목소리는 채림에게 너무도 익숙했다. 한 사람은 이틀 뒤면 자신과 약혼할 이원후였고, 다른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사촌 여동생 백사나였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이 자신을 등지고 이렇게 끔찍한 배신을 저지를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백채림은 무슨 목숨이 그렇게 질긴지! 애초에 우리가 꾸민 교통사고가 얼마나 완벽했는데, 어떻게 안 죽었지? 그래도 내가 미리 손을 써서 의사한테 약을 바꾸라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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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서프라이즈

MS 그룹 둘째 도련님 문윤재. 가수 겸 배우인 탑 연예인. 평판은 그닥 별로지만 워낙 잘사는 데다 대중들한테 인기가 많은 사람이다.최근 원후가 사나와 문윤재의 합작을 추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데, 하필 이때 소문의 문윤재와 잠자리를 가질 줄이야.채림은 눈을 반짝이더니 머리맡에 두었던 핸드폰으로 자신과 윤재의 사진을 마구 찍어댔다.비록 사랑에 눈이 멀어 원후 같은 쓰레기한테 당했지만 지금은 속상하다고 슬퍼할 때가 아니다. 생각 없이 그들에게 따지기만 할 때도 아니고. 지금은 어느 때보다 더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고작 그런 쓰레기가 내 인생에 영향을 끼칠 순 없지, 당한 대로 모두 돌려줄 거야.’원하는 걸 손에 넣은 채림은 아래쪽의 불편함을 참으며 옷을 챙겨 입었다. 그러고는 가기 전에 쪽지 한 장을 남겼다.철컥, 하는 문소리가 들리자 침대에 누워 있던 남자는 눈을 천천히 떴다. 이윽고 차가운 눈으로 침대 머리맡에 있는 쪽지를 바라봤다.[조만간 또 만날 거예요.]...채림은 문을 나서자마자 전화 두 통을 하고는 호텔 CCTV 영상 자료를 입수했다. 비록 고화질은 아니지만 자기를 호텔로 데려온 남자가 훤칠한 키의 소유자인데다, 얼굴을 꽁꽁 감싸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순간 상대가 톱스타 문윤재라는 확신이 더 강해졌다. 이 모습은 윤재가 카메라를 피하느라 감싸고 다니던 모습 그대로였으니까.채림의 눈빛은 순간 차갑게 식었다. 물론 본의 아니게 자기 몸을 내어주게 되었지만 어떤 의미로 보면 아주 땡잡은 셈이다.MS 그룹 둘째 도련님을 손에 넣으면 원후와 사나를 상대하는 건 식은 죽 먹기일 테니.채림이 이제 막 호텔 문을 나섰을 때,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자기야.]약혼자 원후의 목소리에는 가식적인 반가움이 섞여 있었다.[어제 서프라이즈 준비했던데, 고마워! 트렁크를 연 순간 풍선이 날아오르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나. 엄청 낭만적이었어. 마음에 들었어.]“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네.”채림은 눈살을 찌푸리며 울렁거리는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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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여자랑 잤죠?

잠시 뒤, 윤재가 팬들을 돌려보내고 대기실에 들어오자 채림이 먼저 다가가 인사했다.“안녕하세요, 백채림이라고 해요.”“백채림이요?”윤재는 살짝 귀찮은 듯 말했다.“어디에 사인해 줄까요?”채림은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우선 저 좀 볼래요? 저 모르겠어요?”“씁.”‘와, 몸매 죽이네.’윤재는 코에 걸려 있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채림을 위아래로 쭉 훑었다.“굿. 지팡이도 신선하고. 내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어요. 저녁에 사용하면... 꽤 재밌겠는데요?”윤재가 말하면서 지팡이를 툭툭 건드리자 채림은 언짢은 듯 손을 뿌리쳤다. “윽.” 윤재는 지팡이에 맞은 손을 입가에 갖다 대며 살짝 핥았다.“성깔 있네? 마음에 드는데?”그 순간 채림은 눈을 가늘게 접었다.‘왜 어제랑 완전히 다르지? 어제는 말도 안 하고 무게감 있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술 좋아하고 여자 밝히는 가벼운 한량 같네.’약간 넋을 잃은 채림을 보며 윤재는 눈을 깜빡였다.“오늘 밤에 나랑 같이 B국 갈래요?”그 말에 채림은 얼른 시선을 거두었다.“아니요. 다들 성인이니 어젯밤 일은 책임을 묻지 않을게요. 하지만 간단한 조건이 있어요.”“어젯밤? 왜 난 기억이 없죠?”윤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하, 역시 남자들이란.’입 싹 닦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윤재의 뻔한 속셈에 채림은 싸늘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내가 증거를 남겼으니 망정이지.’채림은 침착하게 핸드폰을 꺼내 자기는 희미하게 나오고 남자만 선명한 사진 두 장을 골라내 윤재에게 보여주었다.“어젯밤, B국 가든 호텔, 8868호실. 기억 안 나면 더 상세하게 설명해 줄까요?”놀란 듯 눈을 땡그랗게 뜨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윤재는 갑자기 눈을 반짝였다.“어... 어젯밤 B국 가든 호텔에 있었던 거 확실해요?”“호텔 CCTV 영상도 있어요.”채림은 귀찮은 듯 말했다.“간단한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돼요. 문윤재 씨한테 큰 피해는 안 갈 거예요. 하지만 끝까지 잡아뗄 생각이라면 나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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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솔로 파티

[발뺌할 생각하지 마요. 방금 미래 숙모를 만났어요. 숙모가 나를 삼촌으로 착각하던데요? 게다가...]“어떻게 만났는지 당장 말해.”지후는 윤재의 쓸데없는 말을 자르며 나직한 목소리로 명령했다.[크흠.]그러자 윤재도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방금 나눈 대화 내용을 그대로 전했다. 물론 자기가 채림을 놀린 부분은 생략하고 말이다. ‘내가 자기 여자를 놀렸다는 걸 알면... 으, 생각만 해도 소름 돋아.’[이제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해.]전화 건너편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는 별다른 감정이 들어있지 않았지만 윤재는 간담이 서늘했다....채림은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택시를 잡아 병원으로 향했다.백씨 가문은 의료업으로 이름을 날린 집안이었다. 물론 채림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가문도 몰락했지만, 여전히 의료 업계에서는 백씨 가문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채림은 그 길로 가장 믿음직한 병원의 정형외과 전문의를 찾아가 발을 검사했다.다행히 의사는 채림의 발 상태는 심각하지 않다는 진단을 내렸다. 잘못된 약을 사용하여 상처가 덧난 것이라 정상적인 약물 치료를 하면서 세심하게 관리하면 완치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면서 말이다.그 말을 들은 채림의 눈은 순간 차갑게 식었다. 진료받는 날이면 원후가 매번 채림을 병원에 데려갔다.‘뒤에서 손쓰려 매번 같이 가준 줄도 모르고.’그렇게 사랑했던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잔인할 수가 없었다.약을 챙긴 채림은 재활 치료를 받고,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이 시간이면 원후는 아마 그녀가 아직도 B국에 있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때문에 채림은 아예 입원 수속을 밟고 병원에 입원했다....다음 날 저녁, 재활 치료를 받은 채림은 곧장 퇴원 수속을 마치고 문라이트로 향했다. 원후가 채림을 위해 처녀 파티를 해주겠다던 곳이었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말을 들었을 때 원후가 자기를 생각한다고 흐뭇해했는데, 지금 보니 그것도 저를 모함하려는 계획의 일부분이었다.‘무조건 잘 대비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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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사생활

띵!핸드폰이 울리자 채림은 얼른 도착한 문자를 확인했다. 그건 다름 아닌 위층에서 대기하고 있는 친구 도지수가 보낸 문자였다.[모든 게 순조로워. 걱정하지 마.]도씨 가문은 비록 H시에서 사업을 크게 하는 건 아니지만 모든 명문가가 두려워하는 존재다. 그 이유가 바로 도씨 가문에 소속된 실력 있는 사립 탐정들 때문이다. 그런 가문의 딸인 지수가 오늘 밤 계획을 도와주고 있으니 채림은 안심이 됐다.핸드폰을 내려놓고 구석에서 휴식을 취하며 계획을 실행하려 할 때,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가 채림의 정신을 앗아갔다.“백채림은 절름발이인데 이씨 집안에서는 왜 이 결혼을 강행하려고 하지?”“그것도 몰라? 의료업계에 진출하려고 그러는 거잖아. 백채림을 이용해 먹으려는 거지.”주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창백해진 채림을 바라보며 사나는 속으로 기뻐했다.사실 사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채림을 비난하게 만들기 위해 미리 자신의 사람을 이 자리에 심어두었다.채림은 아무렇지 않은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가장 신나게 떠드는 사람이 사나의 절친 한나영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다.“백씨 가문 향수 사업은 망했지만 의료 사업은 아직 잘나가잖아. 백채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온 집안을 백채림 어머니 혼자 지탱하고 있는 걸 봐서 백채림 어머니도 참 대단해.”“다 늙어 빠진 여자가 무슨 수로 가업을 지탱하겠어? 다 몸 로비... 말 안 해도 알지?”나영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분위기를 흐렸다.다음 순간 ‘짝’ 하는 소리와 함께 채림이 나영의 뺨을 갈겼다.“아! 뭐 하는 거야?”나영이 비명을 지르자 채림은 싸늘한 눈빛으로 경고했다.“부모가 살아계시면 뭐 해? 인간다운 게 뭔지 가르쳐주지도 않은 모양인데. 그러니 수고스럽더라도 내가 가르쳐 주는 거야. 입 똑바로 놀려.”채림이 이토록 강한 태도로 나올 거라고 생각지도 못한 사나는 언짢은 기분을 억누르고 달려와 두 사람을 뜯어말렸다.“됐어, 그만해. 오늘 우리 언니 처녀 파티인데, 내 체면 좀 봐주라.”“네 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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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음치

만약 오늘 밤 일로 BM 그룹과 다른 그룹의 협력이 무산되면 이사진은 분명 모든 책임을 채림에게 돌릴 것이다.최근 사나의 아버지, 즉 채림의 셋째 삼촌 백성호가 주주들과 손을 잡고 채림의 어머니 민해란을 회장직에서 밀어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걸 봐서, 이 소동은 사나가 제 아버지와 손을 잡고 꾸민 게 틀림없었다.그런 작자들이 원하는 대로 되게 하면 해외에서 BM 그룹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머니한테 너무 미안해진다.그때 지수가 숨을 헐떡이며 채림에게 달려왔다.“채림아, 내가 우리 쪽 사람한테 말해뒀어. 이제 곧 화면 꺼질 거야.”“필요 없어.”채림은 맑은 눈으로 스크린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토록 소란스러운 환경 속에서 놀라울 정도로 침착함을 유지했다.그 모습을 본 지수가 오히려 놀란 듯 물었다.“확실해?”채림은 고개를 끄덕이며 덤덤하게 핸드폰을 꺼내 들더니 신속하게 이메일 계정에 접속하여 자료를 지수에게 보냈다.“네 사람들한테 이걸 아까 사진과 함께 재생하라고 해.”채림이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돌아오자 지수는 그제야 안심한 듯 자리를 떠났다.그때.“언니.”꿍꿍이를 숨긴 사나가 음흉하게 눈을 번뜩였다. 이번에 무슨 일이 있어도 채림을 절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겠다고 다짐한 사나는 채림을 걱정하는 척하며 은근슬쩍 망신 주었다.“어떻게 자기 즐거움만 챙기고 회사가 죽든 말든 나 몰라라 할 수 있어? 내가 아빠한테 들었는데 오늘 추진하던 계약이 BM 그룹에 엄청 중요한 거래.”“고작 사진 몇 장으로 오늘 계약이 무산된다고 어떻게 확신해?”채림은 지팡이를 짚으며 자세를 바꾸더니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우리 내기할래? 난 오늘 내가 계약 성사시킨다는 것에 걸겠어.”사나는 마치 우스갯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피식 웃었다.“언니, 그 말 지금 취소해도 늦지 않아.”“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대답이나 해. 내기할 거야 말 거야?”“좋아.”채림이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자 사나는 동의했다. 채림이 번복할까 사나는 얼른 조건도 걸었다.“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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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패배를 인정해야 하다

채림이 혼자 드림캐슬을 일궈 세웠다고 수군대는 게 내키지 않고 화가 났지만, 이철민과 장선화는 그저 웃는 얼굴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BM 그룹 원로 이사들도 다시 성사된 계약에 너무 기뻐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그때, 내색하지 않고 사람들의 두 얼굴을 지켜보던 채림이 교활한 눈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내기에서 졌으면 패배를 인정해야죠. 우리 다 함께 사나의 노래 한 곡 들읍시다.”청아한 목소리가 소란스러웠던 현장에 순간 파고들었다.채림의 귀띔 덕에 사람들은 방금 전 했던 내기를 떠올렸고, 연예인의 노래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기쁨에 하나둘 호응하기 시작했다.갑작스러운 상황에 사나는 얼른 손사래를 치며 발을 뺐다.“저, 저 오늘 목이 좀 쉬어서요.”“싱글 앨범도 낸 연예인이면서 노래 한 곡 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핑계 대지 말고 졌으면 패배를 인정해야지. 목이 쉬었어도 노래는 할 수 있잖아. 설마 지금껏 냈던 싱글 앨범이 직접 부른 게 아니었던 거야?”궁지에 몰린 사나는 이를 악물고 무대에 올라가 고분고분 마이크 앞에 섰다.곧이어 전주가 흐르자 사나는 작은 소리로 흥얼대기 시작했다. 사나가 작은 소리로 노래하자 무대 뒤에 있던 음향사도 따라서 음량을 낮추었다. 그 때문에 음을 이탈한 목소리가 그대로 사람들의 귀에 전해졌고 무대 아래는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이게 뭐야?”“듣고 있기 너무 괴로운데!”“예전에 냈던 싱글 앨범은 분명 엄청 듣기 좋았는데, 설마 다 가짜였어?”그제야 원후는 다급히 직원들에게 명령했다.“어떻게 된 일이야? 당장 오디오 꺼!”“죄송해요. 어떻게 된 이유인지 오디오에 문제가 생겨 꺼지지 않아요.”“당, 당장 가서 전원 끊어!”원후가 화를 내며 또다시 버럭 소리쳤다.다음 순간 전원이 끊기면서 현장은 암흑에 빠졌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람들은 또 수군대기 시작했다.“이원후가 백사나를 지켜주려고 너무 목숨 거는 거 아니야?”“그러게? 왜 자기 약혼녀보다 더 아끼는 것 같지?”“아까 백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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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상대가 누구지?

방에 있는 남자는 휠체어를 타고 있는데도 훤칠하고 늠름한 체격을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약간 병든 안색이었지만 잘생기고 아름다운 얼굴을 가리지 못했고, 장애가 있는 몸 역시 카리스마 있는 분위기를 숨기지 못했다.채림은 순간 눈을 가늘게 접었다.‘분위기만 보면 이 사람이 B국 가든 호텔에서 만난 그날의 남자인데? 문윤재보다 더 비슷하잖아!’그때 경호원 한 명이 다른 방에서 걸어 나와 채림에게 말했다.“문 대표님이 백채림 씨를 지금껏 기다리고 계셨습니다.”‘문 대표님?’소문에 의하면 MS 그룹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문씨 가문 둘째 문지후인데, 항상 신출귀몰하여 누구도 얼굴을 본 사람이 없다고 한다. 성정이 포악하고 오랫동안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데다, 장애인이라는 소문만 무성하게 돌고 있었다.채림은 지후가 왜 자기 방에 나타났는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H시가 원래부터 그의 구역이니까. 하지만 지후의 얼굴을 보니 자꾸만 의심이 들었다.남자의 거만한 두 눈에는 마치 건드리지 말아야 할 무언가가 숨어 있어 있는 듯했다. 게다가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자꾸만 채림의 시선을 끌어당겼다.지후는 그날 밤 기억 속의 남자와 너무 닮아 있었다.채림은 표정 관리를 하며 그날 밤 호텔에서 있었던 기억을 되짚어 보다가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그날 밤 남자는 분명 힘이 셌어. 그러니 절대 장애인일 리 없어. 만약 문지후가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다면 그날 밤 남자는... 역시 문윤재겠지?’채림은 확신이 들지 않았다.하지만 지후가 저를 보는 눈빛이 너무 복잡하다고 느껴졌다.“문윤재한테 한 제안 내가 동의하죠. 하지만 나도 조건이 있어요.”지후의 목소리는 채림의 생각을 끊어버렸다. 도도하고 차가운 목소리에 고귀함이 묻어 있었다.“네?”“문씨 가문에 며느리로 들어와요.”지후는 얇은 입술을 움직이며 차가운 목소리를 내뱉었다.“조용히 결혼해서.”“왜요?”채림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왜인지... 모르겠어요?”채림을 바라보는 지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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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결혼하기 싫어요

채림은 다시 지후 앞에 다가가 직설적으로 말했다.“죄송하지만 아까 제안은 받아들이지 못하겠네요.”하지만 지후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아까 누군가 이 방에 남자를 숨겨뒀어요. 아주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린 것 같던데요.”“문 대표님이 걱정할 일 아니에요. 제가 알아서 해요.”채림의 견결한 태도에 지후는 눈을 가늘게 접었다.‘총명한 머리로 내가 어젯밤 그 남자였다는 걸 알았을 텐데, 나랑 결혼하는 게 그렇게 싫나?’“내가 언제든지 한 명 더 데려올 수 있어요.”약간 위험한 분위기를 띤 지후의 목소리에 채림의 눈은 일순 어두워졌다.“지금 협박하는 거예요?”“나도 협박하기 싫어요.”지후는 느긋하게 말했다.“동의만 한다면 MS 그룹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거예요. 백씨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싶지 않나요? 내가 채림 씨 발도 고쳐줄 수 있어요.”자비를 베푸는 듯한 어조에 채림은 순간 기분이 언짢았지만 지후가 내건 조건은 어느 하나 할 것 없이 모두 채림의 약점을 건드렸다.채림은 온전히 힘이 들어가지 않는 자신의 왼발을 바라봤다.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어떻게 반격할 건데? 그 양심 없는 연놈을 어떻게 상대할 건데?’‘셋째 삼촌의 세력이 점점 BM 그룹 이사회를 삼키고 있어 정리하는 데도 시간이 걸릴 텐데, 나한테 주어진 시간이 그렇게 많을까?’채림은 숨을 들이켜더니 다시 물었다.“어떻게 치료해 줄 건데요? 얼마나 걸리죠?”“여기로 가면 의사가 침술로 치료해 줄 거예요. 사흘이면 자유롭게 걸을 수 있을 거예요.”지후는 말하면서 테이블 위에 명함 한 장을 던졌다.‘사흘?’채림의 눈초리가 파르르 떨렸다.채림의 부상은 이미 2년이나 지체되었다. 게다가 알고 지내던 의사도 언제 완치될 수 있는지 확답을 주지 않았는데, 사흘 내로 완치할 수 있다니?‘어이없네.’하지만 너무 확신에 찬 남자의 표정 때문에 채림은 희망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만약 정말 그런 명의가 있다면 왜 본인부터 치료하지 않았죠?”“믿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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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간통 현장을 잡으려다 되레 당하다

채림은 날카로운 눈빛을 거두고 일부러 놀란 듯 물었다.“무슨 일이에요? 왜 다들 여기로 왔어요?”“너 깨워주려고 왔지. 너 오늘 원후랑 약혼식이잖아. 얼른 일어나 치장해야지.”셋째 숙모 진미애는 채림을 밀치며 맨 처음 방 안에 비집고 들어왔다. 그러고는 이내 어질러진 방안을 빙 둘러보더니 침실 안 커다란 침대에 시선을 고정했다.그곳 주위에는 옷이 이곳저곳 널브러져 있었고 이불이 불룩 올라와 있었다.“아유, 너도 참, 얼른 준비해야지. 이따가 스타일리스트가 곧 올 텐데.”진미애는 말하면서 막무가내로 침실에 쳐들어갔다.그 뒤로 채림이 바싹 따라 들어가며 말했다.“제가 알아서 정리할게요.”“숙모가 도와줄게.”진미애는 채림의 비밀을 까발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때문에 거의 달리다시피 침대로 달려가 이불을 확 걷어 바닥에 내팽개쳤다.하지만 이불이 방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진미애는 침대 위를 멍하니 바라보며 굳어버렸다.침대는 너무나도 깨끗했고 그토록 바라던 외간 남자는 없었다.진미애는 너무 수상해서 목을 한껏 움츠리더니 의아한 시선으로 남편 백성호를 바라봤다.‘사나가 분명 백채림 방에 외간 남자가 들어왔다고 했는데? 남자는 어디 있지?’“여긴 제가 알아서 치울 테니 셋째 숙모는 숙모 딸이나 신경 써요.”채림은 이불을 주우며 비아냥거렸다.하지만 채림의 말에 담긴 뜻을 알아채지 못한 진미애는 뒤돌아 백성호에게 물었다.“사나는 왜 아직도 안 깨어났대? 이상한데? 내가 가볼게.”백성호가 진미애를 데리고 옆방으로 향하자 채림은 얼른 뒤따르며 사람들을 부추겼다.“우리도 가볼까요?”“...”사람들은 너도나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그도 그럴 게, 오늘 분명 원후와 채림이 약혼식 날인데 아침 댓바람부터 대신 증명해달라는 백성호 부부한테 끌려 여기까지 올라왔으니 이상할 만도 하지.대체 뭘 증명해달라는 건지. 답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은 한편으로 의심하면서도 마지못 해 채림의 뒤를 따랐다.그때 사나 방 앞에 도착한 진미애가 여분 카드키를 꺼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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