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Y 빌딩, 주차장.심하게 흔들리는 은색 아우디의 트렁크 안에서, 작은 틈 사이로 들려오는 남녀의 헐떡거리는 숨소리에 백채림의 심장은 마치 갈가리 찢기는 것만 같았다. 오늘 밤, 채림은 약혼자에게 비밀로 한 채 해외 일정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몰래 귀국했다. 약혼자의 트렁크를 알록달록한 풍선들로 꾸미고, 정성껏 차려입은 자신을 마치 선물처럼 내보이며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작은 트렁크 속에 몸을 숨기고, 손에는 한정판 데킬라 레이 925를 들고 말이다.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긴 기다림 끝에 겨우 잠금 해제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와 동시에 약혼자의 배신이 그녀의 눈앞에 펼쳐졌다.“원후 오빠, 오늘 오빠 생일인데, 백채림이 오빠 찾아오면 어떡해?”“흥, 네가 저질러 놓은 소송 때문에 지금쯤 골치 아파하고 있을 거야. 아직도 B국에서 정신없이 바쁠 텐데 어떻게 와?”“그렇다면 앞으로도 더 말썽 부려야겠네?”여자의 애교 섞인 말투에 남자는 사랑스럽다는 듯이 대답했다.“앙큼하긴!”“그럼 오빠는 이렇게 나쁜 내가 좋아, 아니면 능력 있는 오빠 약혼녀가 좋아?”곧이어 여자가 남자의 목에 팔을 감더니, 두 사람은 격렬한 키스를 나누기 시작했다.시간이 한참 흐른 뒤, 남자가 입을 열었다. “지독한 약 냄새가 진동하는 절름발이를 너랑 어떻게 비교해. 우리 부모님이 걔네 집 사업을 엄청 중시해. 걔 사업 능력만 아니었으면 내가 신경이나 썼겠어?”좁은 트렁크 속에서 채림은 결국 참아왔던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흘리고 말았다. 귓가에서 생생하게 들려오는 남녀의 목소리는 채림에게 너무도 익숙했다. 한 사람은 이틀 뒤면 자신과 약혼할 이원후였고, 다른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사촌 여동생 백사나였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이 자신을 등지고 이렇게 끔찍한 배신을 저지를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백채림은 무슨 목숨이 그렇게 질긴지! 애초에 우리가 꾸민 교통사고가 얼마나 완벽했는데, 어떻게 안 죽었지? 그래도 내가 미리 손을 써서 의사한테 약을 바꾸라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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