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381 - Chapter 390

471 Chapters

제381화

오후 여섯 시, 시연은 마지막 환자를 진료하고 진료실을 정리했다.양석현 교수의 진료는 정해진 수량이 있었고, 하루에 볼 수 있는 환자 수도 한정되어 있었다.시연이 손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기환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생 많았어요. 이제 가면 될까요?” 기환이 말했다.“형수님, 서두를 필요 없어요. 형님이 금방 온다고 하셨거든요.”“네?”시연은 순간 멈칫했다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유건 씨가 온다고요?”말하면서 그녀는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았다.목소리는 부드럽고 가벼웠다.“그럼 좀 기다려야겠네요.”20분 뒤, 유건이 도착했다.“형님.”유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시연에게 다가왔다.시연은 책을 내려놓으며 환하게 웃었다.“왔어요?”“어디 다쳤어?”유건은 시연 앞에 반쯤 무릎을 꿇으며 다급하게 물었다.그리고 손을 뻗어 여자의 다리를 살피며 다시 한번 물었다.“어느 쪽이지?”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치맛자락을 걷어 올리려 했다.시연은 깜짝 놀라 유건의 손을 막았다.“유건 씨!”“응?”유건은 태연하게 눈썹을 올렸다.“걱정하지 마, 우리밖에 없어.”이미 기환과 다른 직원들은 조용히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오른쪽 다리예요.”시연은 조용히 입술을 깨물며 손을 풀었다.“별거 아니에요. 살짝 긁힌 정도예요. 내가 부주의해서 그런 거고요.”유건은 꼼꼼하게 살펴본 후, 더 심각한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했다.“이제 곧 엄마가 될 사람이니까, 더 조심해야 해.”“그래요...”시연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유건 씨가 또 아이에 대한 이야기했어.’ ‘그렇다면... 이 기회에 다음 출산 검사 일정에 대해 말해도 될까?’시연이 고민하는 사이, 유건이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렸다.“오늘은 특별히 집 말고 밖에서 먹자.”시연은 유건의 행동에 놀라면서도 웃었다.“좋아요. 당신이 결정해요.”차를 몰아 향한 곳은 ‘영복루’였다.시연의 취향을 고려한 유건은 꼼꼼하게 메뉴를 주문했다.“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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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2화

순간, 유건은 기쁨과 놀라움에 휩싸였다.심지어 무의식적으로 되물었다.“진짜?”시연은 오히려 긴장이 풀린 듯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진짜예요. 뭐 하러 거짓말하겠어요? 당신은 내 남편이잖아요.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게 잘못된 일이에요? 아니면, 하면 안 되는 일이에요?”맞는 말이었지만, 유건은 여전히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잠시 생각한 후, 그는 조용히 물었다.“그럼... 노은범보다도?”유건은 기억하고 있었다. 얼마 전, 술에 취했던 밤. 시연이 자신을 데리러 왔을 때 했던 말을.그녀는 노은범을 사랑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인 걸까?’시연은 대답하지 못했다.사실, 유건과 은범을 같은 기준으로 비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고 대표님, 사모님. 음식을 준비해도 될까요?”그 순간, 시연은 눈에 띄게 안도하며 답했다.“네, 들어오세요. 배가 고프네요.”“네, 사모님.”직원이 음식을 들고 들어오자, 유건은 살짝 눈썹을 올렸다. 그는 시연이 일부러 화제를 피하는 게 뻔히 보였지만, 굳이 들추진 않았다.‘노은범은 과거일 뿐이니, 시간이 지나면 더 깊이 묻혀 사라질 거야.’...두 사람은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자기 전, 시연은 유건의 품속에서 나지막이 물었다.“혹시... 내일 바빠요?”“응?”유건은 생각하다가 답했다.“그렇게 바쁘진 않을 거야.”그는 결혼 준비로 한동안 정신이 없었으니, 최근 일부러 여유를 두고 있었다.그리고 결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매일 늦게 들어오는 것도 좋지 않았다.시연은 기분이 좋아졌다.“그럼 내일 날 데리러 올 수 있어요?”그녀는 퇴근 후 산부인과 검진을 예약해 두었다. 만약 유건이 데리러 온다면, 자연스럽게 검진을 함께할 수 있을 터였다.“좋지.”유건은 별다른 고민 없이 수락했다.“내가 데리러 갈게.”시연의 눈빛이 반짝였다.여자의 사소한 기쁨이 유건에게도 전해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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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3화

[소미야, 이건 양호천 감독님이 직접 부탁하신 거야. 넌 아직도 감독님의 영화에 출연하고 있잖아. 앞으로도 신경 써야 한다고!]조애린은 소미를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유건도 다 듣고 있을 테니, 차라리 확실하게 말하는 게 나았다.[고 대표님, 처음에 소미를 양호천 감독님의 작품에 넣어주신 것도 대표님이셨잖아요. 이 바닥이 원래 그렇게 돌아가는 거, 잘 아시죠? 언제나 강자에게 붙고, 약자를 밀려나는 곳이라는 걸요...][지금 대표님이 결혼한 이후로 소미가 기댈 곳이 없어졌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요. 오늘 양호천 감독님의 영화가 개봉하는 자리에, 감독님이 대표님을 초대한 것도 그걸 확인하려는 의도인 거라고요. 만약 대표님이 안 오시면...]조애린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섞였다.[그럼 소미의 입장이 난처해지는 거예요.][그만해!]소미가 조애린의 핸드폰을 빼앗으려 했다.하지만 조애린은 개의치 않았다.[고 대표님, 소미는 더 이상 대표님께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해요. 그런데... 대표님은요? 이 정도 배려도 못 해주시는 건가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화가 끊겼다.아마도, 소미가 전화를 끊어버린 모양이었다....유건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한참을 고민한 후, 다시 핸드폰을 들고 시연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 그는 병원에 있는 시연을 데리러 가기로 했지만, 이제는 약속을 어길 수밖에 없었다.[여보세요.]시연이 전화를 받았다.[벌써 도착한 거예요? 생각보다 빠르네요.]유건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조금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여보, 갑자기 일이 생겼어. 오늘은 당신을 데리러 갈 수 없을 것 같아.”잠시 정적이 흘렀다.시연의 목소리가 처음보다 조금 가라앉았다.[아,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죠. 일도 중요하니까... 난 퇴근하면 혼자 갈게요.]기환이 함께 있으니, 유건이 크게 걱정할 건 없었다.“최대한 일찍 돌아갈게.”그는 영화 시사회에 잠깐 얼굴만 비추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네, 그럼 끊을게요.]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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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4화

때가 되면 상황을 보고 결정할 일이었다. 어쩌면 더 이상 수액을 맞을 필요가 없을지도 몰랐다.“그래.”오선화는 다소 누그러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부부끼리 상의한 거네? 좋아, 일단 세 번 처방할 테니까 맞아 보고 결정하자.”“감사합니다.”오선화는 처방전을 적으면서도 잔소리를 놓치지 않았다.“다음번엔 꼭 고 대표님이랑 같이 와. 아기가 배 속에 있다고 해서 아무것도 모를 거라 생각하면 안 돼. 부모가 다정해야 건강하게 자란다니까.”“네, 교수님 말씀대로 할게요.”시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오늘 밤, 유건에게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번에는 분명 함께 올 수 있을 것이다.출산 검진이 끝난 후, 시간이 꽤 남아 있었다.“진아야, 우리 밖에서 저녁 먹자. 오늘따라 훠궈가 당기네.”“좋지!”진아는 흔쾌히 동의했다.“먹고 나서 영화 한 편도 보고 갈까?”“완전 찬성!”두 사람은 곧장 시내로 향했다.훠궈집에 자리를 잡고 앉자, 진아가 두리번거렸다.시연이 웃으며 물었다.“뭐 찾아?”“네 보디가드.”진아가 투덜거렸다.“어? 아까까지 따라왔잖아. 어디 갔어? 설마 가버린 거야?”“아니.”시연은 미소 지으며 설명했다.“기환 씨는 원래 이런 거 전문이야. 평소엔 안 보이지만 필요하면 바로 나타나지. 신경 쓰지 마. 우린 그냥 맛있게 먹자.”“오... 완전 프로네. 신기하다.”두 사람은 웃고 떠들며 식사했고, 시연은 영화 티켓을 예매했다. “무슨 영화야?”“양호천 감독님의 신작. 오늘 개봉했어.”양호천은 업계에서 실력파 감독으로 유명했다. 그의 작품이라면 기본적으로 믿고 볼 수 있었다.“기대되는데?”영화관은 같은 건물 13층에 있었다.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극장으로 올라갔다.하지만 진아와 시연이 도착하자마자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졌다.“뭐야? 사람 엄청 많네.”진아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지나가는 관객에게 물었다.“저기요, 오늘 무슨 날이에요?”“몰랐어요? 오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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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5화

“어? 고유건이잖아.”진아가 중얼거렸다.“이 영화, 네 남편이 투자한 거야? 그래서 오늘 산부인과도 못 온 거야?”“아마... 그렇겠지?”시연은 모호하게 답했다. 사실, 유건의 사업에 대해 그녀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그가 오늘 ‘일이 생겼다'고 한 것도, 이 영화 투자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잠시 후, 예상치 못한 현실이 시연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유건의 바로 뒤를 따르는 사람은 바로 장소미였다.진아는 본능적으로 시연을 쳐다보았다.“장소미? 이 영화에 출연했어?”“나도 몰랐어.”시연의 입가에 만연했던 미소가 굳어졌다. 그녀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예매한 영화였기에, 출연진을 확인해 보지도 않았다. 그럼 유건이 오늘 이곳에 온 진짜 이유는?“잠깐, 검색해 볼게.”진아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검색했다.[화도...]주연 배우 명단에는 장소미의 이름이 없었다.다만, 특이하게도 ‘특별 출연’이라는 항목이 있었다.“특별 출연?”진아가 눈썹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이 영화 촬영한 지 꽤 됐는데, 언제 들어갔대? 이런 특별 출연은 그냥 ‘백' 아니야?”시연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 인맥을 이용하는 게 죄는 아니잖아.”무대 위, 소미는 유건과 나란히 서 있었다.두 사람은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유건은 살짝 몸을 숙이며 신사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그러다가, 유건이 미소를 지었다.소미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더 크게 웃었다.그 모습을 본 진아는 속이 뒤집힐 지경이었다.“이게 뭐야, 진짜!”시연은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그녀를 바라봤다.“이 영화, 계속 볼 거야?”진아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시연의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나도 같이 가!”“죄송해요, 지나갈게요.”상영관 안에는 사람들이 많아 빠져나가기 쉽지 않았다.마침, 무대 위에서 시선을 돌린 유건이 그 모습을 포착했다.관중 속에서도 단번에 시연을 찾아냈다.남자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시연이가 여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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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6화

“유건 씨.”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는데, 소미가 뒤쫓아 와 유건의 곁에 나란히 섰다. 언뜻 보기엔 오히려 둘이 더 잘 어울리는 한 쌍 같았다. “지 선생님.” 소미는 뛰어왔는지 숨이 약간 가빴고, 미안하다는 듯 어색하게 웃었다. “영화 보러 오셨어요? 진작 알았으면 제가 미리 표라도 챙겨둘 걸 그랬네요...” 하지만 소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시연은 마치 그녀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진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진아야, 가자.” “어, 응...” 완전히 무시당한 소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민망하게 웃으며 유건을 바라봤다. “유건 씨, 지 선생님 기분이 안 좋아 보이네요. 제가 무슨 말실수라도 했나요?” “아니.” 유건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동시에 손을 뻗어 시연의 손목을 잡았다. 시연은 곁눈질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놔요.” 하지만 유건은 당연히 놓을 생각이 없었다. 깊은 주름이 잡힌 미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끝났어. 같이 가자.” “그래요?” 시연은 비웃듯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 시선엔 묘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누가 저렇게 애타게 보고 있는데요? 나 때문에 오늘 밤 계획을 망칠 필요 없어요. 난 이만 가볼 테니까, 두 사람은 하던 거나 계속해요.”그 말속엔 분명한 비꼼과 조롱이 섞여 있었다. “여보...” “지 선생님.” 소미는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렇게 말할 필요 있어요? 제가 지 선생님한테 미운털 박힌 거 알아요. 하지만 유건 씨는 지 선생님 남편이에요.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는 거 아닌가요?” “소미 씨.” 유건이 소미를 말리려 했다. “그만해.” “아니, 말하게 둬요.” 시연은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나도 더 듣고 싶으니까요.” “흥...” 소미는 코웃음을 쳤다. “오늘은 제가 출연한 영화의 시사회가 있는 날이에요. 유건 씨는 저를 응원해 주러 온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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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7화

시연의 목소리는 한층 더 차가워졌다. “아니, ‘만약’이 아니에요. 지금 여기서 분명하게 말할게요. 난 사과하지 않을 거예요, 절대!!” 시연은 유건의 손을 뿌리치고 돌아섰다. “진아야, 가자.” “그래!” 그 순간, 유건은 얼어붙었다. “유건 씨, 이게 다... 미안해요. 저 때문이에요...” “소미 씨 잘못 아니야.” 유건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시연이가 소미 씨한테 너무 심한 말을 했어. 내가 대신 사과할게. 오늘 밤엔 정말 미안했어. 난 먼저 가볼게.” “유건 씨!” 남자를 더 이상 붙잡을 수도 없어서 소미는 그저 유건이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는 쓸쓸한 듯한 표정이었지만, 그 속엔 어쩔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스쳤다. ‘둘이, 싸웠네.’ ...주차장에서 유건은 시연을 따라잡고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기환아, 진아 씨를 데려다줘.” “네, 형님.” 시연은 순식간에 다른 차에 태워졌다. 그리고 남자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게 느껴졌다. ‘이제 본격적으로 화를 내려고 하는 건가?’ ‘...’“오늘 일은 내 잘못이야.” 뜻밖에도, 유건이 먼저 사과했다. “당신이 알면 기분 나빠할 거 같아서 숨겼어. 그런데도 결국 들켜버렸네.” 시연은 창밖을 바라보며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여보.” 유건은 여자의 어깨를 잡고 돌려세웠다. “숨긴 건 내 잘못이야. 하지만 당신은 오해하고 있어. 장소미한테 그런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고. 오늘 밤, 나랑 그 사람은 단둘이 있는 시간조차 없었어.” 그는 계속 설명하려고 했지만, 시연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유건 씨, 내가 장소미한테 한 말, 당신한테도 그대로 돌려줄게요.” “친구라는 명목으로 미련을 남길 행동은 하지 마요.” 이 날카로운 일침 때문에 유건의 표정이 굳어졌다. “너무 심하게 말하는 거 아니야?” 그는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나랑 장소미가 한때 결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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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8화

유건은 혼자 남아 있는 것이 지루했고, 아까 일도 계속 신경 쓰였다. 결국 시연을 달래야겠다고 생각하며 서재로 향했다. 그는 여자의 뒤로 다가가 허리를 감싸 안았다. “또 책 보고 있어? 아까 깜빡했는데, 저녁은 제대로 먹었어?” 가까이 다가가자, 시연은 남자에게서 은은한 여성 향수를 맡을 수 있었다. ‘난 향수 안 쓰는데...’ 그렇다면 이건 장소미한테서 묻어온 향기였다. “먹었어요. 진아랑 같이.” 시연은 태연하게 유건을 밀어내고, 다시 펜을 들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간간이 필기를 이어갔다. 너무나 성의 없는 대답. 시연이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 유건은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랐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할 말은 다 했으니까.하지만 어떤 것들은 그가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함부로 약속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늦었어.” 유건이 다시 입을 열었다. “슬슬 잘 준비해야 하지 않아?” “먼저 자요. 이 두 장만 보고 들어갈게요.” 시연은 여전히 남자를 보지 않은 채, 담담하게 대답했다. 더 이상 말을 걸어도 반응이 없을 것 같았다. 그녀를 몇 초간 지켜보던 유건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어서 조용히 방으로 돌아갔다. 유건이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시연은 이미 침대에 기대어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는 시연 옆에 누우며 팔을 뻗어 그녀를 안으려 했다. 그러나 시연은 조용히 몸을 틀어 피하며, 핸드폰을 침대 옆 탁자에 올려놓고, 그 자세 그대로 누워 잠을 청했다. 여자의 등을 바라보며, 유건의 미간은 더욱 깊게 주름졌다. 결국 그날 밤, 유건은 쉽게 잠들지 못했고, 한참 뒤에야 간신히 눈을 감았다. 하지만 다음 날, 그가 눈을 떴을 때 시연은 먼저 일어나 있었다. 시연은 이미 아침 식사까지 마치고, 서재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유건은 식사를 끝낸 후, 그녀를 찾아갔다. “여보, 같이 나갈까? 오늘은 몇 시에 끝나? 그 시간에 맞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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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9화

근처 두 블록에 걸쳐 차들이 멈춰 서 있었고, 차량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럼 어떡해요? 차 안에 다친 사람도 있는데, 빨리 병원 가야 할 거 아니에요!” 운전기사가 급히 다가와 승객들을 진정시켰다. “여러분, 진정하세요. 현재 교통경찰이 정리 중이고, 구급차도 곧 도착할 예정입니다.” “맞아요. 조금만 기다려 봐요. 우리보다는 앞쪽이 더 심하게 부딪혔대요.” “조금만 더 기다려 보죠.” 시연은 이마를 누르며 실소했다. ‘하... 앞으로 외출할 땐 진짜 길일을 확인하고 나가야 하나.’ 다행히도, 곧 경찰이 도착해 승객들을 한 명씩 차에서 내리게 했다. “일렬로 서서 이쪽으로 이동하세요. 교차로에 구급차가 대기 중이니 병원까지 태워 드릴 겁니다.” 승객들은 하나둘씩 차에서 내려 구급차를 기다리며 줄을 섰다. “시연아!” 시끌벅적한 인파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연이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 노은범이 서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땐 아닌 줄 알았는데, 가까이 와서 보니까 정말 너였네!” 은범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이마에 난 상처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쩌다 이마가 이렇게 된 거야?”“별거 아니야.” 남자의 얼굴이 심각해지자, 시연은 일부러 가볍게 웃어 보였다. “좌석에 부딪힌 거야. 심각한 문제는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곧바로 되물었다. “넌 괜찮아?” “멀쩡해.” 은범이 뒤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길게 늘어선 차들이 멈춰 서 있었다. “내 차는 저쪽에 있어. 사고엔 휘말리지 않았지만, 꼼짝없이 막혀서 움직이지 못하는 중이야.” “앞쪽 사람들! 빨리 좀 움직여요! 구급차를 타야 한다고요!” 뒤쪽에서 누군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시연도 더 머뭇거릴 수 없었다. “은범아, 나 구급차 타야 해...” “같이 가자.” 시연이 끝까지 말하기도 전에, 은범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팔을 잡았다. 그는 시연이 혹시라도 거부할까 봐, 덧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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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0화

핸드폰 너머로 전해지는 시연의 말에, 유건의 감정은 점점 더 불안정해졌다. 아내에게 사고가 났다면, 자신은 남편으로서 당연히 걱정해야 했다. 하지만 시연은 기가 막히게도, 이런 상황에서도 유건을 미치게 했다. 특히 시연의 입에서 나온 ‘바쁘면 안 와도 된다’는 그 한마디.‘도대체 지시연 눈에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남편이었길래, 아내와 아이의 생사가 달린 상황에서도 무관심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분노가 극에 달한 순간, 유건은 오히려 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나한테 말은 왜 한 거야?]예상치 못한 반응에, 시연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이내 담담하게 대답했다. “나중에 집에 갔을 때, 내가 없으면 찾을 것 같아서요...” ‘하. 참나...’ 유건은 소리 없이 비웃었다. ‘그래, 당연히 찾겠지.’ ‘하지만 내가 너한테 ‘그 정도 의미’밖에 안 되는 거야?’ 이 순간, 남자의 감정이 폭발했다. [지시연, 일부러 그러는 거지?][어제 일 때문인가? 일부러 날 엿먹이려고?] “뭐라고요...?” 시연은 어리둥절한 듯 반문했지만, 유건은 더 이상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이건 우연이 아니야.’‘이 여자, 지금 나를 벌주고 있는 거야!!’ ‘그래, 인정하지. 처음 잘못한 건 나니까.’ 유건은 겨우 분노를 억눌렀지만, 날카로운 말투로 말했다. [기다려. 곧 갈 테니까.] “네.” 전화를 끊고 나서도, 시연은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왜 저렇게 화를 내지? 내가 귀찮아서 그런 건가?’ ‘그럼 안 오면 되잖아. 난 와달라고 한 적 없는데.’ ‘...’ “시연아.” 은범이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잠시 밖에서 통화하느라 자리를 비웠던 모양이었다. 은범이 의자를 당겨 앉자, 시연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은범아, 너 바쁘지 않아? 나 혼자 있어도 괜찮아.” 은범은 손목시계를 한 번 보고 나서, 태연하게 말했다. “고 대표님이 오면 갈게. 아마 곧 도착하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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