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391 - Chapter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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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1화

시연은 순간 당황했다. ‘벌써 도착했다고?’ 은범도 기환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봉지를 손에 쥔 채,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고 대표님 오셨네. 그럼 난 가볼게.” “오늘... 고마웠어.” 시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는 약봉지를 등 뒤로 숨기듯 들고 있었다. 마치 시연이 보지 않길 바라는 것처럼. 한참 망설이다가, 결국 무심한 척 한마디 더 했다. “은범아, 몸 잘 챙겨. 건강이 제일이야.” “알지.” 은범은 살짝 미소 지으며, 순간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멈췄다. 대신, 차분히 말을 이었다. “난 간다. 잘 있어.” “응... 잘 가.” 그 순간, 병실 문이 열렸다. 유건과 은범. 둘의 시선이 맞닿았다. 짧지만 묘한 기류가 흐르는 사이, 은범이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고 대표님.” 이어서 간결하게 설명했다. “사고가 난 곳을 지나고 있었는데... 마침 거기 있더라고요.” 그 한마디로, 왜 자신이 여기 있는지 설명을 끝냈다. 그리고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고, 유건을 지나쳐 병실을 빠져나갔다. 유건은 무표정하게 은범을 보내고, 천천히 시연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시연은 시선을 피한 채, 문 쪽을 향해 있었다. 은범이 나가는 순간, 그녀는 남자의 손에 들린 약봉지를 확인했다. 어렴풋이 그 물체가 보였다. ‘수면제...?’ ‘잠을 잘 자지 못하는 거야? 그 정도로 심한 건가?’ 시연이 잠시 생각에 빠진 순간, 유건이 낮게 웃음을 흘렸다. “허.” 이것이 비웃음이었다. “뭐 그렇게까지 아쉬워? 한참 바라보네.” “기환이한테 다시 불러오라고 할까? 아직 멀리 못 갔을 텐데.” 유건의 말투에는 짙은 조롱이 묻어 있었다. 그 순간, 시연은 천천히 몸을 돌려 침대에 누웠다. ‘하... 진짜 피곤하다.’ 유건은 눈을 크게 떴다. ‘이 상황에서 대놓고 무시?’ ‘어제까지는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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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2화

“지시연!!!” 유건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리고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붉어졌다. “정말 죽고 싶어?” “뭐라고요?” 하지만 시연은 전혀 기가 죽지 않았다. 오히려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당신은 장소미를 만날 수 있는데, 나는 은범이를 만나면 안 돼요?”“그래! 유건이 고함쳤다. “난 해도 되지만, 당신은 안 돼!” 남자의 목소리가 병실을 뒤흔들었다. 순간, 공간이 얼어붙었다. 시연의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난 안 된다고?’ ‘너무나도 뻔뻔한 이중잣대...’ 순간,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더 이상 참을 이유도, 참을 필요도 없을 것 같아서 단숨에 이불을 젖히고 일어나, 떨리는 손으로 의자에 걸쳐둔 가방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 “형수님, 어디 가세요?” 기환이 당황하며 길을 막아섰다. 그러나 유건이 차갑게 명령했다. “놔둬.” “가고 싶으면 가라고 해.” “나한테 마음도 없는 여자를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잖아?” ‘좋아, 가서 전 남자 친구나 만나보라지. 딱 잘 어울리는 커플이잖아.’ 이 말을 듣자, 시연은 차갑게 비웃었다.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면서,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인 척. 그녀도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기환을 피해 몸을 돌려, 병실을 빠져나갔다. ...“하...” 유건은 미간을 깊이 찌푸렸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려고?’ 시연이 병실에서 나가며 가방을 꼭 쥐고 있는 걸 보니, 집으로 돌아가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기환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형님... 진짜 안 따라가실 겁니까?”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유건은 여전히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따르릉— 그때, 병실 한쪽에서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시연의 핸드폰이었다. 그녀는 너무 급히 나가면서 핸드폰을 두고 갔다. 유건은 무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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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3화

유건은 순간 해명할 말을 잃었다. 시연이 어젯밤 일을 꺼내자, 그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이 여자 말이 맞았어. 내가 잘못했어.’ ‘난 변명할 여지도 없어.’ 유건은 입술을 꽉 다물었다가, 결국 체념한 듯 팔을 뻗어 시연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뭐 하는 거예요?!” 시연이 놀란 눈으로 남자를 쳐다봤다. “내가 잘못했어.” 유건은 조금 전까지의 날카로운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당장 병원부터 가자. 정밀검사하고, 영양수액도 맞아야지.”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시연을 품에 안고 병실을 나섰다. 산부인과. 오늘은 원래 검진일이 아니었지만, 유건은 사고까지 겪은 시연을 그냥 둘 수 없었다. 시연이 반대할 틈도 없이, 강제로 정밀검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그는 결과지를 보며, 조용히 숨을 삼켰다. ‘이게 영양수액을 맞아야 하는 이유였어?’ ‘산모와 태아의 건강을 위해 보충해야 할 필수 영양소...’ ‘시연이는 알고 있었는데, 나는 지금까지 전혀 알지 못했어...’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시연의 팔에 주사를 놓았다. 시연은 조용히 침대에 누웠고, 유건은 침대 옆에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랜 침묵 끝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언제부터 알았어?” 시연은 유건이 무엇을 묻는지 단번에 알아챘다. “1, 2주 정도 됐어요.” “그럼 우리가 결혼하기 전부터였네.” 유건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는 시연이 검진을 받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결과에 관해 묻지 않았다. 시연도 말이 없었으니, 당시의 유건은 당연히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이제야 알게 됐다. 시연 배 속의 아이가, 주수보다 작다는 사실을. 그래서 시연에게는 영양 공급이 필요했던 거다. 하지만, 시연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를 신뢰하지 않아서인가?’ 유건은 씁쓸한 기분으로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나한테 말 안 한 이유가,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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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4화

“나가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올게.” “그래요.” 시연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지만, 유건이 병실을 나가는 뒷모습을 보고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방금... 저 남자, 뭔가 힘들어 보였어.’ ‘혹시... 내가 아이가 작다는 걸 말하지 않아서?’ ‘하지만, 본인의 아이가 아니잖아?’ 병원 밖. 유건은 담배를 한 개비 꺼내 입에 물고, 주지한과 통화했다. 신강대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가 단순한 사고인지,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으니까. [형님, 겉으로 보기엔 그냥 사고로 보입니다. 하지만 더 철저히 조사해 볼까요?] “그래. 이 일은 네가 직접 챙겨.” [네, 형님.]사실, 유건이 괜한 의심을 하는 건 아니었다. 사고가 난 그 시간에, 하필이면 시연이 버스에 타고 있었다. 너무 기막힌 우연 아닌가? CA국 쪽에서 시연을 노리고 있다는 걸 유건도 알고 있었다.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두 번째 시도를 안 할 거란 보장은 없었다. [형님, 그리고...]지한이 머뭇거렸다. “할 말 있으면 해.” [예...] 그는 다소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집사님께 확인했는데, 사모님께서 오늘 하루 종일 집에 계셨고, 점심을 드신 후에야 외출하셨다고 합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유건의 눈빛이 변했다. ‘점심 먹고 나가서, 바로 사고?’ 즉, 시연이 외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고를 당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유건은... 시연이 은범과 함께 있었다고 단정 지었다. 유건은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이 한심해졌다. “알겠어.” 유건은 짧게 대답하고, 담배를 비벼 껐다. 그리고 미묘한 기분으로 병실로 돌아섰다. 병실 안. 영양수액이 거의 다 떨어져 갈 무렵, 간호사가 와서 바늘을 빼주었다. 그리고 그때, 유건이 병실로 들어왔다. 조용히 침대 곁에 앉아, 시연의 손을 잡고 솜뭉치를 눌렀다. “앞으로 외출할 땐, 기환이를 데리고 다녀.” 그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한테 화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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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5화

다음 날, 유건은 여느 때처럼 시연보다 일찍 일어났다.시연이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유건이 왕성애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앞으로, 이모님은 하루에 다섯 끼에서 여섯 끼 정도 준비해 주세요. 한 끼 양은 너무 많지 않게요.”오선화 교수는 유건에게 당부했다. 이렇게 먹어야만 아이에게 살이 붙을 수 있다고.아이는 임신 주수에 비해 작았다. 영양제를 맞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임산부 본인의 몸 관리가 가장 중요한 법이었다“네, 알겠습니다.”고씨 가문의 자손이 걸린 일이니, 왕성애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도련님, 걱정하지 마세요. 다 기억해 두겠습니다.”“수고가 많으십니다.”유건이 뒤돌아보니 시연이 서 있었다.그는 시연에게 몇 마디 당부했다. “병원에 있을 때도 식사 좀 잘 챙겨 먹어. 그리고 외출할 땐 꼭 정기환을 챙기고.”“알겠어요.”시연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철없이 굴거나 투정을 부릴 사람이 아니니까.‘정말 착하네.'유건은 여자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 “난 간다. 요즘 한가하니까 저녁엔 내가 데리러 갈게.”“네.”둘 다 어제의 약속을 어긴 일은 언급하지 않았다.이렇게 넘어가면 된 거다. 부부는 매일 티격태격하면서 살아가는 거니까. ...오늘 시연은 당직이 아니라 시간이 여유로웠다.심폐 프로젝트팀의 연구자료를 정리하고, 사용한 진료차트를 포장해 의무 기록실에 보냈다.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시연은 외래 진료실을 지나치다가 문득 지동성을 보게 되었다.그는 환자복을 입고 있었고, 혼자가 아니었다. 간호사와 함께였으니, 검사를 받으러 온 듯했다.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지동성의 안색은 전보다 더 안 좋아 보였다.시연은 잠시 망설였다. ‘못 본 척할까?’“시연아!”하지만 이미 지동성은 먼저 시연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시연은 마지못해 입꼬리를 올렸다. “검사하러 오셨어요?”“응.”지동성은 딸을 보자 기뻐하는 듯했지만, 자신의 병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그리고 딸을 위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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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6화

“네, 그런 셈이죠.”시연은 가볍게 웃으며 애매하게 답했다.간호사는 시연의 반응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지 선생님도 외과 의사니까 아시겠지만, 이 정도 상태면 간 이식 말고는 답이 없어요. 매번 치료받아도 기력만 소모될 뿐, 결국 버티는 셈일 뿐이에요.”“네, 감사합니다.”시연은 진료차트를 간호사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신경 좀 써 주세요.”“걱정하지 마세요. 잘 돌볼게요.”간담췌외과를 나오자, 시연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다.‘이제 방법이 없는 건가? 정말 내가 우주랑 간을 기증해야 하나?'그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지금까지 그 사람이... 나와 우주를 어떻게 대했는데?’‘이렇게 쉽게 용서한다고?’ ...오후가 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아직 5시도 되지 않았는데, 유건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여보세요.”[곧 병원 도착해. 오늘은 일찍 끝내고, 이따 할아버지 뵈러 가자.]시연은 이견이 없었다. “네, 알았어요.”두 사람은 원무과 쪽에서 만나기로 했다.그곳은 외과동과 VIP동, 그리고 주차장과 가까워서 유건이 번거롭게 오갈 필요가 없었다.유건이 도착했을 때, 빗줄기가 더욱 거세졌다. 하지만 시연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에, 그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시연이를 데리러 갈까?’하지만 우산을 안 가져왔기에, 간호사실에 가서 우산을 빌릴까 싶었다.“유건 씨.”유건이 간호사실로 향하려던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뒤돌아보니 장소미였다. 그녀는 손에 검사 결과지를 들고 있었다.유건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일이야? 어디 아파?”“제가 아니에요.”자신이 오해받은 걸 깨달은 소미는 황급히 손을 흔들며 말했다. “우리 아빠 검사 결과예요.”전 장인어른에 대한 이야기라니, 유건은 어쩔 수 없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지 사장님이 많이 안 좋으셔?”“네.”소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손에 든 결과지를 유건에게 내밀었다.“아빠 간에 문제가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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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화

소미는 애절한 눈빛으로 유건을 바라보았다. 여자의 눈동자에는 넘칠 듯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유건 씨도 아직 저를 잊지 못한 거죠? 그렇죠?”유건은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한 뒤, 소미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손을 떼어냈다.그 순간, 마치 무너지는 듯한 표정이 된 소미는 힘없이 속삭였다. “유건 씨?”유건은 단 한마디만 남겼다. “소미 씨, 나 결혼했어.”과거가 어떻든, 유건은 이제 아내에게 충실해야 했다.“흑...”소미는 얼굴을 감싸 쥐고 흐느꼈다.유건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꼭 해야 할 말이 있었다.“앞으로 소미 씨 일은 지한에게 맡겨. 지한에게 연락하면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야.”이제 두 사람이 직접 연락을 주고받을 이유는 없다는 뜻이었다.“유건 씨.”소미는 손을 내려놓고, 유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한테... 단 한 번이라도 마음이 있었어요?”유건은 순간적으로 굳어졌고, 곧 시선을 피했다. “지금 와서 그걸 묻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있어요! 저는 유건 씨의 대답이 필요해요.”소미는 붉어진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있었어요? 없었어요?”하지만 유건은 끝내 답하지 않았다. 침묵만이 흐를 뿐이었다.남자의 침묵 속에서, 소미의 마음은 점점 재가 되어가는 듯했고, 입술이 떨렸다.“없었던 거네요... 그렇죠?”유건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도 좋을 것이 없었다.“내가 미안해. 앞으로 무슨 일이든, 소미 씨 부탁이라면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도울게.”그렇게 마지막으로 소미를 바라본 뒤, 그는 돌아섰다.“흑... 흑...”남자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소미는 조용히 눈물을 삼켰다.유건은 뒤돌아보지 않았고, 심지어 두 걸음 정도 빠르게 걸었다.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시연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그런데, 시연은 이미 밖에 서 있었고, 우산을 접으며 빗물을 털고 있었다.유건의 가슴이 순간적으로 철렁했다. ‘언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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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8화

시연은 문득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장소미를 아주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어떻게 이렇게 자연스럽게, 다정한 남편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혹시... 정말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는 건가? 그런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 거야?’시연은 자신에게 물었다. 그녀는 절대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더 이상 묻고 싶지도 않았다.계속 이 문제를 들추는 것도 무의미했다.“조금만 기다려줘요.”시연은 결국 타협했다. “이 페이지만 다 읽고요.”“그래.”유건은 그녀의 책을 힐끗 보았다. 몇 줄 남지 않은 페이지였다.“천천히 봐. 기다릴게.”그는 한쪽으로 몸을 돌려, 책장에 꽂힌 책들을 무심히 훑어보았다.시연이 마지막 문장을 읽고 다가왔다. “다 읽었어요.”“응.”유건은 들고 있던 책을 덮고 책장에 도로 꽂으려 했다. 그 순간, 책 사이에서 무언가가 툭 떨어졌다.책갈피처럼 보였다.“뭐예요?”시연은 반사적으로 몸을 숙여 그것을 줍기 위해 손을 뻗었다.“가만있어.”유건이 단호하게 제지하며 그녀를 흘겨보았다. “배도 점점 커지는데, 왜 자꾸 허리를 숙여? 우리 애 엄마가 이렇게 덜렁대서야 되겠어? 다행히 아빠는 믿음직하지만 말이야.”그는 한 손으로 시연을 부축하며 다른 손으로 책갈피를 주웠다.시연은 잠시 멍해졌다‘방금 뭐라고 했어? ‘아빠’...? 자기 자신을 가리킨 거야?’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어?”유건이 주워 든 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책갈피가 아니라, 보석 감정서였다.“이게 여기 끼어 있었네.”“뭔데요? 나도 볼래요.”시연이 궁금해하며 손을 내밀었고, 유건은 거리낌 없이 내주었다.“보석 감정서야.”서류에는 사진도 포함되어 있었다.한눈에 보기에도 아름다운 나비 모양이었다.당연히 진짜 나비가 아니라, 나비 모양의 머리핀이었다.시연은 기억력이 좋았고, 금세 떠올렸다.“나비 머리핀?”며칠 전, 유건이 시연에게 말했던 바로 그 머리핀이었다.나비를 좋아하는 여자, 심지어 머리핀까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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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9화

“잠깐만...”시연은 손을 흔들며 한참을 웃다가 간신히 멈췄다.그리고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유건을 바라보았다. “가끔 그런 생각 안 해봤어요? 혹시 그 여자애가 돌아오면 어떻게 할 거예요?”“뭐?”유건은 순간적으로 멈칫했지만, 이내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럴 일 없어. 돌아오지 않아.”“그건 모르는 일이잖아요.”시연은 손가락 하나를 들어 남자의 가슴을 툭 눌렀다.“우리 유건 씨가 몇 살이죠? 스물여섯? 스물일곱? 그렇다면, 그 ‘나비 아가씨’는 더 어리겠네요? 인생은 긴데,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어요?”유건의 미간이 서서히 좁아졌다.“조금 전까지는 웃고 있었으면서...”시연은 또다시 태연하게 남자의 가슴 위에 손가락으로 작은 원을 그렸다.“‘나비 아가씨’가 돌아오면 우리 유건 씨는 얼마나 곤란할까요?”시연은 지금도 장소미와 자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유건의 모습을 보자 하니, 미래의 혼란이 불 보듯 뻔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뭔가 더 이상했다. “난 ‘나비 아가씨’를 본 적도 없지만, 그냥 느낌이 그래요. 나랑 장소미를 합쳐도 ‘나비 아가씨’만큼은 아닐 것 같아요. 당신이 고민하는 건 누구를 선택할지가 아니라, 우리를 어떻게 처리할 지겠죠? 안 그래요?”“그만 웃어.”유건은 시연의 손을 단단히 잡아 멈춰 세웠다. “하나도 안 웃겨.”남자의 갑작스러운 진지함에 시연은 순간 움찔하며 손을 빼냈다.“그냥 한 말이에요. 장난인데, 왜 그렇게 정색해요?”시연이 손을 빼자, 유건은 대신 여자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그런 농담, 난 싫어. 앞으로는 하지 마.”그는 이런 말이 정말 싫었다. 왜냐하면 시연이 자신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여자와 엮으려는 게 너무도 싫었기 때문이었다. ‘지시연에게 나는 정말 아무 상관 없는 존재일까...?’시연은 입을 삐쭉 내밀었다. “알았어요.”‘이 사람, 왜 이렇게 오버하는 거야?'그런데 잠시 후, 시연은 갑자기 허공에 들어 올려졌다.유건의 눈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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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0화

“시연아?”“정말 끈질기네요.”시연은 지동성의 약한 태도를 무시하고 단호하게 말했다.“강압적으로 해도 안 되니까 이젠 감성팔이를 하려고요? 아버지가 이렇게 하면, 제가 마음이 약해져서 간을 내줄 거라고 생각하세요?”“아니야, 그런 의도가 아니라...”“그만 좀 하세요!!”시연은 벌떡 일어났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 소리를 크게 지르진 않았지만, 시연의 눈은 분노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그리고 애써 감정을 억누르고, 목소리를 낮췄다.“아버지의 말, 단 한 마디도 믿을 수 없어요. 내가 간을 줄 것 같으세요? 꿈 깨세요!!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시연의 손이 배 위로 갔다.원래 배가 크지 않았고, 헐렁한 원피스를 입고 있어 눈에 띄지 않았지만, 그녀가 살짝 원피스를 펴자 약간 볼록한 배가 드러났다.지동성은 경악했다.“이, 이게... 시연아, 너...”“흥.”시연은 냉소를 지었다. “보셨어요? 이제 좀 이해가 되세요? 그래요, 저 임신했어요. 그러니까 간 기증? 절대 불가능해요. 제가 미쳤다고 한들, 어떤 정신 나간 의사가 그 수술을 하려고 하겠어요?”그녀는 이어서 말했다.“그리고 우주요? 손댈 생각도 하지 마세요. 아버지가 그 애한테 손끝이라도 댄다면, 저도 가만있지 않을 거니까요!!”우주는 시연에게 단순한 동생이 아니었다. 직접 키운 자식과도 같았다.“아, 아냐. 그런 일 없을 거야...”지동성은 당황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시연의 말에 놀란 건지, 아니면 딸이 임신했다는 사실에 더 충격을 받은 건지 알 수 없었다.그는 계속해서 침을 삼키며, 시연의 배를 바라보았다.“아이는... 고유건의...?”시연은 눈을 굴리며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그걸 아버지가 왜 궁금해하시죠?”딸의 반응에 지동성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몇 개월 됐어? 언제 가진 거야? 혹시...”“그만 좀 하세요!!”시연은 짜증이 폭발할 것 같았다.“아버지한테 그걸 대답할 이유가 없어요. 그리고 아버지가 그걸 따질 자격이나 돼요?”“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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