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411 - Chapter 420

453 Chapters

제411화

‘뭐지?’ 시연이 떨어진 물건을 제대로 보기도 전에, 그것이 책상 아래로 굴러 들어가 버렸다. 그녀는 허리를 숙여서 주워 올리려 했다. “뭐 하는 거야?” 나른한 잠기운이 섞인 낮고도 단단한 목소리가 그녀를 제지했다. 시연이 고개를 들었다. “뭔가 떨어졌어요. 주우려고.” 유건은 눈살을 찌푸렸다. “당신 몸 상태, 몰라서 그래? 허리 숙여서 줍는 게 임산부가 할 짓이야?”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시연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살짝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을 거 같은데요...” “흥.” 유건은 그녀에게 다가오며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 생각은 그럴지 몰라도,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후회해도 늦을 거야.” 그는 시연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아마 내 커프스단추일 거야. 이따가 가정부가 정리할 때 주울 테니까 신경 쓰지 마.” “아... 그래요.” 그가 하는 말이 틀린 건 아니었기에, 시연은 더 이상 고집부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 오늘 좀 바빠서 아침 같이 못 먹을 것 같아요. 저녁에 봐요.” 유건은 미간을 좁히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일찍 나가?” “응...” 시연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오늘 아침 당직이에요. 병원에선 흔한 일이잖아요. 먼저 갈게요.”“잠깐.” 유건이 여자의 손목을 잡았다. “그냥 가려고?” 시연은 남자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살짝 웃으며 다가가, 발끝을 살짝 들어 올려 가벼운 입맞춤을 남겼다. 그리고 입술이 닿자마자 빠져나와, 장난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다녀올게요.” “이게 끝?” 유건이 안으려 했지만, 시연은 빠르게 한 발짝 물러났다.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양치도 안 했잖아요. 이 정도는 당신이 잘생겨서 봐주는 거라고요! 하하!” 장난스럽게 웃으며, 가볍게 손을 흔들고는 현관으로 뛰어나갔다. 남겨진 유건은 어이없는 듯 웃었지만,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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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2화

공장 앞에 도착하니, 임진아가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 차가 진아 앞에 멈추자, 시연은 차에서 내리며 가방에서 도면을 꺼냈다. “이거 좀 봐줘. 가능할까?” “좋지.” 두 사람은 나란히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진아가 도면을 펼쳐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아. 재료도 다 있네.” “그럼 다행이다.” 둘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기환은 두어번 도면을 힐끗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복잡한 설계도라 이해하지 못했지만, 마지막 완성 예상도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저거... 라이터 같은데?’ ‘설마, 형수님이 직접 라이터를 만들려고 하시는 건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신의 예상이 정확했다는 걸 알게 됐다. 진아는 시연을 데리고 공장 안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작업실로 안내했다. “아빠한테 얘기 다 해놨어. 편하게 써.” 두 사람은 도면을 보며 작업을 시작했다. 시연은 직접 만들기 시작했고, 진아는 재료를 찾아주고 맞춰보며 도와주었다. 기환은 이 광경을 지켜보다가 조용히 엄지를 세웠다. ‘형님, 진짜 대단한 사람을 아내로 맞으셨네.’ ‘형수님은 똑똑한 건 물론이고, 직접 선물을 만들 정도로 마음도 깊으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환은 문득 생각했다. ‘그럼 형수님은... 형님을 좋아하시는 건가?’ 그리고 확신할 수 있었다. ‘형님도 분명 형수님을 좋아하시는데...’‘그런데, 그 ‘나비 공주’에 대한 애정과 비교하면?’ ‘형님은 어느 쪽을 더 좋아하실까? 정말 답을 찾기 어렵네.’ 기환의 도움 덕분에, 시연이 직접 선물을 준비하는 일은 완벽하게 비밀로 유지되었다. 목요일 아침. 시연과 유건은 함께 아침을 먹었다. 시연은 몇 번이나 그를 힐끔힐끔 바라보다가, 망설였다. 그 모습에 유건이 웃으며 물었다. “할 말 있어?” “네?” “아까부터 날 몰래 훔쳐보고 있잖아. 뭐야? 그냥 말해.” “히힛.” 시연은 쑥스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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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3화

유건은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 침묵했다. 잠시 후,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직접 갈게.” ‘‘나비 공주’가 맞든 아니든, 내가 직접 확인해야 해.’ 그는 왼손 약지에 끼워진 결혼반지를 무심코 만지작거렸다. ‘만약 진짜라면, 오랜 세월 묻어둔 마음을 정리할 수 있을 테고...’ ‘아니라면, 이젠 정말 미련 없이 포기해야겠지.’... G시 서쪽 외곽, 한 카페. 지한이 받은 위치는 G시 서쪽 외곽에 있는 한 관광지였다. 만나기로 한 곳은 관광객이 많은 카페였다. 사람이 붐비는 장소를 선택한 걸 보니, 상대방도 상당히 경계심이 높은 듯했다. 아마도, 만나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일 것이다. “형님.”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지한이 내부를 둘러보고 자리에 앉았다. “상대방이 방으로 들어오지 않고, 홀에서 보자고 했습니다.” “알았어.” 유건은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은 언제 도착한대?” 지한은 핸드폰을 확인하며 말했다. “지금 자리 번호를 보내면 바로 올 거라고 합니다.” 그는 상대방에게 테이블 번호를 전송했다. 이제 남은 건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주변은 시끄러웠다. 관광객과 카페를 오가는 사람들로 정신이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유건은 그냥 눈을 감았다. 20분쯤 지났을까. 지한의 핸드폰이 울렸다. “형님, 왔습니다!” 유건이 눈을 떴다. 카페 입구 쪽에서,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한 젊은 여성이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유건은 미간을 찌푸렸다. ‘뭐 저렇게까지 가리고 다녀?’ 도저히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여자는 발걸음을 점점 재촉하더니, 마지막 몇 걸음은 아예 뛰어와 급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헉... 당신들이...?” “네.” 지한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온라인에서 연락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쪽이 제 상사입니다.” 그는 유건을 가리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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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4화

“괜찮습니다.” 지한은 유건의 지시가 없어도 단호하게 말했다. “조애린 씨가 손해 보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요.” ‘형님한테 그 정도 돈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 순간, 조애린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고 대표님.” 그녀는 망설이는 듯하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 좀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유건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그녀를 바라봤다. “왜 굳이 이 머리핀을 사신 거죠?” 차가워진 눈빛의 유건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짧게 말했다. “그건 조 매니저가 알 필요 없으니, 보상만 받도록 해.” 그러고는 그대로 자리를 떠나려 했다. “잠깐만요!” 조애린이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 “고 대표님! 제발,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유건은 걸음을 멈추고, 미간을 살짝 좁혔다. “무슨 일이 있어?” “네.” 조애린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숨을 정돈했다. “아직 할 말이 남았어요. 이 머리핀... 제가 잃어버린 건 맞지만, 제 것은 아니에요.” 그 순간, 유건의 동작이 멈췄다. 그리고 눈빛이 서늘해지며, 조애린을 내려다봤다. “그럼 누구 것이지...?” 그는 단어 하나하나를 또박또박 뱉었다. “고 대표님.” 조애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살짝 웃으며 말했다. “제 화장품 파우치에 들어 있던 거라면, 제 것이거나 제 소속 배우의 것이겠죠?” ‘소속 배우...?’ 유건은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조애린이 관리하는 연예인들이 몇 명 있지만, 그녀가 신경 쓰는 건 단 한 명뿐.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유건의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마저 말해.” 유건이 짧고 강하게 말했고, 조애린도 더 이상 뜸을 들이지 않았다. “소미 거예요.” 그 순간,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았다. ‘소미... 장소미...’ ‘정말 장소미였어?’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 사람이...’ ‘장소미가 나비 공주였어?!’ 유건은 크게 숨을 들이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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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5화

과거의 기억이 순식간에 유건의 머릿속을 스쳐 갔다.그것은 유건이 아직 어리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그해, 그는 뜻밖의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 충격으로 두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때 유건은 정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고상훈은 세계적인 명의들을 불러 치료 방법을 찾으려 했지만, 누구도 극 시력을 완전히 되찾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가 평생 앞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의 세상이 영원히 어둠뿐일 거라는 말과 같은 것이었다. 그 사실은 소년이던 유건에게 아주 가혹한 선언이었다...그 시절의 유건은 극도로 예민하고 난폭했다. 보이지 않는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고상훈을 제외한 모든 사람과의 소통을 거부했다. 누군가 말을 걸어도 무시했고, 다가오는 사람에게는 화를 냈다. 그저 모든 것이 짜증 났다.간병인과 가사 도우미들에게도 끊임없이 신경질을 부렸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점점 더 어두운 사람이 되어 갔다. 고상훈은 그런 손자를 안타까워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결국 최대한 그의 뜻을 존중하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유건은 조용한 회복을 위해 도심에서 떨어진 별장으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나비 공주’와 처음 만났다. ‘나비 공주’는 유건의 옆집에 살고 있었다. 두 집은 높은 담장을 두고 연결되어 있었고, 그녀는 자주 그 담장을 넘어오곤 했다. 두 사람과의 첫 만남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날, 유건은 비가 오는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원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이지도 않는데, 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걸까...?’ 그때, 익숙하지 않은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비 오는데 왜 거기 앉아 있어? 감기 걸릴지도 몰라!” 유건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대꾸하지 않았다. ‘상관없잖아. 어차피 나는 볼 수도 없는데.’ 그가 반응하지 않자, 소녀는 다급한 듯 담장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지?’ 잠시 후, 소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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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6화

그날, 지한이 다녀온 후, 직접 유건에게 보고했다.유건이 남긴 선물이 이미 ‘나비 공주'의 손에 무사히 전달되었다고.그 말을 듣고 나서야, 유건은 안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해외로 나가 치료받았다. 그는 반년 동안 앞이 보이지 않았고, 또다시 반년을 걸려 치료받고서야 성공했다. 유건은 그렇게 다시 앞을 볼 수 있게 됐다. 그는 그것이 ‘나비 공주’가 가져다준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그 여자아이가 날 지켜준 덕분에 시력을 되찾을 수 있었던 거야.’ 그래서 시력을 되찾자마자,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나비 공주’를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비 공주’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그녀가 살던 집은 텅 비어 있었고, 그 후로도 ‘나비 공주’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소미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걸 보며, 유건의 눈가가 뜨겁게 붉어져 왔다. ‘설마... 정말 유건 씨가...?’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손에 쥐고 있던 나비 머리핀을 소미 앞에 내밀었다. 소미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애린 언니가 잃어버렸다고 했는데, 이걸 왜 유건 씨가...?”유건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낮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원래 내 것이었어.” ‘만약 장소미가 진짜 나비 공주라면,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할 거야.’ 순간,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공기마저 조용해진 듯했다. 소미의 눈에 혼란과 충격이 스쳐 지나갔다. 입술이 떨리면서도 몇 번이나 말하려다 멈추었다. “유건 씨... 당신...!” 그녀는 숨이 가빠진 듯, 겨우 말을 꺼냈다. 유건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여자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소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기다려 달라고... 다시 돌아올 거라고...?” 그 순간, 유건의 숨이 멎었다. ‘그때 내가 남겼던 말을 장소미가 기억하고 있어.’ ‘그렇다면... 맞아.’ ‘진짜 ‘나비 공주’가... 장소미인 거라고.’ 유건은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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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7화

그런 유건을 보면서 소미는 바로 눈치챘다. 지금 남자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소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응.” 유건은 짧게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 소미 씨. 지금 당장 가봐야 해.” “미안하긴요.” 소미는 별것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우린 오랜 친구인데, 그런 걸로 사과할 필요 없어요. 급한 일 있으면 얼른 가요.” 유건은 그녀의 배려에 감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마워.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 “조심해서 가요!” 소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유건이 사라지는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이어서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손안에 쥔 나비 머리핀을 서서히 꽉 쥐었다. ...차 안. 지한은 운전석에서 전화를 걸었다. “기환아, 형수님을 꼭 붙잡아 둬. 형님, 지금 가는 중이야.” 기환이 난감한 목소리로 답했다. [최대한 노력해 볼게.] 그러나 통화를 끝내기가 무섭게, 시연은 이미 문을 열고 나갔다. 기환은 순간 당황하며 급하게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형수님, 형님 곧 도착하십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시연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너무 늦었어요. 식사 시간도 훌쩍 지났으니, 저도 이제 들어가 봐야죠.” 기환은 속수무책이었다. ‘형수님을 강제로 붙잡을 수도 없는 노릇인데.’ 결국, 한숨을 삼키며 시연을 따라 차에 올랐다. ‘형님이 실수하신 건 맞지...’‘아무리 바빴다고 해도, 임신 중인 형수님을 두 시간이나 기다리게 하다니...’ 기환은 차를 몰며 지한에게 전화를 걸까 고민했지만, 마땅한 변명이 없었다. ‘오늘은... 형님이 잘못하신 거야.’ 두 사람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건이 도착했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건 텅 빈 테이블, 아직 꺼지지 않은 촛불, 치우지 않은 식기들.그리고... 텅 빈 의자.유건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고, 바로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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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8화

시연은 계속해서 국수를 먹었지만, 전혀 유건을 쳐다보지 않았다. 유건은 속이 쓰렸다. 그리고 시연을 한밤중까지 기다리게 한 자기 잘못을 확실히 인정했다. “내일 저녁은 어때? 내가 직접 예약하고 먼저 가 있을게.” “괜찮아요.” 시연은 여전히 고개를 저으며, 마지막 남은 매운 단무지 한 조각을 집었다. “마지막 하나네.” “더 가져다줄게.” 유건은 기회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반찬을 가지러 갔다. 하지만 곧바로 깨달았다. 자기는 반찬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걸. 잠시 냉장고를 뒤졌지만 찾지 못했다. “이모님 부를게.” “됐어요.” “아니야.” 유건은 고집스레 말했다. “당신이 먹고 싶다며?” “그러니까, 됐다고요.” 시연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서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항상 왜 그래요? 내가 원하는 대로 결정할 수 있게 해줘요.” 여자의 말속에 분명한 불만이 묻어 있었다. ‘많이 화났구나...’ 유건은 결국 빈 그릇을 내려놓았다. “알겠어. 당신 말대로 할게.” 시연은 다시 젓가락을 들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면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왜 계속 쳐다봐요? 배고픈 거예요? 저녁 안 먹었어요?” 유건은 짧게 고개를 저었다. “먹었어.” “먹었군요.” 시연이 잠시 멈칫하더니, 작은 웃음을 흘렸다. 유건은 순간 깨달았다. ‘아차, 또 실수했어!’ 그렇지만, 이건 엄연한 사실... “미안해.” 그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사과하는 것 외에는. 그러나, 그 사과조차도 공허할 뿐이었다. 시연은 가볍게 눈썹을 들어 올리더니,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면을 다 먹고, 작게 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살 것 같네요.” 말하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유건은 얼른 의자를 뒤로 빼주었다. 그녀가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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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9화

“알 필요 없어요.” 시연은 아픈 손을 조심스럽게 뺐다. ‘알 필요 없다고?’ 유건의 예리한 눈매가 가늘어졌다. “당신은 내 아내야. 아내가 손을 다쳤는데, 내가 몰라도 된다고?” “그게 뭐 대수인가요?” 시연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하지만 명확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당신이 전 여자 친구와 생일을 함께 보낸 것도 몰랐는데요?” ‘뭐...? 생일을... 함께 보냈다고?’ 유건은 순간 당황했다. 그보다 더한 기분은, 놀라움이었다.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그러나,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시연은 이미 팔을 빼내고 2층으로 올라갔다. ‘생일...?’ 유건은 순간적으로 멍해졌다가, 곧바로 깨달았다. ‘맞다, 오늘 내 생일이었지.’ 시연이 저녁 약속을 잡았던 이유, 그녀가 오늘 내내 기다렸던 이유. ‘시연이는... 나를 위해 준비하고 있었던 거야.’ 유건은 짧은 탄식을 내뱉으며, 곧장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형님.] 전화기 너머로 기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알고 있었어?” 유건은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시연이가... 내 생일 챙기려고 했던 거.” [네, 알고 있었습니다.]“그런데 왜 말 안 했어?” 유건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기환은 짧은 침묵 후, 솔직하게 답했다. [형수님께서 형님께 직접 깜짝선물을 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굳이 말하지 않았던 거죠.]유건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기환이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그런데요 형님... 혹시... 선물 이야기는 들으셨나요?]“선물?” [아... 형수님께서 직접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 같은데... 제가 말하면, 그 마음을 망치는 거 아닐까요?]유건은 그 말을 듣자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러나, 기환은 한 가지 더 말했다. [그런데 한 가지만 말씀드리면... 형수님께서 정말 정성을 다해서 준비하셨습니다. 직접 손으로 만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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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0화

‘애초부터 장소미와 함께 보낼 생각이었겠지.’ 시연은 씁쓸하게 웃었다. ‘앞으로는 괜히 헛수고하지 말자.’‘괜히 마음 쓰고 노력해 봤자, 정작 본인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데...’‘결국 나만 바보 되는 거잖아.’ 불필요한 감정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그녀는 조용히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조용했던 방 안, 문 쪽에서 철컥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시연은 즉시 몸을 돌려, 반사적으로 상체를 일으켰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불빛이 환하게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방 안으로 들어온 유건은, 손에 쥐고 있던 열쇠를 소파 위에 툭 던졌다. ‘맞네, 여기... 저 사람 집이었지?’ ‘내가 문을 잠근다고 해서 이 사람이 못 들어올 리가 없잖아.’ 시연은 순간적으로 잊고 있던 현실을 떠올렸다. 유건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더니, 침대 위에 편하게 앉았다. “날 못 들어오게 해? 그럼 난 어디서 자라고?” 그는 능청스럽게 말했다. “이 방은 우리 방이야. 반반씩 나눠 써야지.” 시연은 남자를 몇 초 동안 바라보다가, 곧장 침대에서 내려와 일어섰다. “그럼 당신이 여기서 자고, 난 다른 방에서 잘게요.” 그러고는 바로 문 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손목이 단단히 붙잡혔다. “손님방은 안 치웠어.” 유건이 불만스럽게 말했다. “설마, 이 시간에 성애 이모를 깨울 생각이야?” 그 말에, 시연은 순간 망설였다. ‘하긴, 나도 남한테 폐 끼치는 걸 싫어하긴 하는데.’ 하지만 바로 대안을 찾았다. “그럼 서재에서 잘게요.” “안 돼.” 그 순간, 유건이 팔을 당겨 그녀를 품 안에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가슴팍에 파묻힌 시연. 남자의 목소리가 살짝 낮아졌다. “여보, 오늘 내 생일이야. 그냥 한 번만 용서해 주면 안 될까?” ‘지금 이걸... 핑계라고 하는 거야?’ 시연은 어이가 없어 웃었다. “이런 말... 다른 사람한테는 통할지 몰라도, 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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