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홀린 듯, 시연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손끝이 자연스레 유건의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들었고, 천천히 그에게 응답했다. 작은 불씨가, 순식간에 화르르 불타올랐다.그러다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시연이 나지막이 물었다. “배 안 고파요? 밥부터 먹어요, 네?” “응...” 유건 역시 더 이상 참을 자신이 없었다. 더 가면, 선을 넘어버릴 것 같았으니까.그는 그대로 시연을 안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 문을 열고 나섰다. 문 앞에서 기다리던 왕성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벌린 채 얼어붙었다.그녀는 한참이 지나도 시연이 내려오지 않길래, 혹시 두 사람이 싸우는 건 아닌가 걱정돼서 올라와 본 참이었다. ‘아니, 이건 대체 뭐야?!’ 하지만 곧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유건 도련님, 사모님... 저녁 준비 다 됐어요. 어서 내려가세요.” 시연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유건의 어깨를 치며 내려가려 했다. “내려줘요!” 하지만 유건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고생 많았어요, 이모님.” 그러면서도 품 안의 시연을 놓을 생각은 전혀 없는 듯했다. 그대로 그녀를 안고 계단을 내려갔다. “가만히 좀 있어. 부부가 집에서 좀 안고 있겠다는데, 뭘 그렇게 부끄러워 해?” “됐어요! 난 당신처럼 뻔뻔하지 않다고요!!” 왕성애는 조용히 웃음을 터뜨리며 다시 서재 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또 한 번 얼어붙었다. “어머나, 세상에!” 책상 위에 널브러진 서류들, 바닥에 떨어진 컴퓨터와 의자, 깨진 재떨이... ‘유건 도련님의 성질, 정말 장난 아니네...’ ‘저 난리를 치고도 꼭 껴안고 있다니...’‘젊은 부부, 참 다이내믹하네.’ 다음 날. 시연은 늦잠을 잔 뒤, 오후가 돼서야 강울대병원으로 출근했다. 오전에 쉬었던 만큼, 진료 시간이 되자 예약된 환자들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음 환자분, 들어오세요.” 그녀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손짓하며, 컴퓨터에서 환자 정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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