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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1화

Author: 임공
“형님, 지동성 사장님께서 형수님을 찾아오셨어요... 그런데요, 형수님이 울고 계세요. 저한테도 화를 내셨고요...”

유건은 조용히 끝까지 들었고,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알겠어.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해.]

“네, 형님.”

전화를 끊자마자, 유건은 핸드폰을 꽉 쥐었다. 손에 힘이 너무 들어가서 자칫하면 핸드폰이 부러질 뻔했다.

‘지, 동, 성... 간 이식이 필요하다며?’

‘병세가 심각해서 죽기 일보 직전이라더니, 시연이를 찾아갔다고?’

‘난 불안해서 시연이의 과거를 캐는 게 아니야.’

‘우리는 결혼한 사이라고. 그런 인간과의 일은 이미 끝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나저나, 시연이가 울었다고?’

‘아직도 그 인간을 신경 쓰는 건가?’

‘대체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눈물을 흘릴 만큼 가치 있는 관계였나?’

머릿속이 복잡해진 유건은 일찍 퇴근해 강울대병원으로 시연을 데리러 갔다.

...

“오늘은 웬일로 이렇게 일찍 왔어요?”

시연이 급히 내려왔다.

유건은 시연을 유심히 바라봤는데, 여자의 눈이 약간 부어 있었다.

시연은 확실히 울었다.

그것도 꽤 심하게.

유건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여자의 손을 잡았다.

“오늘 바빴어?”

“그럭저럭이요.”

시연은 더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기 일을 얘기해봤자, 유건은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그래.”

유건은 무심한 듯 물었다.

“오늘은 누구를 만났어?”

이 질문은 너무 티가 났기에, 시연은 곧장 알아차릴 수 있었다.

‘기환 씨가 말해줬나 보네.’

“기환 씨가 말했줬어요?”

“응.”

유건은 숨기지 않았고, 시연의 손을 천천히 주무르면서 말했다.

“그 인간 만나서 무슨 얘기 했는데?”

그리고 한 손으로 시연의 긴 머리를 쓸어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기환 말로는 당신이 울었다던데, 그 인간 때문이야?”

시연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 사람 얘기를 꼭 해야 해요?”

순간, 유건의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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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건은 능력 있고, 잘생기고, 집안까지 완벽하며, 시연에게도 잘했다. 시연이 그런 사람에게 마음이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자꾸만 이성을 놓고, 실수를 반복했다. 하지만 이제, 시연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제는 정신 차려야 해.’ ‘그리고 이제 나는, 정말 푹 자야 해...’ 그녀는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더 이상 잘못된 감정에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밤새 깊은 잠을 잤다. 시연이 눈을 떴을 때, 팔이 묘하게 무거웠다. 아파서가 아니라, 눌린 느낌. 그리고 고개를 숙여보니, 유건이었다. 그가 침대 옆에 앉아, 시연의 손을 꼭 잡은 채, 팔에 머리를 얹고 잠들어 있었다. ‘어쩐지 무겁더라.’ 그녀는 이 남자가 언제 왔는지, 왜 이러고 있는지는 알고 싶지 않았고, 알 필요도 없었다. 시연은 팔을 힘껏 빼보려 했지만, 여자와 남자의 힘 차이는 너무 컸다. “유건 씨.” 시연은 더 이상 뵈는 게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일어나요. 팔 저려서 미치겠으니까.” “응...?” 유건은 곧바로 눈을 떴다. 이어서 고개를 들며, 여자의 팔을 풀어줬다. “여보, 일어났네.” ‘그건 나도 알지.’ 시연은 유건의 의미 없는 말에 대꾸하지 않고, 침착하게 침대 옆 호출 벨을 눌렀다. 곧 간호사가 들어왔다. “사모님, 일어나셨네요. 세수 도와드릴까요?” “아니요.” 시연은 고개를 저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몸이 훨씬 나아졌어요. 퇴원하고 싶어요.” “그렇군요. 그럼 주치의한테 여쭤볼게요.” “네, 부탁해요.” 간호사가 나가고, 시연은 곧장 침대에서 내려왔다. 유건이 그 뒤를 따랐다. “벌써 퇴원하게? 하루쯤 더 쉬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시연은 아무런 반응도 없이 욕실로 들어가, 철컥-남자의 코앞에서 문을 잠갔다. 유건은 멈칫했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손잡이를 잡아보았지만,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다. 어쩔 수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69화

    시연이 문손잡이를 잡고 살짝 당기려던 찰나, 뒤에서 다가온 유건이 팔을 뻗더니 ‘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을 다시 닫아버렸다. 남자의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시연의 머리 위를 감쌌다. “그래, 진료받을게. 대신 같이 가자.” “뭐라고요?” 시연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왜요?” “지시연!” 유건의 미간에 분노가 깊게 드리워지며 얇은 입술이 꽉 다물어졌다. “넌 내 아내야. 당연히 내 옆에 있어야지.” “그래요, 난 당신 아내예요. 하지만...” 시연은 어이가 없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차분한 눈빛으로 말했다. “근데, 당신 그 상처... 나 때문에 입은 거 아니잖아요. 내 남편이 다른 여자 때문에 다쳤는데, 그걸 왜 내가 책임져야 하죠?” “당신!” “아, 맞다...” 시연은 무심한 표정으로 웃음을 더했다. “이젠 내가 당신을 돌볼 생각이 없으니까, 돈이 많은 당신은 간병인을 쓰면 되잖아요. 한 명으로 부족하면 두 명을 쓰고...”“지시연!” 유건의 얼굴은 새까만 먹물처럼 굳어버렸다. 그리고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이라는 게 있어! 장소미는 나 때문에 다쳤어! 그런 사람을 안 돌보면... 나를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어?” “나, 돌보지 말란 말은 안 했어요.” 시연은 억울하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오히려 돌보라고 했잖아요. 옆에 있어 주라고요. 진심이에요.” “그럼 왜 이러는데? 왜 이렇게 구는 거야?” “내가 뭘요?” 시연은 허탈한 듯 웃었다. “난 그냥, 당신의 선택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거잖아요. 나도 내 선택을 했을 뿐이에요. 그게 다예요, 이해돼요?” 유건은 눈을 가늘게 뜨고, 싸늘하게 웃었다. “네 선택? 명목상 부부?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하는 거야?” “말도 안 되는 개소리라고요?” 시연은 여전히 담담했다. “그 말도 안 되는 제안, 처음 꺼낸 사람이 누군지 잊었어요?” 유건은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68화

    왜냐하면, 시연은 다 보고 말았으니까. 그녀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앞으로 우리 둘은, 이전처럼 지내는 게 좋겠어요. 더 먼 미래는...” “잠깐.”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건의 얼굴이 확 어두워졌다. 그러고는 비웃듯 되물었다. “‘이전처럼’이라는 게, 어떤 거지?” “네?” 시연이 의아하게 되물었다. “그걸 몰라서 물어요? 말 그대로 명목상 부부, 서로 터치 안 하고, 간섭도 안 하고...” “하.” 유건은 코웃음을 내뱉었다. “먹은 밥을 도로 뱉는 것도 아니고, 그게 말이 돼?” ‘무슨 소리야?’ 시연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그럼 동의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왜요?” “왜냐고?” 유건은 속이 뒤집힐 듯한 감정을 억누르며 이를 악물었다.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지금까지 꾹 참고 있었던 감정이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그는 가까스로 감정을 눌렀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나한테 화난 거야? 당신 쪽으로 먼저 안 갔던 거, 그거 때문에?” 시연이 대답할 틈도 없이, 유건은 말을 이어갔다. “당신 입장에선 당연히 화날 수 있어. 나한테 뭐라고 해도 좋아. 근데...” “그래요. 당신 말대로, 내가 화내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시연이 무표정하게 남자의 말을 끊었다. 유건은 순간 멍해졌다. ‘역시... 시연이는 화가 난 거구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시연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맞아, 다 이해해. 하지만 그 상황에서 내가 당신한테 갔다면, 구출이 더 늦어졌을 거야. 기환이가 당신 옆에 있기도 했고, 지하한테 부탁하기도 했으니까...” “알아요.” 시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채로. 그 반응에 유건은 더 혼란스러워졌다. “알면서 왜...?” ‘왜 이러는 건데...?’ 시연은 미세하게 한숨을 내쉬더니,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사랑은 눈을 멀게 한다’라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67화

    상처 부위 때문에, 소미는 어깨가 드러나는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왼팔부터 턱 아래까지, 하얀 붕대가 겹겹이 감겨 있었고, 응급 처치 과정에서 급히 잘라낸 머리카락은 자비 없이 뚝뚝 잘려져 있었다. 게다가 계속 울었던 탓에, 얼굴은 눈물과 붉은기, 부은 자국으로 엉망이었다. 심지어 유건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부축하며, 손을 들어 눈가를 닦아주었다. “울지 마. 눈물이 상처에 닿으면 안 좋아.” “유건 씨...” 소미는 눈을 꼭 감더니, 그대로 남자의 품에 안기며 흐느꼈다. “어떡해요... 저 앞으로 어떻게 살아요?” “무서워하지 마.” 유건은 낮고 부드럽게 말했다. “요즘 의학, 많이 발전했잖아. 치료할 수 있을 거야.” “근데... 그게 안 되면요...?” 소미가 벌떡 고개를 들었다. “영원히 못 고치면요...? 그런 일, 충분히 있을 수 있잖아요?” 유건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저 입술을 꾹 다문 채 여자를 바라볼 뿐. “봐요... 대답 못 하잖아요. 저를 위로하려고 한 말인 거 다 알아요.” 소미는 울음을 꾹 참으려다, 다시 숨을 들이켰다. “아...!!!” 그러고는 그대로 눈이 뒤집히며 쓰러졌다. “소미 씨!” 유건은 당황해서 그녀를 흔들었다. “의사! 간호사!” “들어갑니다!” 의료진이 급히 병실로 들어왔다. “상태가 왜 이래요? 아까까지 괜찮았잖아요!” “고 대표님, 환자분은 광범위 화상으로 인한 쇼크 증세를 겪고 있습니다. 지금 바로 응급 처치가 필요하니, 잠시만 자리를 비워주세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병실 안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침대 가리개가 닫히고, 유건은 밖으로 밀려 나왔다. 그가 뒤돌아선 순간, 시연이 병실 문 앞에 조용히 서 있었다. 유건의 눈동자가 순간 크게 흔들렸다. “여보...” 시연은 그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바라봤다. 유건이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오자, 그녀는 피하지 않고 서 있었다. “여긴 어떻게..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66화

    기환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정확한 건 아직 잘 모르겠고... 그냥, CA국 쪽이랑 관련이 있을 거라고 추측만 하고 있어요.” 시연은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하지만 지한은 더 말을 잇지 않았다. ‘그게 끝이야?’ 시연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지한은 그녀가 던진 두 번째 질문을 회피했다. ‘장소미는... 어떻게 된 거지?’ “형수님, 푹 쉬세요. 전 밖에서 대기하고 있을게요. 필요하신 거 있으면 바로 말씀해 주시고요.” “그래요.” 시연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 의문은 점점 깊어졌다. ‘지한 씨... 뭔가, 나를 피하는 것 같아.’ 그리고, 이상한 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유건이 오지 않았다. 그것도 너무 늦게.‘왜 안 와? 납치당한 나를 두고...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지한은 아까 ‘일이 좀 생겼다’고 했지만, 그 ‘일’이 그녀보다 더 중요하다는 게 말이 될까? ‘말이 안 돼... 너무 이상해.’ 시연은 이불을 걷어내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사모님...!” 간호사가 놀라며 그녀를 부축했다. “필요하신 게 있으면 말씀만 하세요. 제가 다 도와드릴게요.” “괜찮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시연은 간호사의 팔을 빌려 병실 문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자, 바깥에서 들려오는 두 남자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형님은 언제쯤 오시는데?” “글쎄... 민환이 말로는, 장소미 씨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사람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시연과 눈이 마주쳤고, 두 사람은 동시에 몸을 곧추세웠다. “형수님...” “형수님!” 시연의 표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차가운 기운이 가슴속 깊숙이 퍼졌다. “장소미... 어떻게 된 거예요?” 지한과 기환은 서로 눈치를 보며 말문이 막혔다. 시연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물었다. “유건 씨... 지금 장소미랑 같이 있는 거죠?” 이번엔 더 대답이 없었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65화

    응급실에서 시연은 기본적인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생명 지표는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임신 중이었기에, 산부인과 전문의의 협진이 필요했다. 그 사이, 유건은 병실 밖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기환아.” “예, 형님.” 오늘 시연과 함께 있었던 사람이 기환이었기에, 유건은 그에게 반드시 상황을 확인해야 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말해봐.” 기환은 먼저 고개를 숙였다. “형님, 죄송합니다. 형수님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고는 차분하게, 자신이 기억하는 전후 상황을 전부 설명했다. 그 얘기를 다 들은 유건은 눈썹을 깊게 찌푸렸다. “네가 마신 그 밀크티... 장소미 씨가 줬다고?” “네.” 기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방심했어요. 장소미 씨가 줬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의심도 안 했습니다.” 곧이어 서둘러 덧붙였다. “그런데요 형님, 이 모든 게 장소미 씨의 계략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장소미 씨도 누군가에게 이용당한 걸 수도 있어요.” 이유는 간단했다. 처음엔 소미를 의심하긴 했다. 하지만, 소미가 이런 일을 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조금 전, 지한에게 들은 바로는 소미 역시 납치당했고, 시연보다 훨씬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건 그녀의 소행일 리 없었다. 유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일을 꾸민 놈... 우리 쪽 사정을 아주 잘 알고 있어. 다친 사람들은 전부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야.’ ‘CA국... 그 사람들이 아니라면 또 누가?’ ‘아직은 뚜렷한 대상이 없는데...’ ‘할아버지가 나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으니, 날 흔들려고 이런 짓을 벌인 건가?’ ‘진짜 못된 놈들... 남까지 해치면서 날 압박하겠다는 건가?’유건이 보기에, CA국 사람들은 비열하고 비합리적인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문제는, 그들이 또 성공했다는 것. 지금,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64화

    기환은 곧장 환풍기로 향했다. ‘시간이 없어. 옷을 덮어드린 건 찰나의 시간을 끈 것일 뿐이야. 진짜 중요한 건... 여기서 빨리 나가는 거야.’ 기환은 환풍기 선을 확인한 뒤, 맨손으로 선을 잡아당겨 끊었다. 환풍기의 날개가 천천히 멈춰가는 것을 기다린 후, 바지 주머니에서 멀티툴 나이프를 꺼냈다. 그리고 곧바로 해체를 시작했다. 약 삼십 분이 지나자, 환풍기 전체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됐다.” 기환은 얼굴에 희미한 웃음을 띠며 시연에게 달려갔다. “형수님...” 그런데 막 말을 꺼내려는 순간, 시연이 뭐라 중얼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네? 형수님, 뭐라고요?” “유건 씨... 유건 씨...” 기환은 귀를 가까이 댔다. 분명히, 시연은 유건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형수님, 형님을 찾고 계신 거군요. 알겠습니다, 제가 바로 모셔다드릴게요.” 그는 조심스럽게 시연을 안아 들었다. 시연은 의식을 잃은 채 그의 품에 몸을 기댔다. “춥...다...” 얼굴을 찡그리며 작게 신음했다. “아...” 기환은 순간 당황했지만 곧 다정히 말했다. “이제 곧 나가요. 나가면 따뜻해질 거예요.” 하지만 그 순간, 시연이 갑자기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다. “으... 으흑... 유건 씨... 추워요...” 기환은 더 당황했다. “형님을 곧 만나게 해드릴게요. 조금만, 조금만 더...”창고의 환풍구는 제법 큰 편이라 기환이 시연을 안고 움직이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하지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조금만 더... 천천히 가자. 형수님을 다치게 하면 안 돼.’ 그는 달팽이처럼, 아주 조금씩 몸을 움직이며 바깥으로 나아갔다. 다행히 환풍기 밖은 냉동창고 안처럼 춥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이젠 괜찮아질 터였다. 그때, 부지하가 사람들을 이끌고 도착했다. “전부 흩어져! 이 구역 전부를 샅샅이 뒤져! 땅을 파서라도 찾아내!” “네!” 지하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463화

    “지한, 받아!” 지한이 반응할 틈도 없이, 유건은 품에 안고 있던 사람을 그대로 그의 쪽으로 넘겼다. 그러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시 불 속으로 돌진했다. “형님!” 지한은 깜짝 놀라 외쳤다. ‘형님 지금 뭐 하시는 거야?! 위험하잖아!’ ‘장소미 씨 때문이라면 이해가 되는데... 이번엔... 또 왜?’ 유건이 다시 불길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짙은 연기가 덮쳐왔다. “컥... 콜록, 콜록!” 그는 허리를 낮추며 바닥을 이리저리 뒤졌다. 이마엔 굵은 주름이 짙게 잡혔다. “대체 어디 떨어진 거야... 설마 못 찾는 건 아니겠지?” 그 순간, 그의 눈동자가 멈췄다. 불꽃 속 어딘가에서 반짝이는 금속... 그것은 시연이 선물했던 그 라이터였다. 유건의 눈이 번쩍 빛났다. “찾았다!!” 망설임 없이, 그는 불길 속으로 팔을 뻗었다. “악...!” 뜨거운 열기와 불꽃에 살갗이 타들어 갔다. 고통에 얼굴이 찌푸려졌지만, 유건은 멈추지 않았다.라이터를 움켜쥐고 몸을 돌렸고, 빠르게 밖으로 달려 나왔다. “형님!!” 밖에 있던 지한은 안절부절못했는데, 유건이 나오지 않으면 직접 들어갈 생각이었다. “괜찮으세요?!” 유건은 왼팔을 감싸 쥔 채,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손을... 좀 데었어. 병원 가야겠네.” “구급차 도착했습니다.” 소방대도 이미 현장에 도착했고, 주변은 소란스러웠다. 유건은 팔을 안고 걸음을 재촉하며 물었다. “사람은? 장소미 맞아?” 지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예, 그런데 상태가 좀... 안 좋습니다.” 유건의 발걸음이 멈췄다. ‘아까는 너무 급해서 얼굴도 못 봤어...’ “어디 있어?” “저쪽입니다.” 소미는 이미 구급차에 옮겨져 응급 처치를 받고 있었다. 유건이 올라타자, 그녀의 상태가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의식은 없이 링거와 산소 치료를 받는 소미.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왼쪽 팔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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