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연의 목소리는 한층 더 차가워졌다. “아니, ‘만약’이 아니에요. 지금 여기서 분명하게 말할게요. 난 사과하지 않을 거예요, 절대!!” 시연은 유건의 손을 뿌리치고 돌아섰다. “진아야, 가자.” “그래!” 그 순간, 유건은 얼어붙었다. “유건 씨, 이게 다... 미안해요. 저 때문이에요...” “소미 씨 잘못 아니야.” 유건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시연이가 소미 씨한테 너무 심한 말을 했어. 내가 대신 사과할게. 오늘 밤엔 정말 미안했어. 난 먼저 가볼게.” “유건 씨!” 남자를 더 이상 붙잡을 수도 없어서 소미는 그저 유건이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는 쓸쓸한 듯한 표정이었지만, 그 속엔 어쩔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스쳤다. ‘둘이, 싸웠네.’ ...주차장에서 유건은 시연을 따라잡고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기환아, 진아 씨를 데려다줘.” “네, 형님.” 시연은 순식간에 다른 차에 태워졌다. 그리고 남자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게 느껴졌다. ‘이제 본격적으로 화를 내려고 하는 건가?’ ‘...’“오늘 일은 내 잘못이야.” 뜻밖에도, 유건이 먼저 사과했다. “당신이 알면 기분 나빠할 거 같아서 숨겼어. 그런데도 결국 들켜버렸네.” 시연은 창밖을 바라보며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여보.” 유건은 여자의 어깨를 잡고 돌려세웠다. “숨긴 건 내 잘못이야. 하지만 당신은 오해하고 있어. 장소미한테 그런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고. 오늘 밤, 나랑 그 사람은 단둘이 있는 시간조차 없었어.” 그는 계속 설명하려고 했지만, 시연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유건 씨, 내가 장소미한테 한 말, 당신한테도 그대로 돌려줄게요.” “친구라는 명목으로 미련을 남길 행동은 하지 마요.” 이 날카로운 일침 때문에 유건의 표정이 굳어졌다. “너무 심하게 말하는 거 아니야?” 그는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나랑 장소미가 한때 결혼까
유건은 혼자 남아 있는 것이 지루했고, 아까 일도 계속 신경 쓰였다. 결국 시연을 달래야겠다고 생각하며 서재로 향했다. 그는 여자의 뒤로 다가가 허리를 감싸 안았다. “또 책 보고 있어? 아까 깜빡했는데, 저녁은 제대로 먹었어?” 가까이 다가가자, 시연은 남자에게서 은은한 여성 향수를 맡을 수 있었다. ‘난 향수 안 쓰는데...’ 그렇다면 이건 장소미한테서 묻어온 향기였다. “먹었어요. 진아랑 같이.” 시연은 태연하게 유건을 밀어내고, 다시 펜을 들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간간이 필기를 이어갔다. 너무나 성의 없는 대답. 시연이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 유건은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랐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할 말은 다 했으니까.하지만 어떤 것들은 그가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함부로 약속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늦었어.” 유건이 다시 입을 열었다. “슬슬 잘 준비해야 하지 않아?” “먼저 자요. 이 두 장만 보고 들어갈게요.” 시연은 여전히 남자를 보지 않은 채, 담담하게 대답했다. 더 이상 말을 걸어도 반응이 없을 것 같았다. 그녀를 몇 초간 지켜보던 유건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어서 조용히 방으로 돌아갔다. 유건이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시연은 이미 침대에 기대어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는 시연 옆에 누우며 팔을 뻗어 그녀를 안으려 했다. 그러나 시연은 조용히 몸을 틀어 피하며, 핸드폰을 침대 옆 탁자에 올려놓고, 그 자세 그대로 누워 잠을 청했다. 여자의 등을 바라보며, 유건의 미간은 더욱 깊게 주름졌다. 결국 그날 밤, 유건은 쉽게 잠들지 못했고, 한참 뒤에야 간신히 눈을 감았다. 하지만 다음 날, 그가 눈을 떴을 때 시연은 먼저 일어나 있었다. 시연은 이미 아침 식사까지 마치고, 서재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유건은 식사를 끝낸 후, 그녀를 찾아갔다. “여보, 같이 나갈까? 오늘은 몇 시에 끝나? 그 시간에 맞춰
근처 두 블록에 걸쳐 차들이 멈춰 서 있었고, 차량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럼 어떡해요? 차 안에 다친 사람도 있는데, 빨리 병원 가야 할 거 아니에요!” 운전기사가 급히 다가와 승객들을 진정시켰다. “여러분, 진정하세요. 현재 교통경찰이 정리 중이고, 구급차도 곧 도착할 예정입니다.” “맞아요. 조금만 기다려 봐요. 우리보다는 앞쪽이 더 심하게 부딪혔대요.” “조금만 더 기다려 보죠.” 시연은 이마를 누르며 실소했다. ‘하... 앞으로 외출할 땐 진짜 길일을 확인하고 나가야 하나.’ 다행히도, 곧 경찰이 도착해 승객들을 한 명씩 차에서 내리게 했다. “일렬로 서서 이쪽으로 이동하세요. 교차로에 구급차가 대기 중이니 병원까지 태워 드릴 겁니다.” 승객들은 하나둘씩 차에서 내려 구급차를 기다리며 줄을 섰다. “시연아!” 시끌벅적한 인파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연이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 노은범이 서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땐 아닌 줄 알았는데, 가까이 와서 보니까 정말 너였네!” 은범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이마에 난 상처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쩌다 이마가 이렇게 된 거야?”“별거 아니야.” 남자의 얼굴이 심각해지자, 시연은 일부러 가볍게 웃어 보였다. “좌석에 부딪힌 거야. 심각한 문제는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곧바로 되물었다. “넌 괜찮아?” “멀쩡해.” 은범이 뒤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길게 늘어선 차들이 멈춰 서 있었다. “내 차는 저쪽에 있어. 사고엔 휘말리지 않았지만, 꼼짝없이 막혀서 움직이지 못하는 중이야.” “앞쪽 사람들! 빨리 좀 움직여요! 구급차를 타야 한다고요!” 뒤쪽에서 누군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시연도 더 머뭇거릴 수 없었다. “은범아, 나 구급차 타야 해...” “같이 가자.” 시연이 끝까지 말하기도 전에, 은범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팔을 잡았다. 그는 시연이 혹시라도 거부할까 봐, 덧붙
핸드폰 너머로 전해지는 시연의 말에, 유건의 감정은 점점 더 불안정해졌다. 아내에게 사고가 났다면, 자신은 남편으로서 당연히 걱정해야 했다. 하지만 시연은 기가 막히게도, 이런 상황에서도 유건을 미치게 했다. 특히 시연의 입에서 나온 ‘바쁘면 안 와도 된다’는 그 한마디.‘도대체 지시연 눈에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남편이었길래, 아내와 아이의 생사가 달린 상황에서도 무관심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분노가 극에 달한 순간, 유건은 오히려 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나한테 말은 왜 한 거야?]예상치 못한 반응에, 시연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이내 담담하게 대답했다. “나중에 집에 갔을 때, 내가 없으면 찾을 것 같아서요...” ‘하. 참나...’ 유건은 소리 없이 비웃었다. ‘그래, 당연히 찾겠지.’ ‘하지만 내가 너한테 ‘그 정도 의미’밖에 안 되는 거야?’ 이 순간, 남자의 감정이 폭발했다. [지시연, 일부러 그러는 거지?][어제 일 때문인가? 일부러 날 엿먹이려고?] “뭐라고요...?” 시연은 어리둥절한 듯 반문했지만, 유건은 더 이상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이건 우연이 아니야.’‘이 여자, 지금 나를 벌주고 있는 거야!!’ ‘그래, 인정하지. 처음 잘못한 건 나니까.’ 유건은 겨우 분노를 억눌렀지만, 날카로운 말투로 말했다. [기다려. 곧 갈 테니까.] “네.” 전화를 끊고 나서도, 시연은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왜 저렇게 화를 내지? 내가 귀찮아서 그런 건가?’ ‘그럼 안 오면 되잖아. 난 와달라고 한 적 없는데.’ ‘...’ “시연아.” 은범이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잠시 밖에서 통화하느라 자리를 비웠던 모양이었다. 은범이 의자를 당겨 앉자, 시연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은범아, 너 바쁘지 않아? 나 혼자 있어도 괜찮아.” 은범은 손목시계를 한 번 보고 나서, 태연하게 말했다. “고 대표님이 오면 갈게. 아마 곧 도착하시겠지?”
시연은 순간 당황했다. ‘벌써 도착했다고?’ 은범도 기환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봉지를 손에 쥔 채,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고 대표님 오셨네. 그럼 난 가볼게.” “오늘... 고마웠어.” 시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는 약봉지를 등 뒤로 숨기듯 들고 있었다. 마치 시연이 보지 않길 바라는 것처럼. 한참 망설이다가, 결국 무심한 척 한마디 더 했다. “은범아, 몸 잘 챙겨. 건강이 제일이야.” “알지.” 은범은 살짝 미소 지으며, 순간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멈췄다. 대신, 차분히 말을 이었다. “난 간다. 잘 있어.” “응... 잘 가.” 그 순간, 병실 문이 열렸다. 유건과 은범. 둘의 시선이 맞닿았다. 짧지만 묘한 기류가 흐르는 사이, 은범이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고 대표님.” 이어서 간결하게 설명했다. “사고가 난 곳을 지나고 있었는데... 마침 거기 있더라고요.” 그 한마디로, 왜 자신이 여기 있는지 설명을 끝냈다. 그리고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고, 유건을 지나쳐 병실을 빠져나갔다. 유건은 무표정하게 은범을 보내고, 천천히 시연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시연은 시선을 피한 채, 문 쪽을 향해 있었다. 은범이 나가는 순간, 그녀는 남자의 손에 들린 약봉지를 확인했다. 어렴풋이 그 물체가 보였다. ‘수면제...?’ ‘잠을 잘 자지 못하는 거야? 그 정도로 심한 건가?’ 시연이 잠시 생각에 빠진 순간, 유건이 낮게 웃음을 흘렸다. “허.” 이것이 비웃음이었다. “뭐 그렇게까지 아쉬워? 한참 바라보네.” “기환이한테 다시 불러오라고 할까? 아직 멀리 못 갔을 텐데.” 유건의 말투에는 짙은 조롱이 묻어 있었다. 그 순간, 시연은 천천히 몸을 돌려 침대에 누웠다. ‘하... 진짜 피곤하다.’ 유건은 눈을 크게 떴다. ‘이 상황에서 대놓고 무시?’ ‘어제까지는 화
“지시연!!!” 유건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리고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붉어졌다. “정말 죽고 싶어?” “뭐라고요?” 하지만 시연은 전혀 기가 죽지 않았다. 오히려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당신은 장소미를 만날 수 있는데, 나는 은범이를 만나면 안 돼요?”“그래! 유건이 고함쳤다. “난 해도 되지만, 당신은 안 돼!” 남자의 목소리가 병실을 뒤흔들었다. 순간, 공간이 얼어붙었다. 시연의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난 안 된다고?’ ‘너무나도 뻔뻔한 이중잣대...’ 순간,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더 이상 참을 이유도, 참을 필요도 없을 것 같아서 단숨에 이불을 젖히고 일어나, 떨리는 손으로 의자에 걸쳐둔 가방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 “형수님, 어디 가세요?” 기환이 당황하며 길을 막아섰다. 그러나 유건이 차갑게 명령했다. “놔둬.” “가고 싶으면 가라고 해.” “나한테 마음도 없는 여자를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잖아?” ‘좋아, 가서 전 남자 친구나 만나보라지. 딱 잘 어울리는 커플이잖아.’ 이 말을 듣자, 시연은 차갑게 비웃었다.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면서,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인 척. 그녀도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기환을 피해 몸을 돌려, 병실을 빠져나갔다. ...“하...” 유건은 미간을 깊이 찌푸렸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려고?’ 시연이 병실에서 나가며 가방을 꼭 쥐고 있는 걸 보니, 집으로 돌아가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기환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형님... 진짜 안 따라가실 겁니까?”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유건은 여전히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따르릉— 그때, 병실 한쪽에서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시연의 핸드폰이었다. 그녀는 너무 급히 나가면서 핸드폰을 두고 갔다. 유건은 무심코
유건은 순간 해명할 말을 잃었다. 시연이 어젯밤 일을 꺼내자, 그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이 여자 말이 맞았어. 내가 잘못했어.’ ‘난 변명할 여지도 없어.’ 유건은 입술을 꽉 다물었다가, 결국 체념한 듯 팔을 뻗어 시연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뭐 하는 거예요?!” 시연이 놀란 눈으로 남자를 쳐다봤다. “내가 잘못했어.” 유건은 조금 전까지의 날카로운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당장 병원부터 가자. 정밀검사하고, 영양수액도 맞아야지.”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시연을 품에 안고 병실을 나섰다. 산부인과. 오늘은 원래 검진일이 아니었지만, 유건은 사고까지 겪은 시연을 그냥 둘 수 없었다. 시연이 반대할 틈도 없이, 강제로 정밀검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그는 결과지를 보며, 조용히 숨을 삼켰다. ‘이게 영양수액을 맞아야 하는 이유였어?’ ‘산모와 태아의 건강을 위해 보충해야 할 필수 영양소...’ ‘시연이는 알고 있었는데, 나는 지금까지 전혀 알지 못했어...’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시연의 팔에 주사를 놓았다. 시연은 조용히 침대에 누웠고, 유건은 침대 옆에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랜 침묵 끝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언제부터 알았어?” 시연은 유건이 무엇을 묻는지 단번에 알아챘다. “1, 2주 정도 됐어요.” “그럼 우리가 결혼하기 전부터였네.” 유건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는 시연이 검진을 받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결과에 관해 묻지 않았다. 시연도 말이 없었으니, 당시의 유건은 당연히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이제야 알게 됐다. 시연 배 속의 아이가, 주수보다 작다는 사실을. 그래서 시연에게는 영양 공급이 필요했던 거다. 하지만, 시연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를 신뢰하지 않아서인가?’ 유건은 씁쓸한 기분으로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나한테 말 안 한 이유가, 내가
“나가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올게.” “그래요.” 시연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지만, 유건이 병실을 나가는 뒷모습을 보고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방금... 저 남자, 뭔가 힘들어 보였어.’ ‘혹시... 내가 아이가 작다는 걸 말하지 않아서?’ ‘하지만, 본인의 아이가 아니잖아?’ 병원 밖. 유건은 담배를 한 개비 꺼내 입에 물고, 주지한과 통화했다. 신강대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가 단순한 사고인지,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으니까. [형님, 겉으로 보기엔 그냥 사고로 보입니다. 하지만 더 철저히 조사해 볼까요?] “그래. 이 일은 네가 직접 챙겨.” [네, 형님.]사실, 유건이 괜한 의심을 하는 건 아니었다. 사고가 난 그 시간에, 하필이면 시연이 버스에 타고 있었다. 너무 기막힌 우연 아닌가? CA국 쪽에서 시연을 노리고 있다는 걸 유건도 알고 있었다.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두 번째 시도를 안 할 거란 보장은 없었다. [형님, 그리고...]지한이 머뭇거렸다. “할 말 있으면 해.” [예...] 그는 다소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집사님께 확인했는데, 사모님께서 오늘 하루 종일 집에 계셨고, 점심을 드신 후에야 외출하셨다고 합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유건의 눈빛이 변했다. ‘점심 먹고 나가서, 바로 사고?’ 즉, 시연이 외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고를 당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유건은... 시연이 은범과 함께 있었다고 단정 지었다. 유건은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이 한심해졌다. “알겠어.” 유건은 짧게 대답하고, 담배를 비벼 껐다. 그리고 미묘한 기분으로 병실로 돌아섰다. 병실 안. 영양수액이 거의 다 떨어져 갈 무렵, 간호사가 와서 바늘을 빼주었다. 그리고 그때, 유건이 병실로 들어왔다. 조용히 침대 곁에 앉아, 시연의 손을 잡고 솜뭉치를 눌렀다. “앞으로 외출할 땐, 기환이를 데리고 다녀.” 그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한테 화났다고
유건은 핸드폰을 쥔 채, 무의식적으로 발코니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그리고 주저하다가 조용히 입을 뗐다.“소미 씨, 미안해. 난 못 갈 것 같아.”[네?]소미는 당황했는데, 유건이 거절할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부탁한 건, 거의 다 들어줬던 사람이었으니까. 게다가 두 사람 사이에는 ‘오랜 세월 쌓인 정’까지 있었는데...[왜요?]“미안해.”유건은 차분하게 말했다.“우주가 이제 막 퇴원했어. 아직 회복 중이라 시연이도 신경이 예민한 상태야. 난 두 사람 곁을 지켜야 해.”[아...]소미는 속으로 차갑게 웃었다.‘지시연 곁을 지켜야 한다고? 하루 24시간 내내?’‘둘은 이미 부부가 됐는데, 매일 함께 있는 걸로는 부족해서, 단 몇 시간조차 시간을 낼 수 없다는 거야?’ 소미는 손을 꼭 쥐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래요? 이해해요. 그래야죠.]“그날엔 지한을 보낼게.”유건은 덧붙였다.“걱정하지 마. 소미 씨가 그 바닥에서 가볍게 보이는 일은 없을 거야.”[그래요. 고마워요.]전화를 끊자마자, 소미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힘껏 던졌다.핸드폰이 벽에 부딪혀 땅에 떨어졌다.“신경이 예민하다고?”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그래? 그럼 내 마음은...?’‘지시연 곁을 지켜주겠다고? 그럼 나는?’ ...조용한 나날이 흐르던 어느 날.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시연은 양석현 교수에게 호출받았다.“교수님.”“오, 시연이 왔구나!”양석현 교수는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아니, 오히려 들뜬 기색이었다.“어서 앉아! 임신 중인 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고 대표님이 나를 탓할 거 아니야!” “무슨 일이신데요?”시연은 피식 웃으며 앉았다.“제가 그 정도로 깜짝 놀랄 일이에요? 저, 그 정도로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은 아니에요.” “아니, 네 나이 또래라면 누구든 놀랄 만한 소식이야.”양석현은 의미심장하게 말을 돌렸다.“솔직히 말하면, 너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단 한 번도 경험하지
유건이 본 것은 시연이 가져온 꽃과 묘비 위의 사진이었다. 사진 속 여자는 젊었고, 눈매와 이목구비가 시연과 닮아 있었다.그는 시선을 아래로 내린 후, 묘비에 적힌 글귀를 읽었다. “하... 이제 모든 게 명확해졌네”유건은 냉소하며 발끝에서부터 냉기가 스며들었다.그리고 단숨에 시연이 오늘 찾아온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았다.바로 ‘부명주’라는 사람이었으며, 그녀는 시연의 친어머니였다.그는 천천히 시연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분이 네가 말한 ‘어르신’이야?”남자의 눈빛이 차가웠다.“지금, 내 앞에서 한번 불러보지 그래? ‘이모’라고.” 시연은 눈을 감았다가 뜬 후, 담담하게 말했다.“우리 엄마예요. 오늘은 엄마의 기일이고요.”“이제야 말하네?”유건의 분노가 폭발했다. 얼굴이 굳어지고, 감정이 격해져 제어할 수 없었다.그리고 짜증스럽게 발을 구르더니, 마지막엔 참지 못하고 욕설까지 터져 나왔다.“씨X, 난 완전 바보였네! 지시연, 넌 대체 나를 뭐로 생각하는 거야?”시연은 고개를 숙였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시연, 난 네 남편이야!”법적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두 사람은 부부였다.결혼식도 했고, 부부로서 관계도 맺었다.그런데 장모 기일에, 묘지까지 왔으면서도 유건은 제지당하고 말았다.“설명해. 왜 거짓말했어? 왜 날 못 오게 했어?”시연은 두 손을 꼭 모아 쥐고, 천천히 말했다.“당신을 오게 하면... 우리 엄마한테 어떻게 소개해야 하죠?”“뭐...?”유건은 어이없어졌고, 시연은 이어서 말했다.“엄마한테 ‘이 사람이 내 남편이에요, 엄마의 사위예요’라고 해야 하나요?”“아니, 당연한 거잖아.”유건이 답했다.“하지만...”시연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난 일 년에 최소 다섯 번은 여기에 와요. 설, 한식, 추석, 그리고 생일이랑 기일...”그러다 목소리가 서늘해졌다.“그런데 다음번에 올 때, 내가 혼자라면요...?”“여보...”유건은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그러나 시연은
“...미안하다.”지동성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아빠가 잘못했다. 깊이 생각하지 못했어.”“됐어요.”시연은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사과한다고 우주가 다치기 전으로 돌아가나요?”“시연아... 아, 맞다.”지동성이 무언가를 떠올린 듯 지갑을 꺼내어 카드를 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지난번에 주려던 거야. 받아.”시연이 움직이지 않자, 그는 다시 설득했다.“필요할 거야.”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이렇게 중요한 날에 너 혼자 왔구나. 고 대표는 네 곁을 지키지 않았어, 그 말인즉슨, 그 사람은 널 충분히 아끼지 않는다는 거야. 그런 두 사람의 관계가 오래갈 것 같니? 고씨 가문을 떠나게 되면, 너는 돈이 필요할 거야.” 시연은 잠시 흔들렸다.왜냐하면 지동성이 한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사실 따지고 보면, 지동성 집안의 재산 중에는 시연과 우주의 몫도 있는 게 맞았다.“시연아, 받아. 거절하지 말고.”그때, 뒤에서 깊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럴 필요 없습니다.”...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시연은 긴장했다.뒤를 돌아보자, 유건의 모습이 보였다.그녀는 반사적으로 유건의 앞을 가로막았다.즉, 묘비를 보지 못하게 하려는 듯했다.“왜 왔어요? 기다리라고 했잖아요.”유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왜 오면 안 되는데?”‘안 왔으면, 내 와이프 딴 남자한테 뺏겼을지도 몰라.’그는 거리를 두고 지켜보고 있었다.멀리서도 지동성이 서 있는 걸 볼 수 있었고, 두 사람이 얘기하는 것도 알 수 있었다.처음에는 시연과 지동성이 친척과 같은 관계라고 하니, 지동성이 두 마디 정도하고 간다면 유건도 이해할 참이었다. ‘가족 같은 사이니까, 그냥 몇 마디 하는 거겠지.’하지만, 지동성은 계속 떠날 기미가 없었다.‘뭐야, 카드까지 내밀고 있잖아?’유건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그는 시연의 손목을 잡아 그녀를 자신의 뒤로 숨겼다.그리고 지동성을 향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지 사장님, 아내도 따
‘이 꽃, 누구한테 주려는 거지?’“다 준비됐습니다.”가게 주인이 꽃다발을 건넸다.“감사합니다.”“결제는 어떻게 하시겠어요?”“여기요, 고객님.”유건은 핸드폰을 꺼내 QR코드를 스캔해 결제했다....꽃집을 나서며, 유건이 손을 내밀었다.“내가 들게.”“괜찮아요.”시연은 고개를 저었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을 꺼냈다.“다른 일 없어요? 나는 기환 씨랑 가도 돼요.”“응?”유건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기환이랑 나랑 같아?”“아니요.”시연은 급히 고개를 저었다.“그냥, 당신이 지루할까 봐요.”그는 꽃을 받아 들었다.“성묘 가는 거야?”“짐작했어요?”“하.”유건은 코웃음을 쳤다.“국화에 카네이션까지 샀는데, 너무 티 나잖아. 근데 누구 성묘야? 오늘은 무슨 날도 아니잖아.”“아는 어르신이에요.”시연의 목소리가 떨렸다.“날 많이 아껴 주셨던 분이죠.”“그럼 가자.”유건은 그녀의 손목을 가볍게 잡았다.“딱히 할 일도 없으니까, 같이 갈게.”시연은 거절하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차는 도시 서쪽에 있는 주선교의 하늘길 묘원에 멈췄다.도착하자마자, 시연이 입을 열었다.“혼자 올라갈게요. 당신이랑 기환 씨는 여기서 기다려줘요.”“안 돼.”유건은 단칼에 거절했다.“당신, 정말 정신 안 차릴 거야? 납치, 교통사고, 그것도 모자라 흉기 상해까지... 그동안 몇 번이나 당했는데, 정말 안 무서워?”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하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오늘은 나 혼자 가야 해요.”그녀는 계속 고집을 부렸다.유건은 타이르고 싶었지만, 시연이 그의 소매를 살짝 잡아 흔들었다.“딱 이번 한 번만...”그는 한숨을 쉬었다. 시연이 이렇게 나올 때면, 그는 결국 져줄 수밖에 없었다.“좋아, 대신 우리 눈에 보이는 곳까지만 가. 알겠지?”“그래요.”...차에서 내린 시연이 앞장서 걸었다.유건과 기환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그녀를 지켜봤다.점점 언덕을 오르자, 시연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른다고요?”시연은 이를 꽉 물었다. 입을 떼자마자, 감정을 억누를 수 없이 목소리가 떨렸다.“그럼 알 필요 없어요! 하지만 지 사장님께 딱 하나만 부탁할게요. 죽을 거면 빨리 죽으세요.” “지 사장님께서 저를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제가 지 사장님의 제사상은 차려줄지도 모르잖아요?” 그렇게 말하고, 단번에 전화를 끊었다.시연은 바로 고개를 들고, 눈을 깜빡였다.그리고 눈물이 차오르는 걸 억지로 억눌렀다. ‘우주 말고는, 지동성이든 고유건이든, 누구도 내 눈물을 볼 자격이 없어. 단 한 방울이라도!’...그렇게 이틀이 흘렀다.시연은 계속 병원에서 동생을 지켰다.다행히 우주의 머리 상처는 크지 않았고, 매일 약을 바르고 항생제만 맞으면 됐다.유건이 불러온 정신과 교수는 실력자이기 때문에, 우주의 상태는 예상보다 더 빠르게 나아지고 있었다.비록 아직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우주의 심리적 치유는 서두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고, 천천히, 꾸준히 나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오전 10시.우주의 항생제 투여를 확인한 후, 시연은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우주야, 누나는 잠깐 나갔다 올 거야. 오늘은 같이 있을 수 없어.”“누나가 어디 가는지 궁금하지 않아?”그녀는 혼잣말하듯 말했지만, 우주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엄마를 보러 가.”그 순간, 시연의 눈가가 촉촉해졌다.그녀는 우주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우주는 저항하지 않았다.이건 무의식적으로 누나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었다.‘엄마...’시연의 목소리가 떨렸다.“우주야, 엄마 기억나?”우주는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그렇구나. 기억이 안 나는구나.”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그럴 만도 해. 엄마가 떠났을 때, 우주는 아직 돌도 안 지난 아기였으니까.”시연이 손을 거두려는 순간, 우주가 갑자기 누나의 손을 붙잡으며 누나를 바라봤다.소년의 눈빛은 간절했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누나, 가지 말까?”시연은 깜짝 놀라면서도, 기쁨을 감추지
우주는 즉시 입을 떼지 않았다.유건도 재촉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기다렸다.시간이 조금씩 흐르며, 우주는 서서히 힘을 풀었다.그제야 소년의 이가 천천히 팔에서 떨어졌다.의사와 간호사들이 급히 다가왔고, 시연은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가 우주를 안았다.“우주야, 괜찮아. 누나가 있어. 누나가 여기 있어.”우주는 아까보다 한층 조용해졌지만, 여전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러나 적어도 더 이상 저항하지는 않았다.“사모님, 우주 군에게 진정제를 투여하고 상담 치료를 진행해야 합니다.”“네, 그렇게 해주세요.”시연은 우주를 천천히 놓아주며 의사와 간호사에게 맡겼다.그런데 돌아서자마자, 유건이 팔을 움켜쥐고 있었다.피가 남자의 손가락 사이로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이쪽으로 와요.”시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유건의 팔을 붙잡고 소파로 데려갔다.“기다려요.”다행히도 병원이었기에 필요한 물품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시연은 간호사에게 소독 키트를 받아왔다.그녀가 상처를 살펴보니, 우주가 제대로 힘을 준 게 확실했다.살갗이 깊게 파이고, 양쪽으로 찢어진 상처에서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조금만 더 오래 물었더라면, 살점이 뜯겨 나갔을지도 모른다.이것이 두 번째였다.우주 때문에 유건이 다친 것이.유건의 팔에는 아직 다 낫지 않은 화상 자국이 있었다.시연의 눈가가 붉어졌다.그녀는 감사함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소독솜을 들고 조심스럽게 상처를 닦아냈다.“좀 아플 거예요. 너무 아프면 말해요. 살살할게요.”“괜찮아, 안 아파.”유건은 태연하게 말했다.그러나 이내 시연의 눈가가 붉어진 걸 보고, 그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이 여자... 지금 나 때문에 우는 거야?’“여보.”유건은 목이 메어 시연을 불렀다.그리고 다치지 않은 팔로 그녀를 가볍게 끌어안았다.시연은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왜 그래요?”“나 아파.”시연은 당황했다. “아까 안 아프다고...?”“아파, 엄청 아파.”“그 정도예요?”시연은
기환은 깜짝 놀라며 급히 말했다.“오늘, 장소미 씨가 형수님한테 말하는 걸 들었어요. 형님이랑 오늘 만나서 점심 약속을 하셨다고...”유건은 순간 굳어졌다.‘뭐라고?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야?!’이제야 알 것 같았다. 왜 시연이 자신에게 차갑게 대했는지.그녀가 왜 그렇게 거리감을 두었는지.유건의 가슴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진작에 말했어야지!’“왜 이제야 말하는 거야?!”기환은 억울한 얼굴로 변명했다.“기회가 없었어요...”‘형님은 형수님 곁을 지키거나, 장소미 씨와 대화하고 계셨으니...’‘내가 감히 앞에 끼어들 수가 없었던 거지...’유건은 깊은숨을 내쉬었다.그래도 이 사실을 기환이 말해준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는 계속 아무것도 모른 채 헤맬 뻔했다....“아악!”병실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곧이어 쏟아지는 물건 소리, 난장판이 된 소리가 들려왔다.“우주야!”이어지는 건 시연의 다급한 목소리와 억눌린 울음.“누나야! 우주야, 누나 좀 봐! 제발...!!”유건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단숨에 병실로 뛰어 들어갔다.그리고 마침 넘어지려는 시연을 붙잡았다.“괜찮아? 얼른 앉아!”“괜찮아요.”시연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그럼 어떻게 해야 안 괜찮은 건데?”병실 안에서는 간호사와 의사, 그리고 방금 도착한 정신과 교수가 우주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아무도 소년을 막을 수 없었다.우주는 이미 통제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누나를 밀쳐낼 리 없을 테니까. 유건은 단호하게 말했다.“여보, 날 믿어. 우주는 내가 맡을게.”시연은 입술을 앙다물었다.그러나 결국, 유건이 우주를 맡겠다고 하자, 한 발짝 물러났다.“그래.”유건은 시연의 머리를 가볍게 토닥였다.그런 뒤, 곧장 우주에게 다가가 소년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아악...!!!”우주는 더욱 겁에 질려 소리를 질렀다.유건은 흔들리지 않았다.“우주야, 나
“아니에요. 저 혼자 갈 수 있어요.”“그냥 내 말 들어.”유건은 단호했다.“민환이 데려다줄 거야. 이미 충분히 복잡해졌어. 더 걱정하게 만들지 마, 응?”“알겠어요.”소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를 보내고 나서도, 유건의 미간은 펴지지 않았다.소미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장 여사가 혼자 있는 우주를 발견했다? 우주는 왜 혼자 있었던 거지?” ‘그 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병실은 고요했다.우주는 약물로 인해 깊이 잠들어 있었고, 시연도 침대 옆에서 고개를 숙인 채 잠들어 있었다.유건은 조용히 다가가 시연을 안아 올려 옆에 있는 보호자 침대에 눕혔다.“으음.”시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흐느적거렸다.순간, 유건은 긴장했다. 시연을 깨운 줄 알고 멈칫했지만, 다행히도 다시 조용해졌다.그러나 그녀의 얼굴에는 여전히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여자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그때, 시연이 희미하게 신음했다.“엄마...”유건의 손길이 멈췄다.그녀는 다시 한번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엄마... 엄마... 으흑...”끝내 억누른 듯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눈을 감은 채, 시연의 눈가에서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다.‘우리 와이프가...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구나.’사람은 가장 약해지고, 슬프고, 무력할 때 본능적으로 어머니를 찾는다.유건은 여자의 깨끗한 얼굴 위로 흐르는 눈물을 바라보며 가슴이 아렸다.그는 결국 시연 곁에 누워,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았다.그리고 한 손으로 시연의 등을 천천히 토닥였다.아주 부드럽고도 인내심 있는 손길이었다.점차 시연의 떨림이 잦아들었고, 마침내 조용히 눈을 떴다.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있었고, 그녀는 그 불편함에 손을 올려 닦으려 했다.“손으로 닦지 마.”유건이 시연의 손을 붙잡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내가 닦아줄게.”남자의 손길은 조심스러웠다.시연은 훨씬 편안해졌다. 하지만 정신이 또렷해지자, 이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
시연의 손목이 단단히 잡혔다.유건이 그녀를 붙잡고 말했다.“앉아.”시연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그는 애타고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내가 한마디 했다고 그렇게까지 날 몰아붙여야 해? 내가 우주를 신경 안 쓴다고? 당신, 정말 몰라서 이러는 거야, 아니면 일부러 날 화나게 하려는 거야?”시연은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유건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우주 상태는 깨어나야 정확히 알 수 있어. 나도 함께할 거야. 당신 곁에서 우주를 지킬게, 응?”“당신...?”시연이 비웃듯 눈썹을 올렸다.“그럴 시간이나 있어요? 고 대표님은 아주 바쁘신 분이잖아요.”그런 냉소적인 태도에, 유건은 그녀의 기분이 좋지 않음을 이해하고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있어,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낼 거야.”그는 시연을 부드럽게 눌러 앉혔다.“그러니까 지금은 일단 밥 좀 먹어. 응?”“싫어요!”유건은 미간을 좁혔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는 분명 잘못한 게 없었고, 도착했을 때 소미와 말을 섞지도 않았다.그런데도 시연은 마치 자신에게 큰 원한이라도 있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대체 뭐가 문제지?’답이 나오지 않았지만, 지금은 달래는 게 우선이었다.“그럼 어떻게 해야 먹을래?”“간단해요.”시연은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내 앞에서 사라져 줘요. 당신 얼굴만 안 보면, 나도 식욕이 생길 거예요.”유건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억눌렀다.두 손을 꼭 쥐고, 결국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래, 갈 테니까 꼭 먹어.”그는 돌아서서 나갔다.그 순간, 시연은 아무렇지도 않게 식기를 들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유건은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다.그러나 동시에 서운함이 밀려왔다.‘내가 그렇게까지 역겨운 존재야?’그는 잘못한 게 없었다.그리고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한 가지가 있었다. ‘우주가 왜 지 사장 집에서 다친 채 발견된 거지?’이런 생각을 하는 동시에 시연의 눈빛을 떠올렸다.‘시연이의 그 눈빛... 단순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