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390화

Author: 임공
핸드폰 너머로 전해지는 시연의 말에, 유건의 감정은 점점 더 불안정해졌다.

아내에게 사고가 났다면, 자신은 남편으로서 당연히 걱정해야 했다.

하지만 시연은 기가 막히게도, 이런 상황에서도 유건을 미치게 했다.

특히 시연의 입에서 나온 ‘바쁘면 안 와도 된다’는 그 한마디.

‘도대체 지시연 눈에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남편이었길래, 아내와 아이의 생사가 달린 상황에서도 무관심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분노가 극에 달한 순간, 유건은 오히려 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나한테 말은 왜 한 거야?]

예상치 못한 반응에, 시연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이내 담담하게 대답했다.

“나중에 집에 갔을 때, 내가 없으면 찾을 것 같아서요...”

‘하. 참나...’

유건은 소리 없이 비웃었다.

‘그래, 당연히 찾겠지.’

‘하지만 내가 너한테 ‘그 정도 의미’밖에 안 되는 거야?’

이 순간, 남자의 감정이 폭발했다.

[지시연, 일부러 그러는 거지?]

[어제 일 때문인가? 일부러 날 엿먹이려고?]

“뭐라고요...?”

시연은 어리둥절한 듯 반문했지만, 유건은 더 이상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이건 우연이 아니야.’

‘이 여자, 지금 나를 벌주고 있는 거야!!’

‘그래, 인정하지. 처음 잘못한 건 나니까.’

유건은 겨우 분노를 억눌렀지만, 날카로운 말투로 말했다.

[기다려. 곧 갈 테니까.]

“네.”

전화를 끊고 나서도, 시연은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왜 저렇게 화를 내지? 내가 귀찮아서 그런 건가?’

‘그럼 안 오면 되잖아. 난 와달라고 한 적 없는데.’

‘...’

“시연아.”

은범이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잠시 밖에서 통화하느라 자리를 비웠던 모양이었다.

은범이 의자를 당겨 앉자, 시연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은범아, 너 바쁘지 않아? 나 혼자 있어도 괜찮아.”

은범은 손목시계를 한 번 보고 나서, 태연하게 말했다.

“고 대표님이 오면 갈게. 아마 곧 도착하시겠지?”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391화

    시연은 순간 당황했다. ‘벌써 도착했다고?’ 은범도 기환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봉지를 손에 쥔 채,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고 대표님 오셨네. 그럼 난 가볼게.” “오늘... 고마웠어.” 시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는 약봉지를 등 뒤로 숨기듯 들고 있었다. 마치 시연이 보지 않길 바라는 것처럼. 한참 망설이다가, 결국 무심한 척 한마디 더 했다. “은범아, 몸 잘 챙겨. 건강이 제일이야.” “알지.” 은범은 살짝 미소 지으며, 순간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멈췄다. 대신, 차분히 말을 이었다. “난 간다. 잘 있어.” “응... 잘 가.” 그 순간, 병실 문이 열렸다. 유건과 은범. 둘의 시선이 맞닿았다. 짧지만 묘한 기류가 흐르는 사이, 은범이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고 대표님.” 이어서 간결하게 설명했다. “사고가 난 곳을 지나고 있었는데... 마침 거기 있더라고요.” 그 한마디로, 왜 자신이 여기 있는지 설명을 끝냈다. 그리고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고, 유건을 지나쳐 병실을 빠져나갔다. 유건은 무표정하게 은범을 보내고, 천천히 시연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시연은 시선을 피한 채, 문 쪽을 향해 있었다. 은범이 나가는 순간, 그녀는 남자의 손에 들린 약봉지를 확인했다. 어렴풋이 그 물체가 보였다. ‘수면제...?’ ‘잠을 잘 자지 못하는 거야? 그 정도로 심한 건가?’ 시연이 잠시 생각에 빠진 순간, 유건이 낮게 웃음을 흘렸다. “허.” 이것이 비웃음이었다. “뭐 그렇게까지 아쉬워? 한참 바라보네.” “기환이한테 다시 불러오라고 할까? 아직 멀리 못 갔을 텐데.” 유건의 말투에는 짙은 조롱이 묻어 있었다. 그 순간, 시연은 천천히 몸을 돌려 침대에 누웠다. ‘하... 진짜 피곤하다.’ 유건은 눈을 크게 떴다. ‘이 상황에서 대놓고 무시?’ ‘어제까지는 화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392화

    “지시연!!!” 유건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리고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붉어졌다. “정말 죽고 싶어?” “뭐라고요?” 하지만 시연은 전혀 기가 죽지 않았다. 오히려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당신은 장소미를 만날 수 있는데, 나는 은범이를 만나면 안 돼요?”“그래! 유건이 고함쳤다. “난 해도 되지만, 당신은 안 돼!” 남자의 목소리가 병실을 뒤흔들었다. 순간, 공간이 얼어붙었다. 시연의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난 안 된다고?’ ‘너무나도 뻔뻔한 이중잣대...’ 순간,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더 이상 참을 이유도, 참을 필요도 없을 것 같아서 단숨에 이불을 젖히고 일어나, 떨리는 손으로 의자에 걸쳐둔 가방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 “형수님, 어디 가세요?” 기환이 당황하며 길을 막아섰다. 그러나 유건이 차갑게 명령했다. “놔둬.” “가고 싶으면 가라고 해.” “나한테 마음도 없는 여자를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잖아?” ‘좋아, 가서 전 남자 친구나 만나보라지. 딱 잘 어울리는 커플이잖아.’ 이 말을 듣자, 시연은 차갑게 비웃었다.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면서,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인 척. 그녀도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기환을 피해 몸을 돌려, 병실을 빠져나갔다. ...“하...” 유건은 미간을 깊이 찌푸렸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려고?’ 시연이 병실에서 나가며 가방을 꼭 쥐고 있는 걸 보니, 집으로 돌아가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기환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형님... 진짜 안 따라가실 겁니까?”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유건은 여전히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따르릉— 그때, 병실 한쪽에서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시연의 핸드폰이었다. 그녀는 너무 급히 나가면서 핸드폰을 두고 갔다. 유건은 무심코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393화

    유건은 순간 해명할 말을 잃었다. 시연이 어젯밤 일을 꺼내자, 그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이 여자 말이 맞았어. 내가 잘못했어.’ ‘난 변명할 여지도 없어.’ 유건은 입술을 꽉 다물었다가, 결국 체념한 듯 팔을 뻗어 시연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뭐 하는 거예요?!” 시연이 놀란 눈으로 남자를 쳐다봤다. “내가 잘못했어.” 유건은 조금 전까지의 날카로운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당장 병원부터 가자. 정밀검사하고, 영양수액도 맞아야지.”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시연을 품에 안고 병실을 나섰다. 산부인과. 오늘은 원래 검진일이 아니었지만, 유건은 사고까지 겪은 시연을 그냥 둘 수 없었다. 시연이 반대할 틈도 없이, 강제로 정밀검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그는 결과지를 보며, 조용히 숨을 삼켰다. ‘이게 영양수액을 맞아야 하는 이유였어?’ ‘산모와 태아의 건강을 위해 보충해야 할 필수 영양소...’ ‘시연이는 알고 있었는데, 나는 지금까지 전혀 알지 못했어...’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시연의 팔에 주사를 놓았다. 시연은 조용히 침대에 누웠고, 유건은 침대 옆에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랜 침묵 끝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언제부터 알았어?” 시연은 유건이 무엇을 묻는지 단번에 알아챘다. “1, 2주 정도 됐어요.” “그럼 우리가 결혼하기 전부터였네.” 유건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는 시연이 검진을 받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결과에 관해 묻지 않았다. 시연도 말이 없었으니, 당시의 유건은 당연히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이제야 알게 됐다. 시연 배 속의 아이가, 주수보다 작다는 사실을. 그래서 시연에게는 영양 공급이 필요했던 거다. 하지만, 시연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를 신뢰하지 않아서인가?’ 유건은 씁쓸한 기분으로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나한테 말 안 한 이유가, 내가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394화

    “나가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올게.” “그래요.” 시연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지만, 유건이 병실을 나가는 뒷모습을 보고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방금... 저 남자, 뭔가 힘들어 보였어.’ ‘혹시... 내가 아이가 작다는 걸 말하지 않아서?’ ‘하지만, 본인의 아이가 아니잖아?’ 병원 밖. 유건은 담배를 한 개비 꺼내 입에 물고, 주지한과 통화했다. 신강대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가 단순한 사고인지,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으니까. [형님, 겉으로 보기엔 그냥 사고로 보입니다. 하지만 더 철저히 조사해 볼까요?] “그래. 이 일은 네가 직접 챙겨.” [네, 형님.]사실, 유건이 괜한 의심을 하는 건 아니었다. 사고가 난 그 시간에, 하필이면 시연이 버스에 타고 있었다. 너무 기막힌 우연 아닌가? CA국 쪽에서 시연을 노리고 있다는 걸 유건도 알고 있었다.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두 번째 시도를 안 할 거란 보장은 없었다. [형님, 그리고...]지한이 머뭇거렸다. “할 말 있으면 해.” [예...] 그는 다소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집사님께 확인했는데, 사모님께서 오늘 하루 종일 집에 계셨고, 점심을 드신 후에야 외출하셨다고 합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유건의 눈빛이 변했다. ‘점심 먹고 나가서, 바로 사고?’ 즉, 시연이 외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고를 당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유건은... 시연이 은범과 함께 있었다고 단정 지었다. 유건은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이 한심해졌다. “알겠어.” 유건은 짧게 대답하고, 담배를 비벼 껐다. 그리고 미묘한 기분으로 병실로 돌아섰다. 병실 안. 영양수액이 거의 다 떨어져 갈 무렵, 간호사가 와서 바늘을 빼주었다. 그리고 그때, 유건이 병실로 들어왔다. 조용히 침대 곁에 앉아, 시연의 손을 잡고 솜뭉치를 눌렀다. “앞으로 외출할 땐, 기환이를 데리고 다녀.” 그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한테 화났다고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395화

    다음 날, 유건은 여느 때처럼 시연보다 일찍 일어났다.시연이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유건이 왕성애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앞으로, 이모님은 하루에 다섯 끼에서 여섯 끼 정도 준비해 주세요. 한 끼 양은 너무 많지 않게요.”오선화 교수는 유건에게 당부했다. 이렇게 먹어야만 아이에게 살이 붙을 수 있다고.아이는 임신 주수에 비해 작았다. 영양제를 맞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임산부 본인의 몸 관리가 가장 중요한 법이었다“네, 알겠습니다.”고씨 가문의 자손이 걸린 일이니, 왕성애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도련님, 걱정하지 마세요. 다 기억해 두겠습니다.”“수고가 많으십니다.”유건이 뒤돌아보니 시연이 서 있었다.그는 시연에게 몇 마디 당부했다. “병원에 있을 때도 식사 좀 잘 챙겨 먹어. 그리고 외출할 땐 꼭 정기환을 챙기고.”“알겠어요.”시연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철없이 굴거나 투정을 부릴 사람이 아니니까.‘정말 착하네.'유건은 여자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 “난 간다. 요즘 한가하니까 저녁엔 내가 데리러 갈게.”“네.”둘 다 어제의 약속을 어긴 일은 언급하지 않았다.이렇게 넘어가면 된 거다. 부부는 매일 티격태격하면서 살아가는 거니까. ...오늘 시연은 당직이 아니라 시간이 여유로웠다.심폐 프로젝트팀의 연구자료를 정리하고, 사용한 진료차트를 포장해 의무 기록실에 보냈다.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시연은 외래 진료실을 지나치다가 문득 지동성을 보게 되었다.그는 환자복을 입고 있었고, 혼자가 아니었다. 간호사와 함께였으니, 검사를 받으러 온 듯했다.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지동성의 안색은 전보다 더 안 좋아 보였다.시연은 잠시 망설였다. ‘못 본 척할까?’“시연아!”하지만 이미 지동성은 먼저 시연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시연은 마지못해 입꼬리를 올렸다. “검사하러 오셨어요?”“응.”지동성은 딸을 보자 기뻐하는 듯했지만, 자신의 병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그리고 딸을 위아래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396화

    “네, 그런 셈이죠.”시연은 가볍게 웃으며 애매하게 답했다.간호사는 시연의 반응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지 선생님도 외과 의사니까 아시겠지만, 이 정도 상태면 간 이식 말고는 답이 없어요. 매번 치료받아도 기력만 소모될 뿐, 결국 버티는 셈일 뿐이에요.”“네, 감사합니다.”시연은 진료차트를 간호사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신경 좀 써 주세요.”“걱정하지 마세요. 잘 돌볼게요.”간담췌외과를 나오자, 시연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다.‘이제 방법이 없는 건가? 정말 내가 우주랑 간을 기증해야 하나?'그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지금까지 그 사람이... 나와 우주를 어떻게 대했는데?’‘이렇게 쉽게 용서한다고?’ ...오후가 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아직 5시도 되지 않았는데, 유건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여보세요.”[곧 병원 도착해. 오늘은 일찍 끝내고, 이따 할아버지 뵈러 가자.]시연은 이견이 없었다. “네, 알았어요.”두 사람은 원무과 쪽에서 만나기로 했다.그곳은 외과동과 VIP동, 그리고 주차장과 가까워서 유건이 번거롭게 오갈 필요가 없었다.유건이 도착했을 때, 빗줄기가 더욱 거세졌다. 하지만 시연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에, 그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시연이를 데리러 갈까?’하지만 우산을 안 가져왔기에, 간호사실에 가서 우산을 빌릴까 싶었다.“유건 씨.”유건이 간호사실로 향하려던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뒤돌아보니 장소미였다. 그녀는 손에 검사 결과지를 들고 있었다.유건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슨 일이야? 어디 아파?”“제가 아니에요.”자신이 오해받은 걸 깨달은 소미는 황급히 손을 흔들며 말했다. “우리 아빠 검사 결과예요.”전 장인어른에 대한 이야기라니, 유건은 어쩔 수 없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지 사장님이 많이 안 좋으셔?”“네.”소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손에 든 결과지를 유건에게 내밀었다.“아빠 간에 문제가 생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397화

    소미는 애절한 눈빛으로 유건을 바라보았다. 여자의 눈동자에는 넘칠 듯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유건 씨도 아직 저를 잊지 못한 거죠? 그렇죠?”유건은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한 뒤, 소미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손을 떼어냈다.그 순간, 마치 무너지는 듯한 표정이 된 소미는 힘없이 속삭였다. “유건 씨?”유건은 단 한마디만 남겼다. “소미 씨, 나 결혼했어.”과거가 어떻든, 유건은 이제 아내에게 충실해야 했다.“흑...”소미는 얼굴을 감싸 쥐고 흐느꼈다.유건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꼭 해야 할 말이 있었다.“앞으로 소미 씨 일은 지한에게 맡겨. 지한에게 연락하면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야.”이제 두 사람이 직접 연락을 주고받을 이유는 없다는 뜻이었다.“유건 씨.”소미는 손을 내려놓고, 유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한테... 단 한 번이라도 마음이 있었어요?”유건은 순간적으로 굳어졌고, 곧 시선을 피했다. “지금 와서 그걸 묻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있어요! 저는 유건 씨의 대답이 필요해요.”소미는 붉어진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있었어요? 없었어요?”하지만 유건은 끝내 답하지 않았다. 침묵만이 흐를 뿐이었다.남자의 침묵 속에서, 소미의 마음은 점점 재가 되어가는 듯했고, 입술이 떨렸다.“없었던 거네요... 그렇죠?”유건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도 좋을 것이 없었다.“내가 미안해. 앞으로 무슨 일이든, 소미 씨 부탁이라면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도울게.”그렇게 마지막으로 소미를 바라본 뒤, 그는 돌아섰다.“흑... 흑...”남자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소미는 조용히 눈물을 삼켰다.유건은 뒤돌아보지 않았고, 심지어 두 걸음 정도 빠르게 걸었다.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시연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그런데, 시연은 이미 밖에 서 있었고, 우산을 접으며 빗물을 털고 있었다.유건의 가슴이 순간적으로 철렁했다. ‘언제부터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398화

    시연은 문득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장소미를 아주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어떻게 이렇게 자연스럽게, 다정한 남편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혹시... 정말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는 건가? 그런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 거야?’시연은 자신에게 물었다. 그녀는 절대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더 이상 묻고 싶지도 않았다.계속 이 문제를 들추는 것도 무의미했다.“조금만 기다려줘요.”시연은 결국 타협했다. “이 페이지만 다 읽고요.”“그래.”유건은 그녀의 책을 힐끗 보았다. 몇 줄 남지 않은 페이지였다.“천천히 봐. 기다릴게.”그는 한쪽으로 몸을 돌려, 책장에 꽂힌 책들을 무심히 훑어보았다.시연이 마지막 문장을 읽고 다가왔다. “다 읽었어요.”“응.”유건은 들고 있던 책을 덮고 책장에 도로 꽂으려 했다. 그 순간, 책 사이에서 무언가가 툭 떨어졌다.책갈피처럼 보였다.“뭐예요?”시연은 반사적으로 몸을 숙여 그것을 줍기 위해 손을 뻗었다.“가만있어.”유건이 단호하게 제지하며 그녀를 흘겨보았다. “배도 점점 커지는데, 왜 자꾸 허리를 숙여? 우리 애 엄마가 이렇게 덜렁대서야 되겠어? 다행히 아빠는 믿음직하지만 말이야.”그는 한 손으로 시연을 부축하며 다른 손으로 책갈피를 주웠다.시연은 잠시 멍해졌다‘방금 뭐라고 했어? ‘아빠’...? 자기 자신을 가리킨 거야?’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어?”유건이 주워 든 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책갈피가 아니라, 보석 감정서였다.“이게 여기 끼어 있었네.”“뭔데요? 나도 볼래요.”시연이 궁금해하며 손을 내밀었고, 유건은 거리낌 없이 내주었다.“보석 감정서야.”서류에는 사진도 포함되어 있었다.한눈에 보기에도 아름다운 나비 모양이었다.당연히 진짜 나비가 아니라, 나비 모양의 머리핀이었다.시연은 기억력이 좋았고, 금세 떠올렸다.“나비 머리핀?”며칠 전, 유건이 시연에게 말했던 바로 그 머리핀이었다.나비를 좋아하는 여자, 심지어 머리핀까지 나

Latest chapter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64화

    [너희 집안 때문에... 고 대표가 시연이더러 문란하다고 했어. 그래서, 시연이를 버린 거라고!]은범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고, 숨이 턱 막혔다. ‘내가... 내가 시연이를 이렇게 만든 거야?’ ‘시연이가 이렇게까지 무너졌는데... 정작, 난... 그 이유도 모른 채...’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이상, 은범은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고유건한테 가야 해. 오해든, 분노든, 뭐든 다 풀어야 해.’‘내가... 시연이 대신 말해야 해.’ 그날 밤, 은범은 제대로 잠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부터 GP그룹 앞으로 향했다. 해가 채 뜨기도 전이었다. ‘여기서 마주친다면...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유건은 나타나지 않았다. ‘설마... 어젯밤부터 회사에 있었던 건가?’ 시계는 어느덧 오전 10시를 가리켰고, 불안해진 은범은 1층 로비로 들어가, 안내 데스크에 조심스레 물었다. 직원은 은범이 또 계약 관련 건으로 온 줄 알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 대표님, 오늘 출근 안 하셨어요.” “안 나오셨다고요?” 은범은 눈썹을 찌푸렸다. “그럼 어디 계신지는...” “죄송합니다.” 직원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저희가 알려드릴 수가 없어요.” 은범은 더 묻지 않았고, 그저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건물을 나섰다. 그리고 밖으로 나서자마자, 바로 백일재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군데 수소문한 끝에, 마침내 정보를 얻었다. [고 대표? 지금 태평컨트리클럽에 갔대.]“알겠어. 고마워.” 전화를 끊자마자, 은범은 곧장 차를 몰아 태평만으로 향했다. 그곳은 회원제로 운영되는 고급 골프장. 다행히 은범도 회원권이 있어, 어렵지 않게 입장할 수 있었다. 프런트에 물으니, 유건은 성하그룹 대표와 라운딩 중이라고 했다. ‘협상 중이겠지... 괜히 방해하면 안 돼.’ 그래서 은범은 탈의실 근처에서 조용히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63화

    진료 시간엔 병실 출입이 어려워서 은범은 외과 병동 건물 아래를 한참 서성이다가, 응급실과 외래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래... 오늘 시연이가 외래 근무일 수도 있잖아.’ 먼저 응급실을 찾았지만, 그곳엔 시연이 없었다. 이후 외래로 가보니 운이 좋았다. 시연은 정말로 외래에 있었다. 간호사가 환자를 부르고, 문이 열릴 때마다 시연은 환자와 마주 앉아 진지하게 상태를 묻거나, 진찰대 앞에 서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었다.진지하게 집중한 듯한 그녀의 표정은 아주 안정되어 있었다. ‘별일 없나 보네. 고유건이 아무리 화가 났다지만, 그 분노는 나한테만 쏟은 건가...?’‘시연이는 건드리지 않은 건가? 그렇다면...’‘그래도 고유건, 최소한의 선은 지키는 사람이구나.’ 은범은 그냥 돌아설 수도, 직접 물을 수도 없었다. 예전에 시연과 했던 약속이 떠올랐기 때문. ‘되도록 얼굴 보지 말자’는 그 약속을 말이다. 그래서 은범은 조용히 외래 복도 한쪽에 앉아, 시연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점심 무렵.오전 진료가 끝난 시연은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메더니 병원 건물을 나섰다. 은범은 조용히 그녀를 따라갔다. ‘근데... 이상하네. 고유건이 붙여놓은 경호원은 어디 갔지?’ ‘내가 못 본 건가? 아니면... 오늘은 따로 없었던 건가?’ 그보다 더 이상한 건 따로 있었다. 병원 문을 나와 좌측으로 꺾으면, 길은 세 방향으로 갈라진다. 하지만 시연이 선택한 길은... 진아 집이나 고씨 가문 본가로 이어지는 길이 아니었다. ‘이 방향은 뭐지?’ 미간을 찌푸린 은범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만삭에 가까운 몸으로, 시연은 허리를 짚으며 천천히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 힘들어 보였지만, 묵묵히 나아가는 모습이었다. 그녀가 향한 곳은 시장이었다. ‘시장?’ 마트보다 조금은 번잡하지만, 이곳의 채소와 고기들은 더 신선하고, 가격도 저렴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닭이 당긴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62화

    은범은 늘 그렇게 생각해 왔다. 만약 시연 때문이라면, 유건은 애초에 HUA테크와 손을 잡지 않았을 거라고.하지만, 일재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닐 수도 있지! 잘 생각해 봐. 우리랑 제일 먼저 계약 끊은 사람, 고 대표잖아. 그리고 그럴 능력 있는 사람도, 고유건밖에 없어.] 은범은 말없이 입을 다물었다. ‘틀린 말은 아니야... 그렇게 따지면, 일재 말도 꽤 설득력이 있지.’ “그래도 난, 고 대표가 그런 사람이라고는 생각 안 해.” ‘그 사람, 그 정도로 감정에 휘둘릴 인간은 아닌데...’ 쿵!갑자기 등 뒤에서 무언가 쾅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은범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부엌 쪽에서 강수희가 당황한 얼굴로 반찬통 하나를 떨어뜨린 상태였다. 다행히 뚜껑이 단단히 닫혀 있어 내용물이 쏟아지진 않았다. 그런데도, 은범은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어머니... 왜 저렇게 당황한 눈빛이지?’ “일단 끊을게.” 전화를 서둘러 끊고, 은범은 부엌으로 걸음을 옮겼다. 강수희 옆에 앉아 반찬통을 주워 정리했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강수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은범아, 너 방금... 전화할 때 고 대표 얘기했지?” “네.” 은범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른 척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떠보려면 지금이 기회였으니 말이다. “요즘 고 대표랑 우리 회사 계약도 끊겼고, 그 이후로 프로젝트가 두 개나 물 건너갔어요. 일재가 묻더라고요, 혹시 제가 고 대표한테 밉보인 건 아니냐고요.” “아...!”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수희가 눈을 질끈 감으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 반응을 본 순간, 은범의 가슴은 묘하게 쿵 내려앉았다. ‘뭔가 있다. 어머니... 뭔가 아는 거야.’ “어머니.” 은범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낮췄다. “혹시, 저한테 뭐 숨기고 있는 거 있어요?” “엄마... 엄마는...” 강수희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입술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61화

    시연은 조용히 손바닥을 꼭 쥐었다. 서늘한 기운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고유건이 한 말, 틀린 건 아니야. 착한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결국 사람 생명은 다 똑같잖아...’ ‘하지만 사람 생명을 구하는 일과 아버지를 용서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야... 구해야 할까?’ ... 한편, 은범이 유건을 만나지 못한 채, HUA테크와 GP그룹의 협업은 이달 말로 종료될 예정이었다. 요 며칠 은범은 정신없이 바빴지만, 골치 아픈 건 이 일 하나만이 아니었다. 어제는 성하그룹 쪽에서 연락이 왔다. 이번 분기 협업을 끝으로, HUA테크와의 재계약은 없을 거라는 소식이었다. 은범은 친구이자 HUA테크 상무인 백일재와 함께 성하그룹 대표를 찾아갔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종일 밖에서 뛰어다니던 은범이 집으로 돌아온 건 새벽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그는 샤워하고 약 먹고 겨우 몸을 뉘었는데, 눈을 감은지 얼마 되지 않아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자, 강수희가 서 있었다. 두 손엔 큼직한 장바구니와 비닐백. “은범아, 엄마가 국 좀 끓였어. 반찬도 몇 가지 가져왔고.” 은범은 말없이 돌아섰고, 강수희는 그 뒤를 따라 부엌으로 향했다. “어머니.” 은범이 입을 열었다. “이런 거 인제 그만 좀 가져와요. 저, 이 정도 나이면 밥은 알아서 챙겨 먹어요.” 아들의 무뚝뚝한 반응에 강수희는 익숙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그렇지만 밖에서 먹는 건 질릴 때도 있잖아.” 강수희는 가져온 반찬들을 하나씩 꺼내 정리했고, 냉장고에 넣기 전엔 스티커를 붙였다. “위에 라벨도 붙였으니까 먹을 때 볼 수 있을 거야. 넌 데우기만 하면 돼.” 더는 설득이 안 통할 것 같아서, 은범은 그냥 입을 닫았다. 그때 전화가 울렸는데, 박일재에서 온 전화였다. 은범은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설마 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순간, 마음이 불안하게 뛰기 시작했다. 전화가 연결되자,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60화

    “그럼 다행이네요.”시연은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며칠 동안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그제야 조금 가라앉았다.‘다행이야... 아무 일도 아니어서.’“그나저나...”오선화는 진료차트를 정리하며, 마치 일상 대화하듯 조용히 말을 꺼냈다.“이제 6개월 차에 들어섰어. 곧 임신 후반기인데, 슬슬 휴식은 생각 안 해?”“휴식이요?”시연은 잠깐 멍해졌다. 그 생각은 진심으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오선화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이제부터는 배도 더 많이 나올 거고, 몸도 훨씬 무거워질 거야. 부기도 생기고, 움직이기도 불편해지고. 집에서 편하게 쉬는 것도 괜찮지 않나?”시연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아직 일할 수 있어요.”오선화는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뭔가 걸리는 게 있어? 고 대표님이 계시니까, 병원에서도 대놓고 뭐라고 하진 않잖아.”“네... 알고 있어요.”시연은 순간 망설였지만, 이내 담담하게 말했다.‘나는 그렇게 얼굴이 두꺼운 사람이 아니야.’ “저보다 선배인 선생님들도 다들 만삭까지 일하세요. 7개월까지 야간 당직도 서시고요. 저야 그에 비하면 충분히 배려받고 있는 거죠.”‘그 배려가... 전부 고유건 덕분이라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어.’“게다가 가만히 있는 것보다 이렇게 일하는 게 마음도 편하고, 출산도 더 수월하다고 하잖아요?”“그건 맞아.” 오선화는 고개를 끄덕였고, 더 말릴 생각은 없어 보였다.“나는 그냥 권유만 한 거야. 그래도 너무 무리하진 말고, 컨디션 안 좋을 땐 꼭 쉬어야 해, 알지?”“네. 그럴게요.”시연은 산모 수첩을 가방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교수님, 수고하세요.”“그래, 잘 가.”시연이 문을 나서자 방 안의 공기가 살짝 무거워졌다.오선화는 웃음을 거두고 곧바로 표정을 바꿨다. 그러고는 이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통화 목록을 스르륵 넘긴 오 교수의 손이, 한 이름에서 멈췄다.바로 ‘고유건’이었다. 오선화는 깊게 한숨을 쉬고, 전화를 걸 준비했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59화

    그날 오후, 은범은 곧장 회사로 향했다. 회의실에 들어서자, 부사장 이지혁과 비서가 며칠 사이 벌어진 상황을 보고했다.“GP그룹이 우리와의 협약을 전면 종료했어요.”“GP그룹?”은범의 표정이 굳어졌다. ‘GP그룹... 고유건... 왜 갑자기...?’이번 협약은 처음부터 은범이 직접 유건과 만나 성사한 것이었다. 물론, 사적인 일로 둘 사이에 약간의 감정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시연을 둘러싼 복잡한 사정.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적인 감정일 뿐.‘우린 둘 다 공사 구분은 확실한 사람들이었잖아...’은범은 이해할 수 없었다.“협약은 계속 수익이 나고 있었잖아요. GP 측에서 계약 종료 사유에 대해 뭐라고 하던가요?”“정확히 말하지 않았어요.”이지혁은 고개를 저었다.“자세한 설명은 없었지만, 입장은 아주 확고했어요. 위약금은 예정대로 지급하겠다고 했고요. 환불 어음은 이미 발송했다고 합니다.”‘그렇게 빨리?’은범은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어떤 설득의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모든 절차가 ‘깔끔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더 불안했다.“그래서 일단 수령하진 않았습니다. 돌아오시면 같이 상의하려고 했거든요.” “잘하셨어요.”‘보상보다 중요한 건, 이 협력이 가진 미래 가능성이었는데...’은범은 눈썹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내가 고 대표님한테 직접 연락해 볼게요. 무슨 이유인지 물어봐야 하니까요.”“네, 애초에 사장님께서 직접 성사한 건이니까... 사장님께서 움직이는 게 맞죠.”은범은 회의가 끝나자마자 GP그룹으로 향했다. 시간을 끌 여유가 없었다.GP그룹 본사 건물에 도착한 은범은 곧장 로비 데스크로 다가갔다.“안녕하세요, 고 대표님 뵈러 왔습니다. 전해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로비 데스크 직원은 정중하게 미소 지었다.“안녕하세요, 혹시 예약은 하셨을까요?”“아니요.”“죄송하지만, 고 대표님과의 면담은 반드시 사전 예약이 필요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그건 알지...’은범은 고개를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58화

    “고 대표님!”하은이 성큼성큼 걸어 나와 유건 앞을 가로막았다. 눈빛엔 분노가 가득했다.“이렇게 그냥 가시면 안 되죠!”“뭐라고?”유건은 한쪽 눈썹을 살짝 올리며, 코웃음을 쳤다. 이어서 시선엔 의아함과 경멸이 동시에 섞여 있었다.“시연이 말이에요.” 하은은 안쪽을 가리켰다.“시연이는 고 대표님의 아내잖아요. 근데, 아내 앞에서 애인이랑 나가는 게... 정말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애인’이라는 단어가 뱉어지는 순간, 유건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졌다. 그리고 눈가의 웃음기마저 순식간에 사라졌다.“지금... 누가 감히 소미 씨한테 그런 말을 해?”그 말에 하은은 본능적으로 움찔했지만, 곧 더 큰 화가 치밀었다.“제가 틀린 말이라도 했나요? 그리고, 장소미 씨는 또 뭐예요? 고 대표님한테 아내가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이렇게 행동하는 거, 무슨 의미인데요? 그리고 고 대표님이 장소미 씨를 감싸면, 시연이는 뭐가 되는 건데요?!” ‘시연이를 뭐로 보는 건지, 내가 대신 물어야겠어!’하지만 유건은 피식 웃었다. 차가운 비웃음이었다.‘그럼 지시연은 나를 뭐로 봤을까?’그러나 이런 생각을 굳이 말로 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비켜.”“싫어요!”그 말에 유건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다. 목소리엔 더 이상 감정이 없었다.“솔직히, 너한텐 손쓸 가치도 못 느끼겠지만... 이쯤 되면 진짜 귀찮네.”“뭐라고요?”하은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멍해졌다. ‘지금... 나한테 이런 말을...?’“비킬 거야, 안 비킬 거야?”“하은아!”그때, 시연이 급히 달려왔고, 하은의 팔을 잡아끌며 중간에 섰다.“이런 사람들이랑 뭐 하러 싸워? 가고 싶다잖아. 그냥 보내줘. 누가 어딜 가든, 그건 자유잖아.”그러면서 하은을 감싸 안으며 말했다.“가서 라면이나 먹자. 아까 건 너무 불었으니까, 새로 하나 뜯어야겠어.”시연의 말투는 덤덤했고, 시선은 여전히 유건을 보지 않았다.그 모습을 본 유건은 미세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57화

    유건은 미간을 살짝 좁히며, 깊고 어두운 눈빛으로 시연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던졌다.“간 이식 얘기, 우주한테 물어본 적 있어?”“뭐라고요?”시연은 순간 멍해졌다. ‘그걸... 저 사람이... 지금 왜 묻지?’찰나의 정적. 그리고 곧, 시연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나는 우주의 보호자예요. 우주에 대한 결정은, 내가 해요.”하지만 유건은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내가 알기론, 우주는 올해로 만 14세야. 이미 법적으로 자기 결정권이 생긴 셈이지.”남자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만큼 분명했다.“게다가 우주는 신체 조건도 아주 좋잖아. 심리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기증 가능 기준에 부합해.”유건의 말은 아주 논리적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논리는, 결국 ‘장소미’를 위한 것이었다.‘하... 정말 대단하다, 고유건.’시연은 속으로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무심한 듯 시선을 옆으로 돌려 장소미를 스치듯 바라봤다.‘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뭐든 말이 되는구나.’“우주의 열네 살이, 일반 아이들의 열네 살과 같다고 생각해요?”시연은 미세한 미소를 짓는 듯 마는 듯하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우주는 아무것도 몰라요. 그래서 내가 결정하는 거라고요.”그 말에 유건의 눈빛이 살짝 날카로워졌다. 그는 톤을 낮추면서도 힘을 실어 말했다.“지나치게 독단적이네.”“우주는 똑똑한 아이야. 심리적으로 결핍이 있는 거지, 지능이 낮은 건 아니잖아. 만약 언젠가 지 사장이 세상을 떠나고, 우주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자책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해?”그 말에 시연은 순간 얼어붙었다. 입꼬리에 걸려 있던 억지 미소조차 사라졌다.“자책이요...?”시연은 낮게 웃었다. 그리고 냉소가 섞인 차가운 어린 목소리로 유건을 향해 말했다.“잘 들어요. 우린 인생에서 많은 걸 후회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미안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의 그 ‘누군가’ 안에 지동성은 절대 포함되지 않아요.”그 말에 유건의 이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556화

    하은은 눈치가 빨라서 괜히 시연에게 짐이 될까 싶어 입을 꾹 다물었다.시연은 역시 장미리를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우리 엄마요? 죽은 지 십몇 년 됐는데, 오늘 좀비처럼 부활이라도 한 거예요?”하은은 그제야 시연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했다. “아! 그럼 내가 지금 바로 무당 선생님한테 연락할게!”“얼른 해줘.”두 사람은 말 그대로 티키타카였다. 장미리의 얼굴은 금세 시뻘겋게 달아올랐다.“지시연! 넌 진짜 싹수가 없어!”“맞아요.”시연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엄마는 일찍 돌아가셨고, 아빠라는 사람도 죽은 거나 다름없죠. 가르쳐줄 사람도 없었으니, 예의 따윈 배운 적 없어요.”그녀는 팔을 쭉 뻗어 문을 가리켰다.“무슨 용건인지는 상관없고, 지금 당장 나가세요. 그리고 다시는 나한테 ‘엄마’라는 말 좀 들먹이지 마세요. 혹시라도 다음에 또 그런 말을 뱉는다면... 당신 입, 내가 부숴놓을 수도 있어요.”시연의 눈빛이 단단하게 가라앉았다.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서릿발 같았다.“진심이에요. 장난 아니니까, 절대 시도하지 마세요.”“너... 너 진짜...!”장미리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시연을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말솜씨에서도, 기세에서도 밀렸으니 말이다.하지만 오늘은 물러설 수 없었다.“네 아빠... 쓰러졌어. 지금 혼수상태야.”그 말에 시연의 표정이 잠시 흔들렸다. ‘그 정도라고...?’눈빛 속에 망설임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러나 곧 다시 차분한 얼굴로 돌아왔고,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그래요? 그럼 그분 옆에서 간병이라도 해주셔야죠. 여긴 왜 와서 소란인데요?”“너...”“지시연!”자기 엄마가 밀리는 걸 보다 못한 소미가 나섰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분명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진짜 모르는 척하는 거야? 우리가 왜 너를 찾아왔는지, 정말 몰라서 그래?”“나야 모르지.”시연은 흰 가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어깨를 으쓱했다.“그럼 알려줘 봐. 여기엔 왜 온 건지.”소미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