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471 - Chapter 480

501 Chapters

제471화

시연의 어투는 담담했다. 하지만 유건의 귀에는, 그 말투가 기묘하게 비꼬는 듯 들렸다. 그는 애초에 굳이 해명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반복되는 비아냥은 도저히 넘길 수가 없었다.“내가 팔을 다친 건, 다 너 때문이야!”“네?” 시연이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바라봤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정말요...?”“그래!” 유건은 당황했다. 무언가에 쫓기듯 설명하려 들었다.“그때 나는...”“그만해요.” 시연은 그의 말끝을 잘랐다.“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계속 말할래요?”유건은 움찔했다. 차가운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왠지 모를 무력감이 밀려왔다. ‘말해봤자, 뭐가 달라지겠어.’“그래, 안 할게. 가자.”그렇게 그는 시연의 손을 잡고 병실을 나섰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차에 올랐다. 목적지는 고씨 가문의 본가였다.본가에 도착하니, 집 안에는 왕성애만 있었다. 고상훈이 입원 중이라 이호민은 병원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고, 집안일은 왕성애가 맡고 있었다.거실에 들어서자 시연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모님, 수고스러우시겠지만, 객실 하나 정리해 주세요.”“네...?” 왕성애가 잠시 멈칫하며 유건을 바라봤다. 그런데 유건 역시 미간을 찌푸리며 놀란 눈치였다. 이 얘기는 금시초문인 듯했다.“객실은 왜?”“내가 써야 하니까요.” 시연은 얕게 웃으며 일부러 천천히 말했다. “이모님, 제 배가 점점 불러오고 있어서 고유건 씨랑 따로 자는 게 편할 것 같아요. 부탁드릴게요.”“지시연!” 유건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왕성애를 힐끔 보더니, 낮게 말했다. “이모님, 먼저 들어가 계세요.”“아, 예예...” 왕성애는 분위기를 눈치채고 재빨리 자리를 떴다.유건은 시연을 끌고 2층으로 올라가, 침실 문을 닫았다. 눈빛에 분노가 가득했다.“도대체 너, 뭐 하자는 거야? 어?”“왜 소리를 질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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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2화

“그래?” 유건이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말투는 싸늘했다. “그깟 걸로 죽진 않을 거야.”‘이젠 아프다고 유세네.’‘이러면 내가 물러설 줄 알았나?’ 시연은 냉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죽어요.”유건은 움찔하며 눈빛이 갈라졌다. “여보!”“왜 그렇게 쳐다봐요?” 시연은 싸늘하게 눈을 흘겼다. “나 때문에 다친 거예요? 내 앞에서 불쌍한 척은 왜 해요?” 이 말을 끝낸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이 정말 죽기라도 하면, 장소미는 슬퍼서 엉엉 울 거예요. 어쩌면... 장소미도 따라 죽을지 모르죠.” 그러고는 조롱 섞인 미소로 덧붙였다. “그렇게 되면 너무 좋겠네요. 완전 비극 속의 연인 같지 않아요? 사랑하는 사람과 저승까지 함께 간다니... 축하해요.” “지시연!!” 유건의 얼굴은 순식간에 시퍼레졌고, 눈은 타오르듯 번뜩였다. “진심이야? 너, 진짜 날 미치게 만들고 싶구나?!”“당신 마음대로 생각해요” 시연은 더 이상 말 섞을 의지도 없어 보였다. 그리고 왕성애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119 좀 불러주세요. 저 상태로 놔두면 열 때문에 곧 의식 잃을 거예요.”그렇게 말한 뒤, 그녀는 계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지시연!!” 하지만 계단을 몇 걸음 오르기도 전에... 쿵! 시연의 뒤에서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 이어 왕성애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도련님!”시연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왕성애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울먹였다.“사모님... 이제 어쩌죠?”“119 부르세요! 지금 당장이요!”“네, 네!”곧 119가 도착했고, 구급대원들이 유건을 들것에 실었다.“가족 분도 함께 타세요.” 구급대원이 말하자, 왕성애가 시연을 슬쩍 바라봤다. “사모님...?”“전 안 갈 거예요.” 시연은 고개를 저었다. “이모님, 너무 걱정 마세요. 의사랑 간호사가 잘 돌볼 거예요.”그 말만 남기고, 시연은 진짜로 등을 돌려 2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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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3화

유건은 지한의 말을 들을수록 짜증이 치밀었다. “뭐 하러 왔냐? 할 말 없으면 나가.”딱 봐도 발끈한 상태였다. 지하는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받아쳤다. “좀만 기다려봐. 사과 아직 덜 깎았거든.”사과를 한 입 베어 물고, 천천히 말했다. “근데 말이야, 진짜 어떻게 할 건데?”“뭘 어떻게 해?” 유건은 째려보듯 눈을 흘겼다. ‘뭔 헛소리야?’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지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진심으로 말하는 거야. 시연 씨가 화내는 거, 솔직히 이해돼. 너는 정말 과거를 다 지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장소미만 문제였으면 말을 안 해. 근데 지금은 나비 공주 일까지 겹쳤잖아? 그 사람은 네가 몇 년이나 마음에 품어온 첫사랑이야. 그런 감정을, 진짜 시연 씨를 위해 놓겠다고?” 그 말에 유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과를 다 먹은 지하는 손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잘 생각해 봐. 만약 못 놓겠으면, 친구로서 한마디만 할게. 시연 씨, 그냥 놔줘.”이 말을 끝으로 돌아서려던 지한을 유건이 불러 세웠다. “지하야.”“응?”유건은 진지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난 이혼할 생각 없어. 시연이랑 헤어질 마음도 없고.”지하는 눈썹을 살짝 올리며 웃었다. “오케이. 알았어. 내가 도와줄 게 있으면 말만 해.”...밤이 되자, 시연은 임진아와 저녁을 약속했다. 고상훈이 병원에 있기에 집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기에, 마침 잘 됐다 싶어 외식을 포기하고 배달 음식을 시켰다. 진아의 자취방엔 이미 샤부샤부, 꼬치, 치킨까지 전부 세팅되어 있었다. 진아는 닭날개를 오물거리며 말했다.“오늘은 그냥 여기서 자. 아니, 아예 집에 가지 마. 그 두 사람은 그냥 묶어놔야 해. 세상에 나와서 민폐나 끼치고 말이야...”“응, 그래.” 시연은 소리 없이 웃으며 소고기 완자를 입에 넣었다.그때, 또 한 번 초인종이 울렸다.“이번엔 밀크티다!” 진아는 닭날개를 내려놓고 손을 닦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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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4화

“됐거든요! 저 남자 친구 있어요!”“뭐...?” 지하는 순간 멍해졌다.그 틈을 타, 진아는 드디어 자기 밀크티를 낚아채며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잠깐만!” 지하가 그녀를 붙잡았다. “그 사람, 누군데?”“누가요?” 진아는 한 박자 늦게 그 질문의 의미를 깨달았다. ‘아, 남자 친구 말하는 거구나.’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툭 내뱉었다.“누구긴 누구겠어요? 부 대표님도 아는 사람이죠. 진성빈이요!!”‘진성빈...? 아, 그놈!’ “쳇.” 지하는 혀를 차더니, 손을 놓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그러더니 갑자기 진아의 집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하지만 입으로는 계속 중얼댔다. “그 어린애? 취향 진짜 별로네.”“뭐라고요?!” 진아는 깜짝 놀라며 지한을 노려봤다. “성빈이가 뭐 어때서요? 그리고... 잠깐...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 누가 들어오래요?! 당장 나가라고요!!!”하지만 지하는 전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진아는 다급히 남자의 팔을 붙잡았다. “나가라니까요! 못 들었어요?!”지하는 여자의 손을 내려다봤다. ‘오? 얼굴은 통통한데 손가락은 엄청 가늘잖아?’ ‘얼굴에 있는 건 그냥 젖살이었네.’그런 생각이 들자, 그는 목 안이 간질거려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능청스럽게 말했다. “진아 씨, 지금... 나한테 손댔잖아. 책임져야지.”“뭐, 뭐라고요?!” 진아는 흠칫 놀라며 다급히 손을 뗐다.“푸하하하하!!!” 지하는 또다시 박장대소했다. ‘아, 진짜 너무 재미있다니까? 미치겠네.’하지만 그는 자기가 왜 왔는지를 기억하고, 더는 장난치지 않고 안으로 걸어갔다.테이블 쪽에 있던 시연이 샤부샤부 국물에서 고기를 건져내며 말했다.“진아야, 너 아까 배달원한테 뭐라고 했어? 잘생겼다고? 넌 진짜 잘생긴 얼굴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린다니까...”‘오? 얘 꽃미남 수집가였어?’지하는 고개를 숙여 진아를 쳐다봤다. 진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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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5화

지하는 병실 문을 두어 번 상징적으로 두드렸다.“유건아, 나 들어간다.”문을 열고 시연을 휙 끌고 들어갔다.“사람 데려왔다!”곧장 침대 앞으로 가서 손을 놓자, 시연은 앞으로 확 밀렸다.“꺅...”발이 헛디뎌 중심을 잃은 시연은 침대로 고꾸라졌다. 넘어질까 봐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고, 본능적으로 기대버린 사람은, 유건이었다.유건은 기다렸다는 듯 단번에 그녀를 안아 올렸다. “괜찮아?” 그리고는 지하를 노려보며 말했다.“행동 좀 조심해! 시연이는 임신 중이라고!”지하는 눈썹만 슬쩍 올리고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시키는 대로 했으니까, 난 이만 간다.” 그렇게 말하며 손을 흔들고 돌아서려다가, 문득 다시 뒤를 돌아 시연을 가리켰다.“아, 맞다. 시연 씨, 밥 먹다 말고 따라온 거라 아직 배고플 거야.”그 말을 끝으로 그는 진짜로 나갔다.복도엔 정민환과 정기환이 좌우로 서 있었다. 마치 병실 수호신처럼.그들은 지하를 보자 바짝 서며 인사했다.“지하 도련님.”“응.” 지하는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이따 형수님이 좀 날뛸 텐데, 잘 보고 있어. 절대 도망 못 가게.”“네, 도련님.”“그럼, 수고들 해.”...병실 안.시연은 유건 품에서 빠져나가려 팔을 밀었다. 하지만 유건은 꽤 단단히 그녀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도... 와줬네?”‘뭐래...?’ 시연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하... 그 말, 당신이 생각해도 말이 안 되지 않아요?”“내가 어떻게 왔는지, 당신이 모를 리 없잖아요?”그녀는 손목을 들어 유건의 눈앞에 들이댔는데, 하얀 팔목에 붉게 남은 자국이 선명했다.지하는 손이 워낙 거칠었는데, 시연에게 사심이 없기에 더더욱 거침없었다. 하지만 이런 시연의 손을 본 유건은 마음이 아주 아팠다. 유건은 시연 손목을 조심스레 감싸 쥐고 쓰다듬었다.“많이 아파? 약이라도 바를까? 내가 지한한테 약국 좀...”“됐어요.”그는 한 손만 자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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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6화

“안 되는 거예요?”시연은 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수저를 들었다.“알겠어요. 난 당신과 달리 입맛에 안 맞는 식사 한 끼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바로 반찬을 집은 후, 죽을 떠먹으며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다.그녀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자 유건은 차마 말을 끊지 못하고, 평소처럼 말없이 반찬을 덜어주었다.밥 먹을 땐 말이 없는 법이라 시연은 금세 배를 채웠다.오히려 유건은 그녀 챙기느라 두어 숟갈밖에 못 먹었다.입을 닦은 시연이 고개를 들어 말했다.“이제 가도 돼요?”유건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시연을 자극할 수 없어 조심스레 팔로 그녀를 감쌌다.“여기서 나랑 같이 있으면 안 돼?”‘같이 있긴, 뭐가 좋아서...’시연은 눈을 굴리며 대꾸했다.“여긴 잠 자기 불편하거든요.”보호자 침대를 가리켰다.“너무 작아요. 나, 요즘 뒤척임이 심해졌단 말이에요.” 배가 점점 불러오면서 밤에 잠들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다.“보호자 침대는 안 돼.”유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내 침대는 넓으니까 충분히 잘 수 있을 거야. 네가 뒤척여도 내가 안고 잘 테니까, 떨어질 걱정은 없어.” 두 사람이 같이 자자는 얘기였다.시연은 잠시 멍해졌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들은 것처럼, 피식 웃음이 터졌다.“내가 뭐라고 말했길래, 아직도 우리가 한 침대에 누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유건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당황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이었다.하지만 화를 낼 수도 없었다.시연의 말투를 따라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내가 언제 허락했길래, 네가 방을 나가서 자는 게 당연한 줄 아는 거야?”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팽팽한 신경전.“나 말싸움하려고 온 거 아니에요.”시연은 황당하다는 듯 잘라 말했다.“어쨌든 난 당신이랑 같이 안 잘 거니까... 못 나가게 할 거면, 난 여기 소파에서 밤새 앉아 있을 거예요.”그 눈빛엔 단호함이 담겨 있었다. 타협은 없다는 듯.결국, 유건이 물러섰다.“좋아, 같이 자자고 안 할 테니까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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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7화

거칠게 시연에게 키스하는 유건의 행동에는 분명히 어떤 감정이 섞여 있었다. ‘이건... 내 분풀이야...’ 그는 불쾌함을 발산하듯 시연을 깨물었다. 물론, 세게가 아니라 살짝이었다. 시연은 원래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물리기까지 하니,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바로 입을 열어, 그대로 되물었다. 남자는 가볍게였지만, 시연은 제대로였다. 아프게, 확실하게. “읍...” 고통을 느낀 유건이 낮은 신음을 흘렸다.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 깊어지고, 거칠어졌다. ‘미쳤나, 이 남자...?’ 시연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 유건이 얼마나 거칠게 키스하든, 그녀도 그만큼 세게 물었다. 결국 입 안에 금세 피비린내가 퍼지기 시작했고, 결국 유건은 참지 못하고 그녀를 놓았다. 시연이 고개를 들자, 유건의 입가에 피가 맺혀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웃고 있었다. 이어서 손끝으로 피를 닦았고, 손에 붉은 자국이 묻었다. “진짜 독하다. 사람을 이 정도로 문다고?” 시연은 순간 당황했다. 이 정도로 세게 물 줄은 몰랐다. ‘내 잘못인가...?’ 하지만 곧 눈을 부릅떴다. “누가 먼저 키스하래요? 자업자득이죠.” “뭐?” 유건의 가늘어진 눈엔 모호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이젠 내 아내한테 키스하는 것도 자업자득이다?” 그는 여전히 화가 난 듯한 말을 남기고 욕실을 나가버렸다. “옷은 밖에 있으니까 당신이 알아서 골라.” 밖으로 나온 시연은, 그제야 유건의 갑작스러운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진아 이 바보... 내 짐을 통째로 보냈네.’ 시연은 한숨을 쉬며 캐리어 앞으로 다가갔고, 옷을 골라 욕실로 들어갔다. 옷을 갈아입고 병실로 나오자,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사람은...?’ 고개를 돌리니, 발코니에 나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유리 너머로 보이는 옆모습이 어딘가 쓸쓸하고 지쳐 보였다. 시연은 아무 말 없이 보호자 침대로 가서 앉았다. 머리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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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8화

유건은 숨이 턱 막혔다. 마치 이빨을 드러낸 들고양이가 가슴팍을 사정없이 할퀸 듯, 마음에 생채기가 그대로 남았다. ‘이 기분, 진짜 최악이다.’ 표정이 굳어졌지만, 여전히 잘생긴 남자의 얼굴에 억지 미소가 걸렸다. “내 아내한테 잘해주는 게 왜 시간 낭비야? 그리고 당신, 내 아내인 이상 단 하루도 도망 못 갈 줄 알아. 알아서 하면 뒷일은 감당해야 할 거야.” ‘허...?’ 시연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마음대로 해요. 어차피 손해 보는 건 내가 아니니까...” 그리고 말을 툭 끊고, 시선을 돌렸다. “머리 다 말렸어요? 나 이만 잘 거예요.” “응, 다 말렸어.” 유건은 수건을 옆에 내려놓고 시연을 번쩍 안아 올렸다.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예요? 팔은요...? 팔 망가지게 하려고요?” “아직 다 낫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힘써도 돼요?” “괜찮아.” 유건은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피부만 좀 까진 거라 괜찮아. 그리고 내가 안 안아주면, 당신이 혼자 알아서 침대에 누울 수 있을 것 같아?” 말하는 사이, 그는 시연을 침대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당신...!” 시연은 눈을 부릅떴다. “같이 안 잘 거라고 했잖아요!” “진정해.” 유건은 그녀의 뺨을 살짝 어루만졌다. “당신이 싫어하니까 약속한 거고, 난 그 약속을 지킬 거야. 보호자 침대는 싫다며? 당신은 여기서 자. 나는 보호자 침대에서 잘게.” ‘뭐...?’ 시연은 어이가 없었다. ‘나는 환자 침대에서 자고, 환자인 고유건 씨는 보호자 침대에서 잔다고?’ “장난치지 좀 마요!” “여보, 내 말 좀 들어.” 유건은 그녀의 어깨를 눌렀다. “당신이 편히 못 자면, 나도 편히 못 자. 그러니까 그냥 자.”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시연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러면 내가 마음이라도 돌릴 줄 아나?’ “그럼 알아서 해요.” 이제 할 말은 다 한 듯, 시연은 피곤한 목소리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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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9화

시연은 민환을 바라보며 말했고, 민환은 당황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다. ‘정말 땅이라도 파서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겠지.’ 하지만 그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즉, 시연의 예상이 맞았다는 걸.“얼른 가 봐요.” 시연은 가방을 들었다. “나도 출근해야 해서요.”“여보!” 유건이 그녀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화났어?”“그런 질문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시연은 차분하지만 싸늘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내가 화났다고 하면, 그 여자 만나러 안 갈 거예요?” “여보... 장소미 씨가 지금 많이 힘들어...” 유건은 난감한 얼굴이었다.“알아요. 그래서 나도 당신이 가는 거 안 막았잖아요.” 시연은 유건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나는 내 일이 있고, 내 일을 정말 좋아해요. 그런데 당신이 내 일을 방해하면... 나, 당신이 미워질 거예요.” ‘미워질 거라고?’ 그 단어가 입에서 나오는 순간, 유건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곧이어 그는 여자의 손을 놓았다.시연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등을 돌려 병실을 나섰다. ...사무실에 도착한 후, 인수인계를 마치고 잠시 앉았는데, 유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 “무슨 일인데요?” [지금 회사로 가는 중이야.] ‘회사? 장소미는? 그럼 팔은?’ 시연은 잠깐 놀라 물었다. “수액은 안 맞아도 돼요?”[맞아야지. 낮엔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고, 밤에 병원에서 맞을 생각이야.] ‘정말 일에 미친 사람.’ 시연은 속으로 혀를 찼다. 그는 지난번에도 칼을 맞고 병실에서조차 일을 했던 사람이었다. 그때 유건이 덧붙였다. [오늘 퇴근하고 데리러 갈게.] 시연은 잠시 멈칫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당신은... 당신이나 잘 챙기세요.”[그렇게 정했어. 병원 앞에서 기다릴게.] 그 말을 끝으로 유건은 전화를 끊었다. 시연은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래서... 이걸로 다 해결됐다고 생각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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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0화

“조 선생님, 그런 뜻이 아니라...” 시연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두 사람은 같은 팀도 아니고, 조한나가 맡은 환자 상태는 시연이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진료차트를 정리하란 말인가?“그럼 입 다물고 하라는 대로 해!” 조한나는 차트를 시연 손에 억지로 쥐여주며 말했다. “빨리 처리해. 난 약속 있어서 가봐야 해!”“아, 조 선생님...” 시연이 불렀지만, 조한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렸다.시연은 진료차트를 품에 안고 깊게 한숨을 쉬었다. ‘어쩌겠어. 그냥 해야지...’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유건이었다.[여보. 나 지금 병원 앞이야. 내려올래?]시연은 손에 들린 진료차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 일 안 끝났어요. 좀 더 있어야 해요. 기다리지 말고 먼저 가요.”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유건은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표정은 어두워졌고, 당장이라도 핸드폰을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겨우 눌렀다. ‘안 내려온다고? 그럼 내가 올라가야지.’‘남자는 융통성 있어야 하니까... 뭐 이런 일쯤이야.’그는 외과 병동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그리고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조한나가 나왔다.그녀는 전화 중이었다. “나 출발했어. 근데 나오기 직전에 누군가 진료차트를 처리하라고 하길래, 지시연한테 맡겼어. 어, 그 재벌 며느리 말이야.” “맞지? 나도 걔 되게 유난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잘났으면 그냥 집에서 살림이나 살지, 뭐 하러 여기 와서 일을 해? 너 그거 알아? 양석현 교수가 걔한테 얼마나 잘하는데. 난 걔네 둘 뭐 있는 줄 알... 아악!”순간, 핸드폰이 손에서 확 낚아채졌다. 조한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누, 누구...!!!”말을 끝내기도 전에 유건이 손을 들어, 그녀의 핸드폰을 바닥에 내리찍었다. 쾅!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꺄아악!” 조한나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유건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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