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501 - Chapter 510

541 Chapters

제501화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시연은 물러설 수 없었다. 게다가, 우주를 생각하면 유건의 의중을 거스를 수도 없었다. 그녀는 얇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교수님, 그럼 어서 다 함께 내려가시죠.” “그... 그래.” “좋다!” “얼른 가자!” “나 진짜 배고파 죽겠어.” “나도. 저녁 먹으려고 하루 종일 굶었단 말이야.”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아까 있었던 일은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건물 앞에는 차가 여섯 대쯤 대기 중이었고, 일행은 그 차들을 나눠 타고 ‘셀레스트’로 향했다. ...일반 뷔페의 북적임과는 달리, ‘셀레스트’는 놀라울 만큼 조용했다. 손님들은 각자 음식을 고른 후, 식사 중에도 조용히 대화를 나눴으니 말이다. 지한이 예약해 둔 자리는 창가 쪽 세 테이블을 붙여놓은 넓은 자리였다. 음식은 신선한 재료로 구성되어 있었고, 해산물, 육류, 디저트... 중식, 양식 가릴 것 없이 다 준비되어 있었다. 깔끔한 플레이팅은 보기만 해도 식욕을 자극했다. “와... 이래서 비싼 거구나.” 주하은이 시연과 함께 음식 코너를 돌며 감탄했다. “여기 음료는 다 즉석에서 만들어주네.” 그리고 시연을 슬쩍 보며 웃는다. “고 대표님, 여전히 너한테는 돈 아끼는 법이 없네?” ‘돈을 아끼지 않는다...’시연은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예전에 시연은, 바로 그 ‘아낌없이 주는’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다.그런데 지금은 그 모습이 오히려 그녀를 더 미치게 했다.자리로 돌아오자, 양석현이 컵을 들었다. “오늘은 지 선생이 쏜다니까... 우리 과 식구가 된 걸 축하하면서, 다 같이 건배하자! 지 선생, 고마워!” “지 선생, 축하해!” “지 선생님, 환영합니다!” “건배!” “...”시연도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컵을 들었다. 그 컵은 아까 하은이 가져다준 거였다. 시연은 살짝 긴장하며 입을 뗐다. “선생님들, 저는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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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2화

하은이 새우 완자를 시연의 그릇에 조심스레 올려놓았다. 시연은 한 눈으로 슬쩍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싫어!” 하은은 순간 멍해졌다. 분명, 평소의 시연이라면 절대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 텐데. “시연아...?”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불러보자, 시연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하은을 바라봤다. 멍한 눈, 어딘가 초점 없는 시선. “왜?” “너, 설마 취한 거야?” “응?” 시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해맑게 웃었다. “아니야, 나 멀쩡해!” ‘뭐야, 딱 취한 모습이잖아.’ 하은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입술을 꼭 다물었다.떨리는 손끝이 컵에 닿아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시연아,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 “없어. 헤헤.” “배는?” 하은은 조심스레 시연의 배를 바라보았다. ‘제발 아무 일도 없어야 해... 시연이 배에는 고씨 가문의 후계자가 계시니까...’“배 아프진 않아?” “배?” 시연은 곧 두 손을 배 위에 얹고, 아주 조심스럽게 쓰다듬기 시작했다. 입술 끝엔 미소까지 걸렸다. “여기 내 아기가 있어.” 서로의 눈을 마주친 하은과 현진이 동시에 얼어붙었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해...?’ 그때, 룸 안이 웅성거리며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했다. “고 대표님!” “고 대표님, 어서 오세요!” 양석현 교수가 일어서며 반갑게 인사했다. 유건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자연스럽게 시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오늘은 아내랑 함께하는 자리이니, 꼭 오려고 했습니다. 양 교수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오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시연이는 저기 있습니다.” 유건은 가볍게 인사만 나눈 뒤, 바로 시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은과 현진은 눈치 빠르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 하지만 시연은 그가 다가온 줄도 몰랐다. 그녀는 그저 자기 앞의 접시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은 어딘가 멍하고, 또 순진했다. “무슨 일 있어?” 유건의 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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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3화

샤부샤부와 시연이 좋아하는 채소들까지. 유건은 직접 음식 코너를 몇 번이나 오가며 이것저것 챙겼다. 직원들이 다가와 도와드리겠다고 했지만, 그는 손사래를 쳤다. “괜찮아. 내 아내가 부탁한 거니까.” 남의 손을 빌릴 수 없었다.시연이 원한 것이니, 유건이 직접 해야만 했다. 가스 불을 켜고, 국물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자, 유건은 채소며 고기며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넣기 시작했다. 시연은 두 눈을 반짝이며 그 과정을 지켜봤다. 입술이 살짝 벌어져, 침 삼키는 소리가 다 들릴 정도였다. ‘저 고기... 다 익은 거 같은데... 언제 주려나?’ ‘고기야 오래 익힐 필요 없지.’ 그 모습을 보고 유건은 웃음을 지으며, 익은 고기를 시연의 그릇에 덜어주었다. 그녀 취향에 맞춰 소스까지 만들어주고 나서야 말했다. “됐어. 이제 먹어봐.” 시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어 들었다. 볼이 빵빵하게 부풀 정도로 가득 넣고, 입을 오물거리며 행복하게 웃었다. “맛있어?” “응.” 시연은 또 고개를 끄덕이며, 국물을 가리켰다. “더.” “알겠어.” “그리고... 소고기 완자도!” “그래, 그것도.” 주변 동료들은 그 장면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고 대표가 시연에게 이렇게 다정한 줄은 몰랐다. 아까 하은에게 냉정하게 굴던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하지만, 그런 평화로운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먹다 말고, 시연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을 좌우로 흔들며,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왜 일어나? 뭐 필요한 거 있어?” 유건이 급히 그녀를 부축했다. “화장실.” 시연은 천진하게 웃으며 유건의 손을 뿌리려 했다. ‘이런 상태로 혼자 가게 둘 수는 없지.’ 유건은 그녀를 반쯤 안다시피 하며 일어났다. “같이 가자.” “고 대표님.” 목소리에 돌아보니, 하은이었다. “제가 같이 갈게요. 화장실 안쪽은 남자분이 들어가기 힘들 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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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4화

“너희...!!!” 하은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표정은 굳어 있었고, 눈빛에는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더는 말 안 할게. 하지만 너희, 앞으로는 입 단속 잘 하는 게 좋을 거야. 다음에 또 이런 말 들리면...” 그녀는 고개를 살짝 들어, 냉정하게 말했다. “고 대표님께 바로 말씀드릴 거야. 고 대표님이 시연이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지? 과연, 그분이 가만히 계실까?” 그 말에 간호사 두 사람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병원 안에서 이미 떠도는 소문... 조한나가 갑작스레 ‘사라진’ 이유가, 바로 시연과 관련 있다는 얘기. “다, 다시는 안 그럴게. 제발 말하지 마...” “맞아. 우리가 잘못했어. 잠시 정신이 나갔었나 봐.” “흥.” 하은은 그들이 뉘우치는 척하는 얼굴조차 보기 싫었다. “그럼 얼른 꺼져.” “알았어. 가면 되잖아!” “미, 미안해...” 고개를 푹 숙인 채 돌아서는 두 사람, 그 순간, 정면에 서 있는 유건과 마주쳤다. 딱!싸늘한 눈빛, 입꼬리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고, 고 대표님...” 유건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이미 다 들었어. 다음엔 조한나보다 더한 꼴을 보게 될 거야.” 두 사람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역시... 조한나 이야기가 진짜였어...’“두 번 말하고 싶지 않으니까 당장 꺼져.” “죄, 죄송합니다!” 두 사람은 거의 울 듯한 얼굴로 도망치듯 자리를 떴고, 그제야 하은이 조심스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고 대표님... 아까는 시연이가 안에 있어서... 괜히 듣고 속상해할까 봐... 제가 맘대로 대표님 이름을 입에 올렸어요...” 유건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잘했어. 오히려 고마워.” 그는 처음으로, 하은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같은 학교 동기인 데다, 병원에서도 늘 같이 있다고 했지? 시연이... 내가 못 챙길 때가 많아. 앞으로도 이런 일 있으면, 부탁 좀 할게.” “아, 네... 그럼요! 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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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5화

유건은 시연을 조심히 안아 차에 올랐다. 하지만 문턱을 넘는 순간, 그녀의 머리가 살짝 닿았다. “아야.” 시연이 눈을 뜨며 그를 째려봤다. “아프잖아.” 삐죽한 입매에 살짝 붉어진 눈꼬리. 투정 부리듯 말하는 그녀는, 말도 안 되게 귀여웠다. 요즘 내내 싸우기만 했고, 시연은 유건에게 제대로 된 눈빛 하나 준 적 없었다. 오늘, 만약 실수로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그녀가 이렇게 말할 일도 없었을 터. 유건의 목젖이 뚜렷하게 움직였다. ‘미치겠네... 이럴 땐 정말, 참기 힘들다.’“여보, 그렇게 날 유혹하지 마.” “응?” 시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유혹 안 했는데? 난 유혹한 거 아닌데? 난 의사야. 후크 아냐.” “푸흡!!” 참으려 했지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더는 참지 못한 유건이 여자의 턱을 살며시 잡고, 고개를 숙였다. 입술이 시연의 입술에 닿았다. 부드럽고, 깊고, 절제되지 않은 키스였다. “읏...!” 호흡이 가빠지자, 시연은 손으로 그의 가슴을 밀었다. “숨... 못 쉬겠어.” 유건은 여자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아직도 키스하는 법 몰라?” 그 순간, 시연의 눈동자가 멈췄다. 그를 말없이 바라보는 눈빛에, 무언가 낯선 기운이 돌았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유건이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고유건!!” 시연은 그의 옷깃을 잡았다. 조금 전까지 흐리던 눈빛이, 조금은 맑아진 듯했다. “괜찮아.” 그 말에 유건은 오히려 더 당황했다. 시연은 너무 조용했고, 너무 순했고, 평소 같지 않았다. 유건은 다가가 뺨에 입을 맞췄다. 시연은 피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텅 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가에서, 조용히 눈물이 떨어졌다. 유건의 손등 위로, 작고 뜨거운 물방울이 스며들었다. “여보...?” 그가 급히 얼굴을 들었다. 시연의 두 눈엔 이미 눈물이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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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6화

장소미가 납치 사건으로 인해 심각한 화상을 입은 이후, 유건과 시연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다.‘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누가 됐든, 반드시 뿌리까지 뽑아낼 거야.’유건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그의 싸늘한 기운에 방 안의 공기조차 무거워졌다.“네, 형님.”지한은 짧게, 그러나 단단한 어조로 대답했다.말보다 표정이 먼저 충성심을 증명했다....다음 날 아침. 시연이 다이닝 룸으로 내려갔을 때, 유건은 아직 나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일어났어?” 유건은 조용히 시연의 손을 잡아 자리에 앉히며, 얼굴을 살폈다. “머리는 어때? 아직 아파?” 부드러운 목소리. 언뜻 보기엔, 누구보다 자상한 남편이었다. “이모님이 아침부터 생선 머리 탕을 끓여주셨어. 당신 어제 술을 조금 마셨잖아. 속 풀리게 한 그릇 먹어.” 이때 왕성애가 아침을 들고 들어왔다. “사모님, 도련님께서 오늘 아침에 직접 당부하셨어요. 어젯밤에 술을 드셨으니, 꼭 속 풀어드리라고요.” “감사합니다.” 시연은 조용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하지만 그 말은 왕성애를 향한 것인지, 유건을 향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국을 한 숟갈 뜨는 사이, 유건은 조용히 상 위에 작은 상자를 꺼내 놓았다. “여보.” 그는 다정하게 불렀다. “선물이야.” 시연은 반응하지 않았다. 유건은 약간 찌푸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 “입사 축하 선물이야. 시계야.” “필요 없어요.” 짧고 단호했다. 유건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아직도 어제 일 때문에 화난 거야?” “아니요.” 시연은 고개를 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 시계... 너무 비쌀 것 같아요. 난 이제 막 입사한 신입인데, 그런 건 나한테 어울리지 않아요.” 유건은 낮게 웃었다. “그게 문제였어?” 그는 상자를 열었다. 안에 들어있던 건, 고급스러운 여성용 파텍 필립 시계. 그가 평소에 차고 다니는 것과 비슷한 디자인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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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7화

“뭐라고...?” 장미리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지금, 나한테 화내는 거야?!!” 그 말 한마디에, 마치 불씨에 기름을 부은 듯, 장미리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지동성! 그게 사람이 할 소리야?”“내가 당신이랑 몇 년을 살았는데... 우린 부부잖아! 집안 돈은 우리 공동재산이라고!” 지동성은 코웃음을 쳤다. “공동재산? 웃기고 있네.” 싸늘하게 시선을 내리깔며 말했다. “잊었어? 당신, 나한테 시집올 때 빈손이었잖아. 혼수? 그런 건 하나도 없이 나한테 온 거 아니었나?” 장미리의 표정이 굳었다. ‘그래, 그때 난 진짜 아무것도 없었지... 근데 그 일을 지금, 이 순간에 꺼낸다고?’그녀는 울분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래! 난 빈손으로 왔어! 하지만 소미는? 소미는 내 딸이야! 내가 낳은 내 딸이라고!” 지동성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냉정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소미만 아니었으면... 난 당신이랑 결혼하지 않았을 거야.” “하, 미쳤네 진짜...” 장미리는 이성을 잃고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날 그렇게 깔보며 살아온 거야?!” 지동성은 귀찮다는 듯 팔을 뿌리치며 말했다. “됐고, 그만 좀 해. 이 나이에 이런 말싸움은 하고 싶지도 않거든.” 그는 몸을 돌려 자리를 뜨려 했다. “가긴 어딜 가!” 장미리는 그를 붙잡았다.“설마... 시연이한테 돈이랑 집을 준 거야? 진짜냐고! 나 몰래 챙겨준 거 맞지?” 지동성의 눈썹이 깊게 찌푸려졌다. “몰래라니? 시연이는 내 딸이고, 우주는 내 아들이야. 내가 내 자식한테 주겠다는데, 누구 눈치를 봐?!” “뭐... 라고...?” 장미리는 무너지는 듯 허탈하게 웃었다. ‘소미 말이 맞았어. 이 인간, 진짜로 지시연한테 다 퍼줬어.’“그 돈은 내 거야! 소미의 미래를 위해 모은 거라고!!” 장미리는 소리쳤다. “당장 가서 시연이한테 준 거 다 받아와! 그 집도, 그 돈도! 다 내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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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8화

“퇴근하면 연락해 줘. 내가 먼저 끝나면, 연락할게.” 유건의 말에 시연은 무표정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빨리 가.” “네...” 시연은 대답하면서 속으로 말하고 있었다. ‘당신이 바로 회사로 가지 않을 거라는 거, 난 알아. 당신, 그 여자가 있는 화상 외과부터 갈 거잖아.’“지시연!!” 이때, 병동 입구가 벌컥 열리며, 귀를 찢는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얀 복도 위로 하이힐 소리가 쾅쾅 울렸고, 장미리가 눈을 부릅뜬 채, 분노에 찬 얼굴로 걸어 들어왔다. 시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또 무슨 일로?’“무슨 일이세요?” 그녀는 예의상 물었다. 하지만 장미리는 비웃듯 코를 훌쩍였다. “모르는 척 그만해. 내가 왜 왔는지, 너도 알잖아?” 그리고 주위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감정은 이미 폭주 상태였다. “우리 남편이 너한테 사 준 집! 그리고 그 돈! 그거 다 내 거야! 소미 거라고! 당장 내놔!!” ‘아...’ 시연은 그제야 이해했다. ‘결국... 그 얘기 하러 온 거구나.’바로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그래서요?” 시연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제 겁니다.” “뭐?” 장미리는 눈을 부릅뜨고 유건 쪽을 향했다. “고 대표님! 보셨죠?! 이 여자가 얼마나 뻔뻔한지! 고 대표님이 아무 말씀도 안 하시면, 제가 어떻게 참아요?!” 유건은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미리는 목소리를 더 높이며 외쳤다. “너, 이제 고씨 가문 사모님이니까, 그깟 돈은 필요 없잖아! 그건 우리 소미 거야! 내놓으라고!!” 하지만 시연은 아무 움직임도 없었다. 그 태도에 분노가 폭발한 장미리는 거칠게 손을 들며 시연에게 다가갔다. “말이 없네?! 입술이 달라붙기라도 한 거야?! 좋아, 내가 직접...” “그만하세요!!” 유건이 한 손으로 장미리의 손목을 낚아챘다.순식간에 장미리의 움직임이 멈췄다. “장 여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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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9화

장미리는 병동 입구를 등진 채 고함치고 있었다. 뒤에서 지동성이 들어오는 것도 모른 채. 유건의 말 한마디에, 그녀는 마치 면죄부라도 받은 듯 기세등등한 얼굴로 시연을 몰아붙였다. “들었지? 고 대표님도 돌려주라고 하시잖아?”“네 남편도 네 편을 안 들잖아! 창피한 줄 알아야지!” 말끝을 높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여러분, 다 알고 계시죠? 우리 소미랑 고 대표님, G시 사람이라면 다 아는 커플이었다고요!” “근데, 이 지시연이란 여자가 끼어들어서 둘을 갈라놨어요! 남의 사랑 뺏고, 이제 와선 우리 재산까지...” 장미리는 소리를 지르다 시연을 향해 돌았고, 눈을 부릅떴다. “우리가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니? 왜 이렇게까지 우리를 망가뜨려?” ‘세상을 거꾸로 산다고 해도, 이 정도로 뻔뻔할 수 있을까?’ 시연은 이를 악물었다. 손이 덜덜 떨리고, 손바닥엔 이미 손톱자국이 파였다. 심지어 숨이 턱턱 막혔다. “여보?” 유건이 시연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며 물었다. “괜찮아? 숨 가빠 보여.” “아니요...” 시연은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유건의 저음이 날카롭게 가라앉았다. “지 사장님.” 그리고 시선이 지동성에게로 향했다. “사람 하나 제대로 관리 못 하십니까?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하아...” 지동성은 숨을 내쉬며 다가와 장미리의 팔을 붙잡았다. “이만 가자.” “어머? 당신 여기 왜 있어요?” 장미리는 인제야 남편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지동성은 비웃듯 말했다. “내가 안 왔으면, 당신 병원 하나 날려 먹을 뻔했잖아.” “안 가요! 난 오늘 끝까지 말할 거예요!” 장미리는 버티며 외쳤다. “뭐가 창피해서 그래요? 창피한 건 저 여자죠! 남의 남자를 뺏고, 집을 뺏고, 돈까지 가져갔으니까요...!!” 병동 복도엔 다시 수군거림이 피어올랐다. “헐... 진짜야?” “지 선생님이 지 사장님이랑 그런 사이였나 봐...”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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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0화

막 돌아서려던 그 순간, 지동성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시연아!” 간절하고, 죄책감 어린, 오래 묻어둔 무게가 얹힌 외침. “아빠가... 정말 미안하다. 전부 다 아빠 잘못이야.” ‘아빠...?’ 그 한마디에 시연의 발걸음이 멈췄다. 몸이 굳어버린 듯 얼어붙었고, 눈꺼풀이 천천히 감겼다. ‘그 단어를... 지금 당신이 꺼낼 자격이나 있어?’눈물이 조용히,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볼을 타고 흘렀다. “지동성!!” 장미리는 거의 비명을 지르듯 남편을 붙잡았다. “당신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얼른 나가자니까!!” “놔.” 지동성은 그녀의 손을 뿌리치며 차갑게 웃었다. “그러게 내가 아까 가자고 할 때 내 말 듣지 그랬어? 지금 와서 수습하는 건 너무 늦었어, 장미리.’ 그는 돌아서서 유건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고 대표님.” 그러고는 또렷하고 무겁게 말했다. “지시연은 제 딸입니다. 제 아내, 그러니까 제 첫 번째 아내와의 사이에서 낳은, 제 친딸입니다.” 정적-그 순간, 복도 전체가 숨을 죽였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모두가 서로의 얼굴만 쳐다봤다.잠시 후, 속삭이는 듯하지만 멈추지 않는 가십이 퍼지기 시작했다. “딸이라고?”“그럼... 불륜이 아니고...”“진짜 가족이었어?”“헐... 그럼 저 여자, 지 선생님의 새어머니였던 거야?” “그럼 딸한테 재산 준 게 뭐가 어때서 그래?” “새어머니가 와서 따질 일은 아니잖아.” “아니, 진짜 드라마야? 세상에...” 순식간에 여론은 반전되었다. 그제야 장미리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당신... 우리 약속했잖아요. 고 대표님한테는 말 안 하기로...” “지금... 왜...? 왜 고 대표님 앞에서...?”‘이제... 우리 소미는... 어떡하지?!’장미리는 유건을 힐끔거리며 소리를 죽였다. 하지만 지동성의 눈은 더 이상 장미리를 보지 않았다. 유건은 여전히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눈빛이 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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