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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111 - Chapter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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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화

시연은 긴 꿈을 꾸었다. 실은 하나가 아니라 끝도 없이 쭉 이어지는 꿈이었다. 그 모든 꿈이 악몽이었다. 그리고 숨 막힐 듯한 절망. “아...” 시연은 비명이 터지며 눈이 번쩍 떠졌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었고, 차가운 공기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시연아.” 낮고 부드러운 남자의 목소리. 시연은 자신이 아직 꿈에서 깨지 못한 줄 알았다. 그런데 다음 순간, 그녀는 따뜻하고 단단한 품에 안겨 있었는데, 몇 초간 멍하니 있다가, 서서히 정신이 돌아왔다. 시연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눈물 자국조차 없이 말라버린 눈동자에는, 어젯밤의 그 연약함은 흔적도 없었다. “시연아.” 유건이 낮게 물었다. “괜찮아? 어디 불편한 데 없어?” 그리고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여자의 이마를 만지려 했다. 어젯밤, 시연은 약간의 미열이 있었다. 그러나 시연은 정확하게 고개를 돌려 남자의 손길을 피했다. 유건은 순간 얼어붙었다. 마치 가슴 한가운데에 차가운 물을 들어부은 듯한 감각... 유건 역시 무안해진 손을 거두며, 식어버린 손끝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그래. 내가 다치게 했으니까. 화내면서 나를 피하는 것도 당연하지.’ “...미안해.” 유건은 낮게,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그날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대해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었다. “그땐 내가 제대로 신경 쓰지 못했어.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네가 다친 건 사실이고... 내 잘못이야.” 그 말을 들은 순간, 시연의 눈이 미세하게 커졌다. 검고 깊은 눈동자에는 붉은 실핏줄이 불거져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과할 필요 없어요.” 아주 냉정한 목소리. “고 대표님은 여자 친구를 보호하기 위해 행동하신 거죠. 그건 아주 ‘올바른’ 선택이었어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 말에, 유건의 미간이 깊이 주름지면서 목소리도 단단하게 굳어졌다. “...꼭 그렇게 말해야 해?” 유건의 가슴이 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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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화

다음 날 점심, 시연은 임진아와 약속을 잡고 함께 식사했다. 진아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잔뜩 화가 나서, 거의 접시가 뚫어져라 젓가락을 찌르고 있었다. “진짜 말도 안 돼! 너한테 이런 일이 안 일어났다면, 세상에 이렇게 역겨운 인간들이 존재한다는 걸 믿지도 못했을 거야!” 하지만 시연은 그저 담담하게 미소 지었다. ‘이제 와서 화내봤자, 뭐가 달라지겠어.’ 활활 타오르던 분노의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 어차피 삶은 계속 흘러가야 한다. “진아야.” 시연이 조용히 말했다. “이 일은 너만 알고 있어. 절대 성빈이에게 말하지 마.” 진아는 입을 삐죽 내밀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성빈이 성격이 너무 직선적이고 다혈질이라 이 사실을 알면 가만히 있지 않겠지.’ ‘괜히 또 사고라도 칠까 봐 걱정이네.’ 어쨌든 특별전형 석사 과정은 이미 물 건너갔다. 시연도 더 이상 성빈까지 이 싸움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밤이 되어서야 본가로 돌아온 시연은 번역 원고를 마감하느라 늦은 시간까지 바빴다. 비록 마감일은 모레였지만, 편집장이 내일 직접 오라고 해서 시연도 내일만 시간이 비어 있었다. 다음 날, 시연은 오전 근무를 마친 후, 수술을 끝내고 오후 네 시쯤 편집장을 만나러 갔다. “오, 시연 씨, 앉아요.” 편집장이 반갑게 웃으며 물 한 잔을 건넸다. “오늘 부른 건 두 가지 때문이에요. 하나는 앞으로 맡을 수 있는 원고 범위를 확인하려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원고료 정산 때문이고.” “감사합니다, 편집장님.” 한 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눈 후, 편집장은 시연의 실력을 높이 평가하며 말했다. “앞으로 시연 씨에게 더 많은 원고를 맡길 생각이에요.”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시연은 기쁘게 고개를 숙였다. 편집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솔직히 처음엔 지인 추천이라 걱정했어요. 근데 실력 있는 사람은 역시 다르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시연은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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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화

“노은범...?” 강수희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내가 잘못 본 걸까?’ ‘우리 아들이랑 나란히 걸어가는 여자가... 지시연?’ 망설일 틈도 없이, 강수희는 곧장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갔다. ... 디저트 카페에 도착하자, 은범은 시연에게 초콜릿 브라우니와 생과일 오렌지 주스를 주문해 주었다. “괜찮아?” “응, 좋아.” 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괜찮지. 은범이는 내 취향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 “맛있어?” 시연은 천천히 초콜릿 브라우니를 스푼으로 떠먹으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응, 맛있네.” “그러면 다행이고.” 은범은 가볍게 웃으며 물 한 모금을 마셨다. 그러던 중, 시연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은범아.” “네 여자 친구는?” 은범의 손이 순간 굳었다. “너희... 잘 만나고 있어?” “...” 은범은 급히 고개를 들고 당황해서 순간적으로 몸이 경직되었다. ‘...뭐?’ “잘 만나고 있어. 근데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거야?” 시연의 질문에 은범은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시연은 디저트 스푼을 내려놓고, 잠시 은범을 바라보았다. 은범의 눈빛을 깊숙이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문득, 시연의 눈가에 희미한 물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은범아.” 그녀는 나지막이 말했다. “애초에... 여자 친구 같은 건 없지?” 은범은 숨이 턱 막혔다. ‘...어떻게 알았지?’ 시연은 은범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은범은 거짓말을 못 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한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이상, 다른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는 단 한 번도 시연을 잊은 적이 없었다. 자신의 정곡을 찔리자, 은범도 더 이상 감출 수 없었다. “...어떻게 안 거야?” 시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대신,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단단한 눈빛으로 은범의 시선을 정면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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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화

시연은 손에 쥔 가방끈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느꼈다. ‘안 돼... 이 정도로 흔들리면 안 돼.’ “사모님, 저는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시연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았고, 고개를 숙이며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그 순간, 시연이 뒤에서 은범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연아!” “노은범!” 그러나 은범이는 강수희에게 팔을 세게 잡혀 그대로 멈춰 섰다. “어디 가려고? 설마... 저 애를 쫓아가겠다는 건 아니지?” 그제야 은범은 자신의 눈앞에 어머니가 있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어머니, 여기엔 어떻게...?” 순간적인 당혹감이 있었지만, 바로 이어진 건, 은범의 격한 분노였다. “혹시 시연이한테 뭐라고 했어요? 설마 또 엉뚱한 소리 한 거예요?” 강수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분노와 경멸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내가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한다고 그러니?” 그녀는 혀를 차며, 기가 막힌다는 듯한 눈빛으로 아들을 쏘아봤다. “노은범, 넌 도대체 언제쯤 정신 차릴래? 저 여자 동생, 자폐잖아. 너 진짜 그 여자랑 엮이겠다고? 혹시라도 결혼이라도 해서 애 낳으면 어쩌려고? 자폐 유전되는 거 몰라?” ‘또 그 얘기야...’ ‘그 말투, 그 시선, 그 논리... 3년 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어!!’ “어머니!” 은범은 미칠 것 같았다.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우주의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선천적인 게 아니라고요! 그리고 설령 그렇다 해도, 그게 무조건 유전된다는 보장도 없어요!” 순간,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 “...그게 그렇게 걱정되면, 난 아이 없이 살면 돼요.” “너... 뭐라고?” 강수희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창백해졌다. 다음 순간, 그녀의 손이 번뜩 들렸다. 그리고... 짝! 매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강수희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네가 지금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지 알고나 있어?” 그러나 은범은 한 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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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유건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고상훈이 시연에게 반찬을 집어 주면,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먹었다. 반찬이 다 떨어지면, 반찬은 쳐다보지도 않고 조용히 밥만 꾸역꾸역 입에 넣었다.“뭘 봐?” 손자가 찌푸린 얼굴로 시연을 바라보자, 고상훈이 못마땅하게 말했다. “네 마누라랑 애 좀 잘 챙겨!” 유건은 눈썹을 살짝 들었다가, 못 들은 척 넘겼다. 밤이 되어 방으로 돌아온 유건은 곧장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다. 옷을 갈아입으려던 순간, 거울 앞에 선 시연이 조용히 아랫배에 손을 얹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여자는 조심스럽게 아랫배를 쓰다듬고 있었다.이제 곧 석 달이 다 되어가는데도, 시연의 배는 여전히 평평했다. 유건은 그녀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 순간, 시연이가 입을 열었다. “곧 석 달이네.” ‘...응?’ 유건은 걸음을 멈추고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뭐?” 하지만 시연은 다시 말하지 않고, 그저 유건의 깊은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아이, 지우는 게 맞을까요...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거예요?” 유건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문제를, 왜 나한테 묻는 거지?’ ‘나랑... 상관없는 일인데...’ 유건이 대답을 망설이자, 시연은 마치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듯 담담하게 웃었다. “내 동생, 자폐 스펙트럼 장애예요. 당신도 본 적 있죠?” 유건이 눈썹을 올렸다. “그래서?” 시연은 몇 초간 침묵했다. 여자의 눈빛엔 이전보다 더 깊은 고민이 서려 있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유전적 요인이 있어요. 물론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우리 우주는 후천적 가능성이 크다고 했지만...” 그때, 우주는 겨우 돌이었다. 하지만 시연과 우주는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고, 새어머니의 학대와 폭력을 견뎌야 했다. 시연은 애써 동생을 보호하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주는 점점 말수가 줄었고, 점점 다른 아이들과 달라졌다. 시연은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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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화

깊은 밤. 유건은 집을 나서기 전, 무심코 침실 문 앞을 지나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발걸음이 멈췄다. 마치 무언가에 이끌린 듯, 그는 조용히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유건의 시선은 어둠 속에서도 흐트러짐이 없었고, 익숙한 듯 침대 쪽으로 걸어가 멈춰 섰다. 침대 위에 누워있는 시연은 조용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유건은 시연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눈으로 여자의 이목구비를 천천히 그려 나갔다. ‘왜...? 왜 오늘 밤 나한테 그런 질문을 한 거지?’ ‘설마 노은범이 아이를 원하지 않는 거야?’ ‘그래서 힘들어하는 거야?’ 갑자기 남자의 가슴 한구석이 거칠게 긁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유건은 흠칫하며 몸을 일으켰다. 바로 등을 돌려, 침실을 나섰다. ‘그건... 둘만의 문제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점심. 시연은 임진아와 함께 식사 중이었다. 두 사람은 자연스레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입안 가득 음식을 넣은 진아가 말했다. “나 인턴 끝나면 학교로 돌아가려고. 석사 준비해야지. 너는?” “나?” 시연은 순간 멈칫했다.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진아와 시연은 상황이 달랐다. 진아의 집이 엄청난 부잣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녀가 학업을 이어가는 데 무리가 없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시연은...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난 아마... 먼저 일부터 구해야 할 것 같아.” “무슨 소리야?” 진아가 바로 반대했다. “학사 졸업장이 뭐 얼마나 큰 도움이 된다고?” 시연의 실력은 인정할 만했지만, 학벌이 중요한 건 현실이었다. 현재 의료계에서 학사 출신이 대학병원에 정규직으로 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석사는 기본이고, 전문의를 따고도 펠로우 과정까지 거쳐야 겨우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아마 시연의 성적과 실력이라면 종합병원이나, 운이 좋다면 대학병원의 계약직 정도는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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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화

시연은 멍하니 서 있었다. ‘진짜 재미있는 광경이네. 아직 끝난 게 아니군.'유건은 조용히 지동성과 시연을 바라보며, 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그때, 지동성이 갑자기 지갑을 꺼냈다. 요즘은 다들 카드만 쓰지만, 그는 여전히 현금을 가지고 다니는 세대였다. 그는 지갑에서 두툼한 지폐 뭉치를 꺼내더니, 시연에게 내밀었다. “돈이 부족해서 그러니? 아빠가 줄게. 우선 이거라도 받아 둬. 더 필요하면, 그때 또 주마.” ‘...뭐지?’ 시연은 계속 가만히 서 있었다.‘갑자기 왜 이러지?’ ‘여덟 살 이후로 단 한 번도 나를 돌보지 않았던 아버지... 이제 와서 나한테 돈을 주겠다니?’ 시연이 아무 반응도 하지 않자, 지동성은 직접 그녀의 손을 잡아 직접 돈을 쥐여 주려 했다. “자, 받아.” 그러나 시연은 얼굴을 굳힌 채, 손을 홱 뿌리쳤다. ‘이유가 뭐든 상관없어. 이 사람의 관심은... 전혀 받을 생각 없어.’ “필요 없어요. 가져가세요.” 그녀는 딱 잘라 말하고, 바로 몸을 돌렸다. “시연아, 가지 마!” 지동성이 시연을 다시 붙잡았다. 그녀가 거부하자, 이번에는 강제로 돈을 손에 쥐여 주려고 했다. “이건 아빠가 주는 거야. 받아, 받아 둬.” ‘진짜 성가시네.’ 시연은 짜증이 밀려와, 힘껏 팔을 뿌리쳤다. “싫다고 했잖아요!” 휙-그 순간, 지폐 뭉치가 허공으로 흩날렸다. 오만 원권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마치 눈처럼 바닥에 쏟아졌다. “시연아, 너...” 지동성은 어쩔 줄 몰라 하며, 허둥지둥 돈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시연은 차갑게 그 모습을 바라보며 눈빛은 점점 싸늘해졌고, 그녀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조용히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그 순간... “지시연!” 장미리와 장소미가 이쪽을 향해 빠르게 뛰어오고 있었다. 둘의 표정은 마치 사람을 잡아먹을 듯 살벌했다. ‘이제야 등장하네.’ “야, 이년아!” 장미리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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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화

‘재밌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유건은 아무 감정 없이 지동성과 시연을 번갈아 바라보며 속으로 여러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고 대표님, 오셨네요.” “유건 씨!” 소미는 즉시 앞으로 다가가 남자의 팔을 자연스럽게 잡았다. “바쁘다면서 왜 굳이 왔어요? 안 와도 된다니까.” 유건은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대답했다. “이 정도 시간은 낼 수 있어.” 그러고는 짧게 덧붙였다. “퇴원 수속은 주지한이 처리 중이야.” “그럼 가자.” 유건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소미와 장미리, 지동성이 자연스럽게 그의 주위를 감쌌다. 지동성 일가는 서로 다정하게 이야기하며 병원을 나섰다. 처음부터 끝까지, 유건은 한 번도 시연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시연은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뺨을 문지르며...“쓰읍...” ‘아프네.’ ...밤, 고씨 가문의 본가에서. 시연은 샤워하다 말고 거울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볼이 더 심하게 부어올라 있었다. ‘이거 얼음찜질해야겠어.' 그녀는 타월을 걸친 채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냉동실에서 얼음을 찾아 아이스팩을 만들 참이었다. 이제는 밤 10시, 집 안은 모두 잠든 듯 조용했다. 그때, 현관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시연의 손이 잠깐 멈췄다. ‘고유건인가 보네. 아마 옷만 갈아입고 다시 나갈 생각인가 봐.’ 그녀의 예상대로, 유건이 조용히 거실로 들어섰고, 주방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 무심코 발걸음을 옮겼다. 처음에는 그는 시연이 뭘 하고 있는지 신경 쓰지 않았지만, 문득 떠오른 생각에 표정을 굳히며 질문을 던졌다. “너랑 장소미 사이... 그 문제, 결국 장소미 아버지 때문이야?” ‘...?’시연은 손을 멈추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소리지?' 하지만, 유건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가슴 어딘가가 서늘하게 조여오는 느낌이었다. ‘오늘 내가 본 게 다야.' ‘남자가 여자에게 돈을 건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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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화

“대체 뭐 하는 거예요?” 시연은 당황스러움에 아이스팩을 뺨에 대고 있는 손을 그대로 둔 채 유건을 올려다봤다. 유건의 날카로운 이목구비는 더욱 차갑게 굳어 있었다. 남자의 목소리는 깊고 단단하게 울려 퍼졌다. “남의 돈 받지 마. 내가 준 카드 있잖아. 너 돈 없냐?” “하?” 시연은 황당했다. ‘그렇게 열을 내더니, 고작 이런 말 하려고?’ ‘진짜 어이없네.’ 아무리 참고 또 참아도, 결국 참는 데도 한계는 있는 법. 시연은 손바닥으로 유건의 가슴을 밀치며 소리쳤다. “나가요! 당신 안 보고 싶으니까 나가라고요! 나 자야 해요!” 하지만 유건은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당신...!” 시연은 분이 풀리지 않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유건을 노려봤다. 그런데 유건은 시연의 눈빛에서 묘하게도 투정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그때 시연이가 뺨에 대고 있던 아이스팩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유건의 머릿속이 번쩍였다. ‘...아... 오늘 낮에 이 사람이 장미리한테 뺨을 맞았어. 젠장...' 유건의 시선이 점점 날카로워졌다. 화가 치밀어 올라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는 반사적으로 여자의 손목을 붙잡았다. “심하게 맞았어? 어디 봐.” 시연은 더 놀랐다. 그리고 황당함을 넘어서, 도무지 유건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와서 신경 쓴다고?' 그녀는 그냥 밀어내기로 했다. “나가라고 했잖아요!” 하지만 시연의 두 손은 오히려 유건에게 잡혀버렸다. ‘뭐야... 이 힘은?' 그녀는 순식간에 꼼짝없이 붙잡힌 채, 마치 인형처럼 무력하게 서 있었다. 유건은 한 손으로 시연의 손목을 제압한 채, 다른 손으로 그녀의 얼굴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걷어냈다. 그리고 붉게 부어오른 뺨... 손자국이 선명했다. ‘젠장...' 유건의 눈빛이 깊어졌다. ‘저 정신 나간 여자가 손을 얼마나 세게 놀렸길래?’ 그런데 시연은 유건의 손길에 화가 치밀었다.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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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화

유건의 생각대로만 한다면, 그는 지금 당장 본가를 떠나고 싶었다. ‘단 1초라도 지시연과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아!’ 하지만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밖에는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고, 내일 아침에는 할아버지의 아침 식사 자리에 동석해야 했다. 유건은 짜증스럽게 담배를 꺼내 물고는 불을 붙였다. 거칠게 두 모금 빨아들이고는 그대로 객실로 향했다. ‘다행히 본가는 늘 예비 객실을 정리해두는 습관이 있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 밤 어디서 자야 할지 몰랐을 텐데.’ 소파에 몸을 던지자 눅눅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다 지시연 때문이야. 그런데 정작 저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잖아.’ ... 이른 아침, 이호민은 부부가 따로 잔 것을 눈치채고 곧바로 고상훈에게 알렸다. 고상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놔둬. 젊을 때 안 싸우고 언제 싸우겠나?” 이호민은 피식 웃으며 맞장구쳤다. “그러게요. 근데 제 생각에는 도련님이 사모님을 많이 좋아하는 것 같은데요? 신경 쓰는 티가 확 나던데요?” “고개 숙인다고 머리카락 안 보이나?” 고상훈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싸우는 건 싸우는 거고, 적절한 순간엔 도와줄 필요도 있지.” “알겠습니다, 어르신. 제가 잘 알아서 하겠습니다.” ... 시연은 씻고 내려와 왕성애 아주머니에게 다가갔다. “이모님, 할아버지 식사 준비됐을까요? 제가 가지고 올라갈게요.” “괜찮습니다.” 왕성애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르신께서는 집사님이랑 이야기할 게 있어서 같이 드신다고 하셨습니다.” “아, 그래요.” 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래요. 저는 아침식사 준비하겠습니다.” 시연이 계단 쪽으로 향하는 순간, 이호민이 식판을 들고 내려왔다. “집사님.” “사모님.” 이호민은 고상훈의 말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젯밤, 혹시 도련님과 다투셨나요?”시연은 순간 멈칫했다. 어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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