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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Chapter 111 - Chapter 120

513 Chapters

제111화

사장님은 단번에 정은이 H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외국에서 고향 사람을 만나자, 그 태도도 무척 열정적이었다.“아가씨 안목이 좋네. 이 조각상은 모두 내가 직접 만든 거야. 돌아가서 친구들에게 선물로 줘도 문제가 없다고.”정은은 웃으며 가격을 물어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그럼 포장해주세요.”“오케이!” 사장님은 포장을 하면서 엽서 한 장을 안에 넣었다.“만약 하고 싶지만 하기가 쑥스러운 말이 있다면, 이 엽서에 쓰면 돼.”정은은 입술을 오므리며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막상 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사장님이 열정적으로 포장을 해준 이상,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다.호텔로 돌아온 정은은 샤워를 하러 갔다. 욕실에서 나왔을 때, 책상 위에 놓인 그 선물 주머니가 눈에 띄었다. 그녀는 다가가 엽서를 꺼냈다.엽서에는 몰디브의 가장 아름다운 바다 경치가 그려져 있었다. 정은은 그것을 책상 위에 던져버렸다.‘어차피 쓸모가 없잖아.’...이튿날 아침, 심현빈은 시간이 다 됐다 싶어 레스토랑에 갔지만, 한 바퀴 돌아보아도 정은을 보지 못했고, 오직 수민 혼자만 아침을 먹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테이블 위에는 컵 하나와 샐러드 하나가 놓여 있었다.“좋은 아침이에요!”수민은 먼저 웃으며 인사를 했다.“세 바퀴나 돌면서 줄곧 날 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나와 함께 아침을 먹고 싶은 거예요?”현빈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정말 의자를 가져와서 수민의 맞은편에 앉았다.“좋은 아침.”“네.”현빈은 수민의 컵을 힐끗 보았다.“우유가 참 맛있어 보이네.”“이거 두유예요.”두 사람 사이에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수민은 컵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예요?”현빈도 연기를 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정은 씨는? 왜 여기에 오지 않은 거지?”“무슨 일로 정은을 찾는 거죠?”“심심해서 찾으면 안 되는 거야?”수민은 어이가 없어서 되려 웃었다.“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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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화

현빈은 떠날 때 마침 아침을 먹으러 내려온 도겸과 어깨를 스쳤다.도겸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담담하게 한 바퀴 둘러보았지만, 정은을 보지 못했다.“자기야, 뭘 그렇게 찾고 있는 거예요?” 연희는 도겸이 사방을 둘러보는 것을 보고 알면서도 일부러 물었다.도겸은 시선을 거두며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넌 다리를 다쳤으니 굳이 날 따라오지 말았어야 했는데.”“룸서비스를 부를 수는 있지만, 너무 오래 누워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단 말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온몸에 곰팡이가 낄 것 같아요...”말하면서 연희는 혀를 내밀었다.도겸은 가볍게 응답했다.“뭘 먹고 싶어?”“샌드위치랑 우유요. 고마워요, 도겸 오빠.”점심에 도겸은 섬에 있는 4개의 레스토랑을 두루 찾았지만 여전히 정은을 보지 못했다. 오후에 그는 또 해변가를 돌아다녔지만 여전히 정은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밤이 되자, 도겸은 도리여 섬의 한식당에서 수민을 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곁에는 정은이 없었다.더 이상한 것은 아침 때 현빈을 잠깐 만난 이후, 다시는 그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설마... 정은이 심현빈과 데이트를 하러 간 건 아니겠지?’이 생각에 도겸은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더니 연희가 의자에 걸쳐둔 숄을 보고 잠시 생각했다.이것은 섬에서 산 것인데, 거의 모든 사람들 손에 하나씩 있었다. 물론 정은도 마찬가지였다.도겸은 걸어가서 수민에게 말했다.“점심때 정은이가 날 찾아왔었는데, 이 숄을 남겨두고 갔어. 네가 대신 돌려줘.”수민은 한창 잘생긴 남자와 데이트를 하고 있었기에, 이 말을 듣고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점심에요? 그럴 리가요? 정은은 이미 돌아-”‘앗!’이때 수민은 이상함을 감지했다.“강도겸,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도겸은 예리한 눈빛으로 물었다.“정은이 어디로 돌아갔는데? 귀국한 거야?”수민은 눈을 부라렸다.“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에요?”도겸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확실히 귀국했구나.”원하는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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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화

두 나라의 온도 차가 큰 걸 알았던 정은은 비행기가 착륙하기 전에 미리 롱패딩을 꺼내 자신을 꽁꽁 감쌌다.하지만 이렇게 추울 줄은 몰랐다.며칠 전 비가 쏟아진 탓에 나무와 전봇대마다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지금은 가랑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고, 비록 눈에 보이기엔 가벼워 보였지만 옷에 닿는 순간 바로 얼음으로 변해버렸다.공항은 언제나 사람들로 시끌벅적했지만, 지금은 한겨울의 한밤중이라 그런지 택시 한 대 잡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정은은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예약한 차량을 확인했다. 3분 전까지만 해도 5분 내 도착 예정이던 차가 이제는 30분 후에나 도착할 수 있다는 알림이 떴다.그녀는 지도 어플을 확인해 보니 공항으로 오는 길이 온통 막혀 있었다. 취소할까 말까 망설이던 찰나, 차 한 대가 천천히 정은의 곁에 멈춰 섰다.차창이 내려오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얼굴, 짙은 회색의 터틀넥 스웨터가 목을 반쯤 감싸고 있었다. 정은의 각도에서 보이는 그의 얼굴은 마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 같았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그의 차가운 분위기에 따뜻함을 더하는 듯했다.“이 시간에 택시를 잡기가 많이 어려울 것 같은데. 마침 나도 집으로 가는 길이니까 얼른 타.”차 안에서, 정은이 추위에 몸을 부들부들 떠는 것을 보고, 조재석은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었다.차 안의 서랍에 핫팩이 있는 것을 떠올리며 재석은 또 얼른 그것을 정은에게 건네주었다.“이걸로 손 좀 따뜻하게 해.”정은은 자신의 손이 아이스바와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핫팩과 차 안의 에어컨 덕분에 그녀는 그제야 좀 살 것 같다고 느꼈다.“고마워요. 방금 공항에서 얼어 죽을 뻔했거든요.”정은은 코를 훌쩍였다. 수민이 기사를 불러주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수민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 바로 거절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공항에서 택시를 잡지 못할 줄이야.재석은 정은을 바라보았다.“요 며칠 우리나라에서 국제 회의가 열릴 예정이라서 그래. 최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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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화

정은은 빙그레 웃으며 ‘변명’했다.“에이, 지금 이 표정이 선배님과 똑 닮았는데요?”그녀가 조각상을 들고 흔들자, 재석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아, 지금은 별로 안 닮았네요.”그러나 재석은 여전히 그 선물을 받으며 감사하다고 말했다.“천만에요, 아, 파란불이네요...”...집에 돌아올 때, 이미 새벽이 되었다.정은은 출발하기 전에 집을 깨끗이 청소했고, 귀국하기 전에 또 도우미를 불러 청소를 했기에, 먼지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그녀는 샤워를 한 다음, 부드러운 큰 침대에 누웠다. 바디워시 향기를 맡으며 정은은 흡족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역시, 어딜 가든 집이 제일 편해.’다른 한편, 재석은 아직 자지 않았다.실험이 첫 번째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기에 그는 요즘 무척 바빴고, 오늘도 억지로 시간을 비워서 공항에 간 것이었다.그래서 재석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다시 실험실로 돌아가려 했다.현관에서 신발을 신을 때, 그는 고개를 들자마자 정은이 준 조각상을 보았다.집에 들어선 다음, 재석은 이것을 신발장 위쪽의 책꽂이에 올려놓았는데, 단독으로 비워둔 그 한 칸 외에, 주위는 전부 책으로 가득했다.재석은 갑자기 입가를 구부리며 웃었다.‘닮긴 정말 닮았네.’...1월 중순, J시에는 천지를 뒤덮을 만큼 많은 눈이 내렸다. 정은은 창문을 열고, 온 세상이 새하얀 새 옷으로 갈아입은 듯한 풍경에 감탄했다.8시가 지나자, 근처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아래층에서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장난치는 소리와 상인들의 고함 소리가 뒤섞여 무척이나 떠들썩한 분위기였다.장을 보러 아래층으로 내려가던 정은은 키가 제각각인 작은 눈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눈사람들은 각기 다른 모양이었지만, 가지런히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그중 가장 큰 눈사람은 특히 우스꽝스러웠다. 과일 열매 두 개로 만든 눈, 머리 위에는 분홍색 플라스틱 풍차가 놓여 있었는데, 언뜻 보면 마치 도라에몽을 연상케 했다. 정은은 이미 계단에 도착했지만,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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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화

밤 10시, 큰 눈이 또 소리 없이 내리기 시작했다.재석이 우산을 접자, 그 위에 쌓였던 눈이 우수수 떨어지며 바로 녹아 물이 되었다.실험에 약간의 문제가 생긴 데다, 끊임없이 여러 가지 문제들이 이어지면서 그조차도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거리는 점점 더 떠들썩해져 갔다.며칠 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던 재석은, 오늘 마침내 실험 데이터가 안전한 수치로 수정된 것을 확인하고는 곧 다가올 주말을 떠올리며 모두에게 이틀간의 휴가를 주기로 했다.재석이 열쇠를 꺼내 문을 열려던 찰나,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따뜻한 불빛이 문틈을 뚫고 나와 바닥에 쏟아졌고, 그 빛은 재석의 몸을 감싸며 어두운 복도를 순식간에 밝게 비추었다.정은의 목소리는 이 추운 겨울을 녹여줄 한 줄기 따뜻한 햇살 같았다.“오늘 일찍 돌아왔네요. 3층에 사시는 아주머니의 며느님이 딸을 낳으셨다고 오후에 이웃에게 떡을 돌리셨어요. 선배님이 집에 없어서 아주머니는 그 떡을 나에게 맡겼는데, 잠깐 좀 기다려요. 내가 가져올게요...”재석은 일반인보다 더 예민했지만, 이때 정은의 맑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으며 머릿속은 저도 모르게 새하얘졌다. 정은은 그에게 작은 바구니를 건넸는데, 안에는 떡 그리고 그녀가 오늘 끓인 소갈비탕이 들어 있었다.한참이 지나서야 재석은 정신을 차렸고, 나지막하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마워.”찬바람이 복도를 뚫고 지나가자, 정은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떡과 국은 내가 다 데웠으니 뜨거울 때 먹어요. 그럼 난 먼저 들어갈게요.”“음.”빛이 꺼지자, 문도 다시 닫혔다.재석은 문을 밀고 들어갔고, 방안의 불을 켜자, 넓은 방은 오늘 유난히 쓸쓸한 것 같았다.그는 피곤하게 미간을 비비며 보온병 뚜껑을 열었다. 따끈따끈한 탕에는 파가 떠 있었는데, 무는 이미 푹 익어서 맛이 들었다. 한 입 먹어보니 간도 딱 맞았다.재석은 옆에 있는 떡을 보며 갈등을 느꼈지만, 결국 하나를 들고 소갈비탕과 함께 먹기 시작했다.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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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화

새벽 8시, L시에서 가장 큰 시장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떠들썩했다.“소 선생님, 또 생선 사러 오셨어요?”“맞아요. 오늘은 농어 있어요?”“그럼요, 있죠! 자, 특별히 선생님을 위해 남긴 거예요...”중년 여자는 말하면서 잽싸게 저울로 무게를 잰 다음, 물고기를 손질해 부었다.“자요.”소진헌은 핸드폰을 꺼냈다.“얼마예요?”“에이, 돈은 필요 없으니까 그냥 가져가서 드세요! 우리 성민이 때문에 그동안 많이 힘드셨을 텐데...”“그건 안 돼요. 장사를 하는 분이 어떻게 돈을 받지 않을 수가 있어요?” 소진헌은 바로 6천 원을 주었다. 심지어 많기만 할 뿐, 적게 주지 않았다.여자는 돈을 받으면서 계속 말했다.“이걸 어떻게 받아요...”“돈을 받지 않으면 내가 더 미안하죠. 그럼 먼저 일보세요, 난 파 좀 사러 갈게요.”“아, 소 선생님 잠깐만요...”“무슨 일 있어요?”“그게 말이에요.”여자는 긴장해서 몸에 입은 가죽 앞치마를 꽉 쥐었다.“우리 학교에서 매년 물리 경기 추천 정원이 있다고 들었는데, 만약 국제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다면 서비대학교, 연성대학교 같은 명문 학교로 갈 수 있다면서요!”소진헌은 고개를 끄덕였다.“추천 정원이 있긴 하죠.”“그럼 우리 성민이에게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세요?”소진헌은 잠시 침묵했다.“성민 어머니, 우선 경기가 무엇인지부터 잘 파악하셔야 해요. 학생들이 지금 단계를 초월하는 더 높은 수준의 지식을 운용하여 학과의 경기 대결을 완성해야 한다고 이해할 수 있어요. 다시 말해서, 시험 문제는 평소보다 훨씬 거 어려울 거예요. 물론 학교에는 확실히 각 학과마다 모두 추천 정원이 있지만, 보통 단일 학과 성적이 특별히 뛰어나고, 학습 능력과 사고력이 강한 학생을 선발하여 참가시킬 거예요.”여자는 조급해했다.“우리 성민이도 성적이 아주 좋은데요! 학년에서 순위가 20등 밖으로 떨어진 적이 없잖아요, 이게 유난히 뛰어나고 능력이 강한 편이 아니라고요?”“성민 어머니, 일단 설명 좀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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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화

“에이? 설마?! 공부도 안 하고, 일도 안 하면 뭘로 먹고 살려고?”“돈 많은 남자 꼬시는 거지! 누워서 다리만 벌리면 돈이 오는 게 아니겠어? 이게 얼마나 쉬워? 그러니 무슨 일자리를 찾겠어?”“쉿! 왕 씨, 이런 말은 함부로 하지 마! 그 아가씨의 명성이 더러워지잖아!”“흥, 소 선생의 딸이 만약 정당한 일자리를 찾았다면 왜 몇 년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았겠어? 창피해서 돌아오지 못하는 거지. 이 작은 곳에서 무슨 소문이 생기면 바로 쫙 퍼지니까, 소 선생도 막고 싶어서 그런 거야.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남의 자식들을 가르칠 수 있겠어?”“세상에...”소진헌은 그런 말을 하나도 듣지 못했다. 아마 듣더라도 그는 침묵을 선택할 것이다.왜냐하면 소진헌에게 있어, 딸이 한 그런 일들은 재벌의 꼭두각시 인형으로 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정은은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패딩을 꽁꽁 여몄다. L시는 J시의 남쪽에 위치해 있었지만, 겨울의 추위는 여전했다.택시에 앉아 창밖으로 끊임없이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니, 기억 속의 고향이 서서히 떠올랐다. L시는 인구가 많지 않았고, 중공업이 도시 외곽으로 이전되면서 최근 몇 년간 정부는 관광업을 대대적으로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도로 양쪽에는 많은 나무와 풀을 심어 도시의 모습을 바꾸었다.작고 낡은 건물들은 새롭게 개축되었고, 공원도 새로 조성되었다. 구시가지만이 아직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대략적으로 신구 두 구역을 나누는 경계가 되었다.여름에는 사람들이 강에서 배를 띄웠고, 겨울이 되면 흐르는 물 위로 살얼음이 살짝 얹혀져, 가볍게 만지기만 해도 바로 흩어져 물결 위에서 출렁였다. 그 모습은 마치 투명한 다이아몬드처럼 밝은 빛을 발하는 듯했다.강 위에는 오래된 아치형 다리가 하나 있었고, 정은의 집은 바로 그 다리의 한쪽 끝에 위치해 있었다. 골목을 지나면 멀리서 ‘인성 고등학교 교직원 공동주택'이라는 몇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소진헌은 그 시절 연성대 물리학부를 졸업한 인재로, 특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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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화

“누구세요?”소진헌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즉시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그리고 방금 만든 농어찜을 보더니, 그것을 조심스럽게 식탁 위에 올려놓은 다음, 그제야 문을 열었다.방 안에서 꽃에게 물을 주고 있던 이미숙도 이를 듣고 정원 밖을 내다보았다. “누구지? 건우 아니야?”“건우는 오늘 아침에 문자를 보냈는데, 내일 도착한다고 했어. 이 시간이면 아마도 옆집 양 씨 아주머니일 거야. 당신 요 며칠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내가 아주머니에게 토종닭을 좀 사서 보내달라고 부탁했거든.”문 앞에서, 정은은 문을 열어준 아버지를 바라보았다.6년 동안 보지 못한 소진헌은 귀밑에 백발이 좀 더 많아진 것 같았고, 네모난 얼굴에도 주름이 더 많아졌다.어렸을 때, 정은은 아버지의 어깨에 올라타는 것을 가장 좋아했지만, 지금은 아버지가 늙은 데다가 등도 약간 구부러졌다. 그러나 그 두 눈만이 여전히 6년 전처럼 맑고 예리했다.“아빠...”정은은 가볍게 입을 열었다.소진헌은 처음에 멈칫하더니 안색이 점차 어두워졌다.“네가 왜 돌아온 거야?”바깥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이미숙은 잠시 기다렸다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정원으로 걸어갔다. “여보, 왜 대답을 안 하는 거예요? 누군데 그래요?”그러나 문 밖에 서 있는 사람을 보았을 때, 이미숙은 손에 힘이 풀리더니 주전자가 탁 하고 땅에 떨어졌다.정은은 두 눈에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전과 마찬가지로 예쁘고 우아했다. 세월은 그녀의 몸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것 같았다.시선이 마주치자, 정은은 참지 못하고 불렀다.“엄마...”딸의 목소리에 이미숙은 손이 살짝 떨렸다. 몇 번이나 입술을 벌렸지만, 말 한마디조차 하지 못했다.한참 후에야 그녀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여보, 일단 들어와서 얘기해요.”거실에서, 방안의 분위기는 마치 비 오는 날처럼 답답하고 무거웠다.소진헌은 소파에 앉아 무표정하게 말했다.“돌아와서 뭘 하려는 거야? 애초에 했던 말을 다 잊은 건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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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화

“이번에 돌아온 것도 엄마와 아빠가 너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두 분께서 저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며, 제가 예전의 잘못을 메울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어요.”그동안 정은은 부모님의 실망스러운 눈빛을 볼까 봐 감히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 꾹 참았던 것이다.그러나 현실은 그녀를 제대로 실망시켰다. 정은은 틀렸을 뿐만 아니라 터무니없이 큰 잘못을 저질렀다.소진헌은 놀라서 입술이 떨렸다.‘내가 방금 무엇을 들었지? 정은이 마침내 잘못을 인정했다니?’이미숙은 오히려 가슴이 찡했다. 만약 억울함을 당하고 손해를 보지 않았다면, 그녀의 고집이 센 딸이 어떻게 잘못했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너, 정말 똑똑히 생각한 거야?” 소진헌은 말투가 많이 부드러워졌다.정은은 입술을 오므렸다.“네, 이미 똑똑히 생각했어요. 하지만 두 분께서 화를 내실까 봐 줄곧 돌아올 용기가 없었던 거예요...”그녀는 코를 훌쩍거리며 집에 돌아가기 전의 망설임과 두려움을 생각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엄마 아빠, 저 여기에 남을 수 있을까요? 저도 두 분과 함께 설을 쇠고 싶거든요.”소진헌은 얼굴을 돌리며 아내와 딸이 자신의 눈물을 보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목청을 가다듬으며 말했다.“돌아온 이상, 며칠 있다가 다시 돌아가.”이미숙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계속 이렇게 서 있을 거야? 빨리 트렁크를 방에 안 갖다 놔? 음식 다 식었겠다...”정은은 꾹 참았지만, 이 말 때문에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우는 동시에 또 웃었다.“엄마 아빠, 정말 보고 싶었어요. 이번에 마침내 집에 돌아오는 길을 찾았어요.”이미숙은 눈시울을 붉히며, ‘잃어버렸던’ 딸을 다시 품에 안았다.6년 만에 그들 일가족은 마침내 단란하게 모일 수 있었다....6년의 시간을 거쳐 오늘 가까스로 한자리에 모인 세 사람은 오랫동안 함께 울다가 이제 겨우 회복되었다.소진헌은 자신이 울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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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화

저녁 무렵, 주방에서 향기가 풍기더니, 소진헌은 국을 들고 나왔다.“생선찌개인데, 내가 새로 배운 거야. 얼른 와서 맛봐.”정은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린 음식을 바라보았다. 구운 삼겹살, 야채볶음, 농어찜에 생선찌개와 갈비찜. 모두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었다.이미숙은 가장 연한 생선 살을 골라 정은의 그릇에 놓았다.“네 아빠가 만든 생선은 예전보다 맛이 없는 것 같아. 그런데 내가 방금 맛봤는데, 네가 좋아하는 맛이야. 자, 많이 먹어.”소진헌은 바로 삐졌다.“예전보다 맛이 없다고? 그건 당신의 입맛이 달라져서 그래!”“풉-”“네, 네.” 이미숙은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당신은 요리 솜씨가 뛰어나네요. 선생님으로 되지 않았다면 아주 훌륭한 셰프로 됐을 텐데. 됐죠?”“알면 됐어. 엊그저께 내가 옆집의 장 씨를 만났는데, 나한테 이 농어찜을 하는 방법까지 물어봤단 말이야! 내가 매일 당신에게 밥을 해 주고 있으니, 당신은 아주 행복한 줄 알아.”“알았어요, 난 아주 행복해요. 당신도 빨리 먹어요, 밥을 먹어도 말이 그렇게 많다니!”“어쩜 성의가 이렇게 없는 거야? 정은에게 물어봐, 내 요리 솜씨가 정말 훌륭하지 않니?”말하면서 소진헌은 또 정은에게 생선고기를 집어주었다.“자, 정은아, 아빠가 만든 생선이 어떤지 먹어봐.”정은은 부모님이 말다툼하는 소리를 듣고 미소를 지었다. 고개를 숙여 고기를 한 입 먹었는데, 신선한 생선이 싱그럽고 달콤한 맛을 자아냈다.소진헌은 정은이 강한 양념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아주 간단하게 생강과 쪽파만 넣어 비린내를 잡은 뒤, 젓갈을 살짝 뿌려 요리했다. 덕분에 맛은 담백하면서도 생선의 신선함이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이미숙은 주방에 거의 들어가지 않았고, 집안의 주방장은 소진헌이었다.정은은 매일 수업이 끝나면 사무실에서 소진헌이 퇴근하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되면 그는 자전거를 타고 정은을 태우고 집으로 돌아갔다.가는 길에 시장을 지나칠 때마다, 채소를 파는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은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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