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나라의 온도 차가 큰 걸 알았던 정은은 비행기가 착륙하기 전에 미리 롱패딩을 꺼내 자신을 꽁꽁 감쌌다.하지만 이렇게 추울 줄은 몰랐다.며칠 전 비가 쏟아진 탓에 나무와 전봇대마다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지금은 가랑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고, 비록 눈에 보이기엔 가벼워 보였지만 옷에 닿는 순간 바로 얼음으로 변해버렸다.공항은 언제나 사람들로 시끌벅적했지만, 지금은 한겨울의 한밤중이라 그런지 택시 한 대 잡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정은은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예약한 차량을 확인했다. 3분 전까지만 해도 5분 내 도착 예정이던 차가 이제는 30분 후에나 도착할 수 있다는 알림이 떴다.그녀는 지도 어플을 확인해 보니 공항으로 오는 길이 온통 막혀 있었다. 취소할까 말까 망설이던 찰나, 차 한 대가 천천히 정은의 곁에 멈춰 섰다.차창이 내려오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얼굴, 짙은 회색의 터틀넥 스웨터가 목을 반쯤 감싸고 있었다. 정은의 각도에서 보이는 그의 얼굴은 마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 같았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그의 차가운 분위기에 따뜻함을 더하는 듯했다.“이 시간에 택시를 잡기가 많이 어려울 것 같은데. 마침 나도 집으로 가는 길이니까 얼른 타.”차 안에서, 정은이 추위에 몸을 부들부들 떠는 것을 보고, 조재석은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었다.차 안의 서랍에 핫팩이 있는 것을 떠올리며 재석은 또 얼른 그것을 정은에게 건네주었다.“이걸로 손 좀 따뜻하게 해.”정은은 자신의 손이 아이스바와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핫팩과 차 안의 에어컨 덕분에 그녀는 그제야 좀 살 것 같다고 느꼈다.“고마워요. 방금 공항에서 얼어 죽을 뻔했거든요.”정은은 코를 훌쩍였다. 수민이 기사를 불러주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수민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 바로 거절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공항에서 택시를 잡지 못할 줄이야.재석은 정은을 바라보았다.“요 며칠 우리나라에서 국제 회의가 열릴 예정이라서 그래. 최근에
정은은 빙그레 웃으며 ‘변명’했다.“에이, 지금 이 표정이 선배님과 똑 닮았는데요?”그녀가 조각상을 들고 흔들자, 재석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아, 지금은 별로 안 닮았네요.”그러나 재석은 여전히 그 선물을 받으며 감사하다고 말했다.“천만에요, 아, 파란불이네요...”...집에 돌아올 때, 이미 새벽이 되었다.정은은 출발하기 전에 집을 깨끗이 청소했고, 귀국하기 전에 또 도우미를 불러 청소를 했기에, 먼지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그녀는 샤워를 한 다음, 부드러운 큰 침대에 누웠다. 바디워시 향기를 맡으며 정은은 흡족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역시, 어딜 가든 집이 제일 편해.’다른 한편, 재석은 아직 자지 않았다.실험이 첫 번째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기에 그는 요즘 무척 바빴고, 오늘도 억지로 시간을 비워서 공항에 간 것이었다.그래서 재석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다시 실험실로 돌아가려 했다.현관에서 신발을 신을 때, 그는 고개를 들자마자 정은이 준 조각상을 보았다.집에 들어선 다음, 재석은 이것을 신발장 위쪽의 책꽂이에 올려놓았는데, 단독으로 비워둔 그 한 칸 외에, 주위는 전부 책으로 가득했다.재석은 갑자기 입가를 구부리며 웃었다.‘닮긴 정말 닮았네.’...1월 중순, J시에는 천지를 뒤덮을 만큼 많은 눈이 내렸다. 정은은 창문을 열고, 온 세상이 새하얀 새 옷으로 갈아입은 듯한 풍경에 감탄했다.8시가 지나자, 근처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아래층에서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장난치는 소리와 상인들의 고함 소리가 뒤섞여 무척이나 떠들썩한 분위기였다.장을 보러 아래층으로 내려가던 정은은 키가 제각각인 작은 눈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눈사람들은 각기 다른 모양이었지만, 가지런히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그중 가장 큰 눈사람은 특히 우스꽝스러웠다. 과일 열매 두 개로 만든 눈, 머리 위에는 분홍색 플라스틱 풍차가 놓여 있었는데, 언뜻 보면 마치 도라에몽을 연상케 했다. 정은은 이미 계단에 도착했지만, 잠
밤 10시, 큰 눈이 또 소리 없이 내리기 시작했다.재석이 우산을 접자, 그 위에 쌓였던 눈이 우수수 떨어지며 바로 녹아 물이 되었다.실험에 약간의 문제가 생긴 데다, 끊임없이 여러 가지 문제들이 이어지면서 그조차도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거리는 점점 더 떠들썩해져 갔다.며칠 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던 재석은, 오늘 마침내 실험 데이터가 안전한 수치로 수정된 것을 확인하고는 곧 다가올 주말을 떠올리며 모두에게 이틀간의 휴가를 주기로 했다.재석이 열쇠를 꺼내 문을 열려던 찰나,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따뜻한 불빛이 문틈을 뚫고 나와 바닥에 쏟아졌고, 그 빛은 재석의 몸을 감싸며 어두운 복도를 순식간에 밝게 비추었다.정은의 목소리는 이 추운 겨울을 녹여줄 한 줄기 따뜻한 햇살 같았다.“오늘 일찍 돌아왔네요. 3층에 사시는 아주머니의 며느님이 딸을 낳으셨다고 오후에 이웃에게 떡을 돌리셨어요. 선배님이 집에 없어서 아주머니는 그 떡을 나에게 맡겼는데, 잠깐 좀 기다려요. 내가 가져올게요...”재석은 일반인보다 더 예민했지만, 이때 정은의 맑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으며 머릿속은 저도 모르게 새하얘졌다. 정은은 그에게 작은 바구니를 건넸는데, 안에는 떡 그리고 그녀가 오늘 끓인 소갈비탕이 들어 있었다.한참이 지나서야 재석은 정신을 차렸고, 나지막하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마워.”찬바람이 복도를 뚫고 지나가자, 정은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떡과 국은 내가 다 데웠으니 뜨거울 때 먹어요. 그럼 난 먼저 들어갈게요.”“음.”빛이 꺼지자, 문도 다시 닫혔다.재석은 문을 밀고 들어갔고, 방안의 불을 켜자, 넓은 방은 오늘 유난히 쓸쓸한 것 같았다.그는 피곤하게 미간을 비비며 보온병 뚜껑을 열었다. 따끈따끈한 탕에는 파가 떠 있었는데, 무는 이미 푹 익어서 맛이 들었다. 한 입 먹어보니 간도 딱 맞았다.재석은 옆에 있는 떡을 보며 갈등을 느꼈지만, 결국 하나를 들고 소갈비탕과 함께 먹기 시작했다. ‘맛
새벽 8시, L시에서 가장 큰 시장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떠들썩했다.“소 선생님, 또 생선 사러 오셨어요?”“맞아요. 오늘은 농어 있어요?”“그럼요, 있죠! 자, 특별히 선생님을 위해 남긴 거예요...”중년 여자는 말하면서 잽싸게 저울로 무게를 잰 다음, 물고기를 손질해 부었다.“자요.”소진헌은 핸드폰을 꺼냈다.“얼마예요?”“에이, 돈은 필요 없으니까 그냥 가져가서 드세요! 우리 성민이 때문에 그동안 많이 힘드셨을 텐데...”“그건 안 돼요. 장사를 하는 분이 어떻게 돈을 받지 않을 수가 있어요?” 소진헌은 바로 6천 원을 주었다. 심지어 많기만 할 뿐, 적게 주지 않았다.여자는 돈을 받으면서 계속 말했다.“이걸 어떻게 받아요...”“돈을 받지 않으면 내가 더 미안하죠. 그럼 먼저 일보세요, 난 파 좀 사러 갈게요.”“아, 소 선생님 잠깐만요...”“무슨 일 있어요?”“그게 말이에요.”여자는 긴장해서 몸에 입은 가죽 앞치마를 꽉 쥐었다.“우리 학교에서 매년 물리 경기 추천 정원이 있다고 들었는데, 만약 국제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다면 서비대학교, 연성대학교 같은 명문 학교로 갈 수 있다면서요!”소진헌은 고개를 끄덕였다.“추천 정원이 있긴 하죠.”“그럼 우리 성민이에게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세요?”소진헌은 잠시 침묵했다.“성민 어머니, 우선 경기가 무엇인지부터 잘 파악하셔야 해요. 학생들이 지금 단계를 초월하는 더 높은 수준의 지식을 운용하여 학과의 경기 대결을 완성해야 한다고 이해할 수 있어요. 다시 말해서, 시험 문제는 평소보다 훨씬 거 어려울 거예요. 물론 학교에는 확실히 각 학과마다 모두 추천 정원이 있지만, 보통 단일 학과 성적이 특별히 뛰어나고, 학습 능력과 사고력이 강한 학생을 선발하여 참가시킬 거예요.”여자는 조급해했다.“우리 성민이도 성적이 아주 좋은데요! 학년에서 순위가 20등 밖으로 떨어진 적이 없잖아요, 이게 유난히 뛰어나고 능력이 강한 편이 아니라고요?”“성민 어머니, 일단 설명 좀 들어보세요.”
“에이? 설마?! 공부도 안 하고, 일도 안 하면 뭘로 먹고 살려고?”“돈 많은 남자 꼬시는 거지! 누워서 다리만 벌리면 돈이 오는 게 아니겠어? 이게 얼마나 쉬워? 그러니 무슨 일자리를 찾겠어?”“쉿! 왕 씨, 이런 말은 함부로 하지 마! 그 아가씨의 명성이 더러워지잖아!”“흥, 소 선생의 딸이 만약 정당한 일자리를 찾았다면 왜 몇 년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았겠어? 창피해서 돌아오지 못하는 거지. 이 작은 곳에서 무슨 소문이 생기면 바로 쫙 퍼지니까, 소 선생도 막고 싶어서 그런 거야.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남의 자식들을 가르칠 수 있겠어?”“세상에...”소진헌은 그런 말을 하나도 듣지 못했다. 아마 듣더라도 그는 침묵을 선택할 것이다.왜냐하면 소진헌에게 있어, 딸이 한 그런 일들은 재벌의 꼭두각시 인형으로 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정은은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패딩을 꽁꽁 여몄다. L시는 J시의 남쪽에 위치해 있었지만, 겨울의 추위는 여전했다.택시에 앉아 창밖으로 끊임없이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니, 기억 속의 고향이 서서히 떠올랐다. L시는 인구가 많지 않았고, 중공업이 도시 외곽으로 이전되면서 최근 몇 년간 정부는 관광업을 대대적으로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도로 양쪽에는 많은 나무와 풀을 심어 도시의 모습을 바꾸었다.작고 낡은 건물들은 새롭게 개축되었고, 공원도 새로 조성되었다. 구시가지만이 아직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대략적으로 신구 두 구역을 나누는 경계가 되었다.여름에는 사람들이 강에서 배를 띄웠고, 겨울이 되면 흐르는 물 위로 살얼음이 살짝 얹혀져, 가볍게 만지기만 해도 바로 흩어져 물결 위에서 출렁였다. 그 모습은 마치 투명한 다이아몬드처럼 밝은 빛을 발하는 듯했다.강 위에는 오래된 아치형 다리가 하나 있었고, 정은의 집은 바로 그 다리의 한쪽 끝에 위치해 있었다. 골목을 지나면 멀리서 ‘인성 고등학교 교직원 공동주택'이라는 몇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소진헌은 그 시절 연성대 물리학부를 졸업한 인재로, 특별히
“누구세요?”소진헌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즉시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그리고 방금 만든 농어찜을 보더니, 그것을 조심스럽게 식탁 위에 올려놓은 다음, 그제야 문을 열었다.방 안에서 꽃에게 물을 주고 있던 이미숙도 이를 듣고 정원 밖을 내다보았다. “누구지? 건우 아니야?”“건우는 오늘 아침에 문자를 보냈는데, 내일 도착한다고 했어. 이 시간이면 아마도 옆집 양 씨 아주머니일 거야. 당신 요 며칠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내가 아주머니에게 토종닭을 좀 사서 보내달라고 부탁했거든.”문 앞에서, 정은은 문을 열어준 아버지를 바라보았다.6년 동안 보지 못한 소진헌은 귀밑에 백발이 좀 더 많아진 것 같았고, 네모난 얼굴에도 주름이 더 많아졌다.어렸을 때, 정은은 아버지의 어깨에 올라타는 것을 가장 좋아했지만, 지금은 아버지가 늙은 데다가 등도 약간 구부러졌다. 그러나 그 두 눈만이 여전히 6년 전처럼 맑고 예리했다.“아빠...”정은은 가볍게 입을 열었다.소진헌은 처음에 멈칫하더니 안색이 점차 어두워졌다.“네가 왜 돌아온 거야?”바깥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이미숙은 잠시 기다렸다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정원으로 걸어갔다. “여보, 왜 대답을 안 하는 거예요? 누군데 그래요?”그러나 문 밖에 서 있는 사람을 보았을 때, 이미숙은 손에 힘이 풀리더니 주전자가 탁 하고 땅에 떨어졌다.정은은 두 눈에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전과 마찬가지로 예쁘고 우아했다. 세월은 그녀의 몸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것 같았다.시선이 마주치자, 정은은 참지 못하고 불렀다.“엄마...”딸의 목소리에 이미숙은 손이 살짝 떨렸다. 몇 번이나 입술을 벌렸지만, 말 한마디조차 하지 못했다.한참 후에야 그녀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여보, 일단 들어와서 얘기해요.”거실에서, 방안의 분위기는 마치 비 오는 날처럼 답답하고 무거웠다.소진헌은 소파에 앉아 무표정하게 말했다.“돌아와서 뭘 하려는 거야? 애초에 했던 말을 다 잊은 건가?”6
“이번에 돌아온 것도 엄마와 아빠가 너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두 분께서 저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며, 제가 예전의 잘못을 메울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어요.”그동안 정은은 부모님의 실망스러운 눈빛을 볼까 봐 감히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 꾹 참았던 것이다.그러나 현실은 그녀를 제대로 실망시켰다. 정은은 틀렸을 뿐만 아니라 터무니없이 큰 잘못을 저질렀다.소진헌은 놀라서 입술이 떨렸다.‘내가 방금 무엇을 들었지? 정은이 마침내 잘못을 인정했다니?’이미숙은 오히려 가슴이 찡했다. 만약 억울함을 당하고 손해를 보지 않았다면, 그녀의 고집이 센 딸이 어떻게 잘못했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너, 정말 똑똑히 생각한 거야?” 소진헌은 말투가 많이 부드러워졌다.정은은 입술을 오므렸다.“네, 이미 똑똑히 생각했어요. 하지만 두 분께서 화를 내실까 봐 줄곧 돌아올 용기가 없었던 거예요...”그녀는 코를 훌쩍거리며 집에 돌아가기 전의 망설임과 두려움을 생각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엄마 아빠, 저 여기에 남을 수 있을까요? 저도 두 분과 함께 설을 쇠고 싶거든요.”소진헌은 얼굴을 돌리며 아내와 딸이 자신의 눈물을 보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목청을 가다듬으며 말했다.“돌아온 이상, 며칠 있다가 다시 돌아가.”이미숙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계속 이렇게 서 있을 거야? 빨리 트렁크를 방에 안 갖다 놔? 음식 다 식었겠다...”정은은 꾹 참았지만, 이 말 때문에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우는 동시에 또 웃었다.“엄마 아빠, 정말 보고 싶었어요. 이번에 마침내 집에 돌아오는 길을 찾았어요.”이미숙은 눈시울을 붉히며, ‘잃어버렸던’ 딸을 다시 품에 안았다.6년 만에 그들 일가족은 마침내 단란하게 모일 수 있었다....6년의 시간을 거쳐 오늘 가까스로 한자리에 모인 세 사람은 오랫동안 함께 울다가 이제 겨우 회복되었다.소진헌은 자신이 울었다는 것을
저녁 무렵, 주방에서 향기가 풍기더니, 소진헌은 국을 들고 나왔다.“생선찌개인데, 내가 새로 배운 거야. 얼른 와서 맛봐.”정은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린 음식을 바라보았다. 구운 삼겹살, 야채볶음, 농어찜에 생선찌개와 갈비찜. 모두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었다.이미숙은 가장 연한 생선 살을 골라 정은의 그릇에 놓았다.“네 아빠가 만든 생선은 예전보다 맛이 없는 것 같아. 그런데 내가 방금 맛봤는데, 네가 좋아하는 맛이야. 자, 많이 먹어.”소진헌은 바로 삐졌다.“예전보다 맛이 없다고? 그건 당신의 입맛이 달라져서 그래!”“풉-”“네, 네.” 이미숙은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당신은 요리 솜씨가 뛰어나네요. 선생님으로 되지 않았다면 아주 훌륭한 셰프로 됐을 텐데. 됐죠?”“알면 됐어. 엊그저께 내가 옆집의 장 씨를 만났는데, 나한테 이 농어찜을 하는 방법까지 물어봤단 말이야! 내가 매일 당신에게 밥을 해 주고 있으니, 당신은 아주 행복한 줄 알아.”“알았어요, 난 아주 행복해요. 당신도 빨리 먹어요, 밥을 먹어도 말이 그렇게 많다니!”“어쩜 성의가 이렇게 없는 거야? 정은에게 물어봐, 내 요리 솜씨가 정말 훌륭하지 않니?”말하면서 소진헌은 또 정은에게 생선고기를 집어주었다.“자, 정은아, 아빠가 만든 생선이 어떤지 먹어봐.”정은은 부모님이 말다툼하는 소리를 듣고 미소를 지었다. 고개를 숙여 고기를 한 입 먹었는데, 신선한 생선이 싱그럽고 달콤한 맛을 자아냈다.소진헌은 정은이 강한 양념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아주 간단하게 생강과 쪽파만 넣어 비린내를 잡은 뒤, 젓갈을 살짝 뿌려 요리했다. 덕분에 맛은 담백하면서도 생선의 신선함이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이미숙은 주방에 거의 들어가지 않았고, 집안의 주방장은 소진헌이었다.정은은 매일 수업이 끝나면 사무실에서 소진헌이 퇴근하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되면 그는 자전거를 타고 정은을 태우고 집으로 돌아갔다.가는 길에 시장을 지나칠 때마다, 채소를 파는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은 모
민지는 그 말을 듣자마자 내일 2킬로미터 더 달려야 한다는 말을 뒤로 했다.그리고 정은을 안고 애완동물처럼 깡충깡충 뛰었다.“사랑해요, 정은 언니, 내가 그 가게의 닭볶음탕을 먹고 싶어한 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또 어떻게 알았어요?”정은은 민지가 자신을 안도록 내버려두더니 웃으며 말했다.“네가 전에 한 번 말했잖아, 그래도 기억해뒀지. 그리고 나도 그 닭볶음탕이 도대체 얼마나 맛있는지 궁금하네.”“날 믿어요, 절대로 언니를 실망시키지 않을 테니까. 그 가게는 맛이 아주 좋아요!”맛있는 음식을 발견하는 것은 아마도 먹방들의 타고난 능력일 것이다. 민지가 추천한 것이라면, 대부분 엄청 맛있는 음식이었다.이 레스토랑의 주방장은 아주 정통적인 닭볶음탕을 만들었다.또 J시 사람의 입맛을 결합하여 간단하게 개량했기에 엄청 고소하고 맛있었다.닭고기가 부드러우며 매콤한 향기까지 곁들이니, 생각만 해도 민지는 이미 침을 삼키기 시작했다.요 며칠, 조깅의 성과를 공고히 하기 위해 서준은 민지의 식단을 엄격히 통제했다. 매일 그 싱겁고 무미건조한 음식들만 먹으니 민지는 토가 나올 지경이었다.비록 저녁에 집에 돌아가면 몰래 간식을 훔쳐 먹었지만, 간식이 어떻게 맛있는 요리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정은 언니, 완전 사랑해요.”마침내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자, 민지는 감동에 눈물을 글썽였다.“야, 내가 언제 널 학대했어?”“그럼 조깅 취소해.”“그래, 그럼 너도 마음의 준비를 해. 내년 건강검진 보고서에 ‘지방간’이라는 결과가 또 나올 테니까.”‘됐어, 건강을 위해서라도 말을 말자. 난 그래도 자신의 처지를 잘 아는 사람이니까.’서준은 민지의 다이어트를 돕기 위해 매일 날이 밝기도 전에 찾아와서 문을 두드려 그녀를 불렀다.사실 민지는 가끔 서준의 얼어붙은 볼과 코를 보고, 또 아직 이불 속에 틀어박혀 쿨쿨 자는 자신을 생각하면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건 죽을 죄야! 한겨울에 누가 더 자고 싶지 않겠어?’‘우리 아빠도 서준처럼 매일 일찍
민지가 대답했다.“여행 이미 마쳤어요!”“벌써?”“여긴 그리 크지 않으니,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며칠 걸릴 리가 없잖아요?”정은의 의혹스러운 눈빛은 서준에게 향했다.만약 그녀가 잘못 기억하지 않았다면, 그때 서준은 2박 3일 여행을 계획했던 것이다. 그 기간에 몇 번 더 보완되었고, 코스도 더 많아졌다.그러니 하루 만에 끝내는 건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았다.정은이 입을 열어 물어보려고 할 때, 서준은 갑자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콜록... 맞아요, 하루 만에 끝냈지만 즐거우면 됐죠.”“정은 언니, 이번에 서준이 가방이 나보다 더 큰 거 있죠!”서준은 말을 하지 않았다.“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말하지도 않고, 놀 때도 꺼내 쓰는 것을 보지 못했어요. 그렇게 큰 가방을 메고 산을 올라갔는데, 엄청 대단하죠!”‘칭찬인 건가... 그건 좀...’정은은 이상한 눈빛으로 서준을 보더니, 마치 그의 가방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아맞힌 것 같다.2박 3일 동안 여행할 준비를 한 이상, 갈아입을 옷, 생활용품 따위를 챙겨야 하지 않을까?아마 민지는 원래 이것이 2박 3일 여행이라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에헴, 누나!”정은은 크게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오직 민지 만이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정은 언니, 바쁜 일이 끝난 후, 하루 동안 쉬는 느낌은 정말 너무 좋아요! 그냥 점심까지 자고 나서 여러 코스를 돌아다니니...”‘그래서 2박 3일은 그렇다 쳐도, 온전한 하루조차 여행하지 못한 거야?’“서준이 줄곧 재촉했는데, 귀찮아 죽는 줄 알았어요... 사람이야 그냥 즐거움을 위해서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편한 대로 행동해야지, 누가 꼭 몇 시에 외출해야 한다고 규정했죠?”“늦잠을 잔 후에 다크서클이 바로 없어졌어요. 전에 밤을 새울 때 눈까지 작아졌는데.”서준이 말했다.“그래? 네 눈은 항상 그렇지 않았어? 이전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아.”민지는 허리를 짚으며 눈을 부릅떴다.“임서준, 너 나한테 얻어맞고 싶은
수민은 차여 넘어진 의자를 향해 턱을 들었다.동건은 재빨리 알아차리고 즉시 의자를 들고 제자리에 놓았다.“이제 나랑 좀 더 있을 수 있지? 헤헤...”여자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동건은 이미 수민의 가녀린 허리를 껴안고 침대 위로 가져갔다.5분 후.“수민아...”“너 뭐 하는 거야? 잠깐 누워있겠다며? 왜 내 단추를 풀어?”“쉿, 말하지 말고 우리 한 판 더 하자.”수민은 말문이 막혔다.새벽 3시, 밖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동건은 그녀가 이곳에 밤을 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차 좀 빌려줘.” 수민은 거울을 보고 체크하다가 목에 담담한 키스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앞으로 흔적 좀 남기지 말고 조심해.”동건은 침대에 기대고 있었는데, 이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왜? 다른 남자가 볼까 두려워?”“또 말을 이따위로 할 거야?”동건은 긴장을 하며 침을 꿀꺽꿀꺽 삼켰다.“아니... 내가 너무 매료되어서 이런 흔적 남기는 것도 정상이잖아. 내 등 좀 봐...”말하면서 그는 돌아섰다.“다 네가 손톱으로 파낸 흔적이야, 그런데 내가 언제 뭐라고 했어?”수민은 말문이 막혔다.그러나 등에 긁힌 자국이 가득하고, 심지어 껍질이 벗겨진 것을 보니 확실히 무서웠다.“에헴!” 수민은 가볍게 기침을 했지만 지지 않으려 했다.“그 뭐야... 넌 흔적이 다 등에 있으니 옷만 입으면 누가 알겠어? 이건 목이잖아. 내일 색깔이 더 깊어질 텐데. 어떻게 동료를 만나라는 거야?”“헤헤... 그럼 만나지 말고 휴가를 내. 우리 둘이 별장에서 하루 종일 누워 있자!”“허, 네 말에 속을 것 같아? 꿈이나 깨!”동건은 마음이 찔렸다.“그게 무슨 말이야? 난 그런 뜻이 아니라고.”“그건 너 자신이 더 잘 알갰지. 차 키 가져와.”동건은 침대 머리맡에서 BMW의 키를 꺼내 던졌다.수민은 힐끗 보더니 다시 던져주었다.“난 마이바흐를 원해.”“까다롭긴!”“내일 저녁에 퇴근하면 이리 와.” 남자는 이 기
“수민아, 정말 보고 싶었어!”말을 마치자마자 동건은 뜨거운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수민도 능숙하게 응답했다.사실 그녀도 동건이 꽤 그리웠다.동건의 손은 수민의 옷자락으로 파고들며 점점 대담해졌다.그러나 수민은 그의 손을 꽉 잡았다.“응?” 동건이 물었다.“여기서 하고 싶지 않아, 집에 가서 하자.”그 한마디에 동건은 억지로 욕구를 참으며 가속페달을 쭉 밟았고, 엔진 소리가 거칠게 울렸다. 원래 20분 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지만, 10분 만에 동건의 집앞에 도착했다.문이 닫히자마자 두 사람은 시선이 마주치더니 곧바로 뜨거운 입맞춤이 이어졌다.그렇게 침실에 들어갔고, 옷이 여기저기 흩어졌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한 시간 후, 정은은 나른한 눈빛을 띠며 욕실로 향했다.동건은 침대에 기대어 단단한 가슴을 드러냈다.“어딜 가?”“샤워.”“씻지 말고 좀 더 누워 있어.”“땀 냄새 나서 싫어.”동건은 다정하게 속삭였다.“안 나. 네 땀은 엄청 향기로워.”“내 땀이 아니라 네 땀이잖아.”“아...”샤워를 마친 수민은 원래 입던 옷으로 갈아입고 가방을 챙겼다.동건은 점점 이상하다고 느끼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며 놀란 눈으로 물었다.“설마 지금 가려고?”“응.”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수민은 내일 출근해야 했기에 다른 옷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대체 나를 뭘로 생각하는 거야?”동건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수민은 고개를 돌리며 눈썹을 치켜세웠다.동건은 침대에서 내려와 한 걸음 한 걸음 그녀에게 다가갔다.“자고 바로 가다니, 내 집이 호텔이야? 내가 무슨 제비냐고?”수민은 부드럽게 설명했다.“난 그런 뜻이 아니야...”“아니긴 개뿔! 나를 심심풀이로 쓰는 거잖아?!”말을 마치자, 화를 못 참은 동건은 침대 끝에 있는 벤치를 발로 차 넘어뜨렸다.수민의 눈빛이 차가워졌다.‘그래도 설명을 하려 했는데... 이 남자는 정말 어이가 없군.’“내가 너무 오냐오냐해줬지?”“나는...”“네가 자신을 제비라 생각한다면
남자는 이 상황을 보고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 동건에게 시선을 돌렸다. “수민아, 이분은...?”분명히 수민이 직접 소개해주길 바라는 눈치였다.동건도 그녀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할지 궁금했다. 표정은 변함없었지만, 이미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눈빛 속에 심지어 작은 기대가 어렴풋이 비쳤다.“아, 이분은 고씨 가문의 큰아들, 고동건이야.” 수민은 담담하게 말했다.이 대답은 틀리다고 할 수는 없지만, 두 남자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그런데, 이분은 수민과 무슨 사이지?” 남자가 다시 물었다.이번에 동건은 수민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직접 말했다. “남자친구예요.”말을 마치며 동건은 다시 한번 강조했다.“난 수민의 남자친구라고요.”동료는 수민을 바라보며, 그녀가 고개를 젓길 바라는 눈길을 보냈다.이에 동건은 화가 나더니 오히려 웃음이 나왔고, 수민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자신의 강한 소유욕을 과시했다.수민도 뭐라 하지 않았고, 부드럽게 그의 품에 안겼다. 그리고 남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남자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떠났다.수민은 즉시 똑바로 서더니, 자신의 어깨에 놓은 동건의 손을 털어냈다. “이제 됐어. 그 사람 이미 떠났잖아.”동건은 손을 호호 불며 아픈 표정을 지었다. “아야! 좀 살살 해!”수민은 대꾸했다. “싫어.”“너 정말... 전화해도 안 내려오고, 전화도 안 받고. 대단하네.”“누가 그렇게 전화를 했는지 궁금했는데, 너였구나. 배불리 먹고 할 일이 없어서 그런 거야?”동건은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제시간에 내려왔으면 내가 전화를 그렇게 했겠어?”“제시간? 내가 너랑 약속했던가?” 수민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동건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네가 오늘 야근 안 한다고 했잖아!”“그렇게 말했지만, 데리러 오라고 한 적은 없어.”수민은 야근을 하지 않아도, 바로 퇴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직 처리할 일이 남아있었고, 동건이 데리러 올 필요
그리고 도겸은, 상대방의 이런 모습을 보며 현빈이 묵인했다고 느꼈다.화가 난 그는 핸들을 내리치더니 고요한 밤에 갑자기 경적 소리가 울렸다.위층에서 직접 욕을 하기 시작했다.“한밤중에 누가 이렇게 시끄럽게 구는 거야?! 죽으려고 작정을 한 건가!”말을 마치자 물 한 대야가 쏟아졌다.마침 도겸의 차 꼭대기에 뿌렸다.현빈은 이미 쿨하게 몸을 돌려 성큼성큼 떠났다.두 사람 사이에 발생한 모든 것, 앞서 현빈이 정은을 위층으로 데려다 준 장면까지, 베란다에 서 있던 재석은 똑똑히 보았다.찬바람이 쌩쌩 불며 눈까지 그의 얼굴에 떨어졌지만, 재석은 마치 추위를 모르는 듯 30분 넘게 이렇게 서 있었다.그는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잘 몰랐는데, 그저 가슴이 심하게 답답하고 숨조차 잘 쉬지 못했다.머릿속은 많은 생각을 했지만 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다.지난번 정은을 떠보며, 그녀가 연애 대신 학업에만 전념하고 싶다는 대답을 받은 재석은 자신이 마음속의 감정을 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리고 다시 친구로 되어 이렇게 정은의 곁에 있으면서 그녀의 성장을 목격하는 것도 좋았다.그러나 지금, 그는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재석은 자신의 마음을 억제할 수 없었다.그는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정은의 곁에 남자라곤 오직 자신뿐이었으면 좋겠다고.그녀의 눈빛은 영원히 자신에게 떨어졌으면 좋겠다고.정은의 미소도, 그녀의 기쁨도 오직 자신 때문이었으면 좋겠다고.만약 가능하다면, 재석은 심지어 자신이 정은을 생각하는 것처럼 그녀가 자신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랐다.이런 미친 생각들은 정은이 현빈의 차에서 내려 두 사람이 나란히 올라오는 것을 보았을 때 들끓기 시작했다.재석은 쓴웃음을 지었고, 자신도 이렇게 이성을 잃을 줄은 몰랐다.더 슬픈 것은 감정에 빠져 나오지 못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하나뿐이라는 것이다....같은 밤, 매서운 찬바람 속에서, 동건도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다.수민의 전화를
눈에 거슬리는 동시에 도겸은 두 눈이 붉어졌고, 현빈의 뒷모습을 보며, 펑하고 핸들을 내리쳤다.도겸은 내려가서 현빈의 멱살을 잡고 그를 호되게 한 대 때리고 싶었다.하지만 자신이 무슨 자격으로 남에게 손을 대는 것일까?단념하지 않는 전 남자친구? 아니면, 예전의 절친?그는 입가를 실룩거리더니 결국 두 사람이 위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묵묵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물건을 올려준 뒤, 현빈은 떠날 준비를 했다.정은은 거실에서 물을 따르며 건네주었다.“고마워요, 오빠, 물 좀 마시고 가요.”현빈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더니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좋아.”정은은 물건을 간단히 정리하고 내일 다시 차츰차츰 치우려 했다.바로 이때, 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이 불기 시작했던 것이다. 정은은 낮에 베란다 문을 닫지 않았는데, 이때 바람이 세게 불어왔다.화분이 아직 베란다에 있었기에, 만약 바람에 날려 가서 사람이라도 다치게 한다면 큰일이었다.그래서 정은은 하던 일을 멈추고 서둘러 화분을 실내로 옮겼다.그중 하나가 비교적 무거워서 그녀는 몇 번 시도했지만 조금도 들지 못했다.이때 두 손이 나타나더니, 화분을 받으며 듬직하게 들어올렸다.현빈이 말했다.“내가 할게.”정은은 한숨을 돌렸다.“고마워요, 오빠.”손을 거둬들일 때, 부주의로 현빈의 손을 부딪혔지만, 정은은 별다른 생각하지 않았다.남자의 눈빛은 조여졌고, 그다지 많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현빈이 그 잘 자란 코코넛을 쉽게 실내로 옮기는 것을 보고, 정은은 또 손을 들어 다른 몇 개를 가리키며 어색하게 말했다.“이거, 그리고 이거도 다 옮겨야 하는데...”현빈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내가 짐꾼처럼 보여?”정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요. 하지만 내 오빠잖아요. 전에 어려움이 있으면 오빠를 찾으라고 했고요.”이번에 현빈이 말문이 막혔다.‘오빠, 오빠, 그놈의 오빠!’그는 자신이 정말 정신이 나갔다고 느꼈다. 어떤 호칭이든 정은의 입에서 나오면 이유 없
“도겸이는 자기가 정말 뭐라도 된 줄 알아! 싸다 싸! 그러게 누가 그때 저런 말을 하래?”선우는 한숨을 쉬었다.“도겸이 형이 언제 단념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정은 누나는 이미 그 과거에서 벗어났는데.”“흥.” 동건은 냉소를 지었다.“도겸이가 단념을 한다고? 두고 봐. 정은 씨가 고개를 돌리지 않는 한, 저 자식 평생 이러고 있을 거야.”“이건 또 무슨 말이에요??”“그 가사가 뭐였더라? ‘얻을 수 없다면 영원히 소란을 피울 거야.’ 남자는 말이야, 정말 천박한 존재지. 됐어, 너희들 천천히 놀아, 나도 갈게.”“아니... 이제 막 왔는데 왜 가는 거예요?”동건은 헤헤 웃었다.“수민이가 갑자기 야근을 안 해도 된다고 했거든. 수민이 데리러 갈 거야.”선우의 눈빛은 더욱 이상해졌다.“그런데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고?”동건은 변명했다.“네가 뭘 알아? 나는 진지하게 연기를 하고 있는 거라고. 남자친구가 퇴근한 여자친구를 데리러 가는 것은 정상 아니야? 이것도 할 수 없다면, 양가 부모님들은 또 어떻게 우리 둘이 결혼을 전제로 진지하게 사귀고 있다는 말을 믿을 수 있겠어?”“아, 늦었으니 먼저 갈에! 안녕!” 말하면서 동건은 성큼성큼 떠났다.선우의 잘생긴 얼굴에는 엄청난 의혹이 나타났다.‘왜 다들 요즘 귀신에 홀린 것 같지... 이상해! 너무 이상해!’...겨울의 비는 마치 바늘을 숨긴 듯 했고, 쌀쌀한 바람은 뼈를 에는 듯 했다.8시도 안 되었지만, 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도겸은 클럽을 떠난 후, 차를 몰고 정은의 거처로 곧장 달려갔다.도중에 그는 질투와 불쾌감을 느끼며 심지어 정은에게 어떻게 따져야 할지를 생각했다.‘심현빈이랑 안 친하다며?’‘둘이 불가능하다며?’‘그런데 왜 그 자식과 집에 가서 부모님을 만난 거야?’‘두 사람 언제 사귄 거냐고?’‘심현빈이 대체 뭐가 좋은 거야?!’‘대체 왜?!’그러나 막상 도착하자, 도겸은 위층으로 올라갈 용기조차 없었다.그저 차 안에 멍하니 앉아서 비가 유리창에
‘오늘 해가 서쪽에서 뜨지 않았고, 지구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자전하고 있는데!’선우는 또 다른 한쪽을 바라보더니 참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다.도겸은 한 잔 한 잔 이어서 술을 마시고 있었고, 카드놀이도 하지 않고 공도 치지 않았으며 여자가 다가오면 더욱 멀리 피했다.다른 사람들은 혀를 찼다.“우리 도겸이 형 지금 정말 침울해진 것 같아. 보는 내 마음이 다 아프네!”“꺼져, 오글거려 죽겠네! 말 좀 똑바로 할 수 없어? 우리 도겸이는 사랑을 위해 이렇게 된 것이니, 이건 일편단심이라고!”“그래도 여자는 다 똑같지 않아? 돈만 있으면 어떤 여자를 살 수 없겠어?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선우는 그들이 갈수록 말을 심하게 하는 것을 듣고 즉시 호통을 쳤다.“이제 그만 좀 해. 그딴 말 좀 적게 하고. 너희들은 뭐 이런 상황이 없을 줄 알아!”그들 중에는 심지어 ‘소정은'이라는 이름을 언급하고 싶은 사람도 있었다.선우는 가슴이 떨렸다.그것은 절대로 도겸 앞에서 언급하면 안 되는 이름이었고, 도겸은 듣자마자 미쳐버릴 수도 있었다. 그때 가서 소란을 피우면 정말 수습하기 어려웠다.동건은 연속 몇 판 지자, 카드를 던졌다.“재미없네. 너 무슨 속임수 썼지? 어떻게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거야?”“형은 운이 나쁜 데다가 머리도 좋지 않잖아요,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에요?”“야! 전선우, 너 많이 컸다?”선우는 입을 삐죽거렸다.“칭찬으로 들을게요.”동건은 차갑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안 놀아.”그가 가자 아무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고, 사람들도 자연히 흩어졌다.선우는 카드놀이를 놀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자 술을 마실 흥미도 없었다. 무대 아래는 분위기가 막 뜨거워졌기에, 춤을 춰도 재미가 없어 아예 소파 구석에 틀어박혀 핸드폰을 보았다.그렇게 선우는 현빈이 올린 사진을 보았다.“모임? 누구랑 가족 모임에 참가한 거야?” 선우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그는 사진을 클릭하며 맛있는 것이 참 많다고 감탄하려 하다가, 갑자기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