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의 모든 챕터: 챕터 661 - 챕터 670

1289 챕터

제661화

고후부는 상국의 오랜 명문 세가였다. 하지만 오래된 가문일수록 곤란한 상황에 더 많이 처하게 되는 법.가족의 대번성 속도는 빠르나, 모든 이들에게 넉넉한 생활을 제공할 식읍은 부족하여 화려하고 부유한 삶을 유지하기 힘들어지고 있었다. 현재의 고후는 고부진의 부친이며, 그의 지도 아래 고후부는 점점 쇠퇴하고 있었다. 이미 여러 대에 걸쳐 부유한 집안이었으나, 엄격했던 가풍은 점점 느슨해져 자손들이 글공부나 무공 연습의 고생을 기피하고 있었다. 어차피 집안의 체면이 있으니, 이들은 부유한 생활을 이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고부진이 장공주와 혼인하지 않았다면, 고후부는 이미 쇠락했을 것이다. 고후도 조정에 관직이 없었고 집안 자제 중에서 오 품 이상의 직위를 가진 이가 드물어지고 있었다.시만자가 고후부에 발을 들이자, 한때 명성이 자자했음을 증명하는 가문에 대한 글들이 여기저기에 새겨져 있었다. 자신들이 잊히지 않기를 바랐던 그들이기에 정홀만 해도 두 곳에 문장이 보였다.정홀의 장식은 다소 낡았으나, 귀한 목재 가구는 세월의 풍파를 겪으면서도 더욱 겸손한 고급스러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혼인 의논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 있지 않음이 좋아 고후부인은 그들을 편홀로 초대하고 사람을 시켜 주아를 데려오게 했다.잘 가꾸어진 고후부인의 모습에서 고부진과 몇 가지 닮은 점이 있음을 느끼게 되었고 특히 눈매와 말하는 태도가 많이 똑같았다."차를 드시지요." 그녀의 입가에 띤 미소는 자애로운 기품이 넘쳤지만, 시만자는 그녀의 계획을 이미 알아차린 뒤였다. 주아는 그녀의 친정 사람이 아니었고, 수씨 가문의 성도 따르지 앟았다. 장공주가 미리 손을 쓴 것이다.수씨의 신분을 위조하려면 고후부인의 동의가 있지 않고서야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차를 마시며 소소한 대화를 나누나, 이는 서로를 치켜세우는 말들 뿐이었다. 고후부인은 몇 번이고 방시원을 살펴보았다. 몇일동안 왕청여와의 일이 떠들썩하게 퍼졌고 최근이 되어서야 겨우 잠잠해졌기 때문이다.고후부인은 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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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2화

주아는 복잡한 감정을 감추고 시녀를 따라나섰다.이제는 그저 방씨 가문에서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방시원의 현재 신분으로는 누군들 아내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의 신분은 모두 가짜였다.정홀에 도착하자 그녀는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사뿐사뿐 걸음을 옮겼다. 단순히 걷는 법을 배우는 데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후부인은 웃음을 띠며 입을 열었다. “연아, 얼른 두 분께 인사드리거라.” 주아는 오 씨와 방 부인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렸다.“소녀, 두 분을 뵙게 되어 기쁩니다.” “이분은 방참장이시고 옆에 분은 노부인의 의녀, 시 아가씨이다.” 조금 전 시만자가 들어올 때, 오 씨가 시만자의 신분을 소개하였다.부채로 가린 채 얼굴만 살짝 비추는 정도라 교태는 부릴 수 없어 그저 평범하게 인사하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신 만자도 그녀를 바라보며 답례하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방시원 역시 손을 모아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시만자는 그녀의 단정한 외모를 살폈다. 큰 눈과 두툼하지도 얇지도 않은 입술, 매력이 돋보이는 곡선이 아름다웠고 입술 위 작은 점에서 은근한 장난기가 있어 보였다.그녀의 미모는 출중하였지만, 귀족 여성의 품격은 보이지 않고 여기저기 누비고 다닐 정도의 대범함이 깃들어 있었다.그렇다고 야만스럽다는 말은 아니었다. 그녀의 예의범절은 나무랄 데가 없었으니 말이다. 다만 한때 강호에서 생계를 유지하던 기운은 감추기 어려운 것이었고 시만자도 많이 보아왔다.사실, 송석석에게도 규칙에 얽매인 자유로움을 지니고 있었고 가끔씩 드러났다. 이 점에서 송석석과 많이 닮아있었다.비슷하다고 느끼기 시작한 시만자는 다시 한번 그녀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이 친숙함, 그녀는 심지어 주아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예의 있는 미세한 동작들이 너무나 익숙했다. 마치 고후부인과 고부진이 닮은 것처럼 말이다. 고후부인은 고부진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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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3화

오 씨가 마음에 든다고 말하려는 그때, 방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는 참으로 훌륭한 분이신 것 같아 저희도 마음에 듭니다. 다만 결혼은 중대한 일이니 서두른다고 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각자 돌아가서 물어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아가씨께서도 태도를 명확히 하지 않으셨고 오늘 겨우 한 번 뵈었기에 먼저 그녀의 뜻을 물어보는 것이 옳을 듯하옵니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요. 제가 즉시 물어보게 하겠습니다.” 그러자 방 부인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급할 것 없습니다. 만약 사람을 시켜서 물어보게 된다면, 거절하자니 거스르게 될 까 걱정일테고 동의하자니 여자로서의 체면도 있으니 부끄러워할 것입니다. 이미 두번정도 만났으니 한 번만 더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부모님도 진성에 계시지 않으니, 그녀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지요. 고후부인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맞는 말만 하는 방 부인에 고후부인도 차마 반박할 수 없었다. 모두가 귀족 가문이다 보니 혼사 논의에 경솔할 수 없었다.그러나 급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오 씨는 방 부인의 의도를 알 수 없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녀의 말도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가서 물어본다고 해도 그녀는 거절하는 것이 나을지 아니면 받아들이는게 나을지 갈피를 잡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만약 마음에 든다고 해서 승낙해버리면 결혼하고 싶어 안달 난 인상을 주게 될 것이니 소녀로서 내킬 리 없다.그러다 훗날 맘에 들기라도 하는 날에 부득이하게 “싫다”고 했던 말을 거두어들일 수는 없는 것이다.시만자는 방천허의 아내를 참으로 존경하였다. 항상 일을 철저하게 처리하기에 이러한 신중함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오 씨도 웃으며 거들었다.“맞습니다, 두 사람이 인연이라면 어떤 방법으로도 도망갈 수 없는 것이지요. 하루 이틀이야 상관없다고 봅니다.” 이렇게 된 이상 고후부인도 마지못해 웃으며 응했다. “말씀하신 대로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러면 이틀 후에 다시 방문하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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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4화

그녀들이 나간 뒤, 시만자는 그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연왕, 회왕과 장공주의 음모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시만자도 어느 정도 보류한 상태에서 말을 꺼냈기에 한의절의 계획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고 난 방시원이 자신의 조사를 바탕으로 접근했고, 그러자 진실에 거의 가까워져서 그녀들이 장공주 쪽에서부터 손을 쓸 것이라 짐작했다. 연왕의 세력이 연주에 있으니, 진성에는 전적으로 장공주와 회왕에게 의존해야 했다.장공주의 신분으로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고 장공주가 진성에서 그를 위해 여러 일을 도모하고 있었다. 장공주가 없었다면 연왕은 오른팔을 잃게 되었을 것이다. 회왕 또한 깊숙한 곳에 잡입한 상태라 누구와 접촉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방시원은 그제야 왕께서 북명왕부와의 잦은 접촉을 삼가하라 한 이유를 이해하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황제가 그들을 경계할 것을 방지한다고 여겼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니 서로 관계를 맺지 않아야만 그를 위해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다.비록 왕께서 직접 말씀하시지 않았고, 시만자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치석은 왕께서 남긴 후수라고 굳게 믿었다. 이 사건을 자세히 되새기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사실 고부진도 내가 그 주아를 아내로 맞는 것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지?” “그는 고후부를 끌어들이는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만약 실로 무슨 일이 생긴다면 방 씨 가문은 고후부를 원망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는 자신의 가문을 위해 고민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해했다. 그럼 나는 이 혼인을 일단 미뤄두겠다. 장공주가 의심할 수 없게, 또한 고부진도 지나치게 안심할 수 없을 만큼 잘 조절하겠다.” 시만자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 저는 이 문제를 알리러 왔으나 주아를 만날 수 있어 뜻밖이었습니다. 고부진이 말하기를 주아의 본래 신분은 잡기단의 일원이었고 나중에 잡기단이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해체되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여인은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다 결국 마적에게 찍혔고 이를 장공주가 구해 주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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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5화

닮았다..정말 너무 닮았다! 얼굴형, 눈썹, 눈, 코, 입술의 그 붉은 점까지, 오늘 본 주아와 완전히 똑같이 생겼다. 그녀는 순간 숨이 콱 막히는 것 같았다. 이건 너무 말이 되지 않았다.심지어 그가 주아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토록 생생하게 그려냈으니 놀랄만도 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염 선생과 심청화를 바라보았다. 그들 또한 마침 한 폭의 그림 앞에 서 있었다.“이건 어떻소? 만약 잘 살고 있는 것이라면 이렇게 둥글게 생겼을 것이오.” “그리고 이 그림도 마찬가지요. 단지 눈썹과 머리 모양을 바꿨을 뿐이오. 옆에 이 그림속에서는 비교적 힘든 생활을 해 배고프고 따뜻한 옷도 입지 못하여 비쩍 말랐소.” 심청화는 염 선생에게 하나하나 설명하며 시만자에게 손을 흔들었다.“만자 너는 저쪽으로 가 있거라. 방해 된다.” 시만자는 눈앞의 그림을 가리키며 애써 자신의 목소리를 찾으려 했다.“이 사람을 제가 오늘 봤습니다!” 그러자 네 사람의 시선이 그녀가 가리킨 그림을 동시에 바라보았다. 시만자는 침을 삼키며 심청화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동공은 흔들리고 있었다. “혹시 오늘 저를 따라 고후부에 간 것입니까? 보았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어찌 이리도 똑같을 수 있단 말입니까? 심지어 옷 색깔까지 동일합니다.” 한편, 염 선생은 평생 이토록 격렬한 감정은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는 평소의 격조도 지킬 겨를이 없이 성별의 경계도 무시한 채 두 손으로 시만자의 어깨를 꽉 잡고 힘껏 흔들었다.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정녕 고후부에서 이와 똑같이 생긴 사람을 보았단 말입니까?” 시만자는 깜짝 놀라고 말았고, 눈알이 튀어나올 듯한 염 선생을 보며 본능적으로 외쳤다. “석석아!” 사여묵이 급히 다가와 염 선생을 떼어냈다. “자네 무례하지 말게.” 시만자의 손을 잡은 송석석이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고후부에 갔었어? 누구를 봤단 말이야? 고후부에서 이 그림 속 인물과 닮은 그 사람이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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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6화

송석석이 먼저 물었다. “그녀가 정말 내 어머니와 닮았어?” “솔직히 말하면 처음 본 순간 익숙한 느낌을 확 받았어. 그때는 무엇 때문이지 알 수 없었는데.. 지금 이 그림들을 보니 알 것 같아. 사형이 분위기까지 너무나 생동하게 그려서 닮았다는 걸 알게 된 거야. 주아는 철저하게 교육을 받은 상태고, 행동하나 하나에서 귀족 여인의 품격을 지니고 있어. 그래서 비슷하다는 느낌을 못 받았던 거지.” “아니, 왕비께서 저더러 먼저 물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염 선생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저려왔다. 왜 이런 느낌이 드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비현실감은 너무나 강렬했다. 그는 한창 심청화와 함께 지금 그녀와 잘 어울릴만한 그림을 추정하고 있던 중이었기에 사람을 시켜 찾아보기로 했다.그러나 아직 선택하기도 전에 시만자가 만났다고 하니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는 그녀를 찾기 위해 수많은 위험과 어려움을 겪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였다.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아픈 것은 당연했다.그런데 그녀가 지금 고후부에 있고, 게다가 장공주의 부하라고 하니.. 장공주의 부하들은 결국 비극을 맞이했다고 전해 들었는데 말이다. 그러니 그는 자세히 물어보아야 했다. 그는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시만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장공주가 구출해 줬다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말해주십시오.”시만자는 그런 염 선생이 너무 가여웠다. 빨개진 눈시울에서 눈물이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시만자는 송석석의 물음은 뒤로 하고 먼저 염 선생의 질문부터 답하기로 했다.“모두가 알다시피…… 장공주는 송부인과 비슷한 여인들을 모아 고부진의 첩으로 삼고 아이를 낳도록 하고...” 그때 갑자기 “쿵!” 소리와 함께 염 선생이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는데, 얼굴은 이미 창백해져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무엇이라 했습니까?” “염 선생!” 그러자 시만자가 급히 외쳤다.“진정하세요. 만약 그녀가 고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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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7화

심청화도 그제서야 이해하고 머리를 저었다.“그랬지. 요즘은 만종문에 갇혀 있어 바보가 되었구나.” 송석석은 시만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만자는 오늘 고후부에 다녀왔기에 고후부에서도 그녀가 방시원의 의동생임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주아를 초대할 수 있을 것이지요. 고후부에서 만자가 왕부의 사람인 것을 알고 있더라도 방씨 가문 사람을 불러들이면 고후부인도 동의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염 선생은 간절한 눈빛으로 시만자를 바라보았다.“시 아가씨,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의리가 하늘을 찌르는 시만자기에 그녀는 제안을 흔쾌히 승낙했다.“알겠습니다. 그럼,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래야지 그녀 앞에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것입니다. 대화를 하면서 반응을 살펴볼 수 있으니,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염 선생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사여묵이 힘껏 눌러 앉혔다. “앉아서 말하거라.” 하지만 염 선생은 다시 몸을 일으키려했다. “그게 아니.…”그러자 사여묵이 화난 목소리로 가차 없이 그의 말을 잘랐다.“앉으라 하였다!”어쩔 수 없었던 염 선생이 의도를 밝혔다.“그녀의 어린 시절 물건 하나를 가져가려 합니다. 시 아가씨께서 그것을 챙기시면 좋을 듯합니다.” 사여묵도 내민 손을 거두고 허락했다.“알겠다.”자리에서 일어선 염 선생은 먼저 시만자에게 사과를 건넸다. “방금 너무 흥분하여 아가씨께 무례를 범하였습니다. 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괜찮습니다. 저도 너무 놀랐던 탓입니다.” 서재에 주아의 그림이 걸려 있어 너무 놀란 탓에 견문이 짧았던 그녀는 부모님과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지금의 모습을 추론할 수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다시 한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저는 물건을 가지러 가겠습니다.” 염 선생은 비틀거리며 밖으로 걸어 나가다가 잠시 멈춰 허리를 굽히며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렇게 한참 후에야 다시 허리를 편 그는 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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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8화

염 선생은 토끼 인형 하나를 가져왔다. 보기에도 꽤 세월이 지나 보였고 거칠어져 한쪽 귀가 부러진 상태였다. 밖에서 산 것은 아닌 듯했다. “그녀를 잃어버린 해인 추석즈음에 제가 그녀를 위해 직접 만든 토끼 인형입니다. 그해에 그녀가 잘못을 저질러 어머니에게 감금되어 밖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원래는 하인에게 토끼 인형을 사다 주라고 하였으나 아버지께서 이를 금지하시여 그녀를 벌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몰래 하나 만들었고 집안의 부엌에서 구워냈고 구운 후에 색을 입혔지요. 지금은 색이 다 벗겨졌네요. 그녀는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하며 바닥에 떨어뜨렸고 그렇게 귀가 하나가 부러진 것입니다.” 염 선생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녀는 이 토끼 인형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싫어했다가 더 맞은 표현이겠지요. 너무 싫었던 만큼 울기까지 했으니 분명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거칠고 색이 벗겨져 귀조차 부러진 토끼 인형을 바라보던 시만자가 입을 열었다. “누군가가 이리도 못난 토끼 인형을 선물한다면 저도 울어버릴 것입니다. 이생에서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지요.”“그렇지요. 물건은 매우 아꼈거나 싫어해야만 깊이 기억되는 법이니까요.” 염 선생은 아쉬운 손길로 토끼 인형을 건넸다.“어린 시절에 가지고 놀던 물건들이 몇 가지 더 있지만 모두 너무 평범해서 보통 집안에서 대개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유일하게 이것만이 세상에 하나뿐이지요.” “하나뿐? 저라면 더 큰 소리로 울어버릴 것입니다.” 시만자는 눈살을 찡그리며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의 이목구비는 이미 흐려질 대로 흐려져 있었다. 더 이상 이보다 못 날 수는 없었다.염 선생은 상처받은 듯 그녀를 한 번 쳐다보았다.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시지요. 저도 배운 적 없이 처음 만든 것이지 않습니까?” “뒷면은 다 타버렸군요.” 시만자는 이리저리 돌려보며 덧붙였다.“사실 전체가 다 검은색이였는데, 이 색들은 나중에 입힌 것이겠지요?” 그러자 염 선생이 머리를 긁적였다.“계속 벗겨져서 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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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9화

염 선생의 목소리는 슬픔으로 가득했다.“여동생의 일은 우리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밤낮으로 우셨고, 아버지는 관직을 그만두고 하인 두 명과 함께 여동생을 찾아 나섰지요. 2년에 한 번 집에 돌아오는 정도였습니다. 집안은 오로지 조부의 지원으로 버텼고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에도 아버지는 여동생을 찾고 있었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해에야 돌아오셨지요. 그때는 여동생을 찾은 지 10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아버지는 결국 포기하셨습니다.” 듣고 있는 모든 이의 마음이 아팠다. 자식을 잃는 고통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여동생이 사라진 날부터, 기쁨과는 완전히 인연이 없게 되었지요. 2년 전부터 조부와 어머니의 건강이 나빠져 진성으로 모셨습니다. 아버지는 운현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으셨지요. 아버지께서는 희망을 잃지 않으시며 언젠가 여동생이 자신의 집을 기억하고 돌아올 것이라며 누군가는 집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저 또한 포기하지 않았고 왕부의 사람들을 빌려 여동생을 찾으러 다녔지요. 왕부를 위해 힘쓰는 전제는 왕께서 사람을 선뜻 내어주신 것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희망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찾지 않으면 마음이 아프고 소용이 없을지라도 그녀를 위해 무언가 하고 나면 마음이 좀 나아지더군요.” 심청화는 의자에 앉은 채 어느새 잠이 들었다. 메산에서 급히 달려와 차도 한 모금 마실 여유도 없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으니 피곤했을 것이다.그러나 흐릿하게라도 염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비참한 일들을 많이 겪어지만, 다행히 무감각해지진 않았다. 그는 이 여인이 대충 여동생일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그는 자신이 그린 그림들 중에 반드시 현재의 염희진에 가까운 그림이 있을 것이라 믿었기에 안심하고 잠을 청할 수 있었다.이야기를 듣고 난 시만자는 눈물을 닦으며 진정하고는, 사람을 시켜 방 부인더러 고후부에 초대장을 보내길 요청했다. 내일 수연과 함께 왕강루에서 차를 마시며 경치를 즐기고 싶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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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0화

왕강루의 또 다른 이름은 왕경루이며, 진성 민간에서 가장 높은 건물 중 하나이다.이곳의 가장 높은 곳에 오르면 북쪽의 남강 항구가 보이면서 진성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그 자태가 위풍당당하고 화려하여 절경이 따로 없다.하지만 왕경루의 가장 높은 층에 있는 아간에 오르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았다. 차 값만 해도 오냥이 필요하고, 음식을 주문하면 보통 몇십 냥이 드는 경우도 있으며, 고가의 음식을 주문하면 백 냥, 심지어 천 냥이 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왕경루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는 이는 거의 드물었고 그저 매일 돈을 쓸어 담아 부유하다는 정도 밖에 모른다. 아는 이들도 함부로 떠들지 않았고 메산의 그분 관계가 있는 이도 오늘날 진성에는 많지 않았다.시만자는 방 부인과 함께 먼저 도착하였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끄는 재주가 있어 방 부인에게도 올케라 부르며 곧잘 따랐고 방 부인 또한 그녀를 매우 귀여워하였다. 몇 번이고 그녀와 같은 시누이가 있다는 것이 삼생삼세에 걸쳐 쌓은 복이라며 기뻐하였다.그들이 왕강루에 도착했을 때, 주아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시만자는 화려한 환경에 매우 만족하며 주위를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바빴다.“의모와 서약할 때 여기서 상을 차려야 겠습니다.”그러자 방 부인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얼마나 많이 들겠느냐? 차라리 집에서 연회를 차리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 네 올케가 연회를 마련하는 솜씨는 이웃들이 모두 아는 바인데 그 기회를 주지 않을 셈인가?” 시만자가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저는 단지 고생할까 봐 걱정되어 감히 요구하지 못한 것입니다. 천허 오라버니께서 노여워하실까 봐 두렵기도 합니다.” “그 사람은 말이다..” 방 부인의 얼굴에 미소가 서서히 사라지고 그리움이 솟구치기 시작했다.“지금은 얼굴조차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전쟁은 이미 한참 전에 끝났는데 언제 진성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시만자가 위로했다.“방심할 수 없습니다. 그곳은 여전히 혼란스러워 중병이 필요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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