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 선생은 토끼 인형 하나를 가져왔다. 보기에도 꽤 세월이 지나 보였고 거칠어져 한쪽 귀가 부러진 상태였다. 밖에서 산 것은 아닌 듯했다. “그녀를 잃어버린 해인 추석즈음에 제가 그녀를 위해 직접 만든 토끼 인형입니다. 그해에 그녀가 잘못을 저질러 어머니에게 감금되어 밖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원래는 하인에게 토끼 인형을 사다 주라고 하였으나 아버지께서 이를 금지하시여 그녀를 벌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몰래 하나 만들었고 집안의 부엌에서 구워냈고 구운 후에 색을 입혔지요. 지금은 색이 다 벗겨졌네요. 그녀는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하며 바닥에 떨어뜨렸고 그렇게 귀가 하나가 부러진 것입니다.” 염 선생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녀는 이 토끼 인형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싫어했다가 더 맞은 표현이겠지요. 너무 싫었던 만큼 울기까지 했으니 분명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거칠고 색이 벗겨져 귀조차 부러진 토끼 인형을 바라보던 시만자가 입을 열었다. “누군가가 이리도 못난 토끼 인형을 선물한다면 저도 울어버릴 것입니다. 이생에서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지요.”“그렇지요. 물건은 매우 아꼈거나 싫어해야만 깊이 기억되는 법이니까요.” 염 선생은 아쉬운 손길로 토끼 인형을 건넸다.“어린 시절에 가지고 놀던 물건들이 몇 가지 더 있지만 모두 너무 평범해서 보통 집안에서 대개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유일하게 이것만이 세상에 하나뿐이지요.” “하나뿐? 저라면 더 큰 소리로 울어버릴 것입니다.” 시만자는 눈살을 찡그리며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의 이목구비는 이미 흐려질 대로 흐려져 있었다. 더 이상 이보다 못 날 수는 없었다.염 선생은 상처받은 듯 그녀를 한 번 쳐다보았다.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시지요. 저도 배운 적 없이 처음 만든 것이지 않습니까?” “뒷면은 다 타버렸군요.” 시만자는 이리저리 돌려보며 덧붙였다.“사실 전체가 다 검은색이였는데, 이 색들은 나중에 입힌 것이겠지요?” 그러자 염 선생이 머리를 긁적였다.“계속 벗겨져서 색을
염 선생의 목소리는 슬픔으로 가득했다.“여동생의 일은 우리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밤낮으로 우셨고, 아버지는 관직을 그만두고 하인 두 명과 함께 여동생을 찾아 나섰지요. 2년에 한 번 집에 돌아오는 정도였습니다. 집안은 오로지 조부의 지원으로 버텼고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에도 아버지는 여동생을 찾고 있었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해에야 돌아오셨지요. 그때는 여동생을 찾은 지 10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아버지는 결국 포기하셨습니다.” 듣고 있는 모든 이의 마음이 아팠다. 자식을 잃는 고통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여동생이 사라진 날부터, 기쁨과는 완전히 인연이 없게 되었지요. 2년 전부터 조부와 어머니의 건강이 나빠져 진성으로 모셨습니다. 아버지는 운현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으셨지요. 아버지께서는 희망을 잃지 않으시며 언젠가 여동생이 자신의 집을 기억하고 돌아올 것이라며 누군가는 집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저 또한 포기하지 않았고 왕부의 사람들을 빌려 여동생을 찾으러 다녔지요. 왕부를 위해 힘쓰는 전제는 왕께서 사람을 선뜻 내어주신 것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희망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찾지 않으면 마음이 아프고 소용이 없을지라도 그녀를 위해 무언가 하고 나면 마음이 좀 나아지더군요.” 심청화는 의자에 앉은 채 어느새 잠이 들었다. 메산에서 급히 달려와 차도 한 모금 마실 여유도 없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으니 피곤했을 것이다.그러나 흐릿하게라도 염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비참한 일들을 많이 겪어지만, 다행히 무감각해지진 않았다. 그는 이 여인이 대충 여동생일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그는 자신이 그린 그림들 중에 반드시 현재의 염희진에 가까운 그림이 있을 것이라 믿었기에 안심하고 잠을 청할 수 있었다.이야기를 듣고 난 시만자는 눈물을 닦으며 진정하고는, 사람을 시켜 방 부인더러 고후부에 초대장을 보내길 요청했다. 내일 수연과 함께 왕강루에서 차를 마시며 경치를 즐기고 싶다는
왕강루의 또 다른 이름은 왕경루이며, 진성 민간에서 가장 높은 건물 중 하나이다.이곳의 가장 높은 곳에 오르면 북쪽의 남강 항구가 보이면서 진성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그 자태가 위풍당당하고 화려하여 절경이 따로 없다.하지만 왕경루의 가장 높은 층에 있는 아간에 오르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았다. 차 값만 해도 오냥이 필요하고, 음식을 주문하면 보통 몇십 냥이 드는 경우도 있으며, 고가의 음식을 주문하면 백 냥, 심지어 천 냥이 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왕경루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는 이는 거의 드물었고 그저 매일 돈을 쓸어 담아 부유하다는 정도 밖에 모른다. 아는 이들도 함부로 떠들지 않았고 메산의 그분 관계가 있는 이도 오늘날 진성에는 많지 않았다.시만자는 방 부인과 함께 먼저 도착하였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끄는 재주가 있어 방 부인에게도 올케라 부르며 곧잘 따랐고 방 부인 또한 그녀를 매우 귀여워하였다. 몇 번이고 그녀와 같은 시누이가 있다는 것이 삼생삼세에 걸쳐 쌓은 복이라며 기뻐하였다.그들이 왕강루에 도착했을 때, 주아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시만자는 화려한 환경에 매우 만족하며 주위를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바빴다.“의모와 서약할 때 여기서 상을 차려야 겠습니다.”그러자 방 부인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얼마나 많이 들겠느냐? 차라리 집에서 연회를 차리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 네 올케가 연회를 마련하는 솜씨는 이웃들이 모두 아는 바인데 그 기회를 주지 않을 셈인가?” 시만자가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저는 단지 고생할까 봐 걱정되어 감히 요구하지 못한 것입니다. 천허 오라버니께서 노여워하실까 봐 두렵기도 합니다.” “그 사람은 말이다..” 방 부인의 얼굴에 미소가 서서히 사라지고 그리움이 솟구치기 시작했다.“지금은 얼굴조차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전쟁은 이미 한참 전에 끝났는데 언제 진성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시만자가 위로했다.“방심할 수 없습니다. 그곳은 여전히 혼란스러워 중병이 필요하지요
왕경루의 간식은 종류가 다양하고 정교하며 맛 역시 뛰어났다. 평범한 대추 케이크조차 달콤하면서도 느끼하지 않아 향긋한 느낌을 주었다. 시만자는 한입 베어 물고 웃으며 말했다. “내 어릴 적 가장 좋아했던 것이 이와 같은 단 케이크였습니다. 집에 상주하는 요리사는 만들지 못해 오라버니께서 몰래 나가 사다 주었지요. 그래서 대추나무 아래에 숨어 함께 몰래 케이크를 먹곤 했습니다.”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햇살이 스며들어 추억으로 가득한 그녀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종종 이렇게 맑은 가을날도 있었지요. 그러나 그때의 구월은 지금 진성과는 다르게 쌀쌀하지 않았습니다. 때론 무척 덥기도 하였지요. 햇살이 대추나무 틈새로 내려앉아 오라버니 얼굴에도 햇살 가득하였지요.” 그녀는 말을 이어가며 옆에 있는 토끼 장식을 살짝 쓰다듬더니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저는 오랫동안 오라버니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주아는 멍하니 그녀가 언급한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며 시선은 여전히 그 토끼에 머물러 있었다.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가슴이 불편하게 조여오는 느낌에 매우 괴롭기만 하였다.“이것은 토끼입니까?”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시만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보였다.“그렇습니다. 이는 오라버니가 저에게 선물한 것입니다. 그해 제가 대추나무에서 떨어져 어머니께서 저를 벌하여 방에 가두셨지요. 추석이었지만 밖에 나가 등불을 감상할 수 없어 오라버니가 직접 이 토끼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정말 못나지 않았습니까?그때는 저도 마음에 들지 않아 망가뜨렸지요. 이 귀 부분은 바로 그때 부딪혀서 부러진 것입니다.” 그녀는 토끼를 주아에게 내밀었다.“보시겠습니까?” 주아는 자신 앞에 다가온, 정말 못난 토끼 인형을 바라보자 귀가 먹먹해졌다.“너는 처자인데 어찌 나무를 타고 있냔 말이다! 누가 가르쳤느냐? 결국에는 다쳤구나! 울음을 그치지 않겠느냐? 그만 그치지 못할까? 추석에는 함께 등불을 보러 갈 생각은 하지 말거라.” “울지 말거라.
이전에 그녀는 부모님과 오라버니가 있는 장난꾸러기였고, 집안 사람들 모두 그녀를 귀여워하였다. 이 토끼 인형도 시만자의 오라버니가 아닌 그녀의 오라버니가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많은 일들이 있었기에 이 사실을 모두 이미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부모님과 오라버니의 얼굴이 기억나지도 않을 정도였다. 그녀에게는 조부모도 있었다. 조부모는 그녀를 매우 아끼셨고, 기억 속에 아직 따스하고 자애로운 목소리가 남아 있었다.“희진이가 언제쯤 커서 좀 더 이해할 수 있겠느냐?” 시만자는 그녀 곁에 다가서 남강의 풍경을 바라보다 조용히 말했다. “정말로 아름다운 강경이군요.” ‘강경’이라는 두 글자가 번개처럼 그녀의 뇌리에 꽂혔다. “염강경, 당신이 계속 봐주니까 점점 무법천지가 되는 거잖습니까? 나중에 사람들이 뭐라 하겠습니까!” “여보! 염강경! 아이가 다리를 다쳤습니다.” 그녀의 가슴은 급격하게 요동쳤다. 바람이 찬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온몸에 땀이 흐르고 이마에까지 송글송글 맺혔다. “저는…” 그러고 그녀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매우 낮았다.“저의 아버지 존암은... 염강경이고 이 토끼 인형은 저의 오라버니께서 만들어 주신 겁니다. 그쪽이 방금 한 말들 모두 저의 이야기입니다.. 그쪽은 우리 가족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지요? 그들은 저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납치당한 거…” 눈물이 그녀의 하얀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자, 그녀는 당황했는지 재빨리 닦았다. 그러고는 더는 말을 잇지 않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시선을 밖에 고정한 채 감히 시만자를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얼굴을 보면 눈물이 멈추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대 오라버니는 염구진이고 현재 북명왕부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는 왕부의 장사로서 왕부에 발을 들인 후 왕부의 힘을 빌려 그대를 찾고자 했지요. 그대가 사라진 후, 아버지께서는 관직을 그만두고 그대를 찾아 나섰고 그렇게 무려 십 년 동안 쉬어 본 적이 없으셨지요. 그러다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난 후 결국 멈추
비록 사람은 없었지만, 매우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작은 테라스에는 두세 사람이 함께 앉을 수 있는 그네까지 놓여 있었다. 모든 테라스에는 난간이 없었기에 꼭 잡고 있지 않으면 쉽게 떨어질 수도 있다. 시만자는 염희진을 그네에 앉히고 강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부드럽게 밀어주었다.염희진은 조금 겁이 났다. 그녀의 무공은 높지 않았고 경공도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그네의 끈을 꼭 잡을 뿐이었다.“구후부에서 만났을 때는 저의 신분을 알지 못하셨는데, 어찌 돌아가자마자 바로 확신하신 겁니까?” 염희진은 이 점이 이해가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우연의 일치처럼 보였고 설계된 함정 같게 느껴졌다. 시만자는 답했다.“그날 그대를 보았을 때 익숙함을 느꼈습니다. 그대 입술 위의 점은 북명왕비의 어머니를 보는 듯했습니다. 눈매와 눈썹 모양도 북명왕비와 조금 닮아 있기도 했지요. 그리고 그대의 행동과 태도에서 익숙함이 느꼈습니다. 당시에는 누구를 닮았는지 알 수 없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 사람이 염 선생이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염 선생?” 이 세 글자를 음미하는 염희진은 순간 낯선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희미하게 한 소년의 기억을 떠올랐다. 대추나무 아래에서 그녀에게 설탕 과자를 주던 소년, 해가 얼굴에 비추어 미소가 예쁘고 찬란하였다. 그러나 그 소년의 모습은 기억해 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 소년은 지금 염 선생이 되었고, 북명왕부의 장사이다. “아직도 말씀하지 않았셧습니다. 어찌하여 제가 염희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까?” 그녀는 시만자에게 재차 물었다. “사실, 우리는 장공주가 한 사람을 방시원과 혼인시키려는 계획을 일찌감치 알았습니다. 즉 저의 의형이지요. 그들은 군에 자신들의 사람을 심으려 했기에 아마 이 일은 그대에게 숨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대를 움직이려니 자연히 알려야 했겠지요.” 염희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대 말이 맞습니다. 그대를 처음 보았을 때, 저는 무엇인가 불편한 느낌
그녀는 어렸을 적부터 반주를 따라 생계를 유지했기에 사람의 마음이 그리 간단치 않음을 일찍 깨달았다. 장공주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었기에 그녀를 구해주고 시집도 보내주겠다 하니 모두 거짓말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녀가 진성에 온 지 오래되었건만 혼사를 제안한 적이 없었고 어느새 스물여섯이 되었다. 진정으로 시집보내려 했다면 일찌감치 이야기했을 것이 분명했다. 사실 그녀는 정확한 자신의 나이를 알지 못했다. 반주가 그녀를 구했을 때 칠, 팔 세가량의 아이였으니, 대략 계산하면 스물다섯, 여섯 될 것이었다.또한, 집안에서 매번 연회를 열 때마다 나가서 얼굴을 내비치게 했을 터인데 그녀는 항상 후원에 갇히게 되었고 나가기는커녕 방문조차도 나갈 수 없었다. 유모가 말하길 그녀가 규칙을 완전히 익히지 못하여 혹여 귀한 손님께 실수라도 저지를까 염려된다는 핑계만 댔다.“장공주께서 저를 구한 것에 뭔가 내막이 있을 것이란 말입니까?” 그녀는 숨이 가쁜 듯해 보였다.“확실치 않으니 조사해야 합니다. 그때의 상황을 말해줄 수 있겠습니까? 잡기단이 해산된 일에 대해서도요.” 고개를 끄덕인 염희진은 옹현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시만자에게 털어놓았다. 시만자는 돌아가서는 사여묵과 염 선생에게 전해야 하므로 자세하게 물어보았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질문을 다 하였다.염희진도 상세히 이야기하였고, 특히 잡기반 해산 후 혼자 생계를 꾸려가는 과정과 도적을 만난 일 전후를 면밀하게 전해 주었다.이야기를 마친 그녀는 목이 마른 듯하였다. 한참 후에야 괜찮아진 그녀는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저는 언제 그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까?” “현재 그대는 고후부에 있으니 출입이 불편할 것이고 방씨 가문에서도 그대를 자주 불러낼 수는 없을 터이니 돌아가 염 선생과 함께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그대를 보고 싶어 합니다. 그대의 조부와 모친도 현재 진성에 계시고, 아버지는 운현에서 그대를 기다리고 계시니, 그대의 신분이 확정되면 염 선생이 반드시 사람을 보내 진성
염희진이 고후부로 돌아가자, 고후부인이 즉시 다가와 상황부터 물었다. 후부의 부인인 그녀가 잡기단 출신이었던 여인에게 이토록 공손하였던 것은 장공주의 체면 때문이라 하겠으나, 두 눈이 충혈되어 있음에 그만 예의를 잃은 듯 거친 말투를 보였다. “울었느냐? 정말 그녀들 앞에서 울었단 말이냐?” 여전히 가슴을 어루만지고 있는 염희진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는 듯하였다.“부인께서는 모르실 것입니다. 우리가 간 곳은 왕경루였고 이미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하였거늘 시 아가씨께서는 방시원이 무장 출신이기에 그의 아내로서 용기가 없으면 안 된다고 하며 내 손을 잡고 최고층으로 날아올랐습니다. 진실로 무섭더이다. 그러나 저는 그 여인 앞에서는 울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곳의 바람이 너무 세서 눈시울이 붉어졌을 뿐이고 마차에 올라탈 때까지 눈물을 참았습니다. 미덥지 않으신다면 탕미에게 여쭈어보시지요.” 고후부인이 고개를 들어 해탕에게 물었다. “이 말이 사실이냐?” 탕미는 사실대로 대답하였다. “확실히 그러하였습니다. 시 아가씨께서 창가에서 살펴보다 더 높이 올라갈 수 있겠냐며 도발하였습니다. 방시원의 부인으로서 이리도 용기가 없어서는 안 된다 하였지요. 그때 저는 해치려는 것은 아닐 테니 따라가 보라 하였습니다. 그러다 내려올 때쯤 바람이 세게 불어 머리도 헝클어지고 두 사람 모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그제서야 고후부인의 표정이 조금 환해졌다.“너는 계속 곁에 있었던 것이냐?” “그녀들이 올라갈 때 따라갈 수 없었지만, 야간 문밖에 항상 있었기에 그녀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고, 또한 그녀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고후부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미간은 여전히 찌푸리고 있었다.“시만자라… 솔직히 말하자면, 방시원과 의형제라 칭하였고, 말끝마다 의모라고 부르지만, 서약을 한 사이도 아니니 시만자 또한 방시원과 혼인하고자 마음먹고 너를 일부러 괴롭히는 것일 수 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염희진이 놀란 눈으로 고후부인을 바라보
며칠 후, 태후궁에서 궁녀의 시신 한 구가 들것에 실려 나왔다.그날 숙청제는 즉시 칙령을 내려 수빈을 혜의궁에서 쫓아내고, 삼공주와 삼황자를 데리고 계란궁으로 이주하게 했다.계란궁은 황궁의 서북쪽 끝, 냉궁과 가까운 곳에 있어 평소 찾아오는 이조차 드물었다.칙령이 내려졌을 때, 수빈은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 오랜 시간 멍하니 굳어 있었다.그녀는 한참이 지나서야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나직이 명령했다."짐을 챙기거라."그녀는 이제 자신과 삼황자가 완전히 배제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사실, 그녀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복소의의 아이가 사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이미 각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은 너무 빨랐다. 그녀가 탄 약의 양은 극히 적은 탓에, 반드시 보름 동안 먹어야만 효과가 나타나도록 조절했기 때문이다.그런데 하루 만에 유산이 되었다는 것은 그녀가 심어둔 사람 중 누군가가 황후나 덕비에게 붙었다는 뜻이었다.그러나 그녀는 이제 그 배신자가 누구인지 따질 필요조차 없었다. 그건 더 이상 의미 없는 일이었다. 황제가 그녀의 거처를 옮기기로 했다는 것은 그가 이미 수빈이 복소의의 태아를 해하려 했음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만약 더 발버둥 친다면, 궁을 옮기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곧장 냉궁으로 내쳐질 터였다.이번 처분이 오히려 최선일 수도 있다. 추후에 더 가혹한 처벌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었다.곧 후궁 전역에 수빈의 이주 소식이 퍼졌다.불과 얼마 전만 해도 혜의궁으로 옮겨갔을 때의 화려했던 순간이 모두의 기억에 선명한데, 이제는 냉궁 근처로 밀려난 신세가 되었다. 후궁의 많은 이들이 이번 사건이 복소의의 유산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의심했다.하지만 황제의 교지에는 삼황자의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에 조용한 환경에서 요양해야 하므로, 보다 한적한 계란궁으로 이주하게 한다고 쓰여 있었다.또한, 수빈이 삼황자를 돌보아야 하므로 후궁을 관리하던 권한 당분간 내려놓을 것이며, 덕비와 함께 후궁을 보좌할 적절한 인물을
송석석은 황제라는 위치가 얼마나 갑갑한 것인지 실감했다. 이 권력의 저울질과 계산 속에서 그조차도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지금 황제는 대황자를 태자로 세우려는 듯 보였다. 그렇다면 황후는 이 일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대황자는 본래 평범한 인물이니, 만약 황후가 황자를 해하려 한 죄목까지 더해진다면 그가 태자로 자리 잡는 것도 위태로워질 것이었다.그리고 직접 손을 쓴 수빈에 대해서도 황제는 그녀의 부친을 고려해야 하기에 함부로 처벌할 수 없었다.결국, 이 사건은 절대 표면적으로 드러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한 사람도 만만한 이가 없구나."태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절대적인 권력 앞에서는 누구라도 목숨을 걸고 한 번쯤 싸워보고 싶은 법이다."송석석이 왜 이런 이야기를 자신에게 하는지 물으려 할 때, 태후가 먼저 입을 열었다."너가 궁 안의 일들을 꼭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은 가장 다루기 어려운 것이다. 폐하께서 한때 북명황실을 경계하더니, 이제는 다시 너희를 신뢰하고 있지않느냐. 누군가 그 자리를 탐낸다면 네게서 빈틈을 찾으려 할 것이다. 후궁의 음흉한 계략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어떤 일이든 한 걸음 더 깊이 들여다보고,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송석석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겠습니다."그러고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물었다."그럼 이 일은 그냥 이렇게 마무리 되는 겁니까?"태후가 고개를 저었다."저지른 죄를 어찌 그저 덮어둘 수 있겠느냐. 지금은 그대로 둔다 해도, 훗날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업보를 지고 가는 법이다."송석석이 다시 한 번 물었다."이미 모든 의도를 파악하셨는데, 후궁의 평온은 이미 깨진 것이 아닙니까? 이를 막을 수 있으시겠습니까?"태후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방금 말했듯이 사람의 마음이 가장 다루기 어려운 것이다. 한순간 천국을 꿈꾸다가도, 한순간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지. 그들의 마음먹기에 달린 일인데, 어
송석석은 사여묵으로부터 복소의의 유산 소식을 전해 들었다.진왕비는 송석석에게 함께 입궁하여 문병을 가자고 제안했고, 송석석도 이를 받아들였다.본래 송석석과 진왕비는 별다른 왕래가 없었으나, 진왕이 그녀와 함께 서경을 다녀온 이후, 진왕비는 동서지간에 자주 왕래하는 것이 좋다며 송석석에게 더욱 살갑게 굴었다.하지만 진왕비는 제씨 가문의 여인으로, 황후의 종매이긴 했지만, 황후가 금족 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황후를 찾아가지 않았다.즉, 그녀가 말하는 동서지간에 자주 왕래하는 것이 좋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귀찮은 일이 없을 때는 교류할 수 있지만, 문제가 생기면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뜻이었다.예전에 황제가 북명황실을 경계하던 시기에도 진왕비는 송석석을 철저히 피하며 혹여 화를 입을까 두려워했다.사실 이번에 진왕이 특별한 공을 세웠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저 황제의 가벼운 칭찬 한마디를 들은 정도였지만, 진왕에게는 그 한마디가 두 해나 자랑할 거리였다.그들은 함께 입궁하면서도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진왕비는 그저 몇 마디 가벼운 이야기만 했는데, 송석석은 그런 진왕비가 영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때때로 일부러 어리숙한 척 행동하며, 평온하고 안락한 삶만을 바랬기 때문이다.그렇기에 단둘이 있을 때에 그녀는 더욱 쓸데없는 말을 하지도, 남에게 꼬투리를 잡힐 행동도 하지 않았다.입궁하여 복소의를 만나게 되자, 진왕비는 이 아이와 그녀의 인연이 이미 닿아 있었다며, 결국 그 인연 덕분에 품계를 올리게 된 것이니 조만간 다시 태중으로 돌아와 전생의 모자 인연을 이어갈 것이라는 위로의 말을 한 가득 쏟아냈다.그녀가 나긋한 목소리로 덧붙였다."그러니 지금 해야 할 일은 그저 몸을 잘 돌보는 것 뿐이다. 괜히 이 일로 침울해 하면 안된다. 폐하께서 정무로 바쁘신데, 소의가 매일 울기만 하면 보시기에 번거롭지 않겠는가?"진왕비의 말은 빈틈이 없어 송석석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그녀가 한참 이야기하다가 문득 송석석을 향해 한 마디 던졌다.
자신의 궁으로 돌아오자, 숙청제는 비로소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 곧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었기 때문이다.후궁에서 벌어지는 수작들은 때로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법이다.단신의가 복소의의 태아를 보전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설령 무사히 태어난다 해도 선천적으로 허약하거나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을 아이일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숙청제는 한때 복소의에게 약을 직접 먹일까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이 아이가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 자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끝내 결단을 내리지는 못했다.한 번쯤 걸어보고 싶긴 했다.이번 일은 누군가 개입한 것이 분명했다. 그가 최근 들어 복소의의 궁에 자주 드나들었으니, 누군가는 불만을 품었을 것이 틀림없었다.덕비는 분명 복소의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복소의는 황제의 총애를 믿고 오만하게 굴며, 심지어는 덕비를 원망하는 마음까지 품었다. 그날 그녀에게 경고를 주었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덕비는 후궁을 총괄하는 인물이었다. 때문에 그녀와 수빈이 배치한 사람들이 후궁 곳곳에 퍼져 있었으니, 복소의의 태아를 해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덕비가 직접 손을 썼을 가능성은 낮았다. 만약 덕비가 아이를 해하려 했더라면 애초에 복소의를 보호해주지 않았을 것이었다. 게다가 덕비가 이황자를 데리고 자주 드나든 것도 반은 아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반은 복소의의 태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었다.복소의가 황제에게 덕비를 험담했던 것은 반드시 덕비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었다. 덕비가 이후 더 이상 찾아오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그녀가 복소의에게 손을 떼자, 마음 속에 꿍꿍이가 있던 자들이 움직이기 훨씬 쉬워졌다.그가 실망한 이유는 복소의의 태아를 잃은 것 때문이 아니었으며, 그가 바라지 않았던 후계 경쟁이 결국 벌어지고 말았다는 점이었다.그는 이 일을 벌인 자가 누구인지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황후이거나 수빈 둘 중 하나일 것
혜의궁에서는 삼황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삼공주는 그의 젖은 머리카락을 닦아주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어제 막 머리를 감았는데, 굳이 그 고양이랑 놀겠다고 해서 온 머리와 얼굴이 털투성이가 되었잖아. 다음번에도 이러면 엉덩이를 때려줄 거야."도자기처럼 매끄러운 분홍빛 살결의 귀여운 아이가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공주의 품에 기댔다."누이, 고양이는 재미있고 귀여워요. 작은 발로 내 몸을 밟고 지나갈 때면, 포근해서 기분이 좋아요. 안고 있으면 따뜻하기도 하고요."그러자 삼공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어마마마께서 그러셨잖아. 아바마마께서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그런데 넌 자꾸 아바마마께 고양이 이야기를 해서…… 그러니 요즘 아바마마께서 널 찾지 않으시는 거야."삼황자는 누이가 머리를 말려주는 대로 꼿꼿이 앉아 있으면서도 입을 다물지 않았다."아바마마와 나는 다른 사람이잖요. 당연히 각자 좋아하는 것이 다를 수도 있는 거지요. 아바마마께서 싫어한다고 해서 나까지 싫어해야 해요? 내가 고양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하니, 아바마마께서 아무리 싫어하셔도 나한테 버리라고 하시면 안 되는 거죠."삼공주는 그의 코끝을 톡 하고 건드리며 말했다."말은 참 잘하네."삼황자는 웃으며 말했다."누이가 나를 설득 수 없는 건 누이의 말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에요. 황숙께서 그러셨는데, 이치에 맞게 말을 한다면 그 누구도 이길 수 있다고 하셨거든요.""그래? 그런데 요즘 왜 황숙께 무예를 배우러 가지 않는 거야?"삼황자는 고개를 기울였다."무예라 해도 기본적인 것만 가르쳐 주시니까요. 그런 건 궁에서도 연습할 수 있어서 이미 다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말 타기는… 아직 말 위에 혼자 올라갈 수가 없으니까 좀 더 자라서 다리가 길어지면 그때 배울거에요.""다 할 수 있다고? 못 믿겠는데." 삼공주가 말했다."정말 할 수 있다니까요!"삼황자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황숙께서 며칠 동안 같은 걸 반복해
복소의는 춘당의 입가에 스친 조소를 알아채지 못했다.춘당은 복소의가 첩여로 승급될 때부터 곁에서 그녀를 모셔왔다. 그녀는 영리하고 침착한 성품을 지녀 복소의에게 여러 차례 계책을 내주었고, 당시 황후가 그녀를 끌어들이려 했을 때도 춘당은 이렇게 말했었다.‘황후마마께서 여러 번 금족 처분을 당하신 것으로 보아, 폐하께서 이미 탐탁지 않게 여기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후궁을 다스릴 권한도 없으시니, 황후마마께는 겉으로만 응하는 척하고 실질적으로는 덕비 마마와 수빈 마마께 가까이 다가가시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그리고 춘당의 말은 역시나 옳았다. 덕비는 늘 그녀를 잘 대해주었고, 먹고 입는 것 모두 넉넉히 챙겨주었다. 그 덕분에 더 이상 감히 그녀를 깔보는 자도 없어졌다.예전의 덕비는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이유로 폐하께 가까이 가려 하는 것 같아 못마땅했다."마마께서는 덕비 마마께서 오시는 것이 싫으십니까?"춘당이 그녀의 머리와 허리를 살짝 받쳐주며 말했다. 침상에 오래도록 누워만 있어 등이 아픈 그녀를 배려한 것이었다.그녀는 춘당을 신뢰했기에 자연스레 속내를 털어놓았다."내 태가 안정되었을 때는 덕비 마마께서 그리 열심히 오시지도 않으셨는데, 이제 와서 이렇게 자주 찾으시는 것이 진심이겠느냐? 분명 폐하를 의식해서 오는 것일 것이다. 게다가 폐하께서 날 아끼시기에 자주 찾아와 주시는 것인데, 매번 덕비 마마와 이황자가 끼어드는 바람에 폐하와 두세 마디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지 않느냐."춘당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하며 말했다."마마께서는 그저 몸을 잘 돌보시면 됩니다. 그 외의 일은 신경 쓰지 마세요."복소의는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밤낮으로 누워만 있어야 하다니…… 폐하께서 오실 때만 겨우 앉을 수 있구나. 이 아이는 나를 참 힘들게 한다. 부디 황자가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지. 내가 이 고생을 한 보람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춘당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반드시 마마께서 바라시는
복소의의 태는 안정적이었기에, 태의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겨울이 지나면서 태가 점점 불안정해져, 두 번의 출혈을 경험했다. 금태의는 그녀의 태를 지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지만 계속해서 침상에 누워 있어야 했기에 바닥에 내려갈 수가 없었다.갑자기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태의는 신중히 식단과 궁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들을 점검했다. 하지만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아마 황제가 장기간 약을 복용한 탓에 태아가 불안정해진 것일 가능성이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의 태에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가 침상에서 요양을 시작한 후 거의 이틀에 한 번씩 그녀를 보러 갔으며, 가끔은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는 수빈의 궁에 자주 가지 않았고, 삼황자를 어서방에 불러 들이지도 않았다.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이황자와 함께 복소의를 보러 갔고, 이로 인해 황제와 함께 몇 번의 식사를 함께했다.복소의는 첩여 시절 후궁에서 자신이 의지할 사람을 찾으려 했고, 비밀리에 수빈과 덕비에게 아첨하며 양쪽을 오갔다. 하지만 수빈은 늘 거만하게 행동했으며, 그녀가 한때 황제의 총애를 얻었기도 했기에, 복소의는 수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반면 덕비는 후궁에서 유명한 온화하고 자애로운 인물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며 위치가 낮은 여인들까지 보살펴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복소의는 점차 덕비에게 더 접근했지만 지금은 조금 고심했다. 황제가 그녀에게 올 때, 덕비가 여러 번 이황자를 데리고 왔고, 그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수빈의 성격에 이런 일을 할 리가 없었기에, 그녀는 오히려 수빈의 도도함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결국 불만을 마음속으로에만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권한이 있기에 그녀를 적대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날들이 지속되자, 그녀는 덕비가 오지 않
후궁에서는 황제의 병에 대해 추측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지금 복소의가 임신을 했다고는 하지만,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은 황제의 몸이 단순히 요양을 하면 괜찮아질 상태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황제의 편애가 계속될수록 몇몇 사람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특히 황후는 더욱 불안해했다. 그녀는 황제의 병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지금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지만 치료의 효과는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녀는 황제가 심각한 상태라고 여겼다. 황후는 복소의의 임신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의 성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을 뿐더러, 설령 황자가 태어난다고 해도 그에게 까지 순서가 올 리 없었다. 그러나 삼황자에게 집중된 황제의 편애는 그녀에게 위기의식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황제는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었을 때 그녀는 황후 자리를 선택하며 생명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며칠의 시간을 보내자, 황후는 황제가 대황자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요즘 대황자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태부와 황숙도 그를 칭찬하고 있었다. 황제도 대황자의 그러한 모습에 매우 만족해 한다고 전해 들었다.이황자와 삼황자는 그녀에게 모두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황후는 황제가 이황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겼다.최근 몇 달 동안 그녀는 거의 이황자를 본 적이 없었고, 또한 이황자가 이제는 예전처럼 열정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후는 강력한 뒷배경이 없는 덕비가 여전히 유력하지 않다고 여겼지만 수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빈의 아버지는 형부상서이며, 사여묵과 같은 공문이었다. 공무의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접촉이 분명 많았을 것이고, 수빈의 어머니인 이씨 부인은 송석석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방에 많은 돈을 기부했다. 어쩌면 이미 그녀를 손에 넣었을지도 모른다.“마마, 오늘 대황자께서 또 왕야의 칭찬을 받으셨습니다.”란주 상궁이 들어오며 웃으며 말했다.황후는 별다른 감정을 보이
숙청제는 신하들을 어서방에 불러들였고, 그들은 밤늦게까지 논의했다. 논의는 결국 단신의가 들어가서 시간이 많이 늦었음을 알리며 중단을 요청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숙청제는 팔을 뻗고 웃으면서 말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다니. 그럼 궁문도 이제 잠가야겠으니 다들 돌아가시게.”그는 여전히 기운이 넘쳤고, 특히 지금은 얼굴에 혈색이 돌아 병든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송석석은 논의 중이던 사여묵을 기다렸다. 그들은 함께 궁을 떠나 황실로 돌아갔다. 매우 피곤했던 그녀는 사여묵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마차가 황실 문 앞에 도착하자 사여묵은 그녀를 안아 들었다. 송석석은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내려오기 귀찮았기에 그대로 안겨 있었다. 그의 넓고 따뜻한 품은 정말 편안했다.그와 떨어져 있던 세 달 동안 그녀는 성릉관에서만 편히 잠을 청할 수 있었으며, 그 외의 곳에서는 늘 경계하며 지냈다. 이제 집에 돌아오니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렸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불안함을 느꼈다. 무언가 뜨겁고 큰 손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단 백부 말씀을 잊으셨나요?”귓가에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 백부가 이제 괜찮다고 말씀하셨소.”송석석은 감고있던 눈을 떠, 뜨겁고 열정적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정말인가요?”“틀림 없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술이 덮였다.불꽃이 강렬하게 타올왔다. 침실의 온도마저 높아진 듯 했다.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기에 마치 새롭게 결혼한 듯한 기분이었다!한 달 후, 상국은 시박사를 설립할 예정이었다. 이는 상국과 해외 북당과의 화물 교류를 담당할 기관이었다.원래의 시역업도 시박사의 운영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며, 상국에서 다른 국가에 판매할 수 있는 화물 목록을 정리하여 서경으로 사신을 파견해 화물 교환 협정을 체결할 것이다.이 한 달 동안 단신의는 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