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 선생의 목소리는 슬픔으로 가득했다.“여동생의 일은 우리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밤낮으로 우셨고, 아버지는 관직을 그만두고 하인 두 명과 함께 여동생을 찾아 나섰지요. 2년에 한 번 집에 돌아오는 정도였습니다. 집안은 오로지 조부의 지원으로 버텼고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에도 아버지는 여동생을 찾고 있었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다음 해에야 돌아오셨지요. 그때는 여동생을 찾은 지 10년이 되던 해였습니다. 아버지는 결국 포기하셨습니다.” 듣고 있는 모든 이의 마음이 아팠다. 자식을 잃는 고통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여동생이 사라진 날부터, 기쁨과는 완전히 인연이 없게 되었지요. 2년 전부터 조부와 어머니의 건강이 나빠져 진성으로 모셨습니다. 아버지는 운현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으셨지요. 아버지께서는 희망을 잃지 않으시며 언젠가 여동생이 자신의 집을 기억하고 돌아올 것이라며 누군가는 집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저 또한 포기하지 않았고 왕부의 사람들을 빌려 여동생을 찾으러 다녔지요. 왕부를 위해 힘쓰는 전제는 왕께서 사람을 선뜻 내어주신 것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희망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찾지 않으면 마음이 아프고 소용이 없을지라도 그녀를 위해 무언가 하고 나면 마음이 좀 나아지더군요.” 심청화는 의자에 앉은 채 어느새 잠이 들었다. 메산에서 급히 달려와 차도 한 모금 마실 여유도 없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으니 피곤했을 것이다.그러나 흐릿하게라도 염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비참한 일들을 많이 겪어지만, 다행히 무감각해지진 않았다. 그는 이 여인이 대충 여동생일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그는 자신이 그린 그림들 중에 반드시 현재의 염희진에 가까운 그림이 있을 것이라 믿었기에 안심하고 잠을 청할 수 있었다.이야기를 듣고 난 시만자는 눈물을 닦으며 진정하고는, 사람을 시켜 방 부인더러 고후부에 초대장을 보내길 요청했다. 내일 수연과 함께 왕강루에서 차를 마시며 경치를 즐기고 싶다는
왕강루의 또 다른 이름은 왕경루이며, 진성 민간에서 가장 높은 건물 중 하나이다.이곳의 가장 높은 곳에 오르면 북쪽의 남강 항구가 보이면서 진성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그 자태가 위풍당당하고 화려하여 절경이 따로 없다.하지만 왕경루의 가장 높은 층에 있는 아간에 오르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았다. 차 값만 해도 오냥이 필요하고, 음식을 주문하면 보통 몇십 냥이 드는 경우도 있으며, 고가의 음식을 주문하면 백 냥, 심지어 천 냥이 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왕경루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는 이는 거의 드물었고 그저 매일 돈을 쓸어 담아 부유하다는 정도 밖에 모른다. 아는 이들도 함부로 떠들지 않았고 메산의 그분 관계가 있는 이도 오늘날 진성에는 많지 않았다.시만자는 방 부인과 함께 먼저 도착하였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끄는 재주가 있어 방 부인에게도 올케라 부르며 곧잘 따랐고 방 부인 또한 그녀를 매우 귀여워하였다. 몇 번이고 그녀와 같은 시누이가 있다는 것이 삼생삼세에 걸쳐 쌓은 복이라며 기뻐하였다.그들이 왕강루에 도착했을 때, 주아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시만자는 화려한 환경에 매우 만족하며 주위를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바빴다.“의모와 서약할 때 여기서 상을 차려야 겠습니다.”그러자 방 부인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얼마나 많이 들겠느냐? 차라리 집에서 연회를 차리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 네 올케가 연회를 마련하는 솜씨는 이웃들이 모두 아는 바인데 그 기회를 주지 않을 셈인가?” 시만자가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저는 단지 고생할까 봐 걱정되어 감히 요구하지 못한 것입니다. 천허 오라버니께서 노여워하실까 봐 두렵기도 합니다.” “그 사람은 말이다..” 방 부인의 얼굴에 미소가 서서히 사라지고 그리움이 솟구치기 시작했다.“지금은 얼굴조차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전쟁은 이미 한참 전에 끝났는데 언제 진성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시만자가 위로했다.“방심할 수 없습니다. 그곳은 여전히 혼란스러워 중병이 필요하지요
왕경루의 간식은 종류가 다양하고 정교하며 맛 역시 뛰어났다. 평범한 대추 케이크조차 달콤하면서도 느끼하지 않아 향긋한 느낌을 주었다. 시만자는 한입 베어 물고 웃으며 말했다. “내 어릴 적 가장 좋아했던 것이 이와 같은 단 케이크였습니다. 집에 상주하는 요리사는 만들지 못해 오라버니께서 몰래 나가 사다 주었지요. 그래서 대추나무 아래에 숨어 함께 몰래 케이크를 먹곤 했습니다.”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햇살이 스며들어 추억으로 가득한 그녀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종종 이렇게 맑은 가을날도 있었지요. 그러나 그때의 구월은 지금 진성과는 다르게 쌀쌀하지 않았습니다. 때론 무척 덥기도 하였지요. 햇살이 대추나무 틈새로 내려앉아 오라버니 얼굴에도 햇살 가득하였지요.” 그녀는 말을 이어가며 옆에 있는 토끼 장식을 살짝 쓰다듬더니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저는 오랫동안 오라버니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주아는 멍하니 그녀가 언급한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며 시선은 여전히 그 토끼에 머물러 있었다.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가슴이 불편하게 조여오는 느낌에 매우 괴롭기만 하였다.“이것은 토끼입니까?”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시만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보였다.“그렇습니다. 이는 오라버니가 저에게 선물한 것입니다. 그해 제가 대추나무에서 떨어져 어머니께서 저를 벌하여 방에 가두셨지요. 추석이었지만 밖에 나가 등불을 감상할 수 없어 오라버니가 직접 이 토끼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정말 못나지 않았습니까?그때는 저도 마음에 들지 않아 망가뜨렸지요. 이 귀 부분은 바로 그때 부딪혀서 부러진 것입니다.” 그녀는 토끼를 주아에게 내밀었다.“보시겠습니까?” 주아는 자신 앞에 다가온, 정말 못난 토끼 인형을 바라보자 귀가 먹먹해졌다.“너는 처자인데 어찌 나무를 타고 있냔 말이다! 누가 가르쳤느냐? 결국에는 다쳤구나! 울음을 그치지 않겠느냐? 그만 그치지 못할까? 추석에는 함께 등불을 보러 갈 생각은 하지 말거라.” “울지 말거라.
이전에 그녀는 부모님과 오라버니가 있는 장난꾸러기였고, 집안 사람들 모두 그녀를 귀여워하였다. 이 토끼 인형도 시만자의 오라버니가 아닌 그녀의 오라버니가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많은 일들이 있었기에 이 사실을 모두 이미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부모님과 오라버니의 얼굴이 기억나지도 않을 정도였다. 그녀에게는 조부모도 있었다. 조부모는 그녀를 매우 아끼셨고, 기억 속에 아직 따스하고 자애로운 목소리가 남아 있었다.“희진이가 언제쯤 커서 좀 더 이해할 수 있겠느냐?” 시만자는 그녀 곁에 다가서 남강의 풍경을 바라보다 조용히 말했다. “정말로 아름다운 강경이군요.” ‘강경’이라는 두 글자가 번개처럼 그녀의 뇌리에 꽂혔다. “염강경, 당신이 계속 봐주니까 점점 무법천지가 되는 거잖습니까? 나중에 사람들이 뭐라 하겠습니까!” “여보! 염강경! 아이가 다리를 다쳤습니다.” 그녀의 가슴은 급격하게 요동쳤다. 바람이 찬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온몸에 땀이 흐르고 이마에까지 송글송글 맺혔다. “저는…” 그러고 그녀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매우 낮았다.“저의 아버지 존암은... 염강경이고 이 토끼 인형은 저의 오라버니께서 만들어 주신 겁니다. 그쪽이 방금 한 말들 모두 저의 이야기입니다.. 그쪽은 우리 가족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지요? 그들은 저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납치당한 거…” 눈물이 그녀의 하얀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자, 그녀는 당황했는지 재빨리 닦았다. 그러고는 더는 말을 잇지 않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시선을 밖에 고정한 채 감히 시만자를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얼굴을 보면 눈물이 멈추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대 오라버니는 염구진이고 현재 북명왕부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는 왕부의 장사로서 왕부에 발을 들인 후 왕부의 힘을 빌려 그대를 찾고자 했지요. 그대가 사라진 후, 아버지께서는 관직을 그만두고 그대를 찾아 나섰고 그렇게 무려 십 년 동안 쉬어 본 적이 없으셨지요. 그러다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난 후 결국 멈추
비록 사람은 없었지만, 매우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작은 테라스에는 두세 사람이 함께 앉을 수 있는 그네까지 놓여 있었다. 모든 테라스에는 난간이 없었기에 꼭 잡고 있지 않으면 쉽게 떨어질 수도 있다. 시만자는 염희진을 그네에 앉히고 강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부드럽게 밀어주었다.염희진은 조금 겁이 났다. 그녀의 무공은 높지 않았고 경공도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그네의 끈을 꼭 잡을 뿐이었다.“구후부에서 만났을 때는 저의 신분을 알지 못하셨는데, 어찌 돌아가자마자 바로 확신하신 겁니까?” 염희진은 이 점이 이해가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우연의 일치처럼 보였고 설계된 함정 같게 느껴졌다. 시만자는 답했다.“그날 그대를 보았을 때 익숙함을 느꼈습니다. 그대 입술 위의 점은 북명왕비의 어머니를 보는 듯했습니다. 눈매와 눈썹 모양도 북명왕비와 조금 닮아 있기도 했지요. 그리고 그대의 행동과 태도에서 익숙함이 느꼈습니다. 당시에는 누구를 닮았는지 알 수 없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 사람이 염 선생이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염 선생?” 이 세 글자를 음미하는 염희진은 순간 낯선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희미하게 한 소년의 기억을 떠올랐다. 대추나무 아래에서 그녀에게 설탕 과자를 주던 소년, 해가 얼굴에 비추어 미소가 예쁘고 찬란하였다. 그러나 그 소년의 모습은 기억해 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 소년은 지금 염 선생이 되었고, 북명왕부의 장사이다. “아직도 말씀하지 않았셧습니다. 어찌하여 제가 염희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까?” 그녀는 시만자에게 재차 물었다. “사실, 우리는 장공주가 한 사람을 방시원과 혼인시키려는 계획을 일찌감치 알았습니다. 즉 저의 의형이지요. 그들은 군에 자신들의 사람을 심으려 했기에 아마 이 일은 그대에게 숨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대를 움직이려니 자연히 알려야 했겠지요.” 염희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대 말이 맞습니다. 그대를 처음 보았을 때, 저는 무엇인가 불편한 느낌
그녀는 어렸을 적부터 반주를 따라 생계를 유지했기에 사람의 마음이 그리 간단치 않음을 일찍 깨달았다. 장공주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었기에 그녀를 구해주고 시집도 보내주겠다 하니 모두 거짓말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녀가 진성에 온 지 오래되었건만 혼사를 제안한 적이 없었고 어느새 스물여섯이 되었다. 진정으로 시집보내려 했다면 일찌감치 이야기했을 것이 분명했다. 사실 그녀는 정확한 자신의 나이를 알지 못했다. 반주가 그녀를 구했을 때 칠, 팔 세가량의 아이였으니, 대략 계산하면 스물다섯, 여섯 될 것이었다.또한, 집안에서 매번 연회를 열 때마다 나가서 얼굴을 내비치게 했을 터인데 그녀는 항상 후원에 갇히게 되었고 나가기는커녕 방문조차도 나갈 수 없었다. 유모가 말하길 그녀가 규칙을 완전히 익히지 못하여 혹여 귀한 손님께 실수라도 저지를까 염려된다는 핑계만 댔다.“장공주께서 저를 구한 것에 뭔가 내막이 있을 것이란 말입니까?” 그녀는 숨이 가쁜 듯해 보였다.“확실치 않으니 조사해야 합니다. 그때의 상황을 말해줄 수 있겠습니까? 잡기단이 해산된 일에 대해서도요.” 고개를 끄덕인 염희진은 옹현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시만자에게 털어놓았다. 시만자는 돌아가서는 사여묵과 염 선생에게 전해야 하므로 자세하게 물어보았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질문을 다 하였다.염희진도 상세히 이야기하였고, 특히 잡기반 해산 후 혼자 생계를 꾸려가는 과정과 도적을 만난 일 전후를 면밀하게 전해 주었다.이야기를 마친 그녀는 목이 마른 듯하였다. 한참 후에야 괜찮아진 그녀는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저는 언제 그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까?” “현재 그대는 고후부에 있으니 출입이 불편할 것이고 방씨 가문에서도 그대를 자주 불러낼 수는 없을 터이니 돌아가 염 선생과 함께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그대를 보고 싶어 합니다. 그대의 조부와 모친도 현재 진성에 계시고, 아버지는 운현에서 그대를 기다리고 계시니, 그대의 신분이 확정되면 염 선생이 반드시 사람을 보내 진성
염희진이 고후부로 돌아가자, 고후부인이 즉시 다가와 상황부터 물었다. 후부의 부인인 그녀가 잡기단 출신이었던 여인에게 이토록 공손하였던 것은 장공주의 체면 때문이라 하겠으나, 두 눈이 충혈되어 있음에 그만 예의를 잃은 듯 거친 말투를 보였다. “울었느냐? 정말 그녀들 앞에서 울었단 말이냐?” 여전히 가슴을 어루만지고 있는 염희진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는 듯하였다.“부인께서는 모르실 것입니다. 우리가 간 곳은 왕경루였고 이미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하였거늘 시 아가씨께서는 방시원이 무장 출신이기에 그의 아내로서 용기가 없으면 안 된다고 하며 내 손을 잡고 최고층으로 날아올랐습니다. 진실로 무섭더이다. 그러나 저는 그 여인 앞에서는 울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곳의 바람이 너무 세서 눈시울이 붉어졌을 뿐이고 마차에 올라탈 때까지 눈물을 참았습니다. 미덥지 않으신다면 탕미에게 여쭈어보시지요.” 고후부인이 고개를 들어 해탕에게 물었다. “이 말이 사실이냐?” 탕미는 사실대로 대답하였다. “확실히 그러하였습니다. 시 아가씨께서 창가에서 살펴보다 더 높이 올라갈 수 있겠냐며 도발하였습니다. 방시원의 부인으로서 이리도 용기가 없어서는 안 된다 하였지요. 그때 저는 해치려는 것은 아닐 테니 따라가 보라 하였습니다. 그러다 내려올 때쯤 바람이 세게 불어 머리도 헝클어지고 두 사람 모두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그제서야 고후부인의 표정이 조금 환해졌다.“너는 계속 곁에 있었던 것이냐?” “그녀들이 올라갈 때 따라갈 수 없었지만, 야간 문밖에 항상 있었기에 그녀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고, 또한 그녀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고후부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미간은 여전히 찌푸리고 있었다.“시만자라… 솔직히 말하자면, 방시원과 의형제라 칭하였고, 말끝마다 의모라고 부르지만, 서약을 한 사이도 아니니 시만자 또한 방시원과 혼인하고자 마음먹고 너를 일부러 괴롭히는 것일 수 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염희진이 놀란 눈으로 고후부인을 바라보
시만자도 왕부로 돌아가 송석석과 염 선생을 따로 서재로 불렀다. 사여묵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결과를 듣고 싶었던 염 선생은 사여묵을 기다리려 하지 않았다. 그녀의 첫 마디에 염 선생은 결국 눈물을 흘렸다. “염 선생, 저는 그녀가 그대의 여동생임을 확신합니다!” 시만자가 떠난 후로 그는 가만히 앉지 못했다. 혹여 시만자가 그에게 고개를 젓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하여 시만자가 자리를 비운 동안 그는 너무나도 초조해져 밤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였다. 오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모습으로 마침내 시만자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가 마음의 준비도 하기 전에 시만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그 말에 깜짝 놀란 그는 눈물이 주르륵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왕비와 시만자도 함께였기에 떨리는 다리를 옮겨 책상으로 다가갔다. 그러더니 책상에 엎드린 채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 물었다.“아가씨께서 한 말에 책임질 수 있습니까? 정녕 확신하시는 겁니까?” “확신하였습니다. 그녀는 기억하고 있는 옛일들을 말해주었습니다. 염 선생은 왜 그런 것들은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어머니한테 먼지떨이로 맞은 적 있지요? 도랑에 빠져나오지 못했던 적도 할머니께서 키우시던 닭을 팔아 탕후루로 바꿨던 적도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개똥을 주워 아버지 서재 문 앞에 둔 적도 있을 겁니다.”염 선생은 흐느끼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감격에 겨워 몸을 떨었다.“그녀가 착각한게 분명합니다.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아이이고 저는 절대 아닙니다.” 그의 반응에 시만자와 송석석은 그 아이가 맞다는 것을 확실했다. 더불어 주아가 염희진이라는 것도 거의 단정 지은 뒤였다. 어린 시절의 창피한 일을 목격하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염 선생은 현재 극도로 흥분한 상태였다. 그는 여동생이 진성에 있을 줄은, 그것도 공주부에 이토록 오래 머물렀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그는 항상 그녀를 찾고자 하였으나, 언젠가부터 찾을 수 없다
정말 형부에 눌러 앉으려는 건가? 신기하기도 하지. 보통 사람은 하루라도 빨리 형부라는 곳을 떠나는 게 정상인데 왜 아직도 형부에 붙어있는 걸까?너무 이상한 일이었다. "왜 일까요?""모르겠소. 오늘 이 대인이 사건 기록을 전하며 말했는데 전북망이 유실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루에 밥도 한 끼만 먹으며 매일 거기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소. 원래는 하루만 있을 거라고 했는데 지금은 아예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고 하였소.""정말 이상합니다. 혹시 직위마저 포기한 겁니까?" 황제의 처분이 아니라는 말에 송석석도 바로 화제를 바꿨다. "협상 중에 일어난 일들을 폐하에게 보고한 후, 폐하는 조사하지 않으셨습니까?"정영수의 암살 시도는 어찌어찌 넘어갔지만 향병이 장공주에게 독을 준 일은 예전에 비주 사건과 똑같은 독이었으므로 황제도 연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조사는 반드시 할 거요. 아마 오월이가 조사할 것 같소."대리사에서는 비록 반역 사건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은 일이라 황제는 대리사에게 조사를 맡기지 않을 생각이었다.보주가 들어와 남은 음식을 치우자 궁녀 영씨가 말했다. "왕야님, 왕비님, 목욕은 일찍 준비하셔야 합니다."최근 협상 때문에 사여묵이 살이 빠진 것 같아 궁녀 영씨는 심히 걱정하고 있었다. 협상이 끝났으니 이제는 잘 회복해야 하는데 말이다. 사여묵은 잠시 눈을 깜박이더니 송석석의 손등에 손을 올리고 새끼손톱으로 송석석의 손목 피부를 스치며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빨리 준비해야겠소."설마 이 동작은…?송석석의 얼굴은 즉시 빨개졌고 귀끝까지 붉어져 급히 손을 뺐다.궁녀 영씨와 보주도 있는 데 왜 이리 가벼운 행동을 한 거지?궁녀 영씨는 그 모습에 몰래 웃으며 뒤돌아섰고 보주는 잠시 멈칫하더니 송석석의 얼굴이 갑자기 빨개진 이유를 궁금해했다.보주는 의아한 듯 궁녀 영씨의 뒷모습을 한 번 쳐다봤다. "궁녀 영씨는 왜 웃으시는 겁니까?"송석석이 급히 일어서며 말했다. "아무것도
송석석이 말했다. “나도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지금은 아직 그 단계가 아니니 그 문제는 나중에 고민하자꾸나. 정말 안 되면 다른 곳에 팔아버리면 그만이니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중요한 건 우리가 첫걸음도 제대로 떼지 못했다는 것이야.”“그래,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니... 여학은 더 힘들지 않겠느냐?”“아니다, 여학은 자리가 늘 부족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송석석이 말했다.그러자 시만자가 턱을 괴며 말했다. “그래. 기분이 좋지 않으니 오늘 밤 네 제자들에게 추가 훈련을 시켜야겠다.”송석석이 가볍게 웃었다. “시 사부, 어서 공지를 내려라. 네 제자들은 무공에 대한 열정이 아주 대단하더구나.”시만자도 웃으며 말했다. “장기문이 제일 부지런하다. 이 녀석은 항상 최선을 다해 발전도 빠르지. 무공을 배우기에 정말 좋은 자질이야. 어릴 때 사부를 만났다면 지금쯤 무공이 얼마나 뛰어났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제야 배우는 걸 보니 조금 아쉬울 뿐이다.”그 후, 송석석은 평서백부로 향했고, 시만자는 가죽 채찍을 들고 네 제자들에게 추가 훈련을 시켰다.최씨가 송석석의 말을 듣자마자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하자 송석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웃었다. “부인이 도와주시니 이제 마음이 놓입니다.”“여인은 살기가 너무 힘드니 도울 수 있으면 돕는 게 복을 쌓는 일이지요.” 최씨는 깊은 슬픔이 깃든 눈빛으로 말했다. 지난번 만났을 때는 그렇게 힘들어 보이지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왠지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송석석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부인, 무슨 일이 있으신겝니까? 괜찮으시면 말씀해 보십시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최씨도 그녀를 여러 번이고 도왔기에 그녀는 진심으로 최씨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최씨는 씁쓸하게 웃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몇 가지 작은 문제가 있긴 하다만 왕비님께 걱정을 끼칠 일은 아닙니다.”송석석도 더는 묻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그때, 하녀가 급히 뛰어와 말
소진 소주방은 모든 준비가 완료되어 언제든 사람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덕회 부인은 다과회를 열어 이 사실을 알렸고 곧 백성들의 입에도 소주방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록 말은 많았지만 이혼당한 부인 중 누구도 소주방에 발을 들이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시만자는 의아해하며 홍시와 함께 조사를 진행한 끝에 많은 이혼당한 부인들이 암자에 머무르며 고된 일에 시달렸고, 심지어 때로는 끼니조차 거르는 상황임을 알게 되었다. 물론 친정으로 돌아간 여인들도 있지만 가족들에게 시달리며 고달픈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3월 10일 십자리강에서는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경조부의 조사 결과 자식이 없다는 이유로 이혼당한 자수공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시만자는 참을 수 없는 마음에 곧바로 송석석을 찾으러 경위부로 달려갔다.송석석은 다급히 달려온 그녀를 위로하며 말했다. “이 일은 본래부터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 소주방에 아직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이유는 모두가 첫 번째 사람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지. 소주방에 들어가면 세상 사람들에게 자기가 이혼당한 부인임을 알리는 셈이 될 테니. 그걸 이겨내기 힘든 것이야.”"소주방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이혼당했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시만자는 속이 상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녀는 소진 소주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녀들을 위해 살길을 마련해 주려 했지만 기꺼이 죽음을 택하면서도 소주방에 들어오지 않는 이들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조금만 더 인내심을 가지려무나. 처음부터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우리도 알고 있었지 않느냐. 아직 시작 단계일 뿐이고 강에 투신한 그 여인도 아마 절망한 끝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그래도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한 일인데 왜 그리 어리석은 선택을 한 걸까." 시만자는 답답함과 좌절감에 잠시 고개를 숙였다.송석석은 그녀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만지며 위로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겪어보지 않았으니 우리가 그들
안태부와 목 승상은 왕부에 남아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음식은 매우 푸짐했고 좋은 술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양 마마는 손수 장수 찐빵을 만들었는데 그 위에 찍은 붉은 점이 마치 눈 위에 떨어진 한 송이 붉은 매화처럼 보였다.소 대장군은 무척 기뻐하며 술자리를 즐겼다. 식사 중 그들은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과 전 노장군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누었다. 목 승상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때 내가 전 노장군을 생각해 전북망의 중매를 서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말이오. 두 사람이 원수가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소. 정말 후회스럽군.”"사람마다 각자의 운명이 있는 법이오."안태부가 말했다. 그러고는 소 대장군을 보며 한 마디 덧붙였다. "우리도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젊은 사람들 일에 신경 쓰지 말고 우리 몸이나 건강하게 지키며 자손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게 좋지 않겠소?"이 말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지금의 황제는 젊고 기반이 불안정하며 또 일부 노신을 새로운 신하로 물갈이를 할 것이 뻔했다. 세월이 바뀌면 세상도 변하는 법이니 이미 물러났다면 그저 평범한 노인으로 사는 것도 괜찮은 일이었다.소 대장군이 웃으며 말했다. "태부의 말씀에 일리가 있으니 그리하는 것이 맞을 것이오." 이젠 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더군다나 그도 이제 나이를 먹어 성릉관을 지키긴 힘들었다. 다행히도 현재 총사령관 자리는 삼랑이 맡고 있으니 당장 무장을 바꿀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소가군은 여전히 성릉관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그들은 한껏 술을 마시다가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목 승상은 소 대장군의 손을 잡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번 이별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니 몸 건강히 지내게나, 친구.""자네도 몸조심하게!" 소 대장군은 공손히 인사하며 송별했다. 비록 술을 많이 마셨으나 여전히 산처럼 우뚝 서 있는 모습이었다.사여묵도 소 대장군과 함께 그들을 배웅했는데,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남씨가 란이의 손을
북명황실에 도착한 란이는 외조부와 남씨를 보더니 눈물을 참지 못하고 무릎을 꿇어 큰절을 올렸다. 소 대장군과 남씨는 무의식적으로 문밖을 바라보았으나 한동안 아무도 보이지 않자 잠시 실망한 기색이 스쳤다.하지만 그들은 금세 다시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남씨는 웃으며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 "바보 같은 것, 대체 왜 울고 있느냐? 외조부를 무사히 만났으니 기쁜 게 아니더냐?"그러자 란이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기쁩니다, 너무 기뻐서 그러는 겁니다."소 대장군은 외손녀가 겪은 고난을 알기에 눈가에 연민이 가득했다. "란이야, 어서 이리 오렴. 어디 찬찬히 보자꾸나."소 대장군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을 듣자, 순간 어머니의 냉담함이 떠올라란이는 가슴이 아려 눈물이 다시 흘렀다. "외조부님, 란이는 석석이 언니가 도와주고 있어서 괜찮습니다."소 대장군은 송석석을 한 번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도 많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사촌동생을 돌봐주고 있었던 것이다."너희가 서로 도울 수 있다니 외조부는 정말 기쁘다. 앞으로도 그렇게 서로 의지하거라.""예, 외조부의 말씀 꼭 명심하겠습니다." 송석석과 란이는 동시에 대답했다. 그녀들은 서로를 한 번 바라보더니 이별의 슬픔을 억누른 채 최대한 밝게 웃어 보였다.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소 대장군은 묻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그가 머뭇거리는 모습에 남씨가 란이에게 물었다. "란이야, 네 어머니는 왜 오지 않은 것이냐?"란이가 대답하려는 순간 사여묵이 목 승상과 안태부를 모시고 들어왔다. 그러자 소 대장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안태부, 목 승상, 모두 오랜만이오. 그간 모두 무탈하셨소?"안태부는 예를 갖추며 인사하고 목 승상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밖으로 나가더니 조금 있다가 다시 돌아왔다.그는 미소를 지으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소 대장군, 잠시 실례하겠소."송석석은 남씨와 란이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한 후 바로 자리
란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외조부께서 내일이면 성릉관으로 돌아가십니다. 연세가 많으시니 이번에 뵙지 못한다면 아마 다음이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게다가 이번 생신은 혼자 서쪽 별당에서 보내셨다고요. 어머니께서 함께 가셔서 오래도록 건강하시라고 축복해 드리고 싶지 않으십니까?”하지만 회왕비는 여전히 눈물을 닦으며 걱정할 뿐이었다. “아니야, 나는 못 가겠다. 게다가 그날 석석이가 찾아뵙지 않았을까?”란이는 답답해하며 말했다. “어머니,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날 외조부님 생신에 언니는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는 협상이 시작되지도 않았고 폐하께서도 아직 조치를 취하지 않으셨으니까요. 그런 부적절한 시기에 절대 그럴 수 없었을 것입니다.”회왕비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울먹였다.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는 것이냐? 어차피 대단한 날도 아니고 이제 와서 생일상 한 번 올려드린다고 달라지는 건 없지 않느냐? 네외조부님께서 막 돌아오셨을 때 물론 나도 찾아뵈려고 했다. 하지만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누가 막아서 돌아와야 했으니, 나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요즘 들어 마음의 평정을 잘 유지하고 있었던 란이었지만, 이 말을 듣고는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잠시 후, 그녀는 정신을 가다듬고 실망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됐습니다. 그럼 저도 더는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단지 마음이 여리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냉정하실 줄은 몰랐습니다.”그러자 회왕비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거의 세상이 무너지듯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를 한 번 뵙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더냐? 네가 냉정하지 않다면 어째서 네 어미가 이렇게 힘든 처지에 놓인 건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느냐? 네 부왕께서 나를 버리셨다. 집의 금은보화를 다 가져가 버렸어. 나는 이제 가진게 아무것도 없단다.”란이는 자리를 뜨려다가 어머니가 이토록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설득해 보려 했다. “부왕의 일은 따로 알아보면 됩니다. 그게 어머니가 외조부를 뵙는
저녁 식사 후, 소 대장군과 사여묵은 오랫동안 서재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송석석은 처음에 들어가서 듣고 싶었지만 소 대장군이 남자들끼리의 이야기니 그녀가 들어오면 불편할 것 같다고 하여 어쩔 수 없이 물러나야만 했다. 결국, 송석석은 평 사저와 대사형을 찾아갔다.저녁 식사 중에 사숙은 자신도 매산으로 돌아갈 예정이니 함께 가자며, 특히 대사형에게 엄격히 명령하고 돌아가도록 했다. 대사형이 왕부에 머무는 동안 많은 사람이 그를 찾아와 왕부가 소란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사실 대사형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조정의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기에 사숙은 그런 인물들과 너무 가까이 지내면 안 된다고 말했다.또한 그의 제자 사여묵에게 해를 끼칠까 우려가 되어 그들에게 반드시 왕부를 떠나라고 엄숙하게 지시했다.평 사저는 뒤에서 몰래 사숙은 일이 필요할 때만 부려 먹고 일이 끝나면 귀찮아 한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평 사저는 평소에 남을 험담하는 일이 없지만 유일하게 사숙에 대해서만은 뒷말을 하였는데, 그것도 직접 말하지 못하고 조용히 중얼거릴 뿐이었다."정말로 돌아가야 합니까? 며칠 더 머무르실 수는 없습니까…?" 그러자 송석석이 사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물었다."돌아가기 싫어도 가야 한다. 사숙님이 명령을 내리셨잖니." 평무종은 어린 사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사실 우리가 오래 머무는 것도 좋지 않다. 평소에도 사부님은 우리가 자주 너를 찾는 걸 좋아하지 않으셨으니 말이다. 우린 강호인이라 왕부에 강호인이 많이 드나드는 것도 좋지 않고, 너에게 민폐가 될 것이다.""전혀 민폐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전 그저 모두가 제 곁에 있어 주는 게 좋습니다!" 송석석이 불만스럽다는 듯 말했다. "사숙님 혼자만 돌아가라고 하십시오."그러자 평무종은 그만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조용히 말하거라. 사숙님께 들키면 나중에 벌을 받을 것이야."송석석은 고개를 들어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왕부에선 사숙님이 저에게 벌주지 않을 겁니다.
시만자는 원래 그들의 몸에 더 많은 구멍을 뚫어줄까도 생각했으나 보주의 말을 듣고 멈추기로 했다. 몇 번 더 찌른다면 피가 너무 빨리 흘러 그들이 너무 쉽게 죽을수도 있어서였다.송석석은 조상 묘지 앞의 작은 사당에서 향을 가져와 불을 붙여 향로에 꽂았다. 그러고는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무릎을 꿇고 세 번 큰절을 올렸다. 그녀는 절을 올리면서 먼저 떠난 가족들이 저세상에서 이 장면을 보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사여묵 역시 향을 피우고는 그녀 옆에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을 잡았는데, 송석석이 이미 눈물범벅이 되어 있어 그는 더욱 마음이 아팠다. 사여묵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범인이 이미 처형되었으니 장모님도 저세상에서 이제는 편히 쉴 수 있을 것이오.”송석석은 그들이 정말로 안식을 얻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비록 복수는 했지만 마음속 고통은 조금도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강해지고 행복해져야만 그들에게 진정한 위로가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서경의 두 정탐꾼은 아직 죽지 않았으나 과다 출혈로 의식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들은 서경 말로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송석석과 시만자 등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고 오직 사여묵만이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바로 “송구하다”라는 말이었다.그들 역시 자신의 잘못을 알지만 단지 인정하기 싫었을 뿐이었는데, 이제 죽음을 앞두고 있으니 그동안 저지른 일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는듯 했다. 송구하다는 말이야말로 그들이 이 묘지 앞에서 비로소 할 말이었다.사여묵이 송석석과 보주에게 전했다. “이자들이 송구스럽다고 말하는구나.”보주는 여태 애써 눈물을 참고 있었는데, 사여묵의 말을 듣자마자 결국 눈물을 터뜨리며 시만자의 품에 와락 안겼다.“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송구스럽다고 해서 이 모든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보주는 목이 찢어질 듯한 울음을 터뜨리며 외쳤다. 단지 송구하다는 말로 모든 죄
일행은 이상서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고 송석석은 내내 보주의 손을 놓지 않았다.그리고 곧 두 명의 서경 정탐이 끌려 나왔는데 그들의 옷은 이미 너덜너덜해지고 피가 묻어있었으며, 얼굴은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부어 있었다. 그들은 땅에 무릎을 꿇고 있었는데 몸이 앞쪽으로 쏠려 거의 넘어져 엎어질 지경이었다.보주는 눈에 핏대를 세운 채 그런 그들을 노려보았다.그녀와 송석석은 단 하루도 진북후부의 멸문에 대한 복수를 잊은 적이 없었다.이제 대세는 정해졌고 그녀도 마침내 가족과 송 부인 등에게 복수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그녀의 가슴 속에 있던 슬픔과 분노는 산을 무너뜨릴 듯한 기세로 솟구쳐 나왔다.보주는 당장 달려가 주먹과 발길질을 퍼붓고 싶었으나 이상서 앞에서 무례하게 굴어 왕야와 아씨의 얼굴을 깎아내릴 수 없었다.이대인이 말했다. “이 두 정탐은 형부에 보내졌을 때까지도 죽음을 각오한 듯 오만한 태도였습니다. 하관이 직접 고문을 한 것은 아니지만, 일부 사람들이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뺨을 몇 대 때렸습니다. 그들의 몸에 난 상처도 이미 잡혀 올 때부터 있었습니다.”그러자 사여묵은 평 사저의 말이 떠올랐다. 그들은 역시나 심하게 맞은 후 여기에 데려온 것이다.사여묵은 가볍게 허리를 굽히고는, 몽동이에게 그들을 데리고 송가의 조상 묘지에 가라고 지시했다.바람에 흔들리는 등불이 그림자를 드리워 날은 앞길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몽동이는 그들을 마차 앞에 묶고 말을 몰았다. 그러던중 송가의 멸문이 떠올릴 때면 그들에게 채찍을 휘둘렀다.송가 조상 묘지 앞에 도착하자, 몽동이는 발로 그들을 묘지 앞으로 걷어찼다.보주도 그들 앞으로 달려가 주먹과 발길질을 퍼부었다. 둥글게 말아 쥔 손바닥이 뺨에 연달아 떨어졌으나 마음속의 분노와 슬픔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모두 그녀를 막지 않았고 그녀가 분노를 표출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언제나 사랑스럽고 순진했던 그녀가 이토록 광기에 휩싸인 모습을 보이자 사람들은 마음 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