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의 모든 챕터: 챕터 651 - 챕터 660

1289 챕터

제651화

만종문, 심청화는 손에 서신을 들고 사숙을 찾아갔다. "사숙, 사여묵 사제가 서신을 보내왔는데 저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진성으로 한 번 오라 하였습니다." 사숙은 눈을 감은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기에 지금 누구도 상종하고 싶지 않았다. 자유롭게 출입하던 자들 또한 발이 묶였고 밖으로 나간 자들 중 돌아오지 않은 이들도 감히 다시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남강 떠나기 전 그는 북산에 집을 짓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었다. 그 땅에 오층 높이의 채성루를 지을 생각이었다. 높은 곳에 올라 달을 볼 수 있고 무공을 연마할 수도 있었다. 특히 경공을 수련하는 데에 가장 최적화된 장소였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내년 봄에 공사를 시작하려고 계획했는데 그들은 이제서야 서둘러 집을 짓고 있는 것이었다.지세가 높고, 맞은편엔 폭포가 있으니 하루라도 빨리 그 풍경을 누리려는 속셈 이었다.하지만 하나같이 별로 대단한 성과는 이루지도 않았으면서, 누리는 것에는 제일 앞장서니 화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너무 꼴불견이였다. 믿음직스럽지 못한 사형, 임병일은 이미 폐관을 선언하고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다.숨을 테면 숨어보라지. 꼭 기억해 둘 거라고 다짐한 그였다. 내년까지 채성루가 완공되지 않으면 절대 이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생각이였다. 심청화는 사숙이 말이 없자, 조심스레 다시 일깨웠다."사여묵 사제가 급하게 서신을 보내온 것이니, 분명 중요한 일이 있을 것이옵니다. 제가 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끝나면 바로 돌아오겠습니다." 그에게 별로 대꾸하고 싶지 않았지만 사여묵의 일이라고 하자 사숙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심청화는 그 작은 목소리가 사숙의 최대한의 양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사여묵의 일이 아니었더라면 분명 '꺼져라' 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는 급히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지금 바로 하산하겠사옵니다. 만약 일이 발생한다면 사숙께 다시 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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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2화

염 선생도 그 어려움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다시 입을 열었다."이렇게 하지요. 제가 대략적인 세부 사항은 다시 구술하겠습니다." 그러자 심청화는 그를 바라보았다."그녀의 모습이 기억나지 않는 것이로군요, 그렇지요?" 염 선생의 표정은 그닥 좋지 않았다."저는 한때 그녀의 모습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녀의 모습을 세세히 떠올리려 하니 웃는 얼굴과 저를 향해 '오라버니'라 부르며 달려오던 모습만 기억나네요. 세세한 모습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아요." "그렇다면 선생도 그림을 그릴 수 없겠소." 심정화가 말을 이었다."자책할 필요는 없소. 십여 년이 지났으니 잊어버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오. 우리 뇌는 고통을 피하려 하기에 그 기억이 고통스러웠다면 그녀를 떠올리는 것 역시 힘든 것이어서 자연히 잊혀지기 마련이오." 그는 염 선생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여주었다."만약 어린 시절의 그녀가 다시 선생 앞에 선다면 선생은 틀림없이 단번에 알아보실 것이오. 다만 사람은 커가는 것이고 여자는 특히 많이 변하는 법이오.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소. 기억나는 만큼만 말해 주면 되오. 특히 얼굴형, 뼈의 구조가 가장 중요하오. 얼굴의 특징도 마찬가지요. 이를테면 점이나 태어날 때부터 있던 모반이 있는지, 눈썹은 어떤 모양이었는지, 체형도 말씀해 주시오." 염 선생은 왕과 왕비를 바라보았다."두 분께서는 일을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휴식을 취하실 자들도 하시던 일을 계속하거라." 사여묵은 즉시 송석석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가세, 우리는 만금산으로 가자고." 송석석은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비가 올 것 같사옵니다." 사여묵은 속이 상했다. 비가 오면 만금산에서 일출을 볼 수 없을게 분명했다. 이것은 그가 오래전부터 세웠던 계획인데 여직 이뤄지지 않고 있으니 화가 날 뿐이였다."란이를 보러 가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러자 송석석이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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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3화

오늘 여러 사람들이 방문에 란이는 급히 옷을 갈아입고 손님을 맞이했다. 그녀의 얼굴을 본 혜태비는 이 아이가 이제 아무렇지도 않구나 싶었다. 얼굴에 드디어 혈색이 돌았기 때문이다.인사를 올리고 자리에 앉은 후, 혜태비가 물으니, 그녀는 방금 전 석소 사저와 함께 무예를 연습하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란이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너무 지루해서 석소 사저께 무술을 배워달라고 졸랐지만, 대단한 것 못 되옵니다.”“무술이라는 건 본래 대단한 건 못 되는 것이다. 너만 그런 게 아니니 신경 쓰지 말거라. 네가 즐거우면 그것으로 그만인 것이다.”너무 솔직한 혜태비의 말에 고 씨 유모는 연신 기침을 크게 했다.여기 있는 사람 대부분이 무술인이 였으니 참으로 상황이 난처해졌다.그러자 혜태비가 고 씨 유모를 흘기며 쏘아붙였다.“기침할 필요 없다. 내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니지 않느냐? 모든 것이 대단해서만 되는 것이 아니니라. 무술은 실용적이면 된다. 건강도 챙기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으면 충분하단다. 그러니 란이야, 난 네가 무술을 익히는 것을 지지하느니라.”란이는 민망한 듯 수줍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감사드리옵니다. 실상 제가 제대로 연습한 것도 아니옵니다. 그저 허우적거리며 땀을 조금 흘렸을 뿐인데, 그저 그것만으로도 개운해졌사옵니다." "맞다. 땀을 흘리면 기분이 훨씬 나아지지." 혜태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겉으로는 경험이 많은 사람처럼 보였지만, 사실 땀 흘리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다. 몸이 끈적거리고 옷에서 냄새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사여묵은 석소 사저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괴로워도 무예를 연습하며 땀을 흘리면 한결 나아지기에 아주 좋은 방법이였다. 그 역시 이전에 친히 느껴본 적 있었다."하지만 몸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으니 온전히 추스르고 나서 몸을 움직여야 한다. 지금은 너무 오래 연습하지 말거라." 송석석이 다정하게 일깨워주자 석소 사저가 말했다.“제대로 훈련한 것도 아니고 그저 그녀의 상태에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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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4화

란이의 처소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반나절이 지났다. 석소 사저는 군주께서 휴식해야 하고 비도 그쳤으니 이제 각자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했다.제수찬은 눈에 띄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한녕의 손을 잡고 성큼성큼 앞서 걸어갔다. 걷다가 문득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급히 멈춰 서며 길 한켠으로 물러서며 장모님과 매형인 사여묵에게 길을 양보하였다. 혜태비는 사위를 보며 속으로 탄식하였다. ‘결혼할 때는 거위같이 하얗고 깨끗하더니 어느새 검게 그을렸구나. 한녕도 함께 까무잡잡한 것이 촌부가 따로 없구나. 누가 보면 한녕이 농부에게 시집간 줄 알겠어. 그래도 한녕이 좋아하니 그래도 다행이구나. 제씨 가문의 자손이니 봐줘야겠다’송석석은 뒤에서 손을 잡고 걷는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며 참 보기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들이 멈추어 서고 사여묵과 그녀가 앞서 걷게 되었다. 그제야 송석석은 자신도 사여묵과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무언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제수찬과 한녕은 아주 자연스럽게 방방 뛰다가 몸을 이리저리 비틀면서 살갑게 걷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와 사여묵을 유심히 관찰해보니 맞잡은 두 손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축 처진 상태 그대로였다. 마치 두 개의 나무토막이 나란히 붙어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속으로 가벼운 한숨을 쉬었다. '사여묵은 정말로 낭만이라고는 없구나.' 왕부로 돌아와 혜태비를 방으로 모신 뒤, 두 사람은 서재로 가서 그들이 그린 그림을 보러 갔다. 초상은 이미 그려져 있었고 옆에 놓여 있었다. 염 선생은 그 옆에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초상만 바라보고 있었다.사여묵과 송석석도 다가가 보니 거기에는 동그란 얼굴에 양 갈래를 한 소녀는 커다란 눈, 작고 오똑한 콧날, 도톰한 입술과 그 입술 위에 작은 점이 하나 있었다.그 옆의 또 다른 초상에는 부부가 그려져 있었고 염 선생과 꼭 닮은 것이 아마도 부모님인 것 같았다.심청화는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성인 여인의 초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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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5화

심청화가 고개를 들었다."너희들은 먼저 나가거라. 우리 아직 끝나려면 멀었다. 아직도 많이 손봐야 하기에 아마 한두 십 폭은 그려야 할 수도 있으니라." 사여묵은 의자 위에 놓인 성숙한 여인의 초상화를 바라보며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 초상이 마치 장모님, 즉 송석석의 어머니를 닮은 듯했다. 남강 출정 전에 보았던 장모님의 모습이 아닌, 훨씬 이전의 자신이 반쯤 철이 들었을 때의 장모님 모습인 것 같았다. 그때의 장모님의 얼굴은 매우 둥글고, 웃을 때는 매우 부드러운 인상을 주었다. "가시죠."송석석이 그의 소매를 가볍게 당기자 사여묵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누구랑 많이 닮지 않았소?" "누구와 닮았다는 말씀이신지요?" 송석석은 다시 그림 속 인물을 바라보며 물었으나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사여묵은 그녀가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보고 급히 말을 돌렸다. "내가 잘못 본 것 같소. 나가세. 그들을 방해하지 말아다오." 방을 나서던 사여묵은 순간 어렸을 적 황형과 진북후부에 방문하였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의 진북후부인은 젊었고, 그 시절 송석석도 매산으로 보내지기 전이었다. 여리여리한 그녀는 매우 예쁘고 귀여웠다. 위로 여섯 오라버니를 둔 송석석은 각별한 사랑을 받았고 더불어 성격도 매우 발랄하고 사랑스러웠다. 방금 본 어린 염희진의 초상은 그녀와는 닮지 않았다. 송석석이 훨씬 더 예뻤다. 그러나 의자 위에 놓인 성인 여자의 초상은 확실히 젊었을 적의 장모님을 많이 닮은 것 같았다. 물론 그때 장모님은 초상화 속 인물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분위기가 똑같았다. 하지만 사여묵은 송석석에게 이 말을 감히 꺼내지 못했다. 자칫하면 그녀가 가족을 떠올리며 슬퍼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사여묵은 시간이 아직 이르고, 비도 그쳤으니 만금산에 가자고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그때 그녀가 보주에게 명하였다. "나는 장방으로 갈 것이니, 몽동이를 불러오너라. 그에게 할 말이 있느니라." 사여묵은 하려던 말을 삼키고, 대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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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6화

송석석이 깜짝 놀랐다."염 선생께서 장군부에 사람을 심으신 거야?" "당연하지. 진성의 다른 가문에도 있어. 하지만 깊이 스며들지 못한 곳도 있지." "그럼 왜 염 선생께 바로 보고하지 않고 나에게 말하는 거야?" "사형이 와서 줄곧 서재에 계셔서. 난 그분이 왕야의 명을 받고 있으니, 네가 돌아가서 왕야에게 바로 알리면 된다고 생각했어." 송석석은 의아해했다.“근데 왜 너랑 접촉해? 네가 이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거야? 아니면 염 선생께서 정말 너를 이리도 신뢰하시는 거야?" 몽동이는 한껏 으시댔다."당연하지! 나를 그저 사번으로만 알고 있었던 거야? 염 선생께서는 내가 거칠어 보여도 아주 세심한 면이 있다고 하시며 나에게 이 일을 맡기셨어." 말이 끝나자마자 몽동이는 제자리에서 공중회전을 몇 번 하더니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송석석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녀는 늘 몽동이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야생 원숭이처럼 느껴졌다. 병사를 이끄는 교두로서는 충분하지만, 암선과 같은 중요한 임무를 맡기기엔 부족했다. 그런데 염 선생께서 정말로 그에게 이토록 신중한 일을 맡겼다니 놀라웠다. 만약 그가 실수라도 한다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텐데 말이다.방으로 돌아간 송석석은 사여묵에게 몽동이가 보고한 일을 얘기했다. "당신과 염 선생께서 여러 명문 세가에 암선을 심어두었습니까?" 의자에 기댄 사여묵은 손을 뻗어 그녀를 자신의 옆자리에 앉혔다."그렇소. 가능한 곳은 모두 심어두었지. 하지만 각 가문에 심을 수 있는 위치는 다르오. 어떤 곳은 하인이나 시녀로, 어떤 곳은 주인의 곁에서 일하게 했고, 또 어떤 곳은 호위로 있소." 그러자 송석석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나 빠르게 움직였단 말입니까? 요즘 조용한 것 같더니 그동안 이런 일을 준비하고 있었던 거군요?" 사여묵은 여전히 평온한 표정이였다. "우리에겐 뛰어난 이들이 많지만 드러내 놓고 감시하거나 첩보 활동을 할 수는 없소.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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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7화

다음 날, 사여묵은 대리사로 돌아갔고, 송석석은 서재로 향했다. 심 사형과 염 선생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하인더러 음식을 들이라고 한뒤 더 이상 그들을 방해하지 않았다.시만자가 그녀에게 몇 마디 하자 송석석은 고개를 끄덕였다."마침 가는 길에 서우를 서원에 데려다줘야겠어." 진소설과 서우는 이제 가장 좋은 친구가 되었다. 진소설은 비록 서원에 입학할 자격은 없었으나, 서우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가는 내내 마차 안은 시끌벅적했다. 송석석은 그저 미소를 머금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가끔 한두 마디만 거들었다. 서원에 도착한 후 마차는 돌아서 유명한 찻집 앞에 멈췄다. 둘은 안으로 들어가서 앉지 않고 옆문으로 나가, 청화 골목에 도착했다. 한 저택 앞에 멈춰 선 시만자가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고청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께서는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송석석이 대뜸 물었다. "어떻게 나왔느냐? 너는 계속 림씨 가문에 머물고 있었지 않았느냐? 향귀는 너를 따라오지 않았느냐?" "아버지께서 병환이 있으셔서 돌보러 왔습니다. 향귀는 마침 언니를 찾으러 가야 해서 저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고부진은 당연히 아무런 병이 없었다. 다만 송석석과 의논하려고 이런 핑계를 댄 것이었다. 송석석과 시만자는 서재에서 고부진을 만났다. 병은 없지만 그의 하얀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다소 창백했다. 적어도 외부 사람들이 보기엔 병든 사람처럼 보였다. 의자에 앉은 그는 등이 굽어 있었고 눈에는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고청란이 몸을 숙이며 말했다. "아버지, 왕비님과 시 아가씨께서 오셨습니다." 고부진은 무심하게 대답했다. "보았다." 그러고는 송석석과 시만자를 훑어보며 말했다. "앉으시오." 송석석과 시만자는 인사도 올리지 않고 바로 앉았다. "고청란이 말하길, 그대들이 그녀의 어머니를 구해주려 한다 들었습니다. 어떤 계획인지 제가 알아야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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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8화

고청란의 눈가가 촉촉해졌다."아버지, 어머니를 구해내고 그 독녀를 무너뜨릴 수만 있다면, 저는 만 번 죽어도 사양치 않을 겁니다.." 고부진은 그녀에게 손짓하며 다정하게 말했다. "어리석은 아이로구나, 아비가 한 모든 것은 우리 가족이 잘 살아남길 바라기 때문이지, 그 누구도 죽기를 원해서 그런건 아니느니라." 바닥에 무릎을 꿇은 고청란은 얼굴을 그이 무릎에 묻으며 눈물을 쏟아냈다."아버지! 딸은 그날이 오기만을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평안하시고, 저희 자매가 아버지 어머니 곁에서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눈가마저 붉어진 고부진은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일어나거라. 왕비님께 보고 계신다. 이젠 나이가 들었으니, 더는 아이처럼 굴지 말거라." 고청란은 눈물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왕비님 죄송합니다." 송석석은 그저 담담히 말했다. "내 계획을 말하기 전에 부마님께서는 먼저 공주가 최근에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시지요." 잠시 생각에 잠기던 고부진이 대답했다. "최근 한 여자를 방시원에게 시집보내려 하고 있습니다. 그 여자는 옹현의 한 잡기단 출신이었는데, 상당한 무예를 익히고 있었지요. 잡기단이 망한 후 혼자 살 길을 찾아다니던 중 마적떼에 추격당하게 되었고 장공주가 그녀를 구했습니다. 저에게 또 첩을 들이려는 건가 싶었지만 공주부에서 예의범절을 가르치고 있었지요." "방씨 가문에서 어찌 출신이 불분명한 여자를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장공주는 그 여인에게 신분을 만들어주었을 겁니다. 맞지요?" 고부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녀는 나의 먼 사촌 여동생이 되었고 옹현의 수씨 가문의 딸, 수연이 되었습니다. 방씨 가문에서 조사하더라도 옹현에 있는 수씨 가문 출신으로 나올 겁니다." 옹현은 장공주의 봉지였으니 가짜 신분을 만드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그 여자의 원래 이름은 무엇입니까?" "주아입니다." "지금은 고후부에 거주하고 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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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9화

청화골목을 떠나자마자 시만자가 입을 열었다."네 말이 맞았어. 고부진을 믿을 수 없는 지오. 주아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 것 외에는 회왕의 존재조차 털어놓지 않았으니 말이야. 게다가 스스로를 부마라 자칭하면서 신분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있어.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어찌하여 우리에게 주아에 관한 이야기를 했을지야." "우리가 이 혼사를 막아주길 바라는 거야. 왜냐하면, 이 혼사는 그의 어머니가 주선한 것이니 이번 일에 연루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지. 또한 고후부인과 방시원의 모친 간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을 바라지 않아. 마음은 고후부에 있지만 림봉아에 얼마나 진심인지, 딸들에게 부성애가 있는지는 그 자신만이 알 거야." 시만자는 격노했다. "그 따위가! 하지만 우리의 계획을 알렸으니 틀림없이 돌아가서 장공주에게 모조리 고할 게 분명해." 송석석의 눈빛에 날카로움이 번졌다. "우리는 10월 15일 하원절이 아닌, 10월 초하루 한의절에 움직일 거야. 그날 장공주는 고승들을 초청하여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위한 초복의식을 열 생각이야. 마음이 착한 부인들은 자발적으로 기부하고, 직접 경문을 써서 함께 태우기도 하지. 한의절에 참여하는 이들은 진정으로 자비로운 사람들이지." 송석석은 계속해서 말했다. "반면, 10월 15일 하원절은 웃어른을 초청하는 것이니 모두 자비심을 가진 사람은 아니야. 그들은 이 기회를 빌어 인맥을 쌓고, 황제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야. 왜냐하면, 장공주는 그날 국운의 창성을 기원한다고 대외에 공표할 것이어서 우리가 그날에 움직이는 것은 적절치 않아." 시만자가 웃으며 말했다. "알겠어. 그녀는 우리가 15일에 움직일 것이라 생각하고 한의절에는 방비하지 않을 거란 말이지? 그럼, 다른 계획이 있어?" 송석석은 고개를 저었다."없어. 우린 매산에서 가장 거친 방법을 사용할 거야." 그러자 시만자는 순간 기뻐하며 말했다. "강제 침입이로구나! 얼마나 많은 사람을 들여보낼 생각이야?" 매산에서는 문파 간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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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0화

차루로 돌아온 그들은 그곳에서 식사와 계산을 마친 후 정문을 나서서 마차에 올라탔다.그렇게 한참 가던 중 어느 한 골목에서 홀연히 뛰어내린 시만자는 잠시 숨어 있다가 길거리로 나와 백성들 틈으로 빠르게 섞여 들어갔다. 요즘 시만자의 차림새는 극히 간소하였다. 장식이라곤 은비녀 하나만 머리에 꽂혀 있을 뿐이었기에 일반 사람이 그녀를 미행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을테지만 경계를 풀어선 안 되었다. 그녀는 이미 무공을 익힌 자라 방씨 가문까지 걷는 것이 그리 피로하지 않았고 다행히 거리도 그리 멀지 않았다.그렇게 방씨 가문에 이르렀을 때, 문 오른편에 마차 한 대가 멈춰 서 있었고, 때마침 방시원이 오 씨를 부축하며 나오고 있었다. 그 뒤에는 방 부인과 시녀 한 명이 뒤따르고 있었다.시만자는 웃으며 말했다. "오호라, 제가 정말로 때맞춰 왔군요. 나가려던 참이였습니까?" 방 부인은 웃으며 말하였다. "오셨습니까? 정말 오랜만입니다." 시만자도 얼굴에 웃음꼿이 활짝 피었다."요즘 바삐 지냈습니다. 오늘에서야 겨우 틈이 나 의모님과 의형을 뵈러 왔는데.. 외출하신겁니까?" 오 씨는 그녀의 팔을 잡아끌었다."마침 잘 왔다. 우리와 함께 고후부에 가서 그대 의형의 눈을 밝혀주도록 하지." "눈을 밝히라 함은?" 시만자는 속으로 생각하며 말했다. "설마 고후부에서 의형을 위해 아가씨를 소개하려는 것입니까?" 그러자 오 씨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왜 아니겠니? 어제 고후부인이 찾아와 그녀에게 먼 친척 조카가 옹현의 수 씨 가문의 여식인데 인품과 덕행이 훌륭하고 대범하며 예의도 바르다고 했다. 다만 나이가 조금 많다. 원래 혼약이 있었으나, 약혼자가 사망하여 혼사가 무산되었다 하더라. 옹현 같은 작은 고을에서는 겪어 보지 못한 일이고 혼사를 앞두고 남편을 먼저 보내는 것을 보고 남편의 기를 빼앗는 운명을 지녔다 하여 이제껏 혼사가 성사되지 못하였다.하더라. 이번에 고후부인을 찾아온 것도 진성에서 새로운 혼처를 찾기 위함이라 하였다." 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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