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사여묵은 대리사로 돌아갔고, 송석석은 서재로 향했다. 심 사형과 염 선생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하인더러 음식을 들이라고 한뒤 더 이상 그들을 방해하지 않았다.시만자가 그녀에게 몇 마디 하자 송석석은 고개를 끄덕였다."마침 가는 길에 서우를 서원에 데려다줘야겠어." 진소설과 서우는 이제 가장 좋은 친구가 되었다. 진소설은 비록 서원에 입학할 자격은 없었으나, 서우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가는 내내 마차 안은 시끌벅적했다. 송석석은 그저 미소를 머금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가끔 한두 마디만 거들었다. 서원에 도착한 후 마차는 돌아서 유명한 찻집 앞에 멈췄다. 둘은 안으로 들어가서 앉지 않고 옆문으로 나가, 청화 골목에 도착했다. 한 저택 앞에 멈춰 선 시만자가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고청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께서는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송석석이 대뜸 물었다. "어떻게 나왔느냐? 너는 계속 림씨 가문에 머물고 있었지 않았느냐? 향귀는 너를 따라오지 않았느냐?" "아버지께서 병환이 있으셔서 돌보러 왔습니다. 향귀는 마침 언니를 찾으러 가야 해서 저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고부진은 당연히 아무런 병이 없었다. 다만 송석석과 의논하려고 이런 핑계를 댄 것이었다. 송석석과 시만자는 서재에서 고부진을 만났다. 병은 없지만 그의 하얀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다소 창백했다. 적어도 외부 사람들이 보기엔 병든 사람처럼 보였다. 의자에 앉은 그는 등이 굽어 있었고 눈에는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고청란이 몸을 숙이며 말했다. "아버지, 왕비님과 시 아가씨께서 오셨습니다." 고부진은 무심하게 대답했다. "보았다." 그러고는 송석석과 시만자를 훑어보며 말했다. "앉으시오." 송석석과 시만자는 인사도 올리지 않고 바로 앉았다. "고청란이 말하길, 그대들이 그녀의 어머니를 구해주려 한다 들었습니다. 어떤 계획인지 제가 알아야겠
고청란의 눈가가 촉촉해졌다."아버지, 어머니를 구해내고 그 독녀를 무너뜨릴 수만 있다면, 저는 만 번 죽어도 사양치 않을 겁니다.." 고부진은 그녀에게 손짓하며 다정하게 말했다. "어리석은 아이로구나, 아비가 한 모든 것은 우리 가족이 잘 살아남길 바라기 때문이지, 그 누구도 죽기를 원해서 그런건 아니느니라." 바닥에 무릎을 꿇은 고청란은 얼굴을 그이 무릎에 묻으며 눈물을 쏟아냈다."아버지! 딸은 그날이 오기만을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평안하시고, 저희 자매가 아버지 어머니 곁에서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눈가마저 붉어진 고부진은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일어나거라. 왕비님께 보고 계신다. 이젠 나이가 들었으니, 더는 아이처럼 굴지 말거라." 고청란은 눈물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왕비님 죄송합니다." 송석석은 그저 담담히 말했다. "내 계획을 말하기 전에 부마님께서는 먼저 공주가 최근에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시지요." 잠시 생각에 잠기던 고부진이 대답했다. "최근 한 여자를 방시원에게 시집보내려 하고 있습니다. 그 여자는 옹현의 한 잡기단 출신이었는데, 상당한 무예를 익히고 있었지요. 잡기단이 망한 후 혼자 살 길을 찾아다니던 중 마적떼에 추격당하게 되었고 장공주가 그녀를 구했습니다. 저에게 또 첩을 들이려는 건가 싶었지만 공주부에서 예의범절을 가르치고 있었지요." "방씨 가문에서 어찌 출신이 불분명한 여자를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장공주는 그 여인에게 신분을 만들어주었을 겁니다. 맞지요?" 고부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녀는 나의 먼 사촌 여동생이 되었고 옹현의 수씨 가문의 딸, 수연이 되었습니다. 방씨 가문에서 조사하더라도 옹현에 있는 수씨 가문 출신으로 나올 겁니다." 옹현은 장공주의 봉지였으니 가짜 신분을 만드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그 여자의 원래 이름은 무엇입니까?" "주아입니다." "지금은 고후부에 거주하고 있습
청화골목을 떠나자마자 시만자가 입을 열었다."네 말이 맞았어. 고부진을 믿을 수 없는 지오. 주아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 것 외에는 회왕의 존재조차 털어놓지 않았으니 말이야. 게다가 스스로를 부마라 자칭하면서 신분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있어.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어찌하여 우리에게 주아에 관한 이야기를 했을지야." "우리가 이 혼사를 막아주길 바라는 거야. 왜냐하면, 이 혼사는 그의 어머니가 주선한 것이니 이번 일에 연루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지. 또한 고후부인과 방시원의 모친 간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을 바라지 않아. 마음은 고후부에 있지만 림봉아에 얼마나 진심인지, 딸들에게 부성애가 있는지는 그 자신만이 알 거야." 시만자는 격노했다. "그 따위가! 하지만 우리의 계획을 알렸으니 틀림없이 돌아가서 장공주에게 모조리 고할 게 분명해." 송석석의 눈빛에 날카로움이 번졌다. "우리는 10월 15일 하원절이 아닌, 10월 초하루 한의절에 움직일 거야. 그날 장공주는 고승들을 초청하여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위한 초복의식을 열 생각이야. 마음이 착한 부인들은 자발적으로 기부하고, 직접 경문을 써서 함께 태우기도 하지. 한의절에 참여하는 이들은 진정으로 자비로운 사람들이지." 송석석은 계속해서 말했다. "반면, 10월 15일 하원절은 웃어른을 초청하는 것이니 모두 자비심을 가진 사람은 아니야. 그들은 이 기회를 빌어 인맥을 쌓고, 황제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야. 왜냐하면, 장공주는 그날 국운의 창성을 기원한다고 대외에 공표할 것이어서 우리가 그날에 움직이는 것은 적절치 않아." 시만자가 웃으며 말했다. "알겠어. 그녀는 우리가 15일에 움직일 것이라 생각하고 한의절에는 방비하지 않을 거란 말이지? 그럼, 다른 계획이 있어?" 송석석은 고개를 저었다."없어. 우린 매산에서 가장 거친 방법을 사용할 거야." 그러자 시만자는 순간 기뻐하며 말했다. "강제 침입이로구나! 얼마나 많은 사람을 들여보낼 생각이야?" 매산에서는 문파 간 갈
차루로 돌아온 그들은 그곳에서 식사와 계산을 마친 후 정문을 나서서 마차에 올라탔다.그렇게 한참 가던 중 어느 한 골목에서 홀연히 뛰어내린 시만자는 잠시 숨어 있다가 길거리로 나와 백성들 틈으로 빠르게 섞여 들어갔다. 요즘 시만자의 차림새는 극히 간소하였다. 장식이라곤 은비녀 하나만 머리에 꽂혀 있을 뿐이었기에 일반 사람이 그녀를 미행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을테지만 경계를 풀어선 안 되었다. 그녀는 이미 무공을 익힌 자라 방씨 가문까지 걷는 것이 그리 피로하지 않았고 다행히 거리도 그리 멀지 않았다.그렇게 방씨 가문에 이르렀을 때, 문 오른편에 마차 한 대가 멈춰 서 있었고, 때마침 방시원이 오 씨를 부축하며 나오고 있었다. 그 뒤에는 방 부인과 시녀 한 명이 뒤따르고 있었다.시만자는 웃으며 말했다. "오호라, 제가 정말로 때맞춰 왔군요. 나가려던 참이였습니까?" 방 부인은 웃으며 말하였다. "오셨습니까? 정말 오랜만입니다." 시만자도 얼굴에 웃음꼿이 활짝 피었다."요즘 바삐 지냈습니다. 오늘에서야 겨우 틈이 나 의모님과 의형을 뵈러 왔는데.. 외출하신겁니까?" 오 씨는 그녀의 팔을 잡아끌었다."마침 잘 왔다. 우리와 함께 고후부에 가서 그대 의형의 눈을 밝혀주도록 하지." "눈을 밝히라 함은?" 시만자는 속으로 생각하며 말했다. "설마 고후부에서 의형을 위해 아가씨를 소개하려는 것입니까?" 그러자 오 씨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왜 아니겠니? 어제 고후부인이 찾아와 그녀에게 먼 친척 조카가 옹현의 수 씨 가문의 여식인데 인품과 덕행이 훌륭하고 대범하며 예의도 바르다고 했다. 다만 나이가 조금 많다. 원래 혼약이 있었으나, 약혼자가 사망하여 혼사가 무산되었다 하더라. 옹현 같은 작은 고을에서는 겪어 보지 못한 일이고 혼사를 앞두고 남편을 먼저 보내는 것을 보고 남편의 기를 빼앗는 운명을 지녔다 하여 이제껏 혼사가 성사되지 못하였다.하더라. 이번에 고후부인을 찾아온 것도 진성에서 새로운 혼처를 찾기 위함이라 하였다." 시만
고후부는 상국의 오랜 명문 세가였다. 하지만 오래된 가문일수록 곤란한 상황에 더 많이 처하게 되는 법.가족의 대번성 속도는 빠르나, 모든 이들에게 넉넉한 생활을 제공할 식읍은 부족하여 화려하고 부유한 삶을 유지하기 힘들어지고 있었다. 현재의 고후는 고부진의 부친이며, 그의 지도 아래 고후부는 점점 쇠퇴하고 있었다. 이미 여러 대에 걸쳐 부유한 집안이었으나, 엄격했던 가풍은 점점 느슨해져 자손들이 글공부나 무공 연습의 고생을 기피하고 있었다. 어차피 집안의 체면이 있으니, 이들은 부유한 생활을 이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고부진이 장공주와 혼인하지 않았다면, 고후부는 이미 쇠락했을 것이다. 고후도 조정에 관직이 없었고 집안 자제 중에서 오 품 이상의 직위를 가진 이가 드물어지고 있었다.시만자가 고후부에 발을 들이자, 한때 명성이 자자했음을 증명하는 가문에 대한 글들이 여기저기에 새겨져 있었다. 자신들이 잊히지 않기를 바랐던 그들이기에 정홀만 해도 두 곳에 문장이 보였다.정홀의 장식은 다소 낡았으나, 귀한 목재 가구는 세월의 풍파를 겪으면서도 더욱 겸손한 고급스러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혼인 의논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 있지 않음이 좋아 고후부인은 그들을 편홀로 초대하고 사람을 시켜 주아를 데려오게 했다.잘 가꾸어진 고후부인의 모습에서 고부진과 몇 가지 닮은 점이 있음을 느끼게 되었고 특히 눈매와 말하는 태도가 많이 똑같았다."차를 드시지요." 그녀의 입가에 띤 미소는 자애로운 기품이 넘쳤지만, 시만자는 그녀의 계획을 이미 알아차린 뒤였다. 주아는 그녀의 친정 사람이 아니었고, 수씨 가문의 성도 따르지 앟았다. 장공주가 미리 손을 쓴 것이다.수씨의 신분을 위조하려면 고후부인의 동의가 있지 않고서야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차를 마시며 소소한 대화를 나누나, 이는 서로를 치켜세우는 말들 뿐이었다. 고후부인은 몇 번이고 방시원을 살펴보았다. 몇일동안 왕청여와의 일이 떠들썩하게 퍼졌고 최근이 되어서야 겨우 잠잠해졌기 때문이다.고후부인은 차를
주아는 복잡한 감정을 감추고 시녀를 따라나섰다.이제는 그저 방씨 가문에서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방시원의 현재 신분으로는 누군들 아내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의 신분은 모두 가짜였다.정홀에 도착하자 그녀는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사뿐사뿐 걸음을 옮겼다. 단순히 걷는 법을 배우는 데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후부인은 웃음을 띠며 입을 열었다. “연아, 얼른 두 분께 인사드리거라.” 주아는 오 씨와 방 부인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렸다.“소녀, 두 분을 뵙게 되어 기쁩니다.” “이분은 방참장이시고 옆에 분은 노부인의 의녀, 시 아가씨이다.” 조금 전 시만자가 들어올 때, 오 씨가 시만자의 신분을 소개하였다.부채로 가린 채 얼굴만 살짝 비추는 정도라 교태는 부릴 수 없어 그저 평범하게 인사하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신 만자도 그녀를 바라보며 답례하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방시원 역시 손을 모아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시만자는 그녀의 단정한 외모를 살폈다. 큰 눈과 두툼하지도 얇지도 않은 입술, 매력이 돋보이는 곡선이 아름다웠고 입술 위 작은 점에서 은근한 장난기가 있어 보였다.그녀의 미모는 출중하였지만, 귀족 여성의 품격은 보이지 않고 여기저기 누비고 다닐 정도의 대범함이 깃들어 있었다.그렇다고 야만스럽다는 말은 아니었다. 그녀의 예의범절은 나무랄 데가 없었으니 말이다. 다만 한때 강호에서 생계를 유지하던 기운은 감추기 어려운 것이었고 시만자도 많이 보아왔다.사실, 송석석에게도 규칙에 얽매인 자유로움을 지니고 있었고 가끔씩 드러났다. 이 점에서 송석석과 많이 닮아있었다.비슷하다고 느끼기 시작한 시만자는 다시 한번 그녀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이 친숙함, 그녀는 심지어 주아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예의 있는 미세한 동작들이 너무나 익숙했다. 마치 고후부인과 고부진이 닮은 것처럼 말이다. 고후부인은 고부진의 어머니
오 씨가 마음에 든다고 말하려는 그때, 방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는 참으로 훌륭한 분이신 것 같아 저희도 마음에 듭니다. 다만 결혼은 중대한 일이니 서두른다고 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각자 돌아가서 물어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아가씨께서도 태도를 명확히 하지 않으셨고 오늘 겨우 한 번 뵈었기에 먼저 그녀의 뜻을 물어보는 것이 옳을 듯하옵니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요. 제가 즉시 물어보게 하겠습니다.” 그러자 방 부인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급할 것 없습니다. 만약 사람을 시켜서 물어보게 된다면, 거절하자니 거스르게 될 까 걱정일테고 동의하자니 여자로서의 체면도 있으니 부끄러워할 것입니다. 이미 두번정도 만났으니 한 번만 더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부모님도 진성에 계시지 않으니, 그녀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지요. 고후부인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맞는 말만 하는 방 부인에 고후부인도 차마 반박할 수 없었다. 모두가 귀족 가문이다 보니 혼사 논의에 경솔할 수 없었다.그러나 급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오 씨는 방 부인의 의도를 알 수 없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녀의 말도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가서 물어본다고 해도 그녀는 거절하는 것이 나을지 아니면 받아들이는게 나을지 갈피를 잡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만약 마음에 든다고 해서 승낙해버리면 결혼하고 싶어 안달 난 인상을 주게 될 것이니 소녀로서 내킬 리 없다.그러다 훗날 맘에 들기라도 하는 날에 부득이하게 “싫다”고 했던 말을 거두어들일 수는 없는 것이다.시만자는 방천허의 아내를 참으로 존경하였다. 항상 일을 철저하게 처리하기에 이러한 신중함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오 씨도 웃으며 거들었다.“맞습니다, 두 사람이 인연이라면 어떤 방법으로도 도망갈 수 없는 것이지요. 하루 이틀이야 상관없다고 봅니다.” 이렇게 된 이상 고후부인도 마지못해 웃으며 응했다. “말씀하신 대로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러면 이틀 후에 다시 방문하도록 하지
그녀들이 나간 뒤, 시만자는 그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연왕, 회왕과 장공주의 음모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시만자도 어느 정도 보류한 상태에서 말을 꺼냈기에 한의절의 계획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고 난 방시원이 자신의 조사를 바탕으로 접근했고, 그러자 진실에 거의 가까워져서 그녀들이 장공주 쪽에서부터 손을 쓸 것이라 짐작했다. 연왕의 세력이 연주에 있으니, 진성에는 전적으로 장공주와 회왕에게 의존해야 했다.장공주의 신분으로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고 장공주가 진성에서 그를 위해 여러 일을 도모하고 있었다. 장공주가 없었다면 연왕은 오른팔을 잃게 되었을 것이다. 회왕 또한 깊숙한 곳에 잡입한 상태라 누구와 접촉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방시원은 그제야 왕께서 북명왕부와의 잦은 접촉을 삼가하라 한 이유를 이해하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황제가 그들을 경계할 것을 방지한다고 여겼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니 서로 관계를 맺지 않아야만 그를 위해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다.비록 왕께서 직접 말씀하시지 않았고, 시만자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치석은 왕께서 남긴 후수라고 굳게 믿었다. 이 사건을 자세히 되새기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사실 고부진도 내가 그 주아를 아내로 맞는 것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지?” “그는 고후부를 끌어들이는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만약 실로 무슨 일이 생긴다면 방 씨 가문은 고후부를 원망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는 자신의 가문을 위해 고민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해했다. 그럼 나는 이 혼인을 일단 미뤄두겠다. 장공주가 의심할 수 없게, 또한 고부진도 지나치게 안심할 수 없을 만큼 잘 조절하겠다.” 시만자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 저는 이 문제를 알리러 왔으나 주아를 만날 수 있어 뜻밖이었습니다. 고부진이 말하기를 주아의 본래 신분은 잡기단의 일원이었고 나중에 잡기단이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해체되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여인은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다 결국 마적에게 찍혔고 이를 장공주가 구해 주었지
며칠 후, 태후궁에서 궁녀의 시신 한 구가 들것에 실려 나왔다.그날 숙청제는 즉시 칙령을 내려 수빈을 혜의궁에서 쫓아내고, 삼공주와 삼황자를 데리고 계란궁으로 이주하게 했다.계란궁은 황궁의 서북쪽 끝, 냉궁과 가까운 곳에 있어 평소 찾아오는 이조차 드물었다.칙령이 내려졌을 때, 수빈은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 오랜 시간 멍하니 굳어 있었다.그녀는 한참이 지나서야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나직이 명령했다."짐을 챙기거라."그녀는 이제 자신과 삼황자가 완전히 배제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사실, 그녀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복소의의 아이가 사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이미 각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은 너무 빨랐다. 그녀가 탄 약의 양은 극히 적은 탓에, 반드시 보름 동안 먹어야만 효과가 나타나도록 조절했기 때문이다.그런데 하루 만에 유산이 되었다는 것은 그녀가 심어둔 사람 중 누군가가 황후나 덕비에게 붙었다는 뜻이었다.그러나 그녀는 이제 그 배신자가 누구인지 따질 필요조차 없었다. 그건 더 이상 의미 없는 일이었다. 황제가 그녀의 거처를 옮기기로 했다는 것은 그가 이미 수빈이 복소의의 태아를 해하려 했음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만약 더 발버둥 친다면, 궁을 옮기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곧장 냉궁으로 내쳐질 터였다.이번 처분이 오히려 최선일 수도 있다. 추후에 더 가혹한 처벌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었다.곧 후궁 전역에 수빈의 이주 소식이 퍼졌다.불과 얼마 전만 해도 혜의궁으로 옮겨갔을 때의 화려했던 순간이 모두의 기억에 선명한데, 이제는 냉궁 근처로 밀려난 신세가 되었다. 후궁의 많은 이들이 이번 사건이 복소의의 유산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의심했다.하지만 황제의 교지에는 삼황자의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에 조용한 환경에서 요양해야 하므로, 보다 한적한 계란궁으로 이주하게 한다고 쓰여 있었다.또한, 수빈이 삼황자를 돌보아야 하므로 후궁을 관리하던 권한 당분간 내려놓을 것이며, 덕비와 함께 후궁을 보좌할 적절한 인물을
송석석은 황제라는 위치가 얼마나 갑갑한 것인지 실감했다. 이 권력의 저울질과 계산 속에서 그조차도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지금 황제는 대황자를 태자로 세우려는 듯 보였다. 그렇다면 황후는 이 일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대황자는 본래 평범한 인물이니, 만약 황후가 황자를 해하려 한 죄목까지 더해진다면 그가 태자로 자리 잡는 것도 위태로워질 것이었다.그리고 직접 손을 쓴 수빈에 대해서도 황제는 그녀의 부친을 고려해야 하기에 함부로 처벌할 수 없었다.결국, 이 사건은 절대 표면적으로 드러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한 사람도 만만한 이가 없구나."태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절대적인 권력 앞에서는 누구라도 목숨을 걸고 한 번쯤 싸워보고 싶은 법이다."송석석이 왜 이런 이야기를 자신에게 하는지 물으려 할 때, 태후가 먼저 입을 열었다."너가 궁 안의 일들을 꼭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은 가장 다루기 어려운 것이다. 폐하께서 한때 북명황실을 경계하더니, 이제는 다시 너희를 신뢰하고 있지않느냐. 누군가 그 자리를 탐낸다면 네게서 빈틈을 찾으려 할 것이다. 후궁의 음흉한 계략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어떤 일이든 한 걸음 더 깊이 들여다보고,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송석석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겠습니다."그러고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물었다."그럼 이 일은 그냥 이렇게 마무리 되는 겁니까?"태후가 고개를 저었다."저지른 죄를 어찌 그저 덮어둘 수 있겠느냐. 지금은 그대로 둔다 해도, 훗날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업보를 지고 가는 법이다."송석석이 다시 한 번 물었다."이미 모든 의도를 파악하셨는데, 후궁의 평온은 이미 깨진 것이 아닙니까? 이를 막을 수 있으시겠습니까?"태후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방금 말했듯이 사람의 마음이 가장 다루기 어려운 것이다. 한순간 천국을 꿈꾸다가도, 한순간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지. 그들의 마음먹기에 달린 일인데, 어
송석석은 사여묵으로부터 복소의의 유산 소식을 전해 들었다.진왕비는 송석석에게 함께 입궁하여 문병을 가자고 제안했고, 송석석도 이를 받아들였다.본래 송석석과 진왕비는 별다른 왕래가 없었으나, 진왕이 그녀와 함께 서경을 다녀온 이후, 진왕비는 동서지간에 자주 왕래하는 것이 좋다며 송석석에게 더욱 살갑게 굴었다.하지만 진왕비는 제씨 가문의 여인으로, 황후의 종매이긴 했지만, 황후가 금족 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황후를 찾아가지 않았다.즉, 그녀가 말하는 동서지간에 자주 왕래하는 것이 좋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귀찮은 일이 없을 때는 교류할 수 있지만, 문제가 생기면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뜻이었다.예전에 황제가 북명황실을 경계하던 시기에도 진왕비는 송석석을 철저히 피하며 혹여 화를 입을까 두려워했다.사실 이번에 진왕이 특별한 공을 세웠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저 황제의 가벼운 칭찬 한마디를 들은 정도였지만, 진왕에게는 그 한마디가 두 해나 자랑할 거리였다.그들은 함께 입궁하면서도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진왕비는 그저 몇 마디 가벼운 이야기만 했는데, 송석석은 그런 진왕비가 영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때때로 일부러 어리숙한 척 행동하며, 평온하고 안락한 삶만을 바랬기 때문이다.그렇기에 단둘이 있을 때에 그녀는 더욱 쓸데없는 말을 하지도, 남에게 꼬투리를 잡힐 행동도 하지 않았다.입궁하여 복소의를 만나게 되자, 진왕비는 이 아이와 그녀의 인연이 이미 닿아 있었다며, 결국 그 인연 덕분에 품계를 올리게 된 것이니 조만간 다시 태중으로 돌아와 전생의 모자 인연을 이어갈 것이라는 위로의 말을 한 가득 쏟아냈다.그녀가 나긋한 목소리로 덧붙였다."그러니 지금 해야 할 일은 그저 몸을 잘 돌보는 것 뿐이다. 괜히 이 일로 침울해 하면 안된다. 폐하께서 정무로 바쁘신데, 소의가 매일 울기만 하면 보시기에 번거롭지 않겠는가?"진왕비의 말은 빈틈이 없어 송석석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그녀가 한참 이야기하다가 문득 송석석을 향해 한 마디 던졌다.
자신의 궁으로 돌아오자, 숙청제는 비로소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 곧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었기 때문이다.후궁에서 벌어지는 수작들은 때로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법이다.단신의가 복소의의 태아를 보전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설령 무사히 태어난다 해도 선천적으로 허약하거나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을 아이일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숙청제는 한때 복소의에게 약을 직접 먹일까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이 아이가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 자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끝내 결단을 내리지는 못했다.한 번쯤 걸어보고 싶긴 했다.이번 일은 누군가 개입한 것이 분명했다. 그가 최근 들어 복소의의 궁에 자주 드나들었으니, 누군가는 불만을 품었을 것이 틀림없었다.덕비는 분명 복소의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복소의는 황제의 총애를 믿고 오만하게 굴며, 심지어는 덕비를 원망하는 마음까지 품었다. 그날 그녀에게 경고를 주었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덕비는 후궁을 총괄하는 인물이었다. 때문에 그녀와 수빈이 배치한 사람들이 후궁 곳곳에 퍼져 있었으니, 복소의의 태아를 해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덕비가 직접 손을 썼을 가능성은 낮았다. 만약 덕비가 아이를 해하려 했더라면 애초에 복소의를 보호해주지 않았을 것이었다. 게다가 덕비가 이황자를 데리고 자주 드나든 것도 반은 아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반은 복소의의 태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었다.복소의가 황제에게 덕비를 험담했던 것은 반드시 덕비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었다. 덕비가 이후 더 이상 찾아오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그녀가 복소의에게 손을 떼자, 마음 속에 꿍꿍이가 있던 자들이 움직이기 훨씬 쉬워졌다.그가 실망한 이유는 복소의의 태아를 잃은 것 때문이 아니었으며, 그가 바라지 않았던 후계 경쟁이 결국 벌어지고 말았다는 점이었다.그는 이 일을 벌인 자가 누구인지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황후이거나 수빈 둘 중 하나일 것
혜의궁에서는 삼황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삼공주는 그의 젖은 머리카락을 닦아주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어제 막 머리를 감았는데, 굳이 그 고양이랑 놀겠다고 해서 온 머리와 얼굴이 털투성이가 되었잖아. 다음번에도 이러면 엉덩이를 때려줄 거야."도자기처럼 매끄러운 분홍빛 살결의 귀여운 아이가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공주의 품에 기댔다."누이, 고양이는 재미있고 귀여워요. 작은 발로 내 몸을 밟고 지나갈 때면, 포근해서 기분이 좋아요. 안고 있으면 따뜻하기도 하고요."그러자 삼공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어마마마께서 그러셨잖아. 아바마마께서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그런데 넌 자꾸 아바마마께 고양이 이야기를 해서…… 그러니 요즘 아바마마께서 널 찾지 않으시는 거야."삼황자는 누이가 머리를 말려주는 대로 꼿꼿이 앉아 있으면서도 입을 다물지 않았다."아바마마와 나는 다른 사람이잖요. 당연히 각자 좋아하는 것이 다를 수도 있는 거지요. 아바마마께서 싫어한다고 해서 나까지 싫어해야 해요? 내가 고양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하니, 아바마마께서 아무리 싫어하셔도 나한테 버리라고 하시면 안 되는 거죠."삼공주는 그의 코끝을 톡 하고 건드리며 말했다."말은 참 잘하네."삼황자는 웃으며 말했다."누이가 나를 설득 수 없는 건 누이의 말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에요. 황숙께서 그러셨는데, 이치에 맞게 말을 한다면 그 누구도 이길 수 있다고 하셨거든요.""그래? 그런데 요즘 왜 황숙께 무예를 배우러 가지 않는 거야?"삼황자는 고개를 기울였다."무예라 해도 기본적인 것만 가르쳐 주시니까요. 그런 건 궁에서도 연습할 수 있어서 이미 다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말 타기는… 아직 말 위에 혼자 올라갈 수가 없으니까 좀 더 자라서 다리가 길어지면 그때 배울거에요.""다 할 수 있다고? 못 믿겠는데." 삼공주가 말했다."정말 할 수 있다니까요!"삼황자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황숙께서 며칠 동안 같은 걸 반복해
복소의는 춘당의 입가에 스친 조소를 알아채지 못했다.춘당은 복소의가 첩여로 승급될 때부터 곁에서 그녀를 모셔왔다. 그녀는 영리하고 침착한 성품을 지녀 복소의에게 여러 차례 계책을 내주었고, 당시 황후가 그녀를 끌어들이려 했을 때도 춘당은 이렇게 말했었다.‘황후마마께서 여러 번 금족 처분을 당하신 것으로 보아, 폐하께서 이미 탐탁지 않게 여기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후궁을 다스릴 권한도 없으시니, 황후마마께는 겉으로만 응하는 척하고 실질적으로는 덕비 마마와 수빈 마마께 가까이 다가가시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그리고 춘당의 말은 역시나 옳았다. 덕비는 늘 그녀를 잘 대해주었고, 먹고 입는 것 모두 넉넉히 챙겨주었다. 그 덕분에 더 이상 감히 그녀를 깔보는 자도 없어졌다.예전의 덕비는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이유로 폐하께 가까이 가려 하는 것 같아 못마땅했다."마마께서는 덕비 마마께서 오시는 것이 싫으십니까?"춘당이 그녀의 머리와 허리를 살짝 받쳐주며 말했다. 침상에 오래도록 누워만 있어 등이 아픈 그녀를 배려한 것이었다.그녀는 춘당을 신뢰했기에 자연스레 속내를 털어놓았다."내 태가 안정되었을 때는 덕비 마마께서 그리 열심히 오시지도 않으셨는데, 이제 와서 이렇게 자주 찾으시는 것이 진심이겠느냐? 분명 폐하를 의식해서 오는 것일 것이다. 게다가 폐하께서 날 아끼시기에 자주 찾아와 주시는 것인데, 매번 덕비 마마와 이황자가 끼어드는 바람에 폐하와 두세 마디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지 않느냐."춘당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하며 말했다."마마께서는 그저 몸을 잘 돌보시면 됩니다. 그 외의 일은 신경 쓰지 마세요."복소의는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밤낮으로 누워만 있어야 하다니…… 폐하께서 오실 때만 겨우 앉을 수 있구나. 이 아이는 나를 참 힘들게 한다. 부디 황자가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지. 내가 이 고생을 한 보람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춘당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반드시 마마께서 바라시는
복소의의 태는 안정적이었기에, 태의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겨울이 지나면서 태가 점점 불안정해져, 두 번의 출혈을 경험했다. 금태의는 그녀의 태를 지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지만 계속해서 침상에 누워 있어야 했기에 바닥에 내려갈 수가 없었다.갑자기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태의는 신중히 식단과 궁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들을 점검했다. 하지만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아마 황제가 장기간 약을 복용한 탓에 태아가 불안정해진 것일 가능성이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의 태에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가 침상에서 요양을 시작한 후 거의 이틀에 한 번씩 그녀를 보러 갔으며, 가끔은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는 수빈의 궁에 자주 가지 않았고, 삼황자를 어서방에 불러 들이지도 않았다.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이황자와 함께 복소의를 보러 갔고, 이로 인해 황제와 함께 몇 번의 식사를 함께했다.복소의는 첩여 시절 후궁에서 자신이 의지할 사람을 찾으려 했고, 비밀리에 수빈과 덕비에게 아첨하며 양쪽을 오갔다. 하지만 수빈은 늘 거만하게 행동했으며, 그녀가 한때 황제의 총애를 얻었기도 했기에, 복소의는 수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반면 덕비는 후궁에서 유명한 온화하고 자애로운 인물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며 위치가 낮은 여인들까지 보살펴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복소의는 점차 덕비에게 더 접근했지만 지금은 조금 고심했다. 황제가 그녀에게 올 때, 덕비가 여러 번 이황자를 데리고 왔고, 그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수빈의 성격에 이런 일을 할 리가 없었기에, 그녀는 오히려 수빈의 도도함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결국 불만을 마음속으로에만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권한이 있기에 그녀를 적대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날들이 지속되자, 그녀는 덕비가 오지 않
후궁에서는 황제의 병에 대해 추측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지금 복소의가 임신을 했다고는 하지만,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은 황제의 몸이 단순히 요양을 하면 괜찮아질 상태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황제의 편애가 계속될수록 몇몇 사람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특히 황후는 더욱 불안해했다. 그녀는 황제의 병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지금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지만 치료의 효과는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녀는 황제가 심각한 상태라고 여겼다. 황후는 복소의의 임신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의 성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을 뿐더러, 설령 황자가 태어난다고 해도 그에게 까지 순서가 올 리 없었다. 그러나 삼황자에게 집중된 황제의 편애는 그녀에게 위기의식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황제는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었을 때 그녀는 황후 자리를 선택하며 생명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며칠의 시간을 보내자, 황후는 황제가 대황자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요즘 대황자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태부와 황숙도 그를 칭찬하고 있었다. 황제도 대황자의 그러한 모습에 매우 만족해 한다고 전해 들었다.이황자와 삼황자는 그녀에게 모두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황후는 황제가 이황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겼다.최근 몇 달 동안 그녀는 거의 이황자를 본 적이 없었고, 또한 이황자가 이제는 예전처럼 열정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후는 강력한 뒷배경이 없는 덕비가 여전히 유력하지 않다고 여겼지만 수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빈의 아버지는 형부상서이며, 사여묵과 같은 공문이었다. 공무의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접촉이 분명 많았을 것이고, 수빈의 어머니인 이씨 부인은 송석석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방에 많은 돈을 기부했다. 어쩌면 이미 그녀를 손에 넣었을지도 모른다.“마마, 오늘 대황자께서 또 왕야의 칭찬을 받으셨습니다.”란주 상궁이 들어오며 웃으며 말했다.황후는 별다른 감정을 보이
숙청제는 신하들을 어서방에 불러들였고, 그들은 밤늦게까지 논의했다. 논의는 결국 단신의가 들어가서 시간이 많이 늦었음을 알리며 중단을 요청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숙청제는 팔을 뻗고 웃으면서 말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다니. 그럼 궁문도 이제 잠가야겠으니 다들 돌아가시게.”그는 여전히 기운이 넘쳤고, 특히 지금은 얼굴에 혈색이 돌아 병든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송석석은 논의 중이던 사여묵을 기다렸다. 그들은 함께 궁을 떠나 황실로 돌아갔다. 매우 피곤했던 그녀는 사여묵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마차가 황실 문 앞에 도착하자 사여묵은 그녀를 안아 들었다. 송석석은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내려오기 귀찮았기에 그대로 안겨 있었다. 그의 넓고 따뜻한 품은 정말 편안했다.그와 떨어져 있던 세 달 동안 그녀는 성릉관에서만 편히 잠을 청할 수 있었으며, 그 외의 곳에서는 늘 경계하며 지냈다. 이제 집에 돌아오니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렸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불안함을 느꼈다. 무언가 뜨겁고 큰 손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단 백부 말씀을 잊으셨나요?”귓가에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 백부가 이제 괜찮다고 말씀하셨소.”송석석은 감고있던 눈을 떠, 뜨겁고 열정적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정말인가요?”“틀림 없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술이 덮였다.불꽃이 강렬하게 타올왔다. 침실의 온도마저 높아진 듯 했다.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기에 마치 새롭게 결혼한 듯한 기분이었다!한 달 후, 상국은 시박사를 설립할 예정이었다. 이는 상국과 해외 북당과의 화물 교류를 담당할 기관이었다.원래의 시역업도 시박사의 운영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며, 상국에서 다른 국가에 판매할 수 있는 화물 목록을 정리하여 서경으로 사신을 파견해 화물 교환 협정을 체결할 것이다.이 한 달 동안 단신의는 약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