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Chapter 111 - Chapter 120

660 Chapters

제111화 내 남자

주성 그룹에 도착한 주현아는 바로 주정명이 있는 사무실로 올라갔다.안으로 들어가 보니 거기에는 어딘가 낯익은 얼굴의 남자가 있었다.다리를 꼰 채 주정명의 앞에 앉아 있던 남자는 주현아의 시선에 서둘러 몸을 일으켜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 방현수라고 합니다.”그는 주성 그룹 협력 회사의 재무팀 팀장으로 오늘은 주정명과의 미팅 때문에 이곳에 방문했다.주현아는 싱긋 웃고는 그와 악수를 했다.그녀는 그제야 이 남자를 어디에서 봤는지 떠올렸다.방현수는 송재이와 함께 춤을 춘 적이 있었고 설영준과 연지수가 끌어안고 춤추고 있는 사진 속 뒤편에 찍혔었다.방현수는 당시 송재이의 얼굴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그 장면을 떠올린 주현아는 점점 미소를 지워갔다.방현수가 주정명과의 얘기를 다 마치고 사무실을 떠나려는 그때 주현아는 그를 불러세우더니 연락처를 교환하며 서로 카톡도 추가했다.그 모습을 보던 주정명은 눈썹을 꿈틀거렸다.방현수가 사무실을 나간 뒤 그는 주현아를 향해 물었다.“너 설마 쟤가 마음에 든 거냐?”방현수는 일개 팀장일 뿐이고 설영준보다는 한참이나 급이 낮은 그런 사람이다.주현아는 그의 질문에 코웃음을 쳤다.“아빠, 내가 미쳤다고 저런 사람이 마음에 들겠어요? 다 쓸모가 있을 것 같아서 그러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송재이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방현수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다....설영준은 2시간이나 지나고 나서야 메시지를 확인했다.낯선 번호로 온 것이었지만 내용을 보는 순간 발신자가 누군지 금방 알 수 있었다.그는 메시지 내용을 캡처하고는 [내 남자]라는 세글자를 한참이나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이 말을 한 당사자인 송재이에게 캡처 사진과 메시지를 보냈다.설영준은 송재이가 주현아를 ‘도발’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그저 마지막 말에만 초점을 두었다.[네 남자가 누군데?]송재이는 그 메시지를 보고는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주현아가 이렇게 빨리 설영준에게 얘기했을 줄은 몰랐다.주현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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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화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설영준은 왼손에 휴대폰을 쥐고 오른손으로는 이마를 짚은 채 생각에 잠겼다.그러다 오후 2시가 되었을 무렵 그는 주정명과의 약속 장소로 향했다.레스토랑 룸.주정명은 설영준을 어렸을 때부터 봐왔고 나이도 그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매번 아들뻘인 설영준과 만날 때면 이상하게 불편했고 심지어는 우스갯소리로 마치 주상전하를 모시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하지만 주현아와의 약혼이 무산된 일만큼은 설씨 가문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때 설영준이 안으로 들어오고 주정명은 그저 고개를 살짝 까딱할 뿐 크게 움직이지는 않았다.웨이터가 들어온 후 설영준은 주정명이 즐기는 우롱차를 주문했다.“기억력이 좋구나. 이제는 예비 사위도 아닌데 내가 즐겨 마시던 것도 다 기억하고.”“그럼요. 그래서 누가 언제 무슨 짓을 어떻게 했는지 같은 것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웨이터가 나간 뒤 설준영은 주정명을 바라보며 뼈 있는 말을 꺼냈다.이에 주정명은 테이블 아래로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아무래도 설영준이 무언가를 단단히 준비하고 온 듯했다.그리고 그 무언가가 오케스트라 인수 건보다 더 강력하고 날카로운 무기일 것 같은 불길한 예감도 들었다.“최근 주성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움직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 여자가 속해 있는 오케스트라를 인수하시겠다고요? 돌려 말할 생각 없습니다. 그 인수 건 계속 진행할 생각이라면 저도 대표님께서 몇 년 전에 저질렀던 일을 그대로 경찰서에 넘기도록 하겠습니다.”“...뭐야?”설영준은 그의 여자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이름을 대지 않았다.주정명은 이미 머리가 새하얘져 입이 바짝 말라왔다.“설영준, 너 지금 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기나 해?”“20년 전, 대표님이 건설회사 대표직을 맡고 있었을 당시 부실공사로 다리 하나가 붕괴했었죠. 그때 3명이 사망하고 여러 명이 부상을 입은 인명피해가 있었고요. 사건이 일어난 뒤 대표님은 제일 먼저 다리 공사 총 책임자를 매수해 수치를 조작했고 가짜 증언을 하게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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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화 네가 내 남자가 아니라는 거 잘 알고 있다고

저녁.송재이는 서유리와 함께 빌딩에서 걸어 나왔다.빌딩 바로 앞 도로변에 검은색 벤틀리 한 대가 멈춰서 있었다.그 차가 설영준의 차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린 서유리는 옆에 있는 송재이에게 눈치를 주었다.설영준은 송재이를 발견하고는 창문을 내려 짧은 한마디를 던졌다.“타요.”그의 얼굴을 본 순간 송재이는 그가 ‘네 남자’라 했던 말이 생각나 어딘가 모르게 민망하고 또 어색했다.저녁 바람이 솔솔 불어와 그녀의 머리카락을 흩트려놓았다.송재이는 머리를 뒤로 한번 쓸어넘긴 다음 운전석에 앉은 그를 향해 말했다.“유리 씨랑 가야할 곳이 있어요. 먼저 가요.”그녀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서유리는 처음 듣는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설영준은 피식 웃더니 능글맞은 얼굴로 말했다.“정말 안 탈 거예요? 악단이 곧 인수되게 생겼다던데 그 인수하려는 사람이 나란 생각은 못 하나 봐요?”그 말에 송재이와 서유리는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서유리는 서둘러 송재이를 차량 쪽으로 떠밀며 말했다.“빨리 가서 어떻게 된 건지 알아봐요. 그리고 인수하려는 사람이 정말 대표님이라면 그때는 미인계로 어떻게 해봐요, 알겠죠?”송재이는 어이가 없었다.미인계라니!그때 빌딩 안에서 사람들이 밀려 나왔고 그들을 보고는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어쩔 수 없이 송재이는 서유리와 인사하고 난 후 차에 올라탔다.한동안 설영준에게서는 처음 맡아보는 여자 향수 냄새가 났었다. 그 냄새가 주현아의 향수 냄새였다는 것은 뒤늦게 알았다.하지만 최근 그에게서 그녀의 향수 냄새는 사라졌고 지금도 설영준의 차 안에서는 은은한 우디향만 풍겼다.어쩐지 기분이 좋아진 송재이는 시트에 등을 편히 기댔다.그리고 차에 시동이 걸리고 나서야 고개를 돌려 물었다.“인수된다는 거 알고 있었어?”“응, 들었어.”그 말은 인수하려는 사람이 설영준은 아니라는 소리였다.‘아까는 그냥 하는 소리였나 보네. 설영준이 아니면 대체 누구지?’“그런데 우리 지금 어디가?”송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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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화 나는 눈 딱 감고 넘어가는 거 못 해

저녁 8시.차량은 유럽풍 건축물 앞에서 드디어 멈춰 섰다.송재이는 안젤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조금은 쌀쌀한 공기가 불어왔다.건축물 앞에는 돌로 된 담장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설영준은 담장 옆 출입문으로 들어가려는 듯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이 안쪽에 라벤더 꽃밭이 있어. 거기는 여기처럼 춥지 않을 거야.”송재이는 그가 내민 손을 잡고 출입문을 향해 걸었다.사람들의 출입이 많지 않았던 탓인지 입구 쪽 바닥은 온통 넝쿨로 덮여 있었다.‘이래서 손을 잡으라고 한 거구나.’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넝쿨을 피해 안으로 들어갔다.평평한 바닥까지 왔음에도 설영준은 손잡은 걸 잊은 것인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송재이도 굳이 그 사실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그의 뒤를 따라 5분 정도 걸어가니 탁 트인 라벤더 꽃밭이 눈에 들어왔다.은은한 달빛 아래 꽃들은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이리저리 흔들렸다.주위는 무척이나 조용해 마치 현실 세계와는 동떨어진 또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송재이는 코끝을 간지럽히는 라벤더 향기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그러고는 대자연 한가운데서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만끽했다.설영준은 고개를 돌려 그런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내 생일이 언제인지는 알아봤어?”갑자기 들려온 그의 목소리에 송재이는 그제야 두 눈을 떴다.“누구한테 물었는데?”‘누구한테 물었냐니, 정말 몰라서 하는 소리인가? 주현아가 메시지에서 다 얘기했을 텐데?’송재이는 고개를 돌려 할 말 가득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그가 또다시 말을 하려고 하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내가 정말 네 생일을 모른다고 생각해? 7월 17일이잖아! 너야말로 나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지?”그녀의 말투에는 원망과 속상함이 묻어있었다.설영준은 그녀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 드는 것을 보고 물었다.“예를 들면?”“셀 수도 없이 많아.”송재이는 기분이 확 나빠져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일을 입에 올렸다.“나는 몇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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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화 주현아의 꿍꿍이

주정명에게 맞은 후 주현아는 방안에 틀어박혀 한참을 울었다.송재이에게 했던 짓을 아빠에게 전부 다 들켜버렸다.주현아는 줄곧 아빠만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존재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아빠의 마음속 1순위는 자신이 아닌 아빠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다.주현아는 시커먼 방 안에서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눈물을 뚝뚝 흘렸다.하지만 서럽게 울면서도 휴대폰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코를 훌쩍이며 카톡을 훑어보던 그때 방현수라는 이름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주현아는 몸을 벌떡 일으키고 불을 켰다.그러고는 소파에 다시 앉아 방현수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그녀는 방현수에게 여자친구는 있는지, 만약 없다면 그에게 관심이 있는 여자가 있는데 소개받을 의향은 있는지 물었다.그러나 방현수는 좀처럼 메시지를 읽지 않았다.어쩌면 시간이 늦어 휴대폰 확인이 늦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주현아는 내일 다시 연락해도 늦지 않기에 일단은 바로 다음 스텝으로 넘어갔다.그녀는 친구 목록에서 송재이가 소속된 오케스트라의 단장을 찾아내 말을 걸었다.단장과 말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그녀는 별다른 인사 없이 친구 집 아이가 피아노 레슨을 받고 싶다고 한다며 송재이의 카톡 ID를 요구했다.단장은 주현아와 송재이가 원한이 깊은 사이라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그저 송재이에게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아무런 고민 없이 바로 카톡 ID를 보내주었다.그 시각, 송재이는 샤워를 마치고 의자에 앉아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그러다 카톡 친구 추가 알림음을 받았다.상대방은 정체를 숨길 생각이 전혀 없는 듯 바로 자신이 주현아라고 밝혔다.송재이는 그걸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그녀는 두 사람이 친구 추가까지 해서 할 얘기가 뭐가 있을까 싶었다.주현아가 며칠 전 송재이에게 한 방 먹고서는 자존심도 없이 먼저 친구 추가를 보낸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송재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주현아가 이러는 이유가 궁금해 결국 친구 신청을 수락했다.몇 분 후, 주현아에게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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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화 방현수

주현아의 메시지를 본 방현수의 첫 반응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그는 지난번 송재이와 함께 춤을 추던 광경을 자세히 떠올렸다. 당시 송재이는 그를 앞에 두고 부끄러워하거나 설레하는 모습을 보인 적은 없다.오히려 관심이 있었던 것은 방현수 쪽이었다.방현수는 주현아의 메시지를 몇 번이나 확인하면서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오늘 하루 방현수는 줄곧 마음이 싱숭생숭했다.송재이에게 관심이 있는 건 맞지만 그로 인해 괜한 트러블을 일으키고 싶지도 않았다.제일 밑층부터 한 걸음 한 걸음 지금의 자리에 서기까지 절대 쉽지 않았다. 그러니 작은 실수로 미래를 망치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언제나 신중했고 절대 충동적인 법이 없다.방현수는 송재이와 춤을 추고 있을 당시 설영준이 나타났던 장면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때 설영준의 시선은 오로지 송재이에게만 머물러 있었고 그 눈빛은 분명히 남자가 여자를 보는 눈빛이었다.설영준과 송재이가 어떤 관계로 엮여 있는 것까지는 모르지만 절대 단순한 사이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말을 하지 않아도 그들 사이에는 미묘하고 또 뭔가 끓어오를 것 같은 그런 기류가 흘렀으니까.방현수는 브라운 호텔 프런트 데스크에 전화를 걸어 호텔 방을 잡은 고객의 이름을 물었다.그러자 데스크 직원은 친절한 안내와 함께 주현아의 이름을 말해주었다.주현아는 제 이름으로 방을 잡고 송재이를 미끼로 방현수를 끌어들이려는 것이다.순간 방현수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 들었다.주현아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 미끼를 덥석 무는 순간 그는 더 이상 물속으로는 도망치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그리고 이대로 호텔에 가면 분명 설영준에게 찍히게 될 것이다.방현수는 주현아라는 여자의 행동에 치를 떨면서 동시에 경멸했다.‘나를 가지고 뭘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그렇게는 안 되지.’만약 그가 조금만 더 충동적인 사람이었다면 아마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어졌을지도 모른다.방현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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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화 기대했던 얼굴이 아니야?

설영준은 오늘 저녁 있을 식사 약속을 여진에게 맡기고 자신은 브라운 호텔로 향했다.홀로 차를 몰고 호텔로 가는 길, 그는 송재이가 보낸 카톡을 보았다.송재이는 주현아가 브라운 호텔로 자신을 불러냈다며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지만 이대로 그녀의 초대에 응하지 않으면 앞으로 계속 이런 일이 있을 것 같으니 만나러 가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혹시 위험할 수 있으니 그에게 미리 연락해주는 것이라고 했다.송재가 설영준에게 도움을 구한 건 아주 본능적인 행동이었다.몸이 가까워지니 마음도 덩달아 가까워진 듯싶다.송재이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지금 그녀는 그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다. 위험을 느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인물이 설영준이라는 것은 그 방증일 테니까.설영준의 보호 아래라면 그녀는 안심이 되었다.설영준은 메시지를 받고 빨간불일 때 그녀에게 답장을 보냈다.[내가 널 지켜줄 거라고 확신하나 봐?]직접 얼굴을 마주 본 게 아닌데도 송재이는 지금 설영준이 얼마나 약이 오르는 얼굴을 하고 있는지 상상이 됐다.그녀는 휴대폰을 집어넣고 아무런 말도 보내지 않았다. 그가 메시지를 확인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브라운 호텔 1705호.송재이는 차가 막히는 바람에 10분 정도 지각하고 말았다.약속 시간 1분 전, 그녀는 중요한 물건이니 늦으면 안 된다는 주현아의 신신당부 문자를 받았다.그럴싸한 핑계에 송재이는 코웃음을 쳤다.주현아가 어떤 함정을 파놓은 것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설영준이 지켜줄 거라고 생각하니 더 이상 겁이 나지 않았다.송재이는 방문 앞에 서서 깊게 한숨을 들이켜고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하지만 그때 노크도 하지 않았는데 문이 갑자기 열려버렸다.그녀는 젖은 머리를 한 채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보며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너...!”“왜, 기대했던 얼굴이 아니야?”설영준은 가운을 입고 있었고 이제 막 샤워를 마친 건지 은은한 바디워시 향기와 열기가 몸을 감싸고 있었다.그는 송재이의 허리를 감싸 방 안으로 들인 다음 곧바로 문을 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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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화 내가 네 남자친구가 되면 관여할 수 있는 거야?

송재이의 표정은 정말 방현수를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가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그녀이긴 하지만 지금은 거짓말이 아니라고 설영준은 확신했다.그녀는 정말 방현수를 모르고 있다. 그저 방현수의 일방적인 감정일 뿐이다.예쁘고 청순한 여자를 싫어할 남자는 없으니까.설영준은 그녀의 허리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주며 말했다.“기억 안 나면 됐어.”이쯤 되니 송재이도 오늘 밤 주인공이 자신과 아까 설영준이 말한 방현수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그 남자가 주현아와 한패였던 것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이곳으로 오기 전 갑자기 생각을 바꿔 설영준에게 알린 덕에 주현아의 속셈에 놀아나지 않을 수 있었다.그리고 그 말은 도움 메시지를 보냈을 때 설영준은 이미 오늘 밤 아무런 위험도 없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그는 다 알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녀가 방문 앞에 서기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너는 주현아가 어떤 속셈인지 다 알고 있었지? 대체 그 여자는 목적이 뭐야? 이런 짓을 해서 얻는 게 뭐냐고.”송재이는 눈살을 찌푸리고 화를 냈다.“방현수와 너를 한방에 넣어 너와 나 사이를 훼방 놓으려는 거겠지.”“하! 혼자 말도 안 되는 상상을 잘도 했네.”“너랑 방현수가 하룻밤을 같이 보내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야 아니면 우리 사이가 안 좋아질 거라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야?”“...둘 다.”송재이는 그의 눈을 피해 대답했다.설영준은 입꼬리를 씩 올려 웃더니 그녀의 턱을 잡아 다시 한번 눈을 마주치게 했다.“내가 아닌 다른 남자와는 자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돼?”송재이는 여유로워 보이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려버렸다.“그러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그럴 기회가 없었을 뿐이야. 방현수라는 사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알아? 마침 내가 좋아하는 얼굴일 수도 있잖아. 만약 네가 여기 오지 않았으면 나는 이번 기회에 그 방현수 씨랑 즐겁게 대화나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어차피 나는 지금 미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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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화 순간적인 감정에 취해 뱉은 말

송재이는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꿈을 꾼 것일까?어쩌면 그저 환청일 수도 있다.다음 날 아침, 눈을 뜨고 옆을 보니 설영준은 아직 자고 있었다.언제나 빨리 기상하던 그가 늦잠을 자는 건 꽤 의외인 일이었다.송재이는 씻고 나온 다음 의자에 앉아 화장하기 시작했다. 립스틱 바르기에 열중한 탓에 그녀는 설영준이 언제 일어나 언제 바로 뒤까지 다가왔는지 몰랐다.송재이가 거울로 그의 모습을 확인했을 때 그는 손에 담배를 쥐고 있었다.연기를 한 모금 내뱉자 방 안에는 연기가 자욱이 깔렸다.두 사람은 거울로 서로의 두 눈을 쳐다보았다.금방이라도 타오를 것 같은 그의 눈동자에 송재이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얼굴은 어느새 핑크빛으로 물들었다.그녀는 여전히 설영준을 좋아하고 있고 그에게 잔뜩 매료된 상태이다.다만 어제 그녀가 했던 말대로 남자를 많이 만나보지 않아서, 지금까지 잠자리를 함께 한 사람이 설영준이라는 남자 하나뿐이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송재이는 함께 잠자리한 남자의 일에는 한없이 물러진다. 아무리 화가 나는 짓을 해도 어쩔 수 없이 봐주게 된다.립스틱을 바르는 도중 그녀는 다른 생각에 정신이 팔려 손이 멈췄다.설영준은 그 모습을 보더니 손에 든 담배를 끄고 말했다.“도와줄게.”그러고는 그녀의 손에 든 립스틱을 집어 들고 그녀의 몸을 옆으로 돌렸다.그는 허리를 숙인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송재이의 입술에 립스틱을 발라주었다.설영준의 시선은 도톰한 그녀의 입술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애초에 립스틱을 발라주겠다고 한 것도 사심이 가득 담긴 말이었다.립스틱이 다 발려지고 난 뒤 그 사심은 곧바로 드러나고야 말았다.그는 그녀의 입술에 거칠게 입을 부딪쳐왔다.“읍...”방금 다 바른 립스틱이 금세 그의 입속으로 들어갔다.설영준의 품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쳐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송재는 그저 고개를 든 채 그가 하는 대로 끌려가는 수밖에 없었다.잠시 후, 떨어질 것 같지 않았던 입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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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화 속도 없는 여자

송재이는 자신과 설영준의 사이가 점점 더 돌이킬 수 없는 수렁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깔끔하게 그를 포기하고 내려놓으라고 매번 세뇌하듯 되뇌어 보지만 그와 잠자리를 함께 하고 나면 또다시 그가 주는 달콤함에 젖어 되도 않는 행복 회로를 돌리곤 했다.그녀는 남녀 사이 관계에 있어 아직 설영준처럼 어른스럽고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상대방은 고작 하룻밤을 원하는 것뿐인데 그녀는 언제나 ‘혹시’라는 기대를 품고야 말고 잠자리가 끝난 다음에는 항상 그렇듯 홀로 마음의 상처를 받곤 한다....저녁.송재이는 수업을 위해 민효연의 별장으로 향했다.집으로 들어가 보니 민효연은 일 때문에 자리를 비웠고 거실에는 막 출장을 다녀온 도정원이 연우와 놀아주고 있었다.수업 중, 송재이는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고 넋 놓기 일쑤였다.그 모습을 전부 다 지켜본 도정원은 수업이 끝난 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닌지 물었다.이에 송재이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아무 일도 없다고 대답했다.하지만 도정원은 대충 짐작이 갔다. 그녀의 기분을 좌지우지하는 건 언제나 그 남자뿐이었으니까.도정원은 처음부터 설영준과 송재이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설영준이라는 남자는 여자들이 환장할 외모를 가지고 있어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역시 여자 문제가 끊이지 않을 남자다.남자는 남자가 봐야 정확하다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었다.설영준은 연애하면 좋은 남자일지는 몰라도 결혼한 뒤 좋은 남편이 될 사람은 아니다.만약 송재이가 이제 막 20살이 된 여자고 남녀 사이의 감정을 가볍게 여기는 타입이라면 도정원도 이런 걱정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송재이는 그런 여자가 아니고 그렇기에 설영준이라는 남자를 감당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도정원은 어렵게 찾은 동생이니만큼 그녀에게 더욱더 신경을 써주고 싶었다.“연우랑 같이 식사하러 가요, 우리.”도정원은 소파 위에 놓인 겉옷을 걸치며 자연스럽게 말했다.송재이는 지난번 설영준이 화를 냈던 것을 떠올리고 처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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