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아의 메시지를 본 방현수의 첫 반응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그는 지난번 송재이와 함께 춤을 추던 광경을 자세히 떠올렸다. 당시 송재이는 그를 앞에 두고 부끄러워하거나 설레하는 모습을 보인 적은 없다.오히려 관심이 있었던 것은 방현수 쪽이었다.방현수는 주현아의 메시지를 몇 번이나 확인하면서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오늘 하루 방현수는 줄곧 마음이 싱숭생숭했다.송재이에게 관심이 있는 건 맞지만 그로 인해 괜한 트러블을 일으키고 싶지도 않았다.제일 밑층부터 한 걸음 한 걸음 지금의 자리에 서기까지 절대 쉽지 않았다. 그러니 작은 실수로 미래를 망치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언제나 신중했고 절대 충동적인 법이 없다.방현수는 송재이와 춤을 추고 있을 당시 설영준이 나타났던 장면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때 설영준의 시선은 오로지 송재이에게만 머물러 있었고 그 눈빛은 분명히 남자가 여자를 보는 눈빛이었다.설영준과 송재이가 어떤 관계로 엮여 있는 것까지는 모르지만 절대 단순한 사이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말을 하지 않아도 그들 사이에는 미묘하고 또 뭔가 끓어오를 것 같은 그런 기류가 흘렀으니까.방현수는 브라운 호텔 프런트 데스크에 전화를 걸어 호텔 방을 잡은 고객의 이름을 물었다.그러자 데스크 직원은 친절한 안내와 함께 주현아의 이름을 말해주었다.주현아는 제 이름으로 방을 잡고 송재이를 미끼로 방현수를 끌어들이려는 것이다.순간 방현수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 들었다.주현아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 미끼를 덥석 무는 순간 그는 더 이상 물속으로는 도망치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그리고 이대로 호텔에 가면 분명 설영준에게 찍히게 될 것이다.방현수는 주현아라는 여자의 행동에 치를 떨면서 동시에 경멸했다.‘나를 가지고 뭘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그렇게는 안 되지.’만약 그가 조금만 더 충동적인 사람이었다면 아마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어졌을지도 모른다.방현수는
설영준은 오늘 저녁 있을 식사 약속을 여진에게 맡기고 자신은 브라운 호텔로 향했다.홀로 차를 몰고 호텔로 가는 길, 그는 송재이가 보낸 카톡을 보았다.송재이는 주현아가 브라운 호텔로 자신을 불러냈다며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지만 이대로 그녀의 초대에 응하지 않으면 앞으로 계속 이런 일이 있을 것 같으니 만나러 가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혹시 위험할 수 있으니 그에게 미리 연락해주는 것이라고 했다.송재가 설영준에게 도움을 구한 건 아주 본능적인 행동이었다.몸이 가까워지니 마음도 덩달아 가까워진 듯싶다.송재이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지금 그녀는 그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다. 위험을 느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인물이 설영준이라는 것은 그 방증일 테니까.설영준의 보호 아래라면 그녀는 안심이 되었다.설영준은 메시지를 받고 빨간불일 때 그녀에게 답장을 보냈다.[내가 널 지켜줄 거라고 확신하나 봐?]직접 얼굴을 마주 본 게 아닌데도 송재이는 지금 설영준이 얼마나 약이 오르는 얼굴을 하고 있는지 상상이 됐다.그녀는 휴대폰을 집어넣고 아무런 말도 보내지 않았다. 그가 메시지를 확인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브라운 호텔 1705호.송재이는 차가 막히는 바람에 10분 정도 지각하고 말았다.약속 시간 1분 전, 그녀는 중요한 물건이니 늦으면 안 된다는 주현아의 신신당부 문자를 받았다.그럴싸한 핑계에 송재이는 코웃음을 쳤다.주현아가 어떤 함정을 파놓은 것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설영준이 지켜줄 거라고 생각하니 더 이상 겁이 나지 않았다.송재이는 방문 앞에 서서 깊게 한숨을 들이켜고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하지만 그때 노크도 하지 않았는데 문이 갑자기 열려버렸다.그녀는 젖은 머리를 한 채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보며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너...!”“왜, 기대했던 얼굴이 아니야?”설영준은 가운을 입고 있었고 이제 막 샤워를 마친 건지 은은한 바디워시 향기와 열기가 몸을 감싸고 있었다.그는 송재이의 허리를 감싸 방 안으로 들인 다음 곧바로 문을 닫
송재이의 표정은 정말 방현수를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가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그녀이긴 하지만 지금은 거짓말이 아니라고 설영준은 확신했다.그녀는 정말 방현수를 모르고 있다. 그저 방현수의 일방적인 감정일 뿐이다.예쁘고 청순한 여자를 싫어할 남자는 없으니까.설영준은 그녀의 허리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주며 말했다.“기억 안 나면 됐어.”이쯤 되니 송재이도 오늘 밤 주인공이 자신과 아까 설영준이 말한 방현수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그 남자가 주현아와 한패였던 것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이곳으로 오기 전 갑자기 생각을 바꿔 설영준에게 알린 덕에 주현아의 속셈에 놀아나지 않을 수 있었다.그리고 그 말은 도움 메시지를 보냈을 때 설영준은 이미 오늘 밤 아무런 위험도 없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그는 다 알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녀가 방문 앞에 서기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너는 주현아가 어떤 속셈인지 다 알고 있었지? 대체 그 여자는 목적이 뭐야? 이런 짓을 해서 얻는 게 뭐냐고.”송재이는 눈살을 찌푸리고 화를 냈다.“방현수와 너를 한방에 넣어 너와 나 사이를 훼방 놓으려는 거겠지.”“하! 혼자 말도 안 되는 상상을 잘도 했네.”“너랑 방현수가 하룻밤을 같이 보내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야 아니면 우리 사이가 안 좋아질 거라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야?”“...둘 다.”송재이는 그의 눈을 피해 대답했다.설영준은 입꼬리를 씩 올려 웃더니 그녀의 턱을 잡아 다시 한번 눈을 마주치게 했다.“내가 아닌 다른 남자와는 자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돼?”송재이는 여유로워 보이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려버렸다.“그러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그럴 기회가 없었을 뿐이야. 방현수라는 사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알아? 마침 내가 좋아하는 얼굴일 수도 있잖아. 만약 네가 여기 오지 않았으면 나는 이번 기회에 그 방현수 씨랑 즐겁게 대화나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어차피 나는 지금 미혼...”말
송재이는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꿈을 꾼 것일까?어쩌면 그저 환청일 수도 있다.다음 날 아침, 눈을 뜨고 옆을 보니 설영준은 아직 자고 있었다.언제나 빨리 기상하던 그가 늦잠을 자는 건 꽤 의외인 일이었다.송재이는 씻고 나온 다음 의자에 앉아 화장하기 시작했다. 립스틱 바르기에 열중한 탓에 그녀는 설영준이 언제 일어나 언제 바로 뒤까지 다가왔는지 몰랐다.송재이가 거울로 그의 모습을 확인했을 때 그는 손에 담배를 쥐고 있었다.연기를 한 모금 내뱉자 방 안에는 연기가 자욱이 깔렸다.두 사람은 거울로 서로의 두 눈을 쳐다보았다.금방이라도 타오를 것 같은 그의 눈동자에 송재이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얼굴은 어느새 핑크빛으로 물들었다.그녀는 여전히 설영준을 좋아하고 있고 그에게 잔뜩 매료된 상태이다.다만 어제 그녀가 했던 말대로 남자를 많이 만나보지 않아서, 지금까지 잠자리를 함께 한 사람이 설영준이라는 남자 하나뿐이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송재이는 함께 잠자리한 남자의 일에는 한없이 물러진다. 아무리 화가 나는 짓을 해도 어쩔 수 없이 봐주게 된다.립스틱을 바르는 도중 그녀는 다른 생각에 정신이 팔려 손이 멈췄다.설영준은 그 모습을 보더니 손에 든 담배를 끄고 말했다.“도와줄게.”그러고는 그녀의 손에 든 립스틱을 집어 들고 그녀의 몸을 옆으로 돌렸다.그는 허리를 숙인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송재이의 입술에 립스틱을 발라주었다.설영준의 시선은 도톰한 그녀의 입술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애초에 립스틱을 발라주겠다고 한 것도 사심이 가득 담긴 말이었다.립스틱이 다 발려지고 난 뒤 그 사심은 곧바로 드러나고야 말았다.그는 그녀의 입술에 거칠게 입을 부딪쳐왔다.“읍...”방금 다 바른 립스틱이 금세 그의 입속으로 들어갔다.설영준의 품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쳐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송재는 그저 고개를 든 채 그가 하는 대로 끌려가는 수밖에 없었다.잠시 후, 떨어질 것 같지 않았던 입술이
송재이는 자신과 설영준의 사이가 점점 더 돌이킬 수 없는 수렁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깔끔하게 그를 포기하고 내려놓으라고 매번 세뇌하듯 되뇌어 보지만 그와 잠자리를 함께 하고 나면 또다시 그가 주는 달콤함에 젖어 되도 않는 행복 회로를 돌리곤 했다.그녀는 남녀 사이 관계에 있어 아직 설영준처럼 어른스럽고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상대방은 고작 하룻밤을 원하는 것뿐인데 그녀는 언제나 ‘혹시’라는 기대를 품고야 말고 잠자리가 끝난 다음에는 항상 그렇듯 홀로 마음의 상처를 받곤 한다....저녁.송재이는 수업을 위해 민효연의 별장으로 향했다.집으로 들어가 보니 민효연은 일 때문에 자리를 비웠고 거실에는 막 출장을 다녀온 도정원이 연우와 놀아주고 있었다.수업 중, 송재이는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고 넋 놓기 일쑤였다.그 모습을 전부 다 지켜본 도정원은 수업이 끝난 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닌지 물었다.이에 송재이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아무 일도 없다고 대답했다.하지만 도정원은 대충 짐작이 갔다. 그녀의 기분을 좌지우지하는 건 언제나 그 남자뿐이었으니까.도정원은 처음부터 설영준과 송재이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설영준이라는 남자는 여자들이 환장할 외모를 가지고 있어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역시 여자 문제가 끊이지 않을 남자다.남자는 남자가 봐야 정확하다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었다.설영준은 연애하면 좋은 남자일지는 몰라도 결혼한 뒤 좋은 남편이 될 사람은 아니다.만약 송재이가 이제 막 20살이 된 여자고 남녀 사이의 감정을 가볍게 여기는 타입이라면 도정원도 이런 걱정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송재이는 그런 여자가 아니고 그렇기에 설영준이라는 남자를 감당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도정원은 어렵게 찾은 동생이니만큼 그녀에게 더욱더 신경을 써주고 싶었다.“연우랑 같이 식사하러 가요, 우리.”도정원은 소파 위에 놓인 겉옷을 걸치며 자연스럽게 말했다.송재이는 지난번 설영준이 화를 냈던 것을 떠올리고 처음에
그때 송재이의 뒤를 본 박윤찬이 말을 덧붙였다.“도정원 씨?”설영준은 시선을 옆으로 돌려 그제야 사람들 틈에 있는 세 사람을 발견했다. 그는 확인만 하고 금세 고개를 다시 돌려버렸다.박윤찬은 뒤에서 아무런 반응도 들려오지 않자 룸미러로 뒷좌석을 바라보았다. 설영준은 눈을 감은 채 계속 잠을 자려는 듯 보였다. 마치 송재이가 누구와 함께 있든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파란불이 되고 박윤찬은 서서히 시동을 걸었다.차량이 나아가는 순간 뒤에서 설영준의 말이 들려왔다.“서운 아프트로 갑시다.”서운 아파트는 송재이가 살고 있는 집 이름이었다.설영준의 머릿속에는 온통 도정원과 그의 아이와 함께 거리를 거닐고 있는 송재이의 모습만 떠올랐다. 저녁 바람을 맞으며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예쁘게 웃고 있는 그 얼굴이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서운 아파트로 향하는 도중 설영준은 갑자기 생각을 바꿔 무언가를 꾹 억누른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다시 차를 돌려 집으로 갑시다.”고작 몇 분 사이에 말을 바꾸는 그를 보며 박윤찬은 잠깐 어리둥절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대표님답지 않은 말이네요.”“무슨 뜻입니까?”설영준은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었다.“대표님은 매사 결단력 있고 신속 정확하게 판단을 내리죠. 한번 입에 뱉은 말은 번복하지 않고요.”박윤찬은 핸들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일할 때의 모습이겠지만요. 사적으로 어떤지는... 대표님과 사적으로 엮인 분께 여쭤봐야겠죠?”박윤찬은 송재이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게 조심스러워 굳이 입에 올리지는 않았다.설영준은 콧방귀를 뀌더니 옆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주정명 보낼 증거는 다 준비됐습니까?”“지금은 조금 이르지 않을까요?”박윤찬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설영준은 다시 눈을 지그시 감았다.그 역시 얼마 전까지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주현아가 계속 일을 벌이는 바람에 인내심의 한계가 다다랐다.그녀는 송재이의 아이를 유산시킨 것도 모자라 다른
집으로 돌아와 씻고 나온 설영준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도정원이 평범한 일상 사진을 올린 것을 발견했다.그는 항상 회사 홍보와 관련된 비즈니스적인 사진들만 올렸고 일상 공유 사진은 단 한 번도 올린 적이 없다.그러니 이건 꽤 이례적인 일이었다.그가 올린 사진에는 송재이와 연우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이 있었다. 화면 너머로도 그 상황이 얼마나 즐겁고 따뜻했는지 충분히 느껴졌다.다만 이상했던 건 그 사진에 좋아요와 댓글은 하나도 없었다.설영준은 잠깐 고민하다 이내 도정원이 특정인 공개로 게시물을 올린 것을 눈치챘다.도정원은 특정인 설정을 설영준에게 들키더라도 그다지 큰 상관이 없었다.설영준은 지금 도발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 아침 송재이에게는 아무런 명분도 주지 않았으면서 말이다....3일 뒤, 송재이는 뉴스로 주정명이 경찰서에 잡혀가 조사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그녀는 어릴 때 해당 사건을 들어본 적이 있다. 다만 그 사건이 주정명과 관련된 일이라는 것은 몰랐다.어느덧 저녁이 되고 그녀는 수업 때문에 민효연의 별장으로 왔다.안으로 들어가 보니 주현아가 민효연의 손을 잡은 채 울며불며 비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민효연은 그녀의 눈물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고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주현아는 현관에서 들어오는 송재이를 보더니 눈물을 닦고 힘껏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소파에서 일어나 자리를 벗어날 때는 일부러 그녀의 어깨를 세게 밀쳤다.송재이는 그녀의 힘에 뒷걸음질까지 치게 됐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안녕하세요.”그녀는 민효연 쪽으로 고개를 돌려 인사했다.민효연은 숨을 한번 깊게 들이켜더니 휴대폰을 꺼내 들고 송재이 앞으로 천천히 걸어와 말했다.“송 선생님, 나 대신 설 대표한테 전화 좀 걸어 줄래요? 내가 만나고 싶어 한다고 말이에요.”“왜 제가...”송재이는 이상한 부탁에 고개를 갸웃했다.그러자 민효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송 선생님이 걸어 주세요.”평소 영준이라 부르던
민효연은 평소와 달리 조금 초췌해 보였다. 설영준은 주승아가 사망했을 당시 지금과 똑같은 얼굴을 한 민효연을 본 적이 있다.‘지금 또 이런 모습인 건 전남편 때문이 아니라 주현아 때문이겠지.’“약속대로 따님은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한 약속에 주정명 씨는 없었던 거로 기억하는데요?”설영준의 말에 민효연은 피식 웃었다.그녀는 눈앞에 있는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그의 심기를 건드려서 살아남은 인간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하지만 이번 일은 그 파장이 지나치게 컸다.“설 대표가 한 짓이 맞다고 인정한다는 소리군.”“이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으니 쌓은 업보를 스스로 돌려받은 거라고 해두죠.”“현아가 송 선생한테 한 일 때문에 주씨 일가를 몰락시키려는 건가? 만약 주정명이 이 사건 때문에 감옥에 들어가면 앞으로 현아는 경주에서 얼굴도 못 들고 다니겠지. 설 대표는 그걸 노리고 한 거 아닌가?”민효연은 이미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다. 그저 설영준이 정말 이런 짓을 했다는 것을 믿지 않으려 했을 뿐.그도 그럴 것이 이런 짓을 한 이유가 고작...민효연은 주정명이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다.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딸인 주현아뿐이다.살가운 모녀 사이는 아니라고는 하나 그럼에도 딸이기에 걱정할 수밖에 없다.주승아와 설영준이 양가 어른들의 뜻으로 약혼했을 당시 주현아는 절식하는 것으로 반대의 뜻을 비쳤다.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민효연에게 의지하고 있었고 자신을 사랑하는 엄마라면 설영준의 아내로 언니가 아닌 자신을 보낼 것이라고 확신했다.하지만 아무리 울고 아무리 빌어봐도 민효연은 끝까지 허락하지 않았다.심지어 약혼 축하의 이미로 보란 듯이 주승아에게 값비싼 진주 팔찌를 선물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팔찌를 끼워주는 장면을 주현아는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다.그 순간 그녀는 엄마와 언니에게 극도의 배신감을 느꼈다. 곁을 지켜주었던 주정명이 있었음에도 그녀는 이 집안에서 외면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그러다 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