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이는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꿈을 꾼 것일까?어쩌면 그저 환청일 수도 있다.다음 날 아침, 눈을 뜨고 옆을 보니 설영준은 아직 자고 있었다.언제나 빨리 기상하던 그가 늦잠을 자는 건 꽤 의외인 일이었다.송재이는 씻고 나온 다음 의자에 앉아 화장하기 시작했다. 립스틱 바르기에 열중한 탓에 그녀는 설영준이 언제 일어나 언제 바로 뒤까지 다가왔는지 몰랐다.송재이가 거울로 그의 모습을 확인했을 때 그는 손에 담배를 쥐고 있었다.연기를 한 모금 내뱉자 방 안에는 연기가 자욱이 깔렸다.두 사람은 거울로 서로의 두 눈을 쳐다보았다.금방이라도 타오를 것 같은 그의 눈동자에 송재이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얼굴은 어느새 핑크빛으로 물들었다.그녀는 여전히 설영준을 좋아하고 있고 그에게 잔뜩 매료된 상태이다.다만 어제 그녀가 했던 말대로 남자를 많이 만나보지 않아서, 지금까지 잠자리를 함께 한 사람이 설영준이라는 남자 하나뿐이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송재이는 함께 잠자리한 남자의 일에는 한없이 물러진다. 아무리 화가 나는 짓을 해도 어쩔 수 없이 봐주게 된다.립스틱을 바르는 도중 그녀는 다른 생각에 정신이 팔려 손이 멈췄다.설영준은 그 모습을 보더니 손에 든 담배를 끄고 말했다.“도와줄게.”그러고는 그녀의 손에 든 립스틱을 집어 들고 그녀의 몸을 옆으로 돌렸다.그는 허리를 숙인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송재이의 입술에 립스틱을 발라주었다.설영준의 시선은 도톰한 그녀의 입술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애초에 립스틱을 발라주겠다고 한 것도 사심이 가득 담긴 말이었다.립스틱이 다 발려지고 난 뒤 그 사심은 곧바로 드러나고야 말았다.그는 그녀의 입술에 거칠게 입을 부딪쳐왔다.“읍...”방금 다 바른 립스틱이 금세 그의 입속으로 들어갔다.설영준의 품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쳐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송재는 그저 고개를 든 채 그가 하는 대로 끌려가는 수밖에 없었다.잠시 후, 떨어질 것 같지 않았던 입술이
송재이는 자신과 설영준의 사이가 점점 더 돌이킬 수 없는 수렁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깔끔하게 그를 포기하고 내려놓으라고 매번 세뇌하듯 되뇌어 보지만 그와 잠자리를 함께 하고 나면 또다시 그가 주는 달콤함에 젖어 되도 않는 행복 회로를 돌리곤 했다.그녀는 남녀 사이 관계에 있어 아직 설영준처럼 어른스럽고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상대방은 고작 하룻밤을 원하는 것뿐인데 그녀는 언제나 ‘혹시’라는 기대를 품고야 말고 잠자리가 끝난 다음에는 항상 그렇듯 홀로 마음의 상처를 받곤 한다....저녁.송재이는 수업을 위해 민효연의 별장으로 향했다.집으로 들어가 보니 민효연은 일 때문에 자리를 비웠고 거실에는 막 출장을 다녀온 도정원이 연우와 놀아주고 있었다.수업 중, 송재이는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고 넋 놓기 일쑤였다.그 모습을 전부 다 지켜본 도정원은 수업이 끝난 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닌지 물었다.이에 송재이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아무 일도 없다고 대답했다.하지만 도정원은 대충 짐작이 갔다. 그녀의 기분을 좌지우지하는 건 언제나 그 남자뿐이었으니까.도정원은 처음부터 설영준과 송재이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설영준이라는 남자는 여자들이 환장할 외모를 가지고 있어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역시 여자 문제가 끊이지 않을 남자다.남자는 남자가 봐야 정확하다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었다.설영준은 연애하면 좋은 남자일지는 몰라도 결혼한 뒤 좋은 남편이 될 사람은 아니다.만약 송재이가 이제 막 20살이 된 여자고 남녀 사이의 감정을 가볍게 여기는 타입이라면 도정원도 이런 걱정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송재이는 그런 여자가 아니고 그렇기에 설영준이라는 남자를 감당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도정원은 어렵게 찾은 동생이니만큼 그녀에게 더욱더 신경을 써주고 싶었다.“연우랑 같이 식사하러 가요, 우리.”도정원은 소파 위에 놓인 겉옷을 걸치며 자연스럽게 말했다.송재이는 지난번 설영준이 화를 냈던 것을 떠올리고 처음에
그때 송재이의 뒤를 본 박윤찬이 말을 덧붙였다.“도정원 씨?”설영준은 시선을 옆으로 돌려 그제야 사람들 틈에 있는 세 사람을 발견했다. 그는 확인만 하고 금세 고개를 다시 돌려버렸다.박윤찬은 뒤에서 아무런 반응도 들려오지 않자 룸미러로 뒷좌석을 바라보았다. 설영준은 눈을 감은 채 계속 잠을 자려는 듯 보였다. 마치 송재이가 누구와 함께 있든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파란불이 되고 박윤찬은 서서히 시동을 걸었다.차량이 나아가는 순간 뒤에서 설영준의 말이 들려왔다.“서운 아프트로 갑시다.”서운 아파트는 송재이가 살고 있는 집 이름이었다.설영준의 머릿속에는 온통 도정원과 그의 아이와 함께 거리를 거닐고 있는 송재이의 모습만 떠올랐다. 저녁 바람을 맞으며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예쁘게 웃고 있는 그 얼굴이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서운 아파트로 향하는 도중 설영준은 갑자기 생각을 바꿔 무언가를 꾹 억누른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다시 차를 돌려 집으로 갑시다.”고작 몇 분 사이에 말을 바꾸는 그를 보며 박윤찬은 잠깐 어리둥절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대표님답지 않은 말이네요.”“무슨 뜻입니까?”설영준은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었다.“대표님은 매사 결단력 있고 신속 정확하게 판단을 내리죠. 한번 입에 뱉은 말은 번복하지 않고요.”박윤찬은 핸들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일할 때의 모습이겠지만요. 사적으로 어떤지는... 대표님과 사적으로 엮인 분께 여쭤봐야겠죠?”박윤찬은 송재이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게 조심스러워 굳이 입에 올리지는 않았다.설영준은 콧방귀를 뀌더니 옆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주정명 보낼 증거는 다 준비됐습니까?”“지금은 조금 이르지 않을까요?”박윤찬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설영준은 다시 눈을 지그시 감았다.그 역시 얼마 전까지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주현아가 계속 일을 벌이는 바람에 인내심의 한계가 다다랐다.그녀는 송재이의 아이를 유산시킨 것도 모자라 다른
집으로 돌아와 씻고 나온 설영준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도정원이 평범한 일상 사진을 올린 것을 발견했다.그는 항상 회사 홍보와 관련된 비즈니스적인 사진들만 올렸고 일상 공유 사진은 단 한 번도 올린 적이 없다.그러니 이건 꽤 이례적인 일이었다.그가 올린 사진에는 송재이와 연우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이 있었다. 화면 너머로도 그 상황이 얼마나 즐겁고 따뜻했는지 충분히 느껴졌다.다만 이상했던 건 그 사진에 좋아요와 댓글은 하나도 없었다.설영준은 잠깐 고민하다 이내 도정원이 특정인 공개로 게시물을 올린 것을 눈치챘다.도정원은 특정인 설정을 설영준에게 들키더라도 그다지 큰 상관이 없었다.설영준은 지금 도발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 아침 송재이에게는 아무런 명분도 주지 않았으면서 말이다....3일 뒤, 송재이는 뉴스로 주정명이 경찰서에 잡혀가 조사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그녀는 어릴 때 해당 사건을 들어본 적이 있다. 다만 그 사건이 주정명과 관련된 일이라는 것은 몰랐다.어느덧 저녁이 되고 그녀는 수업 때문에 민효연의 별장으로 왔다.안으로 들어가 보니 주현아가 민효연의 손을 잡은 채 울며불며 비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민효연은 그녀의 눈물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고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주현아는 현관에서 들어오는 송재이를 보더니 눈물을 닦고 힘껏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소파에서 일어나 자리를 벗어날 때는 일부러 그녀의 어깨를 세게 밀쳤다.송재이는 그녀의 힘에 뒷걸음질까지 치게 됐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안녕하세요.”그녀는 민효연 쪽으로 고개를 돌려 인사했다.민효연은 숨을 한번 깊게 들이켜더니 휴대폰을 꺼내 들고 송재이 앞으로 천천히 걸어와 말했다.“송 선생님, 나 대신 설 대표한테 전화 좀 걸어 줄래요? 내가 만나고 싶어 한다고 말이에요.”“왜 제가...”송재이는 이상한 부탁에 고개를 갸웃했다.그러자 민효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송 선생님이 걸어 주세요.”평소 영준이라 부르던
민효연은 평소와 달리 조금 초췌해 보였다. 설영준은 주승아가 사망했을 당시 지금과 똑같은 얼굴을 한 민효연을 본 적이 있다.‘지금 또 이런 모습인 건 전남편 때문이 아니라 주현아 때문이겠지.’“약속대로 따님은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한 약속에 주정명 씨는 없었던 거로 기억하는데요?”설영준의 말에 민효연은 피식 웃었다.그녀는 눈앞에 있는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그의 심기를 건드려서 살아남은 인간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하지만 이번 일은 그 파장이 지나치게 컸다.“설 대표가 한 짓이 맞다고 인정한다는 소리군.”“이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으니 쌓은 업보를 스스로 돌려받은 거라고 해두죠.”“현아가 송 선생한테 한 일 때문에 주씨 일가를 몰락시키려는 건가? 만약 주정명이 이 사건 때문에 감옥에 들어가면 앞으로 현아는 경주에서 얼굴도 못 들고 다니겠지. 설 대표는 그걸 노리고 한 거 아닌가?”민효연은 이미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다. 그저 설영준이 정말 이런 짓을 했다는 것을 믿지 않으려 했을 뿐.그도 그럴 것이 이런 짓을 한 이유가 고작...민효연은 주정명이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다.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딸인 주현아뿐이다.살가운 모녀 사이는 아니라고는 하나 그럼에도 딸이기에 걱정할 수밖에 없다.주승아와 설영준이 양가 어른들의 뜻으로 약혼했을 당시 주현아는 절식하는 것으로 반대의 뜻을 비쳤다.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민효연에게 의지하고 있었고 자신을 사랑하는 엄마라면 설영준의 아내로 언니가 아닌 자신을 보낼 것이라고 확신했다.하지만 아무리 울고 아무리 빌어봐도 민효연은 끝까지 허락하지 않았다.심지어 약혼 축하의 이미로 보란 듯이 주승아에게 값비싼 진주 팔찌를 선물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팔찌를 끼워주는 장면을 주현아는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다.그 순간 그녀는 엄마와 언니에게 극도의 배신감을 느꼈다. 곁을 지켜주었던 주정명이 있었음에도 그녀는 이 집안에서 외면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그러다 얼
이 질문은 방식만 달랐을 뿐 송재이도 여러 번 그에게 물었었다.얼마 전 그날 밤, 설영준은 홧김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그녀에게 그 답을 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 다음날 그는 곧바로 다시 없던 일로 했다.그의 한마디에 그녀가 얼마나 행복해할지 뻔히 알면서도 그는 습관적으로 입을 닫고 진심을 숨겼다.설영준은 이제껏 무언가에 얽매이는 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송재이와 함께 할 때는 오로지 그녀의 몸만 탐했으며 주현아와 약혼한 것도 비슷한 조건의 아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그에게 있어 여자는 필요로 인한 것이거나 자신을 밝혀줄 액세서리에 지나치지 않았다.설영준은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사랑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가끔 마음이 동한다 해도 곧바로 그 마음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린다.누군가에게 얽매이는 것을, 좋아하는 감정 따위에 멋대로 휘둘리게 되는 것을 그는 원하지 않는다.누군가에게 진심이 되면 처음 느껴보는 낯선 감정들이 머리를 지배할 테고 그렇게 되면 그는 지금과는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릴 테니까.설영준은 그런 감정에 자신을 맡기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되도록 용납할 생각도 없다.민효연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의 답을 기다렸다.설영준은 담담하게 웃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제 여자예요.”이 대답은 모든 걸 설명하는 것 같으면서도 또 애매한 그런 답변이었다.민효연이 그걸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그녀는 매사에 자신감 넘치는 설영준이 남녀 사이에서 이토록 자신감 없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다만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그녀와 설영준의 대화는 언제나 이렇게 꼭 맛만 보다 끝나는 경우가 많다. 모두 똑똑한 사람들이라 구태여 깊게 들어가지는 않는다.민효연은 시선을 내리며 짧게 웃었다.평소의 그녀였더라면 이쯤하고 이야기를 더 이상 이어가지 않았겠지만 주씨 가문을 절벽 바로 앞까지 밀어 넣고 그 때문에 주현아가 어쩔 수 없이 해외로 가게 만든 설영준이 오늘따라 괘씸해 보여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결국 한 번 더 입을 열고야 말았다.“설 대표가
송재이는 초밥을 먹던 젓가락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룸 입구에는 문예슬이 서 있었고 그 뒤로는 설도영이 보였다.“도영이?”그녀는 예상 못 한 얼굴에 꽤 놀란 얼굴이었다.설도영은 배시시 웃으며 빨개진 얼굴로 그녀를 불렀다.“선생님! 어떻게 여기서 만나요.”송재이는 황급히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그쪽으로 다가가 설도영의 얼굴을 매만졌다.“얘가 미쳤나 봐! 미성년자가 술을 먹어? 네 형이 알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설도영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본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고 잔소리를 했다.문예슬은 설도영을 부축하며 그녀와 마찬가지로 골치 아픈 얼굴을 했다.“누가 아니래. 나 잘했지? 얘 보자마자 그대로 끌고 왔어.”그러고는 송재이에게 손짓하며 말했다.“빨리 설 대표님한테 전화해서 동생 데리러 오라고 해.”문예슬이 설영준을 오래간 짝사랑한 걸 송재이는 알고 있다.‘도영이를 핑계로 설영준과 가까워져 보려는 건가?’송재이는 입술을 꽉 깨물더니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나 지금 배터리가 다 돼서 그냥 이대로 집에 보내는 게...”“내 거 써요. 그래서 우리 형보고 날 데리러 오라고 해요”그때 설도영이 끼어들며 휴대폰을 건넸다.오늘은 그의 친구 사촌 형의 생일이다. 그 사촌 형은 설도영이 설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이라는 걸 알고는 극진히 대접하며 어떻게든 설영준과 엮이고 싶어 아부하며 안달이 났다.설도영은 이런 상황이 처음이 아니라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한 뒤 금세 얼굴에 짜증이 피어올랐다.그는 어릴 때부터 설영준이라는 그늘 아래 있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그런데 오늘도 또 똑같이 상황이 펼쳐지자 결국 못 참고 술을 입에 댔다.설도영은 송재이의 어깨 위에 팔을 걸치고 술 냄새를 가득 풍기며 말했다.“선생님, 우리 형은 자기밖에 모르는 아주 이기적인 인간이에요, 그렇죠?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죠? 그러니까 그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한테 빨리 전화해서 나 죽는다고 빨리 오라고 해요.”송재이는 단단히 취한 그를 보며 헛웃음을 내뱉었다.그러
세 명의 여자는 설도영을 데리고 룸을 빠져나왔다.다행히 설도영은 술에 취해 있어도 진상을 부리지는 않았고 꽤 얌전한 편이었다. 물론 설영준을 보고 술이 어느 정도 깬 덕이 컸을 것이다.송재이와 문예슬은 양쪽에 서서 설도영을 부축해주었다.룸에서 나오자 설영준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남자 두 명과 얘기하고 있었다.그중 한 명은 설도영과 또래로 보였고 나머지 한 명은 나이가 좀 있어 보였는데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굽신거렸다.두 사람은 설도영의 친구와 그 친구의 사촌 형으로 보였다.설영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몇 마디 하더니 고개를 돌려 그들에게 손짓하고는 다시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송재이 일행은 그의 손짓에 따라 밖으로 나섰다.설영준은 어느새 운전석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송재이는 설도영을 조수석에 앉히고 친구들과 함께 뒷좌석에 앉았다. 문에슬은 제일 오른쪽 자리에 앉아 마침 설영준의 얼굴을 마음껏 볼 수 있었다.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그의 옆 모습은 앞모습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날렵한 턱선에 의중을 알 수 없는 두 눈이 무척이나 섹시했다.문예슬은 곧 침이라도 나올 듯한 얼굴로 그렇게 가만히 바라보며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그러다 문득 얼마 전 맞선 볼 때 만났던 남자들을 떠올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송재이는 답답한 마음에 운전석을 향해 언제 출발할 거냐고 물었다.설영준은 룸미러로 그녀와 눈을 마주치고는 한참을 말없이 쳐다보았다.그 시선이 불편했던 송재이는 고개를 돌려버렸다.설도영은 차에 앉자마자 그대로 잠이 들어버려 지금 어떤 분위기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오직 유은정만이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듯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그녀는 송재이와 설영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몰랐지만 둘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만약 두 사람이 전에 어떤 사이였는지 몰랐더라면 그녀 역시 문예슬처럼 아무 생각 없이 말을 막 내뱉었을 것이다.드디어 시동이 걸리고 차량은 부드럽게 앞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