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명의 여자는 설도영을 데리고 룸을 빠져나왔다.다행히 설도영은 술에 취해 있어도 진상을 부리지는 않았고 꽤 얌전한 편이었다. 물론 설영준을 보고 술이 어느 정도 깬 덕이 컸을 것이다.송재이와 문예슬은 양쪽에 서서 설도영을 부축해주었다.룸에서 나오자 설영준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남자 두 명과 얘기하고 있었다.그중 한 명은 설도영과 또래로 보였고 나머지 한 명은 나이가 좀 있어 보였는데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굽신거렸다.두 사람은 설도영의 친구와 그 친구의 사촌 형으로 보였다.설영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몇 마디 하더니 고개를 돌려 그들에게 손짓하고는 다시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송재이 일행은 그의 손짓에 따라 밖으로 나섰다.설영준은 어느새 운전석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송재이는 설도영을 조수석에 앉히고 친구들과 함께 뒷좌석에 앉았다. 문에슬은 제일 오른쪽 자리에 앉아 마침 설영준의 얼굴을 마음껏 볼 수 있었다.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그의 옆 모습은 앞모습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날렵한 턱선에 의중을 알 수 없는 두 눈이 무척이나 섹시했다.문예슬은 곧 침이라도 나올 듯한 얼굴로 그렇게 가만히 바라보며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그러다 문득 얼마 전 맞선 볼 때 만났던 남자들을 떠올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송재이는 답답한 마음에 운전석을 향해 언제 출발할 거냐고 물었다.설영준은 룸미러로 그녀와 눈을 마주치고는 한참을 말없이 쳐다보았다.그 시선이 불편했던 송재이는 고개를 돌려버렸다.설도영은 차에 앉자마자 그대로 잠이 들어버려 지금 어떤 분위기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오직 유은정만이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듯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그녀는 송재이와 설영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몰랐지만 둘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만약 두 사람이 전에 어떤 사이였는지 몰랐더라면 그녀 역시 문예슬처럼 아무 생각 없이 말을 막 내뱉었을 것이다.드디어 시동이 걸리고 차량은 부드럽게 앞으
두 사람 사이를 이미 알고 있었던 유은정이지만 실제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그녀는 순간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재빨리 차에 다시 올라탔다.송재이는 그의 거친 키스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녀는 발버둥을 치며 힘껏 그의 입술을 깨물었다.꽤 아프게 무는 바람에 설영준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송재이는 그가 멈춘 틈을 타 바로 가슴팍을 밀어버렸다. 그러고는 어느새 촉촉해진 눈으로 그를 힘껏 노려보며 입가에 있는 피를 닦았다.설영준의 얼굴은 어쩐지 조금 창백해 보였다.가로등 아래 서서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뱀파이어 같아 보이기도 했다.송재이는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미쳤어?”“말조심해.”냉랭해 보이는 그의 얼굴에는 일말의 만족감이 스쳤다.그걸 본 송재이는 더더욱 표정이 일그러졌다.이왕 이렇게 만난 거 그녀는 줄곧 묻고 싶었던 것을 입에 올렸다.“주현아 씨 아버지 일은 대체 어떻게 된 거야?”주정명은 설영준의 장인어른이 될 뻔한 사람이었다.설씨 가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가문은 아니라고는 해도 갑자기 하루아침에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는 건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게다가 송재이는 이 일이 어쩌면 설영준과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설영준은 태연한 얼굴로 답했다.“뭘 물어. 뉴스에서 본 것 그대로야. 어릴 때 지은 죄를 이제야 청산하기 시작한 거지.”송재이는 눈썹을 찌푸렸다.“물론 그 죄를 청산할 수 있게 내가 약간의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설영준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정말 네가 한 거라고?”송재이는 믿기 힘든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왜 내가 아닐 거라 생각하는데?”“그야... 주현아 씨는 네 약혼녀이기도 했던 사람이니까.”“지금은 아니잖아. 그런데 내가 그런 것까지 고려해야 해?”설영준은 전혀 문제없다는 얼굴로 답했다.“주정명은 감방에 갈 거고 주현아는 해외로 뜰 거야. 앞으로 우리 사이에 더 이상의 잡음은 없어.”‘우리 사이’라는 말에 송재이는 심장이 두근거렸다.설
송재이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문예슬은 땅만 바라보며 다가오다가 그녀의 걱정 섞인 말에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그게... 사모님이... 나는 그냥...”그녀는 화를 내려는 듯 씩씩거리다 바로 옆에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있는 설영준을 발견하고는 금세 하려던 말을 다시 목구멍으로 삼켰다.“어머, 대표님, 입술 왜 그러세요? 피 나요!”방금 설도영을 데려다준 다음 아부하려고 오서희에게 말을 걸었다가 듣기 안 좋은 소리만 잔뜩 듣고 나왔다는 걸 절대 설영준 앞에서는 얘기할 수 없었다.갑자기 입술 화제로 돌린 것은 그 창피함을 감추려고 아무거나 보이는 것을 얘기한 것뿐이다.설영준은 엄지로 입술을 쓸어내더니 송재이를 보며 답했다.“왜 이런 건지 친구한테 물어봐요.”그녀를 원망하는 듯한 그의 말투에는 애정이 깃들어 있었다.그는 송재이에게 물렸다는 것을 대놓고 알려주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운전석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아직 서 있는 두 사람을 향해 소리쳤다.“타시죠. 나도 이제는 피곤한데.”송재이는 지금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처음에는 어리둥절한 듯 보였던 문예슬은 그의 말을 알아들음과 동시에 서서히 미간을 찌푸리며 분노를 가득 담아 송재이를 노려보았다.두 사람은 친한 친구라 문예슬은 송재이 앞에서 단 한 번도 설영준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았다. 심지어 속으로만 생각하던 은밀한 욕망까지 전부 다 드러내곤 했었다.그런데 그렇게 믿었던 친구가 뒤에서 설영준과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됐으니 화가 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오늘 문예슬의 행동은 눈치 없는 광대나 다름없었다.‘사람 하나 바보 만드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배신과 충격,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이 두 단어로 지배되었다.송재이는 문예슬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보였다.그녀는 차마 시선을 마주칠 수가 없어 애꿎은 입술만 깨물었다.‘설영준 이 미친놈, 대체 그딴 소리는 왜 한 거야!’
꽉 닫힌 유리창으로 비가 사정없이 쏟아졌다.송재이는 눈을 질끈 감고 있다가 좀처럼 시동을 걸지 않는 남자를 보며 짜증 섞인 말투로 물었다.“출발 안 하고 뭐 해?”설영준은 그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더니 검지를 들어 그녀 앞에서 흔들었다.“...뭐 하는 거야?”“마지막이야.”설영준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오늘 밤 넌 이미 나한테 짜증 많이 냈어. 이게 마지막이야. 또 나한테 짜증 내면 이 자리에서 후회하게 만들어 줄 거야.”그 방식이 어떤 것인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녀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게다가 그 말을 할 때 뒷좌석을 힐끔 바라보기까지 했으니 더 말할 필요 없이 바로 그녀가 이해한 뜻이 맞았다.뒷좌석은 두 사람이 몸을 겹치기에는 충분한 공간이었다.두 사람은 이미 차에 한 적이 있었고 지금은 비까지 와 한껏 더 분위기가 있었다.송재이는 그의 시선을 받으며 저도 모르게 겉옷을 꽉 쥐었다. 그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경계심이 어려있었다.설영준은 그런 그녀를 보며 피식 웃었다.“내 탓이라고 생각해?”송재이는 그에게 쏘아붙이려다가 방금 그가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최대한 화를 가라앉히고 얘기했다.“예슬이가 널 좋아해.”“날 좋아하는 여자는 차고 넘쳐. 그런데 그게 뭐?”“내가 무슨 말 하는 건지 알고 있잖아.”송재이는 그의 태도가 기가 막혔다.“나는 예슬이한테 상처 주고 싶지 않단 말이야. 아마 지금쯤 너랑 내가 짜고 걔를 속인 거라고 생각할 거야...”“아니었어?”“당연히 아니지!”송재이는 화가 나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남자 하나 때문에 친구와 멀어지고 싶지 않아. 너랑은 안 보면 그만이지만 친구는 평생 봐야 한단 말이야.”“유치하긴.”설영준은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로 서서히 차에 시동을 걸었다.집으로 향하는 길, 송재이는 말이 통하지 않는 그를 한참이나 노려보다가 결국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비는 점점 더 거세졌고 송재이 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천둥 번개도 치며 날씨가 꽤 험악해졌다.설영준은 차를 세우고 컴
송재이는 지금 그와 자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그녀는 설영준을 밀어내고 싶었지만 집요하게 따라오는 그의 손길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게다가 그는 그녀가 더 이상 발버둥 치지 못하도록 아예 벽에 몰아세워 버렸다.송재이는 고개를 돌려 그를 힘껏 노려보았다.하지만 그 눈빛을 받고도 그는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새삼스럽게 왜 이래?”“오늘은 하기 싫다고!”송재이는 그의 손등을 할퀴며 벗어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피식 웃으며 그녀를 더 꽉 끌어안았다.곧이어 그녀의 벨트가 풀리고 설영준의 손은 그녀의 배를 따라 천천히 아래로 미끄러졌다.폭풍우가 내리치는 밖과 달리 집 안은 농밀한 분위기가 한껏 감돌고 있었다.그의 손길에 그녀는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이딴 짓 하려고 널 집으로 데려온 거 아니야.”송재이는 간신히 숨을 고르고 단호하게 말을 내뱉었다.‘이딴 짓’이라는 말에 설영준은 흥이 다 깨진 듯 미간을 찌푸렸다.“이딴 짓 한두 번 한 것도 아닐 텐데?”그는 그녀의 얼굴을 홱 돌려 눈을 마주쳤다.그의 눈에는 소유욕이 물씬 묻어나 있었다.설영준은 한참을 그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술을 겹쳐왔다.조용한 공간 속에 두 사람의 입술 부딪히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문예슬과 그런 일이 있어 마음이 무척이나 불편했지만 자꾸 파고 들어오는 그의 열기에 송재이는 그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빨갛게 달아올랐고 온몸은 불타는 것처럼 뜨거웠다.송재이는 지금 두 손으로 벽을 짚고 고개를 뒤로 돌린 채 허리가 잔뜩 꺾여있었다.설영준은 그녀의 입술이 통통하게 부어오르고 나서야 천천히 놓아주었다.“나... 나 오늘은 정말 힘들어.”“그럼 빨리 자.”그는 예상외로 쉽게 그녀를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발걸음을 옮기기 전 그녀의 엉덩이를 두어 번 두드렸다.아까 그녀가 말한 ‘이딴 짓’이라는 단어 때문에 욕구가 갑자기 사그라진 것일지도 모르겠다.설영준은 욕실로 들어가기 전 마치 허물을 벗듯 옷을 하나하나
이날 밤, 두 사람은 한방에서 자지 않았다.사상 초유의 사태라 할 수 있었다.설영준은 바로 이런 사람이다. 만약 그가 정말 원한다면 설령 그녀가 원하지 않더라도 그녀를 굴복시킬 방법을 찾을 것이다.그녀가 지금은 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그한테는 그녀를 유혹할 방법이 충분히 있을 것이다.그는 완전 능구렁이로 그녀와는 전혀 다른 레벨이라고 할 수 있었다.하지만 송재이의 '성추행'이라는 말이 그에게 만약 계속하면 군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그는 마음이 울적해서 차라리 베란다에 서서 시원한 바람을 쐬고 담배를 피우려 했다.휴대전화가 울렸을 때 그는 마침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껐다.전화가 온 것을 보니 또 하나의 낯선 번호였다.그는 지난번에 주현아가 다른 사람의 휴대폰 번호로 문자 보냈던 일이 생각났다.설영준은 2초간 눈을 내리깔고 생각하다가 수화기를 눌렀다.전화 저쪽에서 들려오는 것은 부슬부슬 내리는 빗소리였다.뒤이어 주현아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영준 씨, 우리 아버지가 적어도 20년 형을 선고받아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단지 이 일이 네가 한 일인지 알고 싶어서...”“그럼 경찰이 왜 날 안 잡아가는 건데?”돌아오는 건 그의 차분한 말투였다.그의 또 다른 뜻은 주정명이 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그 말에 주현아는 처절하게 울기 시작했다.“너 왜 이러는 거야? 왜? 우리 엄마가 나보고 국내에 더 머물지 말라고 출국 준비를 하라고 했는데, 나는 널 떠나고 싶지 않아...”설영준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고 그녀가 그곳에서 불쌍하게 울고 있는 것에 대해 그는 아무렇지도 않았다.“송 선생님 때문이야? 네가 한 이 모든 것이 다 그 여자를 위한 것이야? 너에게 있어서 그 여자가 정말 그렇게 중요한 거야?”“얘기 다 했어? 다 했으면 끊어.”설영준은 주현아의 말에 대답할 뜻이 없었다.전화를 끊으려고 할 때 주현아가 급히 그를 불렀다.“영준아, 나 지금 장하 별장 입구에 있어. 널 만나고 싶어.”“나 오늘
사진이 희미하게 노랗게 변하기 시작한 걸 보니 몇 년은 된 것 같았다.하지만 사진 속 두 사람은 설영준의 눈길을 끌었다.송재이의 엄마와 그녀의 어릴 적 모습이었다.그는 당연히 송재이의 어릴 때 모습을 본 적이 없지만 웃을 때 오른쪽 뺨의 보조개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게다가 이목구비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얼굴은 그대로였다. 턱은 작고 눈은 크고 아주 맑고 깨끗했다.그녀의 눈을 계속 쳐다보면 마치 마녀의 것처럼 사람을 빨아들이는 재주가 있는 것 같았다.송재이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설영준은 병문안을 하러 간 적이 있다.다만 송재이는 이 일을 모르고 있었다.그때 아주머니는 설영준의 손을 잡고 수다를 떨었다.그를 송재이의 남자친구로 알고 있는 것 같았는데 임종을 앞두고 외톨이가 될 송재이를 잘 부탁한다고 하는 것 같았다.설영준이 아무리 감정이 없다 하더라도 그때 아주머니에게 자신은 송재이의 남자친구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았다.곧 죽을 사람에게 감화됐는지 설영준도 꽤 몰입했다.나중에 아주머니와 앞으로 송재이를 잘 보살피겠다고 약속했다.하지만 그는 분명히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설영준은 입꼬리는 내렸고 핸드폰을 꺼내서 그 사진을 찍었다.그리고는 노란빛이 도는 사진을 다시 제자리에 놓았다.…이튿날 송재이가 일어났을 때 설영준은 이미 일어나 있었고 주방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났는데 그가 아침을 만들고 있었다.어젯밤에 별로 배불리 먹지 못했으니 오늘 일어나보니 배가 고팠다.지금 그녀는 너무 배고파 음식을 보고 군침이 막 돌았다.그녀는 어느 날 두 사람의 관계가 정말 끊어지면 그녀는 틀림없이 그를 그리워할 것이고 그가 만든 요리를 그리워하리라 생각했다.전에는 먹어본 적이 없어 몰랐는데 그가 요리를 시작한 이후로 그녀의 입맛은 점점 더 비싸졌다.아주 간단한 가정식 반찬으로도 이렇게 맛있게 만들 수 있다니.설영준는 어젯밤에 얻지 못해 오늘 아침은 흥이 나지 않았는데 아침밥도 예전처럼 풍성하지 않았다.멀건 국물에 만 국수
송재이는 그의 말에 넋을 잃었다.설영준의 말투는 화가 난 것이 분명했다.그런데 그가 방금 뭐라고 했지?“여자친구?”송재이는 조금 말이 안 된다고 느꼈다.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야?설영준도 말을 하고 나서 조금 후회했으나 얼굴에는 티 내지 않았다.그는 다시 젓가락을 들고 남은 반 그릇을 천천히 비우고 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개인 과외 학생은 내가 다시 구해줄게. 너한테서 수업 듣고 싶어 하는 사람 많으니까 앞으로 민 사장님한테는 가지 마.”그의 말투는 매우 침착했는데 마치 감정 없는 기계 같았다.만약 그가 '여자친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그의 이런 행위를 전혀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두 사람이 지금 무슨 관계라고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그녀에게 명령한단 말인가?하지만 방금 그가 무심코 내뱉은 말은 그녀가 실수로 그의 마음에 닿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말이다.그녀가 감히 다시 한번 확인하지도 못할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다.마음에 달콤하고 쓰라린 기분이 스멀스멀 끓어올랐다.그녀는 이제는 묻지 않았고 고개를 숙이고 남은 것을 다 먹었다.그리고 설영준은 일어나서 설거지하러 갔는데 콸콸거리는 물소리가 그와 송재이를 갈라놓았다.하지만 설영준은 설거지를 할 때도 제대로 집중을 하지 못했는데 ‘여자친구’라는 신분으로 그녀를 제약할 거라는 말을 왜 했나 하고 속으로 후회하고 있었다.송재이잖아, 그냥 갖고 놀려고 했던 여자니까.…송재이는 오케스트라로 출근하던 길에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연지수를 만났다.연지수는 그녀를 보고 가식적인 웃음을 지었다.주가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지금의 경주는 이미 떠들썩하기 때문이다.얼마 전에 설씨 집안과 약혼을 했고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도 못해 파혼을 당했고 그 후에는 고발당했다. 몇 년 전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다리 붕괴 사건에 주정명이 연루되었기 때문이다.불과 1년 만에 주가는 천상과 지옥을 한 번에 맛보았다.빛나던 어제에서 모두가 피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환상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