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의 모든 챕터: 챕터 121 - 챕터 130

660 챕터

제121화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손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때 송재이의 뒤를 본 박윤찬이 말을 덧붙였다.“도정원 씨?”설영준은 시선을 옆으로 돌려 그제야 사람들 틈에 있는 세 사람을 발견했다. 그는 확인만 하고 금세 고개를 다시 돌려버렸다.박윤찬은 뒤에서 아무런 반응도 들려오지 않자 룸미러로 뒷좌석을 바라보았다. 설영준은 눈을 감은 채 계속 잠을 자려는 듯 보였다. 마치 송재이가 누구와 함께 있든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파란불이 되고 박윤찬은 서서히 시동을 걸었다.차량이 나아가는 순간 뒤에서 설영준의 말이 들려왔다.“서운 아프트로 갑시다.”서운 아파트는 송재이가 살고 있는 집 이름이었다.설영준의 머릿속에는 온통 도정원과 그의 아이와 함께 거리를 거닐고 있는 송재이의 모습만 떠올랐다. 저녁 바람을 맞으며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예쁘게 웃고 있는 그 얼굴이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서운 아파트로 향하는 도중 설영준은 갑자기 생각을 바꿔 무언가를 꾹 억누른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다시 차를 돌려 집으로 갑시다.”고작 몇 분 사이에 말을 바꾸는 그를 보며 박윤찬은 잠깐 어리둥절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대표님답지 않은 말이네요.”“무슨 뜻입니까?”설영준은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었다.“대표님은 매사 결단력 있고 신속 정확하게 판단을 내리죠. 한번 입에 뱉은 말은 번복하지 않고요.”박윤찬은 핸들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일할 때의 모습이겠지만요. 사적으로 어떤지는... 대표님과 사적으로 엮인 분께 여쭤봐야겠죠?”박윤찬은 송재이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게 조심스러워 굳이 입에 올리지는 않았다.설영준은 콧방귀를 뀌더니 옆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주정명 보낼 증거는 다 준비됐습니까?”“지금은 조금 이르지 않을까요?”박윤찬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설영준은 다시 눈을 지그시 감았다.그 역시 얼마 전까지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주현아가 계속 일을 벌이는 바람에 인내심의 한계가 다다랐다.그녀는 송재이의 아이를 유산시킨 것도 모자라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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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화 작정하고 일을 터트리다

집으로 돌아와 씻고 나온 설영준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도정원이 평범한 일상 사진을 올린 것을 발견했다.그는 항상 회사 홍보와 관련된 비즈니스적인 사진들만 올렸고 일상 공유 사진은 단 한 번도 올린 적이 없다.그러니 이건 꽤 이례적인 일이었다.그가 올린 사진에는 송재이와 연우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이 있었다. 화면 너머로도 그 상황이 얼마나 즐겁고 따뜻했는지 충분히 느껴졌다.다만 이상했던 건 그 사진에 좋아요와 댓글은 하나도 없었다.설영준은 잠깐 고민하다 이내 도정원이 특정인 공개로 게시물을 올린 것을 눈치챘다.도정원은 특정인 설정을 설영준에게 들키더라도 그다지 큰 상관이 없었다.설영준은 지금 도발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 아침 송재이에게는 아무런 명분도 주지 않았으면서 말이다....3일 뒤, 송재이는 뉴스로 주정명이 경찰서에 잡혀가 조사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그녀는 어릴 때 해당 사건을 들어본 적이 있다. 다만 그 사건이 주정명과 관련된 일이라는 것은 몰랐다.어느덧 저녁이 되고 그녀는 수업 때문에 민효연의 별장으로 왔다.안으로 들어가 보니 주현아가 민효연의 손을 잡은 채 울며불며 비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민효연은 그녀의 눈물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고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주현아는 현관에서 들어오는 송재이를 보더니 눈물을 닦고 힘껏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소파에서 일어나 자리를 벗어날 때는 일부러 그녀의 어깨를 세게 밀쳤다.송재이는 그녀의 힘에 뒷걸음질까지 치게 됐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안녕하세요.”그녀는 민효연 쪽으로 고개를 돌려 인사했다.민효연은 숨을 한번 깊게 들이켜더니 휴대폰을 꺼내 들고 송재이 앞으로 천천히 걸어와 말했다.“송 선생님, 나 대신 설 대표한테 전화 좀 걸어 줄래요? 내가 만나고 싶어 한다고 말이에요.”“왜 제가...”송재이는 이상한 부탁에 고개를 갸웃했다.그러자 민효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송 선생님이 걸어 주세요.”평소 영준이라 부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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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화 주현아를 멀리 보내세요

민효연은 평소와 달리 조금 초췌해 보였다. 설영준은 주승아가 사망했을 당시 지금과 똑같은 얼굴을 한 민효연을 본 적이 있다.‘지금 또 이런 모습인 건 전남편 때문이 아니라 주현아 때문이겠지.’“약속대로 따님은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한 약속에 주정명 씨는 없었던 거로 기억하는데요?”설영준의 말에 민효연은 피식 웃었다.그녀는 눈앞에 있는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그의 심기를 건드려서 살아남은 인간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하지만 이번 일은 그 파장이 지나치게 컸다.“설 대표가 한 짓이 맞다고 인정한다는 소리군.”“이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으니 쌓은 업보를 스스로 돌려받은 거라고 해두죠.”“현아가 송 선생한테 한 일 때문에 주씨 일가를 몰락시키려는 건가? 만약 주정명이 이 사건 때문에 감옥에 들어가면 앞으로 현아는 경주에서 얼굴도 못 들고 다니겠지. 설 대표는 그걸 노리고 한 거 아닌가?”민효연은 이미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다. 그저 설영준이 정말 이런 짓을 했다는 것을 믿지 않으려 했을 뿐.그도 그럴 것이 이런 짓을 한 이유가 고작...민효연은 주정명이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다.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딸인 주현아뿐이다.살가운 모녀 사이는 아니라고는 하나 그럼에도 딸이기에 걱정할 수밖에 없다.주승아와 설영준이 양가 어른들의 뜻으로 약혼했을 당시 주현아는 절식하는 것으로 반대의 뜻을 비쳤다.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민효연에게 의지하고 있었고 자신을 사랑하는 엄마라면 설영준의 아내로 언니가 아닌 자신을 보낼 것이라고 확신했다.하지만 아무리 울고 아무리 빌어봐도 민효연은 끝까지 허락하지 않았다.심지어 약혼 축하의 이미로 보란 듯이 주승아에게 값비싼 진주 팔찌를 선물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팔찌를 끼워주는 장면을 주현아는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다.그 순간 그녀는 엄마와 언니에게 극도의 배신감을 느꼈다. 곁을 지켜주었던 주정명이 있었음에도 그녀는 이 집안에서 외면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그러다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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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화 감정에 멋대로 휘둘리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 질문은 방식만 달랐을 뿐 송재이도 여러 번 그에게 물었었다.얼마 전 그날 밤, 설영준은 홧김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그녀에게 그 답을 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 다음날 그는 곧바로 다시 없던 일로 했다.그의 한마디에 그녀가 얼마나 행복해할지 뻔히 알면서도 그는 습관적으로 입을 닫고 진심을 숨겼다.설영준은 이제껏 무언가에 얽매이는 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송재이와 함께 할 때는 오로지 그녀의 몸만 탐했으며 주현아와 약혼한 것도 비슷한 조건의 아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그에게 있어 여자는 필요로 인한 것이거나 자신을 밝혀줄 액세서리에 지나치지 않았다.설영준은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사랑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가끔 마음이 동한다 해도 곧바로 그 마음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린다.누군가에게 얽매이는 것을, 좋아하는 감정 따위에 멋대로 휘둘리게 되는 것을 그는 원하지 않는다.누군가에게 진심이 되면 처음 느껴보는 낯선 감정들이 머리를 지배할 테고 그렇게 되면 그는 지금과는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릴 테니까.설영준은 그런 감정에 자신을 맡기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되도록 용납할 생각도 없다.민효연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의 답을 기다렸다.설영준은 담담하게 웃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제 여자예요.”이 대답은 모든 걸 설명하는 것 같으면서도 또 애매한 그런 답변이었다.민효연이 그걸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그녀는 매사에 자신감 넘치는 설영준이 남녀 사이에서 이토록 자신감 없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다만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그녀와 설영준의 대화는 언제나 이렇게 꼭 맛만 보다 끝나는 경우가 많다. 모두 똑똑한 사람들이라 구태여 깊게 들어가지는 않는다.민효연은 시선을 내리며 짧게 웃었다.평소의 그녀였더라면 이쯤하고 이야기를 더 이상 이어가지 않았겠지만 주씨 가문을 절벽 바로 앞까지 밀어 넣고 그 때문에 주현아가 어쩔 수 없이 해외로 가게 만든 설영준이 오늘따라 괘씸해 보여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결국 한 번 더 입을 열고야 말았다.“설 대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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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화 자기밖에 모르는 아주 이기적인 인간

송재이는 초밥을 먹던 젓가락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룸 입구에는 문예슬이 서 있었고 그 뒤로는 설도영이 보였다.“도영이?”그녀는 예상 못 한 얼굴에 꽤 놀란 얼굴이었다.설도영은 배시시 웃으며 빨개진 얼굴로 그녀를 불렀다.“선생님! 어떻게 여기서 만나요.”송재이는 황급히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그쪽으로 다가가 설도영의 얼굴을 매만졌다.“얘가 미쳤나 봐! 미성년자가 술을 먹어? 네 형이 알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설도영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본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고 잔소리를 했다.문예슬은 설도영을 부축하며 그녀와 마찬가지로 골치 아픈 얼굴을 했다.“누가 아니래. 나 잘했지? 얘 보자마자 그대로 끌고 왔어.”그러고는 송재이에게 손짓하며 말했다.“빨리 설 대표님한테 전화해서 동생 데리러 오라고 해.”문예슬이 설영준을 오래간 짝사랑한 걸 송재이는 알고 있다.‘도영이를 핑계로 설영준과 가까워져 보려는 건가?’송재이는 입술을 꽉 깨물더니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나 지금 배터리가 다 돼서 그냥 이대로 집에 보내는 게...”“내 거 써요. 그래서 우리 형보고 날 데리러 오라고 해요”그때 설도영이 끼어들며 휴대폰을 건넸다.오늘은 그의 친구 사촌 형의 생일이다. 그 사촌 형은 설도영이 설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이라는 걸 알고는 극진히 대접하며 어떻게든 설영준과 엮이고 싶어 아부하며 안달이 났다.설도영은 이런 상황이 처음이 아니라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한 뒤 금세 얼굴에 짜증이 피어올랐다.그는 어릴 때부터 설영준이라는 그늘 아래 있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그런데 오늘도 또 똑같이 상황이 펼쳐지자 결국 못 참고 술을 입에 댔다.설도영은 송재이의 어깨 위에 팔을 걸치고 술 냄새를 가득 풍기며 말했다.“선생님, 우리 형은 자기밖에 모르는 아주 이기적인 인간이에요, 그렇죠?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죠? 그러니까 그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한테 빨리 전화해서 나 죽는다고 빨리 오라고 해요.”송재이는 단단히 취한 그를 보며 헛웃음을 내뱉었다.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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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화 너는 걱정해야 할 사람이 참 많아?

세 명의 여자는 설도영을 데리고 룸을 빠져나왔다.다행히 설도영은 술에 취해 있어도 진상을 부리지는 않았고 꽤 얌전한 편이었다. 물론 설영준을 보고 술이 어느 정도 깬 덕이 컸을 것이다.송재이와 문예슬은 양쪽에 서서 설도영을 부축해주었다.룸에서 나오자 설영준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남자 두 명과 얘기하고 있었다.그중 한 명은 설도영과 또래로 보였고 나머지 한 명은 나이가 좀 있어 보였는데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굽신거렸다.두 사람은 설도영의 친구와 그 친구의 사촌 형으로 보였다.설영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몇 마디 하더니 고개를 돌려 그들에게 손짓하고는 다시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송재이 일행은 그의 손짓에 따라 밖으로 나섰다.설영준은 어느새 운전석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송재이는 설도영을 조수석에 앉히고 친구들과 함께 뒷좌석에 앉았다. 문에슬은 제일 오른쪽 자리에 앉아 마침 설영준의 얼굴을 마음껏 볼 수 있었다.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그의 옆 모습은 앞모습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날렵한 턱선에 의중을 알 수 없는 두 눈이 무척이나 섹시했다.문예슬은 곧 침이라도 나올 듯한 얼굴로 그렇게 가만히 바라보며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그러다 문득 얼마 전 맞선 볼 때 만났던 남자들을 떠올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송재이는 답답한 마음에 운전석을 향해 언제 출발할 거냐고 물었다.설영준은 룸미러로 그녀와 눈을 마주치고는 한참을 말없이 쳐다보았다.그 시선이 불편했던 송재이는 고개를 돌려버렸다.설도영은 차에 앉자마자 그대로 잠이 들어버려 지금 어떤 분위기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오직 유은정만이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듯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그녀는 송재이와 설영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몰랐지만 둘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만약 두 사람이 전에 어떤 사이였는지 몰랐더라면 그녀 역시 문예슬처럼 아무 생각 없이 말을 막 내뱉었을 것이다.드디어 시동이 걸리고 차량은 부드럽게 앞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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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화 누가 환장한다고 그래?!

두 사람 사이를 이미 알고 있었던 유은정이지만 실제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그녀는 순간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재빨리 차에 다시 올라탔다.송재이는 그의 거친 키스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녀는 발버둥을 치며 힘껏 그의 입술을 깨물었다.꽤 아프게 무는 바람에 설영준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송재이는 그가 멈춘 틈을 타 바로 가슴팍을 밀어버렸다. 그러고는 어느새 촉촉해진 눈으로 그를 힘껏 노려보며 입가에 있는 피를 닦았다.설영준의 얼굴은 어쩐지 조금 창백해 보였다.가로등 아래 서서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뱀파이어 같아 보이기도 했다.송재이는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미쳤어?”“말조심해.”냉랭해 보이는 그의 얼굴에는 일말의 만족감이 스쳤다.그걸 본 송재이는 더더욱 표정이 일그러졌다.이왕 이렇게 만난 거 그녀는 줄곧 묻고 싶었던 것을 입에 올렸다.“주현아 씨 아버지 일은 대체 어떻게 된 거야?”주정명은 설영준의 장인어른이 될 뻔한 사람이었다.설씨 가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가문은 아니라고는 해도 갑자기 하루아침에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는 건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게다가 송재이는 이 일이 어쩌면 설영준과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설영준은 태연한 얼굴로 답했다.“뭘 물어. 뉴스에서 본 것 그대로야. 어릴 때 지은 죄를 이제야 청산하기 시작한 거지.”송재이는 눈썹을 찌푸렸다.“물론 그 죄를 청산할 수 있게 내가 약간의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설영준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정말 네가 한 거라고?”송재이는 믿기 힘든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왜 내가 아닐 거라 생각하는데?”“그야... 주현아 씨는 네 약혼녀이기도 했던 사람이니까.”“지금은 아니잖아. 그런데 내가 그런 것까지 고려해야 해?”설영준은 전혀 문제없다는 얼굴로 답했다.“주정명은 감방에 갈 거고 주현아는 해외로 뜰 거야. 앞으로 우리 사이에 더 이상의 잡음은 없어.”‘우리 사이’라는 말에 송재이는 심장이 두근거렸다.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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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화 배신과 충격

송재이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문예슬은 땅만 바라보며 다가오다가 그녀의 걱정 섞인 말에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그게... 사모님이... 나는 그냥...”그녀는 화를 내려는 듯 씩씩거리다 바로 옆에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있는 설영준을 발견하고는 금세 하려던 말을 다시 목구멍으로 삼켰다.“어머, 대표님, 입술 왜 그러세요? 피 나요!”방금 설도영을 데려다준 다음 아부하려고 오서희에게 말을 걸었다가 듣기 안 좋은 소리만 잔뜩 듣고 나왔다는 걸 절대 설영준 앞에서는 얘기할 수 없었다.갑자기 입술 화제로 돌린 것은 그 창피함을 감추려고 아무거나 보이는 것을 얘기한 것뿐이다.설영준은 엄지로 입술을 쓸어내더니 송재이를 보며 답했다.“왜 이런 건지 친구한테 물어봐요.”그녀를 원망하는 듯한 그의 말투에는 애정이 깃들어 있었다.그는 송재이에게 물렸다는 것을 대놓고 알려주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운전석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아직 서 있는 두 사람을 향해 소리쳤다.“타시죠. 나도 이제는 피곤한데.”송재이는 지금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처음에는 어리둥절한 듯 보였던 문예슬은 그의 말을 알아들음과 동시에 서서히 미간을 찌푸리며 분노를 가득 담아 송재이를 노려보았다.두 사람은 친한 친구라 문예슬은 송재이 앞에서 단 한 번도 설영준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았다. 심지어 속으로만 생각하던 은밀한 욕망까지 전부 다 드러내곤 했었다.그런데 그렇게 믿었던 친구가 뒤에서 설영준과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됐으니 화가 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오늘 문예슬의 행동은 눈치 없는 광대나 다름없었다.‘사람 하나 바보 만드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배신과 충격,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이 두 단어로 지배되었다.송재이는 문예슬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보였다.그녀는 차마 시선을 마주칠 수가 없어 애꿎은 입술만 깨물었다.‘설영준 이 미친놈, 대체 그딴 소리는 왜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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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화 죄책감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

꽉 닫힌 유리창으로 비가 사정없이 쏟아졌다.송재이는 눈을 질끈 감고 있다가 좀처럼 시동을 걸지 않는 남자를 보며 짜증 섞인 말투로 물었다.“출발 안 하고 뭐 해?”설영준은 그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더니 검지를 들어 그녀 앞에서 흔들었다.“...뭐 하는 거야?”“마지막이야.”설영준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오늘 밤 넌 이미 나한테 짜증 많이 냈어. 이게 마지막이야. 또 나한테 짜증 내면 이 자리에서 후회하게 만들어 줄 거야.”그 방식이 어떤 것인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녀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게다가 그 말을 할 때 뒷좌석을 힐끔 바라보기까지 했으니 더 말할 필요 없이 바로 그녀가 이해한 뜻이 맞았다.뒷좌석은 두 사람이 몸을 겹치기에는 충분한 공간이었다.두 사람은 이미 차에 한 적이 있었고 지금은 비까지 와 한껏 더 분위기가 있었다.송재이는 그의 시선을 받으며 저도 모르게 겉옷을 꽉 쥐었다. 그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경계심이 어려있었다.설영준은 그런 그녀를 보며 피식 웃었다.“내 탓이라고 생각해?”송재이는 그에게 쏘아붙이려다가 방금 그가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최대한 화를 가라앉히고 얘기했다.“예슬이가 널 좋아해.”“날 좋아하는 여자는 차고 넘쳐. 그런데 그게 뭐?”“내가 무슨 말 하는 건지 알고 있잖아.”송재이는 그의 태도가 기가 막혔다.“나는 예슬이한테 상처 주고 싶지 않단 말이야. 아마 지금쯤 너랑 내가 짜고 걔를 속인 거라고 생각할 거야...”“아니었어?”“당연히 아니지!”송재이는 화가 나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남자 하나 때문에 친구와 멀어지고 싶지 않아. 너랑은 안 보면 그만이지만 친구는 평생 봐야 한단 말이야.”“유치하긴.”설영준은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로 서서히 차에 시동을 걸었다.집으로 향하는 길, 송재이는 말이 통하지 않는 그를 한참이나 노려보다가 결국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비는 점점 더 거세졌고 송재이 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천둥 번개도 치며 날씨가 꽤 험악해졌다.설영준은 차를 세우고 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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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화 이 슬리퍼를 신은 남자가 또 있었을까?

송재이는 지금 그와 자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그녀는 설영준을 밀어내고 싶었지만 집요하게 따라오는 그의 손길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게다가 그는 그녀가 더 이상 발버둥 치지 못하도록 아예 벽에 몰아세워 버렸다.송재이는 고개를 돌려 그를 힘껏 노려보았다.하지만 그 눈빛을 받고도 그는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새삼스럽게 왜 이래?”“오늘은 하기 싫다고!”송재이는 그의 손등을 할퀴며 벗어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피식 웃으며 그녀를 더 꽉 끌어안았다.곧이어 그녀의 벨트가 풀리고 설영준의 손은 그녀의 배를 따라 천천히 아래로 미끄러졌다.폭풍우가 내리치는 밖과 달리 집 안은 농밀한 분위기가 한껏 감돌고 있었다.그의 손길에 그녀는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이딴 짓 하려고 널 집으로 데려온 거 아니야.”송재이는 간신히 숨을 고르고 단호하게 말을 내뱉었다.‘이딴 짓’이라는 말에 설영준은 흥이 다 깨진 듯 미간을 찌푸렸다.“이딴 짓 한두 번 한 것도 아닐 텐데?”그는 그녀의 얼굴을 홱 돌려 눈을 마주쳤다.그의 눈에는 소유욕이 물씬 묻어나 있었다.설영준은 한참을 그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술을 겹쳐왔다.조용한 공간 속에 두 사람의 입술 부딪히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문예슬과 그런 일이 있어 마음이 무척이나 불편했지만 자꾸 파고 들어오는 그의 열기에 송재이는 그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빨갛게 달아올랐고 온몸은 불타는 것처럼 뜨거웠다.송재이는 지금 두 손으로 벽을 짚고 고개를 뒤로 돌린 채 허리가 잔뜩 꺾여있었다.설영준은 그녀의 입술이 통통하게 부어오르고 나서야 천천히 놓아주었다.“나... 나 오늘은 정말 힘들어.”“그럼 빨리 자.”그는 예상외로 쉽게 그녀를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발걸음을 옮기기 전 그녀의 엉덩이를 두어 번 두드렸다.아까 그녀가 말한 ‘이딴 짓’이라는 단어 때문에 욕구가 갑자기 사그라진 것일지도 모르겠다.설영준은 욕실로 들어가기 전 마치 허물을 벗듯 옷을 하나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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