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의 모든 챕터: 챕터 531 - 챕터 540
796 챕터
제531화
“이승하 뇌종양 있는 거 몰랐죠?”지현우의 이마에 난 피가 서유의 미간과 이마에 뚝뚝 떨어졌다.하지만 서유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마치 인형처럼 그를 올려다보았다.“뇌 질환이 있는 상태에서 외부 충격까지 받았는데 무사하길 바라는 게 더 웃긴 거 아닌가?”사람 목숨 따위 어찌 돼도 좋다는 듯한 그의 말이 너무나도 잔혹하게 들려왔다.서유는 시트를 꽉 쥔 채 마치 기계처럼 입을 열었다.“당신이 하는 말 단 한마디도 안 믿을 거예요.”전에 검사했을 때 분명히 편두통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니 뇌종양이라는 건 지현우의 거짓말일 것이다.“안 믿는 다고요?”지현우는 코웃음을 쳤다.“그러면 당신 명의로 된 막대한 자산이 어디서 온 건지 한번 확인해 보던가요.”서유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지현우는 입가의 미소를 서서히 지우더니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이승하가 당신 신분을 되찾아준 건 자산을 전부 당신 명의로 돌리기 위해서예요. 당신이 남은 생을 편히 살게 하려고 유서까지 적어놓은 상태라고요. 알겠어요?”지현우의 말에 서유는 순간 정체 모를 한기를 느꼈다.“거짓말! 내 신분을 되찾아 준 건 내 이름으로 JS 그룹 본부를 설계해줬으면 해서예요. 그리고 자산을 넘겨준 것도 내가 괜히 주눅 들까 봐 그런 거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나 속이려 하지 마요. 그 사람은 절대 쉽게 죽지 않아요. 승하 씨는 절대 쉽게 죽지 않는다고요!”서유는 마지막 발악을 하듯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지현우는 그녀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분노에 사로잡힌 그녀를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그리고 그 싸늘한 시선에 서유는 점점 더 큰 절망을 느꼈다.그러다 문득 자신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주며 했던 이승하의 말이 떠올랐다.“이 사진 지우지 마. 기념으로 남겨 둬.”3년 전 서유 역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줄 알고 기념으로 그에게 사진을 건네주었다.‘설마... 정말 죽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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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2화
지현우는 가만히 선 채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생에 대한 미련이 점점 사라지는 듯한 눈을 확인한 지현우는 순간 심장이 철렁해 그녀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러고는 또다시 그녀의 얼굴을 한 손에 쥐고 물었다.“이승하가 죽었다니까 같이 죽고 싶기라도 해요?”서유는 눈물 젖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긍정의 뜻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지현우는 그녀의 마음을 알아채고 이번에는 그 희망마저 짓밟아버렸다.“당신이 죽으려고 하면 나는 당신을 살려낼 겁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살려낼 거에요. 그러니까 멋대로 죽을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겁니다.”“왜요?”왜 이승하와 함께 죽지도 못하게 하는 거지?지현우는 허리를 숙인 채 서유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당신은 한평생 초희 심장으로 살아가야 하니까.”서유는 그 말에 갑자기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웃음을 터트렸다.눈물을 계속 흘린 채 큰소리로 웃는 그녀의 모습에 지현우가 멈칫하다가 물었다.“왜 웃어요?”서유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의 손을 뿌리치고 바닥에 누운 채 실성한 듯 울고 또 웃었다.지현우는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다시 한번 물었다.“왜 웃는지 말해봐요.”서유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이제는 기괴한 웃음소리까지 냈다.지현우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 나 몸을 일으킨 후 바로 조지를 불렀다.“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건 아닌지 한번 봐봐요.”조지는 제자리에 가만히 선 채 퉁명스럽게 말했다.“어차피 현우 씨가 원하는 건 초희 씨 심장 아니에요? 그러면 서유 씨가 충격받아서 미치광이가 되면 오히려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어서 좋은 거 아닌가요?”그 말에 지현우가 미간을 찌푸렸다.“당신이 나를 속여서 Y 국으로 오게 한 거 아직 잊지 않습니다.”“현우 씨를 속인 건 당신이 서유 씨를 곁에 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겁니다. 서유 씨는 초희 씨가 아니에요. 그저 초희 씨 심장을 가진 사람일 뿐이라고요. 이러는 거 서유 씨한테 가혹한 일이라는 생각 한 번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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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3화
지현우는 서유가 자살 시도를 하지 못하게 사람을 시켜 그녀의 두 손과 두 발을 침대에 묶어버렸다.침에 위에서 꼼짝도 못 하게 된 서유는 더 이상 발버둥 치지도, 큰소리로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다.감시 겸 보살핌을 명 받은 도우미는 서유의 눈에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서유는 흐느낌 하나 없이 바다만을 바라보며 계속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은 마치 죽은 사람 같기도 했다.그 뒤로 일주일 동안 서유는 이대로 죽기라도 하려는 듯 밥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았다.지현우는 그녀를 이대로 죽일 생각이 없었기에 영양 수액을 끊임없이 맞게 했다. 일단 숨만 붙어 있으면 된다는 것처럼 말이다.조지는 영양 수액을 바꾸려 왔다가 공허한 서유의 눈을 보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설마 하는 마음에 손을 들어 서유의 눈앞에서 휘휘 저어보니 그녀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이에 다급해진 조지가 황급히 약 보관함을 열어 눈을 치료하는 약을 그녀의 입에 넣었다.하지만 서유는 약을 삼키려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뱉어버리기까지 했다.조지가 그녀를 설득하려고 입을 열려는데 서유가 다시 바다를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아까, 승하 씨가 나 데리러 온 걸 봤어요... 그러니까 나 이대로 내버려 둬요...”그녀는 이대로 이승하를 따라가 죽으려는 것이다.조지는 침대 곁에 서서 말라가는 여자를 보다가 다시 몸을 돌려 줄곧 그녀를 감시하던 지현우를 향해 물었다.“초희 씨 동생을 잘도 이렇게 만들어놨네요. 이제 만족해요?”지현우는 소파에 기대앉은 채 유유하게 조지를 바라보며 말했다.“당신의 임무는 저 여자를 살리는 것이지 쓸데없이 입을 놀리는 게 아닐 텐데요.”“이대로라면 서유 씨는 죽을 수도 있어요!”조지의 호통에 지현우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그럼 차라리 식물인간이 되는 약이라도 먹여요.”지현우는 전처럼 서유가 얌전히 침대 위에서 울지도 않고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조지는 주먹을 쥔 손을 부들부들 떨더니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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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4화
지현우의 시선이 그녀의 뒷모습에 떨어졌다.“그렇게도 이승하가 보고 싶어요?”서유는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뒤에 누가 있든 말든 전혀 상관없는 얼굴이었다.지현우는 익숙하다는 듯 소파에 기대앉아 긴 다리를 꼬며 말했다.“전에 이승하를 사랑하냐고 물었을 때 나한테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고작 몇 개월 못 본 사이에 같이 죽을 수도 있을 정도로 사랑이 깊어진 거죠?”그는 서유가 침묵할 줄 알았다는 듯 그녀 대신 대답했다.“그사이 사랑이 더 깊어진 게 아니라 애초에 계속 이렇게 사랑했던 거죠. 그동안은 그저 사랑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뿐이고요. 그런데 이제 영영 보지 못하게 되고 나서 사랑했다는 것을 인정하며 죽겠다고 난리라니... 참 웃긴 일이에요, 그렇죠?”지현우는 마치 모든 걸 다 꿰뚫어 보듯 제삼자의 시각에서 서유를 질책했다.“하나 궁금한 게 있어요.”지현우가 다시 물었다.“전에 내가 조사했을 때 이승하는 당신을 5년이나 비밀 애인 취급을 했어요. 그리고 당신을 전혀 소중히 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손을 올려 죽일 뻔하기도 했죠. 그런데 그렇게 상처를 준 사람을 어떻게 쉽게 용서할 수 있었던 거죠?”서유는 이승하가 그런 짓을 했는데도 전부 용서하고 심지어는 그를 위해 목숨까지 아까워하지 않는데 왜 김초희는 자신을 떠난 거지?지현우는 대답을 얻으려는 듯 서유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하지만 서유는 그저 앞만 응시한 채 그의 말에 흥미도, 대답해줄 가치도 느끼지 못했다.사실 지현우도 그녀에게서 대답을 얻으려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녀의 입을 통해 ‘괜찮아. 나 너 다 용서했어.’라는 말이 듣고 싶었을 뿐이다.물론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지현우는 이승하보다 더 한 짓을 김초희에게 했으니까.지현우는 자조하듯 웃더니 줄에 묶여 빨갛게 된 서유의 손목과 발목을 바라보았다.김초희를 곁에 둘 수 없게 됐을 때도 그는 이런 식으로 김초희를 옆에 묶어버렸다.그때 김초희는 반항하고 화를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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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5화
서유의 몸은 점점 더 야위어갔다.조지는 갖은 영양 수액으로 그녀의 목숨을 부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는 살 의지가 없었다.조지는 생기 없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 링거를 놓으려던 손을 멈췄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행여 자신이 쓸데없이 입을 놀리기라도 할까 봐 빤히 이쪽을 바라보는 지현우를 보며 말했다.“이제 더 이상 안 돼요. 서유 씨 이만 놓아주세요.”지현우는 서유 쪽을 힐긋 보더니 다시 조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무슨 수를 써서든 살려놓으세요.”“서유 씨를 살릴 방법이 뭔지 잘 알고 있잖아요!”조지는 그에게 이승하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털어놓으라고 압박했다.Y 국은 신사의 나라로 지현우가 이런 식으로 여성을 학대하는 모습을 조지는 받아들일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서유 씨가 죽으면 초희 씨 심장도 없어지는 거라고요.”지현우는 꼰 다리를 풀고 천천히 몸을 앞으로 기대 조지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그러니까 죽지 않게 살리라고요.”지현우는 서유의 생사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는 얼굴로 서유를 살리라고 하고 있다.조지는 한숨을 길게 내뱉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침대에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서유를 바라보았다.그러고는 결국 다시 그녀의 팔에 링거를 꽂아주고 옆에 앉아 그녀가 눈을 뜰 때까지 기다렸다.한참 뒤 서유는 뻑뻑한 눈을 천천히 떴다. 그러자 가장 먼저 조지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다. 얼마 전까지 분명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조지가 끊임없이 약을 먹이는 바람에 그녀의 시력이 점차 회복되었다.하지만 이건 서유가 원하는 결과가 아니었다.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고는 힘겹게 말을 뱉었다.“나 좀... 내버려 둬요...”조지는 서유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서유 씨 임신했어요.”그 말에 이미 죽은 줄 알았던 그녀의 심장이 갑자기 요동쳤다. 마치 검은색 세상에 한 줄기 빛이라도 스며든 것처럼.서유는 조지의 말이 진실인지 확인하려고 그와 눈을 맞추려고 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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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6화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서유는 다시 한번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배면 뭐가 됐든 반응이 있어야 할 텐데 새로운 생명이 깃든 느낌은 전혀 없었으니까.서유는 힘들게 손을 들어 자신의 배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한 달 됐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조지는 지현우를 한번 쳐다보았다가 다시 서유를 보며 말했다.“서유 씨, 나 의사잖아요. 다 알 수 있어요...”조지는 그저 시간을 대충 계산해 도박 수를 던진 것뿐이다. 지현우가 그녀를 데려온 지도 벌써 20일, 이곳으로 오기 전 서유는 분명히 이승하와 줄곧 함께 있었을 것이다.만약 서유가 잠자리를 한 적 없다고 대답했으면 조지는 자신이 거짓말한 것이라고 얘기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어떻게 알았냐는 것이었다.조지는 기왕 이렇게 된 거 이 거짓말로 서유가 이승하를 다시 만날 때 건강한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이승하가 죽지 않은 이상 서유를 어떻게든 살려야 했다.조지는 허리를 숙여 서유의 귓가에 격려의 말을 해주었다.“몸부터 건강해야 보고 싶은 사람도 만나러 갈 수 있지 않겠어요?”그는 그녀에게 암시할 생각이었지만 이미 지현우의 거짓말에 속은 서유는 이승하의 묘에 간다는 것으로 알아들었다.서유는 자신의 작은 배를 매만지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왜 하필 지금 이때 아이를 밴 걸까?그녀에게 찾으러 오지 말라는 이승하의 뜻인 걸까?이승하도 없는데 이 아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서유는 배를 매만진 손을 멈추고 조지를 보며 말했다.“아이를...”그녀는 ‘지워주세요’라는 말을 내뱉으려고 했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아이는 이승하와 그녀의 아이이고 그와 그녀가 그토록 고대했던 아이였다.하지만 그런 것 따위 어찌 돼도 좋을 만큼 지금은 그가 너무 보고 싶었다. 지금 당장 죽어 그를 보러 가고 싶은데 왜 이 타이밍에 아이가 생겨버린 것일까...서유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외쳤다.“왜! 왜!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대체 왜!!”그저 하루빨리 죽어서 이승하를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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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7화
지현우는 말을 마친 뒤 바로 윌슨에게 연락해 전용기를 준비시켜두었다.그러고는 부하에게 행적을 지우게 한 다음 소리소문없이 Y 국을 떠났다.N 국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늦은 저녁이었다.도우미는 서유를 업은 채 조심스럽게 전용기에서 내렸다. 차가운 바람에 가뜩이나 야윈 서유의 몸이 더욱더 말라보여 마치 나뭇가지처럼 앙상해 보였다.뒤에서 따라오던 지현우는 그 모습을 힐끔 보더니 자신의 손에 쥐고 있던 코트를 그녀에게 덮어주었다.그리고 그 모습을 전부 지켜보던 조지는 잠깐 흠칫하더니 다시 아무 말 없이 아이를 안고 뒤를 따랐다.N 국의 날씨는 매우 추웠기에 공항에서 내린 뒤 불과 5분도 채 되지 않아 서유는 몸을 덜덜 떨었다.N 국 별장 운전기사가 미리 차량에 히터를 켜두었는데도 서유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지현우는 제일 뒷좌석 시트에 누워 양팔을 꼭 끌어안은 채 웅크려있으면서도 그의 코트는 덮지 않으려는 그녀를 보며 표정이 어두워졌다.그는 서유 곁으로 다가와 억지로 코트를 몸에 덮어주었다. 덮어줄 때까지 서유는 가만히 있다가 그가 다시 자리로 돌아간 뒤에 바로 코트를 치워버렸다.그 행동이 지현우의 눈에는 도발하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혀를 차더니 결국 짜증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며 다시는 덮어주려 하지 않았다.조지의 품에 가만히 안겨있던 연이는 까만 눈동자로 뒷좌석에서 웅크리고 있는 서유를 바라보았다.그녀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방에 갇혔던 자신과 닮아 있어 아이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으려고 통통한 손을 내밀었다.하지만 아직 어린아이라 그런지 팔이 짧아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 결국 아이는 조지 품에서 발버둥 쳐서 내려온 뒤 서유의 옆으로 다가가 그녀의 얼굴을 매만졌다.“언니, 무서워하지 마요...”부드러운 아이 손이 얼굴에 닿자 서유가 몸을 움찔거렸다.눈앞에 있는 게 누군지는 몰랐지만 목소리로 아이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연이는 서유의 얼굴을 이리저리 매만지다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엄마죠. 연이 엄마죠...”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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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8화
그 뒤로 누구 하나 말하는 사람 없이 차량은 지현우의 별장에 도착했다. 해당 별장은 전화통화가 불가할 정도의 아주 먼 곳에 있다.지현우는 서유와 연이를 각자 방에 데려다 놓도록 명령한 다음 조지에게 담배 한 갑을 던지며 같이 별장 밖으로 나갔다.그는 담배를 입에 문 채 먼저 조지에게 담배를 붙여준 뒤 다시 자기 담배에 불을 붙였다.조지는 몇 모금 빨아들이더니 마당 불빛을 등진 지현우를 보며 물었다.“이제 어쩔 생각인 거죠?”그러자 지현우가 태연한 말투로 되물었다.“뭘 말입니까?”“초희 씨 아이도 데려오고 서유 씨도 이곳에 데려와서 뭘 어쩔 생각인지 묻는 겁니다. 이대로 평생 살 건 아니잖아요.”지현우는 담배를 한 모금 들이킨 후 말했다.“그럼 안돼요?”조지는 깊게 한숨을 들이켰다.“무슨 자격으로요? 무슨 자격으로 저 두 사람을 이곳에 묶어둘 건데요?”김초희의 딸은 친부가 있고 서유는 애인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지현우에게 잡혀 있을 명분 따위 없다.지현우는 담뱃재를 털며 여전히 담담하게 말했다.“꼭 무슨 자격이 돼야만 같이 살 수 있습니까?”“서유 씨를 찾는 사람이 그렇게나 많은데 평생 같이 살 수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조지는 말을 마치고 그를 향해 한마디 물었다.“초희 씨를 사랑해요?”김초희를 사랑하면서 대체 왜 그녀의 여동생과 평생 같이 있으려고 하는 걸까.지현우는 으레 까만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며 답했다.“아니요.”조지는 주먹을 꽉 쥐며 그를 안타까운 얼굴로 바라보았다.“당신은 참 불쌍한 사람이에요.”지현우는 김초희에게 상처를 주는 바람에 지금은 사랑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도 못하고 지옥으로 가 그녀를 만날 용기도 내지 못하고 있다.조지는 손에 든 담배를 버리더니 별장 안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몸을 돌렸다. 그때 뒤에서 지현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반드시 살게 만들어요.”조지는 잠깐 멈칫하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는 도우미가 건네준 뜨거운 타올로 손을 닦은 후 침실에서 울다가 잠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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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9화
서유는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고 조지는 그런 그녀를 굳이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 뒤로 자주 연이를 데리고 와 그녀에게 건네줄 뿐이었다.낮이면 연이는 서유의 침대에 엎드려 작은 손가락으로 그녀의 얼굴을 콕콕 찌르며 놀았다.“이모, 이모는 꼭 아빠가 사준 인형 같아요. 이모처럼 엄청 예쁜 얼굴인데 말을 못 해요.”조지가 어떻게 얘기를 한 건지 연이는 첫 만남이 있고 난 뒤 서유를 엄마가 아닌 이모로 부르기 시작했다.이모라는 소리에 서유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저녁에는 자연스럽게 연이의 작은 몸을 꼭 끌어안고 자기도 했다.연이는 마치 홀로 배에 앉아 망망대해를 건너고 있을 때 반짝거리며 길을 비춰주는 등대와도 같았다.서유는 고개를 숙여 품속 아이의 얼굴을 보려고 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죽으면 다시 볼 수 있으려나?만약 죽어서도 제대로 앞을 보지 못하면 이승하의 얼굴도 못 보는 것 아닌가?서유는 연이를 꼭 끌어안은 채 초점 없는 눈동자로 창밖 너머 먼 곳을 바라보았다.‘승하 씨, 그거 알아요? 나 당신 아이 임신했어요. 만약 당신이 살아있었다면, 이 소식을 직접 전해 들었다면 얼마나 좋아했을까요. 하지만 당신은 이제 이 세상에 없죠... 승하 씨 당신은 내가 살아갈 이유를 없애놓고 또 당신을 찾으러 갈 수 없는 이유를 만들어줬어요... 나 이제 어떡해야 하죠? 당신이 남긴 아이를 낳으려니 우리 아이가 연이처럼 불쌍해질까 봐 두렵고, 아이를 지워버리자니 당신이 남기고 간 유일한 보물이라 마음에 걸려요. 난 대체 어떻게 해야 해요? 어떻게 해야 아이도 낳고 당신을 보러 갈 수도 있을까요...?’서유는 답을 찾고 싶어 밤새 제발 꿈에 찾아오라고 빌고 또 빌었지만 결국 이승하는 또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그녀는 침대 등받이 쿠션에 기대 홀로 깊이 생각하다가 결국 답을 내렸다.서유는 뱃속 아이를 낳고 이씨 가문에 보낸 다음 이승하를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지금이야 아직 태어나기 전이기에 아이에게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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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0화
서울시, 주서희네 병원.이승하가 혼수상태에 빠지고 나서 벌써 2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병상에 누운 남자는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에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었다.미세한 움직임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숨소리도 무척이나 옅은 것이 마치 껍데기만 이곳에 남겨두고 진작에 죽은 사람 같았다.이연석은 소수빈이 건네준 면봉에 따뜻한 물을 적셔 이승하의 갈라진 입술을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그러고는 깨끗한 타올로 입가를 닦아주며 뒤에 서 있는 경호실장에게 물었다.“아직도 못 찾았어?”경호실장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답했다.“죄송합니다. Y 국을 다 뒤졌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이연석은 손에 든 타올을 꽉 쥐더니 몸을 돌려 경호실장의 머리에 던졌다.“쓸모없는 새끼, 사람 하나 제대로 못 찾아?”경호실장은 그의 분노를 그대로 받았다.“3개월 전에 누가 서유 씨가 Y 국으로 가는 전용기에 탑승한 모습을 봤다고 했는데 왜 아직도 못 찾는 거야, 왜!”이연석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서 몇 번이나 더 욕을 했다.“단서가 있는데도 찾지 못하는 건 단순 능력 부족 아닌가? 안 그래?!”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듣고 있는 경호실장에 이연석은 옆에 있는 물건을 들어 그의 머리를 힘껏 때리려다가 소수빈에 의해 제지당했다.“서유 씨를 목격했다던 그 전용기는 Y 국 왕실 일원인 윌슨이라는 분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서유 씨를 모르신다고 하고 자신의 전용기에 태운 적도 없다고 하니 아무래도 목격자의 말을 의심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이연석의 얼굴에는 지금 분노와 그간 JS 그룹을 관리하면서 쌓였던 피로와 이승하가 여태 깨어나지 못한 것에 대한 초조함과 불안함으로 가득했다.그리고 그 탓인지 평소 어느 정도 진중한 모습이었던 그는 현재 교양 없는 재벌 2세처럼 행동했다.그는 한참을 씩씩거리다 천천히 화를 가라앉히고 다시 병상 옆에 앉았다.그러고는 여태 깨어나지 못한 자신의 형을 보며 자책하듯 말했다.“형, 미안해요.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는데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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