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로 누구 하나 말하는 사람 없이 차량은 지현우의 별장에 도착했다. 해당 별장은 전화통화가 불가할 정도의 아주 먼 곳에 있다.지현우는 서유와 연이를 각자 방에 데려다 놓도록 명령한 다음 조지에게 담배 한 갑을 던지며 같이 별장 밖으로 나갔다.그는 담배를 입에 문 채 먼저 조지에게 담배를 붙여준 뒤 다시 자기 담배에 불을 붙였다.조지는 몇 모금 빨아들이더니 마당 불빛을 등진 지현우를 보며 물었다.“이제 어쩔 생각인 거죠?”그러자 지현우가 태연한 말투로 되물었다.“뭘 말입니까?”“초희 씨 아이도 데려오고 서유 씨도 이곳에 데려와서 뭘 어쩔 생각인지 묻는 겁니다. 이대로 평생 살 건 아니잖아요.”지현우는 담배를 한 모금 들이킨 후 말했다.“그럼 안돼요?”조지는 깊게 한숨을 들이켰다.“무슨 자격으로요? 무슨 자격으로 저 두 사람을 이곳에 묶어둘 건데요?”김초희의 딸은 친부가 있고 서유는 애인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지현우에게 잡혀 있을 명분 따위 없다.지현우는 담뱃재를 털며 여전히 담담하게 말했다.“꼭 무슨 자격이 돼야만 같이 살 수 있습니까?”“서유 씨를 찾는 사람이 그렇게나 많은데 평생 같이 살 수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조지는 말을 마치고 그를 향해 한마디 물었다.“초희 씨를 사랑해요?”김초희를 사랑하면서 대체 왜 그녀의 여동생과 평생 같이 있으려고 하는 걸까.지현우는 으레 까만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며 답했다.“아니요.”조지는 주먹을 꽉 쥐며 그를 안타까운 얼굴로 바라보았다.“당신은 참 불쌍한 사람이에요.”지현우는 김초희에게 상처를 주는 바람에 지금은 사랑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도 못하고 지옥으로 가 그녀를 만날 용기도 내지 못하고 있다.조지는 손에 든 담배를 버리더니 별장 안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몸을 돌렸다. 그때 뒤에서 지현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반드시 살게 만들어요.”조지는 잠깐 멈칫하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는 도우미가 건네준 뜨거운 타올로 손을 닦은 후 침실에서 울다가 잠든
서유는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고 조지는 그런 그녀를 굳이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 뒤로 자주 연이를 데리고 와 그녀에게 건네줄 뿐이었다.낮이면 연이는 서유의 침대에 엎드려 작은 손가락으로 그녀의 얼굴을 콕콕 찌르며 놀았다.“이모, 이모는 꼭 아빠가 사준 인형 같아요. 이모처럼 엄청 예쁜 얼굴인데 말을 못 해요.”조지가 어떻게 얘기를 한 건지 연이는 첫 만남이 있고 난 뒤 서유를 엄마가 아닌 이모로 부르기 시작했다.이모라는 소리에 서유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저녁에는 자연스럽게 연이의 작은 몸을 꼭 끌어안고 자기도 했다.연이는 마치 홀로 배에 앉아 망망대해를 건너고 있을 때 반짝거리며 길을 비춰주는 등대와도 같았다.서유는 고개를 숙여 품속 아이의 얼굴을 보려고 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죽으면 다시 볼 수 있으려나?만약 죽어서도 제대로 앞을 보지 못하면 이승하의 얼굴도 못 보는 것 아닌가?서유는 연이를 꼭 끌어안은 채 초점 없는 눈동자로 창밖 너머 먼 곳을 바라보았다.‘승하 씨, 그거 알아요? 나 당신 아이 임신했어요. 만약 당신이 살아있었다면, 이 소식을 직접 전해 들었다면 얼마나 좋아했을까요. 하지만 당신은 이제 이 세상에 없죠... 승하 씨 당신은 내가 살아갈 이유를 없애놓고 또 당신을 찾으러 갈 수 없는 이유를 만들어줬어요... 나 이제 어떡해야 하죠? 당신이 남긴 아이를 낳으려니 우리 아이가 연이처럼 불쌍해질까 봐 두렵고, 아이를 지워버리자니 당신이 남기고 간 유일한 보물이라 마음에 걸려요. 난 대체 어떻게 해야 해요? 어떻게 해야 아이도 낳고 당신을 보러 갈 수도 있을까요...?’서유는 답을 찾고 싶어 밤새 제발 꿈에 찾아오라고 빌고 또 빌었지만 결국 이승하는 또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그녀는 침대 등받이 쿠션에 기대 홀로 깊이 생각하다가 결국 답을 내렸다.서유는 뱃속 아이를 낳고 이씨 가문에 보낸 다음 이승하를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지금이야 아직 태어나기 전이기에 아이에게 큰
서울시, 주서희네 병원.이승하가 혼수상태에 빠지고 나서 벌써 2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병상에 누운 남자는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에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었다.미세한 움직임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숨소리도 무척이나 옅은 것이 마치 껍데기만 이곳에 남겨두고 진작에 죽은 사람 같았다.이연석은 소수빈이 건네준 면봉에 따뜻한 물을 적셔 이승하의 갈라진 입술을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그러고는 깨끗한 타올로 입가를 닦아주며 뒤에 서 있는 경호실장에게 물었다.“아직도 못 찾았어?”경호실장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답했다.“죄송합니다. Y 국을 다 뒤졌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이연석은 손에 든 타올을 꽉 쥐더니 몸을 돌려 경호실장의 머리에 던졌다.“쓸모없는 새끼, 사람 하나 제대로 못 찾아?”경호실장은 그의 분노를 그대로 받았다.“3개월 전에 누가 서유 씨가 Y 국으로 가는 전용기에 탑승한 모습을 봤다고 했는데 왜 아직도 못 찾는 거야, 왜!”이연석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서 몇 번이나 더 욕을 했다.“단서가 있는데도 찾지 못하는 건 단순 능력 부족 아닌가? 안 그래?!”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듣고 있는 경호실장에 이연석은 옆에 있는 물건을 들어 그의 머리를 힘껏 때리려다가 소수빈에 의해 제지당했다.“서유 씨를 목격했다던 그 전용기는 Y 국 왕실 일원인 윌슨이라는 분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서유 씨를 모르신다고 하고 자신의 전용기에 태운 적도 없다고 하니 아무래도 목격자의 말을 의심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이연석의 얼굴에는 지금 분노와 그간 JS 그룹을 관리하면서 쌓였던 피로와 이승하가 여태 깨어나지 못한 것에 대한 초조함과 불안함으로 가득했다.그리고 그 탓인지 평소 어느 정도 진중한 모습이었던 그는 현재 교양 없는 재벌 2세처럼 행동했다.그는 한참을 씩씩거리다 천천히 화를 가라앉히고 다시 병상 옆에 앉았다.그러고는 여태 깨어나지 못한 자신의 형을 보며 자책하듯 말했다.“형, 미안해요.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는데 아직
소수빈은 잔뜩 격앙된 얼굴로 단 하나의 움직임이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이승하를 바라보았다.질끈 감고 있던 이승하의 두 눈이 무언가와 싸우기라도 하는 듯 움찔움찔 떨렸다.그는 눈을 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좀처럼 떠지지 않았다.이승하는 지금 아름다운 꿈속에 갇혀있다. 꿈속에서 서유는 그의 아이를 안고서 그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이런 꿈이라면 영영 갇혀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갑자기 어느 날 초점 없는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는 또 다른 서유가 나타났다. 그 서유는 손으로 배를 어루만지며 매일 밤 계속 승하 씨가 보고 싶다고 언제 데리러 와줄 거냐고 울고 있었다.이승하는 뒤를 돌아 아이를 안은 채 예쁘게 웃는 서유를 한번 보다가 또다시 고개를 돌려 안개 속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며 두 눈이 보이지 않는 서유를 바라보았다.어느 쪽이 진짜 그녀인지 그는 알 수가 없어 그대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그러다 결국 그는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미어지는 서유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쪽으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이쪽 서유가 진짜라는 확신이 들었다.그렇게 서서히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려는데 갑자기 서유가 사라져버렸다. 마치 모든 게 전부 꿈이었던 것처럼. 그리고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풍경들도 서서히 사라지고 뒤에서 그의 아이를 안은 채 미소 짓던 서유도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렸다.이승하는 당황함과 초조함에 계속해서 서유의 이름을 불렀다.“서유야!”그리고 그 순간, 이승하가 두 눈을 번쩍 떴다.소수빈은 익숙한 두 눈을 마주하자 너무나도 감격스러워 눈물을 흘렸다.“대표님, 드디어 깨어나셨군요!”그는 떨리는 손으로 간호사 호출 벨을 눌렀다.줄곧 이승하 병실 동태를 살피던 부원장은 오늘 처음으로 울리는 벨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의사들을 대동하고 황급히 병실로 향했다.부원장은 병실로 들어와 제일 먼저 정밀검사를 진행한 후 보고서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걸 확인한 뒤에야 한시름을 놓았다.“대표님, 정말 이대로 깨어나시지
마침 소수빈도 소준섭에게 원한이 있었기에 그 어느 때보다 더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맡겨 주세요!”이승하는 지시를 내린 후 몸을 일으키려고 해봤지만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손가락이었다.그는 손가락 하나하나를 움직이며 힘을 집중시켜 또다시 몸을 움직이려고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소수빈은 그가 힘을 너무 쓰는 바람에 땀까지 맺히자 황급히 그를 제지했다.“대표님, 이제 막 깨어나셔서 아직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일단 적절한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이승하는 그 후로 몇 번 정도 더 시도해보다가 결국 포기했다.그는 병상에서 꼼짝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을 보며 그때 서유 역시 혼수상태였을 때가 생각났다.그때는 그녀가 어느 정도 힘들었는지 몰랐지만 직접 겪고 나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서유 홀로 그 3년을 버텨냈다는 생각에 그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만약 움직일 수 있게 되면 그녀 옆에 딱 붙어 꼭 끌어안아 주리라 다짐했다.몇 분 뒤, 병실 문이 열리고 의사들이 들어와 이승하에게 새로운 약을 가져다주었다. 소수빈은 그 틈을 이용해 하루빨리 서유를 찾아내라고, 가능하면 오늘 안으로 찾아내라고 택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러고는 이연석에게도 메시지로 이승하의 상태를 전한 다음 서유의 일은 꼭 비밀이라고 신신당부했다.임원진들과 한창 회의 중이던 이연석은 이승하의 소식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병원으로 뛰어갔다. 헐레벌떡 병실 앞으로 다가가 보니 문 앞에는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미모의 한 여성이 서 있었다.그녀는 팔짱을 낀 채 병실 문 유리 너머의 이승하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다행이네.”강세은은 딱 이 한마디만 한 뒤 몸을 돌려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러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이연석을 발견하고는 그녀 역시 그를 위아래로 한번 훑었다.그녀는 이승하와 닮은 듯한 얼굴의 이연석을 보고 바로 이승하의 동생 중 한 명이겠구나 하고 생각했다.강세은은 손을 들어 우아하게 머리를 뒤로 넘기더니 이연석
이승하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벌써 다음 날 아침이었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이씨 가문 사람들에 귀찮은 기색을 내비쳤다.가문 사람들은 이승하가 시끄러운 걸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아무 말 없이 그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그때 제일 오른쪽에 서 있던 깔끔한 정장 차림의 75세 노인, 이태석이 눈물을 글썽이며 이승하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그는 지팡이를 꼭 쥐고서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승하야, 고생 많았다.”이태석의 목소리는 그가 지나온 세월을 그대로 보여주는 양 무게가 있었다.게다가 흔들림 없는 그의 기세와 더불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압박감을 느끼게 했다.이씨 가문 대대로 이어진 그 아우라의 시초가 바로 이태석이었다.이승하는 그에게 시선을 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이태석은 이승하와 자신 사이에 느껴지는 거리감에 왠지 모르게 조금 어색하고 불편해졌다.그는 이승하가 어렸을 때 그의 어머니인 박화영을 향한 죄책감 때문에 그녀의 행위를 묵인하며 한 번도 손주를 감싸주지 못했었다.이승하를 후계자로 공을 들인 건 사실이나 이승하는 그런 그에게 애정을 느끼지 않았고 큰 뒤로는 본가에 찾아가지도 않았다.이태석은 이승하의 마음속에 맺힌 응어리를 알고 있기에 몇 마디 당부의 말만 건넨 뒤 바로 병실을 떠나버렸다.제일 큰 어르신을 시작해 이씨 가문 사람들도 저마다 한마디 하고 하나둘 병실을 빠져나갔다.이승하는 유일하게 남은 이연석을 보며 물었다.“서유는?”이연석은 소수빈과 잠깐 눈을 마주치더니 어색하게 바닥을 보며 답했다.“어제 형 자고 있을 때 왔었어요, 가혜 씨랑 함께. 그러다 가혜 씨가 몸이 안 좋아진 바람에 다시 집으로 갔고요...”이승하의 미간이 서서히 찌푸려졌다.“이연석, 너 거짓말할 때 눈동자가 아래로 향하는 버릇 좀 고쳐야겠다.”그 말에 이연석이 뜨끔하며 다급히 해명하려는데 또다시 이승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서유한테 뭔 일 있는 거야?”이연석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
N 국.아침 해가 별장 창문을 뚫고 방 안에 스며들었다.따스한 햇볕은 웨이브 머리로 뒤덮인 여성의 뒷모습을 따스하게 비춰주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눈이 부셔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서유는 연이를 안은 채 접시 위에 있는 빵을 조금씩 찢어 아이의 입에 넣어주었다.연이는 작은 입술을 최대한 크게 열어서 그녀가 건네주는 대로 받아먹었다. 그러고는 오물오물 빵을 씹으며 맞은편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지현우는 스테이크를 한입 크기로 썰어놓고는 포크로 고기 한 점을 집어 서유 입가로 가져갔다.“초희야, 아.”지현우는 서유를 완전히 김초희로 인식한 채로 행동했다.연이는 지금 의문 가득한 얼굴이었다. 얼마 전 조지에게서 자신의 엄마는 김초희이고 이모의 이름은 서유라는 걸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얼마 전부터 지현우가 서유에게 초희라고 부르는 바람에 혼란이 왔다.하지만 그렇다고 물어보기는 겁이 나서 고개를 숙인 채 계속 빵을 받아먹었다.서유는 입가에 살짝 묻은 스테이크 소스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느끼해서 못 먹겠어요.”지현우는 그 말에 스테이크를 내려놓고 옆에 놓인 전복죽을 한 숟가락 떠 다시 그녀의 입가에 가져갔다.“이건 죽이야.”서유는 이번에는 입을 열고 얌전히 받아먹었다.지현우는 그 모습을 보더니 입꼬리를 예쁘게 말아 올렸다. 그 미소는 지금 서유 몸을 비추는 햇살처럼 눈이 부셨다.지현우는 서유를 먹이고 서유는 연이를 먹이고 있었다. 그들을 모르는 사람 눈에는 무척이나 단란한 한 가족처럼 보일 것이다.하지만 서유는 똑똑히 알고 있다. 이건 가족같은 게 아니라 그저 지현우가 만든 큰 새장일 뿐이라는 것을...지현우는 그녀가 제안을 받아들인 순간부터 도망갈 것을 우려해 눈 치료 약을 주지 않았다.그 일로 서유는 반항을 해봤었지만 미친놈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이에 눈이 보이지 않는 채로 도망치려고 해봤지만 가다가 이리저리 부딪히는 바람에 결국 지현우에게 잡혔고 지현우는 그런 그녀에게 벌을 내리겠다며 그녀가 아닌 연이에게 손을 댔
비서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한번 말을 전했다.“이승하가 깨어났습니다.”지현우는 잠깐 놀라는가 싶더니 이내 빠르게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어차피 언젠가는 깨어날 줄 알았기에 크게 놀랄 것도 없었다.그는 천천히 티슈를 집어 들어 아까 집어 던질 때 손에 묻은 죽을 닦아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CCTV를 바라보며 말했다.“깨어났으니 이제 선물 한번 보내볼까?”지현우는 이승하가 분명히 즐거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너무 기쁜 나머지 다시 혼수상태에 빠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지현우는 이승하의 반응을 눈앞에서 보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병상 위에 누운 이승하는 누군가가 보낸 CCTV 영상을 보더니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는 떨리는 손끝으로 지현우가 주는 대로 받아먹는 서유의 모습을 아래로 내리고는 이어 두 번째 영상을 터치했다. 거기에는 지현우를 향해 입꼬리를 예쁘게 말아 올린 채 다정하게 그의 이름을 부르는 서유가 있었다. 지현우도 마찬가지로 행복하게 웃으면 사랑스러워죽겠다는 얼굴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그다음 영상에서는 지현우가 자고 있는 서유를 안아 든 채 거실에서 침실로 들어가 밤이 다 가도록 나오지 않았다.이승하는 여기까지 보고는 더 이상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듯한 느낌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이승하는 휴대폰을 꽉 쥐며 어떻게든 병상에서 일어나려고 애썼지만 몸이 제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그 무력감에 불안하고 초조해져 이성이 곧 끊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승하는 여태 그랬던 것처럼 천천히 숨을 고르며 침착하려고 애썼다.어느 정도 진정이 된 다음 그는 다시 휴대폰을 들어 계속해서 그 영상들을 보았다. 그의 까만 눈은 오로지 영상 속 서유의 얼굴만 쫓았다.그에게 보내진 영상은 대충 봐도 30개가 넘었고 CCTV 속 일부분만 잘라 그에게 보냈다. 영상 속에서 서유는 싫은 기색 하나 없이 항상 다정하게 지현우를 대했으며 단 한 번도 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