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벌써 다음 날 아침이었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이씨 가문 사람들에 귀찮은 기색을 내비쳤다.가문 사람들은 이승하가 시끄러운 걸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아무 말 없이 그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그때 제일 오른쪽에 서 있던 깔끔한 정장 차림의 75세 노인, 이태석이 눈물을 글썽이며 이승하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그는 지팡이를 꼭 쥐고서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승하야, 고생 많았다.”이태석의 목소리는 그가 지나온 세월을 그대로 보여주는 양 무게가 있었다.게다가 흔들림 없는 그의 기세와 더불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압박감을 느끼게 했다.이씨 가문 대대로 이어진 그 아우라의 시초가 바로 이태석이었다.이승하는 그에게 시선을 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이태석은 이승하와 자신 사이에 느껴지는 거리감에 왠지 모르게 조금 어색하고 불편해졌다.그는 이승하가 어렸을 때 그의 어머니인 박화영을 향한 죄책감 때문에 그녀의 행위를 묵인하며 한 번도 손주를 감싸주지 못했었다.이승하를 후계자로 공을 들인 건 사실이나 이승하는 그런 그에게 애정을 느끼지 않았고 큰 뒤로는 본가에 찾아가지도 않았다.이태석은 이승하의 마음속에 맺힌 응어리를 알고 있기에 몇 마디 당부의 말만 건넨 뒤 바로 병실을 떠나버렸다.제일 큰 어르신을 시작해 이씨 가문 사람들도 저마다 한마디 하고 하나둘 병실을 빠져나갔다.이승하는 유일하게 남은 이연석을 보며 물었다.“서유는?”이연석은 소수빈과 잠깐 눈을 마주치더니 어색하게 바닥을 보며 답했다.“어제 형 자고 있을 때 왔었어요, 가혜 씨랑 함께. 그러다 가혜 씨가 몸이 안 좋아진 바람에 다시 집으로 갔고요...”이승하의 미간이 서서히 찌푸려졌다.“이연석, 너 거짓말할 때 눈동자가 아래로 향하는 버릇 좀 고쳐야겠다.”그 말에 이연석이 뜨끔하며 다급히 해명하려는데 또다시 이승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서유한테 뭔 일 있는 거야?”이연석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
N 국.아침 해가 별장 창문을 뚫고 방 안에 스며들었다.따스한 햇볕은 웨이브 머리로 뒤덮인 여성의 뒷모습을 따스하게 비춰주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눈이 부셔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서유는 연이를 안은 채 접시 위에 있는 빵을 조금씩 찢어 아이의 입에 넣어주었다.연이는 작은 입술을 최대한 크게 열어서 그녀가 건네주는 대로 받아먹었다. 그러고는 오물오물 빵을 씹으며 맞은편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지현우는 스테이크를 한입 크기로 썰어놓고는 포크로 고기 한 점을 집어 서유 입가로 가져갔다.“초희야, 아.”지현우는 서유를 완전히 김초희로 인식한 채로 행동했다.연이는 지금 의문 가득한 얼굴이었다. 얼마 전 조지에게서 자신의 엄마는 김초희이고 이모의 이름은 서유라는 걸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얼마 전부터 지현우가 서유에게 초희라고 부르는 바람에 혼란이 왔다.하지만 그렇다고 물어보기는 겁이 나서 고개를 숙인 채 계속 빵을 받아먹었다.서유는 입가에 살짝 묻은 스테이크 소스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느끼해서 못 먹겠어요.”지현우는 그 말에 스테이크를 내려놓고 옆에 놓인 전복죽을 한 숟가락 떠 다시 그녀의 입가에 가져갔다.“이건 죽이야.”서유는 이번에는 입을 열고 얌전히 받아먹었다.지현우는 그 모습을 보더니 입꼬리를 예쁘게 말아 올렸다. 그 미소는 지금 서유 몸을 비추는 햇살처럼 눈이 부셨다.지현우는 서유를 먹이고 서유는 연이를 먹이고 있었다. 그들을 모르는 사람 눈에는 무척이나 단란한 한 가족처럼 보일 것이다.하지만 서유는 똑똑히 알고 있다. 이건 가족같은 게 아니라 그저 지현우가 만든 큰 새장일 뿐이라는 것을...지현우는 그녀가 제안을 받아들인 순간부터 도망갈 것을 우려해 눈 치료 약을 주지 않았다.그 일로 서유는 반항을 해봤었지만 미친놈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이에 눈이 보이지 않는 채로 도망치려고 해봤지만 가다가 이리저리 부딪히는 바람에 결국 지현우에게 잡혔고 지현우는 그런 그녀에게 벌을 내리겠다며 그녀가 아닌 연이에게 손을 댔
비서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한번 말을 전했다.“이승하가 깨어났습니다.”지현우는 잠깐 놀라는가 싶더니 이내 빠르게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어차피 언젠가는 깨어날 줄 알았기에 크게 놀랄 것도 없었다.그는 천천히 티슈를 집어 들어 아까 집어 던질 때 손에 묻은 죽을 닦아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CCTV를 바라보며 말했다.“깨어났으니 이제 선물 한번 보내볼까?”지현우는 이승하가 분명히 즐거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너무 기쁜 나머지 다시 혼수상태에 빠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지현우는 이승하의 반응을 눈앞에서 보지 못하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병상 위에 누운 이승하는 누군가가 보낸 CCTV 영상을 보더니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는 떨리는 손끝으로 지현우가 주는 대로 받아먹는 서유의 모습을 아래로 내리고는 이어 두 번째 영상을 터치했다. 거기에는 지현우를 향해 입꼬리를 예쁘게 말아 올린 채 다정하게 그의 이름을 부르는 서유가 있었다. 지현우도 마찬가지로 행복하게 웃으면 사랑스러워죽겠다는 얼굴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그다음 영상에서는 지현우가 자고 있는 서유를 안아 든 채 거실에서 침실로 들어가 밤이 다 가도록 나오지 않았다.이승하는 여기까지 보고는 더 이상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듯한 느낌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이승하는 휴대폰을 꽉 쥐며 어떻게든 병상에서 일어나려고 애썼지만 몸이 제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그 무력감에 불안하고 초조해져 이성이 곧 끊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승하는 여태 그랬던 것처럼 천천히 숨을 고르며 침착하려고 애썼다.어느 정도 진정이 된 다음 그는 다시 휴대폰을 들어 계속해서 그 영상들을 보았다. 그의 까만 눈은 오로지 영상 속 서유의 얼굴만 쫓았다.그에게 보내진 영상은 대충 봐도 30개가 넘었고 CCTV 속 일부분만 잘라 그에게 보냈다. 영상 속에서 서유는 싫은 기색 하나 없이 항상 다정하게 지현우를 대했으며 단 한 번도 카
택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윌슨의 입을 열어버리는 소수빈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우리 조직에 들어와요!”소수빈은 차 문을 닫고 윌슨 가족을 병원에 보낸 후 택이에게 말했다.“저는 그만큼 똑똑하지 않아서요.”택이는 그 말에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까지 서유를 찾지 못하는 것을 보면 자신도 그렇게 똑똑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그는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며 머리를 한번 흔들더니 곧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전용기를 준비시켰다. 그러고는 소수빈을 데리고 N 국으로 향했다.줄곧 Y 국 상황을 주시하던 지현우의 비서는 윌슨이 그들의 행방을 털어놓은 것을 전해 듣고 다급하게 지현우의 서재로 찾아갔다.“대표님, 이승하 쪽 사람들이 Y 국 별장을 알아내고 윌슨 씨 가족을 협박해 대표님의 행방을 알아냈습니다.”“그래?”지현우는 전혀 당황하지 않은 얼굴이었다.“오라고 하지 뭐.”그는 여유 있게 의자에 기대며 말했다.“지금 당장 뒷마당에 헬기 준비시켜.”비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가버렸다.지현우는 미리 준비해둔 녹음 펜과 USB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서재에서 나와 다급하게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다 거의 다 내려왔을 때 연이의 손을 꼭 잡은 채 그를 기다리는 서유를 발견했다.지현우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알고 있는 듯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약속한 한 달이 지났어요. 이제 나 보내줘요.”지현우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보며 말했다.“알겠어요.”서유는 원래 그가 거절하면 미리 준비해온 말로 그를 설득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그는 너무나도 흔쾌히 허락했다.그녀는 급작스러운 그의 태도 변화에 오히려 더 의심만 들었다.지현우가 지금 어떤 표정인지 보고 싶었지만 눈이 안 보이니 답답할 따름이었다.“금방 출발할 거니까 방으로 가서 떠날 준비하고 와요.”“설마 같이 가게요?”지현우는 제일 마지막 계단에 서서 허리를 살짝 숙인 채 서유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눈도 안 보
택이와 소수빈은 빠르게 사라진 헬기를 보고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택이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사람들에게 헬기를 쫓으라고 명령한 뒤 소수빈과 일부 부하들을 데리고 별장 안으로 들어왔다.집 안에서 단서를 발견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부하 중 한 명이 서유의 침실에서 녹음 펜 하나와 USB 하나 그리고 [승하 씨에게]라는 메모지를 발견했다.“여기 서유 씨가 대표님께 남기신 것 같은 물건이 놓여있습니다!”택이는 침실로 올라가 바로 녹음 펜 안의 음성 먼저 들었다.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옆에 있는 소수빈을 바라보았다.“이거 혹시...”그러자 소수빈이 굳은 얼굴로 답했다.“서유 씨 목소리입니다.”그는 택이의 손에 들린 USB를 바로 컴퓨터에 꽂았다.두 사람은 USB 안에 있던 영상을 확인하자마자 마음이 무거워졌다.소수빈은 두 물건을 손에 꽉 쥐고 말했다.“택이 씨는 지현우를 계속 추적해주세요. 저는 일단 돌아가 대표님의 의사를 묻겠습니다.”택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기 사람들을 데리고 계속 지현우를 쫓았다.소수빈은 빠르게 서울시에 도착한 후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병실 앞에 다다른 그는 손에 든 물건을 꽉 쥐며 혹시 이걸 보고 이승하가 충격을 받는 건 아닐까 하고 잠깐 고민했다.하지만 이제는 그 무엇도 비밀로 하고 싶지 않았기에 결국 용기를 내어 병실 문을 열었다.이승하는 병상에 누워 있다가 소수빈의 얼굴이 보이자 희망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찾았어?”소수빈은 여전히 모든 신경이 서유를 향해 있는 그를 보며 마음이 무거워져 손에 힘을 더 꽉 쥐었다.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아직이요...”이승하는 그 대답에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런데 왜 벌써 돌아와?”소수빈은 손에 든 물건을 이승하에게 건넸다.“계속 서유 씨를 찾을지 말지 대표님의 의사를 듣고 싶어서 왔습니다.”이승하는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혹시 서유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서유한테 무슨
지현우는 헬기를 어느 한 산골 마을에 세운 후 거기에 세워져 있는 다른 한 대의 헬기로 갈아탔다. 그 뒤로 몇 번을 더 갈아탄 뒤에 드디어 최종 목적지인 R 국에 도착했다.서유는 그의 지시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어느 한 별장에 도착한 후 품에 있던 연이를 조지에게 넘기며 말했다.“연이 좀 봐주세요. 현우 씨와 할 얘기가 있어요.”조지는 서유가 화를 낼 걸 알았기에 별말 없이 연이를 건네받고 방으로 들어갔다.서유는 두 사람이 떠난 뒤 도우미의 부축을 받으며 거실 소파에 앉았다. 그러고는 희미한 눈으로 지현우의 위치를 파악하고는 입을 열었다.“당신은 분명히 한 달 뒤에 날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런데 이게 지금 뭐 하는 거죠?”지현우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며 태연하게 말했다.“처음부터 말했던 것 같은데, 나는 약속 따위 안 지킨다고.”그는 담배에 불을 붙인 후 천천히 한 모금을 빨아드렸다.서유는 분노를 최대한 억누르며 얘기했다.“지현우 씨, 나는 김초희가 아니라 서유예요. 나도 내 인생이 있다고요. 대체 언니 행세까지 시키며 나를 옆에 두려는 이유가 뭐죠? 언니를 향한 사랑을 증명이라도 하고 싶은 거예요? 아니면 내가 목적인가? 나를 망가트리려고?”지현우는 이렇게까지 또박또박 말을 하는 서유를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그동안 그녀는 김초희의 역할을 착실히 수행하며 얌전히 말을 잘 들었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감정이 깃들지 않는 한낱 인형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서유는 마치 누가 영혼이라도 불어넣어 준 것처럼 생기있고 활력이 넘쳤다.그는 서유를 빤히 바라보며 연기를 내뿜었다.“초희한테 복수하는 거라고 생각해요.”이에 서유는 코웃음을 쳤다.“아니요. 이건 언니를 향한 복수가 아니에요. 나한테 하는 복수라면 모를까.”“마음대로 생각해요. 어차피 내 눈에 당신은 초희일 뿐이니까.”서유는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가끔은 이 얼굴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게 망가트리고 심장도 도려내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어요.
서유는 아이의 그 작은 행동에 이미 재가 되어버린 마음속에서 일말의 따뜻함을 느꼈다.그녀는 연이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고통을 억누르고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났다.“이모 이제 안 울게. 같이 방으로 들어갈까?”“네.”연이는 서둘러 그녀의 손을 잡고 함께 방으로 걸어갔다.너무 세게 운 탓인지 아니면 그간의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든 탓인지 서유는 방으로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아파 나는 것을 느꼈다.이건 태기보다는 생리통에 가까웠다.서유가 이런 의심을 할 때 다리를 따라 뜨거운 액체가 흘렀고 그녀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멈춰버렸다.그동안 조지는 그녀에게 몸을 건강하게 되돌려 놔야 한다며 기력 보충제와 여러 가지 영양제를 많이 주었다.가끔 속이 메슥거려 토하는 증상도 있었기에 한 번도 임신을 의심해보지 않았지만... 설마... 설마 이 모든 것이 다 거짓말일 줄이야!조지만큼은 굳게 믿었는데, 그가 준 약을 얌전히 다 받아먹은 것도 그를 믿어서였는데 결과적으로 조지 역시 한통속이었다.서유는 주먹을 꽉 쥐고 부들거리더니 실성한 것처럼 방문을 열고 나가 외쳤다.“조지, 왜 날 속였어요! 나 임신 아닌데 왜 임신했다고 속였냐고요! 내가 당신만큼은 믿었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래요?”서유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주먹으로 땅을 몇 번이고 내리쳤다. 어쩔 수 없이 잡은 희망이 애초부터 없던 것임을 알게 됐을 때의 고통은 아마 다른 그 어떤 고통보다 더 아플 것이다.조지는 그녀의 외침에 서둘러 방에서 나와 피가 묻은 그녀의 치마를 보며 모든 상황을 파악했다.그는 자괴감 가득한 얼굴로 그녀를 부축하려고 했지만 서유가 그 손을 매정하게 뿌리쳤다.“지현우뿐만 아니라 당신도 증오해요!”서유는 조지 앞에서 무표정인 적은 있어도 이토록 분노를 표출한 적은 없었다.조지는 서둘러 사과하며 그저 당신을 살게 하려고 그랬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서유는 이제 그들이 하는 말은 단 한마디도 믿지 않았다.그녀는 손을 들어 눈물을 다 닦은 후 벽을 짚고
연이는 잠을 자다 말고 비몽사몽 한 상태로 눈을 떴다.깜깜한 방안에 서유가 없는 걸 발견한 아이는 크게 울어버렸다.그 소리에 조지와 지현우가 빠르게 달려왔다.조지는 문을 열고 불을 켠 다음 곧바로 연이를 안아 들고 달래주었다.지현우는 그 어디에도 서유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서둘러 욕실로 들어갔다.그리고 문을 열었는데... 욕실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고 얼굴이 창백한 여자가 욕조에 누워있었다.그 모습에 심장이 철렁한 그는 서둘러 조지를 불렀다.“조지, 당장 이쪽으로 와요!”그러고는 빠르게 서유를 안아 들고 땅에 내려놓은 다음 피가 철철 흐르는 손목을 꽉 눌렀다.조지는 욕실로 들어와 손목을 그은 서유를 보고 마찬가지로 화들짝 놀라더니 이내 침착하게 행동했다.그는 일단 도우미를 불러 자신의 약 보관함을 가져오게 한 다음 서둘러 지혈을 해주었다.조지의 빠른 대처에 서유는 간발의 차이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침대로 옮겨주세요.”지현우는 조지가 안도의 한숨을 쉬는 걸 보고 나서야 그녀를 안아 침대로 옮겼다.조지는 욕실에서 나와 지현우를 향해 말했다.“이제 만족해요?”지현우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복잡한 표정으로 창백한 서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그는 몇 분간 가만히 서 있더니 서서히 앞으로 다가가 서유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조지는 그 모습에 또다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하여 설마 하는 마음에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대체 당신은 초희 씨 심장을 원하는 겁니까 아니면 서유 씨를 원하는 겁니까?”지현우는 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갑자기 뭡니까?”조지는 그의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만약 그저 초희 씨 심장을 원하는 거라면 내가 그 심장 다른 몸에 넣어줄 테니 서유 씨는 이제 보내줘요. 하지만 만약 서유 씨를 원하는 거라면 제대로 아껴주세요.”지현우는 그 말에 서유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초희는 자기 심장이 이 여자 몸속에 있기를 바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