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는 아이의 그 작은 행동에 이미 재가 되어버린 마음속에서 일말의 따뜻함을 느꼈다.그녀는 연이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고통을 억누르고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났다.“이모 이제 안 울게. 같이 방으로 들어갈까?”“네.”연이는 서둘러 그녀의 손을 잡고 함께 방으로 걸어갔다.너무 세게 운 탓인지 아니면 그간의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든 탓인지 서유는 방으로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아파 나는 것을 느꼈다.이건 태기보다는 생리통에 가까웠다.서유가 이런 의심을 할 때 다리를 따라 뜨거운 액체가 흘렀고 그녀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멈춰버렸다.그동안 조지는 그녀에게 몸을 건강하게 되돌려 놔야 한다며 기력 보충제와 여러 가지 영양제를 많이 주었다.가끔 속이 메슥거려 토하는 증상도 있었기에 한 번도 임신을 의심해보지 않았지만... 설마... 설마 이 모든 것이 다 거짓말일 줄이야!조지만큼은 굳게 믿었는데, 그가 준 약을 얌전히 다 받아먹은 것도 그를 믿어서였는데 결과적으로 조지 역시 한통속이었다.서유는 주먹을 꽉 쥐고 부들거리더니 실성한 것처럼 방문을 열고 나가 외쳤다.“조지, 왜 날 속였어요! 나 임신 아닌데 왜 임신했다고 속였냐고요! 내가 당신만큼은 믿었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래요?”서유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주먹으로 땅을 몇 번이고 내리쳤다. 어쩔 수 없이 잡은 희망이 애초부터 없던 것임을 알게 됐을 때의 고통은 아마 다른 그 어떤 고통보다 더 아플 것이다.조지는 그녀의 외침에 서둘러 방에서 나와 피가 묻은 그녀의 치마를 보며 모든 상황을 파악했다.그는 자괴감 가득한 얼굴로 그녀를 부축하려고 했지만 서유가 그 손을 매정하게 뿌리쳤다.“지현우뿐만 아니라 당신도 증오해요!”서유는 조지 앞에서 무표정인 적은 있어도 이토록 분노를 표출한 적은 없었다.조지는 서둘러 사과하며 그저 당신을 살게 하려고 그랬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서유는 이제 그들이 하는 말은 단 한마디도 믿지 않았다.그녀는 손을 들어 눈물을 다 닦은 후 벽을 짚고
연이는 잠을 자다 말고 비몽사몽 한 상태로 눈을 떴다.깜깜한 방안에 서유가 없는 걸 발견한 아이는 크게 울어버렸다.그 소리에 조지와 지현우가 빠르게 달려왔다.조지는 문을 열고 불을 켠 다음 곧바로 연이를 안아 들고 달래주었다.지현우는 그 어디에도 서유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서둘러 욕실로 들어갔다.그리고 문을 열었는데... 욕실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고 얼굴이 창백한 여자가 욕조에 누워있었다.그 모습에 심장이 철렁한 그는 서둘러 조지를 불렀다.“조지, 당장 이쪽으로 와요!”그러고는 빠르게 서유를 안아 들고 땅에 내려놓은 다음 피가 철철 흐르는 손목을 꽉 눌렀다.조지는 욕실로 들어와 손목을 그은 서유를 보고 마찬가지로 화들짝 놀라더니 이내 침착하게 행동했다.그는 일단 도우미를 불러 자신의 약 보관함을 가져오게 한 다음 서둘러 지혈을 해주었다.조지의 빠른 대처에 서유는 간발의 차이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침대로 옮겨주세요.”지현우는 조지가 안도의 한숨을 쉬는 걸 보고 나서야 그녀를 안아 침대로 옮겼다.조지는 욕실에서 나와 지현우를 향해 말했다.“이제 만족해요?”지현우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복잡한 표정으로 창백한 서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그는 몇 분간 가만히 서 있더니 서서히 앞으로 다가가 서유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조지는 그 모습에 또다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하여 설마 하는 마음에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대체 당신은 초희 씨 심장을 원하는 겁니까 아니면 서유 씨를 원하는 겁니까?”지현우는 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갑자기 뭡니까?”조지는 그의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만약 그저 초희 씨 심장을 원하는 거라면 내가 그 심장 다른 몸에 넣어줄 테니 서유 씨는 이제 보내줘요. 하지만 만약 서유 씨를 원하는 거라면 제대로 아껴주세요.”지현우는 그 말에 서유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초희는 자기 심장이 이 여자 몸속에 있기를 바랐어요.
지현우는 비서에게 분부하고 나서 그들을 데리고 자리를 옮겨 산토리니 섬으로 갔다...그 후로 지현우는 서유의 자살을 막기 위해 침대 머리맡에 수갑을 채우고 그녀의 행동을 제한했다.또 서유가 혀를 깨물고 자살하지 않도록 하인에게 24시간 예의주시하라고 명령했다.그는 서유의 자살을 철저히 막은 다음 조지에게 그녀의 치료를 맡겼다.이번에는 서유의 눈약을 끊지 않고 오히려 더 신경을 써서 최고의 의료 장비를 운반해 그녀의 눈을 치료해 주었다.서유는 지현우의 노력에도 죽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었고, 3개월 후 조지는 태블릿을 가져왔다.그는 스크린의 뉴스를 켜고 서유에게 건넸다.“보세요, 승하 씨는 JS 그룹 본사 재건 기자회견에 참석했어요. 죽지 않았다고요.”영상에서 값비싼 양복을 입고 있는 그의 모습은 여전히 우아하고 존귀한 분위기를 자랑했다.신이 조각한 듯한 정교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향해 플래시 세례가 터졌다.남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희미하고 매력적인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기자들이 묻자 그는 8년 전 서유가 처음 만난 이승하처럼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마치 예전으로, 아니 심지어 예전보다 더 차가운 것 같았다. 눈에서 비치는 한기는 극도로 차가웠다.서유는 영상 속의 그를 보고, 그가 말하는 소리를 듣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점점 눈이 휘둥그레졌다.이승하가... 정말 죽지 않았다고?이번에는 지현우가 그녀를 속이지 않았다!하지만 그녀는 지현우의 말을 믿지 않고 3개월 동안 기다렸다.지난 석 달 동안 그녀는 계속 자살을 시도했다. 조지가 그녀를 구하지 않고 연이가 옆에서 힘이 되어 주지 않았다면 서유는 이미...서유는 눈물이 흘러내렸고 점차 시야가 흐릿해졌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화면의 차갑고 고귀한 남자의 얼굴을 쓰다듬었다.비록 손끝에 닿은 건 차가운 화면이었지만 죽은 재 같은 서유의 가슴에 일말의 희망이 타올랐다.‘그래, 사랑한다는 말을 다음 생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이번 생에 직접 말하자!’서유는 영상 속의
지현우가 돌아왔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고, 서유는 연이를 끌어안고 졸음을 억지로 버티며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지현우는 지난 3개월 동안 서유를 거의 보지 않았고, 보더라도 못 본 척하고 돌아섰다.오늘 별장 문을 열고 들어서니 서유와 연이가 보였지만 늘 그랬듯이 무시하려 했다.그가 걸음을 옮기려 하자 서유가 그를 불렀다.“저 몸 거의 다 나았으니까 내일 떠날 생각이에요. 연이 데리고 갈게요.”그녀는 지현우와 계속 시간을 낭비할 인내심이 없었고 차가운 얼굴로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지현우는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보았다.“본인 아이도 아닌데 왜 데리고 가죠?”서유는 침착하게 대답했다.“연이는 언니 아이예요. 제가 이모니 당연히 보호자로서 데려갈 자격이 있죠.”지현우는 코웃음을 쳤다.“그 말은 난 양육할 자격이 없다?”서유가 차갑게 대답했다.“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본인이 잘 알겠죠.”지현우는 그녀가 예전처럼 날카롭고 말끝이 사나운 것을 보고 그녀가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승하의 뉴스를 봤다는 것을 알았다.그는 서유를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본 후 말했다.“당신이 급하게 빨리 만나고 싶어 해도 그 사람은 당신 만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때 가서 울면서 나 찾아오지나 말아요.”서유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의 비꼬는 말을 무시하고 차갑게 대답했다.“연이 이제 여섯 살이에요. 학교 가야죠. 나랑 서울에 보내든지, 아니면 아이 아빠에게 보내요. 계속 여기 남아 당신 따라다니는 건 말도 안 돼요.”지현우는 그 말을 듣더니 짙은 눈썹을 찡그리고 서유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트 손잡이에 두 손을 짚고 허리를 굽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잘 들어요. 여기 남아 연이를 돌보든지, 아니면 혼자 가든지. 너무 욕심부리지 마요!”그는 이미 김초희의 심장을 놓아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김초희의 아이는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서유는 계속 지현우와 도리를 따지려 했지만 연이가 그녀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말했다.“이모 먼
서유는 오랫동안 침대 머리맡에 갇혀 두 사람이 어떻게 지내는지 몰랐고, 철든 연이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연아, 삼촌은...”서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연이는 몸부림치며 그녀의 몸에서 내려왔고, 두 팔을 벌려 지현우에게 안겼다.지현우는 거절하기는커녕 오히려 연이를 들어 올렸다.연이는 그의 품에 안겨서 통통한 작은 손을 들어 서유를 향해 휘둘렀다.“이모, 걱정하지 말고 가세요.”서유는 지현우의 품에 안겨 위층으로 올라가는 연이를 멍하니 보았다.그녀는 연이의 양육권을 쟁취하고 싶었지만 연이가 진심으로 지현우의 옆에 있고 싶어 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왠지 볼수록 그들이 닮은 것 같았다.문득, 연이가 지현우와 언니의 아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서유는 그 생각에 깜짝 놀라 얼른 머리를 흔들며 생각을 떨쳐버렸다.이번에 지현우는 확실히 약속을 지켰다. 서유를 놓아주고, 그녀를 위해 특별히 비행기까지 준비했다.서유는 연이와 아쉽게 작별 인사를 하고는 차를 타고 별장을 떠나 공항으로 향했다.혼자 만 미터 상공으로 날아오를 때, 서유의 마음은 서서히 흥분에 차기 시작했다.그녀가 반년 넘게 그리워하던 사람을 곧 볼 수 있다니, 너무 좋았다.서울은 이미 겨울이었다. 서유가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하늘에는 첫눈이 내렸다.얇은 옷을 입은 그녀는 두 팔을 껴안고 JS 그룹을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갔다.지현우는 그녀를 놓아줬지만 돈이나 그 어떤 전자장비도 주지 않은 채 귀국시켰다.서유는 너무 많은 것을 강요하지 않았고, 무사히 돌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그녀는 찬바람과 첫눈을 맞으며 JS 그룹 입구에 도착했다. 이승하를 찾으려 할 때 경비원이 가로막았다.“잠시만요. 예약하셨나요?”서유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경비원에게 말했다.“이승하 씨를 만나러 왔어요. 말 좀 전해 주세요. 제가...”경비원은 예의 바르게 말을 끊었다.“죄송하지만, 매일 수없이 많은 여성분이 저희 대표님을 찾으러 오십니다. 만약 정말
눈 속에 선 서유의 작은 그림자는 남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핏줄기 가득한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해 있었다.이승하는 제자리에 서서 잠시 그녀를 쳐다본 다음 이내 그녀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서유는 그가 회사를 나와 자신의 방향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고 황급히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승하 씨, 나...”그녀가 이승하의 이름을 부르자마자, 그는 냉담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스쳐 지나갔다.서유는 멍해졌다. 눈에 가득하던 액체가 그의 행동을 보자마자 갑자기 흘러내렸다.그녀는 천천히 몸을 돌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한 무리의 경호원들을 데리고 계단을 내려가며 고개도 돌리지 않는 남자를 바라보았다.훤칠한 그의 그림자에는 담담함과 오만함이 배어 있어, 마치 세상과 단절된 듯 다가갈 수 없을 정도의 거리감을 주었다.서유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그녀가 늘 꾸던 악몽 속에 갇힌 느낌이 들었다.사실 그녀는 오래전에 죽었지만 이승하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 자신을 환생시킨 세상에서 그의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었다.윤회의 시간이 다가오고 나서야 악몽으로 끝났고 이제 곧 종지부를 찍을 시간이었다.그녀는 자신이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고통을 받아 거의 미쳤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지 못했다.서유는 후들후들 떨리는 몸을 꼭 껴안고 찬바람 속에 서서 몽롱한 눈으로 반년 동안 그리워한 그림자를 멀리서 보았다.“이 모든 게 거짓말이에요. 맞죠?”충격을 견디지 못한 듯 연약하면서도 만신창이가 된 그녀의 목소리는 가벼웠다.계단을 내려와 차 안으로 들어가려던 남자는 그녀의 목소리에 멈칫했다.서유는 그가 멈춘 것을 보았지만 뒤돌아보지 않아 감히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지금이 현실인지 꿈인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그녀는 용기를 내어 걸음을 옮겨 남자 옆으로 다가간 후, 여위고 하얀 작은 손을 내밀어 그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승하 씨, 당신이에요?”이 남자는 이승하일까?자신의 남은
서유는 이승하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서유가 입꼬리를 끌어당기고 그를 향해 빙긋 웃었다.“알겠네요. 나... 버리는 거죠?”그녀는 손을 들어 눈가의 눈물을 닦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눈물로 가득 찬 눈에는 실망이 역력했다.그녀는 떠나지 않고 외롭게 서 있다가 눈앞의 잠자코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좋아요. 근데 이유가 뭐죠?”검은 코트에 금테 안경을 쓴 남자의 모습은 마치 저세상 선인 같았다.서유는 자신과 그의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라 영원히 같은 전선에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날 남자가 희망을 주었으니, 서유는 그 한 가닥의 희망을 붙잡고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답을 얻으려고 했다.그러나 이승하는 그녀의 희망을 짓밟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올려다보지도 않고는 마치 그녀가 스스로 떠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서유는 그의 마음을 간파한 후 오른손을 들어 왼손에 있는 그의 자살로 생긴 상처를 만졌다.이 순간에서야 그녀는 진정한 살의 고통이 죽음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느꼈다.그녀는 피눈물 나는 아픔을 참으며 그렁그렁한 눈으로 이승하의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얼굴을 쳐다보았다.“나랑 결혼해서 영원히 함께 있겠다고 했잖아요. 왜 이제 와서 약속 안 지켜요?”눈앞의 남자는 짙은 눈썹을 찡그리고는 천천히 눈을 들어 눈과 하나가 된 서유를 바라보았다.그의 짙은 눈망울은 방금처럼 냉담하지 않고 알 수 없는 감정이 배어 있었다.“내가 병원에서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넌 어디 있었어?”“난...”“너 지현우랑 함께 있었어.”이승하는 서유의 말을 끊었다. 차가운 눈망울에는 실망이 가득했다.“난 깨어나서 매일 네가 오기만을 기다렸지만 넌 한 번도 오지 않았어.”“난 지현우한테 구금...”서유는 다급하게 그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설명하려고 했지만 남자는 그녀의 손을 밀어내며 그녀의 말을 끊었다.“서유야, 난 정말 노력했어. 더 이상 네
코닉세그의 차에 탄 남자는 백미러를 통해 웅크리고 앉아 있는 점점 작아지는 여자의 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그 모습이 작은 검은 점으로 변하자 남자는 움켜쥔 주먹을 풀더니 갑자기 소리쳤다.“차 세워!”기사는 즉시 브레이크를 밟았고, 뒤에 있던 10여 대의 고급 차도 뒤따라 멈췄다.이승하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검은색 코트를 집어 들고 문을 열고 서유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그가 보들보들하고 가벼운 눈을 밟으며 그녀 앞에 섰을 때, 그녀의 비정상적인 웃음소리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서유야.”이승하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땅바닥의 그녀는 몸을 가볍게 떨면서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남자는 종잇조각처럼 얇은 그녀의 몸을 쳐다보더니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는 한쪽 무릎을 꿇은 후 손에 들고 있던 코트를 펼쳐 그녀의 가냘픈 몸을 감쌌다.“추운데 왜 옷을 얇게 입었어.”낮은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오자 서유는 다시 어리둥절했다.삼나무 향기가 배어 있는 외투가 자신에게 온기를 불어넣고 나서야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눈보라를 맞으며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걱정 가득한 표정의 남자를 보았다.“방금 나 부른 거예요?”그년 손바닥만 한 얼굴을 들고 조심스럽게 물었다.“난 늘 너만 불렀어.”서유는 의심스러운 듯 고개를 갸웃거리고 정신이 혼란스러웠다.“근데 방금은 나 버렸잖아요.”이 남자는 방금 그녀를 버리고 왜 또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무릎을 꿇고 앉아 자신의 외투를 덮어주고 있는 것일까?이승하는 그 창백한 얼굴을 뚫어지라 쳐다보며 빨개진 얼굴로 말했다.“네가 먼저 나 버렸잖아.”서유는 그 말을 듣고 의심스러움이 가득했다.“내가 언제 당신을 버렸어요?”이승하는 그녀의 눈 밑에 가득한 무고한 기색을 보며 나무라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했다.“됐어. 난 어차피 너한테 모질게 굴지 못하는데 인제 와서 너 원망해서 뭐해.”그는 손을 들어 서유의 차가운 얼굴을 만진 뒤 그녀를 품에 꼭 안았다.“네가 다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