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에 선 서유의 작은 그림자는 남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핏줄기 가득한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해 있었다.이승하는 제자리에 서서 잠시 그녀를 쳐다본 다음 이내 그녀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서유는 그가 회사를 나와 자신의 방향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고 황급히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승하 씨, 나...”그녀가 이승하의 이름을 부르자마자, 그는 냉담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스쳐 지나갔다.서유는 멍해졌다. 눈에 가득하던 액체가 그의 행동을 보자마자 갑자기 흘러내렸다.그녀는 천천히 몸을 돌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한 무리의 경호원들을 데리고 계단을 내려가며 고개도 돌리지 않는 남자를 바라보았다.훤칠한 그의 그림자에는 담담함과 오만함이 배어 있어, 마치 세상과 단절된 듯 다가갈 수 없을 정도의 거리감을 주었다.서유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그녀가 늘 꾸던 악몽 속에 갇힌 느낌이 들었다.사실 그녀는 오래전에 죽었지만 이승하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 자신을 환생시킨 세상에서 그의 사랑을 받으며 살고 있었다.윤회의 시간이 다가오고 나서야 악몽으로 끝났고 이제 곧 종지부를 찍을 시간이었다.그녀는 자신이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고통을 받아 거의 미쳤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지 못했다.서유는 후들후들 떨리는 몸을 꼭 껴안고 찬바람 속에 서서 몽롱한 눈으로 반년 동안 그리워한 그림자를 멀리서 보았다.“이 모든 게 거짓말이에요. 맞죠?”충격을 견디지 못한 듯 연약하면서도 만신창이가 된 그녀의 목소리는 가벼웠다.계단을 내려와 차 안으로 들어가려던 남자는 그녀의 목소리에 멈칫했다.서유는 그가 멈춘 것을 보았지만 뒤돌아보지 않아 감히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지금이 현실인지 꿈인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그녀는 용기를 내어 걸음을 옮겨 남자 옆으로 다가간 후, 여위고 하얀 작은 손을 내밀어 그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승하 씨, 당신이에요?”이 남자는 이승하일까?자신의 남은
서유는 이승하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서유가 입꼬리를 끌어당기고 그를 향해 빙긋 웃었다.“알겠네요. 나... 버리는 거죠?”그녀는 손을 들어 눈가의 눈물을 닦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눈물로 가득 찬 눈에는 실망이 역력했다.그녀는 떠나지 않고 외롭게 서 있다가 눈앞의 잠자코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좋아요. 근데 이유가 뭐죠?”검은 코트에 금테 안경을 쓴 남자의 모습은 마치 저세상 선인 같았다.서유는 자신과 그의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라 영원히 같은 전선에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날 남자가 희망을 주었으니, 서유는 그 한 가닥의 희망을 붙잡고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답을 얻으려고 했다.그러나 이승하는 그녀의 희망을 짓밟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올려다보지도 않고는 마치 그녀가 스스로 떠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서유는 그의 마음을 간파한 후 오른손을 들어 왼손에 있는 그의 자살로 생긴 상처를 만졌다.이 순간에서야 그녀는 진정한 살의 고통이 죽음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느꼈다.그녀는 피눈물 나는 아픔을 참으며 그렁그렁한 눈으로 이승하의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얼굴을 쳐다보았다.“나랑 결혼해서 영원히 함께 있겠다고 했잖아요. 왜 이제 와서 약속 안 지켜요?”눈앞의 남자는 짙은 눈썹을 찡그리고는 천천히 눈을 들어 눈과 하나가 된 서유를 바라보았다.그의 짙은 눈망울은 방금처럼 냉담하지 않고 알 수 없는 감정이 배어 있었다.“내가 병원에서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넌 어디 있었어?”“난...”“너 지현우랑 함께 있었어.”이승하는 서유의 말을 끊었다. 차가운 눈망울에는 실망이 가득했다.“난 깨어나서 매일 네가 오기만을 기다렸지만 넌 한 번도 오지 않았어.”“난 지현우한테 구금...”서유는 다급하게 그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설명하려고 했지만 남자는 그녀의 손을 밀어내며 그녀의 말을 끊었다.“서유야, 난 정말 노력했어. 더 이상 네
코닉세그의 차에 탄 남자는 백미러를 통해 웅크리고 앉아 있는 점점 작아지는 여자의 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그 모습이 작은 검은 점으로 변하자 남자는 움켜쥔 주먹을 풀더니 갑자기 소리쳤다.“차 세워!”기사는 즉시 브레이크를 밟았고, 뒤에 있던 10여 대의 고급 차도 뒤따라 멈췄다.이승하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검은색 코트를 집어 들고 문을 열고 서유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그가 보들보들하고 가벼운 눈을 밟으며 그녀 앞에 섰을 때, 그녀의 비정상적인 웃음소리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서유야.”이승하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땅바닥의 그녀는 몸을 가볍게 떨면서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남자는 종잇조각처럼 얇은 그녀의 몸을 쳐다보더니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는 한쪽 무릎을 꿇은 후 손에 들고 있던 코트를 펼쳐 그녀의 가냘픈 몸을 감쌌다.“추운데 왜 옷을 얇게 입었어.”낮은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오자 서유는 다시 어리둥절했다.삼나무 향기가 배어 있는 외투가 자신에게 온기를 불어넣고 나서야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눈보라를 맞으며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걱정 가득한 표정의 남자를 보았다.“방금 나 부른 거예요?”그년 손바닥만 한 얼굴을 들고 조심스럽게 물었다.“난 늘 너만 불렀어.”서유는 의심스러운 듯 고개를 갸웃거리고 정신이 혼란스러웠다.“근데 방금은 나 버렸잖아요.”이 남자는 방금 그녀를 버리고 왜 또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무릎을 꿇고 앉아 자신의 외투를 덮어주고 있는 것일까?이승하는 그 창백한 얼굴을 뚫어지라 쳐다보며 빨개진 얼굴로 말했다.“네가 먼저 나 버렸잖아.”서유는 그 말을 듣고 의심스러움이 가득했다.“내가 언제 당신을 버렸어요?”이승하는 그녀의 눈 밑에 가득한 무고한 기색을 보며 나무라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했다.“됐어. 난 어차피 너한테 모질게 굴지 못하는데 인제 와서 너 원망해서 뭐해.”그는 손을 들어 서유의 차가운 얼굴을 만진 뒤 그녀를 품에 꼭 안았다.“네가 다시 날
이승하가 대답하려고 하자 서유는 갑자기 그의 소매를 움켜쥐고 흥분해서 설명했다.“아니에요. 우리는 절대 아니에요!”“나한테 수면제를 먹여서 날 영국으로 데려간 거예요!”“당신이 죽었다고 거짓말해서 난 진짜 당신이 죽은 줄 알고 돌아와 당신 한번 보고 싶었어요.”“그런데 나한테 언니 행세를 하라고 협박했고, 내가 동의하지 않고 죽으려고 하니 내가 임신했다고 속였어요!”서유는 횡설수설하다가 손을 들어 아랫배를 만졌고 이승하를 바라보며 목이 터지라 고함을 질렀다.“난 당신 핏줄인 줄 알고 낳고 싶어 그 사람 말에 동의한 거고요!”“근데 한 달 뒤에 내가 임신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어요!”“지현우는 날 속였어요! 계속 속이고 있었어요!”서유는 고함을 지르고 나서야 다시 침착해져서 이승하의 멍한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어떻게 돌아왔는지 알아요?”이승하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앞의 정상이 아닌 서유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어떻게... 돌아왔는데?”그는 온몸을 떨면서도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그녀를 자극할까 봐 끝없는 공포를 누르고 애써 물었다.서유는 그가 대답하는 것을 보고 급히 왼손 위에 있는 옷을 걷어내고 선홍색의 눈에 띄는 흉터를 드러내 그의 앞에 내밀었다.“자살해서 거의 죽게 되니 날 놓아줬어요.”그녀는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이를 갈며 말했다.“하지만 날 침대 머리맡에 3개월을 묶어두고 나서야 보내줬어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미친 듯이 물었다.“완전 미친 인간이라니까요!”이승하는 떨리는 손가락을 들어 그녀를 안고 싶었지만 그녀가 밀쳐냈다.“아직 대답하지 않았어요!”이승하는 거의 미칠 지경인 그녀를 보며 협조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미쳤네.”서유는 답을 얻고 갑자기 얼굴이 흉악해지기 시작했다.“그렇게 생각하면서 왜 내가 그 인간이랑 사귄다고 생각한 거예요?”그녀가 흥분한 모습은 마치 학대를 당한 후 받은 스트레스 장애처럼 매우 비정상적으로 보였다.서유는 자신의 추태를
이승하를 8년 동안 사랑했다고 말했다.이승하를 만나기 위해 손목을 그어 자살했다고 말했다.이승하가 다시 한번 그녀를 차갑게 대하면, 그녀는 미쳐버릴 것이라고 말했다.알고 보니, 서유도 그를 미치게 사랑한 것이다.3개월 동안 마음이 아팠던 이승하는 그녀가 먼저 키스했을 때 숨이 비로소 쉬어지는 것 같았다.그는 기다란 손가락을 들어 부드럽고 섬세하게 그녀의 미간을 쓰다듬었다.“드디어 네 입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듣네.”그의 손끝에서 나오는 따스한 기운은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마음이며, 몇 년 동안 기다린 말에 대한 만족이기도 했다.이승하의 10년, 서유의 8년 동안 함께 한 적도, 헤어진 적도 있었지만 다행히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다.이승하는 서유의 얼굴을 들고 자신의 얼굴이 비친 눈동자를 보며 얇은 입술을 열었다.“우리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응?”서유는 눈물을 글썽이며 그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그녀의 대답은 이승하의 일생에 대한 약속이었다. 다시는 헤어져서도, 헤어질 수도 없었다.이승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고개를 옆으로 돌려 짙은 속눈썹을 들어 올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내려.”백미러를 통해 그를 한 번 본 기사는 마침 그 차가운 눈과 마주쳤고 놀라서 즉시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문이 닫히는 순간 남자는 한 손으로 그녀의 뒤통수를 고정한 뒤 그녀의 턱을 치켜들고 고개를 숙여 키스를 퍼부었다.열정적이고 격렬한 키스가 그녀의 입안에 스며들어 향기를 휩쓸던 순간, 이승하는 완전히 마음을 내려놓고 통제력도 잃었다.커다란 체구의 남자는 자그마한 여자를 다리에 앉힌 후 돌아서서 그녀를 차창에 밀어붙였다.눈앞에서 고개를 살짝 젖히고 미친 듯이 갈망하는 남자를 보며 서유의 눈가에 점차 안도의 웃음기가 돌았다.그녀는 먼저 하얀 작은 손을 뻗어 남자의 섹시한 목젖을 만지고 위에서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 고가의 셔츠 위로 떨어졌다.그의 몸에 걸친 흰 셔츠를 조금씩 풀고 두 손으로
끝난 후 서유는 그의 품에 안겨 손을 들어 흠잡을 데 없는 남자의 볼을 만졌다.“아까는 왜 그렇게 차갑게 대했어요?”이승하는 방금 분명 서유를 원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녀를 눈밭에 버렸다.나중에 돌아왔을 때도 그녀에게 외투를 덮어주고 싶었을 뿐, 그녀를 데리고 갈 생각은 없었다.서유는 이번 재회에서 이승하가 전처럼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오히려 서유가 그를 잃을까 봐 미친 사람처럼 설명도 하고 고백도 하면서 주동적으로 나섰다.만약 서유가 그렇게 절박하게 그를 붙잡고, 그 한 가닥의 희망을 잡으려 하지 않았다면 이승하는 그녀의 몸에 손대지 않았을 것이다...사실 서유는 이승하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믿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왜 남자가 냉담하게 자신을 대했는지는 알지 못했다.이승하가 시력을 잃은 서유를 찾아왔을 때, 그때 언니의 모습으로 지현우와 달콤하게 지내는 서유를 보고 오해해서 냉담하게 대했을까?서유의 의문에 이승하는 천천히 눈을 늘어뜨리고는 몇 초 동안 머뭇거리다가 그녀의 머리를 자신의 품에 넣었다.“내가 병원에서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네가 한 번도 보러오지 않아서 화가 났어.”그는 넓은 손바닥으로 숱이 많은 곱슬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위로했다.“방금은 그냥 화풀이였어. 너한테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는 걸 알고 다 풀렸으니까 걱정하지 마.”악의적이고 더러운 일은 그녀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좋았다. 이승하는 서유가 영원히 순수하고 아름답게 지내길 바랐다.서유는 혼수상태라는 말을 듣고 순간 걱정과 두려움이 몰려왔다.“지현우가 당신 뇌에 종양이 생겼다고 하던데 사실이에요?”서유는 처음에 그 말을 믿었지만 나중에 임신한 것이 가짜라는 것을 알게 되고 다시는 지현우가 한 어떤 말도 믿지 않게 되었다.이승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설명했다.“네가 걱정할까 봐 말하지 않았어. 일부러 속이려 했던 건 아니야.”서유는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만졌다. 숱 많은 머리카락 밑에 숨겨진
이승하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붉은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서유야, 아무 걱정하지 말고 내 옆에 있으면 돼.”이승하의 품에 안긴 서유는 그의 눈에서 여러 번 진위를 확인하려 했지만 오직 애틋함만 보여 그를 믿기로 했다.서유는 그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앞으로 6개월에 한 번씩 검사 받고 나도 검사실에 따라 들어갈 거예요.”이승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 봐요,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벌써 이렇게 잡는 거예요?”서유는 부드러운 턱선을 치켜들며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왜요, 그러면 안 돼요?”그는 손가락을 들어 올리고 그녀의 콧대를 그으며 애틋하게 말했다.“당연히 되지. 평생 그렇게 해줘.”서유는 그제야 안심하고 다시 그의 품에 머리를 묻었다.이승하는 살아있고 종양도 제거했으니 앞으로 행복할 일만 남았겠지?서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비행기를 오래 탔더니 좀 피곤하네요. 당신 안고 좀 자도 될까요?”남자는 그녀의 허리를 안고 있던 손을 떼고 그녀의 턱을 들고 말했다.“서유야, 난 네 거야. 안고 싶으면 안으면 되지. 허락 같은 거 필요 없어.”서유는 미간을 펴고 알겠다고 고분고분 대답했다. 그녀는 온몸의 긴장을 풀고 피곤한 눈을 감고는 그의 품에 안겨 얕은 잠이 들었다.이승하는 눈을 늘어뜨려 품에 안겨 있는 여린 여자를 계속 보다가 그녀가 잠이 들자 그제야 그녀의 왼손을 살짝 들었다.하얀 손목의 선홍색 흉터를 보는 순간, 눈 밑의 부드러운 감성이 사라지고 극악무도한 잔인함이 자리 잡았다.‘지현우, 감히 내 여자를 구금하고, 이런 비열한 수단으로 날 3개월 동안 정신으로 괴롭혔어!’‘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지씨 가문 전체를 지옥으로 몰아넣을 테니까, 어디 두고 봐!’이승하의 눈에는 전에 없던 한기가 감돌았다. 당장이라도 상대방의 살집을 헤치고 피를 마셔버릴 기세였다.그는 서유를 꼭 껴안고 머리를 자신의 어깨에 얹은 후 검은 코트를 집어 그녀의 몸을 감쌌다.이렇게 그녀를 안고 있다가 그녀가 완전히
이승하는 그녀를 꼭 껴안고 자신의 안방으로 간 다음 허리를 약간 숙여 그녀의 이마에 키스했다.가볍게 키스하는 행동에 눈을 뜬 서유는 자신을 만진 사람이 지현우인 줄 알고 놀라서 눈을 떴다.시야에 들어온 사람이 지현우가 아닌 이승하인 것을 확인하고 꽉 조여 있던 마음이 풀렸다.“놀랐어?”서유는 고개를 가볍게 흔든 뒤 옆자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같이 자 줄래요?”이승하는 택이에게 작전을 준비하라고 명령하러 가려 했지만 서유가 자신과 함께 있고 싶어 하는 것을 보고 머리끝까지 치밀었던 화를 참았다.옆에 누워 늘씬한 팔을 뻗어 서유를 품에 안은 채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재웠다.서유는 그에게 다가가 남자의 은은한 향기를 맡으니 마음이 더없이 편안해졌고 곧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석 달째 잠을 잘 자지 못한 남자도 역시 그녀의 존재에 안도하면서 잠은 자지 않고 그녀만 바라보았다.그녀의 평온한 호흡이 졸음을 가져다준 것인지, 아니면 어찌된 일인지 이승하는 잠시 버티다가 자기도 모르게 점점 수면 상태에 빠졌다.잠자기 두려웠던 그는 서유를 안으면 악몽을 꾸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잠이 들자마자 다시 똑같은 악몽에 갇혔다.한밤중에 편안히 잠을 자고 있던 서유는 갑자기 옆에 있는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다.서유는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고 창밖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어슴푸레한 빛을 빌어 이미 그녀를 밀어내고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이승하를 바라보았다.그는 악몽에 갇힌 듯 온몸이 떨리고 있었고, 창백한 얼굴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남자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손톱이 살 속으로 파고들어 피가 흘렀지만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더 깊이 빠져드는 것 같았다.서유는 그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촘촘한 눈초리에 어느새 물방울이 맺혔다. 가슴 아파서 그를 꼭 껴안고 싶었지만 이승하가 갑자기 소리쳤다.“서유야, 제발 나한테 이러지 마.”“제발. 이렇게 나 벌주지 말라고.”“너무 힘들어. 제발 나 좀 내버려 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