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엔 못 놔줘의 모든 챕터: 챕터 501 - 챕터 510
612 챕터
제501화
집에 돌아온 박민정은 사 온 음식을 윤우한테 요기하라고 건넸다. 그러고는 유남준한테 눈길도 주지 않고 주방으로 들어갔다.유남준은 그녀가 일시적으로 삐쳐서 그러는 줄 알았는데 저녁 식사를 할 때까지 박민정은 말 한마디 없었다.윤우도 그들 사이의 이상한 기류를 감지하고 신이 나서 어깨춤이 절로 나올 것만 같았다.‘엄마 성질을 건드린 모양인데? 쌤통이다, 쓰레기 아빠한테 이런 날이 다 오다니, 하하하!'밥 먹을 때 윤우는 일부러 박민정한테 반찬을 집어달라, 먹여달라 하며 어리광을 부렸다. 그녀의 관심이 온통 자신에게 쏠려있다는 걸 유남준한테 과시하듯이 말이다.“엄마, 저 닭고기 먹고 싶은데 너무 멀어. 엄마가 먹여주면 안 돼?”“어, 그래.”박민정은 내내 윤우만 챙겼다. 유남준이 손을 뻗어 음식을 집으려 했다.던 젓가락으로이 몇 번을 집어도이 음식이 나집히지 않아못하고 빈 젓가락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그는 불평 없이 묵묵히 밥을 먹었다.식사가 끝나고 온 가족이 TV를 보고 있는데 거실에서는 박민정과 윤우의 말소리만 들렸다.그녀가 화장실을 간 틈을 타 윤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아저씨도 이젠 알겠죠? 엄마의 영원한 보배는 저예요. 아저씨는 언제 누구한테 대체될지도 모르는 임시용일 뿐이라고요.”가뜩이나 불안한데 윤우까지 한술 더 뜨니 유남준은 더 심란하여 미간을 좁혔다.“그 입 좀 다물어.”“싫은데요!”윤우는 그를 향해 혀를 내밀며 메롱을 했다. 하지만 또 이내 참지 못하고 물었다.“그런데 대체 어쩌다가 엄마 성질을 은 어떻게 건드린 거예요?”웬만하면 거의 화를 내지 않는 순한 성격의 박민정이 화를 냈다는 것에 윤우는 호기심이 동했다.유남준은 일일이 설명해 주기가 귀찮아 눈을 흘겼다.“어린놈이 뭘 안다고 캐물어.”“누가 어린놈이에요, 흥!”윤유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엄마가 쓰레기 아빠를 멀리하기만 하면 그 이유가 뭐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자리에 바로 앉아 TV를 시청했지만 프로그램들이 하나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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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2화
“그러면 사과하고 배상하고 난 다음에 다시 얘기해요. 씻으러 갈 거니까 이 손 놔요, 어서.”박민정은 가차 없었다. 유남준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손을 놓았지만 손등에는 옅은 이빨 자국이 남아있었다.그녀가 욕실로 들어간 후, 유남준은 서다희한테 전화를 걸었다.“연지석에 대해 알아봐, 지금 위치가 어딘지.”저편에 있는 서다희의 눈동자에 의문이 담겼다. 설마 설날부터 사람을 죽이려는 건 아니겠지...“대표님, 며칠 전에 알아봤는데 연지석은 아직도 회복되지 않은 것 같아요. 너무 몰아붙이지 말고 여지를 좀 남겨두는 게 어떨까요?”“사람을 보내서 안전하게 지켜줘, 죽지 않도록.”유남준의 말을 들은 서다희는 너무나 놀랐랍고 잘못 들은 줄로 알아, 눈을 화등잔만 하게 떴다.“네?”“민정이가 연지석의 일에 대해 알아버렸어. 나한테 배상하고 사과하래. 네가 대신 예전에 뺏어왔던 프로젝트 몇 개를 도로 던져줘, 그걸로 배상하고 사과한 셈 치자.”이 정도로 내키지 않는 일을 하는 건 유남준도 난생처음이다. 그가 착한 자선가가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서다희는 이제야 그 원인을 알았다.‘역시 사모님 때문이군.’“알겠어요, 바로 조치하겠습니다.”“할 때 증거를 남겨놓는 걸 잊지 마. 민정이도 알 수 있게끔.”유남준이 마지막에 당부했다. 그가 사과하겠다는 말은 절대 진심일 리 없었다.“네.”...왕년의 섣달그믐날은 모두 은정숙과 함께였지만 올해는 그녀도 없고 임신도 하여, 박민정은 샤워를 마치고는 방으로 들어와 누웠다.잠이 든 지 얼마 안 되어 커다란 인영이 방으로 들어와 긴 팔을 뻗어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화들짝 놀란 박민정은 눈을 번쩍 떴다. 어둡고 은은한 무드 조명이 유남준의 얼굴을 비추었다.“어떻게 들어왔어요?”분명히 문을 잠갔는데?유남준은 그녀를 꼭 껴안고 묻는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연지석 일은 이미 서 비서한테 말해놨어. 그러니까 이제 화 풀어.”박민정은 그가 왜 연지석을 죽음의 변두리까지 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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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3화
하지만 박민정은 윤우까지 데려갔다가 유씨 집안 사람들한테 두 아이가 그 집안 핏줄임이 들키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특히 고영란은 예찬이를 항상 주시하고 있었다.하여 그녀가 막 거절하려고 하는 그때, 윤우가 한발 먼저 재빠르게 대답했다.“좋아요, 아저씨. 그런데 날 집에 데려가면 이젠 아저씨가 제 새아빠가 되는 거예요?”윤우는 호기심으로 어린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천진난만하게 물었다.새아빠라는 단어에 유남준의 낯빛이 복잡하게 변했다.그러거나 말거나 윤우는 일부러 큰소리로 외쳤다.“새아빠, 우리 새아빠 집에 가요.”한창 우유를 마시고 있던 박민정은 입안의 우유를 뿜어낼 뻔하였다.“윤우야, 막 부르면 안 돼!”그제야 윤우는 장난기를 거두고 말했다.“엄마, 우리 아저씨랑 같이 그 집으로 가요. 매일 여기 있으려니 너무 심심해요. 의사 아저씨도 나한테 자주 밖으로 나가 기분 전환하라고 그랬어요. 그래야 아픈 것도 덜 하다고요.”윤우가 자신의 병에 대해 얘기하며 요구할때 박민정은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알았어. 가자, 그럼.”유남준이 이대로 마음이 변치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두 아이의 신상에 대해 그한테 알려줄 날이 올 것이고, 그렇다면 두려워할 것도 없었다.세 식구는 옷을 갈아입고 별장에서 나왔다.그들을 데리러 온 이한석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저번에 왔을 때는 경황이 없어 윤우를 찬찬히 살피지 못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윤우는 유남준의 어릴 때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었다.기사한테 차 문을 열게 하여 세 사람이 차에 타고난 후에도 그는 오랫동안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고영란이 최근에 몰래 조사하고 있는 누군가가 설마 이 아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아침에 그의 딸 이혜림한테서 온 집에 돌아오고 싶다는 메시지를 상기하며 손에 든 휴대폰을 더 꽉 쥐었다. 그리고 결심을 내렸다.‘아빠가 어떻게든 널 돌아오게 만들 거야.’...차 안에 앉은 윤우는 컨디션이 예전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윤우는 유씨 집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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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4화
밖에 서 있는 박민정과 윤우는 정말로 한 쌍의 아름다운 모자였다. 이목구비가 또렷한엄마와 귀엽고 깜찍한 만찢남 아들.친척 중 어떤 사람은 슬그머니 나와 둘을 살펴보기까지 했는데, 아이가 정말 유남준을 많이 닮았다고 느꼈다.그들의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을 감지한 윤우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역시 쓰레기 아빠 집에는 좋은 사람이 하나도 없어.’윤우는 박민정을 올려다보며 얘기했다.“엄마, 나 오줌 마려워.”“그래? 엄마가 화장실로 데려다줄게.”박민정은 윤우를 데리고 근처 화장실로 갔고, 도착하자 윤우는 말했다.“엄마는 먼저 돌아가서 아저씨를 기다려. 아저씨가 나와서 우릴 못 찾으면 어떡해. 내가 길 아니까 이따 엄마 찾아갈게.”화장실이 별로 멀지도 않은 것 같아 박민정은 승낙했다.“그러면 나와서 엄마를 못 찾겠으면 전화해, 알았지?”윤우와 예찬이는 모두 아이용 스마트 워치를 착용하고 다녔다.“응, 알겠어.”윤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더니 남자 화장실로 들어갔다.다른 한편, 홀 안에는 유남준의 친척들이 대부분 와 있었지만 유독 유남우만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병원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유남준의 사촌 형 유성혁도 자리에 있었는데, 그는 고개를 푹 떨구고 유남준을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전에 박민정을 희롱하다가 유남준에 의해 차가운 강물에 던져져 하마터면 얼어 죽을 뻔했던 그 일이 있고 난 뒤, 최현아는 그와 이혼하겠다고 한바탕 난리를 쳤지만 그가 온갖 다짐을 하고 손이 발이 되게 빌어서야 이혼소동을 가까스로 무마하게 되었다.그 생각에 유성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또한 박민정이 어떤 아이와 같이 왔다는 소리를 듣고, 최현아한테 얼른 나가보라고 했다.최현아가 나가보니 무심하고도 도도한 표정의 박민정이 홀로 바깥에 서 있었다. 그녀의 외모가 자신보다 우월하다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남편이 한때 그녀한테 홀렸었다는 생각만 하면 속에서 천불이 날 것만 같았다. 눈동자에 차가운 기운이 번뜩이면서 거만한 얼굴로 하이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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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5화
한낱 모델일 뿐인 최현아의 시어머니는 이 집안에서 존중받기 힘들었다. 하지만 고영란은 달랐다. 그녀의 친정은 KC 그룹이고 오빠와 동생들은 정재계는 물론 불법 조직까지 주무르는 돈과 권력을 갖고 있어, 그들앞에서 자신은 개미 목숨과도 다름없었다. 최현아는 고영란을 시어머니로 두지 못한 것이 너무 한스러웠다. 그랬다면 자신의 아들유지훈은 진작에 유씨 집안 지분을 갖고도 남았을 것이다.마음은 내키지 않았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최현아는 예의 바르게 고영란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고 곁에 있는 윤소현을 향해서도 미소를 지었다.윤소현도 그녀를 보며 방긋 웃었다.“형님.”“그래.”최현아는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인사를 받고는 떠났다.그녀가 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며 윤소현은 박민정을 싫어하는 사람이 자신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나중에 최현아와 몰래 관계를 잘 맺어야겠다고 생각했다.윤우가 보이지 않자 고영란은 물었다.“너랑 같이 온 그 애는 어디 갔어?”“윤우는 화장실에 있어요.”박민정이 대답하자 고영란은 화장실이 있는 쪽을 기웃거리며 지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화장실로 들어간 윤우는 몰래 뒷문으로 빠져나와 홀로 들어갔다.유씨 일가 친척들이 워낙에 많은 데다 아이를 데려온 친척들도 꽤 되어 사용인은 윤우를 보고도 막지 않았다. 윤우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홀 안으로 들어갔고, 사람들 속에서 쓰레기 아빠가 한창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한테 꾸지람을 듣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저 사람이 내 증조할아버지겠지? 저 할아버지도 분명 좋은 사람이 아닐 거야.”윤우는 작게 중얼거리며 비싼 정장 차림으로 유명훈 곁에 앉아서 과일을 먹고 있는 유지훈한테로 시선을 돌렸다.유지훈의 자신만만하고 우쭐대는 모습은 마치 그가 이 집의 주인인 것만 같았다.“쪼그만 게.”전에 예찬이가 유지훈에 대해 얘기해 준 적이 있었다. 예찬인 척 이 저택에 왔을 때도 지훈이와 마주쳤었다. 윤우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할머니와 할어버지는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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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6화
윤우는 사실 그리 더럽고 지저분한 일을 할 애가 아니었다. 그저 유남준의 바지에 물을 묻혔을 뿐이다. 유남준의 바지를 닦는 척하며 윤우가 말했다.“엄마가 그러는데 새아빠 노릇은 원래 친아빠보다 하기 힘든 거래요. 화내지 마세요, 제가 잘 닦아드릴게요.”모두가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고 늘 엄숙한 얼굴로 웃음을 아끼던 유명훈도 웃음을 참느라 코가 벌렁벌렁했다.그러나 여전히 이성은 남아있었다.‘저 애는 누굴까, 남준의 아들인 건가?’유남준한테 물어보려는 그때, 곁에 앉은 유지훈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먼저 물었다.“예찬아, 너 방금 우리 삼촌을 뭐라고 불렀어?”예찬이라고?윤우는 더 이상 감추지 않고 커다란 눈동자로 유지훈을 보며 말했다.“난 예찬이 아니야. 연윤우라고 해. 아저씨가 우리 엄마랑 같이 있기로 했으니까 이제 나의 새아빠가 되는 거야.”지훈이는 윤우의 말을 듣고 더 어리둥절했다.예찬이와 똑같이 생겼는데 왜 예찬이가 아니라고 하는 거지?자세히 보니 앞에 있는 아이와 예찬이가 유일하게 다른 점은 낯빛이 더 창백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찬이처럼 정색한 말투가 아니었다.유명훈은 둘의 대화를 듣고 더 의문이 들었다.“네 엄마가 누구냐?”“박민정이에요, 할아버지.”윤우가 대답하자 유명훈의 지팡이를 쥔 손에 시퍼런 핏줄이 불거졌다.“그럼 넌 누구야? 네 친아빠는 또 누구고?”윤우가 재차 입을 열려는데 유남준은 그의 덜미를 번쩍 들었다.“얘를 밖에 내보낼게요.”“거기 서!”유명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윤우를 향해 걸어왔다.이때 유남준한테 잡힌 윤우가 겨우 고개를 들며 말했다.“새아빠, 나절로 갈 수 있어요.”드디어 윤우의 얼굴을 제대로 보게 된 유명훈은 아이의 얼굴이 유남준의 어릴 적 모습과 너무 닮았다고 생각했다.“너... 너 대체 누구의 아이야?”윤우는 속으로 냉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전 연지석과 박민정의 아들이에요.”유명훈이 미간을 좁히며 캐물었다.“연지석은 또 누구야?”“연지석은 이 세상에서 제일 대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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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7화
유씨 집안이 오늘처럼 떠들썩한 적이 없었다.지훈이는 조그마한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채 도끼눈을 하며 윤우를 가리켰다.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마음속으로 최현아가 아이에게 저런 말을 했을 줄이야,하며 혀를 끌끌 찼다.난감하여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최현아는 얼른 아들을 꾸짖었다.“지훈아, 너 갑자기 무슨 헛소리야, 엄마가 언제 그랬어! 엄마는 예전에 남준 삼촌의 아내가 집에 없으니까 아이가 못생긴다는 얘기였지.”하지만 지훈이는 고작 몇 살짜리 아인지라 어른들의 빙빙 돌려 표현하는 방식에 익숙지않아 최현아의 말에 대뜸 반박했다.“아니야, 엄마가 전에 삼촌이 정상이 아니라고 아이를 못 낳는다고 그랬어!”최연아는 당장 달려가서 아들의 귀싸대기를 후려치고 싶은 심정이었다.“네가 잘못 들은 거야!”애지중지 키워진 유지훈은 버릇이 나오기 시작했다. 유명훈한테 쪼르르 달려가더니 그의손을 잡고 흔들며 떼를 썼다.“증조할아버지, 어디서 굴러먹다 온 지도 모르는 저 애 어서 내쫓아요. 분명히 우리 집안 사람이 아니에요. 나쁜 놈, 사기꾼이에요, 저랑 집안 후계자 자리를 뺏으려고 온 거라고요.”말을 마치자마자 또 사납게 윤우를 삿대질하며 소리쳤다.“이 집안 후계자는 나야, 넌 나랑 뺏을 생각 마! 안 그러면 내가 널 죽여버릴 거야, 못 믿겠으면 해봐, 어디!”윤우는 입이 막혀있었지만 지훈이가 하는 짓을 보고 경멸의 눈빛을 보냈다.예찬이가 한 말이 맞았다. 지훈이는 그냥 딱 네 살 수준의 유치하기 짝이 없는 꼬마였고,그들 쌍둥이와 싸울 상대가 전혀 아니었다.윤우는 지훈이의 말을 신경도 안 썼지만 곁에 있는 어른들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유명훈은 지훈이의 말에 멍해졌다. 평소 아이가 장난을 많이 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다짜고짜 사람을 죽이겠다고 말할 줄은 몰랐다. 게다가 후계자가 어쩌고저쩌고하는 것은 네 살짜리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순간 화가 난 유명훈은 유성혁 내외를 쏘아보며 역정을 냈다.“너희들 대체 애 교육을 어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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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8화
유남준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민정아...”“해명할 필요 없어요. 당신 말이 맞으니까.”박민정은 화나지 않았다. 유남준이 진실을 알아버린 게 아니란 걸 알고 오히려 조금 전까지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그렇지만 당신 돈으로 예찬이랑 윤우 키울 필요는 없어요. 그건 걱정하지 말아요.”그녀한테는 두 아이를 키울 돈이 충분하다.다른 남자의 아들을 키워준다고 했던 유남준의 말은 물질적인 방면을 가리킨 게 아니었다. 설명하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할지 몰라 생각을 고르던 중, 박민정이 앞으로 걸어오며 윤우의 손을 잡았다.“이만 집에 돌아가요, 우리.”윤우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겨우 건수를 하나 만들었는데 엄마는 왜 따지지도 않는걸까. ‘안 돼. 쓰레기 아빠의 아들이 그냥 될 순 없어.’“엄마, 나 너무 피곤해. 여기서 좀 쉬었다 가면 안 돼? 지금 차를 못 탈 거 같아.”윤우는 당장 쓰러질 것 같은 시늉을 했다. 그러자 박민정은 즉시 웅크리고 앉아 그의 상태를 살폈다.“왜? 어디가 아픈 거야?”윤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아까 아저씨가 날 들고 이리저리 다니는 바람에 머리가 좀 어지러워. 우웩... 속이 안 좋아. 좀 누워서 쉬고 싶어, 어떡하지?”윤우가 불쌍한 척하는 모습에 유남준은 기가 막혔다.‘이 녀석, 예찬이보다 더 꼴통인데? 쩍하면 연기하네.’“내 방에 데려가 쉬게 해.”유남준이 말하자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윤우를 안으려고 했다. 하지만 유남준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내가 안을게.”그리고 박민정이 수락하기도 전에 윤우의 뒷덜미를 잡는 대신 들쳐 안았다.그걸 보자 박민정은 그를 막지 않고 당부만 했다.“조심해요. 아까처럼 걔 멜빵바지 잡고 다니지 말고요.”키 큰 유남준이 방금 윤우의 덜미를 잡고 다닐 때는 마치 작은 돼지 한 마리를 손에 잡은 것만 같았다. 그의 손에서 흔들거리다 보니 어지러울 만도 했다.윤우는 품에 안기자마자 유남준의 앞섶을 잡으며 말했다.“아저씨, 천천히 부드럽게 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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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9화
그녀의 얘기를 듣고 유남준은 비로소 안심했다.“돌아오기 전에 내 처소에 있는 모든 물건은 볼펜 한 자루라도 위치를 바꾸지 말라고얘기를 해뒀어. 그리고 나머지는 다 기억으로 해낸 거야.”그의 말을 듣고 박민정은 사방을 둘러보니 역시나 질서정연하고 물체의 위치가 그전과 똑같았다.그렇다 해도 그녀는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만약 전 세계 사람들이 다 볼 수 없다고 했을 때 유남준처럼 앞을 훤히 내다보는 것처럼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이 세계의 통치자가 되지 않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타고난 지도자인 것이다.“당신 정말 대단해요.”박민정은 감탄이 진심으로 우러나왔다..그녀의 칭찬을 들어본 지가 꽤 오래되었는데 불현듯 듣게 되니 유남준은 저도 몰래 입꼬리가 올라가며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하... 바보...”공기 중에 미묘한 기류가 흘렀다. 박민정은 얼굴이 왠지 모르게 붉게 물들었다.“... 이거 놔요. 여기 좀... 닦아야겠어요.”“그래.”유남준은 순순히 손을 놔주었다. 그가 아주 잠깐 쥐었지만 손바닥은 땀이 날 정도로 뜨거웠다.박민정은 별생각 없이 대걸레를 가져와 바닥의 물을 닦았다.그러고 나서 고개를 들어보니 유남준은 통창 앞에 서 있었는데, 그의 커다란 몸집이 비춰들어 오는 햇빛을 반 이상 가리고 있었다.이윽고 햇빛을 등지고 돌아서는 유남준의 얼굴은 서늘하면서도 귀티가 좔좔 흘렀다.그가 뭐라 말하려고 입술을 벌리는 순간, 문어귀에서 사용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큰 도련님, 작은 사모님. 사모님께서 오셨습니다.”말이 끝나기도 바쁘게 고영란은 이미 사용인 몇 명을 이끌고 들어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윤우는 어디 갔어?”“위층에 있어요. 자요, 지금.”유남준의 대답을 듣자 고영란은 소파에 앉았다.“그러면 여기서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야겠다.”그다음 순간, 유남준은 그녀의 좋은 기분을 엉망으로 망가뜨렸다.“윤우는 내 아들이 아니에요.”고영란은 얼떨떨해져서 물었다.“뭐라고 했니, 방금?”유남준한테서 더 이상의 설명이 없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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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0화
방 안에 있는 유남준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아내가 바람을 피우든 말든 개의치 않아 하는 남자는 이 세상에 없다. 하지만 타임 슬립을 하지 않는 이상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어찌할 방법도 없다.이제 그가 원하는 건 오직 박민정을 곁에 두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두 아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연지석은 그냥 해외에서 죽을 때까지 돌아오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유남준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고 그가 윤우와 예찬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건 모두 기억 상실 때문일 거라고 여겼다. 잠든 것이 아닌 윤우는 아래층의 기척을 듣고 몰래 내려가서 아까의 장면을 전부 목격했다.할머니가 사납긴 했지만 쓰레기 아빠가 그녀한테 바보라고 욕먹는 걸 보고 윤우는 기분이 마냥 즐거웠다.“엄마.”윤우는 막 깨어난 것처럼 두 눈을 비볐다.박민정은 윤우의 부름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 올려다봤다.“왜, 잠에서 깼어?”“누가 말하는 소리를 듣고 깼어.”윤우는 말하며 아래층으로 내려왔다.“시끄럽게 해서 미안해.”“괜찮아.”윤우는 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서 물었다.“엄마, 우리 오늘 여기서 자면 안 돼?”“왜?”“멀미가 나는데 아직도 좀 어지러워. 내일에야 나을 거 같아.”“그래, 그러면 오늘 여기서 자고 내일 집에 돌아가자.”윤우가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 엄마.”말을 마치고 윤우는 또 일부러 유남준 앞에서 박민정한테 뽀뽀를 했다.윤우와 같은 귀엽고 활발한 아들내미가 있어 박민정은 우울할 틈이 없었다. 고영란 때문에 드리워진 먹구름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윤우는 혼자 위층 어린이 방으로 향했다.유씨 집안은 역시 대단한 집안이었다. 유남준이 결혼하기 전부터 이미 그가 살 곳의 모든 인테리어를 마쳤다. 박민정은 위층 어린이 방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어린 윤우는 이곳을 매우 좋아하는 것 같았다.이때 유남준이 그녀 옆으로 와서 말했다.“민정아, 나 일이 있어서 좀 나가봐야 할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생기면 나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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