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씨 집안이 오늘처럼 떠들썩한 적이 없었다.지훈이는 조그마한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채 도끼눈을 하며 윤우를 가리켰다.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마음속으로 최현아가 아이에게 저런 말을 했을 줄이야,하며 혀를 끌끌 찼다.난감하여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최현아는 얼른 아들을 꾸짖었다.“지훈아, 너 갑자기 무슨 헛소리야, 엄마가 언제 그랬어! 엄마는 예전에 남준 삼촌의 아내가 집에 없으니까 아이가 못생긴다는 얘기였지.”하지만 지훈이는 고작 몇 살짜리 아인지라 어른들의 빙빙 돌려 표현하는 방식에 익숙지않아 최현아의 말에 대뜸 반박했다.“아니야, 엄마가 전에 삼촌이 정상이 아니라고 아이를 못 낳는다고 그랬어!”최연아는 당장 달려가서 아들의 귀싸대기를 후려치고 싶은 심정이었다.“네가 잘못 들은 거야!”애지중지 키워진 유지훈은 버릇이 나오기 시작했다. 유명훈한테 쪼르르 달려가더니 그의손을 잡고 흔들며 떼를 썼다.“증조할아버지, 어디서 굴러먹다 온 지도 모르는 저 애 어서 내쫓아요. 분명히 우리 집안 사람이 아니에요. 나쁜 놈, 사기꾼이에요, 저랑 집안 후계자 자리를 뺏으려고 온 거라고요.”말을 마치자마자 또 사납게 윤우를 삿대질하며 소리쳤다.“이 집안 후계자는 나야, 넌 나랑 뺏을 생각 마! 안 그러면 내가 널 죽여버릴 거야, 못 믿겠으면 해봐, 어디!”윤우는 입이 막혀있었지만 지훈이가 하는 짓을 보고 경멸의 눈빛을 보냈다.예찬이가 한 말이 맞았다. 지훈이는 그냥 딱 네 살 수준의 유치하기 짝이 없는 꼬마였고,그들 쌍둥이와 싸울 상대가 전혀 아니었다.윤우는 지훈이의 말을 신경도 안 썼지만 곁에 있는 어른들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유명훈은 지훈이의 말에 멍해졌다. 평소 아이가 장난을 많이 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다짜고짜 사람을 죽이겠다고 말할 줄은 몰랐다. 게다가 후계자가 어쩌고저쩌고하는 것은 네 살짜리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순간 화가 난 유명훈은 유성혁 내외를 쏘아보며 역정을 냈다.“너희들 대체 애 교육을 어떻
유남준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민정아...”“해명할 필요 없어요. 당신 말이 맞으니까.”박민정은 화나지 않았다. 유남준이 진실을 알아버린 게 아니란 걸 알고 오히려 조금 전까지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그렇지만 당신 돈으로 예찬이랑 윤우 키울 필요는 없어요. 그건 걱정하지 말아요.”그녀한테는 두 아이를 키울 돈이 충분하다.다른 남자의 아들을 키워준다고 했던 유남준의 말은 물질적인 방면을 가리킨 게 아니었다. 설명하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할지 몰라 생각을 고르던 중, 박민정이 앞으로 걸어오며 윤우의 손을 잡았다.“이만 집에 돌아가요, 우리.”윤우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겨우 건수를 하나 만들었는데 엄마는 왜 따지지도 않는걸까. ‘안 돼. 쓰레기 아빠의 아들이 그냥 될 순 없어.’“엄마, 나 너무 피곤해. 여기서 좀 쉬었다 가면 안 돼? 지금 차를 못 탈 거 같아.”윤우는 당장 쓰러질 것 같은 시늉을 했다. 그러자 박민정은 즉시 웅크리고 앉아 그의 상태를 살폈다.“왜? 어디가 아픈 거야?”윤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아까 아저씨가 날 들고 이리저리 다니는 바람에 머리가 좀 어지러워. 우웩... 속이 안 좋아. 좀 누워서 쉬고 싶어, 어떡하지?”윤우가 불쌍한 척하는 모습에 유남준은 기가 막혔다.‘이 녀석, 예찬이보다 더 꼴통인데? 쩍하면 연기하네.’“내 방에 데려가 쉬게 해.”유남준이 말하자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윤우를 안으려고 했다. 하지만 유남준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내가 안을게.”그리고 박민정이 수락하기도 전에 윤우의 뒷덜미를 잡는 대신 들쳐 안았다.그걸 보자 박민정은 그를 막지 않고 당부만 했다.“조심해요. 아까처럼 걔 멜빵바지 잡고 다니지 말고요.”키 큰 유남준이 방금 윤우의 덜미를 잡고 다닐 때는 마치 작은 돼지 한 마리를 손에 잡은 것만 같았다. 그의 손에서 흔들거리다 보니 어지러울 만도 했다.윤우는 품에 안기자마자 유남준의 앞섶을 잡으며 말했다.“아저씨, 천천히 부드럽게 가주
그녀의 얘기를 듣고 유남준은 비로소 안심했다.“돌아오기 전에 내 처소에 있는 모든 물건은 볼펜 한 자루라도 위치를 바꾸지 말라고얘기를 해뒀어. 그리고 나머지는 다 기억으로 해낸 거야.”그의 말을 듣고 박민정은 사방을 둘러보니 역시나 질서정연하고 물체의 위치가 그전과 똑같았다.그렇다 해도 그녀는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만약 전 세계 사람들이 다 볼 수 없다고 했을 때 유남준처럼 앞을 훤히 내다보는 것처럼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이 세계의 통치자가 되지 않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타고난 지도자인 것이다.“당신 정말 대단해요.”박민정은 감탄이 진심으로 우러나왔다..그녀의 칭찬을 들어본 지가 꽤 오래되었는데 불현듯 듣게 되니 유남준은 저도 몰래 입꼬리가 올라가며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하... 바보...”공기 중에 미묘한 기류가 흘렀다. 박민정은 얼굴이 왠지 모르게 붉게 물들었다.“... 이거 놔요. 여기 좀... 닦아야겠어요.”“그래.”유남준은 순순히 손을 놔주었다. 그가 아주 잠깐 쥐었지만 손바닥은 땀이 날 정도로 뜨거웠다.박민정은 별생각 없이 대걸레를 가져와 바닥의 물을 닦았다.그러고 나서 고개를 들어보니 유남준은 통창 앞에 서 있었는데, 그의 커다란 몸집이 비춰들어 오는 햇빛을 반 이상 가리고 있었다.이윽고 햇빛을 등지고 돌아서는 유남준의 얼굴은 서늘하면서도 귀티가 좔좔 흘렀다.그가 뭐라 말하려고 입술을 벌리는 순간, 문어귀에서 사용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큰 도련님, 작은 사모님. 사모님께서 오셨습니다.”말이 끝나기도 바쁘게 고영란은 이미 사용인 몇 명을 이끌고 들어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윤우는 어디 갔어?”“위층에 있어요. 자요, 지금.”유남준의 대답을 듣자 고영란은 소파에 앉았다.“그러면 여기서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야겠다.”그다음 순간, 유남준은 그녀의 좋은 기분을 엉망으로 망가뜨렸다.“윤우는 내 아들이 아니에요.”고영란은 얼떨떨해져서 물었다.“뭐라고 했니, 방금?”유남준한테서 더 이상의 설명이 없자
방 안에 있는 유남준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아내가 바람을 피우든 말든 개의치 않아 하는 남자는 이 세상에 없다. 하지만 타임 슬립을 하지 않는 이상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어찌할 방법도 없다.이제 그가 원하는 건 오직 박민정을 곁에 두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두 아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연지석은 그냥 해외에서 죽을 때까지 돌아오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박민정은 유남준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고 그가 윤우와 예찬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건 모두 기억 상실 때문일 거라고 여겼다. 잠든 것이 아닌 윤우는 아래층의 기척을 듣고 몰래 내려가서 아까의 장면을 전부 목격했다.할머니가 사납긴 했지만 쓰레기 아빠가 그녀한테 바보라고 욕먹는 걸 보고 윤우는 기분이 마냥 즐거웠다.“엄마.”윤우는 막 깨어난 것처럼 두 눈을 비볐다.박민정은 윤우의 부름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 올려다봤다.“왜, 잠에서 깼어?”“누가 말하는 소리를 듣고 깼어.”윤우는 말하며 아래층으로 내려왔다.“시끄럽게 해서 미안해.”“괜찮아.”윤우는 아래층 거실 소파에 앉아서 물었다.“엄마, 우리 오늘 여기서 자면 안 돼?”“왜?”“멀미가 나는데 아직도 좀 어지러워. 내일에야 나을 거 같아.”“그래, 그러면 오늘 여기서 자고 내일 집에 돌아가자.”윤우가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 엄마.”말을 마치고 윤우는 또 일부러 유남준 앞에서 박민정한테 뽀뽀를 했다.윤우와 같은 귀엽고 활발한 아들내미가 있어 박민정은 우울할 틈이 없었다. 고영란 때문에 드리워진 먹구름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윤우는 혼자 위층 어린이 방으로 향했다.유씨 집안은 역시 대단한 집안이었다. 유남준이 결혼하기 전부터 이미 그가 살 곳의 모든 인테리어를 마쳤다. 박민정은 위층 어린이 방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어린 윤우는 이곳을 매우 좋아하는 것 같았다.이때 유남준이 그녀 옆으로 와서 말했다.“민정아, 나 일이 있어서 좀 나가봐야 할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생기면 나한테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야?”차가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 들어 유남준은 물었다.“새해인데 당연히 즐겁게 기분 전환하러 가야지.”예전 이맘때쯤이면 김인우 등 부잣집 도련님들은 모두 제호 클럽에서 밤을 새웠다.“차 돌려.”김인우한테 무슨 큰일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걸 알고 유남준은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는 이제 박민정과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중요했다.김인우는 기사한테 차를 돌리라고 했다.“왜, 형수님 곁에 딱 붙어 있으려고?”그가 박민정을 부르는 호칭은 귀머거리에서 형수님으로 바뀌었다.유남준도 의외라고 생각지 않았다.“그게 아니면? 너도 제수씨 곁에 붙어있어.”조하랑과 박민정은 절친이므로 김인우가 조하랑과 잘 되면 앞으로 자신과 박민정의 관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그러나 조하랑과 같이 있으라는 말을 듣자마자 김인우는 인상을 찌푸렸다.“됐어. 나도 너랑 같이 형수님 보러 갈래.”“...”감히 유남준 앞에서 이런 말을 뱉을 수 있는 사람은 김인우밖에 없다.차가 유유히 유씨 집안 저택으로 들어갔다.김인우는 박민정뿐만 아니라 그 아이도 보고 싶었다.“남준아, 형수님이 너 떠나기 전에 임신한 거야?”그의 기억으로 5년 전, 박민정이 떠나기 전에 검사 결과에는 임신이라고 적혀있었다.유남준은 순간 침묵했고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넌 무슨 질문이 그렇게 많아?”김인우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그리고 집 앞에 도착하자 얼른 들어가려고 했으나 유남준은 그를 덥석 잡아당겼다.“넌 이제 그만 돌아가.”“왜?”“우리 한 식구가 집에 있는데 네가 오면 불편해.”“불편할 게 뭐야. 난 아이만 보고 갈 거야.”김인우는 철면피를 깔고 계속 집 안으로 들어왔다.방에서 책을 보던 박민정이 기척을 듣고 거실로 나왔다.시선이 김인우한테 떨어지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는 냉기가 흘렀다.김인우는 그녀를 보자 꼿꼿이 서서 인사를 했다.“형수님, 안녕하세요.”형수님이라는 소리에 박민정은 좀 어리둥절했다.“김 이사님, 그렇게 부르지 마세
김은우가 내민 손이 허공에 멈췄다. 그는 한참 뒤에야 손을 거둬들였다.“저...”박민정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갔다.김인우는 따라가서 사과하고 싶었으나 유남준이 그를 잡아끌었다.“넌 왜 날 잡아당겨?”유남준의 얇은 입술이 열렸다.“사과는 나중에 다시 해.”정월 초하루부터 김인우 때문에 분위기를 다 망치고 싶지 않았다.김인우도 그의 말을 듣고 너무 서두르면 안 될 거 같아 대답했다.“그래, 알았어.”박민정의 아들도 만나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떠나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그럼 나 오늘은 이만 돌아가고 다음에 다시 올게.”“응, 그래.”김인우는 차를 타고 떠났다.박민정은 방으로 돌아와 소파에 누워 책을 계속 읽었다. 그리고 얼마 뒤에 유남준이 돌아오자 물었다.“아까 일이 있다던 게 김인우 씨 일이에요?”유남준은 아까부터 김인우 때문에 자신이 연루될까 봐 걱정했는데 박민정이 이렇게 묻자 바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김인우와의 연관을 끊어냈다.“난 인우가 뭘 말하려는지 몰랐어.”박민정은 책을 덮고 정색하여 그를 바라보았다.“그럼 됐어요. 난 김인우 씨랑은 친하게 못 지내요, 적어도 지금은 불가능해요.”유남준이 누구와 친구를 사귀는가 하는 것은 그의 자유지만, 그녀도 나름 친구 사귀는 기준이 있다.유남준은 곁에 앉으며 그녀를 품에 꼭 껴안았다.“응, 그래. 다 네 말대로 해.”유남준의 품에 안긴 박민정은 잠시 멍하니 있었다가 이내 그의 손을 떼어냈다.“책 읽어야겠어요.”“무슨 책을 보는데?”유남준은 계속 그녀를 품속에 끌어안은 채 물었다.“그냥 법률에 관한 책인데 당신 서재에서 가져온 거예요.”유남준의 서재에는 여러 분야의 서적이 골고루 들어있어 작은 도서관을 방불케 했다.한수민이 아직 구속되어 판결을 내리지 않은 상태고, 박씨 집안의 재산도 되찾으려면 법률 지식을 좀 알아둬야 할 것 같았다.“한수민 때문에 그래? 내가 전문 변호사팀을 알아봐 줘?”“아뇨, 제가 알아서 할 수 있어요.”박민
박민정이 들어올 때부터 유남우의 눈길은 한시도 그녀를 떠난 적이 없었다.그는 의자를 뒤로 밀며 일어나더니 인사를 건넸다.“형님, 형수님. 안녕하세요.”박민정은 그에게 예의 바른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이 모습을 지켜보는 윤소현은 너무나도 거슬렸지만 간신히 화를 억누르고 유남우를 따라인사했다.“형수님, 형님. 또 뵙네요.”유남준은 그녀의 인사를 무시하고 박민정이 앉자 그녀의 옆에 앉았다.다른 사람들도 함께 있는 자리라 박민정은 윤소현의 체면을 구기지 않고 짧게 인사를 받아줬다.윤소현은 의자에 다시 앉으면서 일부러 유남우의 팔짱을 꼈다.“남우 씨, 형님네 아들 참 귀엽게 생겼다, 그렇지 않아요?”유남우의 팔이 뻣뻣해지더니 눈가에 혐오감이 스쳤다.그는 소리 없이 윤소현의 손을 빼내며 시선을 윤우한테 돌렸다. 윤우는 정말 형님과 많이 닮아있었다.고영란도 윤우한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박민정이 비록 윤우가 유남준의 아들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연지석의 아들이라면 왜 한 명은 조하랑과 같이 있고 한 명은 박민정과 같이 있겠는가.게다가 예찬이는 성이 박씨다.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윤우야, 이리 와. 할머니 옆에 와서 앉아.”고영란이 모처럼 자상한 얼굴로 얘기했다. 하지만 윤우는 그 말을 듣더니 조그마한 입으로 폭탄을 터트렸다.“누구세요? 우리 할머니는 돌아가셨는데요?”순간 다이닝룸의 분위기가 싸해졌고 고영란의 상냥한 얼굴은 굳어버렸다.그녀의 차가운 시선이 박민정한테 떨궈졌다.“네가 가르쳤니? 내가 죽었다고 저주한 거야?”박민정은 난데없이 누명을 쓴 꼴이 되었다. 윤우가 말하는 할머니가 은정숙을 가리킨 것이라고 해명하려고 하는데 윤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저기요, 어르신. 우리 엄마한테 왜 그래요? 제 할머니가 돌아가신 건 사실인데, 제 할머니도 아니면서 왜 엄마가 어르신을 저주했다고 그러는데요?”어르신이라니...고영란은 태어나서 아직 어르신이라는 호칭은 난생처음이었다.“너..
최현아는 그 상황을 보고 말리는 척했다.“지훈아, 동생한테 좀 양보해.”하지만 지훈이는 척하는 게 뭔지, 눈치를 살피는 게 뭔지를 전혀 모르고 오직 자신의 물건이 남한테 뺏기면 안 된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지훈이는 의자에서 내려와 윤우 곁으로 달려가더니 그를 잡아당기기 시작했다.“너 내려와!”전에 예찬이한테 얻어맞은 적이 있어, 그와 너무 닮은 윤우한테도 지훈이는 감히 손찌검을 하지 못했다.“얼른 내려오라니까, 이 굴러먹다 온 놈이!”말끝마다 굴러먹다 온 놈이라고 하는 통에 박민정은 듣기 거슬려 손을 그러쥐었다.최현아는 속으로 냉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말리지 않았다.유명훈은 마지못해 사용인에게 말했다.“가서 의자 하나 더 가져와서 내 옆에 갖다 놔.”“싫어요. 난 꼭 이 의자에 앉을 거예요!”총애를 듬뿍 받고 자란 지훈이는 막무가내였다. 반드시 윤우가 앉은 의자에 앉고야 말겠다고 심통을 부렸다.박민정은 더는 보다 못해 윤우를 불렀다.“윤우야, 엄마 옆에 와서 앉아.”“응, 알았어.”윤우는 바로 의자에서 내려오며 애정 어린 눈빛으로 지훈이를 보며 말했다.“너 나보다 작지? 내가 양보할게. 형이 동생한테 양보하는 건 당연한 거니까.”이 말은 최현아가 아까 한 말에 대한 반격이었다.부잣집에서 장손의 위치는 그 뒤에 태어난 아이들과 다른 법이다.최현아는 얼굴색을 확 달리했다.“윤우야, 너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야? 우리 지훈이가 너보다 좀 커. 네가 형이라고 불러야 해.”“얘가 나보다 커요?”윤우는 어리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왜 이렇게 유치해요? 의자 하나 가지고.”최현아는 순간 목구멍에 솜이 들어찬 것만 같았다.유명훈은 큰 소리로 껄껄 웃었다.“맞다, 윤우야. 그냥 의자일 뿐이야, 싸울 거 없어. 네가 지훈이보다 더 커 보이는구나. 자, 할아버지 곁에 앉아. 엄마한테로 갈 거 없어.”윤우는 박민정한테 눈길로 동의를 구했고 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유명훈의 다른 한쪽에 앉았다.지훈이는 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