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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1화

온하랑이 발견했을 때 침대보는 이미 날카로운 발톱에 올이 나간 후였다. 아직은 다리가 많이 짧은 터라 송이는 뛰어오르지 못했다. 온하랑은 이불을 들어 송이 마음대로 하게 두고 불을 껐다....이튿날 아침 여덟 시 반, 송이에게 먹을 것을 좀 준 뒤 넥카라를 야무지게 해 주고는 온하랑은 집을 나섰다.여덟 시 오십 분쯤 온하랑은 카페에 도착했다. 핸드폰을 힐긋 보고 그녀는 구석진 곳에 자리 잡은 뒤 서우현에게 문자를 보냈다.“도착했어요.”서우현의 대답도 빨랐다.“잠시만 기다려줘요.”약 칠 팔분쯤 지났을까, 아홉 시가 되려는 차에 카페에 한 남자가 들어섰다. 나이는 서른 좀 넘어 보였고 위에는 갈색 가죽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카고 팬츠에 선글라스를 하고 있었는데 머리는 오래 안 잘랐는지 길어 보였다. 남자는 카페 입구에서 주위를 두리번댔다. 온하랑이 그쪽을 바라봤을 때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남자는 바로 온하랑이 앉아있는 곳으로 걸어와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온하랑 씨?”“서우현 씨?”“접니다.”서우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선글라스를 벗어 내려놨다. 온하랑은 그를 곁눈질하면서 말했다.“서우현 씨는 뭐 드실래요?솔직히 얘기하면 온하랑은 마주 앉은 이 지저분한 남자를 그 기이한 프로필 사진이랑 연관 지을 수 없었다.“카푸치노 한잔이면 됩니다.”서우현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서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온하랑은 직원한테 카푸치노를 부탁했다. 직원이 떠난 뒤 그녀는 서우현한테 미소 지어 보이며 말했다.“서우현 씨는 이 업계에 몸담은 지 얼마나 되셨나요?”“한 십 년쯤 될 거예요.”“오래됐네요. 대체로 어떤 방면을 하시는지? 아니면 어떠한 의뢰도 다 받나요?”서우현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사건의 구체적인 성질이랑 난이도를 봐야 의뢰를 받을지 말지 결정할 수 있어요. 온하랑 씨도 알고 계시겠지만 우리한테 의뢰를 맡기는 일들이 대부분 드러낼 수 없는 일이라서요. 저도 만능이 아니고요. 어떤 일들은 할 수 있지만 어떤 일들은 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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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2화

“부승민 전 와이프요.”서우현은 직설적으로 말하고는 농담을 던졌다.“만약 온하랑 씨가 이번 건이 리스크 있다는 얘기를 안 하셨으면 부승민 씨가 내연녀라도 있는 줄 알았습니다, 하하.”“...”온하랑의 표정은 담담했다.“부승민 전 와이프 말고도 다른 신분이 하나 더 있거든요. 저 기자 온강호 딸입니다.”서우현은 잠시 멈칫했다. 그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사실 온강호가 금방 세상을 떴을 때 서우현은 금방 대학을 졸업하고 열정 가득할 때였다. 그는 이 정의로운 기자의 죽음이 안타까웠고 오랫동안 이 사건에 주목했다. 물론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온강호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려 보복당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건 조사 결과 단순 교통사고였단 점이었다. 이 결과에 대해 많은 사람이 믿지 않았으나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시간이 흐르고 흘러 온강호의 죽음은 사람들에게서 잊혀갔다. 지금 온하랑이 갑자기 온강호를 찾아내고 죽은 부친을 들먹이니 서우현은 그녀가 뭘 알고 있지 않나 의심했다. 그러니까 리스크가 따른다고 얘기한 거겠지. 필경 온강호가 건드린 그 사람들은 대부분 재벌가 사람이고 깨끗할 리 없으니.“온하랑 씨가 의뢰할 사건이 혹시 아버님과 연관이 있는 겁니까?”“네. 보아하니 우리 아버지를 알고 있는 모양이군요. 그럼 소개할 필요 없겠네요.”온하랑은 차를 홀짝 마신 후 얘기를 이어나갔다.“제 의뢰를 말씀드리기 전에 먼저 서우현 씨한테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강남시에 납치 사건이 발생한 건 알고 계시나요?”서우현은 잠시 눈썹을 치켜세우며 회상하더니 대답했다.“조금 인상이 있는 것 같아요.”“저희 아버지가 당시 이 사건에 대해 조사하고 계셨거든요.”서우현은 뭔가 깨달은 듯 말했다.“뭔가 단서를 찾은 건가요?”아니면 온하랑이 온강호가 죽은 지 십 년도 돼가는 이 시점에 그를 찾아왔을 리 없었다. 그저 생각지 못했던 건 온강호가 건드린 재벌가 사람들이 벌인 짓인 줄 알았으나 그 납치 사건과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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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3화

만약 이 사실이 새어나가 들킨다고 하더라도 서우현보다 온하랑에게 먼저 무슨 일이 생길 것이었다. 온하랑이 죽어야 이 사건을 캐고 들려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 온하랑 같은 연약한 여자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잠재적인 위험을 무릅쓰고 맞서겠다고 하는데 서우현이 겁낼 건 또 뭐가 있을까. 그리고 지금 인터넷이 이렇게 발달한 시점에서 사소한 일들도 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상황인데 원래 온하랑 자체도 화제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라 부씨 일가까지 등에 업으면 그 사람들도 섣불리 손쓰기 힘들 것이다.서우현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결심했다.“온하랑 씨, 저 의뢰 맡겠습니다.”서우현 본인도 이게 맞는 건지 틀린 건지 몰랐다. 그저 그는 지금 이 시각, 자신의 마음을 따르는 게 자기 양심에 미안하지 않은 행동이라 생각했다.“정말이요?”온하랑은 잠시 놀랐다. 눈에는 반색하는 빛이 스쳤다.“정말입니다. 당시 온 기자님이 돌아가셨을 때 저도 많이 안타까웠거든요. 10년 후의 오늘, 저도 그분을 위해 뭔가 하고 싶군요.”“서우현 씨, 정말 고맙습니다.”온하랑은 코끝이 시큰해나며 감동했다..“그렇다면 서우현 씨가 가격 제시하시죠.”“깔끔하게 1억으로 하시죠.”“그래요, 계약하죠.”서우현은 늘 펜을 갖고 다녔다. 그 펜으로 두 사람은 각자 계약서에 사인했다. 온하랑은 펜을 내려놓고 그중 하나의 계약서를 서우현에게 건넸다.“됐네요. 온하랑 씨, 이젠 말씀해 보세요.”온하랑은 가방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서우현에게 내밀었다.“일단 이 사진 좀 봐봐요.”서우현은 이리저리 살피더니 고개를 들어 온하랑을 보면서 추측했다.“이건... 혹시 온 기자님이 몰래 찍은 납치범들 사진인가요?”온하랑은 고개를 끄덕였다.“과연 사립 탐정답게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이 사진은 얼마 전 아버지 유품 정리하다 발견한 거예요.”“온하랑 씨는 어떻게 이 사진을 아버님의 죽음과 연관시킨 거예요?”서우현은 사진 모퉁이를 잡고 물었다.“말하자면 우연이었어요. 얼마 전 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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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4화

온하랑은 집에 돌아온 뒤 거실을 한 바퀴 쭉 둘러보았다. 하지만 송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엎드려 테이블 아래를 봤을 때, 아니나 다를까 그 동글동글한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온하랑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온하랑을 보고 나서야 송이는 안심된 듯 테이블 밑에서 나왔다.“야옹-”온하랑은 허리를 굽혀 송이를 품에 안은 뒤 어루만져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소파 위에 앉아 한쪽으로는 송이를 쓰다듬어주며 한쪽으로 핸드폰을 꺼내 본가에 전화를 걸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전화는 연결되었고 수화기 너머에서 가사도우미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하랑 아가씨?”“아주머니, 할머니 집에 계세요?”“네. 바꿔드릴게요.”가사도우미는 옆에 일인용 소파에 앉아있던 부승민을 힐긋 쳐다보고는 전화를 할머니한테 넘겼다.“하랑이니? 귀국한 거냐? 해외는 어땠어? 재밌었어? 할미한텐 어쩐 일이냐?”할머니는 전화를 받고 부승민에게 조용히 하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할머니, 아무 일 없어요. 할머니 보러 가고 싶은데 집에 안 계실까 미리 전화해 여쭌 거예요.”“이 할미 집에 있으니까 얼른 오렴. 나도 보고 싶단다.”부승민은 그 말을 듣고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온하랑의 목소리는 못 들었지만 온하랑이 무슨 무슨 말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온하랑이 묻고 싶은 건 할머니가 집에 계시느냐가 아니라 부승민이 집에 있느냐 없느냐였다.“맞다, 할머니. 집에 또 누구 다른 사람 있어요?”온하랑은 명백한 의도를 갖고 물었다. 이 다른 사람이 누구를 뜻하는지 할머니는 제꺽 눈치챘다. 할머니는 부승민을 한 번 쏘아보고는 칼 같이 말했다.“없지, 당연히! 나랑 아줌마만 있어.”“알겠어요. 저 지금 갈게요.”온하랑은 전화를 끊고 송이한테 밥을 준 뒤 집을 나서 운전대를 잡았다.그 시각 본가, 할머니는 전화를 내려놓고 부승민을 째려보며 말했다.“너 아직도 안 가고 뭐 하니?”부승민은 어이가 없었다.“할머니...”“나 불러도 소용없어. 난 네가 하랑이 괴롭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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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5화

스캔들이 터지고 난 뒤 온하랑의 계정은 많은 팔로워가 생겼다. 그 전에 게시했던 이혼확인서 사진 아래 댓글 창에는 많은 사람이 그녀를 오해하고 안타까워하고 응원했다.사실 온하랑은 다시는 이 계정으로 로그인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인터넷이 너무 발달한 이 세계에서는 아주 사소한 일까지 인터넷에 널리 퍼졌고 심지어는 “인스타 수사”라는 말까지 생기고 있었다.온하랑은 아직 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배후가 누군지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암암리에 조사했다가 들통나면 아버지와 같은 꼴이 될까 봐 걱정됐다. 그래서 그녀는 계속 자신을 언론에 노출해 퇴로를 마련해야 했다. 만약 자신이 죽어도 사실이 언론에 알려질 수 있게.물론 다른 가능성도 있었다. 만약 서우현이 뭔가를 알아냈는데 프로그램 문제라든가 내부 스파이의 방해라든가 이러한 것들 때문에 재심이 수리가 안 된다고 했을 때, 그녀의 유명세를 이용해 유관 부문에 압력을 넣어 재심 처리를 요구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인터넷은 한마디로 양날의 검이었다.유명세는 계속 유지했어야 했다. 그게 바로 온하랑이 계정을 로그인하기 싫으면서도 다시 계정을 운영하기로 한 이유였다. 송이 사진을 두 장 올린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사람이 댓글을 달았다. 많은 이들이 송이가 귀엽다고 칭찬했고 예전 일을 언급하며 위로하는 이들도 있었다.많은 댓글 중 누군가 오주 여행 공략을 물어왔다. 아마 김시연 쪽에서 이미 온하랑 삼인방이 여행을 다녀왔다는 걸 안 모양이었다. 온하랑은 잠시 고뇌하다 그녀와 김시연의 오주 여행기를 정성 들여 작성해 게시했다. 그때 찍은 사진들도 도시의 명승지에 따라 나열해 같이 게시했더니 또 많은 좋아요가 달렸다....이튿날 아침 여섯 시 이십 분, 검은색 카이엔이 공항 주차장에 들어섰다.부승민은 차에서 내려 터미널로 들어가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는 회색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길게 쭉 뻗은 몸매에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부선월은 직접 부시아가 비행기에 오르는 데까지 배웅한 뒤 그에게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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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6화

“네.”부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강남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던지 내내 두리번거렸다. 터미널을 나서자 부시아가 버둥거렸다.“삼촌, 내려줘요. 나 혼자 걸을 수 있어요.”“삼촌한테 안기기 싫어? 예전에 삼촌한테 안기기 좋아했잖아.”부시아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옷 너무 두꺼워서 안겨있는 게 불편해요.”부승민은 아이를 바닥에 내려주고 가방을 벗겨냈다.“내가 들어줄게.”부시아는 가방을 벗어 부승민에게 건넸고 그의 새끼손가락을 잡은 채 폴짝폴짝 앞으로 뛰어갔다. 차에 도착하자 부승민은 뒷좌석 문을 열어 부시아를 안아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문을 닫고 반대편으로 돌아가 뒷좌석에 앉았다. 부시아는 운전석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열성스레 웃으며 인사했다.“기사 아저씨 안녕하세요!”“꼬마 아가씨, 안녕하세요~”기사는 웃으며 고개를 돌려 대답했다.“갑시다.”부승민이 차 문을 닫았다. 기사는 시동을 걸며 농담조로 말했다.“부 대표님, 정말 이런 우연이. 작은 아가씨께서 대표님을 조금 닮으셨습니다. 누가 보면 정말 대표님 딸인 줄 알겠어요!”부승민은 참지 못하고 부시아를 바라봤다. 아이는 짤막한 두 다리를 흔들며 사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부승민이 몇 번 더 바라봤을 때 아이의 얼굴에서는 온하랑의 얼굴도 살짝 엿볼 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부승민은 어이없어서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정신이 어떻게 된 것 같았다. 고모는 분명 부시아를 보육원에서 입양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와 별개로 부승민은 부시아가 자기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와 온하랑 사이에서 낳은 딸. 그러면 아이를 봐서라도 온하랑은 마음이 약해져 그와 이혼하지 않았을 수도....아이는 강남 시가 신기했는지 창문에 기대 눈을 팽글팽글 돌리며 바깥 풍경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무언가 이상한 걸 보면 속속들이 캐물었다.“우와! 저기 개구리맨이 있어요!”부시아는 저 멀리 가리키며 소리 질렀다. 부승민이 고개를 돌려봤을 때 광장 옆에서 어떤 사람이 개구리 탈을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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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화

“할머니가 얘기하는 걸 들은 적 있어요. 할머니 울기도 했어요. 내가 울지 말라고 위로해 줬고요.”“시아 잘했네.”부승민은 부시아를 칭찬했다. 할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시는 바람에 부승민조차도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어차피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못 볼 것이 뻔하니 부선월은 돌아오지도 않았다. 아마 그녀는 설이나 되어야 돌아올 것이다.“그럼 삼촌이랑 숙모는 같이 살겠네요!”부시아는 부승민을 보며 배시시 웃었다. 부승민의 안색이 굳어졌다.“시아야. 지금 삼촌이랑 숙모 같이 안 살아.”“왜요? 부부는 같이 사는 거 아니에요? 증조할아버지랑 증조할머니처럼요.”부시아의 눈에 의혹이 가득했다.“삼촌이랑 숙모가 이혼했거든. 시아는 이혼이 뭔지 알아? 그러니까 삼촌과 숙모는 더 이상 부부가 아닌 거야.”부시아의 주먹만 한 얼굴에 망연한 표정이 떠올랐다.“숙모 그렇게 예쁜데 삼촌은 왜 숙모랑 이혼한 거예요? 삼촌 혹시 다른 아줌마랑 결혼하려고 그래요?”다른 아줌마란 추서윤을 뜻했다. 그리고 추서윤은 그녀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아니야, 삼촌은 다른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은 마음 없어. 삼촌도 숙모랑 헤어지기 싫어, 숙모가 삼촌이랑 헤어지고 싶어 하는 거야.”“정말이에요?”아이는 안 믿긴다는 얼굴로 입을 뿌죽 내밀었다.“잘생긴 남자들은 다 카사노바라니까. 안 믿어요.”“...”“삼촌이 하는 말 다 진짜야.”아이는 눈을 찡그린 채 그를 바라보고는 말했다.“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요. 할머니가 다른 아줌마를 좋아하고 숙모을 안 좋아하는 거 알아요. 그리고 할머니가 삼촌이 다른 아줌마 좋아한다고 그랬어요.”어... 어떻게 해석해야 하지?“시아야, 그건 할머니가 오해하신 거야. 삼촌이 좋아하는 건 숙모야. 삼촌이 왜 널 속이겠어?”부시아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쳐다봤다. 맞아, 삼촌이 날 속일 리 없지. 부시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오, 알겠어요. 숙모가 삼촌 안 좋아하는 거구나!”아이는 작게 한숨 내쉬고는 어른처럼 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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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8화

“시아 안녕? 착하지. 얼른 와서 앉아.”할머님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리 준비한 어린이 스마트워치를 부시아에게 건넸다.“이건 증조할머니가 주는 만남 선물.”아이는 조금도 낯을 가리지 않는지 소파에 책가방을 벗어두고 할머님 옆에 착 달라붙어 앉았다. 그리고 아이는 책가방을 열면서 말했다.“고마워요, 증조할머니. 저도 증조할머니한테 드릴 선물을 준비했어요!”말과 동시에 부시아는 가방 안에서 작은 철제 함을 꺼냈다.“자, 증조할머니. 이건 제가 직접 만든 쿠키예요. 얼른 드셔보세요!”“아이고, 우리 시아 이렇게 어린데 벌써 쿠키도 만들 줄 아는 거야? 장해라!”할머님은 철제 함을 열었다. 안에는 금빛이 감도는 작은 쿠키들이 아무렇게나 놓여있었는데 모양틀로 찍어낸 걸 보아낼 수 있었다. 토끼 모양도 있었고 고양이 모양도 있었는가 하면 원형이나 숫자 1 같은 여러 가지 모양들이 있었다. 할머님은 하나를 집어 들어 입에 넣었는데 너무나도 단단해 하마터면 인공치아가 부서질 뻔했다.“너무 맛있죠?”부아가 커다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 눈은 크고 동글동글 세상 순수해 보였다. 할머님도 아이를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너무 맛있구나, 시아야. 정말 대단해. 그런데 증조할머니는 과자를 좋아하지 않아서 삼촌한테 먹어보라고 갖다주렴.”“네!”부시아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짤막한 다리를 부지런히 놀리며 철제 함을 들고 일인용 소파 앞에 뛰어와 부승민에게 건넸다.“삼촌 쿠키 드세요.”“고마워.”부승민은 쿠키를 건네받아 입에 넣었다. 씹던 그의 안색이 살짝 굳어졌지만 그는 티 내지 않고 할머님을 흘깃 쳐다봤다.할머님은 웃으면서 부시아의 로스앤 생활에 관해 묻고 있었고 부시아는 열성스레 대답하고 있었다. 부시아는 고작 네 살밖에 되지 않았어도 말주변이 좋고 사유가 민첩해 말하는 게 청산유수요, 매우 조리가 있어 많은 이들의 귀염을 받았다.할머님은 또 부시아한테 물었다.“시아야, 올 때 가방 이거 하나만 들고 왔어?”“네네.”부시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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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9화

아이는 부승민의 목을 끌어안으며 흥분에 겨워 칭찬했다.“와! 삼촌 진짜 대단해요! 정말 좋아!”“삼촌이 한 손으로 널 안아서 그래?”“네! 허웅이네 아빠가 맨날 걔를 한 손으로 안아 들었거든요! 시아는 아빠가 없어서 삼촌이 이렇게 안아주니까 아빠 같아요!”그 말을 듣고 부승민은 가슴이 아팠다. 눈앞의 이 꼬마는 겉으로 보기엔 아무 생각 없어 보여도 사실 다 알고 있었다. 이렇게 귀여운 꼬마를, 이 아이의 부모는 어찌 아이를 버리고 떠났을까. 정말 부모로서 자격도 없는 인간들이었다.그 순간, 부승민은 부시아를 입양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는 그저 온하랑과 같이 있으려는 마음뿐이었지만 어쨌든 둘 사이에 더 이상 아이가 생기기 어려우니 부시아를 입양하는 건 어쩌면 좋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저 그는 지금 쉬이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적어도 온하랑의 마음을 다시 돌린 후에 온하랑의 의견을 물어야 했으니까.두 사람은 본가에 와 점심을 먹었다. 아이는 많이 지쳤는지 졸려서 눈도 똑바로 못 뜨고 있었다. 부승민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시아야, 삼촌이 사는 데로 가자. 먼저 차에서 좀 자고 도착해서 푹 잘래?”“네.”그렇게 부승민은 시아를 데리고 더원파크힐로 돌아왔다. 차 안에서 시아는 제대로 곯아떨어졌다. 하지만 파크힐에 도착했을 때 시아는 잠에서 깨어났다. 만약 부승민이 미리 게스트룸을 치워두라 하지 않았으면 도우미는 부시아를 봤을 때 하마터면 부승민이 밖에서 데리고 온 사생아라 여길 뻔했다. 부시아는 자신이 지내게 될 방을 확인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이건 뭐예요?”부시아는 어디에서 꺼내왔는지 모르는 고양이 장난감을 들고 와서 도우미한테 물었다.“이건 고양이 장난감이에요. 고양이랑 놀아주는 거.”“고양이 장난감? 고양이? 고양이는 어디 있어요?”“고양이는 사모님한테... 그러니까 숙모한테 있어요.”부시아의 눈이 반짝였다.“저 내일 숙모한테 가서 고양이랑 놀래요!”부승민은 원래 미리 온하랑에게 얘기를 하고 방문하려 했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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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0화

“시아야.”온하랑은 미소를 띤 채 허리를 굽혀 부시아를 안았다, 그리고 애틋하게 시아의 볼을 꼬집으면서 물었다.“강남에는 무슨 일로 왔어?”부시아는 온하랑의 얼굴에 뽀뽀를 쪽 하고 턱을 세우고 말했다.“저 방학했어요. 할머니가 일이 있으셔서 저 못 돌보신대요.”부시아는 손에 들린 투명한 상자를 온하랑에게 건넸다.“숙모, 이건 숙모한테 주는 선물이에요.”부시아의 포도알 같은 눈은 테이블 밑에 숨은 송이를 떠올리게 해 온하랑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었다.“선물 고마워, 시아야. 숙모랑 올라가서 놀까?”왜인지는 몰라도 부시아를 대할 때 말 못할 친근감이 느껴졌다. 만약 그녀가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면 시아처럼 귀엽지 않았을까?부시아는 고개를 강하게 끄덕이며 말했다.“네!”“가자, 가서 놀자.”온하랑은 부시아의 손을 잡고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부승민은 자신이 먼지만도 못한 취급을 받은 거에 머쓱해져 코를 만지며 뒤에서 묵묵히 따라 들어갔다. 온하랑이 두 발짝 걷고 제자리에 멈춰서고는 고개를 돌려 부승민을 바라봤다. 부승민도 우뚝 멈춰 섰고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온하랑은 머리를 숙여 부시아한테 말했다.“시아야, 오늘은 하루 종일 숙모랑 놀까?”부시아는 부승민을 곁눈질하더니 두 식지의 끝을 부딪치며 말했다.“삼촌이랑도 놀면 안 돼요? 시아는 삼촌이랑 숙모랑 다 같이 놀고 싶어요.”부승민은 고개를 들어 기대가 가득 담긴 눈으로 온하랑을 쳐다봤다.“하랑아...”온하랑은 허리를 굽히고 부시아한테 해석했다.“시아야, 삼촌이랑 숙모는 이미 이혼했어. 삼촌은 이후에 자기만의 가정이 있게 될 거야. 그래서 삼촌은 숙모랑 같이 있으면 안 돼. 안 그러면 시아 새 숙모가 기분이 안 좋을 거야.”부승민이 뭔가를 설명하려는 때 온하랑이 그를 째려봤다. 그런데 누가 부시아가 이런 말을 할 줄 알았겠는가.“삼촌, 진짜 새 숙모 데려올 거예요? 숙모는 삼촌이 애지중지 여기는 귀염둥이고 삼촌은 평생 숙모 한 사람만 좋아할 거라면서요? 다 거짓말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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