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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로운 제안의 모든 챕터: 챕터 371 - 챕터 380

1272 챕터

제371화

등대에서 돌아와 숲속 캠핑장에 도착하니 가이드는 이미 다른 관광객들과 함께 한쪽에 자리를 내고 모닥불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온하랑과 김시연은 따로 챙겨온 도시락을 꺼냈다. 반찬은 간단하게 스팸구이와 불고기로만 이루어져 있었지만 열악한 야외조건에서 이 정도면 정말 만족스러운 한 끼 식사였다.허명진은 가이드를 도와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고 있었다.“아가씨들, 커피 드세요.”그는 두 잔의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들고 오더니 김시연과 온하랑에게 건네며 말했다.“더 필요하면 저쪽 가서 받아요.”“네, 감사합니다.”온하랑은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가볍게 한모금 마시고는 바닥에 내려놓았다.그 모습을 보던 허명진의 눈빛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평소 신경이 쇠약한 탓에 장천수는 집을 나서기 전 꼭 수면제를 챙기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여행을 온 지금은 수면제를 먹지 않아도 잠이 잘 왔다. 장천수는 수면제를 괜히 챙겨 짐만 더 만든 듯한 기분이라며 불평했다.어쨌든 도움은 된 거 아닌가?저녁 식사를 마친 후 온하랑은 조금 전 받았던 커피잔을 손에 들고 다시 한 모급 들이켰다.가이드는 차에서 몇 병의 맥주병을 꺼내더니 모닥불 근처에 앉아읶던 관광객들에게 물었다.“여기 맥주도 있는데, 마실래요?”맥주를 마시겠다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알다. 기껏해야 대여섯명 정도만 가이드의 말에 대답을 했다.가이드는 그들에게 맥주 한 병씩 건넨 뒤, 또다시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다들 한 잔씩 안 하실 거에요? 이 달빛에 이 야경인데도요? 이런 기회 흔치 않아요. 맥주 한 병이 무슨 술입니까, 그냥 음료수죠. 마셔도 안 취해요.”가이드의 말이 끝나자 또 몇 명의 사람들이 너도나도 한 병씩 달라며 입을 열었다. 그 중에는 김시연도 포함이었다. 그녀는 맥주 두 병을 받아와 한 병은 온하랑에게 던져주며 말했다.“이런 기회 흔한 거 아니에요, 한 잔 하죠?”맥주병을 받아든 온하랑은 병마개를 돌려땄다.이국 땅의 야외에서, 익숙한 얼굴의 이방인들이 함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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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2화

온하랑이 깊은 잠에 빠진 것을 확인한 허명진은 조심스레 손을 뻗어 온하랑의 옷을 벗겨냈다.그도 이런 짓은 처음이었다. 허명진의 두 손은 쉴 새 없이 떨려왔다.“더워…”온하랑이 낮게 중얼거리며 손을 들어 이마 위를 쓱 훑었다. 하지만 이마에는 땀이라고는 맺혀있지 않았다.몸속의 열기를 배출해내지 못하니 온하랑은 그야말로 불편해 죽을 맛이었다.온하랑의 반응에 허명진은 혹시라도 그녀가 깨어날까 두려워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약효가 돌기 시작한 걸까?아포르만 근처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번화한 작은 마을이 있었다. 커플들이 여행으로 많이 찾는 곳이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해외의 오픈마인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마을에는 큰 성인용품점이 있었다. 허명진은 바로 등대에서 돌아오던 도중 그 가게에 들렸다.온하랑이 이마에 올려두었던 손을 거두던 와중에 무의식적으로 허명진의 팔을 스쳤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몸에 차디찬 공기가 맞닿았다.그녀는 이미 어지러운 머리 때문에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온하랑은 저도 모르게 조금 전, 자신을 스쳤던 그 차가운 공기의 출처를 찾기 위해 손을 뻗었다.그런 온하랑을 확인한 허명진은 조심스레 자신의 손을 내뻗었다.허명진의 손을 잡은 온하랑은 본능적으로 그 손을 자신의 얼굴에 갖다 대고는 달아오른 몸을 식히려 했다.허명진의 얼굴이 화색이 돌더니 갑자기 용기가 생긴 듯 작게 속삭였다.“아가씨, 너무 급해 하지 마. 조금만 기다리면 바로 해줄 테니까.”그가 온하랑의 옷을 계속 벗기기 위해 손을 움직이려 하던 그때였다. 순간 텐트 밖에서 의문의 발소리가 들려 왔다.허명진은 깜짝 놀라며 순간적으로 숨을 참았다.설마 김시연이 돌아온 건가?어떡하지? 어떡하지?그는 재빨리 자리에 누워 눈을 감고는 텐트를 잘못 찾아온 척 위장했다.만약 그저 지나가는 사람이었으면 가장 좋았겠지만 이 장면을 발견한 사람이 김시연이어도 둘러대기 가장 좋은 핑계였다.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텐트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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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3화

그 소식에 허명진은 완전히 잠에서 깼다.그럼 온하랑을 텐트 밖으로 데리고 나갔던 사람이 김시연이 아니었다는 소리야?허명진의 마음속은 괴롭기 그지없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온하랑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 줄이야!그 늦은 시각에 온하랑의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부터 절대 좋은 마음을 품고 들어온 것은 아닐 터였다. 어쩌면 허명진과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이었을 지도 모른다.허명진이 한 모든 것들이 다 남 좋은 일만 한 게 되어버렸다.만약 허명진이 그 사람을 막아섰다면, 자신이 먹였던 약까지 그 사람이 한 짓이라고 누명을 씌워버리면 허명진에게 감동한 온하랑이 허명진과 함께 미래를 그려나갈 결정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좋은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에 허명진은 깊은 후회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가이드는 활짝 열린 지퍼 속으로 텅 빈 텐트 안을 둘러보더니 물었다.“휴대폰은 챙겼나요?”“아니요!”온하랑의 휴대전화는 여전히 텐트 안에 고이 놓여 있었다.“숲속에 있는 화장실로 간 건 아닐까요?”가이드가 추측했다.운전기사 몇 명도 다가와 사건에 관심을 보였다.한 아저씨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우선 너무 불안해하지는 말고요. 여기서 기다려보죠. 10분 정도만 기다려보고 그래도 안 오면 본격적으로 찾아보도록 하죠.”그 순간, 허명진이 걸어와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휴대폰도 여기 있는데, 화장실 갔다가 텐트 잘못 찾아간 거 아닐까요?”온하랑을 데리고 간 사람은 분명 패키지여행에 참여한 관광객 중 한 명일 것이다. 허명진이 조금 전 대충 인원수를 체크해 보았을 때 있을 만한 사람들은 자리에 있었다. 그렇다면 온하랑은 지금쯤 누군가에 의해 다른 텐트에 숨겨져 있을 것이다.허명진의 말에 가이드가 말했다.“정말 텐트를 잘못 찾아간 것일 수도 있으니 우선 텐트부터 찾아보죠.”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흩어져 자신들의 텐트를 살피기 시작했다. 한 바퀴 쭉 둘러보았지만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온하랑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의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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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4화

바닷가에는 관광객들이 아주 많았다. 바닷가의 마을마다 관광객 센터들이 하나씩 들어서 있었다.아포르만의 관광객 센터는 그들이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빠르게 현장에 도착했다....한편, 헬기에 올라탄 온하랑은 부승민의 품속에 연체동물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더워...”그녀는 작게 중얼거리며 한 손을 부승민의 셔츠 속으로 집어넣더니 그의 단단한 근육을 매만졌다.‘응... 좋아... 근데 아직 부족해.’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부승민의 셔츠를 잡아당기더니 목덜미 쪽의 단추 두 개를 풀어헤치고는 그 맨몸 위로 얼굴을 갖다 댔다.그렇게 마음속으로 그리워 마지않던 사람이 자신의 품속에서 아리따운 몸매를 이리저리 흔드는 것을 바라보는 부승민은 몸속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흑심을 참기가 힘에 부쳤다. 지금 당장이라도 온하랑의 욕구를 풀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하지만 어젯밤 온하랑의 눈물 어린 원망을 떠올리자 의식도 없는 그녀를 상대로 감히 어떤 짓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부승민은 자신이 온하랑을 다치게 할까 봐 두려웠고 그녀가 자신을 원망할까 두려웠다.조금 전, 텐트 속의 그 장면을 목격했을 때도 부승민은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분노를 느꼈다. 만약 약에 취한 온하랑이 정신을 놓은 채 자신의 욕구를 이기지 못했다면 부승민은 그 자리에서 허명진을 찢어 죽여버렸을지도 모른다.조금 염치는 없지만 부승민이 온하랑을 계속 따라다녔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온하랑의 손이 또다시 부승민의 몸 이리저리를 만져댔다.부승민의 것이 또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부승민은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참아내기 위해 온몸에 힘을 주었다. 피어오르는 욕구를 억누르던 부승민의 이마에 핏줄이 곤두서더니 인내를 위한 감정이 그의 눈빛을 스쳐 지나갔다. 부승민은 온하랑의 팔을 잡고는 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말했다.“하랑아, 착하지. 조금만 있으면 병원 도착이야.”부승민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었다.온하랑의 새하얗고 고운 손이 부승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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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5화

“응...”온하랑은 눈을 감고 두 손으로 참기 힘들다는 듯 부승민의 목덜미를 잡아 열정적으로 부승민을 받아냈다.둘의 타액이 뒤섞이더니 부승민의 입술이 천천히 온하랑에게서 멀어졌다. 둘 사이에 투명한 실이 늘어지다가 끊겼다.그는 인내심 어린 표정으로 눈썹을 낮게 내리깐 채 온하랑의 표정을 자세히 살펴보며 손의 리듬을 조절했다.온하랑은 실눈을 뜬 채 풀린 눈으로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과 불그스름한 입술을 달싹이며 야릇한 신음을 내뱉었다.부승민의 손이 온하랑의 입술 위에 포개져 아직 채 내뱉지 못한 그녀의 신음을 막았다.온하랑의 어여쁜 미간에 주름이 졌다.그녀는 눈을 감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참기 힘든 듯한 낮은 신음을 내었다.그 순간, 온하랑의 몸에 힘이 들어가더니 두 눈을 꼭 감았다. 쾌락의 절정에 다다른 그녀의 얼굴은 놀랍도록 아름다웠다. 온몸에 힘이 빠진 그녀는 부승민의 목을 끌어안고 있던 팔에도 힘이 풀려 바닥으로 떨어질 뻔했다.부승민은 바닥으로 고꾸라지려는 그녀를 재빨리 붙잡고 온하랑의 몸속을 헤집고 있던 자신의 손가락을 빼내 그 위에 묻어 있던 그녀의 애액을 온하랑의 치마에 대충 닦아냈다. 부승민은 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온하랑에게 물었다.“하랑아, 좀 괜찮아졌어?”부승민의 가슴팍에 축 늘어진 채 누워있던 온하랑은 두 눈을 꼭 감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잠에 든 모양이다.잠이 든 모습을 보아하니 조금 전보다는 확실히 나아진 듯싶었다.부승민은 온하랑이 조금이라도 더 편한 자세로 잘 수 있게 그녀의 허리를 받쳐주었다.헬기가 절룽 병원 근처 옥상에 착륙하자 부승민은 온하랑의 옷매무시를 대충 정리해 주고는 그녀를 품에 안고 병원으로 들어갔다.온하랑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이튿날 아침이 밝았을 때였다.밝은 햇볕이 그녀가 베고 있던 베개를 비추었다.밝은 빛에 눈을 뜬 온하랑의 눈에 하얀 천장이 들어왔다.창밖으로는 청아한 새소리가 들려오며 생기 넘치는 아침을 알렸다.그녀는 자신이 누워있던 방 구조를 둘러보며 이곳이 어디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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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6화

온하랑은 고개를 돌려 뒤로 물러서기는커녕 부승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나 그 사람 좋아해. 젊고 잘 생겼잖아. 누나 누나 거리면서 쫓아 오는 것도 귀엽고... 같이 있으면 젊어지는 기분이야.”“그래서 지금 내가 헛수고를 했다는 거지? 너 좋을 뻔했던 일인데 내가 망쳤다는 거야?”부승민은 분노를 억누르며 간신히 잇새로 말을 내뱉었다.“글쎄, 딱히 그런 것도 아니야. 나중에 정식으로 약속 잡으면 되니까. 다만 내가 얘기해주고 싶은 건, 네가 지금 날 위한다고 생각하는 그 모든 행동이 사실은 다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라는 거야. 넌 네가 날 구했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나한테는 별일 아니었다는 거야. 그러니까 제발 더는 나 쫓아 오지 마, 알겠어?”나중에 정식으로 약속 잡는다는 말에 부승민은 피가 거꾸로 솟는듯한 기분이 들었다.사실 별일 아니었다고?부승민을 떼어놓기 위해 온하랑은 “제발”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말을 꺼냈다.부승민은 이를 악물고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내뱉었다.“온하랑! 너 이런 사람 아니었잖아! 김시연이랑 같이 여행 간다고 했을 때부터 보내는 게 아니었어. 그새 안 좋은 것만 배워선.”부승민이 김시연을 공격하자 온하랑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부승민을 쏘아보며 말했다.“나 원래 이런 사람이야, 몰랐어? 나 교환 갔을 땐 지금보다 더 막 놀았던 사람이야.”“입 다물어!“부승민은 분노에 가득 찬 나머지 눈시울까지 붉어졌다. 그의 머릿속에는 전에 보았던 온하랑의 병원 기록과 조사 결과들이 떠올랐다.유학생들이 해외에서 문란하게 변하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온하랑의 말이 끝나자 부승민은 순간적으로 그 아이가 온하랑이 교환학생으로 해외에 있던 때 몰래 가진 아이라는 의심이 피어올랐다. 그녀의 자궁벽도 여러 번의 유산을 거쳐 그렇게 손상된 것이 아니었을까?부승민은 몸을 일으켜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나 온하랑을 내려다보았다.“이렇게까지 얘기하는 이유가 혹시 날 떼어놓기 위해서인 거니? 다시 한번 물을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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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7화

온하랑은 김시연에게 연락했다.김시연이 전한 데 따르면 텐트에서 허명진의 지문이 발견됐고 가이드와 많은 관광객이 허명진이 온하랑의 컵에 손을 대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장천수 역시 자신의 수면제 한 알이 사라졌다는 증언을 했고 마을 성인용품점의 점주도 증언해 준 덕에 허명진은 체포되었다.하지만 가장 아쉬웠던 점은 바닷가에서의 이틀을 통째로 날려버렸다는 것이다. 그녀들을 포함한 많은 관광객은 아포르만에서 출발해 헬기를 타고 캥거루를 만날 기회를 놓쳐버렸다.오직 시간이 넉넉한 몇몇 관광객들만이 무료로 가이드와 함께 다음 패키지여행을 함께 할 수 있었다.다음 패키지여행을 함께 할 수 없게 된 관광객들에게 가이드는 절반 정도의 비용을 돌려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게 가이드가 관광객들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이었을 지도 모른다.김시연이 온하랑의 의견을 묻자 온하랑이 되물었다.“다음 패키지가 언제인데요?”“3일 뒤요.”“그럼 우린 다음 패키지로 따라가죠.”“알겠어요, 그럼 제가 가이드한테 따로 얘기해 놓을게요.”남은 3일 동안 온하랑과 김시연은 케인스로 가서 배를 타고 대부초로 간 다음 헬기 관광도 하고 바다로 나가 스노클링까지 하며 대부초의 아름다움과 낭만을 제대로 즐겼다.지독하게 따라붙던 누군가의 시선도 느껴지지 않았다.부승민이 정말 떠났다.온하랑은 굳이 그를 떠올리지 않기로 했다.그 시간 동안 김시연은 하루에도 몇 번이고 그날 저녁 부승민과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물어보려 시도했지만 매번 온하랑에 의해 가로막혔다.김시연이 낮게 중얼거렸다.“갑자기 드는 생각인데 부승민 씨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온하랑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바람피운 건 사실이니까, 그건 부승민 씨 잘못이 맞죠!”“...”케인스를 떠나 온하랑과 김시연은 다시 절룽으로 돌아와 패키지여행을 시작했다.3일 후, 그녀들은 실버코스트에서 시테니로 돌아와 1월 1일 연휴가 끝나던 날 귀국을 준비했다.그녀들이 예매한 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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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8화

한 달 넘도록 돌아오지 않은 탓에 방 이곳저곳에는 먼지가 내려앉았다. 주방의 조리 기구들도 다 설거지가 필요해 보였다.하지만 지금 두 사람에게는 그럴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소파에 한참을 누워 쉬던 김시연이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물었다.“뭐 좀 먹을래요?”온하랑은 김시연이 배달을 시키리라는 것을 직감하고 입맛을 다시며 함께 배달 앱을 켰다.“전 오리고기 시킬래요.”“그럼 전 치킨 시킵니다... 치느님은 언제나 옳으니까요.”“...”두 사람이 시킨 배달 음식이 순서대로 도착했다.연휴 전에 개봉했던 국내 영화들이 이미 오티티 어플에 들어와 있었다.마침 김시연의 저택에는 작은 영화 상영실이 있었다.두 사람은 배달 음식을 들고 영화 상영실 안으로 들어가 영화를 보며 배달음식을 먹었다.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다른 누군가의 시선은 의식하지 않은 채 소파 위에 아무렇게나 누워 영화를 감상했다.온하랑이 갑자기 다리를 꼬더니 말했다.“너무 좋은데요. 저도 이런 저택 하나 사서 시원하게 혼자 살고 싶네요.”그녀는 김시연의 저택에 계속 머물 생각도 없었고 그렇다고 더원파크힐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 스스로 집을 마련해 혼자 사는 것밖에는 없었다.김시연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제가 여기 절반을 팔게요. 그리고 같이 사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말을 마치자 김시연은 정말 가능성이 보였는지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동쪽에 있는 저쪽 침실 드릴게요. 다른 건 차차 같이 생각해 봅시다. 영화 상영실이랑 헬스장, 주방 같은 공용구역은 같이 쓰고요. 두 명이니까 룸메이트로도 딱 맞네요!”김시연은 온하랑이 이곳에서 사는 것에 전혀 불만이 없었다. 다만 돈을 안 받는다면 온하랑이 자신의 제안을 거절할 것 같아서 해본 말이었다.온하랑이 잠시 고민하더니 물었다.“고양이 키워도 괜찮겠어요?”“괜찮아요! 우리 같이 키워요!”“오케이!”온하랑은 망설임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얼마면 될까요?”“깔끔하게 2억만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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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9화

온하랑의 차가 더원파크힐로 향했다.근처 도로까지 진입하자 그녀의 운전 속도는 현저하게 느려졌다.어딘가 모르게 고향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온하랑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다.차가 더원파크힐 대문에 멈춰 섰다.다행히 그녀의 차가 아직 경비실 시스템에 입력되어 있던 상태라 대문을 가로막고 있던 펜스가 서서히 위로 올라갔다. 그녀는 악셀을 힘껏 밟아 안으로 들어선 뒤 자신이 살던 별장 앞에 차를 주차했다.마당 청소를 하고 있던 아주머니가 밖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엔진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온하랑을 마주치자마자 반갑게 달려와 맞이했다.“사모님, 이제 돌아오신 거예요?”온하랑이 옅은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아주머니, 저 이미 그이랑 이혼까지 했잖아요. 더는 사모님이라고 부르실 필요 없어요. 오늘은 송이 데리러 온 거예요.”아주머니가 안타까운 듯 “아이고” 하는 탄식을 내뱉더니 답했다.“아가씨, 송이 지금 여기 없어요.”온하랑이 크게 놀라며 물었다“송이가 여기 없다고요?”“네.”아주머니가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다 제 탓이에요. 애가 면역력이 너무 약했던 건지 아니면 정원이 너무 습했던 건지 애한테 염증이 생긴 모양이에요. 피부에 자꾸 뭐가 돋더라고... 그래서 대표님께서 송이 동물병원에 입원시키셨어요.”간단한 염증이라면 생명에 위험한 병은 아니었다. 다만 염증 부위의 털이 계속 빠질 것이다. 심할 경우에는 온몸의 털이 다 빠질 수도 있고 완치에도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더 심할 땐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을 수도 있다. 게다가 송이 같은 작은 종의 고양이들은 약물복용으로 간에 무리를 줄 수도 있었다.온하랑이 가슴을 부여잡으며 말했다.“그럼 송이가 어느 동물병원으로 갔는지는 아세요?”“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아주머니가 미안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대표님께서 어느 병원으로 가신다는 것까지는 얘기 안 해주셔서요.”아주머니가 말을 이었다.“대표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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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0화

수화기 너머의 연민우는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대표님? 지금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그럼 이렇게 하는 걸로 하고 먼저 끊겠습니다.”부승민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전화를 끊었다. 휴대전화를 책상에 다시 올려놓은 부승민은 여전히 온하랑의 얼굴에서 시선을 옮기지 않았다. 그 눈빛은 그녀의 작은 표정 변화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집요했다.연민우의 머릿속에는 물음표 3개가 띄워져 있었다.‘지금 사는 저택을 팔 생각인 건가?’온하랑은 조용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보아하니 부승민은 이미 생각 정리가 완전히 끝난 모양이었다. 3년간의 결혼생활이 이렇게 막을 내렸다.부승민은 이제 추서윤과 혼인신고를 할 것이다.마침 온하랑이 원했던 결말이지 않나?그녀도 이 별장을 팔아버리고 싶어 하지 않았나?하지만 왜인지 이 소식을 들은 그녀의 마음은 어딘가 텅 비어버린 듯 공허했다.아마 적응이 덜 되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천천히 괜찮아질 것이다.겨우 마음을 가라앉힌 온하랑이 물었다.“이 집, 팔 거야?”부승민이 진지한 표정으로 온하랑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럴 계획이야.”“그래도 나쁘진 않겠다. 이미 이혼까지 한 마당에 남겨봤자 무슨 소용이겠어.”온하랑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맞다, 방금 무슨 말 하려고 불러 세운 거야?”온하랑의 침착한 태도에 부승민은 속에서부터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의 눈빛이 점점 험악하게 돌변하더니 생각도 거치지 않은 말들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오주는 어땠어? 허명진이 잘 해줬나 봐?”온하랑의 낯빛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말했다.“꼭 이 말을 해야겠어? 그래 관심 가져줘서 고맙네. 역시 젊은 사람 아니랄까 봐 체력 장난 아니더라. 너무 좋았어, 나는!”부승민이 어두운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더니 천천히 온하랑에게 걸어갔다. 그는 이를 악물고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얘기했다.“너, 무, 좋, 았, 어?”“어.”온하랑이 평온한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이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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