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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1화

“오늘 내가 안 왔으면 오후에 어디 갈 생각이었어?”이주혁은 웨이터가 건네는 음식을 가져와 테이블 가장자리에 놓았다.“유람선 탈 생각이었어. 배에서 오페라 극장과 하버 브리지를 촬영하면 더 예쁘다고 들어서.”온하랑은 생선구이 한 점을 집어 등뼈를 발라냈다. 입에 넣으니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웠다.“그럼 유람선 타러 가자. 난 다 괜찮아.”이주혁은 온하랑의 빈 잔을 바라보며 물었다.“사이다 더 마실래? 내가 가져다줄게.”“그래.” 온하랑은 팽이버섯 두 조각을 한입에 넣었다.“자.” 이주혁은 컵을 온하랑 앞에 다시 놓고 자리에 앉았다.“고마워.”“며칠 동안 시테니는 거의 다 돌았지? 다음엔 어디로 가?”“사실 내일 밀버른에 가려고 했는데, 넌 오늘 와서 시테니도 못 돌아다녔잖아.”“괜찮아. 나 예전에 촬영할 때 시테니에 와서 재미있게 놀았어. 내일 바로 밀버른으로 가자.”이주혁이 말했다.“그래 그럼.”건너편 카페에 있던 부승민은 온하랑 옆에 앉아 이따금 온하랑에게 음료를 가져다주고, 음식을 집어주는 이주혁을 보며 화가 났다.원래 저 자리는 그의 것이어야 했다!식사를 했던 중식당이 부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산책을 하기로 했다.이주혁은 주동적으로 온하랑과 김시연의 가방을 들어주었다.가는 길에 그들은 입구 앞에 파라솔 몇 개가 설치되어 있고 그 아래에 동그란 의자가 놓여 있는 카페를 지나쳤다.이주혁이 말했다.“여기서 잠깐 기다릴래? 내가 커피 사줄게.”배 위에서 풍경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면 얼마나 좋을까.김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온하랑을 끌어와 의자에 앉혔다.“그럼 부탁 좀 할게요. 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난 아이스 라떼, 얼음 많이 넣어서.”“알겠습니다. 두 분은 여기서 잠시 기다리세요. 저는 가서 줄을 서겠습니다.”이주혁은 커피숍으로 들어갔다.여자 가방 두 개를 몸에 걸치고 여자들 사이에서 줄을 서 있는 이주혁의 뒷모습에 김시연은 온하랑에게 웃으며 말했다.“서비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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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2화

저 이주혁은 아주 음흉한 놈이다!“하랑 씨, 웃으면서 포즈 좀 취해봐요.”온하랑은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은 채 얼굴 옆으로 브이를 하는 단조로운 포즈를 취했다.“오케이! 다 찍었어요. 어떤지 볼래요?”김시연이 휴대폰을 흔들자 온하랑과 이주혁이 함께 모여들었다.사진 속 여자는 부드러운 인상에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차분한 분위기를 풍겼고, 남자는 잘생긴 외모에 맑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가지런하고 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있었다.뒤로는 청록색의 푸른 바다가, 저 멀리 왼쪽에는 화려한 시테니 극장이, 오른쪽에는 웅장한 하버 브리지가 펼쳐져 있었다.인물과 풍경이 서로 너무 잘 어우러져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이주혁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 아주 잘 찍었네요. 사진 찍을래요? 내가 찍어줄게요.”“좋아요!” 김시연이 온하랑을 난간으로 끌어당겨 포즈를 취했다.온하랑과 이주혁에 비해 김시연과 온하랑의 포즈가 더 다양했는데 주로는 김시연이 온하랑의 허리를 감쌌다가, 그녀의 어깨에 누웠다가, 입술을 내밀고 볼에 뽀뽀하는 등 다양한 포즈를 취했고, 온하랑은 그에 맞춰 표정만 지으면 그만이었다.온하랑 옆에 있는 사람이 김시연으로 바뀌자 그제야 부승민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해 다시 먹구름으로 뒤덮였다.사진을 찍고 난 뒤 온하랑과 김시연은 휴대폰을 둘러싸고 모여들었다.이주혁과 온하랑은 머리가 거의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분명 이주혁이 의도한 게 틀림없었다!이주혁이 투어에 합류한 이후부터 부승민의 얼굴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원래 저긴 그의 자리인데.온하랑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고 상상해 본다. 그녀와 함께 갑판 위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경치를 감상하고 또 그녀를 위해 사진을 찍어주는 건 얼마나 로맨틱한 일인가.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함께 여행을 간 적이 없었다. 혼인신고를 마치고 할아버지가 신혼여행을 다녀오라고 했지만 그가 거절했었다.얼마 전 연휴에도 그는 일하느라 바빠서 여행은커녕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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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3화

다음날 온하랑 일행은 밀버른행 비행기를 탔다.저녁까지 놀다가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식사를 하고 있을 때, 이주혁은 담당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이주혁, 여행 계획은 물 건너갔어. 이틀 뒤면 썸머타임 촬영 시작하니까 빨리 귀국해.]이 메시지를 본 이주혁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그는 자신의 눈을 비비며 잘못 본 게 아닌지 거듭 확인했다.[형, 농담하는 거지? 썸머타임은 다음 해 촬영 들어가잖아.][방금 단톡방에서 시간 앞당겨졌다는 통보를 받았어.]이주혁은 전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 이렇게 갑자기?][나도 잘 몰라. 전에 얘기 들은 적도 없고. 매니저 시켜서 티켓 끊어놓을 테니까 내일 당장 들어와. 오프닝 때 얼굴 안 비추면 기자들 또 이리저리 추측한다.]내일 다시 돌아간다는 생각에 이주혁은 속이 다 무너져 내려서는 조심스럽게 물었다.[나 좀 쉬면 안 돼?][될 것 같아?]다른 조연이라면 며칠 뒤에 합류해도 되지만 이주혁은 남자 주인공 역할을 맡고 있었고, 더군다나 요즘 그에게 대본이 없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라 다른 스태프들도 이주혁의 시간을 다 파악해서 요즘 일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이주혁은 괴로운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어찌 되었든 속이 상했다.아직 여행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끝나버렸다!이 모습을 본 온하랑은 입에 있던 음식을 삼키고 물었다.“주혁아,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이주혁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의자 등받이에 힘없이 기댄 채 두 손은 갈 곳을 잃었다. 촬영 앞당긴 사람을 죽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무슨 일이에요?” 김시연도 물었다.이주혁은 슬픔에 가득 잠긴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내일 다시 돌아가야 해요.”“무슨 일이야? 대본 없다고 하지 않았어?”온하랑은 고기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고소하면서도 연한 살은 느끼하지도 않아서 너무 맛있었다.“대본이 하나 있었는데, 다음 해 연초에 시작한다 하고 왜 갑자기 앞당겨졌는지 모르겠어.”말을 하며 이주혁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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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4화

온하랑은 걸음을 멈추었다.“아니면 그냥 여기까지 배웅해 줄게. 바로 저기 체크인 데스크니까 굳이 따라가지 않을게.”이주혁은 시계를 흘깃 쳐다보고는 아쉬운 듯 말했다.“그래, 이만 돌아가 봐. 괜히 여행하는 데 방해되겠다. 귀국하면 또 보자.”온하랑이 뭐라 말하려는데 멀리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이주혁이다!”말이 떨어지자마자 뒤에서 무수히 많은 발소리가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온하랑이 고개를 돌리는데 순식간에 개미 떼처럼 밀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미처 반응할 겨를도 없이 그대로 사람들 틈에 끼어버렸다.수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지나치며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었다.흥분한 누군가 강한 힘으로 온하랑과 부딪혔고 온하랑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놀란 비명 소리도 소음에 잠식된 채 곧바로 누군가 그녀의 다리를 밟았다.무수히 많은 발과 다리가 그녀를 지나쳤고, 누군가는 실수로 밟기도 하고 발로 차기도 했다.온하랑의 비명소리는 묻혀버렸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일어나려고 하는데 그녀의 등이 밟혔다.귀 가까이 다가온 하이힐은 하마터면 그녀의 머리까지 밟을 뻔했다.온하랑은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몸을 보호하며 사람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바닥의 공기는 희박했고 온하랑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머리가 어지러웠다.그러다 누군가 머리를 발로 찼고, 넘어진 그 사람은 온하랑을 발로 차며 욕설을 퍼부었다.“미친 거 아니야, 왜 바닥에 누워서 이래!”온하랑은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눈앞에 별이 보이는 것 같았다.기절하려는 순간 갑자기 따뜻하고 넓은 품에 안겼다.온하랑은 공중에 들려 누군가에게 안긴 채 사람들을 지나쳤다.이 순간 온하랑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속으로 안도했다.코끝에 익숙한 향기가 느껴져도 온하랑은 환각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그녀의 귀에서 무시할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여기 사람이 다쳤어요! 비켜요!”이 목소리, 왜 이렇게 익숙하지?온하랑이 고개를 들자 부승민의 차가운 얼굴이 보였다.반쯤 얼굴에 햇빛을 받은 그는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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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5화

부승민은 온하랑을 데리고 병원에 검사받으러 갔다.가는 길에 온하랑은 김시연에게 문자를 보냈다.[시연 씨, 괜찮아요? 난 사람들한테 밟혀서 지금 병원에 가요. 먼저 호텔로 돌아가서 기다려요.]김시연이 겨우 살았다는 이모티콘을 보냈다.[난 괜찮아요.][세상에, 사생들이 무슨 사이비 종교 같아요!][많이 다쳤어요?][심하게 다치진 않았어요. 걱정 마요.][혼자 병원에 간 거예요? 어디에요, 내가 갈게요.]온하랑은 옆에 운전석에 앉은 부승민을 흘끗 쳐다보았다.[나 지금 공항 나왔으니까 호텔로 돌아가서 기다려요.]몇 초 후, 김시연이 갑자기 답장을 보냈다.[하랑 씨, 저 아까 부승민 씨 본 것 같아요!]온하랑은 순간 심장이 살짝 철렁했다. 괜히 옆에 있는 부승민을 힐끗 보면서 현애인에게 전 애인 만나다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잘못 본 거겠죠. 그 사람이 왜 여기 있겠어요.]메시지가 전송된 후 온하랑은 멍한 표정으로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마음이 조마조마했다.[내가 잘못 본 것 같아요. 이 얘기는 그만 해요. 버스 왔어요. 호텔에서 기다릴게요.][그래요.]온하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검사 결과는 온하랑은 가벼운 뇌진탕으로 이틀 정도 쉬면 괜찮다고 했다.그 외에도 온하랑의 몸에는 푸른 멍이 들어 의사는 울혈을 없애주는 연고를 처방했다.부승민은 손에 연고를 든 채 온하랑에게 말했다.“가자, 내가 호텔로 데려다줄게.”온하랑이 몇 번이고 손에 든 연고를 쳐다봤지만, 부승민은 모른 척 연고를 주머니에 넣었다.그리하여 온하랑은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말했다.“연고 줘, 나 혼자 갈 거야.”부승민은 아니꼬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왜 사서 고생을 하지?”온하랑은 찔리는 게 있는 듯 눈을 피하며 일부러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검사했는데 아무 이상 없잖아. 나 혼자서 호텔로 돌아갈 수 있어. 네가 날 데려다주면 시연 씨가 볼 거야.”“보면 안 돼? 뭐가 부끄러워?”“네가 부끄러워.”부승민은 웃었다.“그럼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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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6화

부승민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온하랑의 손에서 연고를 빼앗아 소파로 걸어가 앉더니 연고를 열었다.“약만 발라주고 갈게.”온하랑은 이마를 짚었다.“...”“나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으면 계속 꾸물거려도 돼.” 부승민이 이렇게 말하자 온하랑은 두 눈을 부릅뜨며 칼날처럼 예리하게 그를 노려보았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면봉 한 통을 가져와 탁자 위에 올려놓고 부승민 옆에 앉아 치맛자락을 무릎까지 끌어올렸다.하얗고 매끈했던 종아리는 보라색 멍 자국으로 뒤덮여 있었고, 하이힐 굽에 밟힌 듯 자국이 남고 가장자리 피부가 찢어진 상처까지 있었다.부승민의 깊은 눈동자는 왠지 모를 감정에 젖어 있었고, 그의 큰 손은 온하랑의 멍든 종아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아파?”솔직히 꾹 누르지만 않으면 아프지 않았다.그러나 부승민의 손길이 너무 가벼워서 깃털이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고, 간지러운 느낌에 온하랑은 닭살이 돋았다.“약 바를 거면 빨리 해!”부승민은 굳어진 표정으로 면봉에 연고를 짜서 멍든 곳을 눌렀다.“꺄악.”온하랑이 찬 공기를 훅 들이마시며 불현듯 통증이 밀려왔다.“부승민, 좀 살살 해줄 수는 없어?”“미안. 빨리 하라길래 힘 조절을 못 했네.”부승민은 느긋하게 다시 약을 짰다.온하랑은 화가 나서 그를 또 노려보았다.이 망할 부승민, 일부러 그런 게 분명하다!피부에 닿은 연고의 시원한 촉감에 한결 편안해졌다.온하랑이 시선을 돌리자 부승민의 진지한 얼굴이 보였다. 그는 진지한 눈빛으로 집중하고 있었는데, 마치 중요한 일을 처리하는 것 같았다.온하랑의 시야엔 부승민의 길고 풍성한 속눈썹과, 높은 콧대, 뚜렷한 얼굴 윤곽이 한눈에 보였다.부승민이 갑자기 고개를 들자 온하랑은 그와 두 눈이 마주쳤다.온하랑은 황급히 눈을 피하며 아무 생각 없이 다른 곳을 보는 척했다.“다리는 다 됐어. 등 외에 다친 곳 없어?” 부승민의 입꼬리가 호를 그리며 올라갔다.“없어.”“그럼 소파에 엎드려봐.”온하랑은 소파에 엎드리다가 무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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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7화

“내가 구해줬는데 고맙다는 말만 하고 쫓아내다니. 하랑아, 정말 이런 식으로 나올 거야?”온하랑은 어이가 없어 몇 초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내가 이런 식이면 뭐, 너도 약속 안 지켰잖아. 앞으로 더 이상 안 따라다니겠다고 약속했으면서. 출장 왔다가 우연히 공항에 왔다는 말은 하지 마.”“내가 너 안 따라다녔으면 얼마나 더 다쳤을지 몰라. 지갑을 잃어버리지 않나, 다치지를 않나. 이런데 내가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우리 이미 이혼했잖아, 내 일은 너랑 상관없어. 그냥 무시해.”“너...”부승민의 표정이 굳어지며 눈가가 어두워졌다.온하랑은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며 무의식적으로 한 발짝 물러섰다.부승민은 한 걸음 더 다가가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한 말, 다시 말해 봐!”온하랑은 두 눈을 깜박이며 한 발짝 물러섰다.“우린 이미 이혼했고, 내 일은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니 그냥 무시하라고.”목소리가 떨리는 걸 보아 충분한 용기는 없는 것 같았다.부승민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지며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온하랑은 뒤로 가고 싶었지만 벽에 다다라 물러설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는 마치 작은 메추라기처럼 조금씩 옆으로 움직였다.부승민의 큰 손이 온하랑의 턱을 그러쥐며 고개를 숙여 키스를 했다.눈앞의 잘생긴 얼굴이 훅 다가오자 놀란 온하랑은 잠시 굳어있다가 이윽고 정신을 차리고 그를 밀어냈다.“읍...”부승민의 어깨는 단단한 벽처럼 온하랑이 아무리 몸부림쳐도 끄덕하지 않았다.그는 온하랑의 부드러운 입술을 탐욕스럽게 빨아들였고, 혀끝으로 그녀의 잇새를 거칠게 유린했다.뜨거운 입김이 뒤엉키자 숨이 가빠진 온하랑은 점점 더 숨쉬기 힘들었다.부승민은 그 틈을 타 온하랑의 이를 벌리고 혀끝을 더 깊이 파고들었다.“읍...”온하랑은 눈을 감고 세게 깨물었다.부승민은 밀려오는 고통에 낮게 신음하면서도 물러서지 않고 계속해서 깊은 키스를 이어갔고, 비릿한 피 맛이 두 사람의 입에 퍼졌다.문득 겹친 입술 위로 무언가가 떨어졌고, 혀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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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8화

온하랑과 김시연이 버스에 올라타자 수다를 이어가던 버스 안은 잠시 조용해졌다.온하랑과 김시연은 자리를 골라 나란히 앉았다.앞자리에 앉은 젊은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두 분, 어디서 오셨어요? 일하러 오신 거예요, 여행하러 오신 거예요?”젊은 남자 일행으로 보이는 사람이 잠시 온하랑을 바라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두 남자 앞에 앉은 아저씨도 거들었다.“나이를 보아 학생 같지는 않은데.”김시연은 웃으며 말했다.“저희는 여기 여행 중이고, 고향은 강남이예요. 그쪽은요?”고향 얘기가 나오자 차 안의 관광객들은 너도나도 자기 고향을 알리기 바빴고, 같은 지역 출신이 아니면 늘 비슷한 말로 공감대를 형성하려 들었다.“내 친구가 거기 사람인데…”이윽고 7, 8명 정도 더 차에 올라탔고, 가이드가 명단을 확인한 후 문을 닫고 출발했다.차에 시동을 걸자 차 안은 정적이 흘렀고 사람들은 각자 할 일을 했다.어떤 사람은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어떤 사람은 헤드폰을 끼고 노래를 듣고, 어떤 사람은 카메라로 풍경을 찍고 있었다.젊은 남자의 일행은 뒤를 한번 돌아보고는 남자를 팔꿈치로 찌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저 뒤에 앉은 여자 둘, 한 명은 온하랑 같은데?”“온하랑이 누군데?” 남자는 처음에 알아채지 못했다.“몰라? 부승민 아내!”남자는 기억을 떠올리며 놀란 눈빛으로 일행을 바라보았다.“정말 그 온하랑이야?”“내가 봤을 땐 맞아. 옆에 있는 친구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김시연이야.”처음 부승민과 온하랑의 소식이 전해졌을 때, 기숙사에서 한창 떠들어댔던 게 생각났다. 다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남들과는 출발선부터 다른 부승민을 부러워했었다.남자는 호기심이 생겼다.“내 기억이 맞다면 얼마 전에 부승민과 이혼하지 않았나?” “맞아.”남자의 일행은 한숨을 쉬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분명 부승민한테서 재산도 나눠 가졌으니 부자일 거야! 재혼이긴 하지만 젊고 돈도 많잖아. 그래도 재벌가 쪽에서는 다시 저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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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9화

“그래도 어떻게 그래요. 그냥 같이 해요.”온하랑이 말했다.그녀는 곧바로 샌들을 벗고 해변에 앉아 손을 씻은 후 고기와 해산물을 꼬치에 꽂기 시작했다.가이드는 얇게 썬 빵과 양상추, 소시지 등을 준비했고, 해산물은 옆 동네에서 사 온 것으로, 구워 먹을 수 있는 것은 생선, 새우, 조개 등이 대부분이었다.작게 잘라진 삼겹살은 알아서 꼬치에 꽂으면 되고 해물도 마찬가지였다.직접 준비한 음식과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변에서 낯선 여행자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바비큐를 먹는 건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이야기를 나누던 중 소년은 자신의 이름은 허명진, 동행자의 이름은 장천수라고 말했다.고기와 해산물을 모두 꼬치에 끼우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아 허명진이 제안했다.“누나, 이러면 좀 느린 것 같은데, 구우면서 꼬치에 끼울까요?”“그래.”“그럼 누나들이 꼬치에 끼우면 내가 구울게요. 먹고 싶은 건 많이 끼워요. 내가 다 구워줄게요.”허명진은 하얗고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새우를 좋아했던 김시연은 그의 말대로 한 접시나 되는 새우를 꼬치에 끼워서 그대로 허명진에게 건넸다.“동생, 난 새우 좋아하니까 많이 구워줘.”“알겠어요. 누나는 뭐 좋아해요?”허명진은 미소를 지으며 온하랑을 바라보았다.“난 가리는 것 없이 다 먹어.”온하랑이 말했다.“그럼 내가 하나씩 구워줄게요.”음식이 그릴에 올려지자 얼마 지나지 않아 숨 막히는 연기 냄새와 함께 요란한 소리가 났다.음식이 하나씩 익자 허명진은 깨끗한 접시를 가져와 온하랑과 김시연 앞에 놓으며 말했다.“누나, 다 구워진 꼬치는 이 접시에 담을 테니까 먹고 싶은 건 가져가세요.”“고마워. 고생이 많네.”허명진은 웃으며 말했다.“고생은요. 예쁜 두 누나를 모시게 되어 영광이죠.”김시연과 온하랑은 서로 마주보다 손에 쥔 꼬챙이를 내려놓고 삼겹살 꼬치를 먼저 먹었다.새우는 익는 속도가 느린 탓에 김시연은 이미 몇 번이나 흘끗 쳐다보았다.온하랑은 먼저 구운 소시지 꼬치를 먹은 뒤 계속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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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0화

“아니, 내가 볼 땐 허명진이 하랑 씨한테 관심 있는 것 같아요. 이혼하고 나니 연애운이 마구 쏟아지네요!”온하랑은 이마를 짚었다.“누구든 지금은 그럴 생각 없어요.”“그래요.”김시연은 한숨을 내쉬었다.“아까운 인물인데.”“아까우면 시연 씨가 만나보지 그래요?”“나도 그러고 싶은데 애석하게도 상대가 바라보는 사람은 제가 아니네요.”“만약 잘못 짚은 거면요?”“그럴 리가 없어요. 우리를 똑같게 대하는 것 같지만, 말할 때마다 하랑 씨만 봐요.”“...”“참, 민지훈이랑 연락하고 있어요?”“자주는 안 하죠.”민지훈이 자주 그녀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녀는 드물게 답장을 보냈다. 민지훈도 강남 출신이라 혹시라도 나중에 다시 만날 가능성만 아니었다면 그녀는 민지훈의 연락처를 바로 지워버렸을 것이다.“저기, 하늘에 헬리콥터 있어요!” 한 관광객이 갑자기 하늘을 가리키며 감탄했다.그러자 사람들은 모두 창밖을 내다봤고, 아니나 다를까 멀지 않은 상공에서 헬리콥터 한 대가 보였다.가이드가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부러워하지 마세요. 프린스턴 비터버러 구간에 도착하면 우리도 헬기를 타고 십이사도 바위를 구경할 수도 있어요.”십이이사도 바위는 대양로와 빅토리아주 전체를 대표하는 풍경으로, 헬기 투어를 할 수 있는 명소이자 대양로의 주요 명소이기도 했다.해가 지기 전에 그들은 아포르만에 도착했다.오늘 밤 이곳에서 야영할 예정이었다.가이드는 텐트를 나눠주며 텐트 설치 방법을 알려주었다.김시연과 온하랑의 텐트를 허명진이 와서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온하랑은 거절했다.“괜찮아. 너희 것만 해. 우리건 우리가 알아서 할게.”허명진은 제자리에 서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온하랑이 선 긋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텐트 설치가 끝나자 가이드는 자유 활동 시간을 주었다.온하랑과 김시연은 옆 숲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오트웰 등대를 보러 갔다.푸른 바다 옆 산꼭대기에는 하얀 등대가 우뚝 서 있었고, 등대로 가는 길은 천국으로 가는 길처럼 양쪽으로 하얀 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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