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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1화

“아깐 누가 저 자식 여자 친구가 되고 싶다고 했지? 잘생기고 몸매도 좋고 오늘 밤 호텔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며. 내가 준 돈으로 저 자식을 먹여살린다고 말한 건 또 누구였더라?”온하랑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어이없어 입꼬리마저 떨렸다.“딱 들어도 거짓말이잖아... 그냥 떠보려고 한 말일 뿐이야.”“나한테는 진짜처럼 들렸다고. 하랑아, 나 정말 무서워.”마치 잠자리 한 마리가 고요한 수면에 내려앉아 미세한 물보라가 일 듯, 부승민의 무섭다는 한마디는 온하랑의 마음속에 작은 파동을 불러일으켰다.온하랑은 고개를 들어 부승민을 쳐다보았다. “나 정말 너무 무서워. 네가 저 자식을 좋아해서 저 자식이랑 같이 산다고 할까 봐. 날 완전히 떠나버려서 다신 널 잡을 기회마저 잃을까 봐, 매일 마음이 조마조마해 미치겠어. 그래서 그날 이주혁이 널 안는 걸 보고는 참지 못하고 차에서 내려 널 보러 갔던 거야. 나 정말 두렵단 말이야. 네가 눈 깜짝할 새에 다른 자식 마누라가 되어버리면 난 그저 보잘것없는 전남편으로 남을까 봐.”부승민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는 마치 칠흑 같은 강남의 겨울밤처럼 쓸쓸하고 아련했다.그의 말투와 눈빛을 보면 무척이나 그녀를 사랑하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전혀 믿음이 가지 않았다.그저 부승민의 연기력이 나날이 발전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계에 발을 들이면 아마 오스카상을 수상했을지도 모른다.예전 그 자그마한 달콤함을 맛보기 위해 수없이 많은 씁쓸함을 맛보았던 터라 이미 정신을 바짝 차린 그녀였다. 두 번 다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미련한 짓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우리 이미 이혼했어...”“알아.”부승민은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바로 우리가 이혼한 덕분에 지금 내가 이렇게 두려움을 느끼는 거야.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재결합하려고 너를 강요하려는 의도는 없어. 단지 내 마음을 알려주고 싶을 뿐이야.”온하랑은 시선을 떨어뜨렸다.“됐어. 이 얘기는 그만하고 일단 밥부터 먹자.”부승민은 온하랑의 접시에 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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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2화

“고마워. 우리 둘 다 승자는 아니야.”온하랑은 손에 들린 젓가락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나 돌아갈게. 그런데 네가 날 공항까지 바래다줘.”부승민이 갑자기 요구를 제출하자 온하랑은 살짝 머뭇거렸다.정말 이렇게 순순히 놓아줄 사람이라고?“그래, 언제 갈 건데?”한참을 망설이던 온하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내일.”“좋아.”부승민은 테이블 위에 있는 술병 뚜껑을 따서 온하랑 앞에 놓인 잔에 가득 따랐다.“마셔 봐. 이 음식점 대표 과일주야.”이윽고 부승민은 자기 잔에도 따랐다. 부승민과 술잔을 부딪친 온하랑은 술을 한 모금 마셨다. 달콤하고 진한 과일 향이 입안에 부드럽게 녹아들었다.“어때?”“괜찮네.” 가볍게 입맛을 다신 온하랑은 다시 한 모금 들이켰다.“이 술 취기가 확 올라오니까, 많이 마시지 마.”“응.”온하랑은 대답하고 이어서 말했다.“사실 우리가 이혼 확인서 받은 날, 오빠한테 밥 사주고 싶었어. 우리가 혼인 신고하러 갔을 때 오빠가 밥 사줬던 것처럼 말이야. 나도 밥 한 끼 돌려주고 깔끔하게 끝내려고 했었는데 예상치 못한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오늘에야 드디어 갚을 수 있게 됐네. 내일부터 오빠도 돌아가서 오빠 일에 몰두해. 난 계속 내 여행을 할 거야. 이제 서로 간섭하지 말자.”이 말을 꺼낼 때 온하랑은 마음이 답답하고 시큰거렸다. 하지만 이게 정확한 선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래.”부승민의 입가에는 여전히 옅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입으로는 그럴 거라고 대답했지만, 마음속은 바닷물을 쏟아붓기라도 한 것처럼 씁쓸하고 괴로웠다.술을 또 몇 잔 들이켠 온하랑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취기가 올라오자 조금 어질어질한 느낌이 들어 그녀는 술잔을 내려놓고 미간을 만졌다.“이제 그만 일어나자. 나 돌아가야 해.”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갑자기 머리가 핑 돌며 눈앞이 아찔했다. 다급히 테이블을 짚으며 몸을 가누었다. 부승민은 얼른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의 머리에서 풍기는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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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3화

부승민이 지금 온하랑 얼굴의 화장을 지워주고 있는 건가?김시연은 뒤늦게 깨달았다. “하랑 씨 왜 이래요? 설마 당신 하랑 씨한테 약 먹인 건 아니죠?”대체 무슨 일인지 추측하던 김시연이 정색해서 물었다. 부승민은 눈을 치켜뜨고 김시연을 쳐다보았다. 침울하고 섬찟한 그의 눈빛을 마주한 김시연은 덜컥 겁이 났다.이 남자는 포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김시연은 도무지 당해낼 자신이 없었지만, 친한 친구를 위해서 용기를 내어 말했다.“하랑 씨 이미 당신이랑 이혼한 사이예요. 경고하는데 당신 만약 하랑 씨한테 상처 주는 짓이라도 한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당신 가만 놔두지 않을 거예요!”이 말을 들은 부승민은 표정을 조금 풀었다. 이 김시연이란 여자는 계속 온하랑에게 새로운 남자를 만나라고 부추겨 몹시도 짜증이 났지만, 온하랑을 생각하는 마음만은 진심이었다. 온하랑의 얼굴을 봐서 부승민은 잠시 김시연을 내버려두기로 했다.“술을 조금 마셔서 잠들었어요.”부승민이 해명했다. 예전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김시연은 부승민의 태도가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지만, 겨우 한시름을 덜었다.부승민이 손수건을 세숫대야에 담아 화장실로 들어가자, 김시연은 침대 옆으로 가서 온하랑의 이마를 만져보며 그녀의 호흡을 확인하고서야 걱정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여전히 경계하는 눈빛으로 화장실 방향을 바라보았다. 김시연은 부승민이 빈손으로 화장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며 물었다.“하랑 씨는 오늘 저녁 육광태 씨랑 밥 먹기로 한 거 아닌가요? 왜 당신이랑 함께 있죠?”부승민은 대답하지 않고 문 앞으로 걸어갔다.“하랑이 잘 보살펴 주세요.”“에휴...”문을 열 때 부승민은 발걸음을 멈칫하더니 살짝 고래를 돌려 담담한 눈빛으로 김시연을 보며 말했다.“다시는 하랑이한테 당신 휴대폰에 있는 사진 보여주지 마세요!”“그게 그쪽이랑 뭔 상관인데요?”“사람 시켜서 당신 휴대폰 해킹할까요, 아니면 아예 박살 내버릴까요? 선택하세요.”“허...”김시연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다면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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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4화

“응? 왜 인상이 깊지 않은데?”부승민의 눈동자에 설핏 어두운 빛이 스쳤다. 어쨌든 그곳에서 교환학생으로 1년 있었으니, 인상이 좋든 나쁘든 깊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온하랑은 이마를 문지르며 말했다.“사실 교환학생 생활이 끝나고 귀국하기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 많은 일들이 기억나지 않아.”이제 보니 교통사고로 인해 기억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그의 추측과 비슷했다. 하지만 부승민은 여전히 여러가지 의문이 들었다.그럼 그 아이는 온하랑이 교통사고를 당하며 죽었을까? 아니면 다른 곳으로 보내졌을까?“어쩌다 사고가 났는데? 너 그때 많이 다쳤어?”“모르겠어. 기억이 안 나. 머리를 다쳤었는데, 깨어났을 때는 그때의 기억이 전부 어렴풋해졌어.” 온하랑은 공허한 눈빛으로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그녀는 그 일들을 기억해 내려고 부단히 애썼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도무지 기억나지 않아 끝내는 포기하고 말았다.부승민은 그 말을 듣고 미간을 구겼다. 온하랑의 설명에는 그 아이의 모습은 전혀 비치지 않았고, 그녀는 아이의 존재 자체를 아예 모르는 눈치였다.게다가 이 교통사고는 뭔가 석연치 않았다. 마치 일부러 사건을 뭉텅 잘라내기라도 한 것처럼 모든 일의 실마리를 잡기 어려웠다.누군가 온하랑이 교통사고를 당한 틈을 타 그 아이를 데려간 것일까? 아니면 온하랑이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부터 그 아이는 이미 온하랑 곁에 없었던 것일까?곰곰이 돌이켜보던 부승민은 마침내 무언가 떠올랐다.“너 그래서 그때 여름 캠프에 갔다가 늦게 귀국한다고 말했던 거야?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걱정하실까 봐?”그해 여름 방학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야 온하랑은 해외에서 돌아왔다. 그녀는 조부모님께 전화해 학교의 여름 캠프에 참가한다고 했었다.부승민은 가끔 할아버지가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때는 온하랑과 친구라고도 할 수 없었고, 낯선 사람보다 조금 나았을 뿐이지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할아버지에 대한 언급 때문인지 온하랑은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할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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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5화

온하랑은 손을 훠이훠이 내저었다.“들어가 빨리. 잘 가!”그녀의 입가에는 여전히 옅은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지만, 그를 빨리 보내지 못해 안달 난 것 같았다. 부승민은 힘없는 표정으로 결국 온하랑을 향해 손을 흔들며 탑승구로 이동하기 위해 돌아섰다. 보안 검색대를 지나는 부승민의 모습이 사라지자 온하랑은 돌아서서 공항을 떠났다. 조금 전 부승민이 연신 고개를 돌리며 걸어가던 모습이 생각나 온하랑은 참지 못하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 모습은 마치 학교 앞에서 헤어지기 싫지만 마지못해 부모님과 작별 인사를 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그녀는 부승민의 이런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조금 우스꽝스럽고 심지어 귀엽기까지 했다. 실없이 웃고 있던 온하랑은 얼굴이 단번에 굳어지더니 웃음을 싹 거두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어떻게 부승민을 귀엽다고 생각할 수 있지?’이번에도 틀림없이 부승민이 꾸며낸 가식적인 모습일 것이다. 결혼 3년 동안 그의 거짓된 다정함에 그만큼 속아 넘어간 것도 모자라 또다시 속을 뻔했다.‘온하랑, 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거야!’...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온 온하랑은 얼른 김시연과 주연에게 말했다. 온하랑을 보자 김시연이 대뜸 따져 물었다.“빨리 말해 보세요. 어젯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육광태를 만나러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부승민은 어떻게 된 일이죠?”온하랑은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육광태의 친구가 바로 부승민이었어요.”이 한마디로 김시연과 주연은 모두 이해했다. 김시연은 주먹을 불끈 쥐고 욕설을 퍼부었다.“빌어먹을 자식, 부승민 정말 음흉하네요. 이런 수를 썼을 줄이야. 그러게, 가는 곳마다 육광태를 만난다고 했더니, 계속 우리를 미행하고 있었던 거군요!”욕을 한 김시연은 또 물었다.“어제 만났을 때 부승민이 괴롭히지는 않았죠?”괴롭힌다고?온하랑의 머릿속에 뜬금없이 부승민의 말이 떠올랐다.‘네 몸 어디를 내가 못 만져 봤는데.’그녀는 이내 이 말을 머릿속에서 떨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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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6화

고개를 살짝 숙인 여자는 가느다랗고 예쁜 손가락으로 선글라스를 반쯤 내린 채 붉은 입술을 벌리며 영어로 말했다.“아는데요. 내 자리가 통로 옆이라 앉기 싫어서 그러는데, 우리 자리 바꿔요. 얼마면 돼요?”온하랑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미안하지만, 바꾸지 않을 거예요.”흘기는 눈으로 온하랑을 보던 여자의 시선이 온하랑의 가방에 머물렀다. 여자는 비웃음이 가득 담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당신 그 가방 백만 원 초과하지 않을 것 같은데 내가 백만 원 보상해 줄게요. 어차피 이 좌석들의 푯값은 동일하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백만 원은 당신이 공짜로 얻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온하랑은 그 여자의 시선을 따라 자기 가방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겨우 20만 원일 뿐이에요. 방금 말했다시피 자리는 안 바꿀 거예요.”여자의 눈동자에 경멸의 빛이 스쳤다. 이런 사람들을 그녀는 많이 보아왔다. 쥐꼬리만큼의 월급을 몇 년 동안 악착같이 모아서 그 돈으로 여행 가서 아름다운 사진을 찍어 인스타에 올리며 예쁘고 돈 많은 척하는 여자들을 말이다.“그래서 얼마를 원해요? 이백만?”“얼마가 됐든 안 바꿀 거라고요!”온하랑이 여전히 동의하지 않자, 여자는 얼굴이 굳으며 눈빛이 어두워졌다.“마지막 기회를 줄게요. 이백만 원을 이렇게 날려 버릴 건가요?”“안 바꾼다고요. 귀먹었어요? 계속 고집부리면 승무원 부를 거예요!”김시연은 영어로 그 여자의 말을 받아치고 다시 온하랑에게 한국어로 말했다.“뭐 이런 뻔뻔한 사람이 다 있죠. 참 나, 어이가 없어서. 격에 맞지도 않는 옷을 차려입고 교양이 하나도 없네요.”여자는 그 말을 듣고 분노에 찬 눈으로 김시연을 노려보았다.“뭐? 지금 누구더러 뻔뻔하고 교양 없다고 했어? 당신이야말로 교양 없어!”그 여자가 한국말을 알아듣는 걸 본 김시연은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고 팔짱을 끼며 말했다.“바로 당신 말이야! 돈도 많은데 왜 일반석을 사서는 난리야. 그냥 일등석으로 가지 그래. 일반석은 작아서 당신 같은 부자가 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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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7화

그녀는 겉으로는 차분한 척했지만, 내심 흥분을 금치 못했다. 손마저 이렇게 이쁘다니. 그녀는 오랫동안 이렇게나 마음에 쏙 드는 남자를 만나지 못했다. 만약 이대로 지나쳐 버린다면 정말 아쉬울 것 같았다.이런 남자를 또 어디에 가서 찾는단 말인가.비행기가 이륙하여 높은 상공에 이르자 평온을 되찾았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팔걸이에 걸친 팔꿈치로 실수인 척 옆에 남자를 건드렸다. 그리고 서둘러 영어로 말했다.“미안합니다.”“괜찮아요.”남자는 나지막이 영어로 대답했다. 여자의 마음이 날뛰고 있었다. 목소리마저 이렇게 듣기 좋을 수가. 그녀는 이 틈을 놓칠세라 냉큼 말을 걸었다.“어디 가세요?”“시테니요.”부승민은 잡지를 펼치며 말했다. 그는 온하랑이 이 비행기에 탑승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온하랑은 부승민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사실 그날 온하랑이 떠난 후 그는 비행기에 오르지 않았다. 이 바보 같은 녀석은 여전히 귀엽도록 순진했다. 그가 비행기에 오르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지 않았다니. 육광태는 귀국했다. 차라리 부승민 혼자서 온하랑 주변에 숨어서 미행하는 게 쉽고 편리했다. 여자는 기쁨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저도 시테니로 가요!”부승민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듯 진지하게 잡지를 보고 있었다. 여자는 계속 말했다.“실례가 안 된다면 혹시 어느 나라에서 오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그녀와 잡담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부승민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한데 책 보는 거 방해하지 마세요.”“네, 네... 보세요.”불타오르는 눈빛으로 부승민을 응시하던 여자는 그가 점점 좋아졌다. 어떤 남자들은 그녀가 먼저 말을 건네면 좋아서 달라붙는 꼴이 꼭 파리처럼 짜증 났다. 하지만 이 남자는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으면서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와 돈에 끌려 아부하는 남자들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다. 한 번 나와서 이런 최상품을 만날 거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이 남자의 구체적인 정보를 알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여자의 눈가에 실망감이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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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8화

저녁이 되자 온하랑은 잠에서 깼다. 어느 정도 시차 적응도 되어 김시연에게 같이 저녁 먹으러 가자고 했다. 저녁 식사 후, 김시연은 밖으로 나가 산책 하자고 제안했다.주변에는 많은 사람이 오가고, 그중 많은 사람들은 여행을 온 관광객들로, 행복한 얼굴로 지칠 줄 모르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온하랑과 김시연은 부두 옆에 서서 시원하고 상쾌한 바닷바람을 맞았다. 밝은 불빛이 바다 위에 비쳐 파도가 금빛으로 반짝이는 것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두 사람은 이곳에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온하랑은 갑자기 오싹해지며 누군가 뒤에서 그녀들을 지켜보는 것 같은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시테니 오페라 하우스 주변을 한 바퀴 돌고 호텔로 돌아갔다.이주혁은 이틀 후에 도착한다. 이틀 동안은 온하랑과 김시연만 있었다. 세 번째 날 두 사람은 빅토리아 빌딩에 갔다. 빅토리아 빌딩은 시테니에서 가장 큰 쇼핑센터였다. 건물 자체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유리 돔, 나선형 계단, 고전적인 분위기가 곳곳에 베어져 있었다. 쇼핑센터가 되기 전에도 관광 명소였으며 현재는 시테니의 여행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이 빌딩에는 푸드 코트, 카페,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고, 현지 브랜드 외에도 글로벌 명품 매장들이 즐비했다. 온하랑이 이곳에 온 것은 관광 외에 또 다른 목적이 있었다. 바로 이곳에서 이주혁에게 돌려줄 선물도 사고 겸사겸사 기념품을 사가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온하랑은 이주혁에게 무엇을 선물해야 좋을지 몰랐다. 이때 김시연이 말했다.“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쇼핑하다 보면 적당한 것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어느 한 매장에서 고급스러우면서도 절제된 디자인이 돋보이는 시계가 온하랑의 눈에 들어왔다. 쇼핑 가이드는 시계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적극 추천했다.“시연 씨, 이주혁에게 이 시계를 선물하면 어떨까요?”“괜찮긴 한데, 꼭 선물해야 해요?”“답례품이니까 꼭 줘야 해요.”온하랑이 쇼핑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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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9화

다음 날 점심, 돌아다니느라 지친 온하랑과 김시연은 한식집에서 식사했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온하랑은 휴대폰을 뒤적이며 의아해서 물었다.“주혁이 지금쯤 도착하지 않았을까요? 왜 아직도 소식이 없지?”이주혁이 보낸 항공편 정보에 따르면 오늘 오전 시테니에 도착했어야 한다. 온하랑의 뒤를 설핏 쳐다보던 김시연의 눈가에 미소가 스쳤다.“늦어졌나 보죠, 뭐. 더 기다려 봐요.”“그래요.”바로 그때 온하랑의 눈앞이 갑자기 어두컴컴해졌다. 커다란 손이 그녀의 눈을 가리고 있었다. 온하랑은 무의식적으로 눈앞에 있는 손을 움켜잡었다. 큰 손의 주인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내가 누구게? 맞히면 선물 줄게요!”목소리를 듣자마자 온하랑은 바로 알았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이주혁, 유치하게 뭐야?”이주혁은 온하랑을 놓아주며 아쉬운 듯이 말했다.“그렇게 티나?”“당연하지! 어느 쪽에 앉을래?”온하랑이 물었다. 그녀와 김시연의 옆에 모두 여분의 의자가 하나씩 있었다.“여기 앉을 게.”이주혁은 온하랑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그와 김시연은 잘 아는 사이가 아니었기에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온하랑은 가방을 건너편 빈 의자에 올려놓고 이주혁을 바라보며 물었다.“언제 도착했어? 왜 아무 말도 안 했어?”이주혁은 앞에 놓인 수저를 정리하며 말했다.“너에게 서프라이즈 해주고 싶어서 그랬지.”“그럼 여긴 어떻게 찾았어?”이주혁은 김시연을 흘긋 쳐다보며 말했다.“알아맞혔어. 내가 시연 씨에게 이곳을 추천해 줬거든.”“꽤 똑똑한데. 일은 끝났어?”“응, 설날 전까지는 없어. 나머지는 다 내년에 있어.”내년이라는 말을 들은 온하랑은 감탄했다.“시간이 참 빨리도 지나네. 또 1년이 지났어! 그건 그렇고, 너 주려고 선물 샀어.”온하랑은 가방에서 정교한 상자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마음에 드는지 열어 볼래?”이주혁은 미소를 지으며 온하랑을 두어 번 쳐다보더니 서둘러 열지 않았다.“나도 선물 가져왔어.”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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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0화

온하랑은 그 어떤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한 번도 그 장신구들을 착용하지 않았다.“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이참에 우리 우정템으로 해요. 내일 가져올게요.”김시연이 상자를 챙기며 말했다.“하랑 씨가 준 선물 안 열어봐요? 어제 선물 사다가 미친 사람을 만났는데 그나마 가게 주인이 현명해서 다행이었어요.”이주혁은 탁자 위에 놓인 상자를 집어 들고 겉을 자세히 살펴보았다.“시계 아니야? 마침 요즘 시곗줄이 필요했는데.”그 말과 동시에 이주혁이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섬세하지만 튀지 않는, 점잖은 분위기의 시계가 들어 있었다.“와, 하랑이 너 눈썰미가 좋네! 이 시계 너무 맘에 드니까 빨리 나한테 해줘 봐.”이주혁은 시계를 온하랑의 손에 쥐여주며 손목을 테이블 쪽으로 내밀었다.온하랑은 시계를 집어 들고 이주혁의 손목에 채워주었다.그녀가 고개를 살짝 숙이자 귀에서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이주혁의 각도에서 보면 길고 풍성한 그녀의 속눈썹은 작은 부채가 팔락거리는 것 같았다. 온하랑의 얼굴 피부는 껍질을 벗긴 달걀처럼 하얗고 고와서 미세한 솜털까지 보였다.“됐어.”온하랑은 이주혁의 손목을 잡고 조절해 주었다.“괜찮지?”이주혁은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좋네. 이대로 하고 있지 뭐.”온하랑은 웃다가 갑자기 등 뒤로 서늘한 한기를 느꼈다.설마 부승민이 근처에 있는 건가?아니겠지?온하랑은 식당 안에 부승민이 없는지 주위를 둘러봤다.착각이겠지.식당 맞은편 카페 2층 카페에서 이주혁의 모습을 본 부승민의 두 눈은 먹물이라도 떨어질 정도로 잔뜩 어두워져 있었다.이주혁이 왜 여기 나타났지?!정말 안 보일 때가 없었다.이윽고 부승민은 온하랑이 상자를 꺼내 이주혁에게 건네는 것을 봤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선물 상자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어제 온하랑이 샀던 그 남성용 시계였다!그게 이주혁을 위한 것이었다니!오늘 이주혁이 온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걸까?둘이 데이트하는 거야?왜 이주혁에게 선물을 주는 거지?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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