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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로운 제안의 모든 챕터: 챕터 341 - 챕터 350

1272 챕터

제341화

멀지 않은 곳의 검은색 세단 옆, 부승민이 모자에 털 달린 검은색 롱패딩을 입고 있었다. 열어젖힌 패딩 안으로 옷이랑 벨트가 보였다. 그는 조수석 문 앞에 서서 온하랑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온하랑이 이리 빨리 여름섬을 떠나는 게 이주혁때문이었단 사실을 안 뒤 부승민의 마음속에서 열불이 끓어올랐다. 씁쓸하기도 괴롭기도, 또 이주혁에 대한 질투도 조금 섞인 채.그리고 방금, 이주혁과 온하랑이 껴안고 키스하는 걸 보고 부승민은 더 이상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이주혁은 일하는 시간도 짜내 온하랑을 보러 왔고, 온하랑은 그에 감동받은 건가? 두 사람이 만나기라도 하나? 온하랑이 이주혁의 아내가 되어 보통 부부들처럼 친밀한 사이가 될 것을 생각하면 부승민의 마음은 칼에 갈기갈기 찢기고 뼈저린 고통이 엄습하는 기분이었다.온하랑은 그의 것일 수밖에 없다 생각했다. 그는 그저 온하랑이 혼란스러울까 그녀를 보살피느라 그녀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뿐이었다.온하랑은 여기에 왜 부승민이 있는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부승민은 그녀가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그녀가 타고 온 차로 걸어오고 있었다. 왜 그런지 몰라도 온하랑은 괜스레 죄지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치 바람 피우다 딱 걸린 사람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깨달았다, 그녀는 전혀 제 발 저릴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온하랑과 부승민은 이미 이혼한 사이고 이주혁과도 정상적인 친구 관계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정말 만에 하나 무슨 관계가 있다 해도 부승민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여기까지 생각한 온하랑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부승민이 보는 아래 얼굴에 일말의 동요도 없이 차 옆으로 다가가 차 문을 열었다. 마침 뒷좌석에 앉으려는데 뒤에서 부승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랑아.”온하랑의 몸이 경직됐다. 그녀는 차 문을 닫고 몸을 돌려 부승민을 바라봤다. 입꼬리가 올라가며 앵두 같은 그 입술이 떨어졌다.“둘째 오빠, 진짜 이런 우연도 있네? 오빠도 여기 출장 온 거야?”며칠 안 봤다고 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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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2화

온하랑은 무슨 웃긴 말이라도 들은 것처럼 차갑게 부승민을 바라보며 말했다.“나 자유롭게 해준다며 오빠가 그랬잖아?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우린 이미 이혼했어. 내 앞에서 연기할 필요 없다는 소리야.”부승민은 눈앞이 아찔해 났다. 온하랑이 이런 식으로 자신을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녀는 부승민에게 일말의 믿음도 남아있지 않았다.“나 후회해, 하랑아. 널 보내면 안 되는 거였는데. 네가 말했다시피 할아버지도 돌아가셨고 내가 연기할 필요가 뭐 있어. 하랑아, 네가 믿건 안 믿건 난 정말 너 많이 좋아해. 너랑 이혼하기 싫어.”부승민은 이전에도 좋아한다고 말한 적 있었으나 언제부터였냐 묻는 온하랑의 물음에 항상 대답하지 못했다. 만약 진짜 좋아하는 거라 쳐도 온하랑이 꼭 돌아가야 한다는 법은 없다. 좋아한다 해서 그녀가 지금껏 받아왔던 상처가 없던 일이 되진 않는다. 온하랑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후회해도 소용없어. 오빠가 어떤 의도를 갖고 이런 말을 하는진 몰라도 이거 하나는 확실하게 얘기해줄 수 있어. 난 오빠랑 재혼할 일 없어.”온하랑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녀한테서 무슨 이득을 볼 게 있다고 추서윤을 국내에 버려두고 여기까지 와서 연기를 하는 건지. 설마 할아버지 유언장에 BX 그룹 회장 자리에 앉는 조건이 이혼하지 않는 건가? 아마 이게 가장 납득할 만한 이유인 것 같았다.말을 듣고 난 부승민은 입술을 꽉 깨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늘한 기운을 뿜어대고 있었다. 온하랑의 말은 의심할 여지 없이 명백한 것이었다. 그녀는 부승민과 재혼할 생각이 없다. 그 한마디는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하랑 씨, 얼른 타요.”김시연이 차에서 내려 뒷좌석 문을 열고는 온하랑을 밀어 넣었다. 그녀는 부승민을 째려보고는 잽싸게 조수석에 앉았다. 부승민을 볼 때부터 김시연은 그를 온하랑과 만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주현이 그녀를 막아 나서서 온하랑 스스로 해결하게 놔두고 온하랑이 해결할 수 없을 때 다시 두 사람이 돕자고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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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3화

원래 계획대로라면 그들은 금방 여름섬에서 돌아왔어야 했다. 하지만 이리 많이 앞당긴 이상 세 사람은 포드타운에 가기로 결정했다.포드타운은 트로토와의 자그마한 시골 마을이었다, 여기서 사람들은 아름다운 협곡과 오로라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때마침 마을은 극야상태였다.그들은 마을을 한바퀴 쭉 돌았다. 쭉 뻗은 해안선과 설산의 절경을 느끼며 틈틈이 멈춰서서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 기간 김시연과 주현은 계속 몰래몰래 온하랑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온하랑은 그들의 도둑고양이 같은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걱정 마요. 나 괜찮다니까. 아까 그 사람 본 뒤로 기분이 안 좋아져서 그래요, 정상 아닌가요? 어느 사람이 전남편을 보고 기분 좋을 수가 있겠어요.”김시연이 온하랑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하랑 씨, 내려놨으면 됐어요.”그리고 세 사람은 트로토와의 호텔에서 하룻밤 쉬고 이튿날 링와스섬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마 설경을 보는데 조금 질리기는 했을 것이다. 세 사람은 링와스섬에서 밤을 보내지 않고 당일로 트로토와에 돌아왔다. 도착했을 때 마침 밥을 먹을 시간이어서 세 사람은 바로 김시연이 새로 발견했다는 레스토랑으로 운전해 이동했다.밥을 다 먹고 나서 결제하려는 때에야 온하랑은 늘 가지고 다니던 가죽 가방 안의 지갑이 감쪽같이 없어진 걸 발견했다.“아? 내 지갑은? 호텔에 놔두고 왔나?”처음에 온하랑은 도난당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김시연이 온하랑의 텅 빈 가방을 보고는 자기 지갑을 꺼내 들며 말했다.“자, 내가 결제할게요.”온하랑은 김시연의 지갑을 건네받고 의문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아닌데... 아까 나올 때 다 가방에 넣었는데, 길에서 떨어트린 건 아니겠죠?”“떨어트릴 수는 없다고 보고요, 소매치기를 만났을 수밖에 없겠네요.”김시연이 말했다.온하랑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녀도 떨어트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의 가방에 잠금장치가 있었는데 아까 가방을 열 때 잠금장치는 닫힌 상태였다. 지갑은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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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4화

“소매치기범 보통내기가 아니던데요. 링와스섬에서 사진 찍을 때 지갑을 슬쩍해가는 걸 내가 봤거든요.”온하랑은 그를 쳐다봤다.“링와스섬에 갔었어요?”아주 잠깐 온하랑은 지갑을 육광태가 훔쳐 간 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우연이라기에는 지나치게 타이밍이 좋았다.“네, 어제 갔거든요.”“그래요? 고마워요.”온하랑과 나머지 두 사람은 오늘 간 거였는데, 정말 그냥 우연인 건가.“별말씀을. 해외에서 우리나라 사람을 만났는데 도울 수 있으면 돕는 거죠.”육광태가 지갑을 건넸다. 온하랑은 지갑을 건네받고 고개를 들어 육광태에게 말했다.“좀만 늦었어도 오베니아에 가는 티켓을 끊었을 거예요. 이렇게 하죠, 내일 제가 밥 살게요, 어때요? 당신 친구만 괜찮다면 같이 와도 되고요.”육광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그때 가서 보죠. 돌아가서 친구랑 물어볼게요.”“친구가 너무 엄하게 관리하는 거 아니에요? 친구라기보단 와이프에 가까운 것 같네요. 밖에서 딴짓 못하게 말이에요, 하하.”온하랑이 농담조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육광태의 뇌리에는 먹구름이 어둡게 깔린 부승민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눈썹을 치켜뜨고 웃으면서 말했다.“아 걘 진짜 여자 친구보다 더 까탈스러워요. 이제 보면 알 걸요.”온하랑의 눈이 반짝이며 입가엔 부드러운 곡선이 그려졌다.“농담이에요. 어차피 절 도와준 건 사실이니까 제가 당연히 밥 한 끼 사야죠. 만약 친구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제가 직접 찾아가서 말해볼게요.”육광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장난기 많은 얼굴로 웃었다.“그래요, 먼저 가볼게요. 이따가 소식 있으면 문자 보낼게요.”“네.”온하랑은 문을 닫은 뒤 등을 붙이고 섰다. 그녀는 손안의 지갑을 보면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정말 그저 우연의 일치인 걸까?...육광태는 바로 부승민의 방으로 가 소파에 털썩 앉았다.“지갑 돌려줬어.”“응.”부승민은 소파에 앉아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손에 라이터와 담뱃갑을 쥔 채 팔꿈치를 무릎에 지탱하고 있었다.“어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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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5화

그래서 온하랑은 육광태와의 식사 시간을 저녁으로 정했다. 육광태가 자기가 레스토랑을 예약한다고 했을 때, 온하랑은 또다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거절하지 않고 육광태더러 결정한 뒤에 그녀에게 알리라 했다....이튿날 아침 일곱 시 반, 온하랑 삼인방은 지정된 부두에 왔다. 그 시각 이미 적잖은 사람들이 부두 주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딱 보면 패키지여행으로 고래 구경을 하러 나온 게 틀림없었다. 개중에 아시안들도 심심찮게 보였다.온하랑 삼인방이 예약한 건 쌍동선이었는데 가이드는 백인이었고 함께 패키지에 참여한 사람들끼리도 전부 영어로 교류했다.7시 40분쯤 돼서야 배에 오를 수 있었는데 8시가 다 돼서 출발할 때 배에는 삼십 명 남짓의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배가 물살을 가로지르며 하얀 물보라를 일으켰다. 그리고 조금씩 부두와 멀어졌다.온하랑은 갑판 위에 서 있었다.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고 비릿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그녀가 머리를 돌렸을 때 부두는 점점 멀어져 흐릿해지다 하나의 점이 되어 사라졌다. 사방을 둘러봤을 때 주변은 바다에 둘러싸여 있었고 푸른 바다의 끝에 설산이 보이는 듯 마는 듯해 땅과 하늘이 그대로 맞닿아 어우러진 느낌이었다.고래 출몰 지역과는 아직 좀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온하랑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휴게실로 돌아왔다. 배에는 조그마한 휴게실이 있었는데 이미 열몇 되는 사람들이 들어와 있었다. 나머지 열몇 명의 사람들은 추위에 굴하지 않고 밖에서 버티고 돌아다니는 중이었다.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고래 출몰 지역에 도착해 가이드가 알리고 나서야 온하랑은 다시 갑판으로 올라갔다. 그 시각, 부두는 진작 안 보인 지 오래였고 조그만 배 한 척만이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 외로이 떠 있었다. 온하랑은 세상은 너무나도 크고 인간은 티끌만 한 존재라는 걸 새삼스레 느꼈다.고래 구경은 사실 오로라처럼 상당한 운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유람객들은 눈을 크게 뜨고 정신을 집중해서 자세히 해수면을 살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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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6화

온하랑은 오늘 오베니아에 가지 않은 것과 육광태가 지갑을 돌려준 사실을 주현과 김시연에게 얘기했다. 김시연은 어깨를 온하랑과 부딪히며 장난스럽게 웃었다.“정말 우리가 안 가도 돼요?”“나 혼자 가보면 돼요.”온하랑이 입술을 앙다물고 웃었다. 만약 그저 육광태에게 감사한 뜻으로 밥을 사는 자리라면 당연히 김시연과 주현을 불러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 가고 싶었다. 김시연은 온하랑이 육광태한테 뜻이 있다고만 생각하고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그녀를 향해 눈썹을 찡그렸다.“알았어요. 파이팅! 오늘 좋은 결과 있길 바랄게요!”주현도 온하랑이 육광태를 좋아하는 줄 알고 이주혁을 대신해 아쉬워하며 말했다.“하랑 씨, 신중하게 생각해요. 우리는 육광태에 대해 아는 게 많이 없잖아요.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알고 있어요, 안심해요.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에요.”그녀는 그저 육광태가 이상하다고 여겨져 그녀의 짐작을 확인해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김시연은 다 안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해명은 숨기려는 의도죠.”“...”육광태가 예약한 음식점은 온하랑 삼인방이 가보지 못한 일식집이었다. 음식점의 제일 우측에는 작은 방들이 일렬로 벽에 붙어있었는데 앞뒤로 파티션으로 분리되어 있었고 좌측에는 보일 듯 말 듯 한 주렴이 걸려있어 어느 정도 사적인 공간이었다. 육광태에 의하면 그들이 오늘 식사할 방은 끝으로 두 번째 방이었다. 온하랑이 도착했을 때 육광태는 이미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온하랑이 들어오며 주렴이 촤라락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육광태는 고개를 들고 웃으며 말했다.“왔어요? 얼른 앉아요. 고래 봤어요?”온하랑은 가방을 식탁 모서리에 벗어두고 육광태 맞은 쪽에 앉았다.“봤어요. 오늘 운이 좋았죠. 고래 떼도 보고 점프하는 것도 봤다니까요? 정말 예뻤어요! 볼래요? 사진이랑 영상 보내줄까요?”“급해 말아요.”육광태는 메뉴를 온하랑 앞에 내밀었다.“먼저 주문부터 하죠. 제가 먼저 몇 개 주문하긴 했는데 더 먹고 싶은 거 있나 봐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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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7화

온하랑은 팔꿈치를 테이블 위에 지탱하고 두 손으로 턱을 받치고는 감탄하는 얼굴로 육광태를 바라보며 말했다.“사실 난 당신 같은 사람을 좋아해요!”“컥-”옆방에서 또 무슨 소리가 들려왔으나 온하랑은 신경 쓰지 않고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나갔다.“제가 가정적 원인으로 조금 신중하고 절제하는 성격이거든요. 그래서 늘 뭔가를 하고 싶으면 하는, 세속적인 안목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부러웠어요. 한다면 하는 그 박력, 자유를 위해서는 모든 걸 포기할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이 나한테 없는 거거든요.”온하랑은 물을 한 모금 들이켜고는 계속 말했다.“그리고 광태 씨는 정의롭잖아요. 저 대신 지갑을 찾아 돌려줬고 여자분들한테 해가 될까 조심하는 것도 말이에요. 다른 사람 같았으면 그 얼굴로 수많은 여자 울렸을걸요.”“...과찬이시네요.”온하랑의 사뭇 진지한 얼굴을 바라보면서 육광태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설마 진짜 날 좋아하나? 육광태는 등 뒤가 시간이 갈수록 서늘해짐을 느꼈다.“내가 한 말 모두 진심이에요.”“...”육광태는 말이 없었다. 마침 타이밍 좋게 주문했던 음식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육광태는 직원의 손에서 그릇들을 건네받으며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러고는 배시시 웃으며 온하랑에게 말했다.“우리 얘기만 하지 말고 밥 먹어요.”“그래요.”온하랑은 머리를 끄덕이며 물었다.“그런데 왜 여기로 예약한 거예요? 별실까지 따로 잡고?”육광태가 변명을 찾아 위기를 모면하려는 때, 온하랑의 아름다운 눈썹이 꿈틀거리며 눈동자를 굴렸다.“다른 사람이 우리를 방해할까 봐서요?”“...”이 말은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이상했다. 마치 데이트하는 것 같달까.옆방에서 또 귀를 찌르는 소리가 전해져왔다. 칼로 스테이크를 써는 듯한 소리였는데 칼과 접시가 마찰하며 내는 소리는 특별히 듣기 싫었다. 육광태는 심지어 부승민의 화난 표정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도 몰랐다, 일이 이렇게 예상 밖으로 흘러갈 줄은.온하랑이 감탄을 금치 못하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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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8화

짤라당.옆방에서는 뭔가가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난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직원이 부랴부랴 달려가 어렴풋이 수습하는 게 보였다. 육광태는 이젠 부승민의 감정을 고려할 새도 없었다. 그의 얼굴이 완전히 굳어버렸다. 온하랑이 날 좋아한다고? 온하랑이 왜 날? 그는 커다란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 했다. 그러고는 복잡한 심경으로 온하랑에게 물었다.“하랑 씨, 그 말 진심입니까?”“당연하죠. 아니면 오늘 왜 혼자 왔겠어요.”온하랑은 입꼬리를 올리며 길고 긴 속눈썹을 깜빡였다. 육광태는 한순간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하... 하랑 씨, 신중하게 생각해 봐요. 제 어디가 끌렸는지는 몰라도 아무튼...”“혹시 제가 결혼한 적 있는 게 걸려서 그래요?”온하랑이 그의 말을 잘랐다.“그게 아니라...”“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요. 부승민 그 사람 그 쪽으로 아예 안 되거든요.”육광태는 경악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믿기지 않죠? 나도 제일 처음에는 안 믿었거든요. 겉으로 봤을 때는 건장해 보였는데 진짜 허수아비가 따로 없었다니까요. 수술도 해봤고 약도 먹여봤는데 안 되더라고요. 그와 결혼생활 한 이 3년 동안 저 진짜 매일 밤 혼자 독수공방했다니까요.”육광태의 입은 주먹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벌어졌다. 옆방의 부승민은 이미 온하랑 때문에 화가 나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부승민은 자신이 괜히 친구를 불러들여 돌로 제 발등을 깠다고 생각했다. 온하랑이 이리도 빨리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육광태를 좋아할 줄은 전혀 몰랐다. 그건 그렇다 쳐도 육광태의 인정을 받아내고자 육광태앞에서 거짓을 꾸며내 그를 욕보이다니! 간땡이가 부어도 제대로 부은 온하랑이였다.육광태가 사실인지 아닌지 생각하고 있을 때 전화가 울렸다. 호주머니에서 꺼내 발신자를 확인하니 아니나 다를까 부승민이었다. 아마도 화가 나 거의 이성을 잃기 직전이겠지? 하지만 타이밍이 꽤 좋긴 했다. 아니면 이 상황에서 육광태는 무슨 말을 했으면 좋을지 몰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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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9화

온하랑은 팔짱을 끼고 있다가 한 손을 들어 주렴을 걷어내고 여유롭게 앞으로 걸어왔다. 그녀는 부승민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고는 말했다.“설마 여기에 출장 왔다는 소리는 하지 말아줄래? 이렇게 우연히 여기서 손님이랑 식사할 리 없잖아?”부승민은 입술을 오므렸다.“...너 알고 있었어?”그러니까 아까 온하랑이 했던 말들은 일부러 한 말이었던 건가?“육광태는 오빠 친구고 오빠는 요 며칠 계속 나 따라다닌 거지?”원래 육광태가 이상하다 여겨지긴 했었어도 김시연의 말에 의심을 거뒀었다. 하지만 이후에 공항에 나타난 부승민을 보고 온하랑은 다시 의심의 불씨를 지폈다. 별 다른 이유는 없었다. 부승민의 상태를 보아하면 갓 노르빈에 온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적극적으로 행동했을 때 육광태의 반응으로 봐서는 그녀를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니 김시연의 추측은 자연스레 빗나갔다.“응.”부승민이 숨을 깊게 들이쉬고 대답했다. 그는 앞으로 천천히 다가가 절절한 눈빛으로 온하랑을 쳐다보며 말했다.“하랑아, 난 너 없으면 안돼. 하지만 내가 네 앞에 나타나면 네가 싫어할까 봐 그저 멀리서만 널 바라볼 수밖에 없었어...”그러니까 그녀가 몇 번이나 느꼈던 그녀를 주시하던 눈빛은 모두 부승민이였다. 온하랑은 시선을 떨궜다. 부승민은 이렇게 먼 곳까지 찾아와서 나타나지 않고 숨어 그리 오랜 시간 동안 조심스레 행동했던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감동받아 어쩔 줄 몰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온하랑은 그 목적에 의구심을 품을 줄밖에 몰랐다. 정말 그의 말대로 그가 정말 진심으로 좋아해서 저지른 일이라 한들 이미 늦었다.“부승민 씨, 우린 이미 이혼했어. 우린 이젠 남남이고 각자의 길을 걷는 거야. 서로 관심 끄고 앞으로 이런 의의 없는 일도 자제하고.”“네가 의의 없다 해서 의의가 없는 게 아니야. 넌 나랑 재혼하기 싫다고 말했지. 네 용서 바라지도 않아. 그저 매일 널 볼 수 있고 네가 행복한 모습을 볼 수 있으면 만족해.”다른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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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0화

부승민은 온하랑의 손에 입이 막혀 말을 멈췄다. 눈에는 장난기 가득한 웃음이 서렸다. 온하랑은 천천히 숨을 내쉬고 붉은 기가 채 가시지 않은 얼굴을 한 채 부승민을 째려봤다.“나 손 내려놓긴 할 건데, 함부로 지껄이지 마!”부승민은 웃는 것 같기도 웃지 않는 것 같기도 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지도 흔들지도 않았다. 온하랑이 미간을 찌푸리며 뭔가를 말하려 할 때 문득 손바닥이 미끄덩하며 간질거렸다.“악-”온하랑은 황급히 손을 치우고 멀리 떨어졌다. 그녀는 인상을 쓰며 손바닥을 닦았다.“오빠, 진짜 이렇게 더럽게 굴 거야?”부승민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이게 뭐가 더러워? 네가 손 내민 거잖아. 네 몸 구석구석 내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어딨어. 그때 그 병실에서도...”“닥쳐, 닥치라고!”온하랑은 귀가 빨개서 그의 말을 끊었다. 몸을 구석구석 안 만진 데가 없어? 어디서 이런 파렴치한 말을! 그녀는 너무나도 선명한 기억이 못내 미웠다. 병실이란 두 글자에 그녀의 머릿속에서 불현듯 그때의 광경이 떠올랐다.“너도 그때 일이 떠오른 거지? 맞지?”부승민이 목소리를 깔며 유혹하듯 말했다.“함부로 지껄이지 마!”온하랑은 불에 데기라도 한 듯 펄쩍 뛰며 반박했다. 귀는 더 빨개졌고 열기가 식지 않았다. 부승민은 낮은 목소리로 웃었는데 그 목소리는 짙고 깊었다. 그 웃음소리에는 자신감이 스며있기도 해서 그녀가 거짓말한다 확정 짓는 듯한 뉘앙스를 풍겨 온하랑더러 머리가 쥐 나게 했다. 그녀는 부승민이 다른 낯 뜨거운 말을 더 하기 전에 정색하며 말했다.“오빠, 더 이러면 진짜 성희롱으로 신고할 거야.”“알겠어, 더 얘기 안 할게.”부승민은 이내 꼬리를 내리고 온하랑의 소매를 잡아당겼다.“너 저녁밥도 별로 안 먹었잖아. 같이 먹자, 다 네가 좋아하는 것들이야.”부승민이 화제를 잽싸게 전환한 까닭에 온하랑은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아까 옆방에서 음식을 먹었을 때 확실히 맛이 괜찮았다. 하지만 그녀는 부승민과 얼굴을 맞대고 밥을 먹기 싫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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