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말고 다의 모든 챕터: 챕터 91 - 챕터 100
359 챕터
제91화
병원 복도에는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고 신유리는 잠시 진정을 취하여 마음의 평안을 되찾았다.그녀는 서준혁과 더는 말 섞지 않고 곧바로 화장실을 향했다.다행히 화장실에 사람이 많지 않아 그녀는 세면대 옆에 서서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았다.그녀의 눈가에는 눈물방울이 맺혀 있고 화장도 범벅이 되어 초췌해 보였다.신유리는 파우치를 꺼내 화장을 고친 뒤 손바닥을 세면대에 지탱하고는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갑자기 외할아버지의 전화를 걸려 왔다.얘기를 나누다가 신유리는 잠시 머리가 하얘지더니 마침내 자신이 아직 외할아버지에게 상황을 보고드리지 않았다는 점이 생각났다.그녀는 눈을 내리보며 심호흡을 한고는 천천히 전화를 받았다.외할아버지의 노쇠한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 찼다."유리야, 어떻게 됐어? "신유리는 목은 멘 듯이 소리를 내지 못했다.외할아버지는 손녀의 기분을 알아차린 듯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물었다."유리야, 무슨 일이 생긴 거니? "신유리는 정신을 차린 후 세면대에 받쳐진 손을 천천히 거두어 가능한 침착한 어조로 대답했다."아니요, 걱정하지 마세요. 미미가 큰 문제 있는 건 아니고 빈혈이래요.""빈혈? 빈혈이라고?”신유리는 계속 설명드렸다."약물 때문일 수도 있다네요? "말하고 나서 바로 추가 설명드렸다."외할아버지 얼른 주무세요, 제가 의사 선생님께 가서 더 알아볼 테니 큰 문제는 없을거에요.”외할아버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미미 건강도 중요하지만, 네 자신도 잘 챙겨."외할아버지와의 통화가 끝나자, 신유리는 화장실에 좀 더 있다가 나갔다.밖으로 나갈 때 뜻밖에도 서준혁이 아직도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미간을 찡긋하면서 휴대전화를 내리보고 있었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그는 휴대전화를 거두고는 신유리를 쳐다보면서 조롱하듯이 입꼬리가 올라갔다."억울함을 당하더라도 착한 척하겠다? 너 참 위대하네! "신유리는 손끝이 멈칫하더니 대답했다."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어떻게 처리할 건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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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화
신유리는 저녁까지 방에 처박혀 있다가 집을 나섰다. 하지만 입맛이 없어서 대충 먹고는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이연지 쪽에서는 더 이상 그녀를 찾지 않았고, 신유리도 그쪽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샤워하고 휴대전화를 보니,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정재준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정재준은 신유리에게 언제 성남으로 돌아왔느냐고 묻었다.이에 신유리는 답장했다.[무슨 일 있어요?][이번 주말 내 생일인데 놀러 와요.]정재준의 답장은 거의 1 초안에 날려왔다.사실 신유리는 정재준과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그를 본 것도 화인 그룹에서 회의했을 때였다.마침 그녀는 기분이 언짢아 거절하려던 참에 메시지가 또다시 떴다.[다른 뜻은 없고 그냥 다 친구니까 같이 모이면서 놀려고요. 그리고 연우진이 그러던데 유리 씨 요즘 예술품 전시에 관심이 많다면서요? 마침 우리 집에 괜찮은 그림 몇 폭이 있어요. 유리 씨가 와서 봐줬으면 해서요.]이렇게까지 말하니 더 이상 거절하기에 송구스러워 신유리는 승낙했다.그날 밤, 신유리는 전혀 잠이 오지 않아 억지로 잠에 취해도 머리가 툭툭 하며 아파 났다.다음 날 아침, 신유리는 제시간에 이신에게 전화를 걸자, 이신은 멈칫하더니 물었다."왜?"신유리는 이마를 문지르면서 말했다."오늘 자료도 다 정리해야잖아, 주소가 어디야? 내가 직접 가져다줄게. "이신은 좀 의외였다. 그는 약간 쉰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하루 좀 더 쉬어. "신유리는 그가 어제의 일 때문에 자신을 헤아려주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아니야, 약속한 거잖아, 내 본부는 잘 지켜야지."이신도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그녀에게 주소 위치를 보냈다.신유리가 막 도착했을 때 겨우 9시였다.허경천은 손에 큰 가방과 아침 음식을 들면서 마침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그녀와 마주쳤다. 신유리를 보더니 그는 인사를 건넸다.신유리는 눈살을 약간 찌푸리더니."아직 아침 안 먹었어요?”"어젯밤 밤새 대안을 생각하다가 이제야 일어났어요. ""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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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화
신유리는 말하다가 조금 씁쓸했다.서준혁은 잠시 침묵하다가 무심코 되물었다."왜? 엄마 대신 돈 빌리게?"말투마다 풍자의 의미가 담겼으나 다행히 이연지에게 돈을 안 빌려준 것 같아 시름이 놓였다.그녀는 고개를 떨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돈, 빌려주지 마!"서준혁은 약간 멈칫하다가 이내 코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그 위대한 효심은 어디 갔어? "신유리는 천천히 한숨을 내쉬며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무튼, 엄마한테 돈 빌려주지 않았으면 좋겠어. "사실 신유리는 더 이상 이연지에게 다시 전화하고 싶지 않았다.지금의 그녀는 이연지의 소리만 들어도 등골이 오싹할 정도였다.하여 서준혁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서준혁은 분명히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가볍게 흥얼거리는 듯한 태도에 아무런 뜻도 읽을 수가 없었다.신유리가 막 전화를 끊으려 할 때 서준혁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잊었어? 좀 있으면 주국병이 나올 때 됐는데? "신유리는 눈살을 찌푸렸다.요 며칠간 일들이 한꺼번에 꼬인 바람에 주국병의 일까지 챙길 여유가 없었다.만약 주국병이 나온다면… 그날 병원 입구에서 주국병이 주먹다짐을 하던 무뢰한 모습이 떠올리며 신유리는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그들이 알아서 신고할 거야. ""너의 엄마가 경찰에 신고할 것 같아? "이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신유리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이연지가 주국병을 그렇게 아끼는데, 경찰에 신고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처음엔 신유리는 미미를 낳았으니 다시 엄마로 된 이연지가 어느 정도 주국병을 단속시킬 줄 알았다.하지만 어제서야 그녀는 자신이 줄곧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서준혁은 아직 일이 남아 있는 듯 말끝을 흐리며 냉담하게 말했다."끊을게. "휴대전화를 들던 신유리는 제 자리에 서있더니 미간은 천천히 찡그러졌다.서준혁은 전화를 끊자마자 강희성의 카톡이 날려왔다.[다 준비됐어.]서준혁은 한 번 훑어보고는 채팅방을 나갔고 이에 송지음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송지음의 채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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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화
외할아버지는 정신이 그다지 좋지 않아 눈을 반쯤 가늘게 뜨고 신유리를 바라보며 한참 동안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원장은 뒤에서 신유리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어르신이 깨어나신 후부터 쭉 유리 씨를 불렀어요."신유리는 외할아버지의 이불을 끌어 올리고 당부했다."푹 쉬세요. 무슨 일이든 우리 내일 얘기해요, 외할아버지. "하지만 외할아버지는 그녀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노인의 눈가가 촉촉해지며 신유리를 잡고는 입가를 힘껏 움직였다."우리 유리, 불쌍해서 어쩐담. "외할아버지는 아주 느리게 한 글자 한 글자를 또렷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신유리는 머뭇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외할아버지의 손에는 아직도 주사가 꽂혀있었는데, 그래도 손을 내밀어 신유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보려고 하는 것 같았으나, 힘이 없어 허공에 손을 떨구고 말았다.밤 11시, 병원 복도는 매우 조용했다.신유리는 복도 밖에서 잠시 서 있다가 병동을 나왔다.바깥의 건조하고 뜨거운 저녁 바람을 느끼면서, 그녀는 비로소 마음속에 맺혔던 그 숨결이 풀리는 것만 같았다.임시로 간병인을 구하지 못해서 원장한테도 부탁할 수 없는지라 신유리는 직접 간호에 나섰다.다음 날 아침, 원장이 병원 간병인을 데리고 온 뒤에야 그녀는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돌아가기 전에 그녀는 또 의사 사무실에 가서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다만 외할아버지는 나이가 많은 데다 장기 손상까지 겹쳐 의사들의 의견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았다."환자의 신체 기초 자체가 좋지 않고 호흡기 질환도 있어요. 이번에는 감정적으로 흥분을 일으켜 혈압 상승한 것으로 보입니다."의사는 재차 그녀에게 강조했다."환자의 기분 상태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해요.""이번에는 다행히 고비를 넘겼지만, 다음에는 뇌졸중이 올 수도 있어요."신유리는 표정이 심각해져 고개를 끄덕였다.사무실을 나선 신유리는 핸드폰을 꺼내서 양예슬에게 오전 반차 신청을 부탁하려고 메시지를 작성하려 하였다. 외할아버지 상태가 위독해져 옆에서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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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화
신유리는 멈칫하더니 이내 사무실에 들어갔다.양예슬이 부르기 전에 서준혁은 이미 신유리를 돌아보았다.그의 어두컴컴한 눈동자는 신유리를 한참 쳐다본 후, 코웃음을 치면서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이제야 왔어?”신유리는 약간 눈을 내리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죄송합니다, 급한 일이 있어서 늦었습니다. "그녀의 말투는 담백하고 태도도 성실하지만, 서준혁은 그래도 성이 차지 않았다.그는 찬웃음을 지으면서 냉담한 눈빛에는 약간의 경멸이 담아 있었다. "신 비서는 항상 급한 일이 많네요? 지난번엔 어머니고, 이번엔 아버님이신가?"신유리는 입술을 오므리고 말을 잇지 못하자 잠자코 있다가 화제를 돌렸다."회장님 언제 오세요?"서준혁은 그녀를 바라보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소식이 참 빠르네. "서준혁은 아무리 신유리를 비꼬우며 괴롭혀도 결국 서창범을 만날 땐 여전히 그녀를 데리고 갔다.서창범은 신유리의 출신에 대해 불평이 많았지만, 그녀의 능력만은 인정한다.또한 신유리는 당시 서준혁의 부모님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서창범과 하정숙의 신상에 대해 많이 조사했었다.하여 서창범이 올 때마다 서준혁은 그녀에게 접대를 맡겼다.송지음도 나서고 싶지만, 하정숙이 그녀에 대한 태도를 감안해서 이럴 때일수록 분수를 차리고 가만히 있었다.게다가 서준혁도 신신당부했었다.송지음은 눈을 내려다보며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서창범은 50대가 넘었는데, 성안 그룹의 회장으로서 몸에 밴 위압감은 보통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창범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서준혁을 보며 말했다."춘성 지사에 간다더니 왜 이리 오래 걸린 게냐? ""합정에 들렀다 왔습니다. "서준혁은 아무런 감정 기복도 없이 대답했다."장도금 때문에?""네. "서창범은 몇 마디 묻고 나서 바로 대표 사무실로 갔다.신유리는 그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자연스레 대화에 끼어들며 춘성의 현황을 간단하고도 직접적으로 회장님께 보고했다.서준혁과 서창범의 관계는 늘 안 좋았는데 성안 그룹과 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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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화
신유리는 입구에서 잠시 서서, 방안에 대화 소리가 없어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문을 밀고 들어갔다.찻잔 테두리에 쏟아진 물 자국이 한눈에 안겨 왔는데 서창범이 방금 화를 낼 때 그랬을 것이다.그녀는 잠시 걸음을 멈추다가 눈을 내리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회장님, 최근 석 달간 화인 그룹 시장 데이터입니다. "서창범은 그녀를 한 번 쳐다보더니 무표정으로 차분하게 물었다."이번에 시한에 가보니까 어떠냐?”신유리는 표정을 유지하면서 대답했다."괜찮던데요?""시한 쪽에 사람이 부족하다며?"서창범이 말을 하는 동안 시선은 쭉 신유리한테 있었다.신유리는 당황한 나머지 눈썹마저 떨렸다.그녀는 줄곧 서창범이 하정숙보다 친화력이 더 좋다고 생각해 왔다.처음에도 서준혁이 그녀를 집에 데려온 것에 대해 말로만 크게 반대하고 그 후 모든 일에서 늘 침묵을 지켰다.그때 서준혁이 신유리를 기어코 회사에 들여보내겠다고 했을 때도 하정숙의 격한 반대에도 서창범은 그냥 경쟁 계약만 체결시키게 하고는 다른 말은 없었다.당시 신유리는 20대 초반이어서, 서창범이 둘 관계를 인정한 줄 알고 기뻐하면서 계약서를 체결했었다.지금 다시 보니, 처음부터 서창범은 신유리가 집안에 못 들이게끔 일찌감치 계획을 세웠던 것 같았다.장사꾼이 이익을 제일 순위로 둔다고 하는데, 서창범이 그 전형적인 예가 아닐까?신유리는 서준혁이 키워 온 사람이다. 하여 서창범은 그녀가 떠날 때 서씨 가문의 그 어떤 물건을 못 가져가게끔 퇴로를 다 막아버리려고 했다.서창범의 태도가 이러하니 서준혁은 말할 것도 없다.신유리는 가슴이 저려 통증이 밀려왔다.그녀는 눈을 들어 옆에 앉아 있는 서준혁을 바라보았다. 서준혁도 그녀의 시선을 느꼈는데도 무시하고 시선을 피했다.서준혁은 서창범의 말을 가로채며 물었다."아버지, 성안과 원정의 땅 싸움에서 이길 자신 있어요? ""네가 어쩌다 성안 걱정을 다 하네?"서준혁은 여전히 무표정으로 차분하게 차를 한 모금 마셨다.서창범도 차를 마시려고 찻잔을 들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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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화
연우진은 걱정스러운 듯 신유리를 바라보며,"무슨 일이 있으면 꼭 나한테 알려줘. "신유리는 애써 표정 관리하며 말했다."여기 하루 종일 있다가 저녁도 안 먹었지? 내가 밥 살게."연우진과는 외할아버지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 않은 게 분명했다.그는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며 더 이상 묻지 않고 주동적으로 화제를 바꾸었다."너 서준혁이랑은 잘 지내? ""응, 걔는 친화력이 좋아.""하하하, 서준혁이 친화력이 좋다고 칭찬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너 하나뿐일걸?"연우진은 실소를 금치 못했는데, 서준혁의 성격을 떠올리면서 덧붙였다."너희 둘 성격이 비슷해서 그랬을 거야."신유리는 자신이 서준혁과 비슷한 점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연우진이 임의로 말거리를 찾는 거라고 여겨 대충 몇 마디 호응해 줬다.병원 근처에는 좋은 식당이 별로 없었다. 마침 저녁 시간이라 사람이 많은데, 주로 환자나 환자 가족들뿐이었다.그들은 아예 차를 몰고 부근의 한 상권으로 갔다.신유리는 사실 입맛이 별로 없어서 연우진에게 떠밀었다."뭘 먹고 싶어?"연우진은 그녀를 쳐다보며,"죽을 먹자, 담백하게. "하지만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연우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그는 계면쩍게 신유리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으러 나갔다.신유리는 식당 직원의 안내에 따라 독방으로 들어간 후에야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냈다.오후에 외할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줄곧 무음 상태로 하고 가방에 넣어두었다.다시 꺼내보니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 두 통이 띠였다.모두 양예슬인데, 신유리에게 어디 있냐고 물었다.신유리가 양예슬에게 다시 전화를 걸자 그녀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아직도 회사에서 야근하고 있는지 목소리는 매우 괴로워하는 것 같았다."여보세요, 유리 언니, 왜요?”"오후에 무슨 일로 전화했어요?”"오후에요?"양예슬은 멍해지다가 생각났다."아, 맞다, 유리 언니, 오후에 대표님이 오셔서 언니가 어디 있냐고 물어보시길래, 급한 일로 언니를 찾고 있는 줄 알아서 전화해 본 거예요."서준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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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화
신유리는 도착했다고 일깨웠다."도착했어.”서준혁은 움직이지 않았다. 술을 마셔서 그런지 그는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토록 연우진이 보고 싶었어?"그의 말투는 매우 담담하여 거의 아무런 기복도 없었다.신유리는 멈칫하더니,"우서진이 알려준 거야? "우서진 말고는 할 일 없이 이 소식을 서준혁에게 알려줄 사람이 없다."연우진이 많이 신경 쓰이나 봐?"지하 주차장의 불빛은 어두웠다. 차 안은 더더욱 그렇다.신유리는 야맹증을 앓고 있어 서준혁의 앉은 위치는 흐릿하게 보이고 그의 표정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서준혁은 가볍게 '쯧쯧' 하며 무심코 입을 열었다."신유리, 연우진 집안을 봐서는 깨끗하지 못한 여자는 인정 안 할 거야. "신유리는 한참 동안 어리둥절하다가 그가 말한 뜻을 알아챘다.그녀는 눈을 감으면서 가슴에 맺힌 화가 한 차례 통증이 밀려왔다.신유리는 천천히 정신을 가다듬고 목소리를 되찾으며 말했다."내가 그 깨끗하지 못한 여자야?"서준혁의 말투는 여전히 담담했다."그건 모르지, 그냥 그렇다고. "서준혁은 말하고 나서 차에서 내렸다.그의 뒷모습이 천천히 모퉁이로 사라지자, 쭉 지켜보던 신유리는 핸들을 잡은 손을 천천히 조였다.서준혁이 방금 한 말이 그녀의 마음에 깊숙이 박혔다.'내가 깨끗하지 못한 여자였구나!''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해 온 거야?''그러면 여태껏 날 갖고 논 거야?'신유리는 차에서 한참 진정하다가 차가워진 손발을 녹였다.서준혁은 늘 어떻게 하면 그녀를 고통스럽게 하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정말 잘 알고 있었다.집에 돌아왔을 때, 신유리의 몸은 여전히 힘이 없어 나른했다.옷도 갈아입지 않고 하이힐을 걷어차 바로 욕실로 들어갔다.따뜻한 물이 머리 위로 흘러내리자, 그녀는 얼굴을 위로 내밀며 물줄기에 맞으면서 서있는 것이 마치 무언가를 씻어내려는 듯했다.그녀의 피부는 원래 하얗기 때문에 뜨거운 물에 맞으면 금방 분홍색이 떠오른다.분홍색이 달아오른 팔을 보면서 서준혁이 말한 깨끗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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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화
하지만 신유리는 여전히 송지음을 과소평가했다.점심시간, 그녀는 사무실 입구에 나타나 노트북을 들고 있었다.눈시울이 빨갛게 달아올라 울었던 흔적이 보였다.그녀는 신유리 앞에 나타나더니 심한 콧소리로 말했다."유리 언니, 미안해요, 점심때 제가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었어요."신유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눈을 들어 송지음을 바라보자, 진심다워 보였다."다시는 안 그럴게요, 저는 그냥 나중에 실수라도 할까 봐 미리 회장님 취향을 알고 싶어했을 뿐이에요."그녀의 태도와 변명은 늘 완벽했다. 게다가 점심시간이라 대부분 직원이 사무실에 있어 신유리도 뭐라 하기 애매했다.신유리는 차라리 송지음을 데리고 바깥 베란다로 나갔다.베란다에서 송지음은 열심히 신유리의 말을 듣고 있었다.신유리의 마음속에는 별다른 파장이 없었다.무슨 얘기긴!오랜 시간을 들여 알아낸 서준혁 부모의 취향을 휴식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송지음은 그걸 쪽쪽 빨아먹고 있을 뿐이다.오히려 신유리는 홀가분했다.신유리는 마지막 한 가지를 말하고는 휴대전화를 보더니 돌아가려 했다."출근 시간이야. ""유리 언니."송지음은 수첩을 끌어안고 부드럽게 그녀를 불렀다."언니…. "그녀는 망설이다가 말을 잇지 못했다.신유리는 잘 알고 있다. 송지음은 서준혁 부모의 취향을 어떻게 그토록 자세하게 알아냈는지 묻고 싶은 것이었다.자신을 깊게 들여다보려는 송지음의 시선에 신유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대표님 알려준 게 아니야."송지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수첩을 들고 떠났다.신유리는 베란다에 잠시 서 있었다.베란다에 외벽 유리를 사이에 두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차들을 바라보며 신유리의 눈동자는 아주 평온했다.서준혁 부모의 취향은 확실히 서준혁이 그녀에게 알려준 것이 아니다.예전의 서준혁은 화인의 일에 전념하느라 집안과의 관계가 매우 안 좋았다.그땐 그녀는 어리석게도 자신이 그의 부모님께 잘 보이면 부모로서 아들을 도와줄 줄 알았다.두 분의 취향도 갖은 비난과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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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화
송지음의 얼굴이 순간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하정숙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정오에 하정숙을 만났을 때부터, 하정숙은 줄곧 그녀한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원래는 하정숙의 하대가 냉담하는 걸로 끝날 줄 알았는데, 갑자기 비난할 줄 몰랐다.하지만 신유리가 아직 남아 있어 송지음은 그녀 앞에서 더더욱 체면을 깎이고 싶지 않았다.송지음은 애써 입꼬리를 위로 잡아당기며 웃음을 짜내려고 애썼다."저는 그냥 사모님을 돕고 싶었을 뿐이에요."하정숙은 송지음의 불쌍한 표정을 못 본 것처럼 보잘것없는 물건을 대하듯이 풍자가 담긴 눈빛으로 그녀를 뚫어져라 보았다.송지음은 하정숙의 주시에 버티기에 힘들었으나 그래도 등을 꼿꼿이 세워 계속 견지했다. 계속 유지하던 미소도 거의 한계를 달아, 송지음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작은 소리로 하정숙을 불렀다."어머님…. ""어머님? " 하정숙은 송지음의 부르던 호칭을 반복하면서 그녀의 손에 들고 있었던 문서를 빼앗으며 냉정하게 말했다."역시 가문이 별로인 사람은 분수가 참 없구나! "하정숙의 말투에는 무시가 넘쳐나 평소 표정 관리에 능숙한 송지음마저 충격이라도 맞은 듯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신유리는 자신과 별로 상관이 없어서 별 반응이 없었다.그녀는 검사 결과를 들고 곧바로 의사를 찾아 나섰다.의사 선생님도 결과를 보면서 회복이 잘되고 있다며 그녀에게 주의 사항을 많이 당부했다.병실에 돌아오니, 연우진이 마침 외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신유리는 이미 적응되었다. 최근 며칠 동안 병원에 가면 연우진은 꼭 거기에 있었다.그는 평소 학문을 부지런히 닦은 덕분에 외할아버지와 즐겁게 얘기를 나눌 수가 있었다.신유리가 들어오자 연우진이 물었다."외할아버지가 많이 좋아지신것 같아. ""응." 신유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되물었다."언제 왔어?”"나도 방금 왔어.""오늘 밤 정재준의 생일이라던데, 너한테도 메시지 보냈는데 답장 안 했다며? 그래서 와본 거야."생각해 보니, 정재준이 며칠 전 자신을 생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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